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명칭(독수리)이 같은 부대에 대한 내용은 독수리부대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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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공통의 직할부대( 본부근무대, 의무근무대 등)는 소속 부대 문단 참고 |
제50보병여단 第50步兵旅團 The 50th Infantry Briga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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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중심 불패신화 명품독수리부대! | ||||||
창설일 |
1952년(제50보병연대) 2020년 12월 1일 (제50보병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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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명칭 | 독수리부대 |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
상급부대 | 제15보병사단 | |||||
규모 | 여단 | |||||
역할 | 휴전선 중부 전선 방어 | |||||
여단장 | 대령 김부경 (육사 57기) | |||||
위치 |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제2군단 제15보병사단 예하 제50보병여단. 별칭은 독수리부대.2. 특징
여단장은 대령이며 예하 대대장은 중령급 지휘관이다.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일대를 담당한다.
원래 명칭은 제50보병연대였으나 국방개혁 2.0 기본계획에 의거, 상비사단과 지역방위사단이 개편돼 50보병연대 역시 2020년부로 50보병여단으로 격상되었다.
3. 예하부대
3.1. 여단직할대
여단 직할 수색중대에서 정보중대로 전환3.2. 제1대대 신병교육대
- 본부중대
- 1중대
- 2중대
- 3중대
- 4중대
구 27사단 77여단 3대대로, 22년 9월 1일부 지휘 관계 전환으로 50여단 4대대가 되었다가, 22년 12월 1일부 1대대가 되었다.
신병교육대의 특성상 본부중대를 제외한 다른 중대는 모두 훈련병으로 채워져있다.
자세한 내용은 제15보병사단/신병교육대 문서 참고하십시오.
3.3. 제2대대 백호
- 본부중대
- 5중대
- 6중대
- 7중대
- 8중대
구 79여단 1대대로, 22년 9월 1일부 지휘 관계 전환으로 50여단 5대대가 되었다가, 22년 12월 1일부 2대대가 되었다
3.4. 제3대대 명지령
- 본부중대
- 9중대
- 10중대
- 11중대
- 12중대
구 78여단 3대대로, 22년 9월 1일부 지휘 관계 전환으로 50여단 6대대가 되었다가, 22년 12월 1일부 3대대가 되었다.
3.5. 군수지원대대
2020년 12월 국방개혁 2.0으로 인해 연대에서 여단급으로 격상되면서 수송대가 해체되며 군수지원대대가 창설되었다.3.6. 해체된 부대
3.6.1. 보병 대대
* 1대대 신병교육대신교대로 22년 11월부 해체되었다.
* 2대대 최강산악대대
전 국방장관이 대대장을 했던 부대로, 22년 11월부 해체되었으며, 해체 전 병력들은 22년 9월 3대대(현 38여단 3대대)로 전환되었다.
현재 해당 부대 주둔지에는 39여단 군지대와 포병대가 주둔하고 있다.
* 3대대 돌격대대
22년 9월 1일부 38여단으로 지휘 관계가 전환되어 38여단 4대대가 되었다고, 22년 12월 1일부 38여단 3대대가 되었다.
3.6.2. 직할대
4. 출신인물
4.1. 여단장
역대 제50보병여단장 | |||||||
역대 | 이름 | 계급 | 임관 | 비고 | 기타 | ||
초대 | 조원영 | 대령 | 육사 2기 | ||||
22대 | 박세환 | 대장 |
학군 1기 (고려대) |
前 제2작전사령관 | 前 육군교육사령관 | ||
00대 | 선영제 | 중장 | 육사 25기 | 前 합동참모차장 | |||
29대 | 백군기 | 대장 | 육사 29기 | 前 제3야전군사령관 | 前 용인시장 | ||
00대 | 이상돈 | 중장 | 육사 33기 | 前 육군군수사령관 | |||
50대 | 김희환 | 대령 | 학군 36기 (원광대) | 前 여단장 |
4.2. 장교/부사관
4.3. 병
5. 기타
5.1. 근무환경
GOP에 투입되는 38, 39여단과 달리 후방에서 훈련만 줄기차게 뛰는 부대다. 예비대인 만큼 훈련량은 27사단 뺨치며, 상호간 합동훈련도 자주 뛴다. 여기에 신병 교육대대를 운용하고 있는데, 2010년 말 대대 하나가 제2신병교육대대로 전환되자 남은 전투대대는 산악대대 딱 하나만 있어서 연대에 부과된 훈련을 (그 대대가 도로 환원되기 전까지) 산악대대가 죄다 뛰어야 했고, 그 결과 대대원 전부가 FTX[1]의 달인이 되라고 매주 주변 산을 오르내리게 했다.[2] 심지어 당시 대대장도 '특공대' 라는 별명답게 빡세게 굴려서 사격을 3차례 실시 중 18발을 못 맞히면 맞힐 때까지 매번 호출돼 사격을 해야했으며 아침 먹기 전에 FTX, 점심 먹고 FTX, 자기 전에 5대기는 덤이었으며 심지어 예하 중대 하나가 평가훈련을 뛰는데 나머지 중대도 같이 훈련을 뛰라고 하는 바람에 예정에도 없는 날벼락을 맞았다.산악대대 근처에는 이외수가 사는 감성마을이 있으며 매주마다 한 번씩 해방촌 구보를 하니 숙달되지 않은 신병은 퍼지지 말자.[3] 현재 아침 자율뜀걸음 방식을 운용하다가 너무 요령을 피운다는 의견이 올라오기도 했고 대대장이 바뀌어서, 다시 휴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소대뜀걸음으로 변경되었으며 운이 좋으면 이외수를 볼 수도 있으며 또한 50연대 본부로 배치받는 병사들은 비교적 깔끔한 신교대를 보고 연대본부는 이보다 더 좋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설 개선의 관심도가 낮아 연대에서 제일 낙후되어 있다.[4] 연본에는 본부, 통신, 의무중대가 본관 2층을 사용한다.
그나마 옛날에는 동기생활관이라 의무, 통신, 본부중대가 같은 생활관을 썼으나, 새로 부임한 지휘관이 아무것도 모르고 눈에 보이는 실적이나 올리려고 이건 말도 안 된다면서 중대별 생활관으로 최근에 바꾸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다른 중대끼리 교류가 있었으나 요즘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지방은 컨테이너박스 3개에 나뉘어서 사용할 수 있다. 지원중대는 생활관 몇 개로 나와있지만 본관과 시설이 별 다를바가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연대본부는 말이 본부지 여러모로 시설은 제일 나쁘다. 그래도 밥은 맛있는 편. 굳이 순위를 매겨보자면 수색중대>산악대>연본>신교대>돌격대. 수색중대는 진짜 맛있다. 심지어 식사추진된 음식마저도 연본 내부에서 갓한 것보다도 맛있다. 또한 가끔 야간 사격훈련 중에는 수색보급관이 식사추진에 기본 밥과 라면까지 넣어주기도 한다.
상술했듯 예비대답게 훈련량이 굉장히 많음에도 휴가 일수는 얼마 되지 않아서 신교대 조교라도 안 하면 군생활 평균 40일 이상 받기 힘들다. 38, 39연대는 평균 60일 정도를 받음을 고려하면 적은 편. 게다가 부대 위치들도 어중간해서[5] 외출/외박 휴가 가려면 차로 좀 더 가야한다. 그나마 동기생활관이 대부분 잘 되어있고 부조리가 적은 편이라는 게 위안거리다.
고난의 최대 피크는 겨울이다. 강원도 철원의 기후가 그렇듯이, 춥기도 춥지만 눈이 엄청나게 온다. 눈이 빨리 내린다면 11월 초부터 내리기 시작하며, 강원도 아니랄까 봐 5월 중순까지도 눈이 내린다. 수색중대
시설은 2개 GP가 다 옛날 초소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보통 해당 근무지역의 GOP와 GP가 같은 사단인 경우가 많은데, 50연대 수색중대가 맡은 GP는 타 사단의 GOP와 더 가까워서 부식 추진도 타 사단에서 온다. 그런 이유로 PX 이용은 조금 힘들다. 그나마 짬이 좀 되는 상병장급들은 주둔지에 있는 본부소대나 동기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내선전화로 부탁하여 편지나 택배추진차량에 카드를 맡기며 추진하기도 하지만, 동기 없는 이등병들이나 일병들은 그런 부분에서 불편할 것이다.
게다가 독립중대답게 짬밥 질도 괜찮아서 근처 산악대대와 신교대대장급들도 와서 맛보고 가고, 연대장도 자주 와서 먹고 갈 정도였다.[6] 사실 이 비결은 수색중대 보급관들의 입김이 가장 컸다. 수색중대 취사병은 본부중대 주둔지 취사병 2명과 소대 취사병 1명이다. 보통 소대취사병들은 주둔지 교육때 같이 교육받지만, 중대에 두개소대가 주둔시에는 취사지원을 나가 중대취사병을 돕는다. 일반대대에서는 취사소대가 따로 있지만, 독립중대는 그런 게 없다. 중대 하나가 소대 하나나 다름없다.
수색중대 막사 바로 옆엔 PX가 있는 승리회관이 있는데, 문제는 영외이다 보니 뒷문을 이용해 나가야 하는 판국이다.[7] PX 갈 때마다 전우조 3명으로 당직사관한테 뒷문 열쇠를 받아 열고 나갔다 들어왔다 해야 하는 식이라 조금 번거로웠다. 2015년에 막사를 새로 짓느라 1대대로 잠시 이사를 가서 막사 한켠을 빌려서 사용하다가 여름즈음에 신막사가 지어지고 돌아왔다. 당시 8월에 서부전선 포격도발사건으로 이사를 하던 도중 다시 짐을 가지고 돌아오느라 이사를 총 세번 해야했다.
현재는 여단 본부 및 예하 대대들이 사단 개편에 따라 위치도, 시설도 바뀌었다. 제50보병연대의 단대호만 유지되고 있을 뿐 시설도 인력도 사실상 27사단의 것이다. 따라서 위의 얘기들은 전부 옛날얘기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3군단 예하 12사단 37연대, 21사단 63연대처럼 단대호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 그게 유일한 위안거리(?)일 것이다.
5.2. 여단가
6. 사건 사고
7. 여담
- 2011년 50연대 2대대의 경우 대대장의 지시로 심지어 유격 때도 일과를 끝마치고 녹초가 된 간부들에게 야간 사격도 시켰다. 또한 모 중대의 중대전술평가시 타 중대도 같이 훈련을 뛰었으며 이때 비가 엄청나게 많이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급기야 2012년때엔 진급욕심이 과해져 매월 40 km 야간행군, 3개월마다 60 km 100 km 무박2일 행군을 계획했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 신막사가 건축되기 전까지는 시설 수준이 15사단 최악이었으며 내무부조리 또한 심했다. 현재는 제2신교대가 전투대대로 환원됨으로써 나아졌고, 현재 연대본부를 제외한 전 대대가 신막사 애용 중이다.
-
관할구역에 문화재로 등록된 인민군 막사가 있는데, 볼 것도 없다. 그냥 덩그러니 집 한 채 있을 뿐이다.
-
6.25 전쟁 당시 50여단은 사단창설 전엔 육본 직할부대로 지리산 공비토벌을 하였으며 사단 창설 이후에는 예비대로서 전투가 발발시 투입되는 부대였다.
- 김희환 여단장 역임 중에 육군과학화전투훈련(KCTC) 최우수부대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1]
Field Training eXercise, 전술 훈련.
[2]
이는 비단 이 연대뿐만 아니라 옆동네
7사단 3연대도 비슷할 정도로 만연했다.
[3]
그런데 이런 것들은 전부 부조리라고 진즉에 폐지되었다. 현재는 자율 뜀걸음을 하지만, 대대장이 바뀐 이후 병사들이 너무 요령을 피운다면서 해방촌 반환점에서 간부들이 대기타면서 반환점까지 제대로 돌았는지 확인하는 번호표 같은 것을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2016년 이후론 크게 번호표를 준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4]
사실 여긴 연대에서 제일 낙후된 산악대대 건물이었는데 이들이 신막사로 옮겨간 뒤 그보다 열악한 직할대가 온 것이다.
[5]
산악대대는 민통선 바로 밑이다.
[6]
워낙 사리곰탕을 좋아해서, 사리곰탕이 배식될 때마다 거의 항상 수색중대에 들려 밥을 먹었다.
[7]
군대에서는 위병소와 철책, 담벼락을 무단으로 한 발자국만 넘어가도 탈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