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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 제2대 | 초대2 | 제4대 | 제4대 |
프레더릭 뮬렌버그 (1대,3대) |
조너선 트럼불 주니어 (2대) |
프레더릭 뮬렌버그 (1대,3대) |
조너선 데이턴 (4대,5대) |
시어도어 세즈윅 (6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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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 제6대 | 제7대 | 제8대 | 제7대2 | |
나다니엘 메이컨 (7대,8대,9대) |
조셉 브래들리 바넘 (10대,11대) |
헨리 클레이 (12대,13대,14대,15대,16대,18대) |
랭던 체브스 (13대) |
헨리 클레이 (12대,13대,14대,15대,16대,18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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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대 | 제10대 | 제7대3 | 제9대2 | 제11대 | |
존 W. 테일러 (16대,19대) |
필립 펜들턴 바버 (17대) |
헨리 클레이 (12대,13대,14대,15대,16대,18대) |
존 W. 테일러 (16대,19대) |
앤드루 스티븐슨 (20대,21대,22대,23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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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대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제16대 | |
존 벨 (23대) |
제임스 K. 포크 (24대,25대) |
로버트 M. T. 헌터 (26대) |
존 화이트 (27대) |
존 휘스턴 존스 (28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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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제20대 | 제21대 | |
존 웨슬리 데이비스 (29대) |
로버트 찰스 윈트롭 (30대) |
하웰 콥 (31대) |
린 보이드 (32대,33대) |
너새니얼 P. 뱅크스 (34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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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 제23대 | 제24대 | 제25대 | 제26대 | |
제임스 로렌스 오르 (35대) |
윌리엄 페닝턴 (36대) |
갈루샤 A. 그로우 (37대) |
스카일러 콜팩스 (38대,39대,40대) |
시어도어 M. 포메로이 (40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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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대 | 제28대 | 제29대 | 제30대 | 제31대 | |
제임스 G. 블레인 (41대,42대,43대) |
마이클 C. 커 (44대) |
새뮤얼 J. 랜달 (44대,45대,46대) |
조셉 워렌 키퍼 (47대) |
존 G. 칼라일 (48대,49대,50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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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대 | 제33대 | 제32대2 | 제34대 | 제35대 | |
토마스 브래킷 리드 (51대,54대,55대) |
찰스 프레더릭 크리스프 (52대,53대) |
토마스 브래킷 리드 (51대,54대,55대) |
데이비드 B. 헨더슨 (56대,57대) |
조셉 거니 캐넌 (58대,59대,60대,61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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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대 | 제37대 | 제38대 | 제39대 | 제40대 | |
챔프 클락 (62대,63대,64대,65대) |
프레더릭 H. 질레트 (66대,67대,68대) |
니콜라스 롱워스 (69대,70대,71대) |
존 낸스 가너 (72대) |
헨리 T. 레이니 (73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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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대 | 제42대 | 제43대 | 제44대 | 제43대2 | |
조 번스 (74대) |
윌리엄 B. 뱅크헤드 (74대,75대,76대) |
샘 레이번 (76대,77대,78대,79대,81대,82대,84대,85대,86대,87대) |
조셉 W. 마틴 주니어 (80대,83대) |
샘 레이번 (76대,77대,78대,79대,81대,82대,84대,85대,86대,87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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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대2 | 제43대3 | 제45대 | 제46대 | 제47대 | |
조셉 W. 마틴 주니어 (80대,83대) |
샘 레이번 (76대,77대,78대,79대,81대,82대,84대,85대,86대,87대) |
존 W. 매코맥 (87대,88대,89대,90대,91대) |
칼 앨버트 (92대,93대,94대) |
팁 오닐 (95대,96대,97대,98대,99대) |
|
6 제48대 | 제49대 | 제50대 | 제51대 | 제52대 | |
짐 라이트 (100대,101대) |
톰 폴리 (101대,102대,103대) |
뉴트 깅리치 (104대,105대) |
데니스 해스터트 (106대,107대,108대,109대) |
낸시 펠로시 (110대,111대,116대,117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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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대 | 제54대 | 제52대2 | 제55대 | 제56대 | |
존 베이너 (112대,113대,114대) |
폴 라이언 (114대,115대) |
낸시 펠로시 (110대,111대,116대,117대) |
케빈 매카시 (118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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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라이언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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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연방 하원의원 (위스콘신 1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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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eaa7a><colcolor=#fff> 미합중국 제54대 하원의장
폴 라이언 Paul Ry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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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폴 데이비스 라이언 Paul Davis Ryan |
||
출생 | 1970년 1월 29일 ([age(1970-01-29)]세) | ||
위스콘신 주 제인스빌 | |||
재임기간 | 제54대 연방하원의장 | ||
2015년 10월 29일 ~ 2019년 1월 3일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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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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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EAA7A><colcolor=#ffffff> 부모 |
아버지 폴 머레이 라이언 어머니 엘리자베스 앤 라이언[1] |
|
배우자 | 제나 리틀[2] | ||
자녀 |
장녀 엘리자베스 라이언 장남 찰스 라이언 차남 사무엘 라이언 |
||
학력 |
조셉 A. 크레이그 고등학교 (
졸업) 마이애미 대학교 ( 경제학, 정치학 / B.A.) 아메리칸 대학교 |
||
종교 | 가톨릭 | ||
소속 정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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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선수 | 10 (하원) | ||
의원 대수 |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4, 115 | ||
약력 |
위스콘신 제1구 연방 하원의원 연방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 연방 하원 공화당회의 의장 연방 하원 예산위원회 위원장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공화당 부통령 후보 제54대 연방하원의장 폭스 코퍼레이션 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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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 공식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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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정치인. 제54대 하원의장이자 공화당의 전 부통령 후보로, 위스콘신 주를 대표하는 공화당의 10선 하원의원이다.2012년 미국 대선에서 밋 롬니와 함께 부통령 후보로 버락 오바마의 재선에 맞섰으나 아쉽게 패배했다. 2015년에는 하원의장에 선출되면서 공화당 서열 1위[3]에 올랐으며, 이미 40대의 나이에 부통령 후보와 하원의장 등을 역임했기에 미 정계의 거물이었다. 마코 루비오, 테드 크루즈와 함께 공화당의 대표적인 소장파로 꼽혔다.
하지만 2018년 4월 돌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 생애
2.1. 정계 데뷔 전
위스콘신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자라났다.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복수 전공하고 아인 랜드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육가공 회사와 자동차 회사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친가 외가 모두 재력가 집안으로, 그의 첫 선거 때 집안에서만 4만달러를 조달해줬다고 한다.2.2. 정치인으로서의 행보
1998년 28살의 나이로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공화당에서도 우파로 평가되며 처음에는 티 파티의 지지를 많이 받기도 하였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정책통'으로 꼽히며 많은 재정안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공화당 내의 대표적인 재정보수주의자로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의정 활동에 임하며 젊은 나이에 주요 인물로 부상했다.12년 가량 되는 기간 동안 무려 700개가 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민주당이 상원을 차지하고 있어 그 중 두개 밖에 통과시키지 못했다. 그나마도 영향력이 미미한 것들이었다.
2011년에 하원 예산위원장에 선출되었다. 그가 주도한 'Path to the Prosperity' 재정안이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근소한 차이로 좌초되었다.
하원의장이 된 후 트럼프 행정부 휘하에서 파격적인 감세 정책을 골자로 한 재정안을 통과시키면서 그의 숙원을 상당 부분 이루었다.
2.2.1.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
2012년에는 밋 롬니의 러닝메이트로 대선에 출마했다. 위스콘신 주에서 선출된 첫 번째 부통령 후보였다. 이때부터 정치적 위상이 급부상하였다. 이전까지는 그냥 젊고 유능한 하원의원으로 보였지만 부통령 후보로 선출된 후 그의 뚜렷한 우파 성향과 때론 롬니 후보보다 더 뛰어난 리더십과 언변을 돋보인 덕분에 급부상할 수 있었다.
허나 모두가 알다시피 그들은 오바마- 바이든 티켓에 밀렸으며 이후 하원의원직으로 복귀하였다.
2.2.2. 2015년 하원의장 계승 과정
|
2015년에는 하원의장 존 베이너가 갑작스럽게 은퇴하고 공화당 내부에서 마땅한 대체자가 없다는 이유로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다.
그의 후계자로 여겨졌던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 에릭 캔터가 본인의 지역구 당내 후보 경선에서 정치 신인에게 패배했으며, 캔터 원내대표의 사임 이후 원내대표직에 취임한 케빈 매카시는 불륜 스캔들과 벵가지 사태 청문회와 관련된 실언이( 힐러리 클린턴 참조) 발목을 잡았다. 허나 결정적으로 공화당 강경파의 반대[4]로 인해 그들은 후보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이 때문에 대체자가 없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래서 베이너는 은퇴를 늦추고 몇 달 더 일하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공화당 강경파와 온건파 양쪽 모두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후보는 라이언밖에 없었다. 그는 하원의장이 되기 싫다고 천명했지만 몇 달 후 마음을 바꾸어 결국 하원의장에 선출되었다.
|
하원의장의 의사봉을 전달받는 모습.[5] |
이후 공화당에서 서열 1위의 실력자이며 대통령, 부통령 다음으로 최고 권력자로 대접받았지만, 일반 당원들에게는 오바마와 타협하여 오바마가 원하는대로 다 들어준다는 이유로 욕을 먹기도 했다. 트위터같은 SNS에서는 합성의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한동안 길렀던 수염은 무슬림 수염스럽다고 까이기도 했다.
2.2.3. 2016년 위스콘신 하원의원 선거구 당내 경선
|
당초 폴 라이언의 위스콘신 하원의원 선거 재선은 아주 당연한 것으로 점쳐졌다.
그런데 폴 네흘렌(Paul Nehlen) 예비후보가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기로 오바마와 협의한 폴 라이언을 극딜하면서 지지율을 올렸다. 폴 라이언과 트럼프의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 않아 라이언은 트럼프 지지자들 상당수에게 미운털이 박힌 상태인데 트럼프 지지자들중 일부는 DumpRyan 구호를 외치면서 라이언을 낙선시키기 위해 네흘렌을 밀고 있다. 위스콘신 하원의원 공화당 당내경선은 8월초에 있는데 5월경만해도 라이언은 70%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며 네흘렌과 차이를 50% 가량 벌리면서 경선은 하나마나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7월초가 되자 여론조사에서 라이언 43% vs 네흘렌 32%로 11%차이까지 좁혀졌다.
하지만 잇단 공화당 인사들의 지지 거부 선언에 부담을 느낀 도널드 트럼프 후보 측에서 꼬리를 내려 폴 라이언과 존 매케인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경선 결과 라이언이 개표 86.8%인 현재 84.2%(5만 750표)를 득표하면서 15.8%에 그친 폴 네흘렌 후보를 (9520표) 크게 앞섰다.
2.2.4.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중재전당대회
도널드 트럼프가 대의원 절반을 확보하지 못한 채로 경선을 승리한다면 중재전당대회를 개최해서 서열 1위인 폴 라이언을 대선후보로 세우게 만들려는 음흉한 속셈을 품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본인은 물론 그러한 생각은 금시초문이라고 했고 본인 또한 그러한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단 공화당 경선은 아직까지도 승자 싹쓸이 독식을 채택하는 주가 40%가량 되고 트럼프가 거의 모든 주에서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에[6] 트럼프가 승자독식 주의 대부분을 확보하고 나머지 60%의 주에서도 40% 가량을 확보하면 전체 대의원 수의 60% 이상을 확보하기 때문에 중재전당대회 개최는 트럼프가 현재 지지율을 유지한다면 가능성이 낮다고 볼 수 있다(경선 1위 후보가 전체 대의원중에서 절반 + 1명을 확보 못해야(50%+1명) 중재전당대회 개최요건이 성립된다).
게다가 중재전당대회의 목적은 애초에 트럼프 저지가 1순위일 것이다. 갑툭튀해서 낼름 대선후보가 되려는 것은 그냥 라이언의 열성 지지자들의 작은 소망일 뿐이거나 공화당의 무리수이거나 혹은 진짜 라이언이 몰래 품고 있는 흑심일 수도 있다. 허나 그런 짓을 하다가는 트럼프와 크루즈 양쪽에서 극딜을 당할 것이며 본인은 이번 대선보다는 다음 내선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내다보고 있다.
그리고 미국 날짜 04월 12일에 '(자신은) 출마할 생각도 없고 또한 어떻게든 출마 혹은 선출되는 상황은 절대 없을 것이다'라고 기자회견을 통해 못박으면서 공식적으로 출마설을 잠재웠다.
2.2.5.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
시사만화가 Ben Garrison의 시사만평 |
전술했듯이 라이언은 대선 기간 동안 도날드 트럼프와 묘한 관계를 지속했다. 공화당 출신 하원의장으로서 트럼프를 전력으로 서포트해야하는 위치였지만, 트럼프를 지지하면서도 호되게 비판하는 이중적인 행보를 계속했다. 지지할 것은 지지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태도라 볼 수도 있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은 공정하지 않은 행위고 선거를 망친다며 라이언을 비판했다. 이런 불편한 동거는 10월 트럼프의 성추문이 터지면서 결국 끝을 맺었는데, 폴 라이언은 트럼프의 추문이 역겹다며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트럼프의 지원 유세를 거부하고 공화당 의원들에게 의원 선거에 집중하라고 요구한 것. 존 매케인이나 부시 일가같은 트럼프 반대파와 사실상 같은 길을 간 것이다. 트럼프도 라이언이 나약하고 공화당이 의리가 없다고 비난하기는 했지만, 공화당 수뇌부에 힘을 쓸 도리가 없으니 결국 알아서 선거운동을 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선이 가까워지자 라이언 측에서 먼저 트럼프에 손을 내밀었다. 막판 트럼프의 지지율이 올라가며 그럭저럭 당선가능성이 보이자 11월 1일에는 자신이 트럼프에 조기 투표를 했다며 화해 제스쳐를 보냈고, 당선 후에는 태도를 180도 바꿔 축하 인사를 보냈다. 11일에는 트럼프와 회동을 가지며 친절하게 트럼프를 안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 트럼프는 회견 동안 굳어진 얼굴을 보여 아직 양자간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
대선 직후, 트럼프 당선인과 회동하는 폴 라이언 |
라이언은 트럼프와의 당선 축하 만남 직후 폭스뉴스에 출연해 트럼프는 "행동하는 사나이(Man of Action)"라면서 찬양하고 "나랑 트럼프는 이민정책과 국경강화에 대해 의견이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라이언은 불과 몇달전까지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려는 오바마 정책에 동의했다가, 2016년 8월에 있었던 하원의원 후보 당내 경선에서 경쟁후보 네흘렌에게 비난을 당한 적이 있었다. 상당수 트럼프 지지자들은 공화당 경선때부터 고비때마다 트럼프의 발목을 잡고 딴지를 걸었던 폴 라이언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2.2.6. 정계 은퇴 선언
2018년 4월 12일, 불과 48세의 나이에 충격적인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8]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가족들과의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는 것.[9] 정확히는 2018년 미국 중간선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으로 이는 곧 하원의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정치에서 손을 떼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는 말이다. 만약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한다 해도 새로운 하원의장을 찾아야 한다.[10]역설적이게도 이번 불출마 결정으로 공화당 내 차기 대권주자로서 그의 가치가 오히려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선 출마를 위해 간을 보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바쁜 일정에도 가족들과의 시간을 확보할 만큼 가정적인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온 인물이었기에 진실성이 있어 보인다. 물론 정계에 복귀하지 말라는 법은 또 없다. 대선 주자급 거물이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어느정도 거리도 있는 인물로 폴 라이언만한 대안이 없고,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11]
2.3. 이후
2019년 1월 3일 정계의 직책들을 떠나 20세기 폭스의 폭스 뉴스에서 경영 이사진으로 합류했다. #2019년 4월, 미국의 타이완 관계법 제정 40주년을 맞아 미국측 방문단의 단장 자격으로 대만을 방문, 차이잉원 총통 등을 예방하고 주요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2020년, 미국 주식시장에서 한 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의 의장으로 추대됐다. #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은 이그제큐티브 네트워크 파트너링이라는 SPAC의 의장이 되어서 적절한 인수 대상기업을 찾아나서는 활동을 하게 된다.
2022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사실상 공화당이 패배한 후에 ABC 뉴스 인터뷰에서 다음 대선 도널드 트럼프를 다시 고른다면 공화당에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또, 2024 대선이 몇 개월 남지 않은 시점인 2023년 12월 인터뷰에서도 트럼프는 보수주의자가 아닌 포퓰리스트라 말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하는 것을 보면 해당 입장에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의 2024 대선 재도전을 반대(Never again Trump)하는' 측의 대표격으로 부각되고 있다.
3. 정치적 입장
전통적인 로널드 레이건식 보수주의자로, 낙태, 동성혼, 총기 규제 등에 반대하며 경제는 자유경제를 주장한다. 의료 보험의 경우, 오바마 케어에 반대하며 철저히 민간 주도 의료 보험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복지 정책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각종 복지나 아동 지원 수당, 푸드 스탬프 등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다.또한 환경 문제에 있어서도 지구 온난화를 아예 부정하지는 않지만, 인위적인 요소보다는 자연적인 요소가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
레이건이 이민에 친화적이었던 만큼, 라이언 역시 이민에 대해서는 관대한 입장을 보였으며 이때문에 공화당의 일부 강경파하고 갈등을 가지기도 했다. 사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 이전까지만해도 공화당 역시 이민(특히 히스패닉)에 대해서 입장을 기존보다 완화해[12] 이들이 민주당 지지로 쏠리지 않도록 관리하려고 노력했다.[13] 하지만 반이민을 기치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공화당이 급격하게 강경 기조로 선회하면서, 라이언 같은 기존 공화당 주류 정치인들은 입지가 약화되었다.
4.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98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위스콘신 1구 |
|
108,475 (57.11%) | 당선 (1위) | 초선 |
2000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177,612 (66.57%) | 재선 | |||
2002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140,176 (67.19%) | 3선 | |||
2004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233,372 (65.37%) | 4선 | |||
2006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161,320 (62.63%) | 5선 | |||
2008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231,009 (63.97%) | 6선 | |||
2010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179,819 (68.21%) | 7선 | |||
2012 | 미국 부통령 선거[14] | 미합중국 | 60,933,504 (47.20%, 206명) | 낙선 (2위) |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위스콘신 1구 | 200,423 (54.90%) | 당선 (1위) | 8선 | ||
2014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182,316 (63.27%) | 9선[15] | |||
2016 | 미국 연방하원의원 선거 | 230,072 (64.95%) | 10선 |
5. 기타
-
[16]
몸을 봐도 그렇고 평소에 운동을 좋아해서 마라톤을 4시간 만에 완주할 수 있다고 한다. 심장마비 관련 가족력이 있는데, 가족, 친척들 중 심장마비로 60세가 되기도 전에 죽은 이들이 많다고 한다. 변호사이던 그의 아버지도 폴이 16세 때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때문에 P90X라는 피트니스 프로그램과 더불어 식단에도 많은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한다. 이후 생계가 어려워져 대학을 다니고 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던 시절에도 웨이터와 피트니스 트레이너를 겸하곤 했다고 한다. -
수염 버프를 상당히 받는 편이다. 깔끔히 면도를 하던 시절에는 그렇게까지 외모로 주목받진 않았으나(물론 그래도 잘생긴 편이긴 하다) 2015년부터 수염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강인한 이미지가 생겼다. 입술이 지나치게 얇은 편인데(특히 윗입술) 수염을 기르니 커버가 잘되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엔 다시 수염을 기르지 않는다. - 푸른 눈을 가졌다. 흔히 서양인에게 떠올리는 이미지인 푸른 눈은 유전적으로 열성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혼혈이 되면 파란 색 눈을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낮아진다. 실제로 현재 미국에서 노년층인 할아버지 할머니 백인들은 대부분 푸른 눈을 가졌지만 요즘에는 푸른 눈을 가진 미국인의 비율이 혼혈로 인해 20% 이하로 크게 떨어졌다. 그런데 폴 라이언이 푸른 눈을 가졌다는 것은 그가 순수한 백인이며 나아가 백인들이 주로 지지하는 공화당을 대변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논외로 부인인 제나와 딸과 아들인 리자, 찰리 또한 푸른 눈을 가졌고 The Most Gorgeous Politicians' Families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폴 라이언이 공화당 인턴들과 셀카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 거의 대부분이 백인인 것에 더해져 반감을 받기도 했다.
- 위스콘신 출신답게 그린베이 패커스의 팬이다.
[1]
혼전 성은 허터(Hutter).
[2]
2000년 결혼.
[3]
하원의장은 대통령, 부통령(상원의장 겸직)의 뒤를 잇는 미국 정부의 권력승계 서열 3위다.
[4]
하원의장으로 선출되려면 민주당이 절반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서 공화당의 표를 거의 전부 다 얻어야 하는데, 공화당 내 강경파는 3~40명으로 그다지 많지 않지만 그들이 한 표도 주지 않으면 민주당의 표를 얻지 않는 한 선출될 수가 없다.
[5]
왼쪽은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원내대표. 관례적으로 미 하원의장 취임은 원내 제2당의 대표가 의사봉을 전달해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6]
트럼프가 1위를 못달리는 곳은 텍사스, 미네소타, 캘리포니아 정도이다. 그런데 텍사스에서는 이 지역 상원의원으로 홈구장의 이점을 가진 테드 크루즈에게 상당히 밀리는 편이라 여기는 1위를 포기할 수밖에 없고, 캘리포니아와 미네소타는 백중세의 경합지역이다.
[7]
저 대사는 원래
이명박이
강재섭을 겨냥해서 한 발언인데, 공교롭게도 당시 이명박과 강재섭의 관계는 트럼프와 라이언의 관계와 정말 비슷하다. 트럼프보다는 훨씬 덜하지만 사실 이명박도 정치적 근거지가
대경권이 아닌
수도권인데다가
친이계 또한 보수 계열 정당의 '박힌 돌'인 과거
민정계가 아니라 '
굴어온 돌'인 과거
민주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친박계에 비해서는 한나라당의 아웃사이더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트럼프와 이명박이 상대해야 했던
후
보
들은 당 내 주류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강력한 후보들이었고, 공화당과 한나라당의 대표 폴 라이언과 강재섭은 이러한 주류 세력을 완벽하게 대변하는 정치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과 강재섭, 그리고 트럼프와 라이언의 관계를 불편할 수밖에 없다.
[8]
한편 트럼프는 라이언이 공식 기자회견을 열기도 전에
트위터로 이 소식을 터트려버렸다.
[9]
그는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 하원의장이 된 것과 세 아이의 아빠가 된 것이라고 말 한적이 있다.
[10]
이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하원의장 자리는
낸시 펠로시에게 넘어갔다.
[11]
현역 대통령을 두고 대안을 마련해야할 상황까지 간다면 트럼프 행정부 전체의 인기가 그만큼 시궁창이라는 의미일테니 그 일원인
마이크 펜스,
벤 카슨 같은 인물들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르코 루비오나
테드 크루즈를 재등판해도 라이언만한 경쟁력은 기대하기 힘들다.
[12]
마코 루비오,
젭 부시 등이 이 과정에서 공화당 주류로 성장했다.
[13]
공화당이 국경 단속 강화 등을 이유로 히스패닉 이민을 제한하려고 하다보니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국경지역 등에 새롭게 자리잡은 히스패닉 이민자들이 민주당 지지로 많이 돌아섰다.
[14]
대통령 후보는
밋 롬니
[15]
2015.10.29. 연방하원의장 취임
[16]
타임지 인터뷰에 실렸던 사진들 중 하나. 평소에 정말 운동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오글거리는 연출인 거꾸로 뒤집어 쓴 모자와 티셔츠 때문에 젊어보이려고 별 짓을 다한다며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엄청나게 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