최근 수정 시각 : 2023-12-30 21:41:33

경복궁 경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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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colbgcolor=#bf1400> 경복궁 경성전
景福宮 慶成殿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 세종로)
건축시기 1395년 (창건) / 1867년 (중건) / 1995년 (복원)
파일:경복궁_경성전.jpg
<colbgcolor=#bf1400> 경성전[1]
1. 개요2. 이름3. 역사4. 구조5. 대중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경복궁의 침전 강녕전의 보조 침소로 강녕전 서남쪽에 있다.

2. 이름

조선 초 재상이던 삼봉 정도전이 지었다.

'경성(慶成)' 뜻은 '이룸, 완성(成)을 기뻐한다(慶).'이다. 서쪽은 전통적으로 가을을 의미했고,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가을에 맺기 때문에 서쪽은 완성, 결실을 의미했다. 맞은 편에 있는 연생전(延生殿) 이름은 '생명의 기운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경성전과는 서로 뜻이 이어지는 이름이다. 정도전은 연생전과 경성전 이름에 대해 태조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연생전(延生殿)과 경성전(慶成殿)에 대하여 말씀드리면, 하늘과 땅은 만물(萬物)을 봄에 낳게 하여 가을에 결실하게 합니다. 성인이 만백성에게 인(仁)으로써 살리고 의(義)로써 만드시니, 성인은 하늘을 대신해서 만물을 다스리므로 그 정령(政令)을 시행하는 것이 한결같이 천지의 운행(運行)을 근본하므로, 동쪽의 소침(小寢)을 연생전(延生殿)이라 하고 서쪽 소침을 경성전(慶成殿)이라 하여, 전하께서 천지의 생성(生成)하는 것을 본받아서 그 정령을 밝히게 한 것입니다.
《태조실록》 8권, 1395년(태조 4년) 10월 7일 정유 2번째 기사.
즉, 임금이 천지만물의 탄생과 결실이라는 천지 운행의 흐름을 본받고 좋은 정치를 하란 뜻이다.

현판 글씨는 1995년에 우죽 양진니(楊鎭尼, 1928 ~ 2018)가 쓰고 각자장[2] 철제 오옥진(吳玉鎭. 1935 ~ 2014)이 새겼다.

3. 역사

1394년( 태조 3년) 경복궁 창건 당시에 처음 지었다. 1553년( 명종 8년)에 화재로 사라진 뒤 재건했으나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불탔고 270여 년 뒤인 1867년( 고종 4년)에 다시 지었다. 그러나 1876년(고종 13년)에 화재를 입었고 1888년(고종 25년)에 재건했으나 1890년(고종 27년)에 또 불타서 # 이후 다시 지었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불타 없어진 창덕궁 내전을 재건할 때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내전 건물을 자재로 쓰기 위해 해체, 이전했다. 그래서 지금은 희정당이 되었다. 이후 80년 가까이 빈 터로 남아있다가 1995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4. 구조

※ 맞은 편에 있는 연생전과 구조가 거의 같다.

파일:경복궁 전도 교태전 강녕전.png }}} ||
<colbgcolor=#bf1400> 〈경복궁전도〉에서 묘사한 내전 영역
영조 때 만든, 조선 초기 경복궁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경복궁전도(景福宮全圖)》를 보면 현재도 같은 권역인 강녕전, 연생전은 물론, 사정전, 교태전 등과도 복도로 이어져있다. 이는 완전히 영역이 떨어진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이다.
  • 장대석 3벌대로 만든 기단 위에 단층으로 세운 목조 전각[3]이다. 기단 위는 전돌로 마감했으며 정면 기단의 온돌방 부분 밑으로 아궁이를 두었다. 건물 뒤편에 굴뚝을 만들었는데 기단과 이어져있는 형태이다.

파일:경성전 내부.png }}} ||
<colbgcolor=#bf1400> 경성전 내부
정면 7칸, 측면 4칸, 총 28칸이다. 내부 구조는 윗 그림 참조.
  • 정면의 온돌방과 왼쪽(남쪽) 가장자리 칸 벽면은 하단에 머름이 있고 그위로 창과 교창이 달린 모습이다. 정면 기준 왼쪽(남쪽)에서 3, 4번째 칸은 출입구이며 툇간이 밖으로 드러난 형태이다. 오른쪽(북쪽) 가장자리 칸에는 창이 아니라 문이 달려있는데 원래 강녕전과 복도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덧붙여서 원래는 좌우로 가퇴가 있었지만 이건 복원되지 못했다.
  • 양 측면의 벽면을 보면, 온돌방에는 머름을 하단에 두고 그 위에 문선과 중인방을 설치했으며 문선에 작은 창을 두고 나머지는 전부 벽으로 마감했다. 가장자리 칸은 벽이 없는 것을 빼고는 같은 모습이다. 뒷면의 벽면도 대청칸을 제외하고는 측면 벽면과 형태가 같다.
  •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지붕 위에 취두, 용두, 잡상을 올렸고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에 양성바름을 했다. 합각은 벽돌로 쌓아 만들었고 합각 중앙부에는 역시 벽돌로 길상문을 만들어두었다.
  • 처마는 겹처마이며 공포는 이익공이다. 공포와 공포 사이에는 화반을 두었고 화반 위쪽에는 운공을 두었다. 화반 사이는 벽으로 마감했다.

5. 대중매체에서

  • 2011년 SBS 드라마 〈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세종 이도가 주로 사용하던 공간으로 나왔다. 젊은 시절( 송중기 분)에는 태종( 백윤식 분)이 사람들을 숙청할 때마다 도피하여 마방진을 푸는 곳으로, 중년 시절( 한석규 분)에는 비밀리에 한글 창제를 하는 곳으로 등장했다. 드라마 마지막에는 정도전이 설계했던 경복궁 비밀통로를 통해 정기준( 윤제문 분)[4]이 잠입하여 세종과 토론 후에 숨을 거두는 장소로 나왔다.

[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2] 나무판에 글자 그림을 새기는 각자(刻字)의 제작 기능을 가진 장인. [3] 보통 한옥의 경우 1층보다는 단층(單層)으로 말한다. [4] 극 중 세종의 적이자 정도전의 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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