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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
1984년 코르도바 역사 지구 Centro histórico de Córdoba |
1984년 그라나다 : 알함브라, 헤네랄리페, 알바이신 Alhambra, Generalife y Albaicín de Granada |
1984년 부르고스 대성당 Catedral de Burgos |
1984년 마드리드의 에스코리알 수도원 유적 Monasterio y sitio de El Escorial en Madrid |
1984년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 Obras de Antoni Gaudí |
1985년 알타미라 동굴과 스페인 북부의 구석기시대 동굴 예술 Cueva de Altamira y arte rupestre paleolítico del norte de Españ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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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세고비아 옛 시가지와 수도교 Ciudad vieja y acueducto de Segovia |
1985년 오비에도와 아스투리아스 왕국 기념물군 Monumentos de Oviedo y del reino de Asturias |
1985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옛 시가지 Ciudad vieja de Santiago de Compostel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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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아빌라 옛 시가지와 대성당 Ciudad vieja de Ávila e iglesias extramuros |
1986년 아라곤의 무데하르 건축 Arquitectura mudéjar de Aragón |
1986년 톨레도 역사 도시 Ciudad histórica de Tole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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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카세레스 옛 시가지 Ciudad vieja de Cáceres |
1987년 세비야 대성당, 알카사르, 인디아스 고문서관 Catedral, Alcázar y Archivo de Indias de Sevilla |
1988년 살라망카 옛 시가지 Ciudad vieja de Salamanc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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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포블레트 수도원 Monasterio de Poblet |
1993년 메리다 고고 유적군 Conjunto arqueológico de Mérida |
1993년 산타 마리아 데 과달루페 왕립 수도원 Real Monasterio de Santa María de Guadalup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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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 : 카미노 프란세스와 스페인 북부 순례길 Caminos de Santiago de Compostela : Camino francés y Caminos del Norte de España |
1996년 쿠엥카 성곽 도시 Ciudad histórica fortificada de Cuenca |
1996년 발렌시아의 라 론하 데 라 세다 Lonja de la seda de Valenc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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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라스 메둘라스 Las Médulas |
1997년 바르셀로나의 카탈라냐 음악당과 산트 파우 병원 Palau de la Música Catalana y hospital de Sant Pau en Barcelona |
1997년 산 밀란 유소와 수소 수도원 Monasterios de San Millán de Yuso y de Sus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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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시에가 베르데와 코아 계곡 선사시대 암벽화 Sitios de arte rupestre prehistórico del Valle del Côa y de Siega Verde |
1998년 이베리아 반도 지중해 연안의 암각화 Arte rupestre del arco mediterráne de la Península Ibérica |
1998년 알칼라 데 에나레스 대학과 역사 지구 Universidad y recinto histórico de Alcalá de Henar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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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산 크리스토발 데 라 라구나 San Cristóbal de La Laguna |
2000년 타라코 고고 유적군 Conjunto arqueológico de Tarragona |
2000년 엘체의 야자나무 숲 Palmeral de Elch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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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루고의 로마 시대 성벽 Muralla romana de Lugo |
2000년 발 데 보이의 카탈루냐 로마네스크 교회 Iglesias románicas catalanas de Vall del Boí |
2000년 아타푸에르카 고고 유적 Sitio arqueológico de Atapuerc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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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아란후에스 문화경관 Paisaje cultural de Aranjuez |
2003년 우베다 ・ 바에사의 르네상스 기념물군 Conjuntos monumentales renacentistas de Úbeda y Baeza |
2006년 비스카야 대교 Puente de Vizcay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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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헤라클레스의 탑 Torre de Hércules |
2011년 트라문타나 산맥의 문화경관 El Paisaje Cultural de la Serra de Tramuntana |
2012년 알마덴과 이드리야 수은광산 Patrimonio del mercurio (Almadén e Id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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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안테케라 거석묘 유적 Dólmenes de Antequera |
2018년 메디나 아자하라의 칼리프 도시 Ciudad califal de Medina Azahara |
2019년 리스코 카이도와 그란 카나리아의 신성한 산맥 문화 경관 Paisaje cultural del Risco Caído y montañas sagradas de Gran Cana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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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파세오 델 프라도와 부엔 리테로, 예술과 과학의 경관 Paseo del Prado y el Buen Retiro, paisaje de las artes y las cienci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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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60b1e> 자연유산 |
1986년 가라호네이 국립공원 Parque Nacional de Garajonay |
1994년 도냐나 국립공원 Parque Nacional de Doñana |
2007년 테이데 국립공원 Parque Nacional del Tei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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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카르파티아 및 유럽의 기타 지역에 생육하는 고대 및 원시 너도밤나무 숲 Bosques antiguos y primarios de hayas de los Cárpatos y otras regiones de Europ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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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유산 |
1997년 피레네 산맥 : 몽 페르뒤 산 Pirineos - Monte Perdido |
1999년 이비사의 생물 다양성과 문화 Ibiza, biodiversidad y cultura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톨레도 역사도시 |
영어 | Historic City of Toledo | |
스페인어 | Ciudad histórica de Toledo | |
프랑스어 | Ville historique de Tolède | |
국가·위치 | 스페인 카스티야라만차 톨레도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86년 | |
등재기준 | (i)[1], (ii)[2], (iii)[3], (iv)[4] | |
지정번호 | 379 |
톨레도 (카스티야라만차) Tole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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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톨레도) Tole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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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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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 중부 톨레도 주의 도시. 카스티야라만차 자치 구역에 해당한다. 인구는 83,000명이고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약 67km 거리에 있다.
세르반테스 언덕을 타호 강이 둘러싸고 있어 로마 시대부터 천연의 요새로 발전해 왔고 스페인 역사에서 오랫동안 수도 내지는 중심지 역할을 했던 도시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그리스도교, 이슬람, 유대교의 유적이 공존하고 스페인 문화를 잘 대변하는 곳이어서 도시 전역이 국립 기념지로 선포되었다.
크레타 섬에서 나고 자라 이탈리아에서 경력을 쌓으며 스페인에 정착했던 화가인 엘 그레코가 사랑하고 종국엔 제2의 고향으로 아꼈던 도시이기도 하다.
2. 역사
처음에는 '톨레툼(Toletum)'이라는 이름의 로마 제국의 도시였다. 역사가 리비우스는 톨레툼에 대해 "Urbs parva, sed loco munita"(작지만 천연의 요새로 이루어진 도시)라고 기록했다. 서로마 제국 말기에 일어난 게르만족의 대이동의 주역인 서고트족이 451년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까지 이동해 457년경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507년 서고트 왕국은 남프랑스의 아키텐을 상실한 후 톨레도를 수도로 삼았다. 서고트 왕국은 400년경부터 702년 사이에 톨레도 공의회를 18차례에 걸쳐 열었으며, 589년 3차 공의회에서는 레카레드 1세에 의해 아리우스파를 버리고 가톨릭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정되었다.711년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한 이슬람 제국이 기독교 왕국인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키고 이베리아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하면서 톨레도 역시 이슬람의 세력권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의 톨레도는 '툴레이툴라' 혹은 왕의 도시라는 뜻의 '마디낫 알 물르크(مدينة الملوك)'[5]라고 불리었다.
후우마이야 왕조(코르도바 칼리프국)의 치세에는 톨레도는 대 기독교 북부 전진 기지로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거점으로 여겨졌다. 1035년 후우마이야 왕조의 멸망 이후에는 베르베르계 바누 딜눈 가문이 톨레도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국인 톨레도 타이파를 세워 잠시 동안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했으나 1085년 레온-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6세가 톨레도를 점령하면서 최종적으로 기독교 세력으로 재편입되었다. 이후 북부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인 무라비트 왕조가 이베리아 남부를 재통일하는 와중에도 톨레도는 다시는 이슬람 세력권으로 넘어가지 않았으며 오히려 카스티야의 수도가 되면서 이베리아 기독교 세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스페인 통일 왕국의 수도로서 정치,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했지만 1561년 펠리페 2세가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김으로써 수도의 지위를 상실했다.
3. 특징
고대부터 품질 좋은 강철 생산과 도검 제작으로 유명했고 고대 로마 시대부터 중세 때까지도 톨레도산 검(劍)은 최고의 명품으로 호평받았다. 그 이유는 우선 톨레도에서 채광되는 철광석의 품위가 좋았던 점, 저탄소 강과 고탄소 강을 반복 접쇠하는 기술이 일찍부터 개발되어 우위를 점한 점[6], 강철의 최종적 품질을 결정짓는 열처리( 담금질/ 뜨임) 기술도 뛰어났고 무엇보다 그 공정들이 표준화되었던 점이다. 몇몇 소수 장인들의 감과 경험에 의존하는 것보다[7] 기술을 표준화하는 것이 품질의 상향 평준화에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단적인 예로 시계가 없던 시절에 담금질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담금질 시간에 박자가 맞춰진 표준화된 기도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워낙 심혈을 기울이다 보니 고급품은 전문 장인도 일 년에 두세 자루 정도씩밖에 만들지 못했다고.그러다 보니 자연히 톨레도산 강철은 명품이라는 이미지가 생겼고 그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제강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다. 잘 알려진 로마군의 글라디우스도 톨레도산 강철로 만들어졌고[8] 서고트인들과 무어인들이 오랫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이유들 중 하나도 톨레도 점령 이후부터 톨레도산 강철로 만들기 시작한 무기와 갑옷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훗날의 콩키스타도르들이 신대륙에서 압도적인 전력 차를 헤쳐 나가거나 오히려 정복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수급이 불안정한 화약 무기보다는 언제나 믿음직한 톨레도산 무구의 위력 덕이 더 컸다.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대부분 흑요석 무기를 사용했고 전금속제 무기는 사실상 본 적도 없어 강철 검의 대응법을 몰라서 검을 막을 만한 갑옷도 거의 입지 않았기 때문.
그 유명한 다마스쿠스 강조차도 방어구 분야에서는 톨레도 강을 대체할 수 없었던 정도다. 애당초 다마스쿠스 강이 개발된 이유도 톨레도 강 냉병기에 비견할 만한 강철검을 만들자는 것이었기도 하고. 톨레도 강에 비해 다마스쿠스 강은 전성과 연성이 떨어지며 경도가 너무 높아서 취성이 크다는 평을 받았다.
현재도 시 중심부에서 검과 철제 가공품을 생산하고 있다. 다만 이전과 달리 실전용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의 소품용 검을 만들어 낸다고.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세 종교의 유적지가 모두 남아 있다. 또한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 중세 가톨릭 성당, 이슬람 왕궁 등 여러 문화의 유적이 공존하는 여러모로 역사가 깊은 도시다. 고딕 양식 대성당들 가운데 가장 스페인적이라고 평가받는 이 도시의 대성당에는 엘 그레코, 프란시스코 데 고야, 반다이크 등 화가들의 그림들이 소장된 미술관도 있다.
서기 999년 이슬람 모스크(메스키타)로 지어진 이후 12세기에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된 바브 알 마르둠 모스크(Mezquita Bab al-Mardum)/크리스토 데라루즈(Cristo de la Luz, 빛의 예수) 성당. 성당으로 개조됐다 해도 내부에 가톨릭 예배당 하나 추가한 거 빼곤 내외적으로 바꾼 게 거의 없어서 안달루시아 이북 카스티야 지방에서 가장 잘 보존된 무슬림 통치기 유적으로 꼽힌다. 입장료는 3유로이나 만 25세 이하 대학생(학생증만 있으면 국적 불문), 미성년자, 노인은 무료 입장할 수 있다.
1986년 역사성과 문화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선정되었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4. 주요 명소
톨레도 알카사르(Alcázar de Toledo) |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통일 스페인 왕국의 첫 국왕이 된 카를로스 1세[9]가 낡고 오래된 요새를 개축할 것을 명해 1538년부터 1551년에 걸쳐 당시 최고의 건축가들을 동원해 왕궁으로 개축되었다. 그러나 장본인은 애초에 주 관심사가 유럽 대륙이라 평생 스페인 밖에서 전쟁이나 하러 돌아다니고, 아들 펠리페 2세가 완공된 지 불과 10년 만에 마드리드로 천도하면서 왕궁으로서 기능은 유명무실해졌다. 카를로스 시절만 하더라도 스페인은 중앙 집권화된 단일 국가가 아니라 덩치랑 위상은 가장 크다해도 실질적으론 유럽 전역에 걸쳐져 있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보편 제국 중 구성국에 가까웠는데[10], 펠리페 시절엔 합스부르크 제국 자체가 각각 스페인, 오스트리아를 기반으로 한 동서로 분리되고 스페인만의 단독 열강으로써 패권과 행정 체계를 쌓아가는 쪽으로 국정 운영의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전까진 법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던 영구적인 수도를 지정하게 되었다.
이 와중 톨레도는 아버지 시절 1520년엔 아예 합스부르크 가문이 카스티야 왕국을 상속하자마자 다시 상실하게 될 뻔했던 '코뮤네로 반란'의 중심지로서 혁명 진압 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도시 자치민과 지역 봉건 영주 세력이 있으니 오히려 그 전통과 역사가 새 왕조의 수도로선 부적합했다. 따라서 지리적으론 톨레도, 바야돌리드 같은 기존 카스티야의 대도시들과 가깝지만 동네 자체는 한적한 촌이라 토착 유지 세력이 약했던 마드리드가 신생 스페인 제국의 수도로 정해지고, 톨레도는 한동안 여전히 역사적 대도시로서 그 위상을 한순간에 잃지는 않았지만 나머지 카스티야 중부 고원 일대의 역사 도시 전반과 마찬가지로 수백 년간 이어질 인구 감소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화재, 나폴레옹 전쟁, 스페인 내전 등으로 파괴되었지만 1939년부터 1957년에 걸쳐 복구되었다. 현재는 군사 박물관 겸 인근 대학의 연구실/ 도서관 겸으로 사용되고 있다.
스페인 내전 초기 나머지 톨레도 지방과 시 전체는 공화파가 사수하고 당시 군구장 호세 모스카르도 휘하 프란시스코 프랑코파 쿠데타 반군은 이 알카사르 요새만 점령한 상태로 포위, 두 달간의 치열한 농성 끝에 나머지 국가군에게 포위망이 풀려 톨레도를 정복한 바가 있다.[11] 이 과정에서 알카사르는 공화파의 포격으로 거의 가루가 될 만큼 완파되었다가 전후 프랑코 정권의 프로파간다로 대대적으로 복구되었기 때문에 건물 자체의 건축학적 가치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단순한 전근대 역사뿐만 아니라 이런 스페인 근현대사의 격동의 현장이기도 했고 군사 박물관 내부 구성물과 영어 번역도 충실하기 때문에 스페인 역사에 관심 있는 여행객들은 필히 방문할 가치가 있다. 일반에게 공개된 구역 중 알카사르 최상층은 카스티야라만차 대학 도서관인데 일반에게도 공개되어 있다. 독서대에 앉아 창밖을 보면 타구스 강변에 지어진 중세 보, 성벽 구조물들과 산 마르틴 대교가 장관이긴 한데 자리가 좀 부족해서 넋 놓고 구경하다 보면 실제로 공부해야 하는 현지 학생이 눈치를 줄 수도 있다. 책가방 메고 스페인 어디서나 넘쳐나는 에라스무스 교환학생인 척하고 당당하게 구경하자. 어차피 스페인 현지 학생들도 그 자리에 가방만 던져놓고 공부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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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코도베르 광장(Plaza Zocodover)
무슬림 통치기 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톨레도 시의 중심 광장(plaza mayor). 16세기 초반 르네상스 양식으로 대대적으로 재건축한 이후 지금도 스페인을 대표하는 르네상스 양식 중심광장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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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대성당(Catedral de Toledo)
연혁은 바로 그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시절 벨리사리우스 장군 아래, 서로마 멸망 이후 서고트 왕국 설립 이전 100년도 안되는 비교적 짦은 시간 동로마 제국이 히스파니아를 수복했던 6세기까지 올라가는 이베리아 전체에서 가장 유서 깊고 중요한 성당 중 하나이다. 톨레도 대주교좌는 현대 가톨릭 교회에서 실권은 딱히 다른 주교에 비해 특출나진 않지만 어쨋든 의전, 명목상으론 해당 국가 주교단의 최상석인 히스파니아(중세 초기에 만들어진 교구인 만큼 포르투갈도 포함) 수석주교(primate) 자리이기도 하다. 13세기에 본격적으로 공사에 들어가 16세기 르네상스의 전성기 때 대대적 확충을 하며 고딕, 초기 르네상스, 후기 르네상스, 무데하르, 바로크, 로코코 양식 모두 보여주며, 당장 그 유명한 엘 그레코를 시작으로 루카스 호르단, 클라우디오 코에요, 후안 데 보르고냐, 호세 데 추리게라, 나르시사 토메 등 각 시대별 양식을 대표하는 스페인 예술사 올스타급 예술가들이 한번쯤 거쳐간 스페인 최고의 대성당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서고트 왕국 시절 도입되어 이슬람 지배 시기 계속 보존, 발전되어 교황청의 허가를 받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옛 히스파노- 모사라베 예법 미사가 매일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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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 델 라 루스, 토르네리아 메스키타(Mezquita Cristo de la Luz, de las Tornerías)
각각 10세기, 11세기에 건설된 이슬람 모스크로, 무어인들 본진이었던 안달루시아 지방 이북에선 아라곤 일대의 이슬람 유적과 더불어 가장 잘 보존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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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라 블랑카, 델 트란시토
시나고그(Sinagoga de Santa María la Blanca, del Tránsito)
상술한 모스크들과 비슷한 시기 건설되어 중세 후기에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된 유대교 예배당으로 중세 이베리아 세파르딤 유대인 문화의 대표적인 유산 중 하나. 현대에는 세파르딤 유대인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근처에선 전통 톨레도식 금은 세공으로 만든 하누카용 촛대 같은 유대교 관련 기념품들을 많이 판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역사가 오래된 이베리아 반도 대도시들은 웬만한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톨레도의 경우 스페인 기준으로도 이런 중세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어 '세 종교가 같이 번영했던 도시'라 불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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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 생가(Casa-museo del Greco)
성벽 안 구시가지 동서쪽 구석에 있는 박물관 겸 미술관인데, 사실 진짜 엘 그레코 생가는 아니고 두세 집쯤 떨어져 있는 다른 귀족의 집이었지만 16세기 당시 주거 양식과 비종교적, 비정치적 일상 건축을 잘 보존한 건축학적 가치도 겸해 얼떨결에 생가 아닌 생가가 박물관으로 지정되었다. 안에는 12사도 초상화, 톨레도 풍경화 등 엘 그레코의 걸작 다수와 동시기 다른 작가들의 작품, 아버지를 열심히 따라하려고 한 흔적은 보이지만 퀄리티는 영 못 미치는 엘 그레코 아들의 작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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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 토메(성 토마스) 성당(Iglesia de Santo Tomé)
엘 그레코 최대, 최고의 걸작인 오르가스 공작의 매장 벽화가 그려진 성당이다. 벽화는 확실히 걸작이긴 하지만 딱히 미술사에 큰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거대 단일 예술품들이 그렇듯이 벽화 하나 본다고 10유로에 육박하는 입장료를 내는 게 창렬하다고 느낄 수도 있으니 유의. 물론 성당 자체로도 훌륭한 중세 카스티야 성당 건축물의 전형을 보여주는 유적지이긴 하지만 이렇게 역사가 오래된 성당 자체야 스페인 내에서도 꼽아주는 역사도시인 톨레도에선 널렸고, 다른 엘 그레코의 작품들을 보려면 상술한 생가 박물관과 골목 몇 개만 돌아 걸어서 5분거리인 산토 도밍고 엘 안티고 수도원에 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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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도 성벽(Las murallas de Toledo)
유럽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중세 성벽 도시인 이웃 카스티야이레온 주의 아빌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톨레도도 중세 구시가지 성벽 구간 다수가 큰 훼손 없이 비교적 잘 보존된 편이다. 구시가지 외곽 걸어서 30분 가량, 차타고 5분 거리쯤 되는 언덕 위에 있는 인근 전망대(parador)에서 보면 일부 구간은 맨 아랫부분의 큼지막한 벽돌로 구성된 로마 시대 구조물, 그 위 작고 촘촘한 벽돌로 이루어진 이슬람 시대 구조물, 그리고 맨 위에 재정복 후 카스티야 왕국 시절 지은 부분 등 각 층마다 톨레도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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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트족 역사 문화 박물관(Museo de los Concilios y de la Cultura Visigoda)
서로마 멸망 이후, 이슬람 정복 이전 톨레도를 수도 삼아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던 서고트 왕국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는데, 기록은 별로 남기지 않았지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수공예 기술을 가졌던 문명인 만큼 전시품의 퀄리티도 상당히 높다. 박물관이 소재한 산 로만 성당 건물 자체도 12세기까지 올라가고 르네상스 시기 대대적으로 재건축하며 조각가 알론소 데 코바루비아스 작 중앙 제대 부조물을 비롯해 유명 예술가들이 참여한 가치 높은 건축 문화재이다.
-
플라이 톨레도(Fly Toledo)
이름에서도 느꼈겠지만 지금까지 설명한 역사 유적 관광지와는 성격이 다른 여행지이며,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짚라인 어드벤처. 짚라인을 타며 내려다 보는 톨레도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둘째 치고 꽤 무섭다. 스릴을 즐기는 여행객이라면 방문해 보자.
5. 여담
미국의 이리 호 서부, 디트로이트 남쪽에 동명의 도시가 위치한다.[12] 지명의 유래는 스페인의 톨레도. 다만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없다. 그래도 인구가 280,000명에 달하고 유리 공업으로 명성이 있는 중규모 공업 도시다.자연 그늘 같은 게 없고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을 그대로 맞는 이베리아 메세타 중부 고원에서도 위도가 높은 편에 속한지라 스페인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덥고 건조한 도시 중 하나이다. 특히 문화 유적들이 집중적으로 모인 구시가지는 산성 위에 지어진 도시 전체가 언덕길이라 햇빛 쨍쨍한 여름날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관광하다 보면 열사병 먹고 훅 쓰러지기에 딱 좋다. 햇빛을 가려줄 모자, 선스크린 같은 자외선 차단 도구와 얼음물, 부채, 손선풍기 같은 걸 꼭 챙기고 중간중간에 휴식하면서 관광하자.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5]
مدينة(madina) = city, ملوك(muluk) = king
[6]
접쇠 하면 흔히
일본도의 타마하가네나 패턴-웰디드
다마스쿠스 강이 유명하지만 기록상으로 접쇠 공법을 최초로 도입한 것은 톨레도산 강철이다. 고대
로마군의
글라디우스 제작에도 접쇠 공법이 쓰였다. 그나마 일본도는
사철의 조악한 품질 때문에 어느 정도는 고육지책으로 택한 것.
[7]
장인 정신으로 유명한 전통
일본도는 겉으로 보이는 예술성은 뛰어날지언정 실제 성능은 명성에 못 미쳤다. 통일 이후부터 소수의 명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술을 도입했으며, 전쟁도 일어나지 않아 쇠퇴하였다. 차라리 근대 기술을 사용해 공장에서 찍어낸
95식 부사관도 같은 것이 실제 성능은 비교도 안 되게 좋았다.
[8]
원래 이름이 글라디우스 히스파니엔시스(gladius hispaniensis)로 '스페인 검'을 의미했다.
[9]
엄밀하게 따지면 아버지인 미남공
펠리페 1세가 최초의 합스부르크 출신 스페인 왕이지만 워낙 단명한 관계로 실질적으론 카를로스 1세로 본다.
[10]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페인 그 자체도 마치
냉전 시절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편의상 계속 '
러시아'라 부른 것처럼 포괄적인 국방, 외교만 빼곤 실질적으로나 명목상으로나 다른 나라였던 카스티야와
아라곤을 합쳐서 편의상 부르는 이름에 가까웠다. 실제로 '에스파냐 군주정(monarquía hispánica)' 소속 개별 왕국들이 법적으로 '스페인 왕국(Reino de España)'이란 하나의 단일 국가로 묶인 건 18세기
보르본 왕조 시절 일이고, 이 시기 공문서들이나 서적들을 보면 주로 비정치적인 문맥에선
포르투갈도 '스페인'의 범주에 종종 묶였다가 빠졌다가 한다. 동시대인들도 정치적인 의미로서 포르투갈은 엄연한 주권을 가진 독립국이라고 당연히 인식했지만
지리학적 의미, 특히 가톨릭 교구상으론 여전히 '히스파니아'는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의미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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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일어난 알카사르 (요새) 인질 협박 사건이 유명한데, 알카사르에 고립되어 치안대와 사관생도들을 이끌고 농성하던 모스카르도 대령에게 공화군이 "항복하지 않으면 당신의 아들을 처형하겠다"고 협박했다. 모스카르도 대령은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에서 "사랑하는 내 아들아, 사나이라면 주님께 영혼을 맡기고 '그리스도 왕 만세, 스페인 만세!'를 외치며 애국자로서 당당히 죽거라"라고 작별인사를 했고, 아들 루이스 역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후 루이스는 바로 처형됐다고도 하고, 국민파의 폭격에 대한 보복으로 처형되었다고도 한다. 아무튼 이 사건은 숭고한 미담으로서 국민군을 단결시키는 상징이 되었으며, 프랑코 사후에도 '벙커파'라고 불린 친프랑코 강경파들이 펴낸 잡지 이름이 '알카사르'였을 만큼 당시 우파의 상징 역할을 톡톡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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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은 주로 '톨리도'로 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