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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룡/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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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룡 시즌별 성적
1984 시즌 1985 시즌 1986 시즌
MBC 청룡 1985년 페넌트레이스 월별 일정
3~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MBC 청룡 1985 시즌 성적
순위 승률 1위와의 승차
5 / 6 44 1 65 0.404 33.0

1. 개요2. 3~4월3. 5월4. 6월5. 7월6. 8월7. 9월8. 스토브리그
8.1. 코칭스태프 이동8.2. 선수 이동8.3. 신인 선수8.4. 기타8.5. 여담8.6. 팀별 상대전적
9. 선수별 개인 성적
9.1. 투수9.2. 타자
10. 수상 및 기록11. 둘러보기 틀

1. 개요

MBC 청룡의 1985 시즌을 정리한 문서.

2. 3~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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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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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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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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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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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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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스토브리그

8.1. 코칭스태프 이동

8.2. 선수 이동

1984년 11월 백업 1루수 김바위와 삼미의 최홍석과의 트레이드가 있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지도 3년째 국가대표급 화려한 선수층으로 매년 우승후보로 손 꼽히던 청룡이었지만 언제나 뒷심이 부족하여 무너지는 것을 반복했다. 매년 우승권으로 평가받음에도, 그 기대에 번번이 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었고 자연스레 직접적인 전력 보강보다도, 우선적으로 팀의 분위기 쇄신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강해졌고, 이에 따라 또 다시 숙청의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전년도의 희생양이 김동엽 감독이었다면, 이번엔 팀 내 주장인 이해창과 최고참 이종도가 숙청 대상이 되었다.

주장 이해창은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273 6홈런 36도루 WAR 3.71), 선수협 주동문제와 연봉문제와 관련해 구단측과 사이가 꽤 깊이 벌어져 있었고 이종도는 첫 2년간은 부동의 중심타자로서 그 몫을 다했으나(82~83 평균 .308 9홈런 55타점 18도루), 서른 중반에 가까워진 나이[1]와 전년도에 1할대에 머무는 극심한 부진으로 하락세만 남았다는 판단 하에 전력 외로 분류되었다.

결국 이해창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삼성의 비운의 투수 이선희[2]와 트레이드 되었고. 이종도는 이 해부터 같은 서울연고(청룡은 잠실-OB는 동대문)를 쓰게된 OB로 1800만원에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이적하게 된다.

이해창을 이선희로 바꾸며 탄탄한 마운드(84년 팀 방어율 1위)를 더 두텁게 만드는데 성공한 청룡의 다음 타겟은 그 두터워진 마운드를 이끌어야할 안방마님, 포수였다. 차동열과 박철영이라는 기대주들의 성장이 더디고 원년 골든글러브 포수 김용운과의 재계약이 연봉문제로 지지부진한 탓에 내야수 신언호를 포수로 다시 전환시키는 것까지 고려했는데 역시나 연봉문제로 롯데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던 당대 최고의 수비형 포수이자 국가대표 출신의 심재원을 3월 김용운+현금 300만원으로 영입하는데 성공하며 그 고민을 해결했다.

미계약상태였던 조호, 박석채, 이성수, 최정우, 편기철, 신계석 등 6명을 자유계약선수로 공시 신청했다. #

8.3. 신인 선수

  • 1차 지명
안언학(중앙고-고려대, 내야수)
박흥식(신일고-한양대, 외야수)
정삼흠(명지고-고려대(중퇴)-포철, 투수)
예병준(동대문상고-농협-상무, 투수)
윤덕규(대광고-상업은행, 외야수)
유지홍(선린상고-고려대, 내야수)
최동명(신일고-경희대, 투수)[3]
채도병(충암고-인천전문대, 내야수)
김용수[4](동대문상고-중앙대-한일은행, 투수)

지난 3년과 달리 OB가 1985년부터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함으로써 기존의 2-1 지명 방식에서 1-1 지명 방식으로 변하게 되었다. 동전던지기 추첨으로 우선권을 정해 지명했다.

서울팜을 기반으로 한 유망한 신인들의 수급 또한 나쁘지 않았다. OB와의 주사위 싸움을 연전연승하며(4연승) 중앙고 시절 광주일고 선동열을 완봉승으로 셧아웃시킨 고려대의 안언학과 고려대의 탄탄한 투수진에 막혀 빛을 못 보다 휴학 후 실업무대에 뛰어들어 리그를 평정하다시피한 아마추어 거물, 정삼흠[5]을 지명했다. 이 밖에도 국가대표 출신의 한일은행의 김용수, 한양대의 박흥식, 상업은행의 윤덕규 등을 지명하며 이종도 이해창이 빠져나간 곳을 채울 신예들을 보강한다.
  • 2차 지명
곽승훈(신일고-건국대[중퇴],내야수)

8.4. 기타

지난해 6개 구단중 유일하게 재일교포 출신 선수가 없었던 청룡은 재일교포 출신이자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약하던 내야수 유고웅을 영입했다. 알다시피 주니치와 청룡이 자매구단이었기 때문에 쉽게 영입할 수 있었다.

해외로 떠나지 않고 경남 진해에서 스프링캠프를 실시했다. #

8.5. 여담

  • 경향신문에서 예상한 순위로는 전체 구단 중 꼴찌였다. # 이해창과 이종도를 트레이드해서 부메랑을 맞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 지난 해까지 단독 서울 연고 야구팀이었으나 1984년을 끝으로 OB 베어스가 연고지를 대전에서 서울 동대문야구장으로 옮기며 청룡은 단독 서울 연고팀이 아니게 되었다. 청룡은 화끈한야구 승천하는 MBC라는 구호를 내걸었고 OB는 서울 입성과 함께 우리 모두 서울 OB 베어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 OB의 서울 입성 첫 경기가 3월 30일 동대문에서 청룡과의 개막전이었는데 여기서 4:8로 패배하며 OB의 서울 첫 홈경기 승리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 이광은이 4월 28일 해태와의 광주 경기에서 프로야구 첫 삼중살을 친 주인공이 되었다. #
  • 김재박이 7월 27일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10회초를 막은 뒤, 타석에선 끝내기까지 쳐 결승타와 승리투수를 한 경기에서 경험했다. #

8.6. 팀별 상대전적

MBC 청룡 1985년 팀별 상대 전적
상대 팀 승 - 무 - 패 승률 승패마진 우열
롯데 자이언츠 7 - 0 - 15 0.318 -8 절대열세
삼성 라이온즈 7 - 0 - 15 0.318 -8 절대열세
OB 베어스 9 - 0 - 13 0.409 -4 열세
해태 타이거즈 7 - 1 - 14 0.333 -7 절대열세
삼미 슈퍼스타즈 14 - 0 - 8 0.636 +6 우세
청보 핀토스
총합 44 - 1 - 65 0.404 +3 순위: 5 / 6
  • 분류 기준
    • 남색은 압도(승률 ≥ .800)를 뜻한다.
    • 청색은 절대우세(.650 ≤ 승률<.800)를 뜻한다.
    • 하늘색은 우세(.550 ≤ 승률<.650)를 뜻한다.
    • 녹색은 백중세(.450 ≤ 승률<.550)를 뜻한다.
    • 오렌지색은 열세(.350≤승률<.450)를 뜻한다.
    • 적색은 절대열세(.200≤ 승률<.350)를 뜻한다.
    • 갈색은 압살(승률<.200)을 뜻한다.

9. 선수별 개인 성적

9.1. 투수

  • 우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49 정삼흠 41
(5위)
16 192⅔
(7위)
9 12
(4위)
5
(7위)
3.13 169
(8위)
84
(3위)
99
(6위)
18 오영일 28 13 127⅓ 8 8 1 3.53 132 54 42
34 하기룡 26 12 111 5 10
(6위)
2 2.92
(10위)
103 57 31
37 김봉근 21 12 113⅓ 2 7 0 3.34 110 32 37
47 김정수 15 9 60 2 3 0 2.70 50 40 25
41 김용수 6 0 21⅔ 1 2 2 3.74 22 7 14
11 이길환 8 7 35⅓ 1 2 0 3.31 28 18 6
14 이광권 4 1 9⅓ 0 0 0 4.82 10 3 1
29 정순명 7 6 18 0 4 0 6.00 26 7 5
7 김재박 1 0 1 0 0 0.00 0 0 0
21 차준섭 3 1 4⅓ 0 0 0 14.54 11 0 0
1 안언학 10 2 15 0 2 0 9.00 19 11 4
  • 좌완
이름 경기수 선발등판 이닝 세이브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 유종겸 33 13 135⅓ 10
(10위)
8 1 2.99 111 57 40
36 이선희 28 18 138 5 7 2 2.28
(4위)
111 59 49

3.24의 팀방어율은 리그 4위로 평균수준은 했다. 하지만 최동원, 김시진, 선동열 만큼 리그를 주름잡는 확실한 에이스는 없었다. 신인 정삼흠은 첫 해부터 200이닝에 가까운 이닝을 소화하며 3.13의 평균자책점에 리그에서 두번째로 많은 3번의 완봉승[6] , 9승에 5세이브를 곁들이며 전천후로 활약했고 신인왕 순위에서도 4위를 차지했다.[7] 준수한 평균자채점에도 불구하고 12패로 최다패 4위였는데 그보다 패배가 많았던 투수는 5.30이라는 방어율과 단일시즌 최다패인 25패로 망가진 삼미의 장명부와 똑같이 5점대 방어율의 정성만, 그리고 OB의 최일언 뿐이었다. 최일언은 2.43이라는 짠물피칭에도 불구하고 10승14패를 거뒀다. 그래도 최일언은 선발로 등판한건 9번에 불과했고 10승이라도 건졌지만 정삼흠은 16번의 선발등판이 있어 1985년 진정한 윤석민상 수상자라고 할 수도 있다. 불운했던 또다른 투수는 이선희 하기룡인데 각각 2.28과 2.92라는 준수한 방어율에도 불구하고 승수는 단 5승에 그쳤다.

9.2. 타자

  • 포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7 심재원 76 189 .206 39 3 0 3 15 14 4
22 차동열 64 151 .219 33 2 0 4 20 13 1
24 박철영 14 21 .190 4 2 0 0 2 1 0
  • 내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7 김재박 100 377
(8위)
.313
(6위)
118
(4위)
15 3 3 36 54 50
(1위)
9 김상훈 98 360 .300
(10위)
108
(10위)
23
(3위)
4
(6위)
5 51
(8위)
33 4
4 김인식 110
(1위)
404
(1위)
.275 111
(9위)
14 0 2 16 48 17
(7위)
26 유고웅 89 228 .193 44 6 0 4 15 26 7
25 유지홍 60 130 .215 28 4 0 0 13 9 3
47 김정수 32 91 .220 20 3 2 1 7 4 0
3 김용달 71 142 .232 33 9 0 3 14 15 3
6 김경표 40 51 .157 8 1 0 0 3 3 1
16 유성용 2 2 .000 0 0 0 0 0 0 0
14 이강권 1 1 .000 0 0 0 0 0 0 0
  • 외야수
이름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33 이광은 87 326 .279 91 11 3 6 39 38 20
(6위)
8 송영운 79 198 .278 55 6 1 0 19 16 4
20 박흥식 79 210 .238 50 8 5
(3위)
0 9 18 4
32 신언호 107
(7위)
371
(9위)
.226 84 11 0 1 28 23 6
12 김문영 58 94 .223 21 3 0 1 8 7 2
17 윤덕규 25 47 .170 8 0 1 1 3 6 2
1 안언학 42 94 .181 17 2 0 1 6 7 0
5 최홍석 37 76 .145 11 3 0 2 7 2 0
15 김영균 25 52 .154 8 1 0 0 6 2 0
10 김봉기 28 9 .111 1 0 0 0 0 6 1

팀내 최다홈런이 8개를 친 김상훈일 정도로 장타력 빈곤이 심했다. 여길 보면 나오는데 OPS .800을 넘긴 청룡 선수는 전무했다. 여길 보면 타격 WAR 총합은 9.16으로 꼴찌이며 5위였던 롯데가 거의 2배인 18.04이니 리그 최하급의 타격 생산성을 기록했다. 삼성의 타격 WAR은 29.97이다. 6개 구단중 유일한 300점대 득점대인 345득점을 기록했으며 홈구장이 잠실임을 감안해도 팀 홈런 37개로 이 부분 5위 67개의 OB보다 30개나 적었다. 팀타율도 .246로 꼴찌, 출루율도 .313으로 꼴찌, 장타율도 .322로 꼴찌로 트리블 콤보를 했다. 최악의 물방망이니 팀성적이 좋아질래야 좋아질 수 없었다. 김재박의 도루 1위도 팀성적을 끌어올리는데엔 역부족이었다. 얼마나 장타가 안나오면 뛰었을지 외야수 신언호는 WAR -1.41로 전체 WAR 꼴찌를 차지했다.

10. 수상 및 기록

  • 김재박 -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3년 연속), 최다 도루 1위(50개)
  • 이광은 -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GG 2년 연속/84년은 3루수)

11.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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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별 198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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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1985년
삼성 라이온즈
1985년
OB 베어스
1985년
파일:MBC 청룡 엠블럼(1982~1985).png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파일:삼미 슈퍼스타즈 엠블럼.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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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룡
1985년
해태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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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 1985년
청보 핀토스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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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년대 초반인 현 시점에서 이 연령대는 한창 뛸 나이지만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되었던 1980년대 중반에는 이미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였다. [2] 프로야구 개막전 이종도에게 끝내기 만루홈런을 허용한 그 이선희가 맞다. [3] 1962년생 우완 사이드암 스로 투수로 MBC의 지명을 거부하고 상업은행에 입단하여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1992년 5월 백혈병으로 요절했다. [4] 앞서 1983년 지명 때 지명한 덕에 다른 선수들과 달리 지명 대상에서는 빠졌다. [5] 안언학과는 동기였다. [6] 1위는 4회의 최동원이다. [7] 신인왕은 금지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