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2 08:40:04

유승민/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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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가족 관련
3.1. 의 인기
4. 기자들 사이에서의 인기5. 우파 유튜버 태극기 부대와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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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승민의 여담에 관한 문서.

2. 상세

  • 원내대표 시절 원내부수석이었던 조해진 의원과 함께 새누리당 젠틀맨으로 불렸다. 국회 사무처 직원들과 의원 보좌관들한테 정말 잘해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소위 친유 정치인들은 더민주와 정의당 등 상대 진영에서 평이 좋다.
  • 원래 흡연자였으나 2020년 총선 이후 금연하는 중이라고 한다.
  • 유승민은 이회창의 제안으로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부임할 때까지만 해도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유승민이 바라는 것은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어서 본인이 경제수석이 되는 게 목표였다고 한다. 관련 기사 즉 본래부터 유승민은 본인이 배운 경제학을 현실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이회창이 예상치 못하게 패배하면서 계획이 흐트러졌고 이는 유승민이 정치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 박근혜를 주군이나 상전으로 여긴 적이 없고 동등한 관계인 정치적 동지로 여겼다고 한다. 물론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만큼 존대는 했지만 그것이 전근대적인 의미로의 충성심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2005년 세번이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을때, 할말은 하겠다는 조건으로 9개월간 수행했었다. 이 시기 박근혜에게 정수장학회에서 손 떼라고 조언했으나 박근혜는 비서실장이 그런 거 신경쓰지 말라 했고, 이때부터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 자신을 '시'민이라고 혼동할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고 한다. 이는 유시민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작 유시민을 제대로 쓰면 류시민이 되기 때문에, 유승민과는 성씨가 아예 다르다. 유시민은 "유승민 씨는 저와 성이 달라서, 유비 할 때 劉 씨를 사용합니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또한 풍산 류씨를 포함한 柳씨는 적극적으로 '류'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고 강릉 유씨를 포함한 劉씨는 그렇지 않다는 차이가 있다. 다만 이건 정치 행적 이야기고 두 사람은 서울대 경제학과 2년 선후배에 중학교도 선후배(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1][2][3][4]
  • 100분 토론에서 대표적인 진보 논객 유시민과 경제정책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이 새삼 화제가 되었다. 그동안 100분 토론에서 보수 측 인사들이 유시민과 토론을 하면 언변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유승민은 기본적으로 언변이 뛰어나고, 만렙 경제학자답게 논지에 어긋나지도 않고 논리적으로 토론하며 경제 지식에서 유시민을 압도한다.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정치적인 공방에서도 유시민이 밀리는 분위기였다. 어찌보면 당시 과반을 간신히 넘기는 여당 입장에서 여러 비판을 받는게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위 토론의 주제는 정책에 관하여 여러가지 사안에 대하여 논하는 것이었는데, 실리를 따지는 논쟁(ex 수도권 공장총량제)에서 불리해지면 철학적 소견(국가 균형발전)을 이유로 회피하고, 옮고 그름을 논할 때(출자총액 제한제도) 불리해지면 갈라파고스적인 우리나라의 현실(재벌주도의 경제구조)에 불가피한 이유를 들며 회피하는 유시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파일:정봉주 유승민 몸싸움(2005년).gif
  • 2005년 12월 사학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국회가 국회 공성전을 한창 벌이면서 난장판이 된 도중 정봉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과 몸싸움이 빚어진 적이 있는데, 정 의원이 젊은 시절 쿵후와 권투를 배웠고 고등학생때 일진도 저리가라할 정도로 전투적이었던 몸인지라 상당히 밀리는 모양새다. MBC 뉴스 정봉주 의원을 제지하러 움직인 인물은 정세균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다.[5]
  • 박근혜 한나라당의 당대표를 하던 시절 유승민이 비서실장을 맡았는데, 전여옥의 증언에 따르면 이회창의 밑에 있던 시절의 경험을 살려 연설문 초안을 담당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기자이자 작가 출신인 전여옥은 유승민 의원이 글을 잘 쓴다고 직접적으로 칭찬하기도 했는데, 하지만 기껏 만든 초안은 박근혜가 늘 어딘가로 갖고 가서는 연설문이 쓰레기가 되었다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연설문을 막장으로 개조한 원흉은 최순실. 그걸 안 전여옥은 "누군가 했더니"라고 반응했다. 그냥 그 연설문 초안 그대로 했어도 담당자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중박은 쳤을 텐데 말이다. 전여옥의 증언에 따르면 유승민이 비서실장이었던 시절 쓴 연설문을 하나도 안 고치고 그대로 읽었던 것은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경선 패배 승복 연설뿐이었다고 한다.
  • 한때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한 몸인 만큼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순실에 대해서 박근혜 옆에 있던 다른 무리들처럼 기껏해야 옆에서 아양 떠는 환관이나 간신배로 여겼지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휘두르는 수준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 전여옥 최순실이 철부지 옆에 상궁이 나타났다고 여겼지 박근혜를 꼭두각시로 부리는 수준이었다는 건 최순실 게이트가 일어나고 난 이후에야 알았다고 한다.
  • 유명 정치인 중에 임플란트로 가장 잘 알려진 건 대통령이 되기 한참 전부터 대통령이 된 이후까지 치아가 빠진 문재인이나, 사실 덜 알려져서 그렇지 정치인의 대량 임플란트 원조는 이 사람이다. 본인이 공개한 것만 15개 이상이라고 한다. 2002년말 40대 중반에 이회창 후보의 선거본부 활동때부터 치아가 빠지기 시작해 만 50살 직전인 2007년 박근혜 경선 선거본부 시절까지 심각한 치주염으로 잇몸이 마구 망가져서 15개 이상이 빠졌다고 한다. 50년도 살기 전에 웬만큼 치아잇몸 안 좋은 사람도 겪기 힘든 수준[6]의 치아손실을 겪었다. 대통령이 찍어도 넘어가지 않았다 아래 앞니는 전체가 임플란트고 어금니도 여러개 없어 다 임플란트라고 한다.[7] 그 이후에도 상당한 치아손실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남은 치아가 10개도 안된다고 알려진다. 심지어 저 시기를 한참 지난 이후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유승민이 원내대표가 되어 심하게 정치적 갈등을 빚었던 시절인 2015년, 청와대 만찬행사 초청이 오자 껄끄러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유승민이 거절하며 청와대측에 밝힌 명목상 이유도 '임플란트한지 얼마 안 돼서 만찬하기에 잇몸이 불편하고 몸상태가 안 좋다'는 것이었을 정도다.[8] 정말 임플란트로 불편했는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대량손실 이후에도 계속 치아가 조금씩 빠져 임플란트 시술을 받아온 것만은 팩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 2013년 대구의 대구테크노파크(TP) 측에서 대구 지역의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들의 보좌관들에게 금품을 건네고 골프 접대를 한 사건이 있었는데, 여기에 유승민의 보좌관 A가 연루되었다. # 이에 유승민은 사과문을 발표하며 해당 보좌관을 즉시 해임하였으며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라 하였다. 이 사건에충격이 컸던지 이때부터 유승민은 거물급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보좌관을 얼마두지 않는, 최소한의 보좌관만 데리고 일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2015년 모 언론사 보도에 의하면, 지역구인 대구 동구의 사무실 직원들까지 합해 유승민은 총 15명가량을 보좌관과 운전기사 등으로 둘 수 있지만, 그 절반도 안되는 인원만 고용하여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2016년 9월 12일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2016년 경주 지진으로 인해 1주일 미루어졌다. 그리고 1주일 뒤인 2016년 9월 19일 경북 경주시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다시 발생했다. 2017년 2월 16일 뉴스룸 2부 대선 예비주자 검증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경남 합천군에서 진도 2.9의 지진이 났다고 한다.[9] 급작스럽게 지진 이슈에 대해 손석희 앵커와 대담을 했는데, 준비도 안 되었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안전처의 재난대응 문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견해와 더불어 국회 지진안전 예산문제까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진행하였다. 심지어 원전 현황을 이야기 할때는 원전 소재지역과 가동, 건설 중인 원전의 개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지진예측시스템, 원전 소재지의 단층파악문제까지 언급하는 등 디테일한 사항까지 꿰뚫고 있어 뉴스룸 시청자들은 놀라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6년 9월 19일 뉴스룸
  • 하태경 의원이 "유승민이 원내대표였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새누리당 분위기가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고 썰전에서 밝혔다. 친박이건 비박이건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그리고 2017년 1월 2일, JTBC에서 이재명 성남시장, 전원책 변호사, 유시민 작가와의 뉴스룸 진행 후 100분 토론에 참여했다. 이 토론에서 유승민은 재차 박근혜 정부의 잘못에 대한 본인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고, 본인의 복지 노선과 개혁보수신당의 향후 진행방향에 대해 밝혔다.
  • 미우프에서 본인의 포지션을 맡고 있는 유목민 역의 장도윤을 직접 만났다.[10] 장도윤이 딸인 유담과 비슷한 또래의 나이인지라, 아들처럼 반가워해줬다고 한다. 참고로 장도윤은 유담보다 1살 어린 1995년생이라, 유담에게 누나라고 불렀다.
  • 볼프강 프록쉐 (Wolfgang proksch) 안경( 독일산)을 사용한다.
  • 유년 시절 야구를 보기 위해 가출했던 적이 있다. #
  • 사적으로 정두언 전 의원과 친분이 깊다. 첫 인연은 제16대 대통령 선거 이회창 캠프에서 일하던 것이 계기로, 이 때 서로를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정두언은 이명박의 편이었고 자신은 박근혜 진영이라 서로 대립했지만 친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13] 인터뷰에서 유승민의 행적에 대해 정두언이 비판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적으로는 여전히 친한 사이라고 한다.
  • 언변이 뛰어난 정치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14]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대통령 후보 지근거리에서 정책 개발, 연설 및 메시지 담당을 한 적도 있다. 자신의 연설문은 직접 쓰는 것은 물론 의원실 명의로 나가는 보도자료도 대부분 본인이 직접 쓴다고 알려져 있다.[15]
  •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유승민이 빵을 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찍혀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2019년에 조국이 그걸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조국 ‘케이크 귀가 사진’ 연출 의혹, 1년 만에 올린 페북 해명 각도와 상황등이 상당히 유사하며 다른 점이라면 조국의 자세는 유승민이 찍힌 자세보다도 카메라에 나오기 좋은 포지션이라는 점에서 의심을 받았다. 다만 조국 본인이 부인하고 있고 우연일 수도 있어서 진짜 의도적으로 그 모습을 연출했는지는 또는 단순한 해프닝인지는 알 수가 없다.
  • 19대 대선 당시 주요 정당 후보들 중 유일하게 불교 신자이다.[17]
  • 차가워보인다는 인상과 다르게 의외로 좀 노는 편이다. 유승민은 차가워보인다는 평론가들의 평가를 부인하며 평소에 술도 잘 마시고 잘 놀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명하였다.
  • 21대 총선이 다가오고 새보수당과 자유한국당이 합당해 미래통합당이 탄생하면서 유승민은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그런데 이때 정계에서 유승민의 종로 출마설이 만만치 않게 나왔다. 당시만 해도 여의도에서 도는 그냥저냥한 뜬소문으로 치부되었으나 훗날 유승민이 종로 출마를 고민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고 황교안 대표가 출마하지 않았을 경우 출마를 할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 21대 총선 이후 지지율이 하락세를 타게 되자 유승민에게 반감이 있는 이들이 지지율이 '기타' 항목의 지지율과 비슷하다며 기타리스트, 유미 핸드릭스 등의 멸칭으로 부르며 조롱하고 있다.
  • 보노보노와 매우 닮았다.

3. 가족 관련

파일:ㅇㅅㅎ.png
▲ 유승민의 아버지 유수호
파일:독립운동가강일원.png
▲ 유승민의 외삼촌 강일원
  • 아버지는 판사 출신으로 제13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수호 의원이다. 2015년 11월 7일 아버지 유수호 의원의 사망 때 상주를 지내며 정계 각종 인사들을 맞았다. 부친인 유수호 의원도 박정희 정권 때 사법 파동으로 법복을 벗어야 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서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축출된 것은 2대에 걸친 악연인 셈이다.
  • 유승민 의원의 아들인 유훈동씨가 입시준비를 위해서 논술학원에 다니려고 했는데, 입시에 필요한 요령만 가르치는 학원은 안 좋다고 유의원이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원 보내는 대신 유승민 의원이 직접 논술을 가르쳤다고... 결과는 서울대 경제학과 합격.

3.1. 의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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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유세 과정에서 친딸 유담이 언론의 미모 관련 기사 도배로 유명해져, 아예 독립 문서까지 생겼다.

4. 기자들 사이에서의 인기

파일:유승민 기자 1.jpg
파일:유승민 기자 2.jpg
세상 모든 일은 정치가 다뤄야 할 일이고, 정치인이 고민해야 할 일이다. 현안이고 아니고 그런 거 없다. 편안하게 물어봐 달라. 정치부 3년 하는 동안, 이런 말을 한 정치인은 유승민 말고는 한 명도 없었다. - 프레시안 소속 최하얀 기자 -

유승민 의원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주제이건 질문을 하더라도 기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답변을 전달한다고 한다. 또한 기자들의 피드백은 물론이고, 어떤 주제이건 전문가다운 답변을 내놓음과 동시에 보좌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끝까지 기자들을 응대한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질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다시 기자들에게 내용을 되물으며 내용을 놓치지 않는다.

심지어 대선 출마 간담회 이후 참석한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한 기자가 정치부에 오기 전 다른 부서에서 작성했던 특집 기사를 언급해 동석자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고도 한다. 또한 대개 언론에서 국회의원 인터뷰를 할 때는 보좌진에게 질문 내용이 전달되고, 그걸 의원 본인이 추려서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유승민은 그런 과정이 없이 본인이 직접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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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 유승민 후보 마크맨(전담취재기자)의 취재후기

1999년부터 시상된 '백봉신사상'은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념하는 기념사업회에서 매년 정치부(국회출입기자)들 사이의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그해의 가장 모범적인 국회의원을 뽑는 상이다. 정직성, 사회·국민에 대한 헌신, 정치적 리더십, 의회민주주의 실천, 소통능력 등이 평가 대상이며, 사실상 기자들 사이의 국회의원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상이다. 유승민 의원은 이전에도 수차례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렸지만, 2015년과 2016년은 각각 대상을 수상하였다. 특히 정의화 국회의장은 시상기념사에서 "유승민 의원은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선정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파일:유승민 백봉신사상.jpg 파일:유승민 백봉2.jpg
2015년 정의화 국회의장, 2016년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백봉신사상 대상을 수여받는 유승민

사실 이와 같은 인기는 유승민의 언론 독립성에 대한 소신 덕택일 가능성도 높다. 유승민은 KDI연구원 시절부터 공기업 독점에 의한 광고업의 폐해 등 언론의 독립성을 매우 강력하게 주장해왔고, 특히 재벌 대기업의 언론사 소유를 금지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그리하여 2009년 속칭 '미디어법 개정 파동' 사태 당시 한나라당의 찬성이라는 당론을 깨고 반대하였으며, 2012년 이명박 정부와 MBC의 갈등으로 촉발된 언론노조 파업 당시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현재 MBC와 KBS의 사장선임방식 등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해당 파업을 지지하였다.

심지어 이로 인해 MBC에 미운털이 박혀, 그를 향한 복수를 하고 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노조파업 지지했던 유승민에 대한 MBC의 꼼꼼한 뒤끝과 복수
파일:유승민 언론.jpg

당시 파업 중인 노조대표들과 면담하는 유승민. 심지어 당시는 2012년 총선 직전이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심장과도 같은 대구에서 출마하는 한나라당 후보자가 당시 정부에 반대되는 소신을 지킨 것.

2017년 대선 1차 토론회가 열리는 SBS 프리즘타워 앞에서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언론노조 조합원과 마주쳤는데, 간단한 인사만 하고 입장하는 몇몇 후보와는 달리 언론사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이 많다며 사뭇 진지하게 대화하는 유승민이 포착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아래의 동영상에서 마이크를 든 연사 역시 2012년 유승민의 언론사 파업 지지를 언급하며 꼭 부탁드린다고 연설 중이다,

토론회장 앞에서 시위 중인 언론노조와 대화하는 유승민

2022년 2월 여의도 하우스(HOW'S) 카페에서 윤석열 후보와 만나 지지선언을 하는 기자회견에서도, 윤석열 후보를 먼저 종로 유세에 보낸 후, 기자들과 일일이 오랫만이다 하며 인사를 나눴다.

또한 경기도지사 출마선언 이후 기자회견에서, 여러분들 전화 제대로 못받아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회견 후에도 기자들과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눴다. 이때 한 기자가 유승민 정계은퇴를 언급하는 기사를 전날 썼는데, 출마 기자회견장에서 해당 기자가 굉장히 난감해하자 내가 아무말도 안해서 그런거지, 실제로 정계은퇴를 고민했으니 별로 오보는 아니다 라며 해당 기자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파일:기자들.jpg
기자들이 유승민 후보와 명함교환을 위해 노트북과 명함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장면

5. 우파 유튜버 태극기 부대와의 갈등

김무성: 앞으로 내가 보수 유튜버들하고 싸우려 그래. 나쁜 놈들이야. 이놈들 전부 돈 벌어먹으려고 하는 놈들이야.
김웅: 아휴, 싸우지 마십시오. 제가 싸우겠습니다
김무성: 아니 유승민이가 뭐 잘못했나? 대통령 권력이 잘못됐으면 거기에 저항을 해야지, 저항했다고 유승민이 죽일 놈이라 그러고 탄핵가지고 나랑 유승민이 역적이라 그러고 매일 우리는 화형식 당하고 말이야. 우리 인형 만들어가지고 개 끌듯이 끌고 당기고 말이야. 그걸 다 전해들었는데 그때 소위 친박이라는 사람들이 단 한명도 나에게 찾아와가지고 탄핵하면 안된다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니까? 조원진이가 어디서 인터뷰 나한테 반대를 했는데 내가 뿌리쳤다. 전부 거짓말이야 한번도 나한테 온 일이 없어. (중략)
(한국일보)극우 유튜버를 향한 김무성의 직설, “전부 썩은 놈들이야”

유승민, 김무성 둘은 우파 성향의 유튜버들과 태극기 부대에게 가장 많은 공격과 비난을 당한 정치인 중 한명이다.[19] 우파 유튜버, 태극기 부대, 친박, 강성 지지자들 등에게 주로 기존 박근혜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로부터 유래한 '배신자' 프레임으로 많이 비방을 당해왔다.[20] 한편 비박계 정치인들 및 범친유계에서는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고 옳은소리하고 저항하는 것을 배신이라 표현하는 것은 부당하는 입장.

또한 선거 이후 100분 토론에 출연하여 "당 대표가 극우유투버들을 당 행사에 초청하고, 당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주장에 부화뇌동한다", "아스팔트 우파, 태극기부대, 그런 낡은 보수 주장에 당이 끌려가는 모습은 고쳐야 한다.", "사전투표 조작설, 그만좀 했으면 좋겠다."등의 언급으로 2013년 윤창중 대변인의 사퇴 요구 이후 다시 한번 극우파와 대립각을 세웠다.[21][22]

이러한 배신자 프레임은 이후로도 줄곧 유승민을 괴롭힌다. 현재 국민의힘 마이너 갤러리와 같은 소규모 온라인 디시 커뮤니티에서도 유승민에 대해 윾이라고 부르며 반 유승민 정서를 내보일 정도. 특히 국민의힘 마이너 갤러리는 반 친박 성향임에도 그렇다. 심지어 에펨코리아, 엠팍에조차도 일베나 디시등에서 활동하던 일부 반 유승민들이 유입되어 자신들이 써먹던 윾, 윾승민 표현을 굳이 써가면서 퍼뜨리고자 했을 정도.

이러한 반 유승민 정서에 대해 서민 교수가 분노하여 국개론적인 주장을 하면서까지 유승민에 대해 호평하며 "보수 유권자들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게 진심이었다면 쇄신을 하겠다는 보수정당(바른정당)에 힘을 실어줬어야 한다"며 "(바른정당 지지율이 낮으니까) 추가 탈당이 없었고, 대선에서도 유승민 전 의원이 괜찮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찍은 사람은 없었다" "보수 유권자들은 보수정당이 새로운 정당으로 쇄신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며 "이것이 야당이 침체기를 겪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국민의 지지를 못받은 바른정당은 산산이 흩어졌고, 알 수 없는 경로를 거쳐 결국 국민의힘에 합류했을 때 이분들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하며 성토했다. ##

[1] 유승민은 빠른 58년생에 76학번 유시민은 59년생 78학번이다. [2] 게다가 의외로 두 사람이 양 진영의 경제통으로 대립을 하기는 했지만 유승민은 전형적인 공화주의식 복지관을 가진 인물로, 경제 이야기에서는 좌파라는 오해를 들을 정도로 복지에 친화적 경향을 보인다. 한편 유시민은 진보세력치고는 기본이 주류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금융위기 이후에도 한동안 꽤나 보수적인 성향을 띠었다.(사회민주주의 쪽의 정당인 통합진보당-정의당에서는 그의 리버럴에 가까운 성향 때문에 대단히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즉 경제 이야기를 할 때는 두 사람이 생각만큼 사상적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실질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뒤 평당원으로 정치평론에 주력하는 과정에서는 유시민도 전보다 소폭 왼쪽으로 이동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경제 이야기에서는 서로 겹치는 면이 많은 편. [3] 다만 전문성에서는 유승민이 압도적이다. 보건경제학으로 석사 수준의 지식만을 공부한 유시민과 달리, 유승민 의원은 위스콘신 석박사 통합과정 조교시절 때도 상을 받을만큼 두각을 나타냈고, 미국에서 교수생활까지 할 만큼, 유승민이 경제에 대한 전문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4] 그러나 유재일은 아예 유승민이 "우파 유시민"이라고 비판했다. 나영석이 유시민에 대해 "(유식한 척하지만) 나중에 찾아보면 다 틀린 이야기들이다"라고 비꼰 것이 유승민에게도 들어맞는다는 것. # [5] 파일:정봉주 유승민 거꾸로.gif
정치 커뮤니티에선 가끔 이 싸움 장면을 거꾸로 하는 낚시성 움짤도 올라온다(...)
[6] 참고로 당시 2000년대 중반 국가통계상 65세에서 75세 사이 노인들의 손실 치아 평균이 사랑니 제외 10개였다. 유승민은 50도 안 되었으니 그보다 훨씬 젊은데 더 많은 치아를 잃어버린 것. [7] 빠진 치아는 15개 이상이겠지만 심은 건 그 개수보다 적을 것이고 뿌리없는 보철이 섞여있을 것이다. 사람 치아는 사랑니 제외 28개이나 보통 치아가 하나도 없는 사람들도 16개 임플란트면 브릿지를 이용해 전체 보철이 가능하고 많아야 18개 정도다. 잇몸과 턱이 튼튼해도 20개 이상은 추구하지 않는게 임플란트계의 기본이다. 손실치아 개수가 적으면 빠진 치아마다 임플란트를 하는 게 치의학계 주류 치료 원칙이나, 치아손실이 많으면 빠진 자리에 하나씩 다 심는건 실패율이 크고 악골에 치명적일 수도 있어 매우 위험하다. 1년에 한두개씩만 빠져서 그때마다 했다면 몰라도 몇년만에 왕창 빠진 경우는 정상적인 의사라면 추천하지 않는다. 큰어금니를 제외하면 치아 두개당 임플란트 한개나 세개당 두개를 심어 브릿지를 많이 한다. [8] 저때 이후 반강제로 원내대표도 그만두게 되고, 2016년 총선때 이한구를 필두로 하여 당내 공천에서 유승민계 공천 컷오프 파동 사건도 벌어졌다. [9] 이날 JTBC 뉴스룸에서는 원래 북핵 문제를 비롯한 안보 이슈를 가지고 인터뷰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지진으로 인해 인터뷰의 주제는 '지진과 대한민국의 재난대비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10] 이날 미우프 출연진 모두 각자 패러디의 대상 후보를 직접 만났다. [11] 2020년 합당 이후로 이 분야 최고 끝판왕들이 같은 당 내에 있다. [12] 원래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바른정당이 쪼개지기전까지는 친박 인사들이 김무성과 유승민 둘다 "배신자"라고 맹비난을 했지만 김무성 김무성의 일행들이 다시 새누리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에 복당을 한 반면 유승민과 유승민의 일행들 바른정당에 남으면서 다른 정당과 통합하여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나가는 등 친박계 의원들이 복당파들을 맹비난하면서 유승민의 행보를 재평가하고 있다. [13] 여담으로 당시 각 캠프의 저격수 역할을 하면서 네거티브 공세에 앞장섰는데, 그로 인해 이들은 상대의 부정을 잘 알게 되었다고 한다. [14] 그 유시민이나 심상정도 유승민의 토론 실력을 높게 평가한다. [15] 2015년 원내대표 연설문도 본인이 직접 쓴 것이다. [16] 물론 김성동, 이준석, 오신환, 김재섭, 윤상일과 같이 험지에 차출된 인물도 있고, 이혜훈, 진수희과 같이 경합지에 차출된 인물들도 있지만, 적어도 이들은 정태옥과 달리 4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17] 당시 주요 정당 후보 5인은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범야권 후보였던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은 모두 천주교 신자이고, 같은 범여권 후보였던 홍준표는 개신교 신자이다. 즉, 19대 대선 주요 정당 후보들 중 유일하게 크리스천이 아니다. [18] 출처 [19] 2021~2022년 현재는 홍준표도 이 둘 못지않게 우파 유튜버와 극우 노년층들로부터 엄청나게 공격받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홍준표도 박근혜와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당대표 시절에 당대표 직권으로 박근혜를 출당시킨 것으로도 공격을 많이 받았다. 유승민, 김무성은 애초에 언급 자체가 거의 안된다. [20] 이에 따른 대표적인 별명( 멸칭)이 유간신, 유배신, 승민. [21] 2013년 당내 극우파와의 갈등 기사 친박 유승민 "윤창중은 극우…당장 자진사퇴해야" [22] 결국 21대 총선 당시 윤창중이 유승민의 선거구인 대구 동구 을에 출마했으나 유승민은 불출마하고 대신 친유 출신인 강대식이 출마했다. 결과는 윤창중은 4% 수준의 득표를 하고 패배했고, 강대식은 66% 수준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