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00:45:01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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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28e><colcolor=#ffffff> 모기업 관련 정보 모기업 파일:DeNA 로고.svg
일본시리즈 우승
★★
1960 · 1998
리그 우승
(2회)
1960 · 1998
클라이맥스 시리즈 2016 · 2017 · 2019 · 2022 · 2023 · 2024
시즌별 요약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경기장 1군 요코하마 스타디움 · 2군 요코스카 스타디움 · 지방 홈구장 HARD OFF ECO 스타디움 니가타
과거 오사카 구장 · 카와사키 구장
홈 중계 채널 파일:tbs채널2 로고.png TBS 테레비2
현역 선수 경력 츠츠고 요시토모/선수 경력
주요 인물 구단주 난바 토모코 · 감독 미우라 다이스케 · 선수회장 오오누키 신이치 · 주장 마키 슈고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틀 문서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육성 선수 역대 감독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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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9dec><colcolor=#ffffff>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1]
YOKOHAMA DeNA BAYSTARS
[ruby(横浜, ruby=よこはま)]DeNAベイスターズ
구단 법인명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株式会社横浜DeNAベイスターズ)
창단 1949년 11월 22일([age(1949-11-22)]주년)
연고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연고지 이전 1955년[2]
연고지 변천 야마구치현 (1952)[3]
오사카부 (1953~1954)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1955~1977)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1978~)
구단명 변천 타이요 훼일즈 (1950~1952)
타이요쇼치쿠 로빈스 (1953)
요쇼 로빈스 (1954)
타이요 훼일즈 (1955~1977)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1978~1992)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93~2011)
쇼난 시렉스 (2군: 2000~2010)[4]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012~)
홈 구장 시모노세키 구장 (1950~1952)
오사카 구장 (1953~1954)
가와사키 구장 (1955~1977)
요코하마 스타디움 (1978~)
2군 구장 요코스카 스타디움
모기업 타이요-마루하[5] (1949~1952, 1955~2001)
타이요, 쇼치쿠 (공동 운영)[6][7] (1953~1954)
TBS 테레비 (2002~2011)[8]
DeNA (2012~)[9]
감독 81 미우라 다이스케 (三浦大輔)
주장 2 마키 슈고 (牧秀悟)
킷 스폰서 데상트
역대
한국인 선수
송재박[10] (1983~1987)
홈 경기 중계 채널(CS) TBS2
링크 파일: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심볼.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라인 아이콘.svg
★★
일본시리즈 우승 (2회)
1960, 1998
센트럴 리그 우승 (2회)
1960, 1998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2회)
2017, 2024
교류전 우승 (1회)
2023
포스트시즌 진출 (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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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28e> 일본시리즈 1960년, 1998년, 2017년, 2024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2016년, 2017년, 2019년, 2022년, 2023년,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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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구단 역사3. 홈구장 : 요코하마 스타디움4. 유니폼5. 마스코트 및 구단기6. 응원가7. 관중수 추이8. 인기9. 팀 컬러
9.1. 팀 이름이 베이스타즈인데 「스타」가 없어!!9.2. 요코하마 팬의 십계명
10. 이야깃거리11. 선수단12. 역대 선수13. 역대 감독14. 역대 성적1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 소속 프로 야구단. 연고지는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센트럴리그를 대표하는 약체 팀 이미지를 갖고 있다. 팀 역사만 보더라도 센트럴 리그 우승 2회, 일본시리즈 우승 2회로 매우 초라한 편이고, 통산 승률도 4할 5푼조차 안되는(.448) 12개 구단 중 최하위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1] 단적으로 롯데 자이언츠가 42년 동안 6할 승률을 거둔 적이 없고[12] 파이널 시리즈 진출이 고작 4회인데[13] 이 구단은 무려 74년 역사에 6할 승률을 거둔 적이 없고 파이널 시리즈 진출이 3번이다. 이뿐만 아니라 2019시즌 전까지 총 69시즌동안 NPB 통산 4966패라는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12개 구단 통틀어서 최다패이다. 결국 2019년 6월 15일 교류전 기간에 만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패배하며 NPB 최초로 5000패를 달성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14]

그리고 현존하는 센트럴리그 팀 중 유일하게 홈구장에서 리그 우승을 단 한 번도 결정지은 경험이 없는 팀이다. 이 팀은 그나마 있는 2번의 리그 우승을 전부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결정지었다. 다만 일본시리즈 우승은 98년에 홈구장에서 결정지어서 홈 팬들 앞에서 헹가래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팀명에 쓰는 마스코트는 오랫동안 훼일즈[15], 즉 고래를 써왔는데 당시 모기업이 고래잡이를 했었기 때문. 하지만 고래잡이가 점점 논란거리가 되어서인지 1993년부터 베이스타즈라는 아주 일본스러운 영어로 바꾸었다. 말 그대로 요코하마 만(Bay)의 별들이라는 뜻이다.[16]

2011년 시즌까지 방송국인 TBS 테레비가 모기업으로서 운영해 왔으나, TBS조차도 꿈도 희망도 없는 요코하마보다 요미우리의 경기 중계에 더 힘을 쏟아왔다. 모기업도 버린 셈. 2010년 시즌 종료 후 구단 매각을 선언하여 유력 후보로 住生活グループ[17]이 거론되었으나, 교섭결렬로 2011년 시즌 까지는 TBS 테레비가 구단을 운영해 왔다[18].

결국 2011년 11월 4일, 모바일 게임 사이트 '모바게(Mobage)'[19]를 운영 중인 DeNA(디엔에이)가 요코하마의 모기업인 TBS 홀딩스와의 매입 협상을 완료하고 구단을 인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회사 재무 구조와 향후 사업계획 등의 실사를 마치고 12월 1일 구단주 회의에서 DeNA의 요코하마 구단 인수를 승인함에 따라 팀 명칭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약호도 요코하마의 横에서 DeNA의 De(혹은 ディ)로 바뀌고 표기도 요코하마 DeNA로 변경되었다. 근데 익숙한 것도 있고, 너무 길기도 해서 일본 언론에서조차 그냥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지역명 빼고 간단히 'DeNA'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2. 구단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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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홈구장 : 요코하마 스타디움

제1구장 제2구장
파일:Yokohama2.jpg 파일:0155f37d-s.png
요코하마 스타디움 HARD OFF ECO 스타디움 니가타

4.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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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스코트 및 구단기

파일: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마스코트.svg
DB 스타맨 & DB 키라라
파일: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구단기.svg
구단기

6. 응원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응원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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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중수 추이

<rowcolor=#373a3c> 연도별 총관중 일일 평균
2009년 1,246,967명 17,319명
2010년 1,209,618명 16,800명
2011년 1,102,192명 15,308명
2012년 1,165,933명 16,194명
2013년 1,425,728명 19,802명
2014년 1,564,528명 21,730명
2015년 1,813,800명 25,546명
2016년 1,939,146명 26,993명
2017년 1,979,446명 27,880명
2018년 2,027,922명 28,166명
2019년 2,283,524명 31,716명
2020년 467,700명 7,795명
2021년 725,858명 10,223명
2022년 1,778,980명 24,708명
2023년 2,280,927명 32,126명
2024년 2,358,312명 32,754명

스스로 강팀이 되려하기보다는 적당적당히 운영비 아껴가면서 요미우리전의 떡고물이나 받아먹으려는 심보로 구단을 운영한 다이요 어업이나 TBS 테레비와는 달리, DeNA는 어떻게든 요코하마와 팀에 애정을 가지고 제대로 구단을 경영해보려는 의지를 보이며 관중수를 눈에 띄게 불리고 있다. 정말로 DeNA가 모기업이 된 것이 천만다행. 요코하마 스타디움 항목에도 DeNA가 새 구단주가 되고나서 프로 구단으로서 자립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결실을 맺어서 2016년 이후로는 마침내 관중도 잡고 성적도 잡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일본시리즈까지 가는 데 성공했다!

다만 2018년 이후 성적 부진과 더불어 유벤투스 스폰서비 상승과 관련된 구단의 투자 비중 감소로 인해 다시 Baysball의 재림이 시작된다는 우려 또한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관중 상승 추이도 모기업의 부풀리기 의혹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모양이라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나 하위권을 전전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요코하마 스타디움의 관중증가는 확실히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고 2019년 후반기 들어 요미우리, 히로시마와 치열한 3파전을 전개하는 양상이 되자 새로 증축한 관중석까지 관중이 들어차면서 창단 후 처음으로 경기당 평균 3만관중 동원을 바라보고 있을 정도이다. 심지어는 2018년 결산에서 모기업인 DeNA의 다른 사업분야는 적자를 면치 못했는데[20] 유일하게 야구를 중심으로 한 스포츠 사업만이 흑자를 기록하면서 모기업의 이익 감소분을 메웠다는 결과까지 나왔다. 확실히 TBS 시절과 지금은 분위기도 팬들의 호응도도 다른 구단이 되었고 만년 하위팀을 이렇게까지 바꾼 것은 DeNA 구단측의 노력을 평가해야할 부분이라 하겠다.[21][22][23]

8. 인기

도쿄 인접지역인 요코하마를 연고지로 한다는 점과 전통적인 약체인 팀 특성상 센트럴리그에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함께 인기가 없는 팀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DeNA사가 구단을 인수한 뒤로는 적극적인 자세로 구단 경영에 임한 결과 상술했듯이 관중수가 히로시마와 더불어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구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2011년 구단 팬클럽의 회원수가 1만명도 채 되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나간 가을야구인 2016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도쿄 돔 원정 응원석은 물론 3루측 중립석까지 메워버리는 화력을 보였으며, 팀이 19년 만에 일본시리즈에 진출했던 2017년에는 8만 7천명 대로 크게 늘어나는 등 관중 뿐만이 아니라 팬덤수도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이외에도 홈구장 리모델링을 통해 관중석 증축을 진행하는 등 관중 유치에 상당히 힘을 쏟고 있다. 매년 실시하는 스타나이트 데이, 2018년 실시했던 1998년 유니폼 복각 이벤트 등 다양한 마케팅을 실시하며 노력하고 있다.

의외로 한국에서도 이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 이승엽이 한창 요미우리에서 뛰던 시절 상대팀으로 종종 보이기도 했고 모기업이 게임회사인지라 이쪽 경로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있는 듯.

2019년에는 아직 시즌중이지만 6월까지 평균관중이 3만명을 넘어섰다. 양대 리그를 합쳐도 한신, 요미우리, 소프트뱅크 다음가는 관중수다. 관중석 증축효과와 마케팅의 성과가 결실을 맺은 결과. 코로나 팬데믹을 거친 뒤에도 인기는 식지 않아 꾸준히 3만명 이상이 야구장을 찾았고 2023년부터는 평균 32000명대의 관중을 동원하고 있다. 이제 비인기 구단이라는 오명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봐도 무방하다.[24]

9. 팀 컬러

팀 컬러는 기본적으로 타격 중심의 야구를 한다.

과거 70년대 다이요 웨일즈 시절 현재 요코하마 스타디움이 처음 지어졌을 땐 넓은 구장이었기에 투수력 중심의 짠물야구를 했으나, 현재는 더 신구장이나 증축, 리모델링으로 더 넓은 구장들이 많이 생겨서 비교적 좁은 구장이 되어버렸고 세대가 지나며 선수들의 키와 덩치도 커지고 파워도 증가한 덕에 타구 비거리가 길어져서 2010년대 이후 현재는 타자구장에서 타선의 힘으로 승부하는 야구를 한다. 특히 타이론 우즈, 무라타 슈이치, 다무라 히토시나 최근 선수로는 소토, 쓰쓰고까지 3~40홈런을 까줄 수 있는 거포들을 항상 몇 명씩이나 데리고 있는 팀. 요미우리처럼 돈지랄로 사모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구장이 좁다보니 그런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놀라운 팀이다.

더군다나 나이가 젊은 선수들이 많다 보니 이 선수들이 돼지형 거포가 아닌 발도 빠른 호타준족 선수들이 많아 공격 면에서는 딱히 흠잡을 곳이 없는 팀. 홈런은 야쿠르트나 교진보다는 적고 도루는 한신보다는 적지만, 두 가지를 다 균등하게 갖추고 있는 밸런스좋은 공격야구를 하는 팀이다. 다만 홈런을 까줄 수 있는 중심타자들은 잘 갖춰졌지만 센터라인(특히 유격수, 포수 등 취약 포지션)에 포진한 나머지 선수들의 질이 떨어지고 전반적으로 프리스윙어 성향이 강해 홈런이 많은 해에도 낮은 팀 타율, 출루율, 득점권 성적 등의 문제로 득점이 생각보다는 적은 시즌도 있다.

단점은 수비와 투수진. 좁은 구장 탓에 투수진이 약하며, 특히 선발진이 약한 편이다. 미우라나 이마나가 등 에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뎁스가 부족한 편.

수비는 과거에는 연습을 안 해서, 현재는 젊은 팀인 탓에 경험부족으로 수비가 덜 여문 선수가 많아서 예나 지금이나 행복수비가 많은 팀으로, 한화 행복수비마냥 베이스★볼이라는 고유의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수비가 고질적 약점인 팀.

과거에는 세리그 대표 약체로서 지내온 기간이 길었는데, 이는 모기업과 구장환경 탓이 컸다. 예전 모기업 다이요는 어업회사로 생선잡고 통조림 만들고 하는 회사라 회사 규모가 영세하다 보니 선수들 연봉을 많이 줄 수가 없었고, 90년대부터 맡게 된 TBS도 반쯤 억지로 떠안은 거라 구단을 짐덩어리로만 생각했지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어차피 열심히 해 봤자 연봉도 안 올려주는데 적당히 하고 놀자 분위기가 팽배했고, 마침 요코하마 중심지에 있어서 차이나타운 및 유흥가와 가까운지라 이기면 기분좋아서 한잔하고 지면 잊어버리자고 한잔하는 그런 패배의식과 놀자판 분위기가 오랫동안 자리잡았던 팀이었다.

덕분에 타팀 코치로부터 요코하마 선수는 연습같은거 안해 같은 흉흉한 증언이 튀어나오는 팀.

그러나 2010년데 게임회사인 DeNA가 구단을 인수하며 분위기가 바뀌게 되는데, 모기업이 바뀜과 동시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이런 안 좋은 분위기에 젖어있던 노장들을 대거 정리하고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리빌딩이 이루어졌으며, 잘 하는 선수에겐 연봉인상도 팍팍 쏴주니 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하게 되었고 그러니 성적은 올라가고, 젊고 잘생긴 선수들이 성적도 잘 내니 인기도 올라가고 그러니 더욱 열심히 하고 하는 선순환을 일으켜 2010년대엔 꾸준히 A클래스는 물론이요 일본시리즈까지 진출하는 강팀으로 탈바꿈했다. 인기도 매우 늘어나서 충분히 인기팀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비록 동시기 카프와 소프트뱅크 때문에 일본시리즈 제패는 실패하고 소토, 쓰쓰고 등의 2010년대 중반의 황금세대 선수들을 떠나보내야 했지만, 만년 약팀이 이정도로 올라온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으며 2020년대에는 대학 최고의 내야수 마키 슈고를 중심으로 리툴링을 진행하며 별다른 암흑기 없이 여전히 중상위권 전력을 지니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팀이다.

9.1. 팀 이름이 베이스타즈인데 「스타」가 없어!!

그나마 이 팀에서 뛰는 스타급 선수로는 오랫동안 팀 투수진을 떠받쳐온 '반초(대장)' 미우라 다이스케 정도였으나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미우라는 성적으로 보면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선수지만 팀이 그렇지가 못하고 있다.[25] 그 외에 한국 야구팬들에게 알려진 선수는 재일교포 모리모토 히초리가 있었고 한국에서 활약한 카도쿠라 켄이 일본프로야구 커리어의 최전성기를 보낸 곳도 여기였다.

한 때 이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는 2007, 2008년 센트럴리그 홈런왕이자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국가대표로 참가한 거포 3루수 무라타 슈이치가 있었으나, 2012년 시즌에 FA를 선언하고 요미우리로 이적해버렸다. 그리고 일본 턱돌이로 유명하며 고타율과 2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홈런을 쳐내어 우리나라를 울리기도 했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치카와 세이이치도 이 팀 소속이다.

이러다 보니 결국 팀에서 뛰는 주목받는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 나카하타 감독 시절에는 담당 기자들도 선수보다는 감독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오늘은 어록으로 쓰일만한 뭐 한마디 안 나오나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오죽하면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은퇴 경기에서 "DeNA는 나카하타 감독이 가장 눈에 띈다. 선수가 주목받지 않으면 (안 된다.)"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여기에는 요코하마 프런트의 행보도 한몫 거드는데, 툭하면 구단의 레전드로 남을 선수를 제대로 못 지켜서 팬들의 원성이 매우 크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98년 우승의 주역이었던 붙박이 유격수 이시이 타쿠로가 2009년에 히로시마로 이적하여 은퇴 후 히로시마 코치로 정착, 마찬가지로 98년 우승의 주역이었던 외야수 사에키 타카히로가 2011년에 주니치로 이적하여 불과 1년만에 은퇴 후 주니치 코치로 정착, 미우라 다이스케와 함께 요코하마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외야수 긴조 다쓰히코 역시 2015년에 요미우리로 이적하여 불과 1년만에 은퇴 후 요미우리의 코치로 정착하였다. 이 케이스의 공통점은 구단 측에서 빡빡하게 은퇴 권고와 전력외 통지를 날렸고 선수와 구단간의 입장 차이가 첨예하게 대립했다는 것인데, 팬들에게 큰 지지를 받는 인기 선수들을 좀 기다려주지 못하고 그렇게 쉽게 내쳐버리는 선택이 팬 입장에서는 씁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코하마 팬 입장에서는 이 선수들이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이 지금 봐도 어색할 정도다.

이렇다보니 웃픈 일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상대팀 선수의 은퇴 행사를 성대하게 치러준다. 상기된 이시이 타쿠로는 전날 히로시마에서 은퇴 경기 및 은퇴 행사를 진행한 뒤 다음날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의 원정 경기에서 진짜 선수생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특전 영상, 꽃다발 전달, 경기 후 구장 한 바퀴를 일순하며 팬들과 하이터치 등 마치 홈팀 선수가 은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26]정작 같은 날 은퇴 경기를 치른 DeNA의 포수 니이누마 신지는 묻혔다. 뭐 물론 둘이 워낙 급이 다르긴 하지만 98년 우승 당시 요코하마의 주전 포수이면서, 주니치의 선수 겸 감독이던 다니시게 모토노부 또한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쓰고 마지막 타격을 한 것이 요코하마 스타디움. 구장을 일순하며 다이요 시절부터 요코하마를 거쳐 주니치 시절까지 응원가 메들리, 다니시게의 자녀들의 꽃다발 전달식, 헹가래 등 홈구장에서 볼 법한 모습을 보여줬다.

선발 로테이션의 이노 쇼이치 야마구치 슌이 주목할만한 활약을 보이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다른 팀의 주축 선수보다 개성도 화제성도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야마구치는 2016년 말 FA로 요미우리로 이적.[27] 그나마 2014년 시즌 들어와서 츠츠고 요시토모가 3할 22홈런으로 토종 4번타자로서 활약을 보이면서 프랜차이즈 스타 후보로 떠오르고 있고, 2015년 입단한 야마사키 야스아키가 마무리로 혜성같이 등장, 엄청난 활약을 보이면서 2010년대 중반 리빌딩 이후 투수진에는 야마사키, 야수진에는 츠츠고가 팀을 대표하는 스타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츠츠고는 2019 시즌 종료 이후 메이저리그 포스팅에 참가할 것을 선언하였고 구단이 수락하여 또 스타선수가 빠지는 상황을 다시 맞이하게 되었다.

츠츠고가 빠져나간 이후로는 첫 시즌부터 3할에 20홈런을 기록한 마키 슈고, 요코하마의 좌완 에이스 이마나가 쇼타, 2020 시즌 이후 타격 센스가 만개한 사노 케이타 등이 스타선수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 중 야마사키 야스아키는 2022시즌 종료 후 평소 갈망하던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접고 옵트아웃 조항도 없는 6년 장기계약을 체결하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는 것이 확정되었다.

2023시즌 종료 후 이마나가가 MLB 포스팅을 신청했는데, 아예 구단차원에서 국내에 남는 걸 만류하면서 포스팅을 권유했다고 한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비슷한 행보인데, 어차피 FA가 되는 순간 선수들을 빼앗기는 것이 당연하기에 특급 자원들은 미국에 팔아서 돈도 벌고 상대 팀의 전력에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전략이며, MLB 포스팅에 우호적이고 적극적라는 이미지를 심어 특급 유망주를 수급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9.2. 요코하마 팬의 십계명

아래는 요코하마 팬으로 사는 십계명이라고 한다.[28]KBO의 어느 팀을 보는 듯 하다 그래도 이 팀은 그 팀보다도 우승 횟수는 많다
1. 시합은 원래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관전한다.
2. 경기 도중 단 1군데라도 희망이나 좋은 점을 찾아낸다.
3. 시합에 이기든 지든, 감독의 수수께끼같은 선수기용이나 작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4. 이긴 날은, 오늘이 야구 뉴스를 즐거운 기분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행복하게 본다.
5. 언젠가는, 언젠가는 초 거물 용병선수가 입단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6. 상대팀의 에이스 투수가 선발로 나서는 날은 결코 쓸데없는 희망을 버리고 패배를 확신한다.
7. 팀 내 루키의 성장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는다.
8. 도저히,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괴로울 때면 1998 시즌 우승했을 때의 비디오를 몇 번이고 돌려본다.
9. 경기가 없는 매주 월요일은 오늘은 절대 지지 않는 날이라며 마음 편히 하루를 보낸다.
10. 팀이 지고 있을 때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연패기록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최근 몇 년간 센트럴리그 꼴찌를 도맡아해온 베이스타즈의 상황을 비꼬는 유행어로 베리그가 있다. 매년 다른 팀과 엄청난 차를 벌리면 꼴등으로 가라앉은 채 그대로 시즌이 끝나버리는 거의 독립적인 위치라는 점 때문에 베이스타즈가 사실은 다른 리그였다! 라는 뜻으로 센트럴리그를 줄여서 세리그, 퍼시픽리그를 파리그라고 부르는 것에 빗대어, 베이스타즈에서 「베」를 따 베리그라고 부른다. 기본적으로는 베이스타즈 혼자 소속된 리그이지만 자국리그나 타국 리그에서 헤매는 팀들을 여기로 승격시켜서 순위를 가리곤 하는데, 공교롭게도 파리그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MLB 시애틀 매리너스와 함께 롯데 자이언츠가 여기 단골로 일본에서 유명하다. 결국 매년 수위는 베이스타즈가 차지한다. 물론 패가 많을수록 순위가 높은 베리그 기준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에서는 'ベイスボール[29]'이라는 표현도 곧잘 쓰이는 모양. 굳이 한국에서 쓰이는 비슷한 표현이라면 '유사야구' 또는 ' 코구' 정도다. 수비에서 사고쳤을 때 쓰는 ベイスボール는 ' 행복수비'에 더 가까운 의미.

물론 2016년부터는 십계명이 모두 뒤집혔다고 할 수 있다.
1. 시합은 원래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관전한다.
→ 이기는 날이 더 많아졌다.
2. 경기 도중 단 한 군데라도 희망이나 좋은 점을 찾아낸다.
→ 이제는 희망과 좋은 점이 많이 보인다.
3. 시합에 이기든 지든, 감독의 수수께끼같은 선수기용이나 작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 성적이 오르자 해탈했던 팬들이 다시 일희일비 모드가 되었다.
4. 이긴 날은, 오늘이 야구 뉴스를 즐거운 기분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행복하게 본다.
→ 이젠 즐겁게 야구 뉴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5. 언젠가는, 언젠가는 초 거물 용병선수가 입단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 2015년에 입단한 용병 호세 로페즈가 2017년에 세리그 안타-타점 2관왕으로 우뚝 섰다.
6. 상대팀의 에이스 투수가 선발로 나서는 날은 결코 쓸데없는 희망을 버리고 패배를 확신한다.
→ 상대가 그렇게 느끼도록 할 수 있는 에이스들이 등장했고, 타선이 상대 에이스를 박살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7. 팀 내 루키의 성장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는다.
→과거엔 신인들이 최후의 밧줄이라는 느낌이였다면, 이제는 연이은 루키들의 성장 덕분에 진정한 의미로 즐거워졌다.
8. 도저히,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괴로울 때면 1998 시즌 우승했을 때의 비디오를 몇 번이고 돌려본다.
→ 이제는 2017년 일본시리즈 진출 순간이나 일본시리즈 4차전 영상을 돌려봐도 될 듯 싶다.
9. 경기가 없는 매주 월요일은 오늘은 절대 지지 않는 날이라며 마음 편히 하루를 보낸다.
→ 이제는 이기는 야구를 기대할 수 있다.
10. 팀이 지고 있을 때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연패기록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 2022, 2023, 2024년 요코하마는 세 시즌 연속으로 요미우리의 시즌을 끝내버렸다.

2018년 이후로는 옛날 십계명을 찾아 쓰는 상황이 찾아올듯 말듯한 줄타기가 이어졌지만 2020년 들어서는 일부 주축 선수의 이탈[30]과 무관중 경기로 리그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오면서 이전처럼 되돌아가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결국 최악의 행보를 이어가며 출발했던 2021년, 6년만에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다시 이전의 십계명대로 팀이 귀신같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곧바로 다음 해에 2위로 올라서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부활했다.[31]

10. 이야깃거리

  • 병살타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3구단 중 하나로 1998년 일본시리즈에서 세이부 라이온즈와 상대할 당시 마지막 경기인 6차전에서 카네무라 요시아키[32]의 병살타로 우승을 확정지었다. 다른 두 팀은 1980년 일본시리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vs 킨테츠 버팔로즈)와 2014년 일본시리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vs 한신 타이거스[33]).

    • 파일:46cd59SD.png
  •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 1998년 베이스타즈의 우승을 기념하며 국물이 파란색인 베이스타즈 라면을 팔던 칸톤(廣東)이라는 중국음식점이 있었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얘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폐점했다.
  • 2010년대 중후반까지 교류전 호구라는 인상이 매우 컸다. 2005년 교류전 시작 이래 2023시즌 종료 시점에서 179승 236패 11무 승률 .431로 교류전 통산 1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승률차가 2할에 육박할 정도에 교류전 꼴찌도 5번으로 한때는 역대 최다였다. 이러한 체질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2015년 시즌으로 교류전 돌입 전에 승률 5할 + 11승으로 1위를 기록하며 17년 만의 우승 설레발까지 나왔지만 교류전에서 3승 14패로 처참하게 폭망하면서 최하위를 기록해 그 전까지 벌어놓은 승패마진을 다 까먹고 DTD를 시전하며 끝내 정규시즌 최하위로 시즌을 끝마쳤다. 2018년에는 우천중단이 겹치며 교류전 마지막 경기가 된 치바 롯데전을 패하면서 교류전 역대 최초로 통산 200패를 채우고 말았다. 그래도 2016년 이후의 교류전 성적을 보면 그런대로 중박은 치면서 승률도 4할로 끌어올렸고 2023년 교류전에서는 아예 우승까지 차지함과 동시에 교류전 통산 승률 최하위의 자리를 히로시마에 넘겨주고 11위로 올라섰다. 사실 의외로 교류전이 처음 시행된 2005년에는 19승 17패로 선전했고 다음 해부터 바로 꼴찌-4위로 곤두박질친 2006년에도 15승 21패, 2007년 14승 1무 9패로 그 정도로 못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2008년부터 팀이 본격적으로 막장으로 추락하면서 자연스레 교류전 성적까지 막장이 된 것.[34] 즉, 교류전 호구라기보단 원래 약체팀이라 성적이 안 나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류전까지 말아먹은 것(...)에 가깝다.
파일:r8AH4af.png * 팀의 마스코트로는 햄스터 캐릭터인 DB 스타맨(남성)과 DB 키라라(여성)가 있다. 모기업이 DeNA로 변경되면서 새로 만들어진 마스코트로[35] 귀여운 외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햄스터 캐릭터인데도 팬들은 대부분 너구리 취급 하고 있으며[36] 토바시라 야스타카는 얘네를 고양이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DB 스타맨은 워낙 짜리몽땅한데다 팔도 짧다 보니 다른 구단 마스코트들에게 굴욕도 자주 당한다. 예시1(2분부터) 예시2
파일:external/www.baystars.co.jp/160205_03_01.jpg * 5주년 기념으로 마린 군(マリンくん)을 선보였다. 참고로 치바 롯데 마린즈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롯데가 "마린즈"라는 이름을 쓰기 전인 요코하마 타이요 시절[37]에 썼던 마스코트다.* 요코하마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해 활약한 선수들이 이적 후에 남긴 코멘트가 있는데 가관이다[38]. 뿐만 아니라 외국인에 구단 OB에 전 감독들까지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 우치카와 세이이치(요코하마 → 소프트뱅크) - (소프트뱅크 이적 후) "요코하마에서는 누굴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39], "아무 긴장감도 없는 곳에서 플레이하는 것보다 이런 곳에서 플레이 하는 게 보람이 느껴진다."
* 무라타 슈이치 - (요코하마 소속이던 당시 WBC 대표로 참가하고 나서) "프로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수비 연습을 했다." "이대로 (요코하마에서) 질질 선수생활을 끝내고 싶진 않다."
* 테라하라 하야토(요코하마 → 오릭스) - "개개인의 선수가 자신에게 투자하고 단련하는 것이 적은 것 같다고 느꼈다."
* 사에키 타카히로(요코하마 → 주니치) - "(주니치의 연습에 참가하면서) 연습이 꽤 힘들었다고 들었는데 막상 해보니 전혀 다른 연습이었다."
* 사카모토 야타로(요코하마 → 세이부) - "요코하마는 연습때의 집중력도 낮고 옷차림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이전에 있었던 야쿠르트와도 큰 차이가 난다. 좀 더 프로의식을 높여야한다."
* 요시미 유지(요코하마 → 치바 롯데) - "(롯데로 이적한 후) 오랜만에 야구를 하니 기쁜 감정이 솟아올랐다."
* 하시모토 타스쿠(치바 롯데 → 요코하마) - "역시 요코하마 이적은 실수였다." "모든 선수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이런 팀이 있나 싶었다." "경기 중 덕아웃에 있는 선수가 적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당연하다는 듯 생겼다."
* 와타나베 나오토(라쿠텐 → 요코하마) - "(피지컬 트레이닝도 아닌데) 축구하는 건 이상해." "(전 소속팀인)라쿠텐이었다면 뒤지게 맞았을거다." "(이후 축구를 하던 선수를 훈계하러 간 와타나베. 반응을 묻자)순순히 듣고 있었다. 근데 보통 선배가 오면 긴장하거나 자세를 바로 잡지 않나? 요코하마에서는 그 조차도 하지 않더라."
* 타무라 히토시(요코하마 → 소프트뱅크 → DeNA) - "요코하마 시절에는 제대로 뛰어 본 적이 없었다." "요코하마 시절에는 연습하면 안 된다는 풍조가 있었다."
* 타네다 히토시(주니치 → 요코하마) - "2번째 구단인 요코하마는 주니치에 비하면 솔직히 미지근한 분위기의 팀이었다. 야구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 집단이었다. 연습이든 경기든 왠지 그냥 시작해서 그냥 끝난다고 할까?" "주니치는 코치진의 강한 지도력 아래 통제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세이부는 코치들이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자체적으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요코하마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 요시무라 유키(요코하마/DeNA→ 소프트뱅크) - "강팀(소프트뱅크)으로 올 수 있어서 좋았다."
* 후루키 카츠아키( 오릭스 버팔로즈 → 미국 독립리그 하와이 스타즈[40]) - "(요코하마에 재적하고 있던 때부터 이적하고 싶어서) 연습이 제대로 안됐다"
* 츠루오카 카즈나리(요코하마 → 요미우리 → DeNA → 한신 타이거스)[41] - "(자이언츠의 연습을 보며) 1군의 선수가 이렇게 (많이) 연습하는 줄은 몰랐다."
* 카토 코스케(현 후쿠시마 호프스) - "강한 팀은 강한 이유가 있었네요. 그걸 하루에도 몇차례씩 느끼고, 저도 빨리 그(강한) 팀의 일원이 되고싶습니다."[42]
* 타카미야 카즈야(요코하마 → 오릭스) - "개막전 1경기만 졌는데도 시즌이 끝난 느낌이었다."
* 쿠도 키미야스(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 - " 요코하마의 선수는 연습을 안해."
* 카도쿠라 켄 - "야구소년들이여, 프로가 되고 싶겠지. 찬스는 있어! 하지만 요코하마는 관둬."
* 니시 토시히사 - "(거인에서 요코하마로 이적 후) 점점 자신이 요코하마에 물들어 가는 기분이 든다. 여기 있으면 나까지 망쳐지는 것 같아."
* 아롬 발디리스 - "요코하마 시절은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나를 도와주는 코치도 선수도 없었다."[43]
* 호세 카스티요(피츠버그 → 요코하마 → 치바 롯데) - "시즌 중반쯤 들어가자 다들 이기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졌고 모두 개인 플레이에 급급했다."
* 터멜 슬레지(닛폰햄 → 요코하마 → 닛폰햄) - "(요코하마 입단 당시) 12구단 중 가장 편한 팀으로 알고 있다.", "(닛폰햄 복귀 당시) 프로의식이 높은 팀으로 돌아갈 수 있어 좋았다."
* 타카기 유타카(타이요 시대의 프랜차이즈 스타) - "요코하마의 (동계훈련) 캠프를 가보면 모자도 안 쓰고 있고 스파이크도 신고 있지 않은 놈도 있다.
* 나카하타 키요시(전 감독) - "(감독이 먼저) 인사를 했으면 (너희도) 인사 좀 해라."* 고유와 전통을 매우 중시하는 센트럴 리그 특성과는 달리 정말 이것저것 많이 변했다. 웬만해서 센트럴 리그는 연고지, 모기업 주체, 팀명에 큰 변화가 거의 없지만[44] DeNA는 연고지도 시모노세키 - 쿄토(실질 경기는 오사카) - 카와사키 - 요코하마[45], 운영 주체도 타이요 - 타이요, 쇼치쿠 공동 - 다시 타이요 단독 운영(=마루하) - TBS - DeNA, 팀명도 훼일즈 - 로빈스 - 훼일즈 환원 - 베이스타즈로 계속 바뀌었다. 마케팅 부분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며 팀 분위기도 여타 센트럴 리그 팀에 비하면 자유로운 편이다.* 히로시마와 더불어 센트럴 리그 20세기 최후의 일본시리즈 우승팀들 가운데 하나다. 그나마 요코하마가 나은 것은 요코하마는 그래도 마지막 우승이 90년대 후반이라는 점이다[46]. 원래 한신 타이거스도 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2023년 38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면서 탈출하게 되었다. 퍼시픽리그에는 20세기 우승이 마지막인 팀이 없다.[47]* 공식 명칭은 베이스타'즈'인데도 불구하고 한국 포털이나 기사 등에서는 왜인지 기본적으로 베이스타'스'로 표기하고 있다. 더 희한한건 그동안 한국에서도 'STARS'의 팀명을 사용했던 농구의 안양 SBS 스타즈나, 여자농구와 남자배구의 KB (손해보험) 스타즈 모두 '즈'를 공식 표기를 사용했었는데, 유독 DeNA만 베이스타'스'라고 표현한다는 점. 다만 베이스타즈만 이런 건 아니고 다른 구단들 역시 '스', '즈'가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구단 공식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 야구단 구독자 수 3위를 달리고 있다. 1위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2위는 두산 베어스. 일본 내에서는 12구단 중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요미우리에게 내줬다.* NPB 최초로 구단 통산 5000패를 달성한 팀이다. 2019년 9월 5일 기준 4061승 293무 5024패 승률 .447을 기록 중으로 현존하는 구단들 중 최저 승률을 기록중이다.[48] 1950년 리그에 처음 참가하기 전부터 있었던 팀들이 6구단이나 존재함에도 이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5000패를 달성하는 굴욕적인(...) 기록을 찍었다. 이 때문에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만패를 따라한 '반만패'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참고로 요코하마에 이어 두 번째로 5000패를 달성한 팀은 오릭스 버팔로즈인데 오릭스는 그래도 전신인 한큐 브레이브스 전성기인 1960년대 후반~1980년대에 벌어둔 승수가 많아서 통산 승률이 5할이다.* 2011년 시범경기 도중에 지진으로 인한 콜드패를 겪기도 했다. 비슷한 사례로 콜드경기는 아니지만 1989년 월드 시리즈 진행 도중 지진으로 인해 경기가 며칠간 중단된 사례가 있다.* 일본의 유명 베테랑 성우인 코야스 타케히토가 카나가와 출신이라서 야구를 볼 때 이 팀을 응원하는 편이다. 다만 이쪽은 스포츠 매니아와는 거리가 좀 먼 스타일이다.* 보드게임 시리즈 모모타로 전철의 원작자인 사쿠마 아키라가 이 팀의 팬이다. 아직 카와사키시에 있었던 타이요 훼일즈 시절인 7살 때부터 팬이었다. 2013년 추계캠프에서 베이스타 방송국(ベイスタ放送局)이라는 코너의 기획을 감수하기도 했다.* 아이돌 마스터 샤이니 컬러즈에서 사이죠 쥬리[49] 역을 맡은 성우 나가이 마리코가 출신지와 가족의 영향으로 열혈 팬이다. 또한, 성우 나카무라 겐타도 열혈 팬인데 이쪽도 출신지가 요코하마시이다.

11.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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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역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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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역대 감독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ffff><tablebgcolor=#ffffff> 파일: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엠블럼.svg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감독
}}} ||
{{{#!wiki style="margin: 0 -10px"
{{{#000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555555,#aaaaaa
1949년 ~ 현재
초대
와타나베 타이리쿠
(1950)
2대
나카지마 하루야스
(1951)
3대
아리마 기이치
(1951)
4대
코니시 도쿠로
(1952~1953)
5대
나가사와 타케오
(1954)
6대
후지이 이사무
(1955)
7대
사코하타 마사미
(1956~1958)
8대
모리 시게오
(1959)
9대
미하라 오사무
(1960~1967)
10대
벳토 카오루
(1968~1972)
11대
아오타 노보루
(1973)
12대
미야자키 타케시
(1974)
13대
아키야마 노보루
(1975~1976)
14대
벳토 카오루
(1977~1979)
15대
도이 키요시
(1980~1981)
16대
세키네 쥰조
(1982~1984)
17대
콘도 사다오
(1985~1986)
18대
코바 타케시
(1987~1989)
19대
스도 유타카
(1990~1992)
20대
에지리 아키라
(1992)
21대
콘도 아키히토
(1993~1995)
22대
오오야 아키히코
(1996~1997)
23대
곤도 히로시
(1998~2000)
24대
모리 마사아키
(2001~2002)
25대
야마시타 다이스케
(2003~2004)
26대
우시지마 카즈히코
(2005~2006)
27대
오오야 아키히코
(2007~2009)
28대
오바나 타카오
(2010~2011)
29대
나카하타 키요시
(2012~2015)
30대
알렉스 라미레스
(2016~2020)
31대
미우라 다이스케
(2021~)
:일본시리즈 우승 / : 센트럴리그 우승 / ☆: 일본시리즈 진출(리그 2~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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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하라 오사무 (1960 - 1967) - 팀 첫 번째 우승 당시 감독
  • 벳토 카오루 (1968 - 1972, 1977 - 1979) - 카와사키 구장 시대 타이요 훼일즈의 최후의 감독이자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최초의 감독. 3년 연속 A클래스의 성적을 올리는 등 만년 하위권을 달리던 이 팀에서 몇 안되는 좋은 성적을 거둔 감독이다. 감독직 은퇴 후에도 2년간 타이요에서 구단 대표를 맡기도 했다.
  • 아오타 노보루 (1973)
  • 미야자키 카나메 (1974)
  • 아키야마 노보루 (1975 - 1976)
  • 도이 키요시 (1980 - 1981)
  • 세키네 준조 (1982 - 1984)
  • 콘도 사다오 (1985 - 1986) -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1982년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감독. 그러나 이 구단에선 2년 연속 B클래스에 머물렀다.
  • 코바 타케시 (1987 - 1989) - 타이요와 B클래스 동지였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 센트럴리그 우승 4회, 일본시리즈 우승 3회로 이끈 명장으로 5년 장기계약을 체결했으나, 3년 연속 B클래스에 그치며 3년차 시즌 종료 후 중도해임되었다.
  • 스도 유타카 (1990 - 1992) - 선수로썬 다이마이 오리온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구단에서 우승을 경험했던 인물이었다. 은퇴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 세이부 라이온즈 등에서 오랫동안 지도자를 맡았고 이 구단에선 감독직을 맡기도 했다. 다만 감독 경력은 1992년 시즌 도중 성적부진으로 사임하며 흑역사가 되었다.
  • 콘도 아키히토 (1993 - 1995)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초대 감독. 데뷔 시즌인 1960년 타이요의 첫 일본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신인 선수로써는 최초로 일본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 다만 감독으로썬 향후 1998년 일본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될 주축들을 키워놓았으나 성적은 3년 연속 B클래스로 별로 좋지 못했고 이후 1997~1998년에 치바 롯데 마린즈 감독을 역임했으나 2년 연속 최하위에 역대 최다인 18연패(連敗)를 찍는 오명만 남긴 채 물러나야 했다. 2019년 3월 27일 별세.
  • 오오야 아키히코 (1996 - 1997, 2007 - 2009)
    선수 시절엔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명 포수로 활약한 인물로, 1기 감독으로썬 팀의 비밀번호를 끊어냈지만, 2기 감독으로썬 팀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지 못하고 2009년 시즌 도중 해임당했다.
  • 곤도 히로시 (1998 - 2000) - 팀의 두 번째 우승 당시 감독. 구단 역사상 최고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성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극단적 자율방임노선으로 인한 선수단과의 불화와 구단 프런트와의 불화가 겹쳐 재계약에 실패했다.
  • 모리 마사아키 (2001 - 2002) - 세이부 라이온즈에서는 리그 우승 8번, 일본시리즈 우승 6번의 황금기를 지휘한 명장이었으나 이 팀에서는 첫 해 3위에 이어[50] 이듬해 최하위로 추락하며 팀의 암흑기를 열어버렸고 결국 2002년 시즌 막판에 중도해임되었다.
  • 야마시타 다이스케 (2003 - 2004)
  • 우시지마 가즈히코 (2005 - 2006) - 2002~2015년의 암흑기 가운데 유일한 A클래스(2005년)를 기록했던 감독. 그러나 이듬해 최하위로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다만 실제 사임 이유는 성적 향상에 뜻을 두지 않던 구단의 태도에 질려서라는 설이 유력하다.
  • 오바나 타카오 (2010 - 2011) - 소프트뱅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투수코치로 고평가를 받았으나 요코하마 감독으로써는 오오야와 마찬가지로 팀의 나락행을 막지 못한 채 실패만 거뒀다.
  • 나카하타 키요시 (2012 - 2015)
  • 알렉스 라미레즈 (2016 - 2020)
  • 미우라 다이스케 (2021 - 현임) - 1992년부터 2016년까지 25시즌을 요코하마에서만 뛰면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한 원 클럽 플레이어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로, 하마의 반쵸(ハマの番長)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14. 역대 성적

­ 리그 우승[51]
­ 2위
­ 3위
B클래스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
1950 5위/8팀 <colbgcolor=#0066b3><colcolor=#ffffff> 5위 타이요 훼일즈 140 69 68 3 .504
1951 6위/7팀 6위 108 40 64 4 .385
1952 4위/7팀 4위 120 58 62 0 .483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
1953 5위/6팀 5위 타이요-쇼치쿠
로빈스
130 52 77 1 .403
1954 6위/6팀 6위 130 32 96 2 .250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
1955 6위/6팀 6위 타이요 훼일즈 130 31 99[52] 0 .238
1956 6위/6팀 6위 130 43 87 0 .331
1957 6위/6팀 6위 130 52 74 4 .415
1958 6위/6팀 6위 130 51 73 6 .415
1959 6위/6팀 6위 130 49 77 4 .392
1960 1위/6팀 우승 130 70 56 4 .554 일본시리즈 (4-0 vs 다이마이)
1961 6위/6팀 6위 130 50 75 5 .404
1962 2위/6팀 2위 134 71 59 4 .546
1963 5위/6팀 5위 140 59 79 2 .428
1964 2위/6팀 2위 140 80 58 2 .580
1965 4위/6팀 4위 140 68 70 2 .493
1966 5위/6팀 5위 130 52 78 0 .400
1967 4위/6팀 4위 135 59 71 5 .454
1968 5위/6팀 5위 133 59 71 3 .454
1969 3위/6팀 3위 130 61 61 8 .500
1970 3위/6팀 3위 130 69 57 4 .548
1971 3위/6팀 3위 130 61 59 10 .508[53]
1972 5위/6팀 5위 130 57 69 4 .452
1973 5위/6팀 5위 130 60 64 6 .484
1974 5위/6팀 5위 130 55 69 6 .444
1975 5위/6팀 5위 130 51 69 10 .425
1976 6위/6팀 6위 130 45 78 7 .366
1977 6위/6팀 6위 130 51 68 11 .429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
1978 4위/6팀 4위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130 64 57 9 .529
1979 2위/6팀 2위 130 59 54 17 .522
1980 4위/6팀 4위 130 59 62 9 .488
1981 6위/6팀 6위 130 42 80 8 .344
1982 5위/6팀 5위 130 53 65 12 .449
1983 3위/6팀 3위 130 61 61 8 .500
1984 6위/6팀 6위 130 46 77 7 .374
1985 4위/6팀 4위 130 57 61 12 .483
1986 4위/6팀 4위 130 56 69 5 .448
1987 5위/6팀 5위 130 56 68 6 .452
1988 4위/6팀 4위 130 59 67 4 .468
1989 6위/6팀 6위 130 47 80 3 .370
1990 3위/6팀 3위 133 64 66 3 .492
1991 5위/6팀 5위 131 64 66 1 .492
1992 5위/6팀 5위 131 61 69 1 .469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54]
1993 5위/6팀 5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30 57 73 0 .438
1994 6위/6팀 6위 130 61 69 0 .469
1995 4위/6팀 4위 130 66 64 0 .508
1996 5위/6팀 5위 130 55 75 0 .423
1997 2위/6팀 2위 135 72 63 0 .533
1998 1위/6팀 우승 136 79 56 1 .585 일본시리즈 (4-2 vs 세이부)
1999 3위/6팀 3위 135 71 64 0 .526
2000 3위/6팀 3위 136 69 66 1 .511
2001 3위/6팀 3위 140 69 67 4 .507[55]
2002 6위/6팀 6위 140 49 86 5 .363
2003 6위/6팀 6위 140 45 94 1 .324
2004 6위/6팀 6위 138 59 76 3 .437
2005 3위/6팀 3위 146 69 70 7 .496
2006 6위/6팀 6위 146 58 84 4 .408
2007 4위/6팀 4위 144 71 72 1 .497
2008 6위/6팀 6위 144 48 94 2 .338
2009 6위/6팀 6위 144 51 93 0 .354
2010 6위/6팀 6위 144 48 95 1 .336
2011 6위/6팀 6위 144 47 86 11 .353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
2012 6위/6팀 6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144 46 85 13 0.351
2013 5위/6팀 5위 144 64 79 1 .448
2014 5위/6팀 5위 144 67 75 2 .472
2015 6위/6팀 6위 143 62 80 1 .437
2016 3위/6팀 3위 143 69 71 3 .493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요미우리)
파이널 스테이지 (1-4 vs 히로시마)
2017 3위/6팀 3위 143 73 65 5 .529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한신)
파이널 스테이지 (4-2 vs 히로시마)
일본시리즈 (2-4 vs 소프트뱅크)
2018 4위/6팀 4위 143 67 74 2 .475
2019 2위/6팀 2위 143 71 69 3 .507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한신)
2020 4위/6팀 4위 120 56 58 6 .491
2021 6위/6팀 6위 143 54 73 16 .425
2022 2위/6팀 2위 143 73 68 2 .518 퍼스트 스테이지 (1-2 vs 한신)
2023 3위/6팀 3위 143 74 66 3 .528 퍼스트 스테이지 (0-2 vs 히로시마)
2024 3위/6팀 3위[56] 143 71 69 3 .507 퍼스트 스테이지 (2-0 vs 한신)
파이널 스테이지 (4-3 vs 요미우리)
일본시리즈 (?-? vs 소프트뱅크)
<colcolor=#373a3c> NPB 통산 75시즌 리그우승 2회 10086 4394 5369 323 .450 일본시리즈 우승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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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2] 일본프로야구는 보호지역(연고지)을 도도부현 단위로 설정하고, 가와사키랑 요코하마는 같은 카나가와현에 있기 때문에 1955년부터 계속 같은 연고지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연고지 내에서 1군 홈구장만 이동했다고 보는 셈. [3] NPB에 공식적인 연고지 개념이 들어선 것은 1952년으로, 그 이전엔 단일리그 시절인 1948년 잠깐 도시연고제를 도입하려다 구장의 부족으로 유명무실화된 것이 전부. [4] 2000년부터 2010년까지 2군 팀만 이름을 달리해서 쇼난 시렉스(湘南シーレックス, Shonan Searex)라고 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의 넥센 히어로즈(1군)와 화성 히어로즈(2군), 2019년부터의 키움 히어로즈(1군, 앞의 넥센 히어로즈와 같은 팀)와 고양 히어로즈(2군, 뒤의 고양 다이노스와는 다른 팀), 또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의 NC 다이노스(1군)과 고양 다이노스(2군)의 관계와 같다. [5] 일본의 어업 회사. 1943년 창업 때부터 타이요란 이름을 썼으나 1993년 자사 브랜드명에서 따온 "마루하"로 이름을 바꾸었다. 가와사키 시절 구단기나 유니폼 소매패치에 있는 동그라미(마루) 안의 は() 로고가 바로 마루하를 뜻한다. [6] 일본의 대형 영화 제작/배급사. [7] 타이요 훼일즈와 쇼치쿠 로빈스가 합병하게 되면서 공동 운영을 하게 되었으나 실제로는 타이요가 구단 운영을 주도했고, 1954년 시즌 종료 후 쇼치쿠가 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면서 타이요 단독 운영 체제로 돌아왔다. [8] 1970년대 후반에 세이부 철도의 모기업인 코쿠도 계획이 요코하마 스타디움의 건설을 주도함과 동시에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라는 과정을 거쳐서 타이요 훼일즈의 2대 주주로 참여하면서 구단 지분의 45%를 보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1978년 시즌 종료 후 코쿠도 계획이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를 인수하게 되면서 한 기업이 2개의 구단을 보유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코쿠도 계획은 훼일즈의 보유지분 45%를 전부 매각해야만 했고, 결국 보유지분 중 30%를 닛폰 방송에, 나머지 지분 15%는 TBS에 매각해 이 시기에 TBS가 처음으로 구단 경영에 참여했다. 그리고 2001년 시즌 종료 후 모기업 마루하가 지분 53.8% 전체를 닛폰방송에 매각하려고 했으나 당시 야구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주 와타나베 츠네오가 "닛폰방송은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지분 20%를 보유한 후지 테레비의 필두주주이므로 "구단 및 구단 관계자가 직간접적으로 다른 구단의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는 야구협약 규정에 위배되니, 만약 지분을 매각하려면 (닛폰 방송과 후지 테레비의 모기업인) 후지산케이그룹이 야쿠르트의 지분을 전부 팔아야 한다"라고 태클을 걸면서 매각 계획이 무산되었고, 결국 마루하는 TBS 측에 본래 닛폰 방송 측에 매각하려 한 지분을 전부 매각해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지분 15.41%까지 합쳐서 69.21%로 필두주주가 되면서 TBS가 새 모기업이 되었다. 2011년 시즌 종료 후 DeNA에게 구단을 넘길 당시 66.9%의 지분을 DeNA에 매각했고, 현재 TBS 홀딩스 명의로 구단 지분을 2.31%(3만주) 보유하고 있다. [9] 2011년 시즌 종료 후 TBS가 보유한 지분 66.9%를 매수하면서 모기업이 된 데 이어 2013년 무렵에 닛폰 방송이 보유한 구단의 지분 30.79%를 전부 매수하여 현재 구단 지분 97.69%(127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10] 일본식 이름은 요시모토 히로시(吉本博). 재일교포. [11] 이게 얼마나 막장이냐면 2015년부터 3년 연속 3할대 승률로 시작한 kt wiz보다도 통산 승률이 낮다. 각 리그별 최저 승률 팀은 MLB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464), KBO는 kt wiz(.461). kt는 3년 연속 3할 승률으로 시작했지만 2021년 우승했다. 하다못해 NPB 유일의 단일시즌 100패를 달성하고 일본시리즈 우승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사라졌던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통산 승률도 .467이다. [12] 최고 승률은 1999년의 .591 [13] 다만 우승과 준우승을 더한 횟수는 5회이다. 1985년 삼성의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인해서 한국시리즈 자체가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14] 이 기록이 더욱 놀라운 점은 1930년대에 창단한 팀들을 모조리 제치고 가장 먼저 달성했다는 점. 위의 표에도 나와있지만 이 팀이 창단하고 리그에 참여한 해는 1950년이다. 여담으로 한신과 오릭스도 2019시즌에 요코하마의 뒤를 이어 통산 5000패를 달성했는데 이 두 팀은 그래도 각각 1935년, 1936년에 창단하고, 1936시즌부터 참여했으며, 통산 승률이 5할은 넘는다. [15] 한글로 웨일즈나 웨일스로 표기하기도 한다. 현대 영어의 많은 화자들이 Whales의 wh 부분을 /hw/(정확히는 [ʍ])로 발음하지 않고 /w/로 발음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 [16] 전형적인 일본식 영어라서 미국 매체들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탬파베이 레이스처럼 지명 자체에 '베이'가 붙고 팀명에도 그걸 사용하는 케이스들처럼 착각해서 요코하마 + 베이스타즈가 아니라 요코하마베이 + 스타즈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금은 요코하마 뒤에 DeNA가 붙었으니 오해의 가능성이 줄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요코하마 DeNA 베이' + '스타즈'로 오해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 요코하마 베이 + 스타즈라고 지었다가는 치바 롯데 마린즈가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자신이 흡수한 구단 중 다이에이 유니온즈가 있는데, 그 팀의 예전 이름이 바로 "스타즈"다. [17] 쥬세이카츠 그룹 - 건축 관련 기업의 합동기업. [18] 이 때문에 해당 방송국에서는 이 구단의 정보를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19] 모바일 게임의 일본식 표기인 モバイルゲーム를 줄인 モバゲー를 그대로 로마자로 적어서 Mobage라고 쓴 것이다. [20] 문어발 같은 계열사 운영들과 과다한 IP 팔이로 인해 생긴 일이다. [21] 다만 최근에 일어난 유벤투스&호날두 이슈와 겹쳐 모기업 계열사는 유벤투스에 큰 돈을 쓰면서 모기업 야구단에 대한 투자가 마케팅,경영 부분에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현지에서의 비판은 계속 나오고 있는 중이다. [22] 심지어 관중 동원을 위해 게임사 이벤트를 이용하여 DeNA, Cygames 등의 자회사들과 콜라보를 하여 숫자 자체로는 관중동원력을 늘린 것에 비해 경기가 어느정도 진행되면 관중 수가 훅 감소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여담으로 KBO의 NC도 비슷한 성향을 보이고 있다. [23] 추가로 2020년 코로나19 이슈로 인한 무관중경기로 리그를 진행해야하는 상황이 찾아와 여태 한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존재했으나, 이건 다른 구단도 똑같은 사정이고 제대로 관중을 다시 모집하기 시작한 2022 시즌 총 관중수는 12개 구단 중에서 6위를 차지했으며 2023년에는 4위를 기록했다. [24] 불과 10년 전인 2009년의 요코하마 평균관중수가 17000명대였다. 이는 당시 평균관중수 전체 1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으며 그 관중없다던 오릭스와 지바 롯데보다도 관중동원력이 형편없었다. [25] 실제로 2015년 시즌 이후로 주니치 드래곤즈의 대대적인 세대교체 움직임으로 팀에 재적했던 수많은 베테랑들이 옷을 벗으면서 2016년 시즌 현역 투수중에서 최연장자가 됐다. [26] 거기다 이시이가 1993년부터 써 왔던 응원가가 히로시마 이적 후에도 계속해서 쓰인 덕분에 양 팀 팬들 모두가 이시이의 응원가를 같이 부르는 광경이 펼쳐졌다. 요코하마 팬들이 반복해서 응원가를 부르면 반대편 히로시마 팬들이 스쿼트 응원으로 이시이의 이름을 연호하는 진풍경이 경기 내내 펼쳐졌고 마지막 타석때는 양 팀 팬들의 응원가 열창에 이시이도 감동을 받았는지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 [27] 그리고 이노 쇼이치 마저 카지타니 타카유키와 함께 FA로 요미우리로 이적했다. [28] 출처 리라하우스. [29] 일본어로 '베이스볼'을 본래는 가타카나로 ベースボール이라 표기하는데, 베이스타즈를 조롱할 때의 '베이스볼'은 '베이스타즈(ベイスターズ)'의 ベイス를 따서 ベイスボール이라 적는 것. 영어로 표현하면 Baysball쯤 되는 표현이다. '베이스'와 '볼' 사이에 '베이스타즈'의 별을 집어넣어 'ベイス★ボール'같은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별은 흰색으로 넣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검은 색인데, 일본 야구 매체에서 보통 승리를 '흰 별'(○, 시로보시), 패배를 '검은 별'(●, 쿠로보시)라 표현하기 때문이다. [30] 츠츠고 요시토모의 메이저리그 진출과 아즈마 카츠키 토미존 서저리. [31] 예전처럼 쭉 하위권의 모습은 아니다. 다만 잘할 때와 못할 때의 폼이 유난히 왔다갔다가 심한 편이다. [32]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 킨테츠 버팔로즈의 중심타선을 맡은 선수로 노모 히데오와도 팀메이트로 뛰었다. [33] 정확히는 수비방해로 인한 병살 판정이다. 니시오카 츠요시/선수 경력 항목 참고. [34] 그나마 교류전 막장도 2013년까지였고 2014년엔 13승 11패로 선전하기도 했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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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A 매각 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시절엔 을 의인화한 홋시, 홋시나, 홋시조라는 마스코트를 사용했다. 가운데가 홋시, 왼쪽이 홋시나, 오른쪽이 홋시조.
참고로 2004년엔 예능 프로그램과의 연계로 온갖 기행을 일삼는 스페셜 마스코트 '블랙 홋시'가 등장하기도 했다. 충혈된 눈 위에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며, 이른바 '유성 점프'라는 근본없는 다이빙으로 상대팀 마스코트와 팬들을 약올리는 역할을 했었다.
[36] 참고로 스타맨 본인은 너구리라고 부르면 몹시 화낸다. # [37] 당시 롯데의 팀명은 롯데 오리온즈였고, 연고지도 요코하마시 바로 옆의 카와사키시였다. [38] 오죽했으면 요코하마에서 떠난 선수들의 코멘트 모음도 있을 정도이다. 여기서는 그 중의 아주 일부분만 발췌해서 적는다. [39] 우치카와 본인은 그런 뜻으로 했던 말은 아니었다고 후에 부정했지만, 그럼 위의 발언은 원래는 뭔뜻이었냐는말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40] 중간에 격투기 선수로 전향해 경기를 가진 적이 있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 프로 시절에는 나름 장타력은 있었으나 선구안과 컨택이 막장인 2군 본즈로도 유명했다. 22홈런을 치며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2003년조차 타율 .208, 37타점이라는 다른 의미로 전설적인 성적을 찍었을 정도. [41] 한신 시절 오승환의 전담 포수로 알려져 있다. 2025년엔 한화 이글스 배터리 코치로 부임했다. [42] 닛폰햄 소속의 고스케 카토와는 다른 선수. 본래 치바 롯데 소속이었으나 방출 후 요코하마에 입단, 이후 요코하마에서 2번째 방출을 당하고 한신으로 이적했으나 2015년을 마지막으로 재차 방출. [43] 발디리스는 오릭스에서 연봉문제로 재계약이 결렬된 후 요코하마로 옮겼는데 요코하마에서도 반쯤 먹튀였던 상황이었다. 교세라 돔에서 꾸준히 15~18홈런씩 쳐줬으니 타자친화구장인 요코하마로 가면 20홈런은 거뜬히 넘길 줄 알았는데 홈런 갯수는 그대로고 다른 타격스탯과 수비까지 하락. 물론 먹튀였다고 하지만 오릭스 시절에는 별 말 없이 잘 지냈던 걸 보면 암흑기 시절 요코하마는 그 오릭스보다도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44] 요코하마 외에는 모기업이 2번 바뀌고 팀명을 1번 바꿨다가 환원한 야쿠르트가 그나마 많은 편이긴 한데 이쪽도 도쿄 연고 자체는 창단 이래 전혀 바뀌지 않았고 팀명도 60년대 중반에 '아톰즈'로 잠깐 바꾼 것 외엔 창단 당시 이름인 '스왈로즈'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45] 센트럴 리그 6구단 중 유일하게 연고지를 이전한 구단이다. [46] 히로시마는 아예 헤이세이 연간(1989~2019) 내내 우승을 못했다. [47] 퍼시픽 리그 구단 중 일본시리즈 우승이 가장 오래된 팀은 2008년에 우승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본래는 1996년이 마지막 우승이었던 오릭스 버팔로즈가 가장 오래되었지만 2022년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해 탈출함으로서 히로시마와 요코하마만이 남게 되었다. [48] 참고로 일본시리즈 우승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킨테츠의 통산 승률은 .467이다. [49] 마침 카나가와현 출신이다. [50] 그나마도 4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승률에서 밀렸으나 이 해 한정으로 센트럴리그가 다승제를 도입한 덕에 1승 차이로 운 좋게 3위에 들어갔다. [51]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 [52] 센트럴리그 겸 구단 사상 시즌 최다패 기록 1위 [53] 히로시마와 승률 0.0003 차이로 3위 [54] 2006년까지는 리그 플레이오프 없음. [55]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승률에서 4리 차로 밀렸으나, 이 해 한정으로 센트럴리그가 다승제를 적용해 승수가 1승 더 많았던 요코하마가 3위를 차지. [56] 일본시리즈 결과 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