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22:34:07

트로이 에이크먼

트로이 에이크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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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VII XXVIII 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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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리펜
( QB / 워싱턴 레드스킨스)
트로이 에이크먼
( QB / 댈러스 카우보이스)
에밋 스미스
( RB / 댈러스 카우보이스)

파일:NFL 로고.svg 1997년 NFL 올해의 인물[1]
대럴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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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에이크먼
( QB / 댈러스 카우보이스)
댄 마리노
( QB / 마이애미 돌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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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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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에이크먼
헌액 연도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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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roy-aikman.jpg
<colbgcolor=#b0b7bc><colcolor=#002244> 댈러스 카우보이스 No.8
트로이 케네스 에이크먼
Troy Kenneth Aikman
출생 1966년 11월 21일 ([age(1966-11-21)]세)
캘리포니아주 웨스트 코비나
국적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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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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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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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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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UCLA
신체 193cm / 100kg
직업 미식축구 선수 ( 쿼터백 / 은퇴)
NFL 해설자
프로입단 1989년 NFL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댈러스 카우보이스 지명
소속 구단 댈러스 카우보이스 (1989~2000)
관련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지미 존슨과의 애증의 관계
3. 은퇴 이후4. 수상 내역5. 여담6. 연도별 기록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미국의 前 미식축구 선수로 소속팀은 댈러스 카우보이스, 포지션은 쿼터백이었다. 별명은 Iceman.[2]

현재는 ESPN에서 NFL 중계 해설을 담당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파일:The Triplets.jpg
좌측부터 마이클 어빈, 에밋 스미스, 트로이 에이크먼
1989년 NFL 드래프트 전체 1위로 댈러스 카우보이스에 입단해 와이드 리시버 마이클 어빈, 다음해인 1990년 입단한 러닝백 에밋 스미스와 함께 공격 삼각편대 트리플릿츠(The Triplets)를 결성하며 슈퍼볼 3회 우승으로 요약되는 댈러스 카우보이스 2차 전성기를 이끌었다.[3]

그림같은 정확한 패스로 유명했다. 다만 명성에 비해 통산 스탯은 전설급 쿼터백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에이크먼의 전성기를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가 왜 이리 높게 평가받는지 의아해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이는 존 엘웨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엘웨이는 NFL 역사상 손꼽히는 쿼터백 중 한명으로 평가받지만, 정작 스탯만 보면 평범해보이기 때문이다.[4] 왜냐하면 리그가 패스 친화적으로 바뀐건 DPI룰과 러핑 더 패서룰의 개정이 이루어진 21세기 부터이고, 20세기까지 미식축구는 러싱공격의 비중이 더욱 컸다. 그래서 댄 마리노와 같은 쿼터백들을 제외하면, 80~90년대에 활약한 쿼터백들의 패싱야드나 스탯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보인다.[5]

에이크먼이 활약하던 당시 카우보이스의 전술은 에밋 스미스와 대럴 존스톤을 이용한 러싱 공격을 주력으로 삼는 전술이었다. 전반에 러싱공격을 몰아쳐 상대 수비의 체력을 빼놓고 후반에 에이크먼의 패스를 이용하는 작전이었다. 에이크먼은 팀의 작전과 컨셉을 매우 잘 이해했고 주어진 임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또한 1991 시즌부터 1996 시즌까지 6연속 프로볼에 선정되었다.

에이크먼의 강점으로 무엇보다도 큰경기에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고,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강했다. 슈퍼볼에 3번 올라 모두 우승을 기록했고, 당시 패서레이팅은 정규시즌을 훨씬 상회하여 100이 넘었다. 특히 슈퍼볼 MVP로 선정된 1992-93 시즌 플레이오프에서의 퍼포먼스는 역대 쿼터백 플레이오프 퍼포먼스 순위에서 최상위권에 랭크될 정도로 대단했다. 큰 경기에서 훌륭한 활약을 펼치는 에이크먼의 모습이 그 당시를 직접 눈으로 지켜본 댈러스 카우보이스 팬들과 미식축구 팬들 사이에 각인되었고, 이것이 그를 전설로 회자되게 하는 이유다. 이에 댈러스 카우보이스 역사상 로저 스타우벅과 함께 가장 뛰어난 쿼터백으로 평가받는다.

현역 시절 하드태클을 많이 맞아서 스티브 영처럼 뇌진탕문제가 심했었는데 위험 수위에서도 결국 38살까지 현역으로 뛰었던 스티브 영과 달리 에이크먼은 2000년 라이벌 워싱턴 레드스킨스 경기에서 상대 라인배커 라바 애링턴에게 강력한 태클을 얻어맞고 뇌진탕이 도져서 쿼터백으로는 더 이상 뛸 수 없게 되었다. 결국 34세의 젊은 나이에 현역 생활을 마쳐야 했다. 에이크먼의 뇌진탕으로 인한 기량 감소와 지미 존슨의 후임감독으로 부임한 배리 스위처의 선수단 장악 실패 이슈가 겹치며 카우보이스의 90년대 왕조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2.1. 지미 존슨과의 애증의 관계

신인 시절에는 마찬가지로 프로에서는 신인 코치였던 지미 존슨과 불협화음이 많았다.[6] 존슨은 본인이 이끌었던 마이애미 대학 선수들을 선호하며 에이크먼이 떡하니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이애미 출신 쿼터백인 스티브 월시를 보충 드래프트에서 뽑으며 에이크먼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는 등 불협화음이 많았으나, 둘은 여차저차 갈등을 봉합하고 결국 카우보이즈의 2차 전성기를 이끄는데 성공했다.[7]

현재는 지미 존슨과 둘도 없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미 존슨은 제리 존스 구단주와의 불화로 수십년간 카우보이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하였는데, 에이크먼은 존슨의 구단 명전 입성을 강력히 요구했던 인물이다.[8] 또한 2020년 램보 필드에서 디비저널 플레이오프 생중계 하프타임 도중 지미 존슨이 NFL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 없이 박수를 보내며 축하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3. 은퇴 이후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fff> 파일:MNF Logo 2020.jpg ESPN Monday Night Football
ESPN 먼데이 나잇 풋볼 해설팀
}}}
파일:espn-aikman-buck.webp
캐스터 사이드라인 리포터 해설자
파일:ESPN 로고.svg 조 벅 리사 솔터스 트로이 에이크먼

현역시절 슈퍼볼 3회 우승이라는 공을 인정받아 2006년에 NFL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2001년 FOX의 분석가로 합류했고 2002년부터는 조 벅과 함께 메인 해설자로 나서고 있다. 요즘에는 조 벅과 함께 만담을 주고 받으며 유치한 개그에 빵 터지는 모습을 보이는 그야말로 50대 중반의 아저씨가 다 됐다. 과거의 승부욕 넘치던 현역 시절은 어디로 갔느냐며 팬들도 안타까워 하는 중이다.[9]

2022년 3월 조 벅과 함께 ESPN으로 이적했다. 이에 따라 먼데이 나잇 풋볼을 진행하게 된다.

4. 수상 내역

수상 내역
파일:슈퍼볼 로고.svg 슈퍼볼 우승 3회 (XXVII, XXVIII, XXX)
파일:슈퍼볼 로고.svg 슈퍼볼 MVP (XXVII)
파일:프로볼 로고.svg 프로볼 6회 (1991~1996)
파일:Pro Football Hall of Fame logo.png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 (2006)
파일:NFL 로고.svg NFL 올해의 인물 (1997)

파일:NFL 로고.svg NFL 패스 성공율 1위 (1993)

5. 여담

  •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스포츠 에이전트 레이 스타인버그의 클라이언트이기도 하다. 실제로 에이크먼도 제리 맥과이어 마지막에 잠깐 카메오로 출연했다.
  • 현역시절 존 엘웨이와 더불어 미남 금발 쿼터백으로 인기가 많았다. 그러한 이유로 텍사스 먼슬리가 선정한 텍사스 최고의 신랑감으로 뽑힌 적이 있다. 또한 컨트리 가수 로리 모건과 교제했었다.
  • 맥주 애호가로 유명한데, 오랜 준비 끝에 2022년에 자신의 현역시절 등번호를 딴 EIGHT라는 라거 맥주 브랜드를 출시했다. 텍사스 지역을 중심으로 판매중이며,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 댈러스 카우보이스 출신이고 FOX의 메인 중계진이다 보니 NFL 입문 이후 추수감사절에 쉰 적이 딱 한번 밖에 없다고 한다. 선수로 뛸 때는 추수감사절에 카우보이스 경기가 무조건 배정되다 보니 추수감사절에 경기를 하고 FOX에 합류한 이후에는 2001년 첫 시즌은 집에서 보냈으나 2002년부터 메인 중계진으로 승격하면서 추수감사절 프라임타임 때문에 추수감사절에는 항상 디트로이트 또는 댈러스에 항상 머물렀다. 다행히 2022년 ESPN으로 이적한 이후 무려 20년 만에 추수감사절을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ESPN은 추수감사절 프라임타임 경기가 없기 때문이다.

6. 연도별 기록

시즌 소속팀 출장
경기
패싱 러싱
시도 성공 성공률 야드 평균
야드
터치
다운
인터
셉트
색야드 레이트 시도 야드 평균
야드
터치
다운
1989 DAL 11 293 155 52.9 1749 6 9 18 19 155 55.7 38 302 7.9 0
1990 15 399 226 56.6 2579 6.5 11 18 39 288 66.6 40 172 4.3 1
1991 12 363 237 65.3 2754 7.6 11 10 32 224 86.7 16 5 0.3 1
1992 16 473 302 63.8 3445 7.3 23 14 23 112 89.5 37 105 2.8 1
1993 14 392 271 69.1 3100 7.9 15 6 26 153 99 32 125 3.9 0
1994 14 361 233 64.5 2676 7.4 13 12 14 59 84.9 30 62 2.1 1
1995 16 432 280 64.8 3304 7.6 16 7 14 89 93.6 21 32 1.5 1
1996 15 465 296 63.7 3126 6.7 12 13 18 120 80.1 35 42 1.2 1
1997 16 518 292 56.4 3283 6.3 19 12 33 269 78 25 79 3.2 0
1998 11 315 187 59.4 2330 7.4 12 5 9 58 88.5 22 69 3.1 2
1999 14 442 263 59.5 2964 6.7 17 12 19 130 81.1 21 10 0.5 1
2000 11 262 156 59.5 1632 6.2 7 14 13 91 64.3 10 13 1.3 0
NFL 통산
(12시즌)
165 4715 2898 61.5 32942 7.0 165 141 259 1748 81.6 327 1016 3.1 9

7. 관련 문서



[1] 당시에는 NFL Man of The Year Award이었으나 평소 인품이 좋았던 월터 페이튼을 추모하기 위해 1999년 Walter Payton NFL Man of The Year Award로 변경했다. [2] 학창 시절 냉혹한 표정으로 경기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한 고등학교 코치가 그를 아이스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3] 버팔로 빌스를 슈퍼볼에서 2년 연속으로 만나 전부 우승하며 짐 켈리를 4년 연속 준우승이라는 콩라인으로 만든 장본인. [4] 그러나 누적 스탯까지 보면 정규시즌 MVP 출신에 선수 생활을 오래한 엘웨이가 에이크먼보다 훨씬 스탯을 잘 쌓았다. 통산 패싱야드는 거의 20,000야드 차이가 난다. [5] 실제로 단일시즌 최다 패싱야드 기록 순위를 보면 대부분이 2000년대 이후이다. 90년대에는 시즌 3000야드 이상이면 뛰어난 쿼터백으로 불리고 4000야드는 찾기 힘들었으나, 21세기 이후에는 시즌4000-5000야드가 심심찮게 나온다. [6] 에이크먼은 대학시절 UCLA에서 날린 쿼터백이었고, 존슨은 마이애미 대학을 이끌고 대학 미식축구 우승을 이끌어낸 명장 출신이지만 둘다 프로에서는 신예였던 시절에는 대립이 매우 심했다. 존슨은 소문에 따르면 "에이크먼 그 새끼는 대학 시절에도 패배자였고 프로에서도 패배자로 남을 거야" 수준의 발언을 했다고 하니 갈등이 있을 만 하다. [7] 에이크먼도 결국 이러한 불협화음을 통해 팀의 리더로 거듭나긴 했다. 첫 우승 시즌인 1992 시즌 막판에 워싱턴에게 역전패를 당하자 존슨이 말그대로 대폭발하며 난리를 쳤는데, 에이크먼은 존슨의 이러한 행위에도 흔들리지 않고 다음 경기서부터 맹활약을 펼치며 자신이 팀원들을 장악할 수 있다는 모습을 선보였다. [8] 2021년, 마침내 지미 존슨은 카우보이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는데 이는 에이크먼이 해설하는 폭스 채널의 스튜디오에서 지미 존슨, 제리 존스, 트로이 에이크먼의 삼자 대면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발표되었다. 에이크먼의 중재가 빛을 보게 된 셈이다. [9] 톰 브래디처럼 경기장 안에서는 제대로 못하는 팀원들에게 쌍욕을 하며 폭풍 갈굼을 일삼는(...) 승부욕의 화신으로 소문났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만 나가면 그냥 사람 좋은 형이자 아저씨(...)로 변신한다. 변신의 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