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 전략사령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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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458><colcolor=#fdce68> 미합중국 제7대 전략사령관 케빈 패트릭 칠튼 Kevin Patrick Chilt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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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4년 11월 3일 ([age(1954-11-03)]세) | ||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 |||
재임기간 | 제7대 전략사령관 | ||
2007년 10월 3일 ~ 2011년 1월 2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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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458><colcolor=#fdce68> 배우자 | 캐시[1] | |
자녀 | 4명 | ||
학력 |
미국공군사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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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계급 | 대장 ( 미합중국 공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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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및 NASA 우주 비행사.2. 커리어
1954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그가 보낸 어린 시절은 미국과 소련의 자존심 싸움이 우주를 수놓던 시절이었는데, 정작 본인은 우주보다는 비행기 조종 자체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이 점은 닐 암스트롱이 파일럿이라면 서 있는 것보다 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한 것과 상통하는 대목. 할아버지 대부터 미 육군 항공대에서 복무한 공군 가족에서 자란데다 어머니는 스튜어디스였으며 삼촌도 민간항공사의 기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터라 어릴 적부터 그는 비행기 조종사를 꿈꾸게 되었다.1976년
처음 조종사로 미션에 투입되었던 STS-49 엔데버의 승무원들.
STS-59 엔데버 승무원들. 칠튼의 옆에는 사령관 시드니 구티에레즈(Sidney M. Gutierrez)[5]이고, 둘째 줄은 린다 고드윈(Linda Godwin), 토머스 데이비드 존스(Thomas David Jones)[6], 제이 앱(Jay Apt), 리치 클리퍼드(Michael Richard Uram "Rich" Clifford). 우주 레이더 실험실(Space Radar Laboratory)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레이더를 테스트하며 지구상 곳곳을 관측, 촬영하는 미션이었는데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특집으로 다뤄질만큼 상당히 홍보가 많이 되었던 편이다.
사령관을 맡았던 STS-76의 경우 아틀란티스의 미르 도킹 미션이었는데, 이 미션에서 미국 여성 우주 비행사 중 유일한 미르 장기체류 승무원[7] 섀넌 루시드(Shannon Lucid)가 미르에서의 장기 체류 일정을 시작했다.
미르에서 러시아 우주 식량을 쳐묵쳐묵하는 사진. 좌측부터 섀넌 루시드, 린다 고드윈, 리치 클리퍼드, 리처드 시어포스(Richard A. Searfoss)[8], 칠튼.
아틀란티스를 탈취한 러시아 우주비행사들(...) 좌측은 유리 오누프리엔코, 유리 우사초프.
그렇게 NASA에서 근무하던 그는 장군 진급심사에서 합격한 뒤 NASA를 나왔다. 뒤늦게 준장 신분으로 공군대학(Air War College)을 거친 그는 정치/핵무기 관련 전문가로 성장하여 제8공군 사령관 등을 거쳐 2006년 대장에 진급, 공군우주사령관[9]을 역임하고 통합군 전략사령관에 임명되었다. 2000년대 후반 시기 중국의 우주개발이 가속화하면서 군사적 목적의 우주개발[10]과 ICBM 관련 분야에 있어 전문성이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이후 2011년을 끝으로 퇴역하여 현재는 오비털 사이언스 코퍼레이션[11]의 이사로 일하고 있다.
역대 NASA 우주 비행사들 중에서 장성급에 오른 인물들이 있지만 대개가 끽해야 준장, 소장에서 진급 상한선이 형성되었는데[12] 전투기 조종사 출신 우주 비행사로서 폭격기 조종사[13]들과 경쟁하여 4성까지 달았다는 점에서 실로 보기드문 커리어라 할 수 있다. 버즈 올드린은 대령으로 퇴역했고 마이클 콜린스는 준장, 앨런 셰퍼드도 소장으로 퇴역했으며 우주왕복선과 우주 정거장이 등장한 시대의 인물인 버락 후세인 오바마 행정부의 찰스 볼든 NASA 국장도 해병대에서는 소장이 끝이었다. 지금까지 미군에서 우주비행사 출신으로 3성을 단 인물은 칠튼 외에는 제미니 계획, 아폴로 계획 시절부터 활동한 아폴로 10호/ ASTP 아폴로 사령관 토머스 스태퍼드 공군중장과 공군 우주정거장 프로젝트부터 시작하여 NASA로 전속되어 우주왕복선 개발에 참여한 리처드 트룰리 해군중장, 여성인 수잔 헴스 공군중장 뿐이다.
NASA 시절엔 우주비행사들의 밴드인 Max Q의 리드보컬과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본인 말로는 잘했다는 소개들에 대해
2012년 프랭클린 창-디아즈[14]와 찰스 프리쿠르[15]와 함께 미국 우주비행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역시 미 공군에서 소장까지 지냈던 캐서린 칠튼(Catherine A. Chilton)[16]과 결혼하였다. M자 돌림의 네 딸(매디슨, 메리, 메건, 모건)을 둔 딸부자인데, 위 영상 중 브랜든스타인의 기념사에서 알 수 있듯이 업계에서는 애처가...라기보다는 꽉 잡혀 사는 공처가의 이미지가 있다. 물론 칠튼의 말대로 새벽 3시에 양 손에 6살, 4살, 친구 손에 2살, 뱃속에 여덟 달짜리 아이를 데리고 남편이 크고 아름다운 폭탄 위에 앉아있는 꼴을 봐야 한다면 어느 여자라도 이혼하자는 생각이 들 것이기에 잡혀 살아도 할 말 없다(...)[17]
장녀 매디슨은 2012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했다.
[1]
공군
소장
[2]
공사 시절 에드워즈 공군기지 파견 프로그램에서
X-24B를 접하기도 했다. X-24는 날개 없는(정확히는 주익이 없는) 비행기를 연구하는 실험기이자 X 시리즈의 마지막 유인 로켓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실험기는 착륙할 때 외에는 실질적으로 양력이 필요하지 않은 우주왕복선 기술 연구에 기여한 기종이며 이 연구에 참여한 테스트 파일럿들 중에는
프레드 헤이즈,
조 엥글,
STS-51-L의 희생자 딕 스코비 등 다수의 우주비행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훗날의 커리어를 상상도 못한채
지리학 전공하려다 대신 공학 전공했다.
[3]
정작 칠튼 본인은 비행기 조종에 전념하고 싶다는 생각에 민간항공사 이직을 고민하다가 테스트 파일럿이 된 것이라 NASA에 원서 써보라는 권유를 받을 때는 주저했다고.
[4]
최초의 3인
EVA가 이 미션에서 실시되었다.
[5]
1973년 미국공군사관학교 졸업자.
[6]
1977년 미국공군사관학교 졸업자.
[7]
첫째는 노먼 태거드(Norman Thagard)이다. 태거드는 STS-71 아틀란티스로 귀환했고 루시드는 이 미션에서 미르에 합류한 뒤 STS-79 아틀란티스로 귀환했다.
[8]
파일럿. 1978년 미 공사 졸업자.
[9]
ICBM/사이버전/
우주군 사령부로, 지금은 ICBM 파트를
지구권타격사령부(USAF Global Strike Command)로 이관했다. 이 위의 자리가
STRATCOM.
[10]
지금도 미국은 NASA를 앞에 내세우고 뒤에서 국방부와 공군의 주도로 군사적 목적의 우주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역시 마찬가지.
[11]
2014년 발사 직후 자폭한
안타레스 로켓을 만든 그 회사... NASA의 각종 우주개발 사업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기업에 속한다. 국내에서 인공위성을 운용하는 기업들 역시 오비털 측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국방부에게 퇴역 ICBM을 넘겨받아 우주발사체로 개량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고,
시그너스로
ISS 화물 수송 사업에서도 한몫 하고 있다.
[12]
우주비행사는 폼나기로는 전군에서 따라올 보직이 없지만 실제 군 커리어에서는 공백기나 마찬가지라 장성 진급은 다른 보직보다 매우 힘들다. 진급 상한선이라 하기도 뭐한 것이, 우주비행사 출신 미군 장성이 우주비행사 훈련 임무를 수행하지 않은 후보자 출신까지 포함해도 지금까지 총 스무 명 내외에 그친다.
[13]
칠튼이 거쳐온 자리는 대형 전략폭격기를 운용한 바 있는 폭격기 파일럿들이 많이 차지하는 자리다. 칠튼도 여타 군 출신 우주 비행사들처럼
테스트 파일럿 출신이라
B-52나
U-2를 조종한 경력이 있긴 하지만 5천시간 내외의 비행시간 중 대부분은 전투기나 우주왕복선을 조종한 경력이다.
[14]
챌린저 폭발사고 직전 미션이었던 STS-61-C를 시작으로
갈릴레오(탐사선)를 목성으로 보내는, STS-34, STS-46, STS-60, STS-75, STS-91, STS-111까지 무려 7회의 미션에 참여한 셔틀 시대 NASA의 산신령(...)으로, 사상 최초의 중국계 우주비행사임과 동시에 코스타리카 출신 최초이기도 하다. 근년에는 애드 애스트라 로켓 회사(Ad Astra Rocket Company) CEO로 활동하며 플라즈마 추진 로켓을 연구하고 있다.
[15]
1977년 미 공사 졸업자로, 미/러 합동 우주개발에 크게 기여했다. STS-55, STS-71, STS-84에서 조종사로 활동하고 최후의 미르 도킹 셔틀 미션인 STS-91 미션에서 사령관을 맡았다. 2004년 NASA에서 은퇴한 뒤에는 타이오콜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여러 M&A를 거쳐 오비털 ATK로 합병된 후에도
SLS 부스터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있다.
[16]
이 쪽도 미 공군 우주개발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엘리트
공순이이다. 위의 사진은 준장 시절 찍은 사진이다.
[17]
일부 우주 비행사들의 가정사가 좋지 못한 게 바로 이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나마 칠튼의 경우는 아내 역시 항공우주 분야에 뼈를 묻은 사람이라서 이게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우주에서 날아다니는 동안 혼자 직장에서 일하고 육아까지 독박을 써야 했으니 남편에게 이를 안 갈 수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