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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지탱한 주전 센터백 듀오인 리오 퍼디난드와 네마냐 비디치의 합성어.퍼디치에 견줄만한 2000년대 센터백 듀오로는 바르셀로나의 6관왕과 스페인의 월드컵 우승을 이루어낸 카를레스 푸욜- 제라르 피케와 레알 마드리드의 3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세르히오 라모스- 페페 정도가 있다. 같은 리그에서 보자면 04-05 시즌 EPL 역대 최소 실점 기록(15실점)을 세운 첼시의 존 테리와 히카르두 카르발류 조합도 있고, 넓게 보자면 아주리 군단의 파비오 칸나바로- 알레산드로 네스타 조합, 09-10 시즌 세리에 A 최초의 트레블을 이끈 인터 밀란의 왈테르 사무엘- 루시우 페헤이라 조합, 분데스를 대표하고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마츠 후멜스 - 제롬 보아텡 조합 등 여럿 이름을 날린 조합이 없진 않다. 하지만 긴 시간을 꾸준히 잘해온건 위의 세 조합 정도이고 2010년대까지 보아도 키엘리니- 보누치 정도이다. 클럽으로 보면 파올로 말디니- 알레산드로 네스타 조합도 저들에 비해 밀리지 않으나, 이쪽도 말디니가 월드컵 트로피는 없다.[1]
심지어 푸욜과 피케의 조합은 바르셀로나라는 팀 자체가 워낙에 다른 빅클럽들조차 압도해 버리는 역대 최강의 축구팀이라 불릴 만큼 강팀이었고 거기에 스페인 국가대표팀도 전성기 시기에는 다른 국가대표 강팀들 조차 무서워 했을 정도의 강팀인데다가 두 팀 모두 점유율이 워낙 높고 사비- 이니에스타- 부스케츠의 미들진이 앞에서 굳건하게 센터백들을 보호해 줬기 때문에 중원을 단지 버텨주는 용도로만 썼던 맨유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이들 조합도 퍼디난드-비디치의 조합보다 우위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2] 좀 더 와닿게 비유하자면 레알의 실점이 더 많았던 시즌에도 빅토르 발데스와 이케르 카시야스를 비교하면 왜 카시야스가 항상 더 높은 점수를 받았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2. 플레이 스타일
실제로 이 두 사람의 플레이 스타일은 매우 상이하다. 퍼디난드의 경우 일명 볼-플레잉 센터백으로서 긴 다리를 이용한 볼키핑과 패스가 좋아서 맨유의 빌드업을 도맡는다. 또한 지능적인 수비수로서 수비 위치 선정이 좋고 전성기 때는 스피드까지 빨라 공간 침투를 이용하는 공격수들에게 최대의 적이었다. 그러나 간혹 정신줄을 놓아서 그런지 말도 안되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형적인 파이터형 센터백인[3] 비디치는 이와 반대로 벽디치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의 강력한 피지컬과 뛰어난 공중볼 싸움으로 상대 공격수들을 압박했다. 특히 그 특유의 투지와 위압감은 그야말로 공포. 그 결과 디디에 드록바와 같은 피지컬을 이용하는 공격수에겐 천적이다. 하지만 공을 가지고 있을때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빌드업 능력이 매우 취약했다. 대표적인게 전성기 시절 페르난도 토레스의 압박에 못 이겨 실점을 당한것도 모자라 결국 퇴장까지 당한 2008-09 시즌 리버풀전 1-4 패배 경기.이 두 조합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한다는 것으로, 퍼디난드에게 부족한 터프함을 비디치가 대신하고 비디치의 불안한 빌드업을 퍼디난드가 대신하게 되면서 이 둘의 조합은 맨유를 2000년대 중후반 EPL의 끝판왕으로 만들어 주었다.[4]
3. 역사
90년대 말~2001년까지 맨유의 센터백 라인은 야프 스탐을 중심으로 로니 욘슨, 미카엘 실베스트르 등으로 활약했지만 2001년 스탐이 자서전 사건으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 밖에 나면서 SS 라치오로 떠나게 되었고 대체자로 베테랑 수비수인 로랑 블랑이 영입되었지만 블랑은 이미 35세의 노장이었기에 긴 활약은 기대할 수 없었다.그리고 2002년 새로운 시즌에 앞서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당시 수비수 세계 최고 이적료를 지불하면서 리오 퍼디난드를 맨유로 데려오게 되었는데 퍼디난드는 단숨에 맨유 수비의 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2003년 블랑이 은퇴하고 퍼디난드의 파트너로 웨스 브라운, 실베스트르가 활약했지만 2003년 퍼디난드가 약물 검사에 불참해 8개월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으면서 수비 불안이 시작되었고 때마침 맨유도 대대적인 리빌딩으로 인한 전력 약화로 인해 한동안 EPL의 강자로써의 전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5] 2005-06 시즌까지 퍼디난드는 여전히 수비의 중심으로 활약했지만 그에 비해 실베스트르의 구멍질과 브라운의 잦은 부상으로 파트너들이 기량 미달에 시달리자 2006년 1월 맨유는 세르비아의 센터백 네마냐 비디치를 데려오게 된다. 그러나 비디치는 EPL 적응을 하지 못해 부진했고, 당시 같이 영입된 파트리스 에브라와 함께 수비진의 구멍으로 활약하면서 시즌 말까지 퍼디난드의 파트너는 브라운이 대신하였다.
2006-07 시즌부터 퍼디난드-비디치 라인의 본격적인 활약이 시작되었다. 비디치가 리그 적응을 완료하여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공중볼을 장악하며 상대 공격수들을 무력화시켰고, 퍼디난드는 비디치의 약점인 빌드업을 보충하면서 수비진을 진두지휘하였다. 거기에 왼쪽 풀백을 담당한 이적생 파트리스 에브라도 팀에 적응을 마쳤고, 골키퍼에는 직전 시즌에 합류한 배테랑 에드윈 반 데 사르까지, 이 조합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그리면서 최후방 라인이 안정화되었는데, 때마침 마이클 캐릭이 합류해 중원이 안정되고 웨인 루니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맹활약으로 공격진의 화력이 살아나면서 4년만에 리그 우승을 탈환했다. 이후 2007-08 시즌 퍼디치 라인은 더욱 공고해지며 영국을 넘어 나아가 유럽 무대에서도 그 위용을 보여주었고[6], 맨유는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공격진이 부진해도 지지 않는 축구와 안정적인 경기 운영으로 상대팀을 제압하면서 EPL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더블을 이룩했고 이는 2008-09 시즌에도 이어져 리그 3연패 달성,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챔피언스 리그 2연속 결승 진출에도 큰 공을 세웠다.[7]
2009년 이후부터는 퍼디난드가 잦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점점 전력 공백이 늘어났지만, 파트너인 비디치가 완전히 각성하면서 최후방의 에드윈 반 데 사르 골키퍼와 함께 안정감을 바탕으로 젊은 수비수인 조니 에반스를 데리고 유럽 무실점 신기록을 세워나갔다. 이에 비디치는 2009년 EPL 베스트11과 2010-11 시즌 리그 MVP를 수상하며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그러나 퍼디치 라인도 세월의 흐름 속에서 점점 예전만한 명성은 보여주지 못했다. 2011-12 시즌 비디치가 FC 바젤과의 챔스 조별리그 경기에서 십자인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맨유는 수비 불안과 공중볼 불안에 시달렸고 당시 미드필드진의 줄부상까지 겹쳐 전력 붕괴를 겪으며 시즌 막판 맨체스터 시티에게 역전 우승까지 내주었다. 2012-13 시즌[8] 비디치가 복귀하고 직전 시즌 영입된 새 골키퍼인 다비드 데 헤아도 각성하여 리그 우승을 되찾았지만, 해당 시즌 역시 과거에 비해 많은 실점을 기록하였다. 로빈 반 페르시의 맹활약이 없었으면 아마 어땠을지는...
이후 비디치는 부상 여파와 인해 노쇠화가 겹쳐 폼이 상당히 떨어지고 퍼디난드 역시 많은 나이로 인해 퇴물로 전락하면서 퍼디치의 명성은 완전히 무너졌고, 2013-14 시즌 맨유는 리그 7위를 기록하며 EPL 출범 이후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시즌 종료 이후 퍼디난드와 비디치 모두 팀을 떠나면서 퍼디치는 공식 해체되었다.
4. 해체 이후
퍼디난드는 QPR로 이적해 이제 막 승격한 팀의 수비진을 리드해줄거라 기대받았으나, 맨유 말년부터 있었던 심각한 노쇠화로 인한 폼 하락으로 인해 선발 출전도 자주 못하고 벤치로 밀려나면서 결국 팀의 강등을 막아내지 못하고 2014-15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게 되었다. 이미 이적 당시 35세였고 맨유에서도 심각한 노쇠화 때문에 재계약을 포기했기 때문에 애초에 잘 해줄 것으로 기대하긴 어려웠다.비디치는 인테르로 이적해 몰락한 네라주리 군단의 부활의 핵심이 될거라 기대받았지만, 오히려 인테르 수비수들과 함께 최악의 폼을 자랑하면서 구멍으로 전락하였고 팀 성적은 8위로 마감했다. 그나마 안드레아 라노키아 같은 잉여보다는 잘했지만 그래봤자 0.5인분과 0.7인분의 차이(...). 이후 완전히 잉여 자원으로 분류되면서 잦은 부상까지 겹쳐 결국 2016년 인테르와 상호 계약을 해지하였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사실 비디치가 저 모양이 된건 리그 적응 실패가 크다. EPL의 파울 콜이 관대하여 EPL때처럼 수비하였는데 문제는 세리에에선 이런 행동이 대부분이 카드, 파울로 이어져서 세트피스 상황을 만드는 것. 게다가 인테르로 이적할 때에는 부상이 심각한 데다 나이가 들어 피지컬이 저하되는 본질적 문제가 있어 맨유에 잔류했어도 언젠가 은퇴할 것이었다. 맨유 입장에서는 아름다운 이별로 잘 보내준셈이 되었다.
퍼디치의 기량 하락 및 해체 이후 맨유는 끊임없는 암흑기에 빠져있다.
[1]
이스타TV에서는 해설자 3인의 의견과 이상형 월드컵 투표를 통해서 2000년대 최고의 수비듀오를 뽑았는데, 여기서는 말디니-네스타 조합을 좀 더 위로 보았다. 다만 '가볍게 진행한 조사니 공신력을 운운할 것은 아니고, 그냥 상기된 조합들을 포함해 높이 올라온 팀은 대체로 개인 선호에 따라 달라져도 이상할 것이 없을만큼 위대한 수비수들이다'라는 식으로 결론지었다.
[2]
퍼디치가 함께한 맨유의 미드필더들은
폴 스콜스,
마이클 캐릭,
대런 플레처,
라이언 긱스,
존 오셰이 정도가 있는데, 이들의 중원 조합은 결코 바르셀로나의 중원보다 우위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당시 맨유에는 제대로된
수비형 미드필더 조차도 없었다.
[3]
센터백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파이터형 센터백이란 유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편의상 분류일 뿐.
[4]
이 둘의 조합은 EPL 출범 이후 가히 철벽이라 불릴 정도로 탄탄했는데,
역대 PL 수비수 조합 중 경기당 실점률이 두번째로 적은(118경기, 0.71 실점) 듀오였다. 특히나 1위
솔 캠벨-
콜로 투레 조합(53경기, 0.7 실점)보다 경기는 2배 넘게 많이 뛰었으면서 경기당 실점률이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은 것을 보면 퍼디치의 조직력이 얼마나 탄탄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5]
그래서
03-04 시즌은 아스날에게,
04-05,
05-06 시즌은 첼시에게 리그 우승을 내줬다. 리그 뿐만 아니라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두 시즌 연속 16강 탈락을 하였고 기어이 2005-06 시즌은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6]
사실 맨유는 직전 시즌인 06-07 시즌에도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해 부활을 알렸다. 다만
카카에게 털려버렸다.
[7]
08-09 시즌 챔피언스 리그는 결승에서 바르셀로나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8]
퍼거슨 감독의 마지막 시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