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22:21:30

튀르키예-쿠르드 관계

터키-쿠르드 관계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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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쿠르드
1. 개요2. 상세3. 문화 교류4. 관련문서

[clearfix]

1. 개요

전통적으로 쿠르드족은 튀르키예 내에서 자치권과 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해 왔다. 특히 PKK(쿠르드 노동자당)와 같은 일부 조직은 튀르키예 동남부 지역에서 자치권을 요구하며 오랫동안 튀르키예 정부와 갈등을 빚어왔다. 반면, 튀르키예 정부는 쿠르드족이 튀르키예의 사회와 국가 체계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으며, 자치권 요구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쿠르드족에 대한 제한적인 문화적, 언어적 권리 확대가 시도되었으나, 정치적 자치권이나 독립에 대한 요구는 여전히 민감한 문제로 남아 있다. 튀르키예 정부는 쿠르드족 분리주의 세력의 활동을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이를 강경하게 단속하고 있으며, 이런 맥락에서 양측의 갈등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2. 상세

  • 쿠르드족에 대한 이해
    쿠르드족은 튀르키예, 이란, 시리아를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존재해온 민족으로 특히 시리아 북부는 쿠르드족의 전통적인 밀집거주지이다. 쿠르드족은 민족적 자부심이 매우 강하고 고유한 민족적 정체성과 언어,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랍 민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시리아나 튀르크어를 쓰는 튀르키예 사회에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 14세기~15세기 초기 오스만 제국
    오스만 제국이 확장하면서 쿠르드족은 제국의 일부로 통합되었으나, 여전히 그들만의 자치적인 특성을 유지했다. 쿠르드족은 부족 중심의 사회로, 전통적으로 지역적인 지도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중앙집권적 통치에 완전히 순응하지 않았다.
  • 16세기 오스만 제국
    16세기 오스만 제국은 몇몇 쿠르드 지역에 쿠르드 왕국과 부족 지도자 선출을 허용했다. 디야르바크르(Diyarbakir)와 헥키리(Hakkari)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 있지만, 사실상 쿠르드족 지도자들이 자치적인 통치를 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 오스만 제국은 쿠르드족의 자치를 어느 정도 허용하며 제국 내의 질서를 유지하려 했다.
  • 17세기~18세기 쿠드르족의 반란
    16세기까지 오스만 제국은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유지했으나, 17세기부터 유럽 강대국들과의 군사적 충돌로 제국의 정치적, 군사적 힘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제국의 경제적 위기와 부패 등으로 인해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이로 인해 지방의 쿠르드족 지도자들이 중앙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특히 세금 부담, 기근, 부패한 지방 관리 등으로 인해 일반 민중은 고통을 겪었고, 쿠르드 지역에서 사회적 불만이 쌓여갔다. 쿠르드 지도자들은 이를 이용해 반란을 일으키거나 자치권을 넘어 더 큰 권력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 19세기 쿠르드족의 반란
    19세기에는 근대화와 오스만 제국 쇠퇴의 시기였고, 이를 틈타 쿠르드족은 독립적인 국가를 세우기 위한 여러 차례 시도를 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반란 중 하나는 야자르 반란(Yezidi Rebellion)으로, 야지디족의 지도자들이 주도했지만, 이 반란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쿠르드족이다. 이들은 자치권을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켰으나 오스만 제국군은 즉각적인 군사적 대응으로 반란을 진압했다.
  • 1923년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튀르키예 공화국 설립
    1차 세계 대전 패배로 세브르 조약과 로잔 조약을 통해 오스만 제국은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비롯해 15개 이상의 국가로 쪼개진다. 오스만 제국의 가장 실질적인 후예국이라 할 수 있는 튀르키예는 1차 세계대전의 패배 여파로 이 시기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혼란 속에 있었다.
  • 1925년 셰이크 사이드 반란
    1차 세계대전 직후 튀르키예 신생 공화국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셰이크 사이드(Şeyh Said)라는 쿠르드 지도자가 쿠르드족의 독립을 목표로 튀르키예 동남부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은 광범위하게 퍼졌지만, 결국 튀르키예 군에 의해 강력히 진압되었다.
  • 1940년대 튀르키예 공화국의 쿠르드어 사용 제한
    1940년대 초반, 튀르키예 공화국은 여전히 아타튀르크의 세속적, 중앙집권적 개혁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었다. 쿠르드족의 자치나 민족적 요구는 억압의 대상이었으며, 쿠르드 민족주의 활동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제재를 가했다. 이 시기 쿠르드어 사용은 금지되었고, 쿠르드 민족주의 운동은 국가의 단일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간주되어 탄압받았다.
  • 1946년 프랑스로부터 시리아 독립
    독립 이후 시리아는 아랍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정치 체제를 구축했고, 시리아 정부는 쿠르드족을 소수 민족으로 간주하며 그들의 자치 요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 1950년대 튀르키예 민주당 정부 등장
    튀르키예 내 단일 정당 체제가 무너지고 다당제 체제로 전환하면서 튀르키예는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졌다. 그러나 여전히 쿠르드족의 자치권 보장 요구에 대한 억압은 계속되었다.
  • 1960년 시리아 정부의 쿠르드족 억압
    1962년 전국민 인구조사를 통해 시리아 정부는 30만 명이 넘는 쿠르드족의 국적을 박탈하였고, 그들은 무국적자로 분류되었다. 이 사건은 쿠르드족에게 큰 불만을 일으켰고, 이후 쿠르드족은 시리아 정부에 대한 반감이 더욱 심화되었다.
  • 1970년 시리아 정부의 아랍화 정책 실시로 더욱 더 커진 쿠르드족의 반감
    아사드 정권은 1970년 권력을 잡은 이후, 쿠르드족 지역에 대한 아랍화 정책을 강화했다. 이는 쿠르드족의 문화와 언어를 통제하고, 아랍인들을 시리아 북부로 이주를 독려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쿠르드족은 자치권이나 민족적 자아를 인정받지 못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쿠르드족의 무장 활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다만 당시에는 지금의 YPG(인민수비대)처럼 조직된 형태보다는 지역적인 소규모 저항 형태로 나타났다.
  • 평야 위주의 시리아 북부, 산악 지형이 많은 튀르키예 남동부
    시리아 북부는 주로 도시와 농촌 지역이 많아 산악 지형과는 달리 게릴라 전술에 적합하지 않다. 반면,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은 산악 지형을 포함하고 있어 게릴라 전술을 펼치기에 훨씬 유리한 환경이다.
  • 1978년 PKK(쿠르드노동자당) 설립
    PKK는 1978년에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에 의해 설립되었다. PKK의 목표는 쿠르드족의 자치와 독립을 추구하며, 쿠르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치적 활동을 펼쳤다. 초기에는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나, 1984년부터 본격적으로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조금씩 세력을 불려나가며 무장 투쟁을 시작한다.
  • 1980년 튀르키예 군사 쿠데타
    PKK가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세력을 점차 불려나갈 시기에 튀르키예는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1980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되었고, 튀르키예 정부는 튀르키예 남동부 산악지형에서 게릴라식으로 치고 빠지는 PKK를 효과적으로 제압하지 못했다. PKK의 궁극적인 목표는 튀르키예 남동부와 시리아 북부를 기반으로 쿠르드족 독립국을 건설하는 것이며, 최소한 쿠르드족의 자치권 확대와 민족적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다.
  • 1984년 PKK의 본격적인 무장 투쟁 시작 및 확산, 시리아와 튀르키예 간의 연계
    1984년, PKK는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무장 투쟁을 시작했다. 시리아 북부에서 활동을 계속하면서 튀르키예 남동부로의 활동을 확장했으며, 시리아와 튀르키예 사이의 국경 지역에서 무장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PKK는 튀르키예 남동부의 쿠르드족 지역에서 활동을 강화하면서 민족주의적 주장을 확산시켰고, 동시에 시리아의 쿠르드족과 협력하며 세력을 넓혔다.
  • PKK와 튀르키예군 간의 갈등
    튀르키예는 PKK의 남동부 활동을 강력하게 탄압해왔으며, 쿠르드족의 자치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PKK의 무장 활동과 쿠르드 민족주의는 튀르키예 정부에 의해 반정부적인 세력으로 간주되며, 자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쿠르드족의 움직임은 정치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튀르키예 정부는 PKK를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지정하고, PKK와 관련된 쿠르드 민병대를 군사적으로 압박해왔다. PKK의 지도자인 압둘라 외잘란은 1999년에 튀르키예에 의해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 PKK가 튀르키예에 위협이 되는 이유
    PKK가 튀르키예 남부에서 더 많은 지역을 장악하면, 튀르키예의 정치적 불안정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쿠르드 민족주의가 국가 내 분열을 촉발할 수 있으며, 튀르키예 내 쿠르드족의 자치권과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다. 이는 내부 정치적 갈등을 악화시키고, 튀르키예 정부의 지지층을 약화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PKK의 세력 확장은 튀르키예 남부에 경제적 타격을 초래할 수도 있다. 튀르키예 남부는 농업, 에너지 자원, 그리고 지리적으로 중요한 교통로가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PKK의 영향력이 튀르키예인들의 경제적 활동을 제한하거나 생산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로 시리아 북부 지역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철수, YPG(인민수비대)의 설립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반군과의 전투에 집중하기 위해 시리아 정부군은 쿠르드족이 밀집한 북부 지역에서 철수한다. 시리아 정부군이 쿠르드족 밀집 지역에서 손을 떼자 쿠르드족은 자기 방어를 위한 무장 세력을 조직한다. YPG는 이러한 필요에 의해 2011년 시리아 쿠르드족 지역에서 조직된 민병대이다.
  • ISIS와 쿠르드족 간의 갈등 및 충돌
    ISIS(이슬람 국가)는 시리아 내전의 혼란 속에서 2013년경 알-카에다의 이슬람 국가로부터 분리되면서 급격히 세력을 확장했다. ISIS는 극단적인 수니파 이슬람을 추구하며,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칼리프 국가를 선포하면서 국제적인 위협으로 떠오른 테러리스트 조직이다. 시리아 반군의 일부는 ISIS 이념에 동조하였다. ISIS는 자기 왕국을 수니파 이슬람 국가로 선언하면서, 비수니파인 쿠르드족을 불신하고 적대시했다. ISIS는 수니파 칼리프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쿠르드족의 자치적인 지역을 장악하려 했다. 반면 쿠르드족은 시리아 북부와 이라크 북부에서 자치적인 정부를 세우고, 자기 방어와 민족적 권리를 주장했기 때문에 ISIS와 상극이었다. ISIS는 YPG와 싸우며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자치구를 강제 점령하려 했다.
  • ISIS와의 코바니 전투에서 쿠르드족의 승리
    코바니는 시리아 북부의 중요한 쿠르드족 거주지로, ISIS가 이슬람 국가를 확장하기 위해 코바니를 공격했다. YPG는 ISIS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결국 미국과 국제 연합군의 공중 지원을 받으며 ISIS를 물리쳤다. 이 전투에서 쿠르드족의 승리는 ISIS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YPG는 쿠르드 민족주의와 자치권을 주장하는 중요한 군사적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 PKK의 YPG 지원
    YPG가 ISIS와 피터지게 싸울 무렵 PKK는 이 전투에서 YPG에 군사적 지원과, 물자 지원 등을 제공했다. 특히 2014-2015년의 코바니 전투에서 ISIS가 쿠르드족이 다수인 코바니를 공격했을 때, PKK는 YPG를 지원하며 ISIS에 맞섰다. PKK와 YPG는 쿠르드 민족주의와 민주적 연방주의라는 유사한 이념을 공유하여 ISIS라는 공통의 적에 대항해 협력하게 되었다.
  • YPG와 PKK의 관계
    YPG는 PKK(쿠르드노동자당)와 이념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PKK는 튀르키예 내에서 쿠르드족의 독립과 자치를 추구하며 오랫동안 튀르키예 정부와 무장 투쟁을 벌여왔고, YPG도 PKK의 영향을 받은 쿠르드 민족주의와 자치권을 주장하는 세력이다. 튀르키예는 YPG를 PKK의 지부로 간주하고, YPG가 시리아 북부에서 자치국을 설립하는 것을 자국의 안보에 위협으로 보고 있다. YPG와 PKK는 같은 민족이기도 하다.
  • 튀르키예의 YPG 세력확장에 대한 안보 우려
    튀르키예는 YPG가 시리아 북부에서 자치구를 형성하는 것이 튀르키예 내 쿠르드족[1]의 독립적 움직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YPG가 시리아 북부에서 자치적인 구역을 확립하면, 튀르키예 내 쿠르드족에게 영감을 줄 수 있고, PKK의 쿠르드 민족주의 운동이 튀르키예 내로 확산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2019년 튀르키예 정부는 쿠르드족들의 독립시도를 막기 위해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영토를 침공했다. 이에 따라 주변국들은 튀르키예에 대해 반발했다.

2010년대 중반에 인민민주당이 생겨나면서 튀르키예 의회에 진출했다. 하지만 인민민주당에 대해 튀르키예내 정의개발당, 공화인민당 등 튀르키예 여당, 야당에선 인민민주당을 해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생겨났다. 인민민주당내에선 이에 대해 반발했다.

튀르키예 정부는 쿠르드족들의 언어, 문화를 탄압하고 있어서 튀르키예 정부와 쿠르드족들은 갈등이 존재한다. 하지만 자자인들에 대해선 자자인들의 언어, 문화를 유지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3. 문화 교류

오스만 제국때에는 쿠르드족들의 영향이 일부 있었다. 튀르키예 남동부는 쿠르드족들이 대부분 거주하고 있어서 튀르키예 남동부의 튀르키예어는 쿠르드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4. 관련문서



[1] 특히 PKK, 튀르키예 내에는 PKK 외에도 많은 쿠르드족이 흩어져 살고 있는데 그들이 PKK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 일단 PKK의 규모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면 그 때는 대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