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1:17:52

테일후크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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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 심슨의 주요 대사[1]로 패러디한 테일후크 스캔들.


이 사건을 되돌아보는 뉴욕 타임스 레트로리포트 특집기사.

1. 개요2. 사건 내막3. 정리4. 제러미 마이클 보더 제독의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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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he Tailhook Scandal

1991년 9월에 일어난 미 해군항공대 조종사들의 집단 성폭행 사건과 그것을 무마하려고 해군 장성들이 일으킨 여러 스캔들을 부르는 용어.

테일후크(tailhook, arresting hook)는 함재기 후미에 달린 항공모함에 착함할 때 어레스팅 와이어를 잡아주는 장치인데 이 말이 해군/해병 조종장교들의 친목조직인 테일후크 심포지엄으로 이어진다. 해군참모총장과 문민 해군장관도 자주 모임에 참석할 정도로 해군에서는 유명한 모임이었다.

사막의 폭풍 작전이 공군/해군/해병 항공전력의 맹활약으로 성황리에 막을 내리자 1991년 1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Tailhook `91이 열렸다.

2. 사건 내막

당시 모임에는 프랭크 켈소 해군참모총장과 헨리 로런스 개럿 해군장관도 참석해서 해군 항공대 장교들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한 여군이 나서더니 "여성도 전투기 타면 안 됩니까? 전투임무 뛰면 안 됩니까?"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돌직구를 맞은 리처드 던리비 중장[2]은 머뭇거리더니 유야무야 넘어가기만 했다.

그리고 그날 밤 힐튼 호텔 3층의 파티에서는 해군 조종사들[3]이 83명의 여성과 7명의 남성을 성추행 및 성폭행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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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83인의 여성 중 한 사람이 바로 폴라 코플린 대위(LT. Paula Coughlin)인데 해군 항공대 전투조종사인 아버지를 동경하며 자랐기 때문에 해군 전투조종사의 멋진 모습에 반하여 평생의 목표를 전투기 조종사로 삼았지만 " 여군은 전투기 태우지 않는다"는 미 공군/ 미 해군 장성들의 성차별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전투기의 로망을 접고 헬리콥터 조종사로 진로를 바꿔야 했다. 그녀는 무심코 3층으로 올라갔다가 술취한 남군들의 곤틀릿[5]을 마주했고 집단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서 자신을 더듬던 놈을 깨물고 상관에게로 도망가서 이 사건을 털어놓았지만 상관은 "네가 꽐라 조종사들 옆에 간 게 잘못이지"라는 말로 일축했다. 명색이 전속부관이었던 코플린은 상관[6]에게 철저히 배신당했다.

이 사건은 수사가 되기는 했지만 결국 코플린 대위가 가해자를 제대로 지목하지 못한다는 등[7]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끝내 수사는 흐지부지되었다. (외부에 알려진 국방부 조사 문건)

그 무렵 해군부 인적자원차장[8]을 지내던 사람은 바버라 포프(Barbara Spyridon Pope)였는데 초기 진상조사를 담당했던 듀벌 맷 윌리엄스 소장과 존 고든 해군법무감이 부실수사를 했다는 것을 간파하고 윌리엄스 제독을 불렀지만 윌리엄스 제독은 "해군 항공대 기집애들은 다들 창녀들인 걸 모르슈?"[9]라고 성차별적이고 모욕적인 언사로 대들었다. 포프가 여성이라는 점도 그런 불손한 태도의 큰 이유였으며 윌리엄스 제독은 당시 NCIS의 전신인 NIS 국장이었다. 국장이란 자가 이딴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으니 수사가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고 결국 바버라 포프는 말로 해서 안 되겠다고 여기고 국방부에 이 사건을 고발했으며 상관에게 배신당한 코플린 대위가 해군 하정복을 입고 지상파 전국방송에 출연하여 이 사건의 진상을 폭로하였다. 이후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딕 체니 국방장관[10]은 개럿 해군장관을 경질하고 무관용 원칙과 철저한 수사를 강조했다. 신임 해군장관 숀 오키프[11]는 해군 내 대대적인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고 장교단의 음주모임도 금지했으며 여성의 전투함 승선과 전투기 탑승이 가능한지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그 결과 여성들의 전투함, 전투기 탑승이 허용되었다. 이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받아들여지던 것이 1990년대 초반 미국의 현실이었다. 덕분에 코플린 대위와 포프 차장은 전미 여군들의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남군들의 반응은 배신자 취급이었다. 어쨌든 결국 미군은 여군의 전투함 승선을 허락한 해군뿐만 아니라 공군에서도 여군 전투조종사를 배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과 전혀 별개로 성폭력 실태 조사와 NIS의 수사는 뜨뜻미지근할 뿐이었다.[12] 미 해군은 1992년 여름 전미를 들썩인 이 스캔들로 4,500명 이상의 해군 진급 대상자들의 인사가 전면 보류되는 등 큰 홍역을 치렀고 그 과정에서 테일후크에 참여하던 14명의 제독을 포함[13]하여 수많은 장교들이 옷을 벗기는 했지만 법적 처벌은 없었다. 반면 이 사태를 폭로한 코플린 대위는 군생활이 끝장나서 테일후크로부터 500만 달러를 위로금 명목으로 받은 채 군복을 벗어야 했고 다른 피해자들도 오래 지나지 않아 반 강제로 예편되었다. 이렇게 군내 성폭력은 계속 이어졌으며 급기야 2003년에는 미국공군사관학교에서도 생도 간 성폭행 사건이 벌어지면서 라이벌 해군을 신나게 조롱하던 공군마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공군 쪽은 여군의 비율이 타군보다 높은 편이어서 더 큰 논란이 되었지만 역시 유야무야 잊혀졌다.

3. 정리

사실 해군 측에서는 항변하는 의견도 없지 않다. 1990년, 1989년 등 이전의 테일후크 모임은 더 추잡한 모임들도 많았는데[14] 괜히 1991년 참석자들만 앞뒤 가리지도 않고 무조건적으로 불이익을 당했다는 것이다.[15] 물론 그것이 1991년 테일후크 심포지엄 참석자들이 힐튼 호텔에서 저지른 만행을 덮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억울하게 예편당한 테일후크 참석 남성 장교들의 사연은 지금까지도 성범죄 피해 여군들을 비난하려는 적폐 세력의 물타기에 쓰이곤 한다. 조종사들에게 유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지만[16] 미 해군이 진행한 항공장교단 숙청을 군 전력 약화가 우려된다며 비판하는 이들이 전부 해군력의 약화를 걱정하는 순수한 의도를 가졌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미군이 법적 판단과 무관하게 해군 최고의 전투요원인 조종사들을 숙청하고 제 살을 찢고 뼈를 깎으면서까지 이 사건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받을 만도 하다.[17] 이 사건은 성별을 막론하고 조국에 몸과 마음을 바친 이들에게 배신감만을 안겨준 사건이며 군대라는 조직이 얼마나 폐쇄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받으며 21세기에도 미군, 그리고 세계 각국의 군대에서 성폭력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회자되는 사건으로 남았다.

테일후크 심포지엄은 이 사건 이후에는 해군청 최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등의 위상은 잃었지만 아직까지도 해군과는 공식적으로 무관한 비영리단체로서 해군 항공대의 현역/예비역 전우회, 연구회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 해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가운데 해양에서의 항공력이 해양력에 미치는 영향과 전술 연구, 역사 등등 여전히 군사전문가들이 솔깃할 만한 담론이 꽤나 나오기는 하는 편[1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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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 코플린은 사건 이후 "Protect Our Defenders"[19]라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군내 성폭력 사건의 정식 기소와 유죄 평결을 부르짖고 있지만 2014년에 여성 4성 장군/제독이 처음으로 배출되었는데도[20] 그 목소리는 작기만 하다. 폴라 코플린도 해군의 비난과 극딜을 못 견디고 결혼한 뒤에는 남편의 성인 Puopolo를 쓰고 있다.

한편으로 이 사건은 조지 H. W. 부시의 재선 실패에도 작게나마 영향을 끼쳤다. 아버지 부시는 태평양 전쟁에서 미 해군 항공대의 TBF(M) 어벤저 뇌격기 조종사로 사선을 넘나들었던 참전용사인데 그런 부시의 후배들이 이런 추태를 부려 놨으니 이력에도 흠집이 갈 수밖에... 결국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에게 패배한 부시 이후 미국에서 해군 출신 대통령은 나오지 않고 있다.[21][22]

4. 제러미 마이클 보더 제독의 자살

테일후크 `91 당시의 켈소 해군참모총장의 뒤를 이은 후임 총장 제러미 마이클 보더(Jeremy Michael Boorda) 대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해군의 개혁을 추진하려는 빌 클린턴 행정부의 인사로 보임된 인물이었지만 수많은 제독들이 옷을 벗는 꼴을 보던 해군 항공대 장교단은 정신을 못 차렸는지 보더 제독에게 집단괴롭힘 기수열외를 시전했으며 보더 제독이 미 해군의 지상타격 능력이 지나치게 해군 항공대에 의존하고 있다고 판단해 아스널쉽 계획을 수립하자 해군 항공대측의 적대행위도 점점 심해졌다.

보더 제독이 고급 장교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미국해군사관학교 ROTC, 대졸 출신 OCS( 학사장교)가 아닌 수병 출신 OCS( 간부사관)라는 점[23]도 홀대당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게다가 당시 해군참모차장이자 항공병과장이었던 스탠 아서 대장[24] 통합군 태평양사령관으로 내정되었다가 미네소타 연방 상원의원 데이브 듀런버거가 이를 격렬히 반대[25]하고 아서 대장이 참모차장이라는 어정쩡한 위치[26]에서 퇴역을 선택하는 소동까지 벌어지자 해군 항공대는 이를 정치적 탄압으로 여기고 보더 제독을 공격했다.

찾다찾다 그나마 찾은 까일거리 하나는 보더 제독이 차고다니던 V핀이었다. 해군 항공대는 일부러 거짓 약장을 패용한다고 뉴스에 뻥튀기하여 제보하고 가벼운 홍역으로 취급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를 엄청난 부도덕한 행위인 것처럼 언론에 과장되게 제보했으며 기수열외와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 해군 제독들로 인해 보더 제독은 엄청난 압박에 시달렸다. 여기서 말한 약장 패용이란 정복에 다는 약장 중 베트남 전쟁 참전기장에 다는 '컴뱃 V' 또는 V핀이라고 불리는 추가기장을 뜻한다. V핀은 실전을 겪은 사람만 추가로 달 수 있는 것이었다. 보더 제독은 참전은 했지만 실제 전투를 겪지는 않아 원칙적으로는 V핀을 달 수 없었지만 당시 상관의 허락이 있었기 때문에 V핀을 달아도 되는 줄 알고 있었다.

보더 제독은 구축함 병기장교였던 시절 다낭에 고립된 미해병대 병력들을 위해 함포지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수상에서의 지상화력지원이 지상군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스널쉽 도입을 주장했다. 다만 이게 V핀 패용자격이 되지는 않았는데 이유는 그가 탑승한 구축함이 적의 함포나 미사일을 맞지 않아 전투한 것이 아니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지적 때문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보더 제독이 실시한 함포타격 덕분에 고립된 해병대원들이 무사히 다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즉, 엄밀히 말하자면 해군 조종사들의 주장처럼 실전을 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물론 사정이 어쨌든 규정을 어긴 것 자체는 사실이므로 군인의 명예와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동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하급자가 상급자를 기수열외하는 것은 더욱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단순히 솔직하게 전말을 밝히고 사과하면 되는 일을 그들은 해군의 이미지를 깎아 가면서까지 어떻게든 보더 제독을 끌어내리려고 했다.

결국 보더 제독은 이런 압박과 회의감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권총을 가슴에 쏘아 자살하고 말았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엘모 줌왈트 제독도 보더 제독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이 일에 대해 통탄하며 자신이 이를 알았다면 당연히 V핀을 허락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후임 참모총장은 F-14 조종사 출신의 제이 L. 존슨 참모차장이 내정되었고 결국 보더, 나아가 빌 클린턴의 해군 개혁시도는 끝장나고 말았다. 다만 테일후크 스캔들로 인해 조종사가 하도 많이 썰려나갔을 뿐더러 해군 항공대의 도를 넘은 기수열외와 집단 괴롭힘으로 인해 항공병과 출신 제독을 참모총장에 내정하는 것을 기피하는 풍조가 생김에 따라 제이 존슨 이후 참모총장직에 항공병과 출신 제독이 내정되는 사례는 나오지 않고 있다.[27] 통합군사령관이라든지 다른 보직에서는 꾸준히 4성까지 다는 이들이 나오고 있지만 해군의 모든 것을 휘어잡았던 냉전 시대의 우렁찬 목소리는 크게 작아졌다.

하비 와인스틴 성범죄 파문을 계기로 미국에서 20여년 전의 이 사건이 재조명받았다. 한국에서는 2016년 문화계 성추문 폭로 사건이나 폐쇄적인 조직 내의 피해 당사자인 서지현 검사가 방송에서 직접 폭로한 검찰청 내부 성추문과도 비교할 수 있다. 2010년대 후반의 이 성폭력 사건과 차이점이 있다면 그 시절에는 여군들의 피해 고백과 당사자 고발이 조직적인 미투 운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1] 첫 등장은 시즌 1 6화 'Moaning Lisa' [2] 이 해의 심포지엄 주최인원 중 최선임이었다. [3] 이 성폭행 가해자들 중에는 여군도 있었다고 한다. [4] 이들 중에는 다른 해군/해병들의 가족들도 있었다. [5] 전쟁포로 등에게 이열종대 사이를 뛰어가게 하고 뛰어가는 동안 온갖 집단폭행을 가하는 형벌인데 오늘날에도 각종 가혹행위에서 간혹 쓰인다. 코플린에 대한 성추행을 목격한 연방 공무원의 증언에 의하면 코플린이 등장하는 순간 누군가가 "전속부관 납신다!"며 냅다 소리지르더니 100여 명이 코플린을 둘러싸고 있었다고 한다. [6] 파투센트 해군 시험비행센터장 존 스나이더(John W. Snyder) 소장. 이 사람도 사건 수습 과정에서 인사 조치되었다. [7] 직간접적 가해자가 100여 명이며 혼란스런 상황에서 일일이 다 기억하기는 어려운 게 당연하다. 결국 사건 은폐를 위해 피해자의 진술을 깎아내렸다. [8] Assistant Secretary of the Navy (Manpower and Reserve Affairs) [9] 전혀 과장된 번역이 아니다. "a lot of female Navy pilots are go-go dancers, topless dancers or hookers.". [10] 훗날 조지 워커 부시의 러닝메이트가 되는 그 딕 체니 맞다. 아버지 부시 시절에는 국방장관을 지냈다. [11] 전문경영인이다. 해군장관으로는 좀 짧게 근무(아버지 부시의 퇴임과 동시에 교체)했지만 짧은 기간에 나름대로 의미 있는 개혁조치를 시행했고 후일 아들 부시가 NASA의 국장에 임명했지만 나중에 STS-107 컬럼비아 우주왕복선 폭발 사건으로 테일후크 못지 않은 흑역사를 겪게 되었으며 STS-107 이후 안전을 중시한답시고 허블 우주 망원경 서비스 계획을 국장 직권으로 백지화하려고 했다가 전세계 천문학자들의 반발에 사퇴했다. [12] 이 사건으로 인해 NIS는 해체 후 NCIS로 재편되었다. [13] 이들 중에는 리처드 던리비(Richard Dunleavy)처럼 중장이 소장으로 강등되어 퇴역하는 불명예 제대도 있었다. 큰 상관은 없는 이야기지만 견책을 당한 이들 중에는 9.11 테러에서 목숨을 잃은 제독도 있다. [14] 미 해군 항공대 경력의 우주비행사 스콧 켈리의 회고록에 의하면 호텔 룸 사이 벽을 전기톱으로 썰어서 스위트룸을 만들려던 괴이한 기행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비록 성폭력을 목격한 일은 없었지만 해군 조종사들의 추태를 보고도 앞장서 바꾸지 않고 방관한 것을 반성한다고 회고했다. [15] 예를 들어 해군 곡예비행단 블루 에인절스 지휘관이었던 밥 스텀프(Bob Stumpf) 중령은 이 사건에서 비행대 최선임 자격으로 테일후크 심포지엄에 참석했다가 다섯 달 동안 비행대대장에서 직위해제된 채 지옥 같은 투쟁을 벌여서야 힐튼 호텔에서의 성폭력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벗었다. 1996년에 테일후크에게서 위로조의 상을 받긴 했지만 군에서는 결국 제독은커녕 대령도 못 달고 FedEx로 이직해야 했다. #, ## [16] 애초에 감방 간 사람도 없다. [17] 항공 전력에서 최중요 전력은 예나 지금이나 전투기가 아니라 파일럿이다. 격추당한 파일럿 하나 구하려고 구조 전문 특수부대까지 투입하는 군대에서 파일럿 집단을 '숙청'하는 것은 보통의 조치가 아니다. [18] 일례로 2017년 9월 테일후크 심포지엄에서 공개된 F/A-18E 수퍼호넷으로 시리아 정부군 Su-22를 격추한 실제 조종사의 이야기가 널리 퍼지기도 했다. 스푸트니크뉴스, TheDrive.com, 디시인사이드 글 그도 그럴 것이 미 해군 항공대가 적기와 공중전을 벌여 격추시킨 걸프 전쟁 이후 최초의 사례였으니... [19] 군인들을 우리도 지켜줘야 한다는 뜻이다. [20] 육/공에서 4성 장군이 배출된 것에 이어 해군에서도 미셸 하워드 제독이 2014년 7월 1일에 대장으로 진급했다. [21] 아들 부시는 공군 조종사 출신이었다. [22] 다만 미합중국 육군 로널드 레이건 이후 배출한 대통령이 없다. [23] OCS/OTS는 직역하면 사관후보생으로 한국군에서는 OCS/OTS가 학사장교만을 가리키지만 미군은 병이나 부사관, 준사관으로 3년 이상 복무한 현역 장병은 고졸 학력이라도 OCS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데 한국군의 간부사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단 한국군 간부사관은 전문학사 이상에 해당하는 학력이 요건이다. [24] 그냥 항공병과 최선임도 아니고 베트남 전쟁에서 A-4 스카이호크 조종사로 맹활약하면서 미군 비행무공훈장을 역대 두 번째로 많이 받은(총 11회)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이었다. 역대 1위는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에서 맹활약하면서 통산 13회를 수상한 미 공군 에이스 프랜시스 '개비' 가브레스키 대령. [25] 코플린 대위와 마찬가지로 테일후크에서 성폭력을 당한 前 해군 헬리콥터 조종견습 레베카 핸슨 중위(LTJG Rebecca Hansen)는 미니애폴리스 거주자였는데 테일후크 가담자였던 스탠 아서 제독의 태평양사령관 영전 소식을 접하고 듀런버거 상원의원에게 호소하여 듀런버거 상원의원은 스탠 아서의 태평양사령관 보임을 끝끝내 철회시켰다. [26] 보통 해군참모차장은 해군의 2인자로 인정은 받지만 실권이 생각보다 크지 않은 자리라 이후 통합군사령관 등으로 영전하곤 한다. [27] 그래서 F/A-18 조종 경력의 해군참모총장은 없다. 오히려 해병 조종사 출신의 제임스 에이머스가 해병대사령관을 지내면서 해병대에서 먼저 호넷 조종사 출신 수장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