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구분 | ||||
1281년 | ← | <colbgcolor=#cbb8ee,#231047> 1282년 | → | 1283년 |
연대구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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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구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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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구분 | ||||
제1천년기 | ← | 제2천년기 | → | 제3천년기 |
세계 각 지역의 표기 | |
서기 | 1282년 |
단기 | 3615년 |
불기 | 1826년 |
황기 | 1942년 |
이슬람력 | 681년 ~ 682년 |
간지 | 신사년~ 임오년 |
일본 | 고안 5년 |
히브리력 | 5042년 ~ 5043년 |
원나라 | 지원 19년 |
고려 | 충렬왕 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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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건
2.1. 실제
- 3월 - 웨일스 공 리웰린의 동생이 잉글랜드 왕국의 한 성을 공격, 2차 웨일스 전쟁이 발발한다.
- 3월 30일 - 시칠리아의 만종 : 시칠리아 사람들이 카페앙주 가문의 카를루 1세와 프랑스인의 지배에 반발하여 봉기하였다. 이후 수천명의 프랑스인이 살해당했다. 이 여파로 국왕 카를루 1세의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대한 십자군 계획이 무산되었다.
-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미카일 8세의 후원으로 아라곤 왕국이 시칠리아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하였다.
- 5월 15일 - 포를리 전투에서 몬페라토의 귀도 1세가 이끈 기벨린 (황제) 파가 구엘프 (교황) 파의 프랑스 왕국 - 교황령 군대를 격파하였다.
- 6월 - 아라곤 왕국의 페드로 3세가 하프스 왕조의 지배에 반발한 알제리의 콩스탕틴의 반란군을 지원하나 곧 진압당하자 시칠리아로 이동하였다.
- 6월 26일 - 포르투갈 왕국 국왕 데니스가 아라곤 왕국의 공주 이사벨과 결혼하였다.
- 8월 30일 - 프랑스 왕국 군대와 싸우던 팔레르모의 요청을 수락한 페드로 3세가 트라파니에 상륙하였다.
- 11월 9일 - 교황 마르티노 4세가 아라곤 왕국의 페드로 4세를 파문하였다.
- 12월 - 합스부르크 왕가의 독일왕 루돌프 1세가 자신의 아들 알브레히트 1세와 루돌프 2세[1]를 오스트리아 공국과 슈타이어마르크 공국의 공동 통치자로 임명하였다.
- 12월 10일 - 오레윈 다리 전투에서 잉글랜드 왕국 군대가 웨일스 공 리웰린을 전사시키며 귀네드 군을 격파했다. 잉글랜드의 웨일스 정복이 기정 사실이 되었다.
- 12월 11일 - 세르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동로마 제국의 황제 미하일 8세가 병사하며 원정이 무산되었다.
- 원나라 군이 태국 북부의 란나타이 왕국을 공격했다.
- 아라곤 왕국의 페드로 3세가 프랑스 왕국의 필리프 3세가 준비하던 아라곤 십자군에 맞서 그라나다의 나스르 왕조와 동맹하였다.
- 세르비아 왕국의 스테판 드라구틴이 낙마 사고를 당하여 동생 스테판 우로시 2세 밀루틴에게 양위하고 헝가리가 내어준 시르미움의 왕이 되었다.[2]
- 홀란드 백작 플로리스 5세가 브로넨 전투에서 프리지아인을 격파하고 25년만에 부친의 시신을 되찾았다.
- 잉글랜드의 캔터베리 대주교가 런던의 모든 시나고그의 폐쇄와 유대인 의사의 기독교도 처방 금지를 명령하였다.
-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워터마크가 개발되었다.
- 프랑스 랑그도크의 알바 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 잉글랜드의 부정 동전을 거르는 절차인 픽스 검사가 시작되었다.
- 앙주 - 프랑스 - 교황 (구엘프) VS 기벨린 - 동로마 - 아라곤 - 그라나다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다.
2.2. 가상
3. 탄생
3.1. 실제
3.2. 가상
4. 사망
4.1. 실제
- 3월 2일 - 아네슈카 체스카 : 체코의 로마 가톨릭 성인
- 음력 10월 13일 - 니치렌 : 일본 가마쿠라 시대의 승려
- 10월 30일 - 이븐 할리칸 : 이집트 맘루크 왕조 시대의 역사가
- 12월 11일
- 미하일 8세 : 동로마 제국의 황제
- 허웰린 압 그리피드 : 웨일스의 대공
- 일자불명 - 아바카 칸 : 일 칸국의 제 2대 칸
4.2. 가상
[1]
무능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돌프 2세와 다른 인물이다. 황제 루돌프 2세는 오스트리아 대공으로는 루돌프 5세다.
[2]
혹은 데제브 회의에서 둘이 공동왕으로 즉위하며 드라구틴 사후에 밀루틴, 밀루틴 사후에 드라구틴의 아들 블라디슬라브에게 넘겨 주기로 합의하였다. 하지만 밀루틴이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하려 하자 드라구틴이 그를 공격했다가 패배하였다는 설도 유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