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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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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스칸디나비아주의.jpg 1840년대 덴마크의 무명 화가가 그린 선전 포스터.[1]
1. 개요2. 상세3. 역사
3.1. 배경3.2. 탄생과 전성기3.3. 쇠퇴3.4. 부활?
4. 여담5. 대중 매체에서6. 관련 문서
Scandinavism[영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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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칸디나비아주의 또는 범스칸디나비아주의 스칸디나비아에 속한 국가들인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간 다양한 수준의 단결을 주장하는 범국민주의적 사상의 하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2. 상세

스칸디나비아주의자들은 이들 국가가 공유하는 역사, 공유하는 언어, 공유하는 신화를 강조하며 서로 간의 유대와 협력을 주장한다.

이 스칸디나비아주의에서 비슷한 민족, 문화, 언어, 역사를 가진 아이슬란드와 엄밀한 의미의 노르드인 계통은 아니지만 12세기부터 시작된 스웨덴 지배로 인하여 스웨덴과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은 핀란드까지 통일 추구 대상이 확대되면[4], 범북유럽주의 또는 노르드주의(영어: Nordism)이라고 한다.

3. 역사

3.1. 배경

세 국가의 원류는 모두 고대 노르드인이다. 오래전부터 바이킹, 하랄 대왕, 북해 제국, 칼마르 동맹,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 등 같은 역사를 공유하면서 협력과 반목을 반복해왔다.

3.2. 탄생과 전성기

오래전부터 스칸디나비아에 속하던 나라들끼리의 미약한 동질감은 존재했으나, 현대 정치 운동으로써의 스칸디나비아주의는 1830~40년대 즈음에 탄생했다. 당시 스칸디나비아인들은 발달된 문헌학,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서로가 인종적으로 하나라는 것에 자극을 받았고, 민족주의 사상이 대두하면서 일어난 사건들인 독일 통일 이탈리아 통일 등 유럽 각국의 국민국가 수립 과정을 지켜보며 고무되었다. 이윽고 프로이센 왕국 러시아 제국이 각각 자신들 민족의 범국민주의 이론인 범게르만주의 범슬라브주의를 내세우며 팽창 정책을 추진하자, 독일이나 러시아에게 흡수당해 정체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부러움과 동경에 빠진 덴마크 스웨덴-노르웨이[5]의 젊은 대학생들과 산업 발달로 경제적 여유가 생긴 중산층들은 '스칸디나비아의 문화적, 정치적 통일'이라는 대의를 내걸며 두 나라의 국경 지방인 스코네를 중심으로 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양국의 두 지도자[6]였던 크리스티안 8세 칼 14세, 그리고 양국의 상류층들이 이 운동을 탐탁지 않게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프로이센 왕국 범게르만주의적 팽창 정책이 시작됨과 동시에 당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방을 소유하고 있던 덴마크와 충돌하여 슐레스비히 위기를 일으키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스칸디나비아주의 조류는 19세기 중엽 전반에 북유럽 전체에서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1848년 결국 덴마크와 프로이센 간 갈등이 폭발하며 제1차 슐레스비히 전쟁이 발발했고, 많은 스웨덴인들과 노르웨이인들이 전쟁에 의용군으로 참전했다. 그러나 확전을 우려한 유럽 열강들의 중재 하에 체결된 런던 의정서 덴마크, 프로이센 왕국 양측 모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에 실패하여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고 이는 결국 나중에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이라는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3.3. 쇠퇴

스칸디나비아주의는 1860년대 중반에 접어들자 점점 쇠퇴하기 시작했다. 당시 스웨덴의 국왕이었던 칼 15세는 스칸디나비아주의에 우호적이었지만[7],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으로 덴마크-프로이센[8] 갈등이 재폭발했을 때 신흥 강대국인 프로이센과 직접적으로 충돌하기가 껄끄러웠던 스웨덴은 숙고 끝에 덴마크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포기해버렸다. 이후 프로이센은 약소국인 덴마크를 상대로 승승장구하면서 순식간에 슐레스비히 전역을 점령하여 전쟁을 마무리하고,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까지 승리를 거둔 뒤 마침내 독일 제국 수립을 선포하며 발트해 연안 국가들 사이에서 완전한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스웨덴의 소극적 태도와 한창 잘나가던 독일의 위세 아래 스칸디나비아주의는 자연스레 세 나라 내에서는 거의 사멸하고, 과거 스웨덴에게서 핀란드를 빼앗은 러시아 제국의 지배에 불만이 많던 핀란드 스웨덴계 핀란드인들 사이에서만 스웨덴 제국 시절의 향수와 함께 그런 운동의 영향이 그나마 강하게 잔존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통한 성과가 아예 없지는 않아서 일부 한정적인 분야에서 스칸디나비아 각국이 이때부터 협력하기도 했는데, 단편적인 예시로 1873년 스웨덴과 덴마크 간의 금본위제도에 기반한 화폐 통일이 이루어지며 스칸디나비아 통화동맹이 결성되어[9] 양국에서는 모두 크로나 계열 통화를 사용하게 됐고, 1875년에는 노르웨이도 가맹했다. 이후 스칸디나비아 통화동맹은 제1차 세계 대전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동맹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이후에도 대공황 시대까지 3국 통화의 환율은 1:1:1로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또한 동맹 결성 당시 덴마크를 따라 변경된 스웨덴 통화의 명칭인 스웨덴 크로나는 아직도 한 번의 개혁 없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스웨덴과 덴마크 두 나라 모두 유럽연합 가맹 이후로도 국민투표를 거쳐 유로로의 교체가 불발되었으므로 크로나(크로네)라는 명칭만은 현재까지도 3국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3.4. 부활?

이렇게 스칸디나비아의 통일을 부르짖던 스칸디나비아주의는 짧은 전성기를 끝으로 완전히 잊히는 듯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베저위붕 작전으로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했으며, 핀란드 민족주의가 부상하며 대전 중인 1917년에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하며 본격적으로 북유럽과 세계의 정치 질서에 모습을 드러낸 신생국 핀란드는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등장한 신흥 강대국 소련 겨울전쟁 계속전쟁을 벌이며 간신히 주권은 보존했지만 국토가 황폐화되었다.

그리하여 이들 국가는 다시금 북유럽 국가들 간 단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움직임에 힘입어 전후 1953년 북유럽 국가 간 상호 협력을 위하여 북유럽 협의회가 출범했다.

이제는 스칸디나비아의 완전한 정치적 통일이라는 목표는 사라졌지만, 북유럽 국가들은 서유럽의 베네룩스와 유사하게 서로 간의 깊은 우호,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모두 북대서양 조약 기구 회원국이며,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는 유럽연합 회원국이다.[10] 또한 이들은 북유럽 협의회로 뭉쳐 있다. 또 현재 북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귀화 요건에 특례가 주어지고 있다.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3국의 국영 항공사들은 병합하여 1951년 스칸디나비아 항공을 창립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부문에서 북유럽 국가들끼리의 협력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4. 여담

덴마크 문학가로 잘 알려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스칸디나비아주의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였다고 한다. 1837년 스웨덴을 방문한 후 스칸디나비아주의에 경도된 그는 〈Jeg er en Skandinav(나는 스칸디나비아인이다)〉 등 생전 여러 차례 스칸디나비아 3국의 근연성과 3국 통일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작품을 썼다.

5. 대중 매체에서

  • 하츠 오브 아이언 4: 북유럽 국가들이 형성 가능한 국가로 ' 노르드'가 있는데 현실의 스칸디나비아주의, 정확히는 2번 문단의 범노르드주의 운동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 빅토리아 3: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으로 스칸디나비아 제국을 세울 수 있다. 마침 이 게임의 배경이 되는 시기인 빅토리아 시대가 스칸디나비아주의 운동이 막 활발히 전개되기 시작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도 잘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6. 관련 문서


[1] 하술하겠지만 당시 스웨덴 노르웨이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양국의 국기 좌측 상단에 스웨덴-노르웨이 연합기를 그려넣었다. 자세한 내용은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 문서의 '국기' 문단 참조. [영어] [3] Scandinavianism 혹은 pan-Scandinavianism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 [4] 간혹 여기에 핀란드와 인종적, 언어적으로 근연 관계에 있고 과거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던 에스토니아를 포함시키기도 하며, 실제로 동유럽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발트 3국에서는 자신들을 북유럽이라고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컨트리볼이나 Scandinavia and the World 등의 창작물에서는 에스토니아가 노르딕 국가에 끼고 싶어 하지만 거절당하는 클리셰가 존재한다. [5] 위에서 잠깐 설명했지만 당시 노르웨이는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스웨덴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 문서에서는 편의상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스웨덴이라 칭한다. [6] 현재의 스칸디나비아 3국은 군주의 권한이 매우 미약한 완전한 입헌군주제 국가이지만, 당시만 해도 국왕의 정치적 권력이 막강한 준전제군주정에 가까웠다. [7] 양국이 하나라는 의식을 심어 노르웨이를 계속 스웨덴의 지배하에 묶어놓기 위한 의중이었다. [8]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의 토착 귀족 세력은 독일계였고 덴마크의 지배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프로이센을 지지했다. [9] 당시 유럽에서는 라틴 통화동맹이 결성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화폐 통일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됐는데, 이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10] 노르웨이는 EU의 회원국은 아니지만 솅겐 조약 등으로 EU와 여러 가지 협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