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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태조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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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캐스팅3. 극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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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 대하드라마 <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배우 김하균.

2. 캐스팅

배우 김하균은 이후 사극에서 악역이거나 좋지 않은 캐릭터로 자주 등장했는데 < 무인시대>에서는 김광립 역, <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명나라 장군 진린 역, < 대조영>에서는 고구려 간신인 부기원 역, < 광개토태왕>에서는 탐관오리 가렴 역, < 비밀의 문>에서는 노론 김상로 역, < 징비록>에서는 양호 역을 연기했다. 선역으로 나온 인물들로는 < 대왕 세종>에서는 태종에게도 직언을 서슴치 않았던 깐깐한 재상 허조, < 천추태후>에서는 현종 스승인 최항 역, < 대왕의 꿈>에서는 신라 진평왕 역, <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에서는 조선 중기의 명재상 최명길 역을 연기했다.

3. 극중 행적

몇 줄 기록밖에 없는 인물이지만 2000년 KBS 드라마 < 태조 왕건>에서는 상상력을 더해 왕건 책사로 등장하며 천재 군사 참모로 묘사됐다.

처음 등장은 제79회로 왕건이 상주를 공략해 후백제의 허를 찌르려는 전략을 수립할 때 작전 회의 말미에 있던 군졸로 나온다. 당시 마진군은 후백제군을 후방에서 기습 공격할 계획이었으나 시간이 촉박해 군이 움직일 시간을 어떻게 벌지 왕건과 휘하 장수들이 유긍달과 전략을 논의하던 도중, 자신의 의견을 내려 한다. 이에 금석과 직속 상사인 유금필이 꾸짖었으나, 유긍달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그를 배려해준다.

태평은 적의 후방을 치는것은 기습이나 다름없으니 시간을 끌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며 손자병법 중 허실에 실려있는 구절을 읊는다[1] 난데없는 손자병법의 구절에 다른 장수들과 유긍달은 어리둥절했으나 구절을 같이 읊던 왕건은 태평의 말을 이해하고는 탁자를 탁 친다. 태평이 제시한 계책은 모든 병력을 후방으로 보낼 필요없이 병력 중 일부만 후방으로 보내 여러 곳에서 적을 기습하게 함으로서 후백제군을 분산시킨 사이 주력군으로 신속히 몰아치는 것이었다. 죽령 공략의 명쾌한 답을 깨달은 왕건은 태평의 지혜에 감탄하고는 흙속에서 진주를 찾았다며 매우 기뻐하였다.[2] 그리고는 즉각 태평을 자신의 군사로 임명했고 과거 견훤이 그랬던 것처럼 주력군으로 죽령을 점령하는 한편, 조령에 주둔한 공직을 유인, 매복군으로 섬멸시키는 작전을 세운다. 태평의 책략은 먹혀들어 마진군은 죽령을 빼앗는 것은 물론 공직이 이끄는 후백제군도 격퇴해 그리 기대도 하지 않았던 조령도 장악해버린다. 이런 귀신과도 같은 태평의 책략에 옛상관 유금필을 비롯한 왕건의 의형제들, 그리고 휘하 장수들은 태평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이후 왕건은 태평의 건의에 따라 능산과 전의갑,이갑 형제를 보내 낙동강 일대마저도 접수하면서 견훤의 뒷목을 제대로 잡는다.

왕건이 철원에 복귀한 이후 아지태가 찾아와 반역을 제의하고 돌아가자 아지태를 여러모로 비범한 사람임이 확실하다고 평했으며 왕건에게 살고 싶다면 아지태와 손을 잡거나 어떻게든 전장터로 나서야 한다고 간언한다. 물론 왕건이 절대 아지태와 손잡을리가 없기에 종간이나 은부에게 공격당하고 싶지 않다면 빨리 전장터로 나가라는 얘기.

때마침 후백제가 나주를 공격하여 왕건이 다시 나주로 가게 되었으며 이후 견훤이 나주를 수복하기 위해 대규모의 수군을 몰고 쳐들어왔을 때는 화공을 위해 천문을 연구하고 남동풍을 불게 하는데 영락없이 제갈량이다.[3][4]

정황상 909년 나주 앞바다에서 화공으로 후백제군을 무찌른 덕진포(德津浦) 해전을 주제로 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왕건에게 역성혁명을 일으킬 것을 종종 설득하기도 했고 왕건이 시중으로 있을 때는 비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이후에는 병부의 수장인 병부령으로 임명되었는데 이후 참가한 조물성 전투에서 대대적으로 창궐한 전염병에 감염되는 바람에 그만 죽고 만다. 이 때 군사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창궐하는 가운데 그에게 본격적으로 증상이 나타나 물을 찾으며 절규하는 모습은 비극적이다. 더 비극인 것은 조물성 전투가 본격적인 고려와 후백제 간의 첫 전투였다는 점이다.[5] 왕건이 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것을 보지 못했기에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다며 눈을 뜬 채로 죽었다. 임종하면서 태평은 "신이 죽은 뒤에는 신보다도 더 총명하고 학문과 기지가 뛰어난 천재인 내봉성령 최응을 크게 쓰시옵소서"라며 최응을 중히 쓰라는 말과 최응에게도 "폐하가 대업을 이루는 것은 그대의 손에 달려있다"며 뒷일을 부탁하는 유언을 남겼다.[6] 태평의 사망에 왕건과 최응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 했지만 태평의 계책으로 나주 수복전에서 수군도 크게 피해를 입고 수달을 잃는 등 막심한 손해를 입었던 견훤은 태평의 부고 소식을 듣자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다느니 속이 다 시원하다며 크게 웃었다.[7]

드라마 전개상으로는 태평의 이른 퇴장은 일종의 밸런스 패치라고 할 수 있다. 조물성 전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 역사상 최악의 참패인 공산 전투를 당하게 되고, 그후 이어지는 삼년산성 전투에서는 심지어 그 신검에게조차 패배할 정도로 왕건이 궁지에 몰리게 된다. 그런데 최승우도 가지고 노는 사기 캐릭터 급의 책략가로 묘사된 태평이 건재한 채로는 이런 전개가 너무 어색해지기 때문에 고려가 슬럼프에 빠지는 시기에 맞춰서 조기 퇴장시킨 것으로 보인다.[8] 작 중에서도 삼년산성에서 패배한 이후(제165회)에 지난 공산 전투에서의 뼈아픈 패배를 겪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지라 왕건은 크게 상심하며 "태평 군사를 잃고... 내 아우 신숭겸이를 잃었어!(생략)"이라는 대사를 하는데 왕건에게는 태평을 일찍 떠나보낸 게 큰 손해였을 것이다.

태평이 사망한 이후 최응이 병부의 수장이 되어 왕건을 보필하지만 태평 본인이 최응을 자신보다 나은 인재로 평하기는 했으나, 최응은 대국적인 정책이나 정략적인 면에는 뛰어났지만 개별 전쟁의 계책에 있어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인 바 없고 전쟁터에 주로 종군한 태평과 달리 조정에 남아서 국사를 보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왕건의 연이은 패배를 막아내지 못했다. 결국 최응마저도 병으로 젊은 나이에 병사해 고려는 한동안 이들의 공백을 어느 정도 실감해야 했다.[9]

극 중 최승우가 삼국지의 제갈량을 모티브로 했다면 태평은 조조 적벽대전에서 그리워하던 곽가가 모티브인 듯하다.[10]

소설판에서는 이런 책사로써의 모습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그냥 가끔씩 태평이란 신하가 중요한 일을 처리한다 수준으로 나온다. 아자개의 귀부 때에도 대광 지위로 행사를 주관한다.

왕건의 부하들이 처음에는 궁예에게 충성하지만 궁예가 타락해가자 등을 돌려 왕건에게 역성혁명을 권해가는데 태평은 딱히 궁예에게 처음부터 충성하는 모습은 보기 드물고 오히려 틈만 나면 궁예를 까며 뒤집어 엎자고 권하는 모습이 많다. 그의 출신지인 염주(지금의 황해남도 연안군) 지역이 궁예에게 바로 항복하지 않았다며 태평은 괘씸죄로 군졸로 강등되는데, 태평이 이 지역 호족 유긍순의 비서 겸 서기관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기에 태평으로서는 궁예와의 첫 만남부터 악연이었던데다가 그가 왕건을 따르게 되고 얼마 안 지나 궁예가 타락하기 시작했으니 더더욱 그를 적대하게 됐을 가능성이 높다.


[1] 비전즉후과, 비후즉전과, 비좌즉우과, 비우즉좌과, 무소불비, 즉무소불과. 과자비인자야, 중자사인비기자야. [2] 이 때 설명하며 나온 장면을 보면 다른 병졸들 사이에서 쉴 때마다 혼자 을 읽는데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태평의 책략은 이론만을 익혀 나온 것이 아니라 군졸로서 보고 겪은 실전들을 토대로 나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군대의 가장 기본적이자 필수적인 요소인 군졸로서의 경험이 책을 보고 익힌 전략 전술의 이론과 만나 시너지를 발휘한 셈이다. [3] 극 중에서 제갈량을 언급하기까지 한다. "어떻게 남동풍을 불게 했을까 연구를 하다 알게 되었습니다"라는 것이 태평의 해설이었다. 제146회에서도 최지몽과 함께 병문안을 온 최응도 병부령은 제갈량과 같은 인재라고 위로하며 쾌유를 바랬다. [4] 당시 김하균은 김형일( 능산 역), 김학철( 박술희 역)과 함께 컨셉으로 에어컨 광고도 찍었다. [5] 역성혁명 이후부터 아자개의 귀부, 송악 환도까지는 별다른 전투가 없었고 태자 왕무와 박술희가 이끄는 고려군과 신검 형제들과 애술 등이 참전한 후백제군의 전투는 전초전 성격이었던만큼 왕건이 친정을 나온 조물성 전투가 본격적인 고려와 후백제 간의 첫 전투라 볼 수 있다. [6] 이 때문에 태평을 다소 일찍 극에서 은퇴시킨 것은 결국 왕건의 책사로서 최응을 부각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있다. [7] 고려군에게까지 대놓고 그런건 아니고 이후 견훤과 왕건과의 만남을 주선하러 간 최승우에게 시켜 '애도의 뜻을 표한다'라고 하기는 했다. 한편 후백제 진영에서는 금강이 전염병에 걸렸지만 살아남았다. 이 때 견훤이 조상님들과 하늘에게 필사적으로 빌었는데 이 기도가 먹혔는지 조상 중 한 명이 의원 앞에 나타나 자신의 어리석은 후손이 자식 살려달라며 빌기에 이렇게 지렁이를 캐러 왔다며 지렁이가 열을 내리는 데 탁월하다고 말해준다. 그러면서 그 후손 녀석은 자기 어머니가 지렁이에 바늘을 꿴 태몽을 꿨는데 지렁이가 효험있는줄도 모른다고 툴툴거린다. 이를 듣고 의원이 처방한 약을 먹고 금강을 비롯한 백제군들은 병에 나을 수 있었다. 한편 이 얘기를 의원에게 들은 견훤은 조상님들이 나를 굽어 살피셨구나 하며 감격해한다. [8] 삼국지연의에서도 조조의 모사들인 순욱, 순유, 정욱, 곽가가 모두 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포와의 복양공방전에서 여포의 책사인 진궁에게 조조가 번번히 털리는 어색한 장면들이 많다. 진궁의 책략에 조조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 연의의 창작이다. [9] 포지션상 책사 역할은 최지몽이 맡았으나, 최지몽은 책사라기 보단 점쟁이에 가까운 지라 전략가로서의 면모는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도 이후에 벌어진 운주 전투와 일리천 전투는 각각 견훤의 병환, 견원의 아군화 라는 결정적인 이점이 있었던 덕분에 고려측이 비교적 무난하게 승리할 수 있었다. [10] 물론 동남풍을 일으키는 태평처럼, 각기 요소를 인물마다 섞어서 썼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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