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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삼성 라이온즈 통합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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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삼성 라이온즈의 전·후반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
[B]: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개최일 연기, 고척 스카이돔 중립경기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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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한국프로야구 전후기 통합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
1. 개요2. 한국시리즈 규정 변경3. 전개4. 시즌 후5. 평가절하된 영광과 뒤늦은 재평가6. 여담7. 관련 매체8. 관련 문서9.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이후 첫 우승이자 KBO 리그 역대 최고 승률 우승으로, 이 해의 삼성은 규정상 전반기와 후반기를 모두 1위로 마쳐서 KBO 한국시리즈 없이 우승이 확정되었다. KBO 포스트시즌 규칙을 어떠한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더라도 한국시리즈를 생략할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러한 유형의 우승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KBO 리그에서[1] 유일하게 포스트시즌 없이 이룩한 우승이다.

당시 삼성은 시즌 최고 승률인 0.706을 기록했다. 시즌 전 스프링캠프를 당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훈련지였던 베로비치에서 가졌고, 다저스와 경기도 가졌었는데 이때의 경험이 통합우승의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2]

2. 한국시리즈 규정 변경

1984년, 져주기 게임의 폐해를 경험한 KBO는 1985년 시즌에 앞서 규칙을 개정하게 된다.
1) 연간 승률 1위 팀이 전기리그 혹은 후기리그 한쪽만 제패하고 다른 기 리그의 우승팀과 연간 승률 2위팀이 다를 경우에는 그 두 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쳐서 한국시리즈 진출.
2) 연간 승률 1위 팀과 2위 팀이 각각 전, 후기리그를 우승하는 경우 두 팀끼리 한국시리즈.
3) 1984년의 OB 베어스처럼 연간 승률 1위 팀이 전후기리그 어느 쪽도 우승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연간 승률 1위 팀이 한국시리즈에 자동 진출하고 전, 후기리그 우승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쳐서 한국시리즈에 진출.
4) 한 팀이 전후기 모두 우승하는 경우 포스트시즌 없이 시즌 우승팀으로 인정.
이렇게 KBO는 새로운 규칙으로 바꾸어서 져주기 게임 사태를 방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문제는 위의 4번처럼 한 팀이 전후기 모두 우승하는 경우 포스트시즌 없이 시즌 우승팀으로 인정한다는 규정을 남겨놨다는 점이다. 이는 KBO 리그가 출범한 1982년부터 존재하던 규정이다. 4항의 경우 적어도 연간 승률 2위 팀이나 전후기리그 중 하나라도 2위를 기록한 팀들끼리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규칙을 같이 만들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3]

이런 규정이 남아있던 건 KBO가 앞의 세 시즌 동안 이런 사례가 전혀 없었으니 똑같이 흘러가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제도를 바꾸어서 그렇다. 당시 구단들의 운영은 크게 두 가지로, 전기리그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고 후기리그를 쉬어가는 타임으로 포스트시즌까지 체력 안배를 하거나, 반대로 전기리그를 빨리 포기하고 후기리그에 집중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1985년의 삼성은 시즌 내내 최선을 다했고, 전기리그와 후기리그에 모두 힘을 쏟아 전대미문의 통합우승을 거두었다.

3. 전개

1985년 프로야구는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누어 전년도보다 10경기 늘어난 55경기씩 총 110경기를 치렀다. 때문에 한국시리즈는 전기리그 우승 팀과 후기리그 우승 팀이 맞붙어 승부를 겨뤘다.

그런데 1984년 한국시리즈 때 최동원 하나를 못 이겨 우승을 놓친 삼성 라이온즈가 1985년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를 모두 휩쓸게 되자 규정상 삼성 한 팀 빼고 전멸하게 되면서 경기할 방법이 없으니 플레이오프는 물론, 한국시리즈마저 소멸됐다. 이 사례는 김시진 김일융 2명이 나란히 25승씩 50승을 합작했던 1985년 삼성 라이온즈가 완전 우승을 달성했던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4. 시즌 후

1985년에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아 낭패를 보게 된 KBO는 결국 1년 만에 다음해 한국시리즈에서 규칙을 바꾸게 된다. 본래 전기에 우승한 팀은 후기에는 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염두에 두는 쪽으로 선회를 했는데 삼성이 이 불문율을 깬 것.

재밌게도 이 때 삼성은 한국시리즈 규정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제안을 냈다. 다름 아닌 플레이오프 4강으로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것. 사실 당시의 전력으로 볼 때 삼성은 4강에 들 수 있는 실력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5. 평가절하된 영광과 뒤늦은 재평가

하지만 KBO 리그를 보는 누구나 한국시리즈 우승이 진정한 우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4][5] 1985년 통합우승은 모두에게 철저히 무시당하게 된다. 게다가 삼성 라이온즈는 작년 한국시리즈를 져주기 게임까지 하며 추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롯데 자이언츠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줬는데, 이 통합우승은 우승하겠다고 한국시리즈를 없애버린다는 발상으로 비춰진 면도 있다. 2002년에 우승할 때까지 모두가 삼성이 우승 기록이 없다[6]고 생각했으며, 1985년의 우승은 사실상 한국시리즈 없는 반쪽 우승으로 취급되었다. 더군다나 전통의 라이벌인 해태의 경우 3년 뒤인 1988년에 전후기 리그를 모두 우승하고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한 것에 반해서, 삼성은 1987년에 전후기 리그를 모두 우승하고도 코리안시리즈에서 패배한 것이 이러한 인식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삼성도 모두가 인정하는 제대로 된 우승을 원했고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까지 절치부심하게 된다. 나중에 정규리그 우승의 가치가 상승하며 그나마 재평가되었던 적도 있지만 삼성의 1985년 우승은 여전히 논외로 여겨지며 무시받았다. 물론 분명한 것은 통합우승도 엄연히 KBO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우승이라는 것이다.[7] 삼성이 규정을 만든 것도 바꾼 것도 아니고 그냥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해서 규정대로 우승을 인정받았으니 문제는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삼성은 1980~1990년대에 막강한 전력을 자랑했으나 달구벌의 저주에 걸려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하면서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기 전까지는 타 팀 팬들로부터 우승 한 번도 못한 팀이 무슨 명문이냐는 조롱과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또 KBO 회의 등에서 삼성이 의견을 내면 다른 구단들이 우승 한 번 못해본 구단이 설친다며 면박을 당했다는 썰도 있었다. 모두가 인정을 안 하는 우승이였기에 삼성 내부에서도 이 우승은 곧 없는 취급을 받게 된다. 냉정하게 말하면 삼성은 강팀이긴 했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 이전까지 두산 베어스가 세 번이나 우승을 했고, 롯데나 LG 트윈스, 현대 유니콘스도 우승을 두 번이나 한 것은 물론 한화 이글스도 양대리그의 덕을 봐 한 번 우승을 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자금력 면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열악한 해태 타이거즈 1983년 한국시리즈, 1986년 한국시리즈, 1987년 한국시리즈, 1988년 한국시리즈, 1989년 한국시리즈, 1991년 한국시리즈, 1993년 한국시리즈, 1996년 한국시리즈,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우승해 프로야구 출범 이후 18시즌 동안 9시즌을 우승하고 준우승을 단 한 번도 기록하지 않았던 것이 너무나 비교가 되었기에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이후 삼성은 2001년까지 해태에게 3번[8]이나 호구잡힌 것은 물론 1982년 한국시리즈, 1984년 한국시리즈, 1986년 한국시리즈, 1987년 한국시리즈, 1990년 한국시리즈, 1993년 한국시리즈,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준우승해 준우승 횟수는 총 7회를 기록[9]한다. 또한 한 투수에게 7경기 중 5경기 등판 4승 1패 4완투 2완투승 1완봉승 1완투패 1구원승 40이닝 투구 평균자책점 1.80 WHIP 1.08을 허용하거나, 1999년 플레이오프 역전패 포스트시즌 한 이닝 최다 실점[10]의 희생양이 되는 등 무관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삼성은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드디어 달구벌의 저주를 깨고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루어냈고, 전국민이 이 우승을 삼성의 첫 우승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방송 중계진조차 그렇게 말하였으며 1985년의 우승은 언급도 되지 못했다. 당연히 삼성 구단도 1985년 우승은 번외로 취급하였다. 이는 선수들도 마찬가지여서 이만수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한 것이 은퇴할 때까지 큰 한으로 남아있었다고 하며, 양준혁은 2002년에 와서야 삼성이 진정으로 우승을 맛봤다는 논지의 말을 남긴 적도 있었다. 사실 한국시리즈 기준으로만 보면 삼성의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은 원년 창단된 구단들 가운데서 가장 늦은 우승이다. 이후 삼성이 2번째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면서 어느 정도 우승 갈증이 풀린 2005년 한국시리즈 때부터 구단 캐치프레이즈에서 V3를 공공연히 언급하는 등 1985년의 우승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6. 여담

  • 삼성 라이온즈 이전에는 1982년의 OB 베어스가 이렇게 우승하려고 했다. 하지만 삼성은 OB전 2연승을 추가하며 후기 우승은 삼성으로 확정되면서 나가리되었다.[11] 그리고 1984년 삼성도 전기리그를 우승한 뒤 후기리그까지 제패해 한국시리즈를 없애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상대 고르기로 선회했고 그 대가는 처참했다.
  • 해외 사례로는 전후기리그 제도를 KBO 리그보다 먼저 채용했던(1973~1982) 퍼시픽 리그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는데, 바로 1970년대 퍼시픽 리그 최강호팀 한큐 브레이브스가 1976, 1978년 전후기리그를 모두 우승하며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12]를 취소시켜 버린 바 있다. 물론 이때는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만 취소되었지 일본시리즈 자체가 취소된 것은 아니었으므로 KBO 리그만큼 황당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퍼시픽 리그는 가뜩이나 흥행도 안 되는데 플레이오프까지 없어져서 죽을 맛이었을 테지만.
  • 통합우승이 나오고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게 되면서 얼핏 보면 준우승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1985년에는 통합 및 후기 2위를 달성했던 롯데 자이언츠가 준우승 팀으로 인정되었고 실제로 수상도 해서 트로피가 사직 야구장에 전시 중이다. 다만 우승한 삼성도 잊혀진 판국에 당시 준우승 팀이 누군지 기억될 리가 없으니... 아직도 많은 롯데 팬들이 1995년 한국시리즈에서 OB에게 3:4로 석패했을 때를 첫 번째 준우승으로 알고 있다.
  • 전년도 준우승팀이 전년 우승팀을 2위로 내리고 우승한 최초의 시즌이다. 이는 의외로 흔한 일이 아닌데, 2011년 한국시리즈까지 딱 2번만 일어났다.[13]
  • 사진에 나온 파란색, 흰색 유니폼이 미묘하게 청백전같은 느낌을 주는데, 각각 1985년도 당시의 원정 경기, 홈 경기 유니폼이다.
  • 삼성이 롯데 원정 경기에서 마지막 매직넘버를 지웠기에 구덕 야구장에서 시즌 우승팀이 확정된 유일한 시즌이다. 그리고 롯데가 사직 야구장으로 옮긴 이후의 역사까지 합쳐도 이때 삼성 외에는 부산에서 우승을 확정한 팀이 없다. 롯데가 두 번 우승했을 때는 모두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었고 두 번 준우승했을 때는 모두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최종 패배를 겪었기 때문.

7. 관련 매체

야구 만화가 최훈이 기억하는 1985년의 삼성. 아래에 달린 코멘트는 각 선수들의 이미지를 4 글자에 맞춘 것이다. 원본 김형준 칼럼

관련 이미지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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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타전문 박승호 : 장효조 이만수 잘 넘기고 박승호에게 맞는 일이 꽤 있었다.
  • 류수타법 김성래 : 삼성 최고의 타자는 김성래라고 생각했다.
  • 사이클링 이종두 : 무조건 3할 치는 줄 알았다.
  • 삼루의빛 김용국 : 헬멧이 벗겨졌을 때의 임팩트는 무덤까지 가져갈 것 같다.
  • 꽃남유격 정진호 : 얼마전 정진호 코치가 현역 시절엔 꽃남이었단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정작 정진호 코치의 현역 시절 기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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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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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구단주·대표이사 유정근단장 이종열감독 박진만2군 감독 이병규주장 구자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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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스포츠의 경우 K리그1은 포스트시즌 자체를 없애버려서 2012년 이후 예시가 쭉쭉 나오고, 한국여자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 우리WON이 코로나19로 리그가 종료되어도 우승이라는 연맹의 결정에 따라 달성했다. 한국프로농구, V-리그 남녀부는 포스트시즌을 못한 시즌은 우승도 없다고 결정하면서 이런 유형의 우승이 없고 일어날 수도 없다. [2] 당시 다저스에는 토미 라소다 전 감독,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오렐 허사이저 등이 있었다. 이들 모두 다저스에서 한 가닥 했던 인물들이다. [3] 예를 들어 4항에 부칙을 넣어 한 팀이 전후기리그를 모두 우승하는 경우 연간 승률 2위 팀이 (1) 전후기리그 모두 2위인 경우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되 연간 승률 2위 팀에게 핸디캡 부여, (2) 전후기리그 한쪽만 2위인 경우 그 연간 승률 2위 팀에게 어드밴티지를 부여하고 다른 쪽 리그 2위 팀과 플레이오프, (3) 연간 승률 2위인데 전후기리그 어느 쪽도 2위가 아닌 경우 전후기리그 각 2위 팀이 준플레이오프를 치르고 그 승자가 연간 승률 2위 팀과 플레이오프. 이런 식의 개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4] 이것은 페넌트 레이스 우승의 가치를 과거보다 높게 쳐주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 일본 모두 각각 월드 시리즈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을 진정한 우승으로 생각한다. 다만 MLB NPB는 양대 리그 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각각의 정규리그 우승(MLB는 내셔널 리그/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우승팀이 정규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며 NPB는 센트럴 리그/ 퍼시픽 리그 페넌트 레이스 1위팀이 정규리그 우승팀이 된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와는 별개이다.)도 엄연한 우승으로 기념한다. [5] 당장 2년 후인 1987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은 1985년처럼 전기리그, 후기리그 모두 1위를 달성해 한국시리즈에 직행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OB와 최종전까지 가는 혈투를 치르고 올라온 해태에게 허무하게 4연패를 당해 우승을 내줬다. 따라서 1985년 삼성의 전적이 워낙 압도적이라 해도, 한국시리즈를 했을 경우에도 무조건 우승을 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도 맞다. [6] 다만 1993년 한국시리즈 선수 소개 당시 캐스터가 1985년에 한국시리즈 없이 통합우승을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라고 언급해주긴 했다. [7] 한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종 순위 1위 ≠ 우승인 경우는 네 차례 있다. 2019-20 KBL의 원주 DB 프로미 서울 SK 나이츠(공동 1위), 2019-20 V-리그 남자부의 서울 우리카드 위비, 여자부의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그리고 2021-22 V-리그 여자부의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이 네 차례 모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시즌이 중단되었고 끝내 재개되지 못한 결과다. 참고로 비슷한 상황을 겪은 여자농구는 정규시즌 1위를 우승으로 인정하면서 온전한 우승을 거뒀다. [8] 1986년 한국시리즈, 1987년 한국시리즈, 1993년 한국시리즈 [9] 후일 2004년 한국시리즈, 2010년 한국시리즈, 2015년 한국시리즈, 2024년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추가해 총 준우승을 11회 기록한다. [10]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vs 두산) 3회 12실점 [11] 만약 OB가 1982년에 통합우승을 했다면 1983년부터 규정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12] 이 당시 제도는 전후기 우승팀이 5전 3선승제로 맞붙어서 우승팀이 퍼시픽 리그 우승팀이 되고 일본시리즈로 진출하는 제도였다. 참고로 개최 구장은 1~2차전은 전기 우승팀, 3~5차전은 후기 우승팀의 홈구장에서 개최하는 제도였다. [13] 2019년 두산 베어스 SK 와이번스를 꺾고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하면서 이런 일이 일어날 뻔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SK가 막장 경기력을 보여주며 일어나지 않았다. [14] 캔자스시티가 우승했던 1985년 월드 시리즈는 85동기인 삼성이 우승했던 2013년 한국시리즈랑 패패승패승승승 스코어가 똑같다. [15] 최훈이 과거 마구마구의 요청으로 특별 카툰을 그릴 당시 이만수의 기록을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이미지와 달리 교타자인데다 볼넷당 삼진갯수도 그 양준혁, 장효조보다 적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내용의 포스트를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었다. 아마 이만수에게 "난 교타자"라는 설명을 붙인 것은 이러한 감상에서 비롯된 듯 하다. 포스팅 주소 [16] '난, 교타자' '교타자다' '교타자임' 교자타임 등 평범한 표기가 얼마든지 가능했다는 점에서 노리고 썼다는 의심은 가능하다. [17] 당시에 김일륭이라 불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18] 아마 최훈이 언급하는건 원년인 1982년의 이선희를 뜻하는 듯 하다. 왜냐하면 82년 이후 이선희는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유동에게 결승 만루 홈런을 맞은 심리적 충격 때문이었는지 이듬해인 1983년부터 급격한 하향세를 탔으며 1985년에는 아예 MBC 청룡에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