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18:54:31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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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y'at Tahrir al-Sham (HTS) / (هيئة تحرير الشام)
Organization for the Liberation of the Levant
레반트 해방위원회

1. 개요2. 창설 배경3. 핵심 인물4. 종파 및 여성 인권에 대한 정책5. 다른 단체와의 관계6. 전망7. 군사 규모8. 연도별 주요 사건9. 역사10. 뉴스

1. 개요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은 시리아 내전에서 가장 강력한 반군 세력 중 하나로, 2017년에 창설된 수니파 이슬람주의 무장단체이다. HTS는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며 시리아 내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활동해왔다. 과거 알누스라 전선(Jabhat al-Nusra)의 핵심 인사들이 주도하여 조직되었으며, 알카에다와 공식적으로 분리되었음을 선언한 뒤 독자적 정치·군사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12월, HTS는 시리아 정부군을 전복하며 시리아 내 주요 영토를 장악하고 새로운 정부의 주체로 급부상했다. 이는 내전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동시에 지역 및 국제사회에서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다.

2. 창설 배경

2017년 알누스라 전선을 포함한 여러 이슬람주의 단체가 결합하여 만들어졌다.

3. 핵심 인물

  • 아부 무함마드 알줄라니(Abu Mohammad al-Julani)
    실제 이름은 아흐마드 후세인 알샤라(Ahmad Hussein al-Shara)이다. 그는 시리아 출신으로, 과거 이라크 내 알카에다(Al-Qaeda in Iraq)에서 활동했으며, 이후 시리아 내전 초기 알누스라 전선(Jabhat al-Nusra)을 이끌었다. 알졸라니는 HTS의 현재 지도자로, 알누스라 전선 시절부터 시리아 반군 세력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 하산 아부드(Hassan Aboud)
    실제 이름은 하산 수레이만(Hassan Souleiman)이다. 그는 아흐라르 알샴(Ahrar al-Sham)의 창립자이자 초기 지도자였으며, 이슬람주의 기반의 무장단체를 조직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14년, 그는 시리아 이들리브 지역의 공격 중 사망하였다.

4. 종파 및 여성 인권에 대한 정책

HTS는 과거 민간인 및 소수 종파에 대한 탄압과 처형으로 인해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관용적" 정책을 내세우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히잡 착용 문제와 관련하여 여성의 자율성을 존중하라는 내부 지침을 발표했으며, 다른 종파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관용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을 약속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HTS가 국제사회에서 더 실용적이고 정치적인 세력으로 자리 잡기 위한 노력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과거의 탄압 전례와 기록으로 인해 국제사회는 이 약속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히 정치적 제스처로 간주하며, HTS의 실질적인 정책 변화 여부는 장기적으로 검증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국제적 신뢰를 얻기 위한 이러한 선언은 HTS의 이미지 전환 노력의 일환으로 보이지만, 그 효과와 진정성은 앞으로의 행동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5. 다른 단체와의 관계

HTS는 ISIS와 강하게 대립하며, 알카에다와도 공식적 단절을 선언했다. 이렇게만 보면 극단주의 무장단체와 거리를 두는 모습이지만, 튀르키예 지원을 받는 FSA(자유 시리아군) 및 SNA(시리아 국민군)과도 갈등과 협력이 반복됐다. 시리아 정부군 및 헤즈볼라와는 직접적 전투를 벌였으며, 2024년에는 HTS 주도로 아사드 정부군을 전복하였다.

6. 전망

HTS는 시리아 내전의 새로운 주체로 떠올랐지만, 국제사회에서의 테러 조직 지정과 내적 정당성 부족은 여전히 주요 과제이다. 특히 로자바와의 충돌 가능성 및 SNA와의 긴장적 관계는 앞으로의 주요 리스크로 꼽힌다.

7. 군사 규모

1만~2만명

8. 연도별 주요 사건

  • 2017년 HTS 공식 창설
    알누스라 전선, 안사르 알딘, 자이쉬 알-사나, 누르 알딘 알-잔키 등 단체 합병
  • 2018년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 지역에서 영향력 강화
  • 2019년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 연합군의 이들리브 공격. 튀르키예와 갈등.
  • 2020년 시리아 구국정부(Syrian Salvation Government) 설립
    사실상 이들리브 지역을 지배하면서 '시리아 구국정부'(Syrian Salvation Government)를 통해 통치. 튀르키예와의 관계를 조정하며 군사적 협력을 시도.
  • 2021년 내부 통제강화 및 국제 이미지 개선 노력
    HTS는 이들리브를 중심으로 반군 진영의 다른 세력을 압박하고 통합을 시도했다. 특히 경쟁 단체인 하라스 알딘(Hurras al-Din)과 다른 극단주의 세력들을 약화시키기 위한 작전을 수행했다. 하라스 알딘은 알카에다와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HTS는 이들과의 충돌을 통해 스스로를 "실용적인 이슬람주의 세력"으로 차별화하려 했다. 그동안 HTS는 테러 집단으로 계속 간주되었으나, 조직 내부에서 국제적 제재를 완화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를 위해 HTS는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민간인 대상 프로그램을 강화하면서 정권의 이미지를 개선하려 시도했다.
  • 2022년 튀르키예와 관계 개선 및 민간 행정 강화
    2021년에 비해 HTS는 튀르키예와의 갈등을 완화하고 협력의 여지를 확대했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북부에서 안정화를 추구했으며, HTS는 이들리브 지역의 통치를 강화하면서 튀르키예의 국경 안보 우려를 일부 수용했다. 이는 튀르키예-러시아 간 시리아 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조정의 일환이었다. 한편, HTS는 민간 행정 기관인 구국 정부(Salvation Government)를 통해 이들리브 지역의 행정 서비스를 확대했다. 세금 징수, 법 집행, 교육, 의료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운영하면서 "사회의 안정화"를 강조했다.
  • 2023년 SNA와 여러번의 작은 충돌, 시리아 정부군과의 공세 확대
    2023년 후반, HTS는 알레포 및 라타키아 지역으로 공세를 확대하며 시리아 정부군과의 충돌 강도를 높였다. 이는 2024년 HTS의 승리를 위한 사전 준비 단계로 평가된다. 유엔 및 여러 국제기구는 HTS의 군사적 공격이 민간인 피해를 초래했다며 강력히 비난했다. 특히 이들리브에서의 대규모 폭격과 인권 침해 사례가 보고되면서, HTS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 커졌다.
  • 2024년 시리아 정부군 격파
    12월, HTS는 대규모 공세를 통해 시리아 정부군을 격파하고 알레포를 포함한 주요 도시들을 점령했다. 현재 아사드 정권은 하마 지역으로 후퇴한 상태이다.

9. 역사

  • 2016년 준드 알 아크사와 반군 간의 갈등
    2017년 1월 23일 반군 지배지역인 이들리브/알레포 주에서 광범위한 반군들간의 내전이 발발했다. 직접적인 도화선은 파타 알 샴 전선의 하부조직인 준드 알 아크사에 있었다. 준드 알 아크사는 친 IS군벌이었으나 ISIS가 반군을 배신하고 국가를 선포한 뒤로는 반 IS임을 자부하며 반군 세력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꾸준히 의심을 받던 도중 결국 준드 알 아크사가 여전히 IS에 충성하면서 반군 지휘관을 암살한 사건의 배후라는 점이 밝혀지자 분노한 반군에 의해 공격을 당해 2016년 가을 멸망 위기에 몰렸으나, 파타 알 샴 전선에 충성을 맹세하고 하부조직으로 들어가 보호를 받음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 2017년 1월 이들리브 내전 발발
    하지만 여전히 반군 지휘관들에 대한 암살 음모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고 분노한 파타 앗샴 전선은 준드 알 아크사의 충성맹세를 거부하고 조직에서 퇴출시켰다. 하지만 이들리브 지방의 유력 이슬람 군벌로써 파타 앗샴 전선과 비슷한 세력을 지닌 하라캇 아흐라르 앗샴(샴 자유운동)은 배후에 파타 알 샴 전선이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고, 파타 알 샴 전선은 나름대로 2017년 1월 러시아와 터키 중재로 이뤄진 아스타나 평화회담에서 참석이 불허된 것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아스타나 평화회담을 나뒀다간 반군이 정부와 휴전을 맺고 알 카에다 세력인 파타 알 샴 전선을 협공해서 멸망시킬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를 놔둘 수도 없었기에 반군이 정부측과 붙어먹는다며 비난했다.
  • 2017년 1월 말 타흐리르 앗샴의 결성
    여기에 시리아 내전 이후 항상 이슈였던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들의 리더십을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문제가 겹쳐 아흐라르 앗샴과 파타 앗샴 사이에 광범위한 내전이 발발한 것이었다. 즉시 각 조직들의 지역을 포위하고 공격을 개시함은 물론 주요 군벌들에게는 자기 휘하로 들어오라는 협상이 개시되었고 혼란상황이 1월 27일까지 계속되었으나, 파타 알 샴 전선에 합류하는 군벌들이 대략 정해지면서 이들을 모아 하야트 타흐리르 앗샴(샴 해방기구, HTS)을 결성하였다. 조직도 이로 인해 2015년부터 신화를 썼던 알 누스라 주도의 연합체 "정복의 군대"는 자연스러게 해체되었다. 라이벌격인 아흐라르 알샴은 자브핫 타흐리르 알수리야(시리아 해방전선, JTS)을 결성하며 이에 대응했으나 스폰서인 터키의 눈치를 보며 이슬람 원리주의를 억제하던 지휘부에 불만을 품은 아흐라르 알 샴 소속의 여러 군벌들과 이슬람 법학자들이 대거 파타 알샴 전선으로 소속을 바꾸게 되어 난잡한 군벌들로 구성된 이들리브-알레포 지방 이슬람 원리주의 군벌은 사실상 파타 알 샴이 이끄는 거대 조직으로 재편성되었다. 알 누스라 전선의 사령관 아부 모하메드 알 줄라니 주도에 불만을 품은 다른 군벌들의 합류 주저를 막기 위해서인지 알 줄라니는 군사령관으로 물러났고 최고사령관직은 아흐라르 앗샴의 친 알카에다 그룹의 리더인 아부 자베르가 맡았다.
  • 2017년 3월 다마스쿠스와 하마 공세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하야트 타흐리르 앗샴은 시리아 정부군에게 강력한 타격을 가할 작전을 수립했다. 2016년 12월 대량의 병력을 들이부은 알레포 참패를 만회하기 위해 3월 18일부터 수도 다마스쿠스 부근 알 카분 지역에 대공세를 감행하여 전선을 돌파했으나, 정부군의 필사의 반격으로 5일만에 공세가 돈좌되었다. 하지만 3월 21일부터 하마 주의 돌출부에서 정부군에 대한 대공세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라이벌인 아흐라르 앗샴까지 참여한 이 공격에서 타흐리르 앗샴은 자살폭탄 차량으로 검문소나 방어선을 붕괴시키고 택티컬 반군을 즉시 돌입시켜 탁월한 시가전 능력으로 순식간에 저항을 분쇄하고 점령지를 확보하는 전술로 정부군을 몰아붙였으나, 정부군 정예부대 타이거 부대가 하마에 배치되어 우주방어에 돌입하고 시리아/러시아 공군이 보급기지인 알 라타미나, 칸 셰이쿤에 무자비한 맹폭격을 감행하면서 반군의 역량을 한계까지 쥐어짠 하마 공세는 결국 공격 개시선에서 더 뒤로 물러난 참패로 종결되었다.

    이렇게 되자 2015년 이들리브, 2016년 칸 투만을 다시 재현하고자 했던 타흐리르 앗샴의 의도는 참패하고 권위가 크게 추락하면서 다마스쿠스 동부 고타지역의 사우디아라비아의 스폰서를 받는 자이쉬 알 이슬람이 타흐리르 알 샴에게 공격을 개시했다. 하마 전선과 다마스쿠스 알 카분 전선이 사실상 실패했는데도 계속해서 병력 투입을 요구하는데다 보급품을 타흐리르 앗샴 계열에게만 나눠주어 불만이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서로 포격전까지 벌이며 사상자 200여명을 넘긴 이 내전은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휴전협상이 발효되면서 일단락되었다.
  • 2020년대 이들리브 주의 재편성
    2020년대 이후에는 아흐라르 앗샴 지도부가 친 타흐리르 앗샴 그룹으로 교체되면서 이들리브 주의 실질적인 지배세력은 부정할 수 없이 타흐리르 앗샴이라는게 확정됐다. 시리아 북부를 터키 지원 자유시리아군을 이용해 시리아 쿠르드 세력과의 완충지대로 설정하고 자국으로 피난한 수백만 시리아 난민들을 재정착시키기 위한 구역으로 활용하려는 튀르키예와는 데면데면한 사이가 됐다. 알 카에다 계열 지하디스트들이 점령중인 이들리브 주가 시리아 정부 측에 탈환되면 터키 지원 자유시리아군 점령지역의 안정을 위한 완충지대를 상실하게 되니 에르도안 정권은 내심 현상유지를 바리고 있다.

    타흐리르 앗샴은 에르도안 정권의 심산을 뻔히 알면서도 터키 지원 자유시리아군 그룹들과 국지전을 빌미로 터키 지원 자유시리아군의 점령지를 공격해 점령하는 등 호락호락하게 튀르키예의 의도대로 넘어가지 않고 적극적으로 몽니를 부리고 있다. 에르도안 정권이 아무리 세속주의보다는 이슬람교에 기울어져 있다곤 해도 굳이 성향을 평가하자면 알 카에다나 ISIL보다는 의회정치 자체는 긍정하는 무슬림 형제단 우호에 가깝다. [1] 본질은 투표로 집권한 정치가인 에르도안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기원이 거슬러올라가는 고색창연한 골수 지하디스트 알 카에다 계열 무장단체들과 궁합이 좋을리는 없다. 공동의 적을 두고 잠깐의 동맹은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불안한 동거를 시작하면서 시리아 내전이 종결될 때까지 튀르키예와 타흐리르 앗샴 두 세력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 2024년: 반군 공세와 다마스쿠스 함락
    2024년, 타흐리르 알 샴은 시리아 국민군과 연합해 시리아 북서부에서 기습적인 공세를 단행해 2024년 시리아 반군 공세의 포문을 열었다. 이들은 4년간의 치열한 공방 끝에 정부군이 탈환한 알레포 3일만에 함락하고 남하해 하마, 홈스를 함락하였다.

    수도인 다마스쿠스는 이들이 아닌 남부 전선과 시리아 자유군이 함락시키긴 했지만 이건 그들이 강해서라기보다 그들의 본거지와 다마스쿠스가 코 엎어질 정도로 가까워서 그런거고 얼마 안있어 타흐리르 알 샴 역시 몇시간 지나지 않아서 다마스쿠스에 입성하면서 이런 우위도 희석되었다. 그리고 남부 전선과 시리아 자유군은 트럼프가 집권하면 지원이 거의 끊기게 되기에 가장 세력이 강한 반군이고 이번 공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만큼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가장 영향력이 강한 군벌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 뉴스

"수감자 고문한 가해자엔 사면 없다"
시리아 총리 "반군에 권력 이양하기로 합의"




[1] 실제로 에르도안 정권의 튀르키예는 80년대부터 자국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쿠르디스탄 노동자당이 얽힌 문제가 아니라면 거의 언제나 무슬림 형제단 계열 세력의 편을 들었다. 목록을 나열하자면 실정에 질린 군부의 쿠데타로 추방된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 회원들이 카타르에서 걸프 만 국가들의 압력으로 추방되자 자국에 수용했다. 무슬림 형제단과 친밀한 카타르가 사우디 주도 걸프 만 국가들의 압박을 받자 즉시 터키군을 파병했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에게도 원조를 하고 있다. 리비아에서는 투표로 집권한 무슬림 형제단 정부인 GNA가 하프타르에게 밀려나자 전격 개입을 선언하고 군사원조와 병력 파병을 승인했다. 심지어 시리아에서도 내전 발발 직전부터 시리아 무슬림 형제단을 편애했지 타흐리르 앗샴 같은 알 카에다 계열과는 직접적인 적대까진 아니어도 언제나 필요에 의한 동맹 수준을 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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