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선진당 (당명 변경) |
→ | 선진통일당 | → |
새누리당 (흡수 합당) |
선진통일당 | |
한자 명칭 | <colbgcolor=#fff,#1c1d1f>先進統一黨 |
영문 명칭 |
Advancement and Unification Party (AUP) |
등록 약칭 | 선진당 |
슬로건 | 역사의 새물결 |
1차 창당일 | 2008년 2월 4일 ( 자유선진당) |
해산 · 신설합당 | 2011년 10월 17일 ( 자유선진당)[1] |
당명 변경 | 2012년 5월 29일 (선진통일당) |
해산일 | 2012년 11월 16일 ( 새누리당에 흡수 합당)[2] |
중앙당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70길 23 용산빌딩 3·4층 ( 여의도동) |
대표 | 이인제, / 6선 (13-14·16~19대), |
원내대표 | 성완종, / 초선 (19대), |
의석 수 |
4석 / 300석 (1.2%) 해산 직전
|
광역단체장 |
2석 / 17석 (11.8%)
|
기초단체장 |
12석 / 228석 (5.3%)
|
당 색 |
파란색 (#025BAD)
|
홈페이지 |
|
SNS | [3] |
[clearfix]
1. 개요
|
대한민국의 정당. 약칭은 그대로 선진당[4]이다. 제19대 국회 시작을 코앞에 둔 5월 29일 자유선진당에서 개명하였으며 '국민을 섬기는 정당'을 표방했다. 마지막 충청권 보수정당으로 분류되었다.[5]
2. 정책
* 법질서
* 인성 교육의 강화를 통한 국민의 법의식 제고
* 불로소득자에 대한 엄정과세
* 기업의 윤리경영 확립
* 작은 정부
* 국가관리를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전환
* 민간주도의 시장경제 뒷받침
* 정부규제 완화
* 세금 줄이기
* 정부예산 대폭 감축
* 개방
* 자유무역협정(FTA) 적극추진
* 영어공용교육 적극추진
* 적극적인 국제공헌
* 교육
* 교사의 대폭 증원
* 교원평가제 도입
* 교육에 대한 정부간섭 줄이기 및 자율성 보장
* 평준화 교육에서 다양성 증진 교육으로 전환
* 복지
*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지속가능한 복지
* 대북정책
* 북한의 개방, 개혁
* 상호주의 원칙
* 대북지원을 북한핵 폐기와 연계
* 북한 인권문제에 우선순위
*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보장되는 방식으로의 통일 추구
* 외교
* 한미동맹 강화
* 유엔 등 국제기구 활동에 적극 참여
* 인성 교육의 강화를 통한 국민의 법의식 제고
* 불로소득자에 대한 엄정과세
* 기업의 윤리경영 확립
* 작은 정부
* 국가관리를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전환
* 민간주도의 시장경제 뒷받침
* 정부규제 완화
* 세금 줄이기
* 정부예산 대폭 감축
* 개방
* 자유무역협정(FTA) 적극추진
* 영어공용교육 적극추진
* 적극적인 국제공헌
* 교육
* 교사의 대폭 증원
* 교원평가제 도입
* 교육에 대한 정부간섭 줄이기 및 자율성 보장
* 평준화 교육에서 다양성 증진 교육으로 전환
* 복지
*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지속가능한 복지
* 대북정책
* 북한의 개방, 개혁
* 상호주의 원칙
* 대북지원을 북한핵 폐기와 연계
* 북한 인권문제에 우선순위
*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보장되는 방식으로의 통일 추구
* 외교
* 한미동맹 강화
* 유엔 등 국제기구 활동에 적극 참여
3. 역사
3.1. 이인제 체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선진당이 심대평 대표 체제에서 국회의원 의석 수가 기존 15석에서 5석으로 쪼그라들자 책임론이 불거졌다. 그리하여 본인도 낙선한 심대평 대표가 사퇴하고 6선에 성공한이런 상황속에서 이회창 세력이 5월 20일에 새누리당 복당을 선언하며 선진당은 더 혼란에 빠졌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63빌딩에서 5월 29일 전당대회를 하여 이인제를 정식 대표로 선출하고 이름을 바꾼 것이 현재의 선진통일당이다. 하지만 이미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5석밖에 안 되는 미니 정당으로 몰락하였기 때문에 장기적인 생존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
원래 자유선진당의 창당을 주도한 이회창 전 의원은 이미 탈당을 한 상태인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전당대회를 앞두고 잔류 이회창계가 이인제 사당화를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전부 탈당하고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옮겨버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전당대회에서는 허증· 박상돈· 김영주· 홍표근· 송종환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게다가 반 이인제 성향 인사들이 당명 개정 등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전당대회 분위기 역시 어수선했다. # # 이후 이인제 대표 체제서 강창규 전 인천광역시의회 의장을 당 사무총장으로 문정림 의원을 정책위의장 겸 원내대변인으로, 이원복 전 의원을 당 대변인으로 인선했고, 김광식 사무부총장을 대표 비서실장으로 내정했다.
하지만 이인제 체제에 반발한 원내 의원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았다. 이명수, 성완종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소문도 퍼져 있었다. 결국 이명수 의원과 세종특별자치시 시장인 유한식이 선진통일당을 탈당해 새누리당에 입당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2012년 8월 30일의 일이다. 한 편 성완종 원내대표는 당 잔류를 선택했다.[6]
대선을 4달 반 앞둔 상황에서 선진통일당으로써는 어쩌면 정당이 해산될 지도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잇따르는 선진당 소속 기초의원의 탈당으로 선진당의 불안은 더 커져갔다.
3.2. 제18대 대선
결국 당세가 급격히 약해지자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자체 후보를 내겠다는 계획도 물 건너갔다.원래는 친이 성향의 정운찬 前 국무총리[7]를 대선 후보로 낼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면서 안철수와 단일화를 해서 본인들의 위상을 업 시키려는 속셈이어서, 은근히 문재인은 배척하고 안철수에게 비벼대는 제스쳐를 취했다.[8] 그런데 계속해서 정운찬 측에서 대선 출마를 고심하면서 대권주자가 없던 선진통일당의 입장에서는 대선까지 100일도 남지 않았음에도 대선후보가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만다. 정운찬 측이 계속해서 미적거리면서 선진당은 마지막 남은 희망도 잃었다. 당 내에서 대권주자급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이인제 대표 혼자인데, 전국적으로 철새이미지가 강한데다가 2007년 대선에서 0.7%로 낙선(...)해서 사실상 대선출마는 물건너 갔다. 게다가 이미 이인제 대표는 당권 도전을 하면서 18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황이기도 했고.[9]
3.3. 새누리당에 합당
결국 2012년 10월 25일 새누리당과 합당하였다. 이로써 자유선진당이 창당된 이후로 4년만에, 선진통일당으로 이름을 바꾼 후 5개월만에 이 정당은 사라졌다. 대부분의 인사들은 통합 이후에는 새누리당에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을 대비한 공천 과정 중 대거 공천에서 탈락하고, 이에 반발해 일부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흡수되는 등의 과정을 거쳤다. 이 당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었는지는 자유선진당 문서 참조.이때 류근찬, 권선택 전 의원은 새누리당과의 합당에 반대하여 탈당을 선언했으며, 문재인 후보 지지와 민주통합당 입당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시우[10] 당시 보령시장과, 이후 천안시장이 되는 구본영 역시 합당에 반대하여 탈당하고 민주통합당에 입당한 케이스다. 상술되어있지만 새누리당에 합류한 세력 중 일부도 훗날 민주당에 입당했는데,
이후 새누리당은 선진계를 계속 배제시켰고[12], 결국 선진계 세력들이 하나 둘 민주당으로 넘어가버려 그간 자민련의 연립이 깨지면서 줄곧 약세였던 민주당의 충청 지역 조직이 한층 커진 계기가 되었다.[13]
4. 지도부
4.1. 역대 당 대표
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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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인제 |
새누리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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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원내대표
원내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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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성완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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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 사실상 활동을 멈췄지만, 네이버 카페, 페이스북, 트위터, 서울특별시당 트위터가 아직 남아있는 상태다. 보통 계정을 폭파시키는 것과는 대조적.
-
재밌는 점은 이 당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이인제와
박상돈 등 대다수는
새누리당으로 입당했으나, 박상돈 의원이 영입했던
구본영의 경우는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했는데,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구본영 천안시장과 박상돈 의원이 출마했으며, 이인제의 경우
충청남도지사직에 출마하였다. 천안시장은 비리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본영 시장이 선거에서 승리하였고, 충청남도지사에 출마한
불사조이인제는 천안에서 내리 4선하던 국회의원에게 참패를 당하게 된다는 거다.[16] 이후 구본영 시장이 비리로 쫓겨난 후에 치러진 2020년 재보궐선거에서는 박상돈이 천안시장에 당선되었다.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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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에 합당 | ||||||||
▼ 이명박 정부 이후 |
[1]
국민중심연합과 자유선진당이라는 이름으로 신설 합당을 했기 때문에,
2008년 창당한 자유선진당과 신설 합당하여 생긴 자유선진당은 엄밀히 말하면 다른 정당이다.
[2]
공고
[3]
서울특별시당 트위터.
[4]
원래는 '통일당'으로 하려 했으나, 기존 당원들의 반발(...)로 약칭은 기존 약칭인 '선진당'을 유지한다.
[5]
이후 시간이 한참 흐른
2020년에 충청권 보수정당을 주장한
충청의미래당이 창당하였고
신자유민주연합으로 당명을 개정했으나, 예전만큼 영향력이 크게 못미친다.
[6]
후일 성완종 원내대표는 당 내에서 새누리당과의 합당을 주도했다.
[7]
충청남도 출신이다.
[8]
물론 2002년
제16대 대선 과정에서 이인제와
노무현 사이에 있던 악감정도 한 몫을 했다. 당연히 두 사람의 악연을 감안하면 선진당이 민주당과 협력하기엔 어려운 상황.
[9]
이후 안철수 - 문재인 구도는 결국
문재인으로 단일화가 됐고, 결국 정운찬은 울며 겨자먹기겸 역베팅으로 문재인
지지
선언
까지했다.
[10]
이 분은
신민당,
평화민주당,
민주당 소속으로 정치활동을 했다가
자유민주연합, 국민중심당, 자유선진당, 선진통일당 소속으로 잠시 옮겼다. 민주통합당 입당으로 친정에 복당(?)한 셈이다.
[11]
안철수를 따라
국민의당(2016년),
바른미래당,
국민의당을 거쳤다가, 2020년 3월
미래통합당으로 되돌아갔다.
[12]
18대 국회에서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한나라당과 차별적인 모습을 보이는 과정에서 같은 야당이던 민주당과 연대를 했었던 전례가 계기가 되어, 배제시켰다는 카더라가 있다. 이는 결국 보수정당의 충청권 약세를 자초하고 만다.
[13]
실제로
충청남도
농촌 지역의 선거에서 민주당이 정당 비례대표 투표 등에서 고전함에도 불구하고,
22대 총선의
공주시 부여군 청양군 이나
논산시 계룡시 금산군 등 후보자 경쟁력이 강한 경향이 뚜렷하다. 실제로 두 지역서 승리하며 민주당은
21대 총선보다 의석수가 줄어든 와중에서도 저번 선거의 11석 확보보다 더 많은 8석을 석권해 유례 없는 압승을 거두었다.
[14]
비대위원장이었으나 전당대회를 통해 정식으로 대표 취임.
[자유선진당]
원내지도부 승계
[16]
이것으로 퇴물임이 증명되어
당협위원장 직까지 잃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