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0 16:24:59

새정치

1. 개요2. 비판3. 사례4. 기타5. 관련 문서

1. 개요

말 그대로 새+정치, 즉 "새로운 정치"를 의미한다. "새"의 한자어인 "신"을 이용한 "신정치"나 또는 "정치개혁/쇄신" 등이 사용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프랑스 앙 마르슈의 전 가칭은 "정치개혁을 위한 협회"였다. 다만 표현이 다르더라도 그들이 추구하거나 하는 "새정치"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롭게 정치를 하자"는 말 그대로 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정치를 "구태정치", "낡은정치", "적폐" 등으로 규정하며, 이를 청산하고 정치를 개혁하자는 데 집중하고 있다.

2. 비판

하지만 이러한 "새정치"는 단순한 코스프레라는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으며, 종종 한표라도 더 받아보려는 일종의 마케팅 전략이나 구호로만 이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말로는 "구태정치 청산"을 주장하지만, 결국에는 본인도 "구태정치"를 하는 그저 일개의 평범한 정치인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다반사.[1]

또한 "새정치"는 언급했다시피 말 그대로 "새로운 정치"를 말하지만, 문제는 그 "새로운 정치"가 정확히 무엇인 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의가 없으며, 이 때문에 새정치를 전략으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애매모호한 전략이나 다름 없다고 봐도 무관하다. 만약에 새정치를 추구한다면 지금 정치가 왜, 어떻게 구태적인가를 알아야 하며, 그것을 어떻게 하면 청산할 수 있을까, 어떠한 것이 진짜 발전된 정치인가 등에 대한 정의를 내릴줄 알아야 하는데, 대개는 그냥 구체적인 증거 없이 "새정치", "정치개혁"만 운운하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그렇기에 실질적인 대안으로서 새정치가 아닌 단순히 정치혐오의 발산에 그치는 경우가 절대다수였고 이러한 정치 혐오의 물결을 타고 올라온 정치인들이 수요를 금세 잃고 정치판에서 빠르게 몰락했던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었다.

3. 사례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정치를 표방했던 정치인들 모두가 실패했다. 다만 안철수는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2022년, 보수정당인 국민의힘과 합당을 했고 진행하는 정책이 그 실효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3.1. 김영삼, 김대중, 이종찬

1995년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은 기존의 민주당을 탈당하고 새정치국민회의(이하 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름부터가 대놓고 "새정치"를 표방하고 있다. 같은 시기 김영삼은 5공의 색채가 짙은 민주자유당을 해산하고 신한국당을 창당하며, "새로운 한국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았다. 비록 "새정치"를 대놓고 표방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운 한국을 만들고자 한다는 뜻에서 새정치를 갈망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결과 신한국당은 1996년 총선에서 139석을 차지하였으며 중도/진보 성향이 강한 서울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등 파란을 일으켰으나, 원내 과반에는 미치지 못했으며, 김대중의 국민회의의 경우는 79석만을 차지하여 차기 대권에 아예 비상이 걸렸다. 그리고 김영삼은 전임자들이 으레 그랬듯 정치공작을 펼쳐 야당인사를 영입해 과반의석을 채웠고, 결국 크리스마스 노동법 개악으로 그 실체가 다 밝혀지고 말았다. 김대중 또한 다르지 않아서, 차기 대권을 위해 공화계인 자유민주연합과 연대했고, 이를 이유로 김대중을 오랫동안 지지했던 최기일은 김대중 지지를 철회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김대중 또한 정치공작으로 야당 의원들을 빼가는 행동을 하면서 "새정치"란 그저 일개의 선거구호였음을 보여주기만 했다.

1992년 민주자유당을 탈당한 이종찬 전 의원이 새한국당 창당을 위해 만든 사전 조직도 새정치모임이었다. 사실상 민자당 내 민정계 인사들의 모임이었다는 점에서 새정치라는 단어가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름은 그랬다. 원래 새정치모임이란 이종찬을 비롯한 김영삼 퇴진을 주장하는 민정계 의원 8명이 시작한 모임을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언론이 자신들을 8인방이라 부르자 '새정치추진모임' 혹은 '새정치연구모임'이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세력이 점차 확대되어 1992년 민자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이종찬 의원의 지지 조직으로 활동하였다. 이종찬 전 의원은 1992년 5월 19일 민자당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난 직후인 5월 22일 당내 계파 모임의 형식으로 '새정치모임'을 결성하였으며, 8월 17일 민자당을 공식 탈당한 후인 9월 3일에는 이를 확대 개편해 '새정치국민연합'을 결성하였다. 이종찬 전 의원은 새정치국민연합을 바탕으로 새한국당을 창당하고 명망 있는 외부 인사를 영입하여 대선에 어느 한 진영의 후보가 아닌 '국민 후보'로 내세우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나, 놀라울만큼 그 누구도 새한국당의 대선 후보직을 수락하지 않았고, 결국 자기 자신이 출마했다가 얼마 안 가 사퇴했다.

3.2.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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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새정치 말씀 드렸죠. 그게 뭐였냐면 이랬습니다. 처음 고민은 왜 사람들이 정치 경험이 없는 서울대학교 교수를 정치를 하라고 하실까, 그건 지금 현재 한국 정치가 너무나도 싫기 때문 아닙니까. 그럼 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정치에 어떤 부분을 싫어서 저를 불러 내실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정리한 건 세가지였습니다. 부정부패, 그 다음에 편 가르기 싸움만 하고 민생 문제 해결 않는 것. 그 다음에 선거 전날까지는 머리 숙이다가 선거만 지나면 왕처럼 군림하는 태도, 이 세가지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런 세가지 정치를 하지 않겠다. 즉 저는 깨끗한 정치를 하겠고 두번째는 민생 문제 해결하는 정치를 하겠고 그리고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겠다. 그 세가지를 새정치 한 단어로 표현을 했었죠. 제가 10년전에 부터 그 말을 했는데 근데 들려오는 이야기는 모호하다는 이야기만 들려오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처음에는 몰랐어요. 이게 내가 설명 능력이 부족하구나 더 쉽게 설명해야 되겠다. 근데 몇번 노력하다 보니까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게 기득권 정치 논리인거예요. 사실 세금으로 자기편 먹여살리려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제가 얼마나 밉겠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제가 아무리 명확하게 새정치가 이거라고 설명을 해도 그사람들은 계속 모호하다고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그쪽은 입이 10만개고 저는 입이 하나니까 일반 대중들 입장에서는 10만명의 목소리만 많이 들리는 거죠. 그럼 일부러 제가 한 말을 찾아보지 않으신 분은 아 그냥 새정치 모호한 것이구나 잘못 알게 하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히틀러 밑에 있었던 괴벨스의 수법 아닙니까. 거짓말도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 그게 구태정치의 대표적인 나쁜 폐해입니다. 그러니까 새정치라는 것은 그것도 깰려고 나온거죠. 그리고 그건 지금도 초심 변함 없습니다."
2022년 1월 25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며

안철수는 2010년대에 접어들어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그를 바탕으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도중에 문재인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이후 2013년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했고, 2014년에 접어들어 신당 창당을 본격화한다. 일명 " 새정치연합". "새정치"를 강조하는 안철수의 신당은 가히 파란을 일으켰으나, 인사들을 민주당 성향만 영입하는 등 비판을 받아왔고, 생각보다 성과가 신통치 않았는지 도중에 신당 창당을 포기하고 민주당 밑으로 들어간다.

양측의 협의로 민주당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개편되었으나, 2015년 말에 분열되었고, 안철수는 이제서야 신당을 창당했다. 이 후 이름이 국민의당으로 "새정치"는 빠져버렸다.

안철수가 내새웠던 새정치에 대해서 이준석은 "안철수 대표가 옛날에 대선 주자로 지금의 윤석열 총장 정도의 위치를 가지고 있었을 때 그때 처음에 김종인, 윤여준 이런 분들이랑 같이 이제 일했잖아요. 그런데 이분이 그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다음에 어디로 간 거냐 하면 박지원, 정대철 이런 호남계, DJ의 인물들과 손을 잡고 갑자기 호남 토호 정치인들과 이렇게 손을 잡습니다. 그때부터 새정치라는 게 약간 모호해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KBS

하지만 안철수가 윤석열과 손을 잡아 혁신위를 차지했고 결국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자, 혁신위에서 진행하는 정책을 통해 안철수가 주장하던 새정치를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그런거 없다

4. 기타

  • 가끔 새정치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쇠정치'라고 비하해 부르기도 한다. 수라서?

5. 관련 문서


[1]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중 원로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내 노릇을 할 것 같다"고 했던 것처럼 그만큼 정치개혁은 쉽지 않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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