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비서실 제도개혁비서관 | ||||
문재인 정부 | ||||
3대 이신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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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윤난실 |
→ | 폐지 |
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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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82e59><colcolor=#ffffff> 문재인 정부 제4대 대통령비서실 제도개혁비서관
윤난실 尹蘭實 | Yoon Nansh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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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 | 광주일란(光州一蘭) |
본관 | 해남 윤씨[1] |
출생 | 1965년 12월 23일 ([age(1965-12-23)]세) |
전라남도 강진군 | |
학력 |
광주여자고등학교 (졸업) 광주교육대학교[2] ( 사회학 / 명예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 행정학 / 학사) 전남대학교 정책대학원 ( 행정학 / 석사 과정 수료) |
소속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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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력 |
제4대
광주광역시의회 시의원 광산구공익활동지원센터장 경상남도청 사회혁신추진단장 대통령비서실 제도개혁비서관 (제4대 / 문재인 정부) |
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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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수필가, 정치인이다. 본관은 해남(海南), 아호(雅號)는 광주일란(光州一蘭, 광주일난)이다.5.18 민주화운동 마지막 수배자였던 윤한봉이 그의 둘째 작은아버지이다.
2. 생애
윤난실은 1965년 12월 23일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아버지 윤태선(尹泰善, 1934. 12. 10 ~ 2012. 3. 1)과 어머니 동복 오씨(同福 吳氏) 오숙민(1934. 5. 5 ~ )[3] 사이의 3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윤난실의 가족사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산 역사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된 아버지 윤태선을 비롯해 첫째 작은아버지 윤광장(尹光將, 1942. 4. 4 ~ )은 전교조 해직교사로, 둘째 작은아버지 윤한봉은 5.18 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로, 셋째 작은아버지 윤영배(尹泳培, 1951. 11. 21 ~ )는 농민운동으로 투옥되었다.광주여자고등학교 졸업 후 1984년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 광주교육대학교에 입학해 사회학을 전공했고, 총학생회 부회장을 지냈다. 그러나 2학년 되던 1985년 군사교육 반대 투쟁에 앞장서다 학교 당국으로부터 무기정학을 받았고, 3학년 때 결국 대학을 그만두었다.
1986년 학력을 속이고 방직공장과 메리야스공장에 들어가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노동야학과 광주지역노동조합협의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광주전남본부에서 총무기획실장, 광주광역시지부 부지부장을 지내는 등 왕성하게 활동해 광주 지역 노동자들의 기본권 확보와 노동자 정치 운동의 기틀을 다졌다. 늘 삶의 나침판이자 든든한 동지가 된 사람이 둘째 작은아버지 윤한봉 선생이었다.
2002년 6월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최초의 민주노동당 광주광역시의회 의원(비례대표)으로 당선된 이후, 2002년 산업건설 예산결산 위원 및 2004년 대중교통개선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광주광역시 태양에너지 조례 제정, 시내버스 준공영제 도입,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지원 조례 제정 등을 주도해 '광주일란(光州一蘭)', '윤 의원'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광주광역시의회의원선거 서구 제2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한 후, 1년 6개월간 광주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시선집중 광주>를 진행하며, 매일 광주의 현안과 해법을 날카롭게 짚어내 광주에서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08년 진보신당이 창당되자 이에 입당해 중앙당 부대표에 취임했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주광역시장으로 출마하였는데, 군소정당으로서도 5%를 넘기는 무시 못할 득표를 거뒀다. 2011년에는 통합진보당으로 옮겨 광주광역시당 공동위원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에서 19대 총선을 앞두고 진보신당 탈당파이자 구 주류인 새진보통합연대를 순번에서 밀어내다시피 하면서 해당 정파의 가장 앞 순번임에도 외부인사 영입 등에 밀랴 당선 불가능권인 13번에 배정되는 수모를 겪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의 여파로 승계를 거부하고 사퇴하면서 뒷 순위인 서기호가 의원직을 사퇴하였다. 이후 진보정의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고 민주당 행보로 이어진 건 이런 배경도 있을 듯.
2013년부터는 시민자치와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양을 굳건히 다지기 위해 광산구공익활동지원센터 센터장을 역임하고 '아이키우기 좋은마을 광산운동본부'출범시켜 '병원아동보호서비스 사업' 등의 소중한 성과를 만든 바 있다.
2019년부터 김경수 경상남도지사가 추진하는 <사회혁신추진단>의 단장을 맡아 전국최초로 공공의료 정책 공론화를 통해 진주의료원 재개원, 경남마을공동체지원센터, 공익활동지원센터, 청년 중간지원조직인 청년온나, 청년창업지원펀드인 '청년하모', 전국최초의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작업복 세탁소 설치, 다랑이논 지원프로젝트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내면서 '주민주도 지역문제해결 유공 대통령 표창(2020)'을 받았다.
2021년 5월부터는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대통령비서실 제도개혁비서관으로 임명되어 2022년 1월까지 문재인정부의 제도개혁과 사회혁신의 일선에서 업무를 추진하였다.
비서관직을 사임 후 2022년 3월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장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2022년 4월 30일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장 경선에서 23.97%의 득표율로 42.51%를 득표한 광주광역시 경제부시장 출신의 박병규 예비후보에게 패배하였다.
3. 경력
- 1985년 ~ 2002년 노동야학, 광주지역노동조합협의회, 민주노총광주전남본부 등 노동운동
- 1991년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진보정당추진위,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운동
- 2002년 ~ 2006년 제4대 광주광역시의회 의원 / 대중교통개선특별위원장
- 2005년 빛고을생활협동조합 고문
- 2005년 민주노총 기획국장
- 2006년 12월 ~ 2008년 7월 광주MBC 라디오 프로그램 《시선집중 광주》 진행자
- 2007년 들불열사기념사업회 부이사장
- 2009년 진보신당 부대표
- 2009년 광주전남 북한이주민 지원센타 이사
- 2010년 6.2 지방선거 광주광역시장 후보
- 2012년 (사)지혜학교 이사장
- 2012년 광주시민정책연구소 이사장
- 2013년 ~ 2017년 광산구공익활동지원센터 센터장
- 2017년 아이키우기 좋은 마을 광산운동본부 상임대표
- 2018년 1월 31일 더불어민주당 입당
- 2018년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당 부위원장
- 2018년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장 예비후보자
- 2018년 경상남도 사회혁신보좌관
- 2019년 ~ 2021년 경상남도청 사회혁신추진단장
- 2021년 ~ 2022년 1월 20일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실 제도개혁비서관
-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장 예비후보
4. 가족
- 조부 윤옥현(尹玉鉉, 1916. 6. 2 ~ 1975. 2. 6)은 3대에 걸쳐 칠량면장을 지낸 지방공무원 출신으로, 칠량면 청년단장, 칠량면 소방대장 등을 지낸 친정부 인사였으나, 조부 슬하 6남매(4남 2녀) 중 아버지 윤태선 외 3명의 숙부들이 모두 민주화운동 등 사회운동에 참여해 양심수로 투옥된 바 있다.
- 아버지 윤태선(尹泰善, 1934. 12. 10 ~ 2012. 3. 1)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투옥된 바 있다.
- 첫째 작은아버지 윤광장(尹光將, 1942. 4. 4 ~ )[4]은 1980년 5월 광주대동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중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구속되어 소요죄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해직되었다. 이후 복직되어 1987년 '민주교육 광주전남교사협의회' 초대 회장을 지냈으나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에 참여해 재차 해직되는 등 3차례에 걸쳐 교직을 떠났다가 복직했다. 1993년 5.18 민중항쟁구속자동지회장을 역임하고 2004년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에서 정년퇴임했다. 2008년 4월에는 5.18 기념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 둘째 작은아버지 윤한봉은 5.18 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였다. 윤난실 역시 들불열사기념사업회에 적극 참여하였고, 현재 윤한봉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다.
- 셋째 작은아버지 윤영배(尹泳培, 1951. 11. 21 ~ )는 강진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강진군농민회장을 지내며 농민운동을 주도하다가 투옥된 바 있으며,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각각 민주당과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전라남도의회 의원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 작은고모 윤경자(尹敬子, 1954. 11. 15 ~ )는 1971년 전남대학교 이념서클 민족사회연구소를 주도했던 진원 박씨 박형선(朴炯璇)과 결혼했다. 박형선 역시 민청학련 사건과 5.18 민주화운동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윤한봉의 가장 가까운 동지 중 한 명이었다.
5. 저서
- <윤난실을 드립니다> - (전라도닷컴, 2017년)
- <진보 콘서트> - (레디앙, 2010년)
- <아름다운 왕따들> - (이매진, 2006년)
6. 수상
- 2003년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우수의원
- 2005년 제1회 장애인인권상
- 2005년 한국지방자치학회 우수조례특별상
- 2018년 (사)지역발전정책연구원 한국지역발전대상
- 2020년 주민주도 지역문제 해결 유공 대통령 표창
7.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2 |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광주 비례대표 |
[[민주노동당| |
58,089 (14.78%) | 당선 (1번) | 초선 |
2006 |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광주 서 2 | 8,327 (32.76%) | 낙선 (2위) | ||
2010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 광주광역시장 |
[[진보신당| |
30,834 (5.89%) | 낙선 (5위)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비례대표 |
[[통합진보당| |
2,198,082 (10.30%) | 낙선 (13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