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17:30:18

프랑사프리크

프랑사프리크
Françafrique
파일:1930년대 아프리카 식민지 지도.png
프랑스의 식민지

1. 개요2. 역사3. 경제4. 아프리카 방5. 군사6. 관련 문서
6.1. 관련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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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France)'와 '아프리카(Afrique)'가 합쳐진 말이다. 프랑스 아프리카 구 프랑스 식민지 출신 아프리카 국가와의 관계를 지칭하며, 더 나아가 프랑스가 구 프랑스 식민지 출신 아프리카 국가에 가하는 비공식적인 간섭과 갑질, 영향력 유지 노력을 비판하는 용어로도 쓰인다.

프랑사프리크는 코트디부아르의 초대 대통령이 된 펠릭스 우푸에부아니가 1955년 프랑스와 코트디부아르의 긴밀한 관계를 표현하는 말로 처음 사용했다. 이때는 France-Afrique(프랑스-아프리크)라고 하여 코트디부아르가 독립 이후에도 프랑스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것이 프랑스의 구 식민지 출신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간섭과 갑질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된 건 프랑스의 인권운동가 프랑수아그자비에 베르샤브(François-Xavier Verschave)가 1998년에 프랑스의 대 아프리카 정책을 비판하면서 France-Afrique를 Françafrique로 비튼 데서 유래한다.

2. 역사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프랑스 식민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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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의 패전과 수렁에 빠진 알제리 전쟁으로 인해 프랑스는 식민지를 유지할 힘을 점점 상실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1958년 프랑스 정계에 복귀한 샤를 드골에 의해 새로운 헌법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샤를 드골은 국민투표를 통해 아프리카 식민지들에 헌법을 찬성하도록 압박을 가했다. 그리고 기니에서 압도적인 부결표가 나오자 기니에 설치했던 많은 인프라를 파괴하고 자본을 철수시켰다.

1959년부터 1960년 사이 프랑스의 식민지들이 독립했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과거의 식민지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기니의 경우 반불 성향의 아메드 세쿠 투레 정권을 전복시키려고 했지만 불발로 끝났고, 투레는 소련과 중국의 도움을 받아 1984년까지 권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의 재임기에 들어 프랑스는 차드 내전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정치적 불안정에 개입했다. 하지만 1979년 중앙아프리카 제국의 황제였던 장 베델 보카사가 자신의 정권이 전복된 뒤 프랑스 정부에 앙심을 품고 프랑스 고위관료들과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하였다. 이는 1981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이 프랑수아 미테랑에 패배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

아프리카의 이전 유럽 식민지들에 대한 프랑스의 기조는 계속 이어져오고 있었지만 1차 리비아 내전 당시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가 프랑스군을 동원해 리비아를 폭격하고( 오디세이 새벽 작전) 적극적으로 NATO군까지 끌어들여 리비아를 결딴내면서 결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유럽연합 주도국이라는 독일과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 국가인 튀르키예조차도 뒷일을 우려하거나 반대했는데도 강행된 프랑스의 무력개입이 초래한 결과로 리비아가 무정부 상태에 테러리스트 소굴로 전락했다. 이어서 인접한 사헬 지대와 서아프리카까지 무기와 반군이 유입되면서 지하디스트 소굴이 되고 확산되는 내전이 초래한 각국 군부의 반서방 쿠데타 등 극심한 대혼란이 벌어지자 프랑스의 영향력도 함께 침몰하기 시작한 것.

2020년대부터 사헬 지대에서 잇달아 발생한 쿠데타로 인해 프랑스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가봉은 친서방 정부가 전복되고 반불·친러로 기울고 있으며, 또한 바그너 그룹이 프랑스군의 빈 자리를 대신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3. 경제

경제적으로 프랑스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의 통화를 CFA 프랑으로 묶었다. 프랑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여 프랑스 프랑이 폐지되고 유로존에 들어선 뒤에도 프랑스는 CFA 프랑을 통해 아프리카에서의 경제적 영향력을 수복하려고 한다.

프랑스 지도층이 아프리카 정권을 정치적으로 보호해 주고 반대급부로 경제적 이익을 확대하는 것을 비꼬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이를 비판하는 단어가 'France à fric'로 프랑스의 자금 조달원이라는 의미이며, 프랑사프리크와 발음이 유사하다는 점을 이용한 언어유희다. 이 단어를 언급한 인물은 프랑스의 경제학자 프랑수아그자비에 베르샤브로 프랑스와 아프리카 간의 정치-비즈니스 네트워크 자금줄을 비꼬기 위해서 사용했다. # 또한 베르샤브는 1998년에 발표한 저서 《프랑사프리크: 공화국에서 가장 오래된 스캔들》에서 프랑스의 대아프리카 정책을 신식민주의라고 비판했다.

2019년 프랑스와 코트디부아르의 회담에서 서아프리카의 CFA 프랑을 폐지하고 에코(ECO)를 도입하기로 합의했으나 아직 소식이 없다.

4. 아프리카 방

프랑스의 아프리카 정책은 외무부가 아니라 엘리제궁의 '아프리카 방(Cellule africaine)'[1]이 담당(대통령 직속)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방'은 지금까지도 베일에 싸인 비밀 기관이다. 이 기구는 샤를 드골의 임명을 받은 자크 포카르(Jacques Foccart)가 창설한 기구로 아프리카의 옛 식민지 정책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자크 포카르는 무슈 아프리크(Monsieur Afrique)로 불렸다. 자크 포카르는 조르주 퐁피두 재임기에도 아프리카 담당 고문으로 활동했다가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재임기 때 르네 주르니아크로 교체되었으며,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재임기에 다시 아프리카 담당 고문으로 복귀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아들인 장크리스토프 미테랑(Jean-Christophe Mitterrand)도 1986년부터 1992년까지 미테랑의 아프리카 담당 고문으로 재임하면서 아프리카 정책에 관여했다.

5. 군사

프랑스는 가봉, 세네갈, 지부티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으며, 말리, 차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소말리아, 코트디부아르 프랑스군이 주둔하고 있다. 다만 말리에서는 2020년 2021년 두 차례에 걸쳐서 쿠데타가 일어나 2022년 완전히 철수했다. # 부르키나파소에서도 2022년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다음 해인 2023년 철수했다. 동 해 니제르에서도 모하메드 바줌 정권을 축출한 반불 쿠데타 이후 프랑스군이 니제르에서 철수했다. 의미심장하게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군의 니제르 철수를 언론에 발표하며 프랑사프리크는 종언을 맞이했다고 공식 석상에서 선언했다. #

6. 관련 문서

6.1. 관련 정치인



[1] 영어식으로 바꾸면 African cell(아프리칸 셀)이 된다. 영어 cell(), 프랑스어 cellule 등은 오늘날 생물학 세포의 뜻으로 유명하지만, 본래는 '작은 방'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