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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 타이베이 축구 국가대표팀[1] | |||
中華臺北國家足球隊[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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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39e05><colcolor=#000> FIFA 코드 | TPE | ||
축구 협회 | 중화민국 축구 협회 (CTFA) | ||
대륙 연맹 | 아시아 축구 연맹 (AFC) | ||
지역 연맹 | 동아시아 축구 연맹 (EAFF) | ||
홈 구장 |
타이베이 무니시팔 스타디움 (臺北田徑場 / 20,000석) 가오슝 국립경기장 (國家體育場(高雄市) / 55,000석) |
||
감독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개리 화이트 (Gary Whi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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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단 |
C
천보량 (Chen Po-li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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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랭킹 | 165위 (2024년 11월 28일 기준 / #) | ||
Elo 랭킹 | 197위 (2024년 11월 20일 기준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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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39e05><colcolor=#000> A매치 최다 출전 |
천보량 (Chen Po-liang) - 86경기 / 25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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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매치 최다 득점 |
천보량 (Chen Po-liang) - 86경기 / 25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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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국제경기 출전 |
[[대만| ( 필리핀 마닐라 / 1954년 5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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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 점수차 승리 |
[[대만| ( 마카오 타이파 / 2007년 6월 17일) |
||
최다 점수차 패배 |
[[대만| ( 아랍에미리트 알 아인 / 2006년 11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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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39e05> 세계대회 | ||
올림픽 |
[진출] 1회 [최고] 16위/조별리그 ( 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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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대회 | |||
아시안컵 |
[진출] 2회 [최고] ( 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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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게임 |
[진출] 3회 [최고] ( 1954[3], 195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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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컵 |
[진출] 1회 [최고] 8위/8강 (2006) |
유니폼 컬러 | 홈 | 어웨이 |
상의 |
파랑
|
하양
|
하의 | 남색 | 민트 |
양말 |
[clearfix]
1. 개요
대만의 축구 국가대표팀. 대만이나 공식 국명인 중화민국이라는 명칭은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압력 때문에 사용할 수 없어서 중화 타이베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2. 역사
2.1. 대륙 통치 시기(1913 ~ 1949)
중화민국 시절부터 축구는 인기스포츠였다. 신해혁명으로 건국된 지 2년만인 1913년 아시안 게임의 전신인 극동챔피언쉽 게임(Far Eastern Championship game)에 축구대표팀을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중국의 라이벌은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이었다.[5] 그리고 2차 대전 전 시기의 아랍을 제외한 아시아 A매치 기록을 정리해보면 당시 최강팀은 중국이었고 그 밑에 필리핀, 일본이 각축을 벌이던 모양새였다. 1931년 중화민국은 FIFA에 가입하였다.1936 베를린 올림픽에 참여하여 잉글랜드 축구대표팀과 1경기를 치렀으며, 0-2로 패했다.[6][7]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8 런던 올림픽에 참여하여 터키 축구대표팀과 1경기를 치렀으며, 0-4로 패했다.
2.2. 국부천대 이후(1949 ~ )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패배하여 대만으로 도망 간 이후에도 1950년대와 1960년대 당시에는 대만 축구가 아시아 정상급으로 분류되었고, 실제로 대만 국내에서도 야구를 뛰어넘는 최고 인기 종목이기도 했다. 야구는 원래 대만에서 대만일치시기부터 인기가 좋았던 종목이었지만, 이후 본토에서 넘어온 중국국민당이 왜색 스포츠라는 명목으로 야구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축구를 밀어주던 시절로, 실제로 1954년[8], 1958년[9] 아시안 게임에서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게다가 2대회 모두 결승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차지한 금메달이었다. # 1954년 대회는 5:2로 완승했고, 1958년 대회는 연장전까지 가서 3:2로 승리했다.현재까지 대한민국 대표팀을 상대로 역대 전적이 6승[10] 1무 14패, 19득점 50실점이다. 그러나 1967년에 대만 홈에서 가진 아시안컵 지역예선에서 1-0으로 한국을 이겨 본 뒤로는 50년이 넘게 한국을 도저히 못 이기고 있다. 1967년 뒤로 한국전에서 9연패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도 아시아 국가 중 한국에 6승이나 거둔 나라는 의외로 많지 않다.[11] 모두 1950~1960년대 승리로 지금과는 확연히 차이를 보였던 기록이다.
사실 대만 대표팀은 중국과의 정치적 문제로 인해 AFC에서 축출되어 1975년에 OFC으로 편입되었고, 그래서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지역예선부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지역예선까지 오세아니아에서 지역 예선을 치렀다. 그러다가 1989년이 돼서야 다시 AFC로 복귀했다. 이것이 대만 축구가 몰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다.[12][13] AFC 축출 시기에 축구의 인기가 야구에 완전히 밀려버리면서 대만에서 축구는 비인기 종목으로 전락했다. 현재는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홍콩 같은 약체들에도 경기력이 완전히 밀릴 정도로 아시아 최하위 수준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과 맞붙은 경기는 2007년 아시안컵 예선. 2006년 8월 16일에 대만의 홈 구장인 타이베이 중산 스타디움에서 대한민국과의 경기가 치러졌는데[14], 경기장 잔디가 워낙 개판이라 패스나 슈팅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고, 결국 한국에게 0-3으로 패배하면서 선방했다.
이후 수원에서 열린 한국 홈경기에서 0-8로 관광당하며 도합 0-11로 완전 아작났다.. 정조국이 전반 4분, 전반 46분, 후반 43분에 골을 넣으며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그리고 같은 조에 속했던 이란과 시리아한테도 박살나면서 6전 전패에 무득점 24실점으로 광탈했다.
대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이태호 감독은 “대만은 야구와 농구에 밀려서 축구에 대한 투자가 거의 없으며, 훈련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밖에 못하고, 그나마 모이면 이런저런 핑계로 10명 정도밖에 훈련장으로 나오지 않았다."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계약 연장을 거부하고 그만둬 버렸다고.
이렇게 열악한데다가 프로화도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야구와 농구의 인기에 밀려 급격히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지간한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팀에게도 패배할 정도로 동네북이 되어버렸다. 2006년 8월에 한국이 아시안컵 예선을 치를 당시에 FIFA 랭킹이 144위였는데, 이후 급격하게 하락하며 2015년 1월에는 무려 182위까지 추락했고, 이후 다소 반등하긴 했으나 2024년 4월 기준 랭킹도 159위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8년 8월에는 123위로 역대 대만 FIFA 랭킹 최고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때문에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지역예선에서는 1차예선부터 치렀는데,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과 1승 1패(1-2, 3-2)를 주고 받았으나 원정 다득점에 밀려 광탈했다.
2015년 2월 한국의 K3 챌린저스리그 우승팀인 화성 FC와의 경기에서 1:1로 비겼다. 이 경기만 놓고 보면 5:2로 깨진 캄보디아보단 나은 듯하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그래도 자국의 프로축구 리그가 인기가 매우 좋은 편이기 때문에 미래의 발전 가능성이나 희망적인 측면에서도 대만이 캄보디아보다 상황이 낫다고 보기 어렵다.
심지어 2014년 10월 8일 타이베이 홈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도 대만이 캄보디아에 0:2로 패했다. 게다가 2018 러시아 월드컵 지역예선도 1차 예선부터 치렀는데 2015년 1월 당시 FIFA 랭킹 198위로 캄보디아보다도 19위 낮은 브루나이에 그것도 홈에서 0:1로 패배했다. 하지만 2차전에서 2:0으로 이겨 기사회생하며 2차예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1차전 홈 경기 태국전에서 0:2로 패하면서 역시... 그래도 7차전 태국 원정에서 4:2로 패했지만 태국을 상대로 선제골을 포함해 두 골을 넣으면서 선전하긴 했지만... 예선 5차전에서 복병 투르크메니스탄에 패하면서 아시안컵 예선 탈락이 확정되었다.
그래도 뒤늦긴 했지만 2017년 대만 프리미어 리그가 출범했고, 2018년에는 역대 최고 FIFA 랭킹인 123위를 기록하는 등 나름대로 성장 추세를 보이기도 했다. 2019 아시안컵 본선 진출은 실패했지만, 챌린지컵 예선에서도 쩔쩔매던 팀이 나름대로 6승을 기록하며 의외의 선방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8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에는 본선 진출에 성공하여, 1966년 이래 무려 52년 만이라는 장구한 세월 끝에 아시안 게임 축구 종목에 참가하게 되었다. 물론 본선에선 1무 3패로 광탈했고, 저 1무도 무득점 무승부였다.
개리 화이트 감독 부임 이후 전세계에서 대만계 및 화교 2세 선수들을 박박 긁어모으는 중이다.[15] 이러다보니 화교가 많은 대한민국에서도 한 선수가 대만 대표팀으로 소집되었는데, 제주 유나이티드 FC와 K3리그 청주 시티 FC 소속이었던 왕건명 선수가 그 주인공. 워낙 깜짝 발탁이라 국내에서도 기사가 여럿 났으며, K3리그 소속으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A매치 데이에 소집된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비자 문제 때문에 경기에 투입되지 못했다고... 하지만 6월 친선 대회에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왕건명과 같이 발굴된 화교 2세 선수들에는 주로 잉글랜드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은데, 위건 애슬레틱을 거쳐 로스 카운티에서 뛰는 24살의 팀 추(중국어명 저우딩양周定洋) 선수처럼 경력이 꽤 되는 선수 뿐만 아니라, 크리스탈 팰리스 FC 유스 선수인 윌 던킨 같은 2019년 당시 19세(2000년생)였던 유망주도 소집되었다. 게다가 소집된 이후로 꾸준히 출전했다. 대만 축구계에서는 대단한 천재를 얻었다면서 좋아하지만, 역설적으로 19세의 어린 해외파 유망주보다 나은 기량을 보여주는 선수층이 거의 없는 대만 축구의 현실을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국내 리그의 뼈대가 튼튼하지 않으니 부실한 국가대표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고로 윌 던킨은 대만 국가대표 선발 이후 크리스탈 팰리스 FC 1군에 끝내 데뷔하지 못하고 노르웨이 리그 스타벡으로 팀을 옮겼다.
또한 양안관계가 안 좋긴 해도 말도 어느 정도 통하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중국 슈퍼 리그에 몇몇 선수들이 진출해 활약하고 있다. 주요 중국리거로는 천보량, 웬치하오, 스페인계 선수로 대만 국가대표 선택 이후 활약하고 있는 야키 옌 등이 있다.
대만 축구의 몰락을 소개한 기사가 있다. '왕년의 강호' 대만은 AFC 퇴출 후 몰락했다
2019년 3월에는 대만보다 FIFA 랭킹이 20단계나 낮은 144위 솔로몬 제도에게 홈에서 0:1 패배를 당하는 충격을 2,000여명 이상의 홈팬들한테 선사했다. 이런 패배로 인하여 대만의 FIFA 랭킹은 더 추락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네팔에게 홈에서 0:2로 깨지고, 3포트 팀답지 않게 전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물론, 네팔보다 대만이 압도적으로 잘한다는 건 아니었지만 결국 조 최하위로 마감한 뒤, 아시안컵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에 패하며 아시안컵 최종예선조차 오르지 못했다. 결국 이 여파로 왕지아종 감독은 경질되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인도네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1-0으로 누르며 56년만에 본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비록 일찍 탈락했으나, 값진 경험을 쌓았다.
3. 팀명
양안 문제로 인해 1981년부터 "중화민국"이나 "대만(타이완)" 대신 중화 타이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국제 경기에서 국기도 원래의 청천백일만지홍기를 쓰지 못하고, 중화 올림픽 위원회기를 사용한다. 피파 공식홈페이지 위 이미지는 축구협회기인데 실제로는 올림픽위원회기를 쓴다.
4. 역대전적
4.1. FIFA 월드컵
연도 | 결과 | 순위 | 경기 | 승점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
※ 중화민국 국민정부 / 대만일치시기[16] | ||||||||||
1930년 우루과이 |
FIFA 비회원국 / 독립 이전 ( 대만일치시기) | |||||||||
1934년 이탈리아 |
불참 / 독립 이전 ( 대만일치시기) | |||||||||
1938년 프랑스 |
||||||||||
※ 중화민국 (대만) | ||||||||||
1950년 브라질 |
FIFA 비회원국[17] | |||||||||
1954년 스위스 |
기권 | |||||||||
1958년 스웨덴 |
||||||||||
1962년 칠레 |
불참 | |||||||||
1966년 잉글랜드 |
||||||||||
1970년 멕시코 |
||||||||||
1974년 서독 |
||||||||||
1978년 아르헨티나 |
본선 진출 실패[16개국] | |||||||||
※ 중화 타이베이 | ||||||||||
1982년 스페인 |
본선 진출 실패[24개국] | |||||||||
1986년 멕시코 |
||||||||||
1990년 이탈리아 |
||||||||||
1994년 미국 |
||||||||||
1998년 프랑스 |
본선 진출 실패[32개국] | |||||||||
2002년 한일 |
||||||||||
2006년 독일 |
||||||||||
2010년 남아공 |
||||||||||
2014년 브라질 |
||||||||||
2018년 러시아 |
||||||||||
2022년 카타르 |
||||||||||
2026년 북중미 |
본선 진출 실패[48개국] | |||||||||
2030년 월드컵 |
? | ? | ? | ? | ? | ? | ? | ? | ? | |
2034년 사우디 |
? | ? | ? | ? | ? | ? | ? | ? | ? | |
합계 | 본선진출 없음 |
4.2. 올림픽 축구
* 중국 국가대표팀 기록으로, FIFA에선 1949년 이전의 중화민국의 기록을 중국 국가대표팀에 귀속시킨다.1936년* 베를린 - 12위[22]
1948년* 런던 - 14위[23]
1960년 로마 - 16위[24]
4.3. AFC 아시안컵
- AFC 아시안컵 역대 순위 : 27위
대회 | 결과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
※ 중화민국 (대만) | ||||||||||
1956년 홍콩 |
본선 진출 실패[4강] | |||||||||
1960년 대한민국 |
결승리그[26] | 3위 | 3 | 1 | 0 | 2 | 2 | 2 | 3 | |
1964년 이스라엘 |
기권 | |||||||||
1968년 이란 |
결승리그[27] | 4위 | 4 | 0 | 2 | 2 | 3 | 10 | 2 | |
1972년 태국 |
기권 | |||||||||
1976년 이란 |
OFC 소속[28] | |||||||||
1980년 쿠웨이트 |
||||||||||
※ 중화 타이베이 | ||||||||||
1984년 싱가포르 |
OFC 소속 | |||||||||
1988년 카타르 |
||||||||||
1992년 일본 |
본선 진출 실패[8개팀] | |||||||||
1996년 아랍에미리트 |
본선 진출 실패[12개팀] | |||||||||
2000년 레바논 |
||||||||||
2004년 중국 |
본선 진출 실패[16개팀] | |||||||||
2007년 아세안 |
||||||||||
2011년 카타르 |
||||||||||
2015년 호주 |
||||||||||
2019년 아랍에미리트 |
본선 진출 실패[24개팀] | |||||||||
2023년 카타르 |
||||||||||
2027년 사우디 |
? | ? | ? | ? | ? | ? | ? | ? | ? | |
합계 | 본선진출 2회 / 3위 1회 | 7 | 1 | 2 | 4 | 5 | 12 | 5 |
4.4. EAFF E-1 풋볼 챔피언십
대회 | 결과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승점 |
2003년 | 진출 실패 | ||||||||
2005년 | |||||||||
2008년 | |||||||||
2010년 | |||||||||
2013년 | |||||||||
2015년 | |||||||||
2017년 | |||||||||
2019년 | |||||||||
2022년 | |||||||||
2025년 | |||||||||
합계 | 본선진출 없음 | 0 | 0 | 0 | 0 | 0 | 0 | 0 |
4.5. 아시안 게임 축구
1954년[33] 필리핀 대회 결승에서 한국을 5:2, 1958년[34] 도쿄 대회 결승에서 3:2로 이기고 금메달 2개를 받았다.4.6. 역대 감독
5. 연령별 대표팀
5.1. U-23 대표팀
5.1.1. AFC U-23 아시안컵
연도 | 결과 | 순위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
2014년 오만 |
예선 탈락 | ||||||||||
2016년 카타르 |
|||||||||||
2018년 중국 |
|||||||||||
2020년 태국 |
|||||||||||
2022년 우즈베키스탄 |
|||||||||||
2024년 카타르 |
|||||||||||
2026년 사우디 |
? | ? | ? | ? | ? | ? | ? | ? | ? | ||
굵은 글씨는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있는 대회 | |||||||||||
합계 | 본선진출 없음 |
5.2. U-20 대표팀
5.2.1. AFC U-20 아시안컵
연도 | 결과 | 순위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
AFC youth championship 대회 | |||||||||||
1959년 말레이시아 |
불참 | ||||||||||
1960년 말레이시아 |
|||||||||||
1961년 태국 |
조별리그 | 10위 | 0 | 4 | 0 | 0 | 4 | 4 | 20 | ||
1962년 태국 |
불참 | ||||||||||
1963년 말레이시아 |
|||||||||||
1964년 남베트남 |
|||||||||||
1965년 일본 |
|||||||||||
1966년 필리핀 |
4강 | 3위[35] | 9 | 7 | 2 | 3 | 2 | 6 | 13 | ||
1967년 태국 |
조별리그 | 10위 | 3 | 3 | 1 | 0 | 2 | 4 | 7 | ||
1968년 대한민국 |
1라운드 | 12위 | 0 | 3 | 0 | 0 | 3 | 1 | 14 | ||
1969년 태국 |
조별리그 | 9위 | 2 | 3 | 0 | 2 | 1 | 6 | 7 | ||
1970년 필리핀 |
조별리그 | 13위 | 0 | 3 | 0 | 0 | 3 | 0 | 5 | ||
1971년 일본 |
조별리그 | 9위 | 3 | 3 | 1 | 0 | 2 | 3 | 6 | ||
1972년 태국 |
조별리그 | 13위 | 1 | 3 | 0 | 1 | 2 | 1 | 7 | ||
1973년 이란 |
불참 | ||||||||||
1974년 태국 |
조별리그 | 11위 | 3 | 3 | 1 | 0 | 2 | 3 | 4 | ||
1975년 쿠웨이트 |
불참 | ||||||||||
1976년 태국 |
|||||||||||
1977년 이란 |
|||||||||||
1978년 방글라데시 |
|||||||||||
1980년 태국 |
|||||||||||
1982년 태국 |
|||||||||||
1985년 UAE |
OFC 회원국 | ||||||||||
1986년 사우디 |
|||||||||||
1988년 카타르 |
|||||||||||
1990년 인도네시아 |
예선 탈락 | ||||||||||
1992년 UAE |
|||||||||||
1994년 인도네시아 |
|||||||||||
1996년 대한민국 |
|||||||||||
1998년 태국 |
|||||||||||
2000년 이란 |
|||||||||||
2002년 카타르 |
|||||||||||
2004년 말레이시아 |
|||||||||||
2006년 인도 |
|||||||||||
AFC U-19 챔피언십 대회 | |||||||||||
2008년 사우디[36] |
예선 탈락 | ||||||||||
2010년 중국 |
|||||||||||
2012년 UAE |
|||||||||||
2014년 미얀마 |
|||||||||||
2016년 바레인 |
|||||||||||
2018년 인도네시아 |
조별리그 | 16위 | 0 | 3 | 0 | 0 | 3 | 2 | 15 | ||
AFC U-20 아시안컵 | |||||||||||
2023년 우즈베키스탄 |
예선 탈락 | ||||||||||
2025년 중국 |
|||||||||||
합계 | 본선진출 5회 / 3위 1회 | 21 | 32 | 5 | 6 | 24 | 30 | 98 |
5.3. U-17 대표팀
5.3.1. AFC U-17 아시안컵
연도 | 결과 | 순위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
AFC U-16 Championship | |||||||||||
1985년 카타르 |
OFC 회원국 | ||||||||||
1986년 카타르 |
|||||||||||
1988년 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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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아랍에미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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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사우디 |
기권 | ||||||||||
1994년 카타르 |
불참 | ||||||||||
1996년 태국 |
예선 탈락 | ||||||||||
1998년 카타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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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베트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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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U-17 Championship | |||||||||||
2002년 아랍에미리트 |
예선 탈락 | ||||||||||
2004년 일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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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싱가포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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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U-16 Championship | |||||||||||
2008년 우즈베키스탄 |
예선 탈락 | ||||||||||
2010년 우즈베키스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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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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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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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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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말레이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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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U-17 아시안컵 | |||||||||||
2023 태국 |
예선 탈락 | ||||||||||
2025년 사우디 |
? | ? | ? | ? | ? | ? | ? | ? | ? | ||
합계 | 본선진출 없음 |
[1]
공을 발로 잡고 있는 새는
두루미이다.
과거 로고에는 두루미인 것이 확실히 드러나 있으나, 날개를 펼치는 모양으로 고치면서 목이
정사영되어 버리다 보니 정면에서는 어떻게 봐도 두루미가 아니라
매에 가까운 모습이 된 것.
[2]
중국어:
중화대북국가족구대
[3]
1위 대만(금메달) 4승 0무 0패 16득 6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1승 2무 1패 15득 12실
3위 버마(동메달) 2승 2무 0패 10득 8실
4위 인도네시아 2승 0무 2패 15득 12실
5위 홍콩(12강 조별리그) 1승 1무 0패 7득 5실
6위 파키스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7득 4실
7위 남베트남(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5득 5실
8위 인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3득 6실
9위 싱가포르(12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3득 7실
10위 일본(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5득 8실
11위 필리핀(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7실
12위 아프간(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4득 12실
이 대회는 12강 조별리그에서 각 조 1위만 4강 토너먼트 진출로 진행되었다.(8강전이 없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 [4] 1위 대만(금메달) 5승 0무 0패 11득 4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4승 0무 1패 15득 6실
3위 인도네시아(동메달) 4승 0무 1패 15득 7실
4위 인도 2승 0무 3패 11득 13실
5위 이스라엘(8강) 2승 0무 1패 6득 3실
6위 홍콩(8강) 2승 0무 1패 8득 6실
7위 남베트남(8강) 1승 1무 1패 8득 5실
8위 필리핀(8강) 1승 0무 2패 4득 9실
9위 파키스탄(14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2득 4실
10위 싱가포르(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4실
11위 버마(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4득 7실
12위 일본(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0득 3실
13위 말라야(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8실
14위 이란(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0득 9실
이 대회는 14강 조별리그 다음 8강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 [5] 지금은 막장이지만 그 당시 필리핀은 알칸타라 같은 당대 초대형 축구스타를 배출했던 축구 강국이었다. [6] 당시의 잉글랜드 축구팀은 지금과는 달리 지상 최강의 팀이었고 1930년 월드컵 우승국 우루과이를 비웃고 1934년 월드컵 우승국 이탈리아와 직접 맞붙어 발라버렸다. 당시 잉글랜드는 월드컵을 우습게보고 불참하던 그런 팀이었고 그 후 1950 월드컵에서 미국에 0:1로 참패한다. [7] 이 당시에 출전한 선수 중에는 홍콩 배우 알란 탐의 아버지인 담강백이 있는데, 아시아 축구왕이라고 불리던 선수였다. 이 사람은 중국이 공산화되자 홍콩에 정착했다. [8] 1위 대만(금메달) 4승 0무 0패 16득 6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1승 2무 1패 15득 12실
3위 버마(동메달) 2승 2무 0패 10득 8실
4위 인도네시아 2승 0무 2패 15득 12실
5위 홍콩(12강 조별리그) 1승 1무 0패 7득 5실
6위 파키스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7득 4실
7위 남베트남(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5득 5실
8위 인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3득 6실
9위 싱가포르(12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3득 7실
10위 일본(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5득 8실
11위 필리핀(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7실
12위 아프간(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4득 12실
이 대회는 12강 조별리그에서 각 조 1위만 4강 토너먼트 진출로 진행되었다.(8강전이 없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 [9] 1위 대만(금메달) 5승 0무 0패 11득 4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4승 0무 1패 15득 6실
3위 인도네시아(동메달) 4승 0무 1패 15득 7실
4위 인도 2승 0무 3패 11득 13실
5위 이스라엘(8강) 2승 0무 1패 6득 3실
6위 홍콩(8강) 2승 0무 1패 8득 6실
7위 남베트남(8강) 1승 1무 1패 8득 5실
8위 필리핀(8강) 1승 0무 2패 4득 9실
9위 파키스탄(14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2득 4실
10위 싱가포르(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4실
11위 버마(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4득 7실
12위 일본(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0득 3실
13위 말라야(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8실
14위 이란(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0득 9실
이 대회는 14강 조별리그 다음 8강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 [10] 1960년 4월 30일 타이베이에서 치러진 1960 로마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도중 폭력 사태로 경기가 중단되어 한국이 몰수패를 당한 경기 포함. [11] 대한축구협회 기록 기준 일본(16승), 이란(13승), 호주(9승), 쿠웨이트/말레이시아/태국(8승). 물론 뒤의 세 나라들 역시 2000년대 이후로는 대한민국의 적수가 아니다. [12] 이 당시 OFC는 전혀 체계화되지 않은 중구난방적 행정 때문에 A매치를 여는 게 힘들었고, 대만도 1년에 A매치를 단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한 채 허송세월을 보낸 적도 많았다. 게다가 오세아니아는 축구 자체가 비인기 종목이기도 하고... 결국 이 14년간의 축출이 대만 축구의 몰락에 결정타로 작용했다. [13] 그러나 이것만으로 대만 축구의 몰락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도 대만처럼 정치적 문제로 AFC에서 OFC로 쫓겨났다가 이후 UEFA로 복귀했지만 자국 축구계는 멀쩡히 유지되고 있으며, 국대는 비록 유럽 팀들과의 전력차로 인해 월드컵이나 유로는 못 나가지만 유로 플레이오프 정도는 간간이 가는 수준으로 대만과는 비교가 실례인 수준이다. 대만 축구의 몰락에는 장제스 정권의 리틀야구 밀어주기와, 대만의 경제력상 자력으로 국제대회를 충분히 개최할 수 있었는데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대만 축구협회의 무능도 빼놓을 수 없다. [14] 2019년에 작고한 핌 베어벡 감독의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데뷔전이었다. [15] 이런 정책으로 2019 아시안컵 본선 진출까지 성공한 필리핀의 사례가 있다. [16] 타이완 섬은 1945년까지 일본 제국의 일부였고, 대륙을 지배하고 있던 중화민국도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았다. [17] 기존의 중국을 관할하던 중화 축구 연합회는 1949년 국부천대와 함께 해체되었고, 현 중화민국 축구 협회의 전신인 중화 전국 축구 위원회는 1954년에 설립되어 같은 해에 FIFA에 가입했다. 중화민국 축구 협회는 이때 자신들이 중화 축구 연합회를 재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 축구 협회(대륙)는 1952년에 중화전국체육총회가 FIFA에 가입하면서 승계를 인정받았다고 주장한다. 동아시아 축구 연맹 사이트에선 두 주장 모두 받아들여 중국과 대만 축구협회의 창설년도를 1924년으로 맞췄다. 중국 대만 [16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24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48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22] 영국에게 0-2로 아깝게 패배했다. 리후이탕이 대표였던 전성기 시절. [23] 터키에게 0-4로 패배해 1라운드 탈락. [24] 이탈리아에게 4-1로, 브라질에게 5-0으로 대패를 당했지만 영국에게 3-2로 석패해 나름 선전했다. [4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26] 이 대회는 지역예선에서 본선 아시안컵에 들어갈 자리가 단 4자리(4강) 아시안컵으로 현재 24자리 아시안컵보다 아시안컵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로 지역예선 통과 후 4강 본선 아시안컵 진출이었다. [27] 이 대회는 지역예선에서 본선 아시안컵에 들어갈 자리가 단 5자리(5강) 아시안컵으로 현재 24자리 아시안컵보다 아시안컵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로 지역예선 통과 후 5강 본선 아시안컵 진출이었다. [28] AFC에게 축출당하고 OFC로 소속을 옮겼다. [8개팀] (8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12개팀] (12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16개팀] (16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24개팀] (24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33] 1위 대만(금메달) 4승 0무 0패 16득 6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1승 2무 1패 15득 12실
3위 버마(동메달) 2승 2무 0패 10득 8실
4위 인도네시아 2승 0무 2패 15득 12실
5위 홍콩(12강 조별리그) 1승 1무 0패 7득 5실
6위 파키스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7득 4실
7위 남베트남(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5득 5실
8위 인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3득 6실
9위 싱가포르(12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3득 7실
10위 일본(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5득 8실
11위 필리핀(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7실
12위 아프간(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4득 12실
이 대회는 12강 조별리그에서 각 조 1위만 4강 토너먼트 진출로 진행되었다.(8강전이 없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 [34] 1위 대만(금메달) 5승 0무 0패 11득 4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4승 0무 1패 15득 6실
3위 인도네시아(동메달) 4승 0무 1패 15득 7실
4위 인도 2승 0무 3패 11득 13실
5위 이스라엘(8강) 2승 0무 1패 6득 3실
6위 홍콩(8강) 2승 0무 1패 8득 6실
7위 남베트남(8강) 1승 1무 1패 8득 5실
8위 필리핀(8강) 1승 0무 2패 4득 9실
9위 파키스탄(14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2득 4실
10위 싱가포르(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4실
11위 버마(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4득 7실
12위 일본(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0득 3실
13위 말라야(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8실
14위 이란(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0득 9실
이 대회는 14강 조별리그 다음 8강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 [35] 태국과 공동 3위 [36] 이 대회부터 3.4위전 폐지
2위 대한민국(은메달) 1승 2무 1패 15득 12실
3위 버마(동메달) 2승 2무 0패 10득 8실
4위 인도네시아 2승 0무 2패 15득 12실
5위 홍콩(12강 조별리그) 1승 1무 0패 7득 5실
6위 파키스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7득 4실
7위 남베트남(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5득 5실
8위 인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3득 6실
9위 싱가포르(12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3득 7실
10위 일본(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5득 8실
11위 필리핀(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7실
12위 아프간(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4득 12실
이 대회는 12강 조별리그에서 각 조 1위만 4강 토너먼트 진출로 진행되었다.(8강전이 없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 [4] 1위 대만(금메달) 5승 0무 0패 11득 4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4승 0무 1패 15득 6실
3위 인도네시아(동메달) 4승 0무 1패 15득 7실
4위 인도 2승 0무 3패 11득 13실
5위 이스라엘(8강) 2승 0무 1패 6득 3실
6위 홍콩(8강) 2승 0무 1패 8득 6실
7위 남베트남(8강) 1승 1무 1패 8득 5실
8위 필리핀(8강) 1승 0무 2패 4득 9실
9위 파키스탄(14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2득 4실
10위 싱가포르(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4실
11위 버마(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4득 7실
12위 일본(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0득 3실
13위 말라야(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8실
14위 이란(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0득 9실
이 대회는 14강 조별리그 다음 8강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 [5] 지금은 막장이지만 그 당시 필리핀은 알칸타라 같은 당대 초대형 축구스타를 배출했던 축구 강국이었다. [6] 당시의 잉글랜드 축구팀은 지금과는 달리 지상 최강의 팀이었고 1930년 월드컵 우승국 우루과이를 비웃고 1934년 월드컵 우승국 이탈리아와 직접 맞붙어 발라버렸다. 당시 잉글랜드는 월드컵을 우습게보고 불참하던 그런 팀이었고 그 후 1950 월드컵에서 미국에 0:1로 참패한다. [7] 이 당시에 출전한 선수 중에는 홍콩 배우 알란 탐의 아버지인 담강백이 있는데, 아시아 축구왕이라고 불리던 선수였다. 이 사람은 중국이 공산화되자 홍콩에 정착했다. [8] 1위 대만(금메달) 4승 0무 0패 16득 6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1승 2무 1패 15득 12실
3위 버마(동메달) 2승 2무 0패 10득 8실
4위 인도네시아 2승 0무 2패 15득 12실
5위 홍콩(12강 조별리그) 1승 1무 0패 7득 5실
6위 파키스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7득 4실
7위 남베트남(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5득 5실
8위 인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3득 6실
9위 싱가포르(12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3득 7실
10위 일본(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5득 8실
11위 필리핀(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7실
12위 아프간(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4득 12실
이 대회는 12강 조별리그에서 각 조 1위만 4강 토너먼트 진출로 진행되었다.(8강전이 없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 [9] 1위 대만(금메달) 5승 0무 0패 11득 4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4승 0무 1패 15득 6실
3위 인도네시아(동메달) 4승 0무 1패 15득 7실
4위 인도 2승 0무 3패 11득 13실
5위 이스라엘(8강) 2승 0무 1패 6득 3실
6위 홍콩(8강) 2승 0무 1패 8득 6실
7위 남베트남(8강) 1승 1무 1패 8득 5실
8위 필리핀(8강) 1승 0무 2패 4득 9실
9위 파키스탄(14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2득 4실
10위 싱가포르(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4실
11위 버마(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4득 7실
12위 일본(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0득 3실
13위 말라야(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8실
14위 이란(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0득 9실
이 대회는 14강 조별리그 다음 8강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 [10] 1960년 4월 30일 타이베이에서 치러진 1960 로마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도중 폭력 사태로 경기가 중단되어 한국이 몰수패를 당한 경기 포함. [11] 대한축구협회 기록 기준 일본(16승), 이란(13승), 호주(9승), 쿠웨이트/말레이시아/태국(8승). 물론 뒤의 세 나라들 역시 2000년대 이후로는 대한민국의 적수가 아니다. [12] 이 당시 OFC는 전혀 체계화되지 않은 중구난방적 행정 때문에 A매치를 여는 게 힘들었고, 대만도 1년에 A매치를 단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한 채 허송세월을 보낸 적도 많았다. 게다가 오세아니아는 축구 자체가 비인기 종목이기도 하고... 결국 이 14년간의 축출이 대만 축구의 몰락에 결정타로 작용했다. [13] 그러나 이것만으로 대만 축구의 몰락을 설명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도 대만처럼 정치적 문제로 AFC에서 OFC로 쫓겨났다가 이후 UEFA로 복귀했지만 자국 축구계는 멀쩡히 유지되고 있으며, 국대는 비록 유럽 팀들과의 전력차로 인해 월드컵이나 유로는 못 나가지만 유로 플레이오프 정도는 간간이 가는 수준으로 대만과는 비교가 실례인 수준이다. 대만 축구의 몰락에는 장제스 정권의 리틀야구 밀어주기와, 대만의 경제력상 자력으로 국제대회를 충분히 개최할 수 있었는데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대만 축구협회의 무능도 빼놓을 수 없다. [14] 2019년에 작고한 핌 베어벡 감독의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데뷔전이었다. [15] 이런 정책으로 2019 아시안컵 본선 진출까지 성공한 필리핀의 사례가 있다. [16] 타이완 섬은 1945년까지 일본 제국의 일부였고, 대륙을 지배하고 있던 중화민국도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았다. [17] 기존의 중국을 관할하던 중화 축구 연합회는 1949년 국부천대와 함께 해체되었고, 현 중화민국 축구 협회의 전신인 중화 전국 축구 위원회는 1954년에 설립되어 같은 해에 FIFA에 가입했다. 중화민국 축구 협회는 이때 자신들이 중화 축구 연합회를 재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중국 축구 협회(대륙)는 1952년에 중화전국체육총회가 FIFA에 가입하면서 승계를 인정받았다고 주장한다. 동아시아 축구 연맹 사이트에선 두 주장 모두 받아들여 중국과 대만 축구협회의 창설년도를 1924년으로 맞췄다. 중국 대만 [16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24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32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48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다. [22] 영국에게 0-2로 아깝게 패배했다. 리후이탕이 대표였던 전성기 시절. [23] 터키에게 0-4로 패배해 1라운드 탈락. [24] 이탈리아에게 4-1로, 브라질에게 5-0으로 대패를 당했지만 영국에게 3-2로 석패해 나름 선전했다. [4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26] 이 대회는 지역예선에서 본선 아시안컵에 들어갈 자리가 단 4자리(4강) 아시안컵으로 현재 24자리 아시안컵보다 아시안컵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로 지역예선 통과 후 4강 본선 아시안컵 진출이었다. [27] 이 대회는 지역예선에서 본선 아시안컵에 들어갈 자리가 단 5자리(5강) 아시안컵으로 현재 24자리 아시안컵보다 아시안컵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로 지역예선 통과 후 5강 본선 아시안컵 진출이었다. [28] AFC에게 축출당하고 OFC로 소속을 옮겼다. [8개팀] (8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12개팀] (12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16개팀] (16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24개팀] (24강) 본선 아시안컵에 진출 실패했다. [33] 1위 대만(금메달) 4승 0무 0패 16득 6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1승 2무 1패 15득 12실
3위 버마(동메달) 2승 2무 0패 10득 8실
4위 인도네시아 2승 0무 2패 15득 12실
5위 홍콩(12강 조별리그) 1승 1무 0패 7득 5실
6위 파키스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7득 4실
7위 남베트남(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5득 5실
8위 인도(12강 조별리그) 1승 0무 1패 3득 6실
9위 싱가포르(12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3득 7실
10위 일본(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5득 8실
11위 필리핀(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7실
12위 아프간(12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4득 12실
이 대회는 12강 조별리그에서 각 조 1위만 4강 토너먼트 진출로 진행되었다.(8강전이 없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 [34] 1위 대만(금메달) 5승 0무 0패 11득 4실
2위 대한민국(은메달) 4승 0무 1패 15득 6실
3위 인도네시아(동메달) 4승 0무 1패 15득 7실
4위 인도 2승 0무 3패 11득 13실
5위 이스라엘(8강) 2승 0무 1패 6득 3실
6위 홍콩(8강) 2승 0무 1패 8득 6실
7위 남베트남(8강) 1승 1무 1패 8득 5실
8위 필리핀(8강) 1승 0무 2패 4득 9실
9위 파키스탄(14강 조별리그) 0승 1무 1패 2득 4실
10위 싱가포르(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4실
11위 버마(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4득 7실
12위 일본(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0득 3실
13위 말라야(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2득 8실
14위 이란(14강 조별리그) 0승 0무 2패 0득 9실
이 대회는 14강 조별리그 다음 8강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
아시안게임 축구 대회는 1998년까지 A매치 대회였다. [35] 태국과 공동 3위 [36] 이 대회부터 3.4위전 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