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 ||||||||||||
1865년 | 1866년 | 1867년 | 1868년 | 1869년 | 1870년 | 1871년 | ||||||
연대 | ||||||||||||
1840년대 | 1850년대 | 1860년대 | 1870년대 | 1880년대 | ||||||||
세기 | ||||||||||||
17세기 | 18세기 | 19세기 | 20세기 | 21세기 | ||||||||
밀레니엄 | ||||||||||||
제1천년기 | 제2천년기 | 제3천년기 |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기 | 1868년 |
단기 | 4201년 |
불기 | 2412년 |
간지 | 정묘년 ~ 무진년 |
조선 | 고종 5년 |
청나라 | 동치 7년 |
일본 |
게이오 4년(양 10월 23일까지) 메이지 원년(양 10월 23일부터) ( 황기 2528년) |
베트남 | 뜨득 21년 |
아시리아력 | 6618년 |
이슬람력 | 1284년 ~ 1285년 |
히브리력 | 5628년 ~ 5629년 |
페르시아력 | 1246년 ~ 1247년 |
에티오피아력 | 1860년 ~ 186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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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868년은 수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다.2. 사건
2.1. 실제
- 1월 3일
- 5월 10일 - 남연군 분묘 도굴사건
- 8월 13일 - 칠레 아리카[1] 근처 약 1km 해역에서 규모 8.5~9.0으로 추정되는 강진이 발생하였다. 약 25,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
- 9월 19일 ~ 9월 27일 - 스페인 왕국의 이사벨 2세가 스페인의 명예로운 혁명으로 축출되었다. 이로 인한 스페인 보르본 왕조의 공백은 프랑스 제2제국과 북독일 연방의 충돌,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발단이 되는 엠스 전보 사건의 트리거가 되었고 더 나아가 프랑스 제2제국의 붕괴 및 통일 독일 제국의 형성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 10월 12일 - 메이지 덴노가 일본의 122번째 천황으로 즉위했다.
2.2. 가상
3. 탄생
3.1. 실제
- 1월 11일 - 차이위안페이
- 1월 18일 - 스즈키 간타로: 42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 1월 25일 - 후벤티노 로자스: 멕시코의 작곡가
- 2월 11일 - 린썬: 중화민국 주석
- 3월 1일 - 조피 초테크 폰 초트코바 : 오스트리아의 대공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아내.[2][3]
- 4월 22일 - 오스트리아의 마리 발레리 여대공: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란츠 요제프 1세의 3녀
- 5월 18일 - 니콜라이 2세: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18번째 군주이자 마지막 황제
- 6월 6일 - 로버트 스콧: 영국의 군인, 탐험가
- 6월 14일 - 카를 란트슈타이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병리학자
- 6월 18일 - 호르티 미클로시: 헝가리 왕국의 군인, 정치인, 독재자.
- 7월 28일 - 레온하르트 라가츠; 스위스의 사회주의 신학자
- 8월 2일 - 콘스탄티노스 1세: 그리스 왕국의 국왕
- 8월 27일 - 홍범도: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군 장군
- 9월 23일 - 이인영: 구한말의 의병장
- 11월 11일 - 강윤희: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11월 22일 - 존 낸스 가너: 미국의 제32대 부통령
- 12월 3일 - 이시영: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초대 부통령
- 12월 9일 - 프리츠 하버: 독일 제국의 화학자
- 일자 불명
3.2. 가상
- 4월 4일 - 죠죠의 기묘한 모험 팬텀 블러드: 죠나단 죠스타
- 8월 -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 묘진 야히코
- 불명 - 죠죠의 기묘한 모험 팬텀 블러드: 디오 브란도[4]
4. 사망
4.1. 실제
- 2월 29일 - 루트비히 1세: 바이에른 왕국의 2대 국왕
- 5월 17일 - 곤도 이사미: 일본 신센구미 2대 국장
- 6월 1일 - 제임스 뷰캐넌: 미국 15대 대통령
- 7월 6일 - 하라다 사노스케: 일본 신센구미의 10번대 조장
- 7월 19일 - 오키타 소지: 일본 신센구미의 1번대 조장
- 8월 21일 - 카를 이마누엘 니치: 독일의 중재신학자
- 9월 26일 -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뫼비우스: 독일 제국의 수학자 겸 천문학자
- 11월 13일 - 조아키노 로시니: 이탈리아 왕국의 오페라 작곡가
4.2. 가상
[1]
당시에는
페루 지역이었다.
[2]
남편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후계자이긴 했지만 직계가 아니어서 죽는 날까지
황태자였던적이 없어 조피또한
황태자비였던 적이 없다.
[3]
신분이 남편인
프란츠 페르디난트보다 낮아 이 둘의 결혼은
귀천상혼이다. 그래서
사라예보에서 죽은 뒤에 이 둘의 아이들은 아버지의 작위는 물려받지 못하고 어머니 조피의 호엔베르크 공작위만 물려받았다.
[4]
생년월일 자체는 자칭이라 알수 없으며 1867~1868년 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