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07 12:57:13

바흐룰 칸 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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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치세
2.1.1. VS 자운푸르 술탄국2.1.2. 힌두스탄 정복
2.2. 후계자 문제
3. 기타

1. 개요

우르두어: بہلول لودھی
힌디어: बहलूल खान लोदी
영어 Bahlul Khan Lodi

재위 1451년 4월 19일 ~ 1489년 7월 21일
생몰 1420년? ~ 1489년 7월 21일
델리 술탄국의 29대 술탄이자 로디 왕조의 창건자. 발룰 샤로도 표기된다. 길자이 파슈튠 부족 출신으로, 사이드 왕조 말엽 펀자브 지역을 장악한 후 여러번 델리를 공격한 끝에 1451년 양위를 통해 술탄에 올랐다.[1] 역대 델리 술탄 중 최장 기간인 38년간 내부를 안정적으로 통치한 그는 1479년 자운푸르 술탄국을 정복, 괄리오르 등지를 복속시키며 투글루크 왕조 이후 델리 술탄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다.

2. 생애

1400년을 전후로 북인도에서 두각을 드러낸 길자이 파슈툰 계열의 로디 부족 출신으로, 물탄 총독 말리크 마르단 다울라트의 수하 말리크 바흐람 칸의 손자이다. 말리크 바흐람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장남 말리크 술탄 샤가 사이드 왕조의 창건자인 키즈르 칸을 도와 후자와 대립하던 말루 이크발 칸을 죽인 공으로 1419년 동부 펀잡의 시르힌드 총독으로 봉해졌다. 발룰 칸은 말리크 술탄 샤의 동생인 말리크 칼라 칸의 아들로, 젊은 시절에는 말 거래상이었다. 그는 한번 델리의 무함마드 샤 사이드에게 명마를 팔았는데, 이에 대한 보답으로 술탄은 발룰 칸에게 중급 규모의 영지와 아미르 작위를 하사하였다. 한편 아들이 없던 말리크 술탄 샤는 조카 발룰 칸을 자신의 딸과 결혼시키며 후계자 겸 사위로 삼았다. 그리고 1440년경 장인 겸 백부인 말리크 술탄 샤가 사망하자 발룰 칸은 그의 뒤를 이어 시르힌드 총독이 되었다.

얼마 후 발룰 칸은 무함마드 샤에게 북부 펀잡의 라호르를 영지에 더하도록 청하여 승인을 받았고, 이로써 펀잡의 절반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리고 1442년 말와 술탄국의 알라 웃딘 마흐무드 칸이 델리를 침공하자 무함마드 샤의 원군 요청을 받은 발룰 칸은 육성해둔 2만 기병을 이끌고 남하하여 말와 군대를 격파하였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무함마드 샤에게서 재상에 해당하는 칸-이-자한 작위와 함께 펀잡 전역에 대한 지배권을 하사받았다. 세력이 커지자 야심을 드러낸 발룰 칸은 내친 김에 술탄위를 노리고 1443년 델리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445년 유약한 알람 샤가 즉위하자 발룰 칸은 1447년 재차 델리를 공격하였고, 비록 실패했으나 대세가 기울었다 여긴 알람 샤가 1448년 옛 영지이던 부다운으로 낙향해버렸다. 델리에 남겨진 재상 하미드 칸의 초청을 받은 발룰 칸은 1451년 4월, 델리에서 알람 샤의 선양을 받아 술탄 바흘룰 샤 가지로 즉위하였다.[2]

2.1. 치세

파일:델리 술탄 1420.png 파일:델리 1480.png
바흐룰 칸의 즉위 시점 & 사망 시점의 델리 술탄국 영토

즉위 후 발룰 샤는 재상 하미드 칸을 폐하고 사촌 겸 매부인 사마나 총독 말리크 마흐무드 칸 (쿠트붓딘 칸)에게 그를 가두게 하였다. 막 세워진 로디 왕조의 경계 대상 1호는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동쪽의 자운푸르 술탄국이었다.

2.1.1. VS 자운푸르 술탄국

동남 방면의 오디샤 원정에 실패한 자운푸르 술탄 나시룻딘 마흐무드 샤는, 정권 교체를 틈타 1452년 델리를 공격했으나 바룰 샤에게 격퇴되었다. 그후 마흐무드 샤는 델리로 직접 진격하는 대신 델리와 자운푸르의 중간 지점인 에타와를 공격했으나, 역시 함락하지 못하고 발룰 샤에 샴사바드 지배권을 양도하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었다. 이에 발룰 샤가 샴사바드를 접수하려 하자 자운푸르 군대가 저항하였고, 공방전 도중 자운푸르에서는 마흐무드 샤가 사망하고 아들 무함마드 샤가 계승하였다. (1457년) 무함마드 샤는 약속대로 발룰 샤에게 샴사바드를 넘기고 재차 강화를 맺었다. 하지만 유약한 태도에 분노한 귀족들이 동생 후세인 샤를 술탄으로 추대하였고, 무함마드 샤는 델리로 도주하다 카나우지에서 피살되었다.

다만 후세인 샤 역시 즉위 후 발룰 샤와 4년 간의 휴전을 맺었다. 그리고 20년간 평화가 유지되었는데, 내정을 안정시켰다 여긴 후세인 샤는 1478년 대군을 모아 델리 맞은편의 야무나 강까지 진격하였다. 놀란 발룰 샤는 그에 복속한 채로 제후로서 델리 일대만을 영위하겠다며 강화를 제안하였는데, (발룰 샤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던) 후세인 샤는 반격을 준비할 시간을 벌려는 꼼수라 여겨 이를 제안하였다. 궁지에 몰린 발룰 샤는 예상을 뒤엎고 정예병을 모아 강을 건너 자운푸르 군대를 격파하였고, 후세인 샤는 결국 휴전에 동의하여 회군하였다. 하지만 얼마후 후세인 샤는 (부친이 실채한) 델리령 에타와 점령에 성공하자 기세를 몰아 재차 델리로 나아갔고, 이번에도 발룰 샤에게 격퇴되어 휴전을 맺은 후 철수하였다.

2.1.2. 힌두스탄 정복

2번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은 후세인 샤는 1479년 3월, 또다시 야무나 강으로 나아갔으나 역시나 패배하였다. 3번의 대결에서 연승을 걷은 발룰 샤는 이번에는 역습에 나서 캄필, 파탈리, 샴사바드, 수켓, 콜리, 말하라, 잘레사르를 점령하였고 그렇게 서부 힌두스탄을 평정한 후 자운푸르로 진격하였다. 후세인 샤는 대군을 모아 반격에 나섰지만 센하, 라프리, 라이가온 카가 전투에서 또다시 연전연패하였고 마지막 라합 강 전투에서 대패하여 주력 병력을 잃었다. 이에 자운푸르가 항복하였고, 발룰 샤는 휘하의 무바라크 칸을 그 총독에 봉하였다.

변방으로 후퇴했던 후세인 샤는 병력을 모아 자운푸르로 돌아와 무바라크 칸을 축출하고 수도를 회복했으나, 발룰 샤는 반격에 나서 재차 패퇴시켰다. 그후 후세인 샤는 벵골 술탄국의 알라웃딘 후세인 샤에게로 망명하여 여생을 보내었다. 한편 자운푸르에 입성한 발룰 샤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카스바 (성채)를 세워 도시를 요새화하고, 여러 모스크 및 마드라사를 더하였다. 이로써 약 한세기 가량 자립해 있던 힌두스탄 주요부가 재차 델리 정권 하에 회복되었고, 발룰 샤의 위세에 괄리오르의 마하라자 만 싱 토마르가 80만 탄카의 조공을 바치며 복속하였다.

2.2. 후계자 문제

1486년 발룰 샤는 장남 바라크 샤를 자운푸르 총독에 봉하여 사실상 후계자로 삼았다. 다만 그가 실정을 행하자 차남 니잠 칸을 후계자로 공표하였다. 1489년 7월 발룰 샤가 사망하자 왕자들 간에 분쟁이 일었으나 니잠 칸이 신속히 제압한 후 시칸다르 샤로 즉위하였다.

3. 기타

파일:바흘룰샤.jpg

뉴델리 남부 자한파나 내의 치라그 델리에 위치한 바흘룰샤 영묘.
다만 일부 학자들은 로디 정원의 쉬쉬 굼바드를 그의 무덤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Europa Universalis 4에서 게임 시작 시 시힌드 공국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델리의 속국으로 시작하나 몇 달 내로 이벤트로 전쟁이 발생하는데, 능력치도 높지만, 군사적 능력치는 최강이라서 시작 시점 인도 내 사실상 최강의 군주로 등장하며 2배가 넘는 적군도 각개격파를 하면 단숨에 갈아버리는 위엄을 뽐낸다.

68 ~ 70세 무렵에 사망하였는데, 당시로서는 장수한 편에 속한다.

[1] 이는 델리 술탄국 사상 처음의 평화적인 왕조 교체였다 [2] 한편 선양 후 계속 부다운에서 은퇴 생활을 하던 알람 샤는 1478년 4월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