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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르두어: خضر خان힌디어: ख़िज्र खाँ
영어 Khizr Khan
재위 1414년 5월 28일 ~ 1421년 5월 20일
생몰 ? ~ 1421년 5월 20일
2. 생애
당대의 역사가 야흐야 시르힌디에 의하면 키즈르 칸은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후예인 우치의 샤리프이자 수피 성인 사이드 잘랄웃딘 부하리의 후손이라 한다. 즉, 무함마드의 후손인 사이드인 것이다. 다만 다른 설에 의하면 키지르 칸은 (투글루크 조의 개국 세력인) 펀잡 현지의 코카르 부족장으로, 아랍 혈통도 아니라 한다. 확실한 것은 그가 펀잡의 파테푸르 출신이며, 14세기 후반 피루즈 샤 투글루크에 의해 물탄 총독에 봉해졌다는 것이다.1398년 티무르의 북인도 침공 당시 키즈르 칸은 그에게 항복하여 작위를 유지하였고, 1400년대 초엽에는 직접 사마르칸트까지 향하여 복속을 표한 대가로 델리 술탄으로 봉해졌다. 당시 북인도는 춘추시대처럼 여러 제후들이 술탄에 명목상으로만 종속된 채로 서로 각축을 벌이던 상황이었고, 그렇게 15년이 흐른 후 마지막 투글루크 술탄인 나시르 웃 딘 마흐무드 샤의 죽음을 전후하여 각자 독립을 선포하였다.
1414년 기준 델리 술탄국 영토. 지도에는 나오지 않지만 펀자브 북부도 사실상 독립 상태였다.
파테푸르를 거점으로 기회를 엿보던 키즈르 칸은 1414년 5월 델리로 진격하여 군벌 다울라트 칸을 감금한 후 집권하였다. 다만 키즈르 칸은 (아직까지 건재했던) 티무르 제국의 봉신으로서 술탄이라 칭하는 대신 라야트-이-알라 (숭고한 기치) 혹은 마스나드-알라이 (고귀한 직위)란 칭호를 사용하였고 통화 역시 작고한 나시룻딘 무함마드 샤의 명의로 발행되었다.[2] 즉위 후 논공행상에서 키즈르 칸은 같은 사이드인 살림에게 메루트 북쪽 (현 무자파르나가르와 사하란푸르) 일대를, 압둘 라흐만에게는 자신의 옛 거점인 물탄과 파테푸르를 영지로 하사하였다.
내정에 있어서는 말리크 웃 샤르크 투흐파를 재상으로 삼고 타즈 울 물크 칭호를 내렸다. 타즈 울 물크는 같은해 카테하르의 라자 하르 싱의 반란을 토벌하였다.[3] 1416년 7월 타즈 울 물크는 바야나와 괄리오르를 원정하여 납부해야 하는 연공에 해당하는 만큼 현지 농민들을 약탈하고 일대를 병합하였다. 1417년 키즈르 칸은 주군인 샤 루흐로부터 자신의 명의를 우선시 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이듬해에는 하르 싱이 재차 반란을 일으켰으나 타즈 울 물크가 패배시키고 그의 세력을 일소하였다. 1420년 타즈 울 물크는 아그라 인근 찬드와르 (피로자바드)의 반란을 진압하고 재차 복속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