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8 08:40:40

LG 트윈스/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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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시즌별 성적
2002 시즌 2003 시즌 2004 시즌
LG 트윈스 2003 시즌
4월 5월 6월 7월 8월 9~10월
페넌트레이스 성적
순위 승률
6 60 2 71 0.458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1.2. 선수 이동1.3. FA1.4. 신인 선수1.5. 기타
2. 정규시즌
2.1. 시즌 전 전망2.2. 4월2.3. 5월2.4. 6월2.5. 7월2.6. 8월2.7. 9~10월2.8. 상대 전적2.9. 수상 및 기록2.10. 선수별 개인기록
3. 총평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2002 한국시리즈 준우승에도 불구하고 팀을 정규시즌 4위에서 준우승으로 이끌었던 김성근 감독은 그의 야구 스타일이 LG의 '신바람 야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약 만료 기간을 1년 앞두고 경질당했다. 이에 LG팬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는 훗날 노리타들에 의해 상당히 윤색된 이야기들이고 실제로는 LG 팬들 역시 김성근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이지 못한 시선을 갖고 있었다. 특히 김성근의 번트 위주의 스몰 야구는 '신바람 야구'를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던 골수 LG 팬들에게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김성근의 후임으로 1994년 신바람 야구로 LG 트윈스의 우승을 이끌었고 한화 이글스 감독을 맡고 있던 이광환 감독이 7년만에 LG로 컴백하게 되었다. 한편 LG는 이광환 감독 선임 발표에 앞서 김성근 사단으로 분류되었던 이홍범, 이철성, 세이케 마사카즈, 권두조, 김태원, 고정식 코치를 내보냈다.

다만 이상훈은 김성근의 경질을 반대했고 이는 이상훈이 팀에서 사실상 버려지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2002년 12월 1일자로 코칭스태프 개편이 단행됐다. 김영직 1군 외야코치, 황병일 2군 타격코치, 송구홍 2군 수비코치, 정삼흠 2군 재활담당 코치 등 4명을 새로 영입했다.[1] 1군의 양상문 투수코치, 김상훈 타격코치, 김용국 수비코치는 유임됐으며 2군에 있던 이순철 작전 및 주루 코치는 1군으로 올라왔다. 박철영 1군 배터리 코치도 유임됐으며 2군 김용수 투수코치는 2군 책임 코치를 겸임, 권두조 2군 감독의 빈자리를 메웠다.

1.2. 선수 이동

외국인 구성으로는 매니 마르티네스와 재계약하고, 투수 용병 라벨로 만자니오와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3년 전 부상으로 퇴출되었던 브렌트 쿡슨을 재영입했다.

1999년 2차 6라운드에 지명받았던 인하대의 투수 정재복과 계약금 1억8천만원, 연봉 2천만원에 입단 계약했다. 정재복을 제외한 나머지 기지명자는 모두 지명권이 풀렸다.[2]

1.3. FA

이종열이 FA 자격을 취득했고 4년 13억 원에 잔류했다.

1.4. 신인 선수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표시는 고졸로 지명받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 진학 후 중도하차한 선수.

1차지명: 박경수(성남고, 내야수)

2차지명: 1라운드 - 이성열(효천고, 포수), 2라운드 - 이대형(광주일고, 외야수), 3라운드 - 우규민(휘문고, 투수), 4라운드 - 이경민

(마산고, 투수), 5라운드 - 박우상 (배명고, 외야수)※@, 6라운드 - 박노산(인창고,내야수) ※, 7라운드 - 윤성길(효천고, 투수), 8라운드 - 김성대 (마산고, 투수), 9라운드 - 김준호 (효천고, 외야수)

1.5. 기타

12월 13일 김재현이 왼쪽 고관절 수술을 받았다.

이상훈은 연봉 6억원에 재계약하며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연봉 6억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LG가 연봉협상을 마치자마자 삼성구단이 이승엽의 연봉을 6억 3천만원으로 책정해 연봉킹 자리를 내줬다.

2. 정규시즌

2.1. 시즌 전 전망

2.2. 4월

2.3. 5월

2.4. 6월

2.5. 7월

2.6. 8월

2.7. 9~10월

2.8. 상대 전적

LG 트윈스 2003년 팀별 상대 전적
상대 팀 승 - 무 - 패 승률 승패마진 우열
삼성 라이온즈 5 - 0 - 14 0.263 -9 절대열세
KIA 타이거즈 9 - 0 - 10 0.474 -1 백중세
현대 유니콘스 8 - 1 - 10 0.444 -2 열세
두산 베어스 7 - 0 - 12 0.368 -5 열세
SK 와이번스 12 - 0 - 7 0.632 +5 우세
한화 이글스 7 - 1 - 11 0.389 -4 열세
롯데 자이언츠 12 - 0 - 7 0.632 +5 우세
총합 60 - 2 - 71 0.458 -11 순위: 6 / 8
  • 분류 기준
    • 남색은 압도(승률 ≥ .800)를 뜻한다.
    • 청색은 절대우세(.650 ≤ 승률<.800)를 뜻한다.
    • 하늘색은 우세(.550 ≤ 승률<.650)를 뜻한다.
    • 녹색은 백중세(.450 ≤ 승률<.550)를 뜻한다.
    • 오렌지색은 열세(.350≤승률<.450)를 뜻한다.
    • 적색은 절대열세(.200≤ 승률<.350)를 뜻한다.
    • 갈색은 압살(승률<.200)를 뜻한다.

지난해 우세를 거뒀던 SK와 롯데를 제외하면 전부 상대전적에서 뒤졌다. 지난해 LG에게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KIA에게는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하다가 막판 연패에 빠지면서 백중열세로 마쳤다. 한화에게는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팽팽히 맞섰지만 9월 결정적인 4연전에서 싹쓸이 패배를 당하며 열세가 되었다. 총체적 난국 끝에 7위로 마친 두산에게 7승 12패를 거둔 것은 순위경쟁에서 매우 치명적이었다. 선두 현대에게는 8승 1무 10패로 그럭저럭 선방했지만 이마양이 활약한 삼성에게는 7승 2무 10패를 거둔 지난해는 물론 6승 13패를 거둔 2년전보다도 못한 5승 14패로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2.9. 수상 및 기록

2.10. 선수별 개인기록

3. 총평

지난해 한국시리즈 진출에도 불구하고 신바람 야구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고 이광환 감독을 7년만에 컴백시켰다. 시즌 초부터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리며 좋은 투수력에도 불구하고 엇박자가 심했다.

김재현은 고관절 부상으로 인한 재활로 전반기를 통째로 쉬었고 FA 직전인 유지현은 커리어 최악의 부진, 지난해 신인왕 후보 박용택은 소포모어 징크스에 시달렸다. 또한 2000년 부상으로 인한 퇴출 이후 3년만에 돌아온 브렌트 쿡슨은 해결사 역할은 전혀 해주지 못하고 볼넷만 고르다가 한방두를 당했다. 급기야 전반기 타격을 이끌던 이병규마저 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아웃되고, 해결사 노릇하던 젊은 피 김상현도 강습타구로 인한 손등 부상으로 시즌아웃되며 안그래도 약한 타선은 더욱 약해졌다. 이로 인해 결국 구단 역사상 최악의 타격성적을 기록했다.[3] 이 해의 타선을 이끈 선수는 외국인 듀오 매니 마르티네스와 대체영입 이지 알칸트라, 그리고 19홈런으로 첫 두자릿수 홈런을 올리며 커리어 하이를 쓴 포수 조인성이었다.

투수력은 ERA 3.98로 8개 구단중 KIA 다음으로 방어율이 낮았다. 데뷔 이후 제구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이승호가 기량을 만개하여 11승과 탈삼진왕을 차지했다. 불펜에서는 이동현과 장문석이 지난해만큼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가운데 전승남과 류택현이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마무리 이상훈은 시즌아웃 전까지 세이브 1위 및 구원선두를 기록했지만 멀티이닝 소화에 어려움을 겪으며 이따금씩 크게 불을 질렀다. 선발에서는 김민기가 아예 개점휴업하고 최원호가 초반 반짝 후 드러누웠지만 장문석이 선발 전환 후 한동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 김광삼과 김광수는 초반에 잘 던졌으나 갈수록 힘에 부치는 모습이 나왔다. 확실한 연패스토퍼가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어 6연패 이상의 장기 연패가 속출하는 원인이 됐다.

사실 시즌 중반에도 순위만 4위였지, 오히려 승률은 5위 KIA보다 낮았던 날이 많았다. 다승제 제도였고 KIA가 우천으로 인해 경기수가 적어서 다승에서는 KIA보다 앞섰지만 승률에선 뒤졌었다. 결국 KIA가 마지막 두 달 엄청난 페이스로 승을 쌓자 LG는 자연스럽게 4강권에서 멀어졌다. 물론 한화한테도 따라잡혀 6위로 마쳤으니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실망스러운 한해를 마친 뒤 이광환 감독에 대한 좋지 않은 여론이 생겼고, 이해 SK의 신임감독으로 부임했던 조범현이 SK의 첫 가을야구를 이끌자 프로야구 40대 기수론의 바람이 불었다. 선동열이 해외 지도자 연수 후 귀국하자 선동열을 두산과 LG는 그를 감독으로 모시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정작 선동열의 행선지는 스승 김응용이 감독으로 있던 삼성이었고, 두산과 LG는 각각 김경문 이순철을 선임했다. 이순철을 감독으로 내세우며 LG는 제2창단을 선언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1] 정삼흠과 김영직은 2002년 김성근이 정식감독으로 취임하며 코치에서 물러났으나 이광환 감독과 함께 돌아오게 됐다. [2] 이 중 윤경영은 한화, 송수근은 SK에 입단했다. [3] 스탯티즈 wRC+ 기준. KBO 역사 모든 팀들을 통틀어 뒤에서 14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