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18:37:54

키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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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조리법2.2. 기원과 신화
3. 여담

1. 개요

κυκεών / Kykeon [1]

고대 그리스 음료. 평범한 음식에 불과했지만, 데메테르 페르세포네를 섬기는 엘레우시스 비교(秘敎)의 제전에도 쓰이곤 했다.

2. 상세

2.1. 조리법

키케온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보리, 박하[2]만 쓰는 고전적인 키케온이고 다른 하나는 거기에 포도주[3] 치즈[4]를 더해 개량한 키케온이다. 우선 보리를 볶은 후 절구로 빻아 가루를 내어[5] 끓는 물에 넣고 섞어 잘 풀어낸 것에 다진 박하 잎을 넣는 것까지는 공통된 과정이다. 여기에 포도주 몇 컵과 강판에 간 치즈를 넣고 잘 섞어주면 신화 서사 속에 나왔던 그대로의 키케온이 된다.
파일:kykeon.png
두 가지 키케온의 견본.

완성된 키케온은 희뿌연 색에 잘게 썬 박하 잎이 들어가 있거나, 탁한 연자주색이 도는 액체가 된다. 농도에 따라 걸쭉하면 죽, 묽으면 음료가 되는 식이다.[6] 정말로 원조에 가깝게 만들 경우 맛이 없다고 하는데, 재료들을 섞는 과정에 좀 더 열을 가하거나 과 포도주를 추가로 더 넣으면 약간은 먹을 만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개량한 키케온은 달달한 죽같은 느낌이라고. #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서는 프람노스 포도주에[7] 보리가루, 치즈, 꿀과 같이 먹었다고 하는걸로 봐서 따로 물을 끓이지 않고 포도주만 끓여서 재료를 넣는 방법도 있는 듯하다.

2.2. 기원과 신화

파일:ascalabus.png
도마뱀으로 변하는 아스칼라보스.[8] 게라르트 데 라이레세

본디 엘레우시스[9]의 초라한 가정식에 가까웠던 키케온이 종교적인 의례에 쓰이는 신비한 음료가 된 데에는 유명한 신화가 뒤따른다. 데메테르가 딸 페르세포네를 찾으려 온 세상을 돌아다닐 때의 일이었는데, 딸을 찾느라 여념이 없어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않고 계속 돌아다닌 나머지 쓰러지기 직전일 정도로 수척해지고 말았다.[10] 우선 배를 채우고 싶었던 데메테르는 한 민가에 들어가 먹을 것을 청했는데, 그러자 미스메(Μίσμη)라는 나이 든 여인[11]이 보리와 박하로 만든 죽, 키케온을 대접해주었다. 맛없는 죽이었지만 워낙 주려있던 탓에 체면도 잊고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데메테르는 거지같이도 먹는다며 낄낄대는 한 어린 사내아이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미스메의 아들, 아스칼라보스(Ασκαλαβος)가 초라해진 데메테르의 겉모습만을 보고 놀린 것이었다. 딸도 못 찾았는데 조롱까지 듣게 되어 인내심이 작살난 데메테르는 먹던 키케온을 아스칼라보스에게 확 끼얹어 버렸고, 이걸 맞은 아스칼라보스는 보리 알갱이가 달라붙어 우둘투둘해진 피부를 지닌 도마뱀으로 변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태만으로 발생한 기근 가뭄 속에서도 보여준 미스메의 온정만큼은 잊지 않았던 데메테르는 그날 먹었던 키케온을 잊지 못했다. 메타네이라 식객으로서 머물 때에도 꿀을 탄 적포도주를 마다하고 키케온만 찾았다고 할 정도였으니.[12] 훗날 엘레우시스에서 새로이 발흥한 종교의 공식적인 제전 음료로 임명해 영예를 얻게 함으로서 키케온의 명성은 그리스 전역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엘레우시스 비교에서는 1년에 한번씩 제전을 열어 10일 동안 개최했는데, 9일 동안 금식한 뒤 마지막 날에 키케온을 마심으로서 여신의 고통과 당시 농민들의 고난을 체험하게 했다.[13]
파일:circe_and_pigs.png
키르케와 돼지로 변한 오디세우스의 부하들. 브리튼 리비에르

한편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키케온은 거기서 발전해 한층 더 먹을 만해진 모습으로 나온다. 일리아드에서는 네스토르 마카온이 이걸 먹고 체력을 보충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프람니오스 오이노스(Πράμνιος οἶνος)[14]에 산양 치즈와 하얀 보리가루로 만들었다고 하며 모이를 쪼는 비둘기 무늬가 새겨진 화려한 황금 에 담아 양파, 꿀, 각종 과일과 함께 먹는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오디세이아에는 섬에 도착한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환영하는 척 하면서 돼지로 바꿔버린 키르케의 모습에서 묘사된 키케온 또한 하얀 보리가루, 염소 젖으로 만든 치즈, 노란 꿀, 프람니오스 오이노스로 만들었다고 하니[15] 옛날의 키케온보다 다양한 재료와 맛을 갖추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여담

  • 귀족들은 키케온을 먹기 싫어했다. 서민들이나 먹는 촌티나는 음료라고 여겨서(...). 덤으로 테오프라스토스가 저술한 <윤리적 성격론> 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성격을 지닌 인물의 일환으로 키케온에 취해 에클레시아로 향하는 농민을 그려낸 바 있다.
  • 맥각균이 기생한 보리를 사용해 만든 키케온이 엘레우시스 비교의 의식에 큰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이론이 있다. 맥각 중독이 일어나 황홀경에 빠져 횡설수설해댄 것이 온갖 교리와 의례로 발전했을 거라는데, 마침 엘레우시스 신전 유적에서 발굴된 꽃병과 성인 남성 유골의 치아에서 맥각 조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엘레우시스 비교는 또 다른 마약성 물질인 양귀비와도 관련이 있다.[16]
  • 키르케가 주는 돼지로 만드는 약이 든 키케온에도 해독제가 있었다. 자세한 건 몰리 항목 참조.
  • Fate 시리즈 키르케는 잊을 만하면 키케온을 권유하곤 한다. 원전의 묘사와는 다르게 포도주가 들어가지 않았는지 키케온의 색이 희고,[17] 키케온을 먹은 자를 돼지로 만드는 과정에 지팡이로 때리는 것이 생략되었다.

[1] 휘젓다, 섞다를 의미하는 키카오(κυκάω)에서 유래했다. [2] 블레콘(βλήχων) 혹은 글레콘(γλήχων), 즉 페니로얄을 쓰는 것이 원본에 제일 가까워진다. [3] 드라이하고 도수가 높은 적포도주가 추천된다. [4] 그리스에서 자주 쓰이던 산양유 치즈 양젖 치즈가 추천되지만 단단하고 풍미가 강하지 않은 치즈라면 뭐든 괜찮다. 페코리노 로마노, 파마산 치즈, 에멘탈 치즈, 그뤼에르 정도로 좁힐 수 있겠다. [5] 현대식으로 재현하고 싶을 경우 믹서기 푸드 프로세서를 써서 거칠게 갈아도 된다. 건더기가 없는 걸 선호한다면 미숫가루나 보리가루를 써도 괜찮다. [6] 정확하게는 '마실 수 있는 죽' 에 가까운 농도였다고 한다. [7] 일리아드는 포도주를 끓여서 재료를 넣었다, 오디세이아에서는 재료를 포도주에 탔다고 서술한다. [8] 원제는 <케레스가 자신을 모욕한 스텔리오를 도마뱀으로 바꾸다>로, 로마식 이름을 쓴 것이다. [9] 현재는 엘레프시나(Ελευσίνα, Elefsina)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10] 이런 배경을 무시하고 데메테르를 여전히 미인으로 그린 예술 작품도 많은데, 잼민이의 어그로에 넘어가 독기를 품은 눈만큼은 하나같이 똑같게 그려진다(...). [11] 아주머니나 할머니 정도의 나이로 묘사되곤 한다. [12] 이는 맛있는 음료를 목으로 넘기지도 못할 만큼 데메테르가 슬퍼한 탓도 있지만, 흉년으로 고통받는 농민들을 저버리고 혼자 달콤한 술을 마시기엔 양심이 찔려서 그랬다고도 한다. [13] 이 의식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도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14] 이카리아 섬의 프람노스(Pramnos) 산에서 재배된 포도로 만든 술(Pramnios wine)이라는 뜻. 포키아노라는 품종으로 만들었다고 추정되며, 독한데다 단맛이 나지 않았다고. [15] 두 작품의 키케온은 묘사가 상당히 비슷한데,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같은 호메로스 작품이다. 다만, 키르케의 키케온은 여기에 마술의 약을 타놓아서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이것을 먹고 돼지가 되어버린다. [16] 엘레우시스 비교에서 섬기는 신인 데메테르의 상징물 중 하나기도 하거니와, 신도들에게 양귀비 씨앗을 넣고 구운 케이크를 나눠주기도 했다고. [17] 그렇다고 해서 데메테르가 먹던 키케온처럼 맛없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일단 꿀이 들어가는데다 먹어본 사람피폭자들도 맛없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