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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렛 하트의 레슬링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2. 데뷔 이전
캐나다의 레슬링 명문가인 하트 가문의 12남매 중 8째로 태어난 브렛은 당연히 어린 시절부터 프로레슬링과의 인연을 끊을 수가 없었다. 브렛이 어린 시절 브렛의 아버지 스튜 하트는 '슈퍼스타' 빌리 그레이엄을 가르치고 있었고, 이런 환경을 보고 자란 브렛은 당연히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갖게 된다.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시절 브렛은 아마추어 레슬링에 입문해 활동했는데 아마추어 레슬링으로도 매우 훌륭한 성적을 내면서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했고, 그런 성적으로 대학교에서도 선수로 활동하며 올림픽 선수들에게도 칭송받으며 미래의 올림픽 인재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큰 기대를 받았다.
3. 초창기
1976년 브렛은 아버지 스튜 하트의 단체인 스탬피드 레슬링에 입문하며 프로로 전향하게 된다. 처음에는 심판으로서 링에 오르며 링에 적응하고, 선수들이 하는 동작, 팬들과 호흡하는 법을 익혔고, 얼마 안가 사스캐툰이란 선수를 상대로 첫 데뷔 경기를 치른다. 스탬피드 레슬링에 있으며 여러 번 태그팀 챔피언에 오르는데 성공했고, 이어서 일본 원정을 가게 된다. 일본에서 미스터 히토, 미스터 사쿠라다의 도움을 받으며 더더욱 정교한 레슬링 기술을 익히게 되었고, 여기서 동서인 다이너마이트 키드와 대립을 가지며 명성을 높인다. 다시 캐나다로 귀국한 다음 단체의 에이스로 성장해 여러 타이트를 획득했고, 한 번은 타이거 마스크 1세와 경기를 갖는다.
4. WWF
한편 1980년대 전국 확대를 시작하던 WWF가 스탬피드 레슬링의 주식을 구매하면서 스탬피드 레슬링의 여러 선수들이 WWF에 넘어가게 되는데 브렛 하트 역시 그 일부였다.[1] 처음에는 카우보이 기믹을 맡을 뻔했지만 브렛은 이를 거절하고, 먼저 활동 중이던 매형 짐 나이드하트와 태그팀을 구성해 활동을 하게 된다. 당대 활동했던 브리티시 불독스, 리전 오브 둠, 데몰리션 등 수많은 태그팀들과 대립을 했고, 이런 대립 과정 속에서[2] 태그팀 챔피언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태그팀으로 순항하던 하트 파운데이션은 레슬매니아 7에서 내스티 보이즈에게 패배하면서 해체를 하게 되었고, 브렛은 솔로 커리어를 시작한다.[3]
WWF 섬머슬램(1991)에서 미스터 퍼펙트와의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에서 승리하였고, 2년 만에 다시 열린 1991년 킹 오브 더 링에서 우승하였다. 그리고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1)에 로디 파이퍼, 버질, 브리티시 불독과 함께 파이퍼스 팀으로 참가해, 로디 파이퍼, 버질과 함께 상대 팀의 테드 디비아시, 마운티와 링 밖에서 난투극을 벌이다가 함께 퇴장당했다. 그리고 WWF 디스 튜즈데이 인 텍사스에서 스키너와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을 가져 승리했다.
약 140일 동안 타이틀을 유지하던 브렛이었지만 1992년 1월 마운티에게 타이틀을 내주게 되는데 마운티가 챔피언에 오른지 겨우 2일 만에 로디 파이퍼에게 빼앗기게 된다. 브렛 하트는 자신의 타이틀을 되찾기 위해서 로디 파이퍼와 레슬매니아 8에서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십을 건 경기를 펼쳤고, 대단한 명경기 끝에 2회 째 챔피언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중간에 역시 싱글 커리어를 시작한 숀 마이클스가 도전했지만 이를 무찌르며 타이틀을 지켰지만 WWF 섬머슬램(1992)에서[4] 브리티시 불독에게 패배해 벨트를 내주었다.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벨트를 잃은 브렛이 다음으로 도전한 자리는 당연지사 WWF 월드 챔피언이었는데 당시 챔피언이었던 릭 플레어를 슈퍼스타즈에서 꺾음으로써 당시로선 정말 보기 드문 빅맨이 아닌 챔피언의 탄생을 알린다.[5]
월드 챔피언에 오른 브렛은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2)에서 숀 마이클스와의 WWF 챔피언십에서 승리했으며, WWF 로얄럼블(1993)에서는 레이저 라몬과 WWF 챔피언십을 가져 승리했다.
하지만 레슬매니아 9에서 열린 요코주나와의 WWF 챔피언십에서 패배하며 타이틀을 잃게 된다.[6]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브렛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고, 그해 열린 WWF 킹 오브 더 링(1993)에도 참가하여 레이저 라몬, 미스터 퍼펙트, 뱀뱀 비글로우를 차례로 물리치고 다시 우승했다.[7]
다시 왕에 올랐던 브렛은 자칭 왕이었던 제리 롤러와 대립을 맺게 되었고, WWF 섬머슬램(1993)에서 제리 롤러와 경기에서 반칙패한다.[8]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3)에서는 오웬, 브루스, 키스 형제들과 더 하트 패밀리라는 팀을 이루어 숀 마이클스& 히즈 나이츠 팀과 경기를 가져 승리했다.
WWF 로얄럼블(1994)의 30인 로얄럼블 경기에 27번으로 출전, 렉스 루거와 함께 공동 우승함으로써 레슬매니아에서 월드 챔피언에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뒤이어 열린 레슬매니아 10에서 다시 한 번 요코주나와 WWF 챔피언십을 가져 승리했다. 그리고 WWF 섬머슬램(1994)에서 스틸 케이지 매치로 치러진 오웬 하트와의 WWF 챔피언십에서 벨트를 지켜냈다.[9]
그렇게 약 250일 동안 집권하며 언제나 싸우는 챔피언의 모습을 보여오던 브렛이었지만 약 15년 만에 WWF로 돌아온 밥 백런드에게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4)에서 패배하며 타이틀을 잃는다.[10]
WWF 로얄럼블(1995)에서 WWF 챔피언십을 갖던 중 오웬 하트, 밥 백런드의 공격을 받았다. 이후 30인 로얄럼블 경기에 두 사람이 입장하던 도중 급습해 둘 다 광탈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레슬매니아 11에서 밥 백런드와 I Quit 매치를 가졌고 이 경기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WWF 킹 오브 더 링(1995)에서 제리 롤러와 키스 마이 풋 매치를 가져 승리했으며, WWF 섬머슬램(1995)에서 아이작 양캠 DDS[11]에게 DQ 승을 거두었다. 또한 WWF 인 유어 하우스 3: 트리플 헤더에서 장 피에르 라피트에게 승리했다.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5)에서 다시 디젤을 무찌르고 월드 챔피언에 올랐으며, WWF 인 유어 하우스 5: 시즌즈 비팅즈에서 브리티시 불독과 WWF 챔피언십을 가졌고 무사히 벨트를 지켜냈다.
WWF 로얄럼블(1996)에서 언더테이커와 WWF 챔피언십을 가져 DQ패했지만 타이틀을 지켜냈고[12], WWF 인 유어 하우스 6: 레이지 인 더 케이지에서 디젤과 WWF 챔피언십 스틸 케이지 매치를 가졌고 경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WWF 레슬매니아 12에서 숀 마이클스와 그 유명한 아이언맨 매치를 벌였지만 패배하며 타이틀을 내려놓는다.
1997년 2월 다시 월드 챔피언에 오른 브렛이었지만 이번 상황은 이전과는 달랐었다. WCW의 부상으로 WWF는 여러 위기를 겪고 있었고, 이러한 책임은 브렛에게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WWF의 인기는 나날이 떨어져갔고, 그런 와중에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이 등장하게 된다. 한편 그런 와중에 타이틀을 사이코 시드에게 잃은 다음 레슬매니아에서의 도전권 획득을 위해 WWF 로얄럼블(1997)에 참가했지만 오스틴의 사기 행각 때문에 탈락하며 우승에는 실패하게 된다. 브렛은 이 결과에 불복하며 오스틴과 대립을 하게 되고,[13] 이는 레슬매니아 13에서 전설적인 서브미션 경기로 이어지게 된다.[14]
WWF 레슬매니아 13에서 승자는 브렛 하트였지만 수많은 팬들은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Badass한 모습에 반하게 되어, 브렛에게 야유를 보낸다.
이러한 결과에 당황한 브렛은 결국 턴 힐을 하게 되고, 저속적인 오스틴 따위에게 응원이나 해대는 저질스러운 양키들이라며 미국인을 비난했으며 WWF에서 활동 중이던 가족들[15] 그리고 던전 출신의 브라이언 필먼을 규합해 뉴 하트 파운데이션을 결성하며 캐나다의 우월성을 말하고 다니며 WWF의 타이틀을 독점해댄다.[16] 브렛 본인도 WWF 섬머슬램(1997)에서 당시 WWF 챔피언이었던 언더테이커를 무찌르며 5번째 월드 챔피언에 오른다.[17][18]
한편 레슬링 외적으로도 이미 브렛은 여러 문제를 겪기 시작했는데 당시 WCW는 WWF, ECW, 멕시코, 일본에서 선수들을 마구 쓸어 담고 있었고, 당대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브렛에게 엄청난 계약 조건을 제시하며 접근한다. 브렛은 WWF에 대한 충성심에 떠나기를 망설였지만 빈스 맥마흔의 어정쩡한 대답에 결국 WCW 행을 결심하게 된다. 한편 당시 브렛과 비슷한 위치에 있던 숀 마이클스의 인간 말종 행위는 점점 도를 넘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잡질을 거부하며 뱀 뱀 비글로, 셰인 더글라스가 단체를 떠나게 만들어버렸고, 엄격한 브렛과의 가치관 차이로 엄청난 원수 사이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런 상황들이 겹치고 일어나 결국 1997 서바이버 시리즈가 다가오게 되는데 빈스는 브렛이 타이틀을 내려놓기를 요구했지만 브렛이 숀 마이클스에게 만큼은 못 지겠고, 또한 고향인 캐나다에서 절대 질 수 없다고 버티며 각본 수정 권한을 발동한다.[19] 결국 발등에 불이 떨어진 빈스를 두고 트리플 H가 "브렛이 프로적인 행동을 안 하니 우리도 그럴 필요 없다."라고 말을 하며 그를 부추긴다.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 벌어진[20] PPV 메인이벤트 속에서 숀 마이클스가 브렛에게 샤프슈터를 건 뒤 쓰러져 있던 심판 얼 헤브너가 벌떡 일어나 경기를 끝내 버리고 도망가 버린다.[21] 그 유명한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일어난 것이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파악한 브렛은 분노하며 빈스에게 침을 뱉었고, 방송을 통해 WCW 사인을 보내며 백스테이지로 사라진다.[22] 이후 백스테이지에서 빈스 맥마흔 파와 브렛 하트 파로 갈려 패싸움이 벌어졌으며[23] 브렛은 WWF를 떠난다.
5. WCW
WWF를 떠난 브렛 하트는 당시 nWo의 지배하에 있던 WCW에서 유일하게 nWo를 상대하던 스팅과 헐리우드 호건 간에 펼쳐진 WCW 스타케이드(1997)에서 특별 심판으로 나와 스팅의 승리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지만 당시 WCW의 수장인 에릭 비숍은 "당신을 어떻게 활용해야할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 당시 비숍이 신세대 유망주들을 키울 생각은 안하고 그저 노장 선수들로 밀고간 것도 문제였지만 그마저도 그저 노장 선수들로 밀고가면 그만이라는 생각만 있었을뿐 정작 브렛 하트 같은 선수들을 어떻게 활용해야할지 모를 정도였으니 얼마나 무능했는지 보여준 격이었다. 그리고 그런 말에 딱 맞듯이 브렛은 당시 WCW의 2인자 벨트인 US 챔피언십과 3인자 벨트인 TV 챔피언십을 놓고, 투 콜드 스콜피오, 커트 헤닉, 부커 T,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등과 대립을 한다.
그렇게 약 1년간 제대로 된 대립도 없이 방황하던 브렛 하트였지만 1999년 11월 21일 WCW 메이헴(1999)에서 공석이 된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크리스 벤와를 무찌르며 첫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 오른다. 이후 여러 선수들과 타이틀을 놓고 대립하기도 했으며 빌 골드버그와 함께 태그팀 챔피언에 오르며 WCW의 5번째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다.
이후 1999년 12월 20일 나이트로에서 WCW 스타케이드(1999)의 골드버그와의 경기 결과 논란 때문에 WCW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박탈당하고, 골드버그와 WCW 스타케이드(1999) 리매치와 동시에 공석이 된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갖는다. 아웃사이더스( 케빈 내시 & 스캇 홀)의 도움으로 다시 한 번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름과 동시에 턴 힐을 하면서, 리더를 맡아 제프 제럿, 케빈 내시 등을 멤버로 하는 nWo 2000을 구성하게 된다.
브렛은 1999년 12월 PPV 스타케이드에서 골드버그와의 경기 중 브렛은 골드버그가 날린 슈퍼킥에 맞아 뇌진탕을 당하게 되고, 게다가 연달아 교통사고를 당하며 몸이 거의 박살나다 싶을 정도의 큰 부상을 당하면서 선수로서 은퇴하게 된다.[24]
6. WWE 복귀
2006년에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사실 그 이전에 브렛 하트의 레슬러 인생이 담긴 DVD를 WWE측에서 출시했는데 이것에 브렛이 협조를 한 계기가 재미있다. 그가 DVD 제작에 참여하게 된 동기로 밝힌 것은 치과에서 만난 한 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브렛 하트를 알아봤는데 그 아이는 브렛의 경기를 본 것이 아니라 바로 그가 나온 게임들을 보고 그가 브렛 하트인지 알았던 것이다. 브렛은 최근에 레슬링을 접하는 팬들이 브렛이 어떤 레슬러였는지, 어떤 경기를 해왔는지 그에 대한 커리어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게임에서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위해서 였다고 말하고 있다. 브렛의 DVD는 2005년 11월 15일에 발매되었으며, 하루 뒤 16일에 그는 인터넷으로 방송되는 Byte This!에 나오기도 했다.
많은 팬들은 그와 빈스의 관계로 인해 다시는 브렛 하트가 WWE TV에 등장할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으나, 2009년 12월 레슬 전문 사이트에 따르면 브렛이 2010년 1월 1일부터 4개월간 WWE와 계약을 맺었으며 레슬러는 아니지만 단장 같은 역할로 WWE에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과연 그의 새로운 모습은 어떨지 많은 팬들이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미국시간으로 2010년 1월 4일에 생중계된 RAW에 등장, 숀 마이클스와 악수를 하는 장면을 연출. 실제 화해한 것인지 비즈니스에 불과한 것인지는 이론이 분분했는데[25], 실제로도 백스테이지에서 숀과 화해를 했다고 한다. 사실 숀이 브렛과 포옹하는 부분은 숀이 즉흥적으로 한 행동이어서 브렛이 놀랐기 때문이다. 숀은 앞서 백스테이지에서 브렛과 얘기를 했지만 단순히 악수뿐 아니라 뭔가 더 확실한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이후로도 서로 문자를 보내면서 연락을 한다고 한다. 다만 트위터를 쓰는데 능한 브렛과 달리 숀은 트위터나 홈페이지를 쓰는 것이 불편해서 그쪽으로는 잘 연락을 안한다고.
불미스러웠던 그 사건이후 백스테이지에서 12년만에 찍은 사진 [26] |
그리고 빈스 맥마흔과도 악수를 했으나, 빈스에게 로우 블로우를 맞았다. 이후의 내용은 앞으로 각본에 반영될 듯 하여 기대감 상승 중.
거기다 립서비스로 보였던 스튜 하트의 명예의 전당 헌액만큼은 99.9% 사실이라고 한다. 우왕ㅋ굳ㅋ인 듯 했으나...
2월 1일 RAW 방영분에 빈스 맥맨에게 맞은 로우블로우를 복수하기 위해 등장한 브렛에게 빈스는 "그 때 얘기한 일들이 사실이 아니다. 넌 그런걸 받을 자격이 없다."고 얘기하며, 스튜 하트의 명예의 전당 헌액마저도 취소시키는 듯한 분위기를 보였다.
분노한 브렛이 빈스를 공격한 순간, 바티스타가 난입해 브렛을 공격한 뒤 붙잡았고, 붙잡힌 걸 확인한 빈스가 브렛의 얼굴에 껌을 뱉었다.[27] WWE에 복귀했으나 부진만을 보여준 브렛에게 복수의 기회는 올 것인가?
마침내 3월 15일 RAW에서 공식적인 계약식을 통해 레슬매니아 26에서 노 홀드 바 경기로 빈스 맥맨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레슬매니아 26에서 빈스와의 대결이 성사되었지만 빈스는 다시 한번 브렛을 엿먹이겠다며 돈으로 매수한 브렛의 가족을 데리고 나온다. 하지만 브렛은 자신이 엿먹히지 않으려면 자신도 엿을 먹이면 된다고 말했고 결국 브렛의 가족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빈스를 배신했다. 그 후, 브렛 하트는 일방적인 공세[28][29]끝에 분노의 샤프슈터로 빈스에게 기브업을 받아내어 복수에 성공했다. 사실 이때 숀 마이클스와 함께 일하기를 원했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는 그의 몸 상태 때문에 경기 끝나고 걸어나가는 것까지만 해도 충분히 고행이었기 때문.
이 경기를 통해 프로레슬링계 최악의 배신인 몬트리올 스크류잡에 대해서, 빈스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성의를 보여 사과한 것으로 빈스와 브렛 양자 모두 시원하게 앙금을 털어냈다.
레슬매니아 26 이후에는 하트 가를 잇는 태그팀 하트 다이네스티( 타이슨 키드 & DH 스미스 & 나탈리아 )를 도와서 매니저로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와 중에 5월 11일 미즈의 도발로 인해 졸지에 US 챔피언쉽에 도전하는 상황이 되었고, 팬들은 브렛이 US 챔피언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5월 18일 RAW에서 열린 WWE US 챔피언쉽 경기에서 샤프슈터로 미즈를 꺾으면서[30] 새로운 WWE US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러나 얼마 후, RAW의 단장으로 등극하면서, 벨트는 반납했다. 그리고 US 챔피언은 공석 처리. 그런데 단장으로 등극한 상황에서 넥서스의 "선수 계약서 요구"를 거절한 채 모두 쫓아내버리자 쇼 막판 백스테이지에서 공격당한 뒤 강제적으로 리무진에 태워져서 "선수로서 계약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라."라는 말을 들은채 피해를 입었고 이후 빈스 맥맨에 의해서 단장직에서 해고되었다.
저 사건을 계기로 한동안 WWE 방송에 등장하지 않다가 WWE 섬머슬램(2010)에서 넥서스를 상대할 팀 WWE의 멤버로 경기에 참여해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바디슬램을 비롯한 여러가지의 기술을 보이며 팬들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섬머슬램 이후 TV 쇼 출연은 자제하고 있으나, 자선 활동을 비롯한 특별 행사에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7. 은퇴 이후의 행보
2013년 5월 27일자 RAW는 브렛 하트의 고향인 캐나다 캘거리에서 브렛 하트 감사제 특집으로 방송되었는데, 제리 롤러를 비롯해서 WWF 시절부터 절친했던 팻 패터슨, 하트 던젼에서 함께 수련했던 크리스 제리코, 그리고 라이벌 숀 마이클스와 빈스 맥마흔 회장과 제자인 타이슨 키드, 조카인 나탈리아와 모든 WWE 슈퍼스타, 디바들이 나와서 브렛 하트를 축하해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후 인터뷰에서 크게 기대는 안했는데 숀이 나오자 감사제가 특별해졌으며 빈스의 헌정을 듣고서 이제서야 내가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 라디오 방송에 숀 마이클스와 함께 출연해서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7)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만약 그 때 빈스가 스크류잡을 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은 다음 날 RAW에서 깔끔하게 타이틀을 반납하고 WCW로 갔을 것이다라고 코멘트하기도 했다. 브렛의 성격에 메두사처럼 타 단체에 타이틀을 들고가는 짓은 아마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팬들의 중론.[31]
레슬매니아 30을 앞두고 대니얼 브라이언이 챔피언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코멘트했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되었다. 물론 만약 이때 챔피언이 안됐으면 팬들의 실망도 엄청났을테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2014년 7월 7일자 RAW에 특별 등장했다. 무대가 다름아닌 몬트리올이었는데, 이전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도 몬트리올에 돌아온 것은 영광이며 다시 한번 경기를 가질수 있다면 몬트리올에서 하고싶다는 마이크웍을 한다. 이때 데미안 샌도우가 브렛 코스프레를 하고 등장해 브렛을 조롱하며 말빨은 당신의 특기가 아니지 않냐는 말을 하다가 브렛에게 한대 얻어맞는다(...).
방송 후 유튜브에 올라온 인터뷰에선 몬트리올에 돌아와서 기쁘다는 소감과 함께 데미안 샌도우를 보고 웃어야 될지 화나야 될지 모르겠는데, 일단 웃기게 코스프레하고 나온건 칭찬해줬다. 어차피 자기를 자극시키려는 인물들이 많아서 샌도우의 조롱 세그먼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7월 11일자 스맥다운에선 크리스 제리코의 하이라이트 릴에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RAW에 이어서 이번에 HBK로 코스프레한 샌도우가 나와 도발하자, 전매특허인 샤프슈터로 샌도우를 혼내주었다.
2015년 5월 4일, 몬트리올에서 열린 RAW에서 존 시나의 WWE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챔피언십 오픈 챌린지에 나와 새미 제인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2016년 2월 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문을 남기며 전립선암 투병중임을 밝혔다. 또다시 가혹한 운명의 수레바퀴와 마주하게 된 브렛 하트는 이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울 수 있는 전투를 앞두게 되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회복까지 긴 여정이 될 것이라 하였다.
회복이 잘 되고 있는지 페이백에서 조카인 나탈리아 네이드하트의 일일매니저로 출연해 릭 플레어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샬럿의 샤프슈터에 탭아웃하지않은 나탈리아가 패하자[32] 나탈리아와 함께 플레어 부녀에게 샤프슈터를 시전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는 당사자와 그 친척이 동의하고, 대립의 구성원들도 한 시대의 전설들이자 그 명성을 물려받은 값을 하는 후세대 일원들이 철저히 쇼로서 충실하게, 철저하게 각본으로 이루어졌고 응징도 했음에도 시청자들의 평은 영 안 좋았다. 아무래도 '동의했다고는 하지만 그때 그 흑역사를 우리들한테 다시 떠올리게 하고 싶냐?', '어쨌든 당사자한텐 실례 아니냐?'는 정서가 컸던 모양이다.
2017년 12월 7일 2년 전에 받은 오른팔 수술이 잘못돼 오른손 중지와 검지가 마비되고 오른손으로 하는 일을 못하는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고 한다. 해당 병원에 100만 달러의 소송을 걸었으며 다른 병원에서 재수술을 받았으나 회복을 장담할수 없다고 한다.
2019년 WWE 명예의 전당에 하트 파운데이션이 헌액되어 연설하던중 갑자기 남자 한명이 브렛을 공격했다...(?)
또한 실제로 우측에 어떤 회색 입은 관중이 계단쪽으로 재빠르게 내려가 링 쪽으로 달려 가는 장면도 있었다.
용의자는 재커리 메이슨(Zachary Madsen)(26세)으로, 브렛 하트가 봉변을 당하자 셰인 맥마흔, 뉴 데이, 드레이크 매버릭, 히스 슬레이터, 잭 라이더와 드류 맥킨타이어 등이 달려들어 메이슨을 떼어 내었다.[33] 해당 용의자는 폭행과 무단침입 혐의로 기소될 전망이다. 다행히도 브렛에게는 큰 이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어, 멀쩡히 연설을 계속해 나갔다. 기사[34]
2019년 5월 25일 열린 올 엘리트 레슬링의 더블 오어 나씽에 출연, AEW 월드 챔피언십을 공개했는데 중간에 MJF가 나와 상술한 명전 난입사건을 가지고 그를 조롱하는 세그먼트를 했지만, 이미 링에 나와있던 애덤 페이지와 세그먼트를 듣고 나타난 정글 보이와 지미 해벅에게 공격을 받고 쫓겨났다.
2024년 9월 9일에 고향 캘거리에서 열린 RAW에 출연했다. 얘기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군터가 브렛의 유행어를 써먹으며 내가 최고였고 최고이고 최고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더니 브렛은 자신이 두번째로 좋아하는 레슬러이고 첫번째로 좋아하는 레슬러는 브렛을 은퇴시킨 빌 골드버그라며 도발하지만 그 이후에 등장한 새미 제인에 의해 군터는 저지당한다.
[1]
그외에 다이너마이트 키드와 데이비 보이 스미스의 브리티시 불독스이다.
[2]
한편 당시 아나운서였던 고릴라 몬순은 브렛의 뛰어난 실력을 찬양하며 The Excellence of Execution이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3]
짐 나이드하트도 잠시 싱글 활동을 했지만 큰 방향을 일으키지 못해 얼마 안가 WWF로 진출한
오웬 하트와 뉴 하트 파운데이션을 구성한다.
[4]
영국에서 열린 최초의 PPV로
브리티시 불독이
영국인이었기에 그를 위해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 매치가 메인 이벤트로 열렸다.
[5]
단 최초의 캐나다인 월드 챔피언은 아니다.
[6]
그리고 경기 뒤
헐크 호건이
요코주나가 브렛을 반칙으로 이겼다며 항의하면서, 브렛을 부축하여, 백 스테이지로 향했는데, 브렛이 호건에게
요코주나를 쓰러트리라고 하고, 이후 호건은 요코주나를 몇 초만에 박살내며 챔피언에 올랐다. 여담으로 브렛은 이 각본에 대해서 "내가 1년 동안 노력해서 오른 레슬매니아 메인 이벤트를 호건은 단 몇 초 만에 오른다."라며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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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렛은 현재까지 유일하게 2회, 거기다 연속으로 킹 오브 더 링에 우승한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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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리 롤러는 USWA에서
오웬 하트와도 대립 중이었다. 즉 형제가 동시에 한 사람과 대립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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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는
데이브 멜처로부터 별점 다섯 개를 받았는데, 브렛의 커리어의 첫 번째 별점 다섯 개의 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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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밥 백런드는 3일 뒤
디젤에게 3초만에 패배했다. 그리고 디젤은 데뷔 1년만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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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양캠 DDS는 케인의 이전 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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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는 당시 매치업에서 줄곧 자신보다 더 큰 빅맨들을 전담하며 답답한 경기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언더테이커가 갈망했던 경기였다고 하며, 브렛 역시 언더테이커가 다양한 면모를 지닌 뛰어난 레슬러임을 이 경기에서 보여 주고 싶었다고 한다. 결과물 역시 두 선수가 모두 만족했던 경기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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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시드에게 도전했지만 패배하며 이에 분노해 당시 기믹 상 아나운서였던
빈스 맥마흔에게 욕 짓거리를 했다. 이를 통해 사실상 빈스는 아나운서 역할을 그만두게 되었고, 오늘날 널리 알려진 악덕 회장 미스터 맥마흔으로 활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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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1997년도 올해의 경기에 선정되었으며, 데이브 멜처로부터 별점 다섯 개를 받는데, 브렛의 커리어의 두 번째 별점 다섯 개 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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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오웬 하트, 매형인
짐 나이드하트와 매제인
데이비 보이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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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런 기간 동안
락키 마이비아와 인터컨티넨탈 타이틀을 놓고 RAW에서 대결했다가 패배했는데 원래 푸시를 받던 락을 밟아버리려고 한 클릭 일당의 수작이었지만 브렛은 락을 보호해주고자 이 각본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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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머슬램에서 월드 챔피언을 최초로 탈환한 선수가 브렛 하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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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다 획득 기록으로 이 기록은 뒷날
더 락에 의해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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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브렛은
1997 서바이버 시리즈 다음날 RAW에서 타이틀을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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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베이더가 브렛에게 "빈스는 이럴 때 뒤통수 잘 치니 조심해라"라고 경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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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브렛과도 친해서 브렛은 헤브너에게 "날 배신하지 말아줘."라는 부탁을 했다. 이에 헤브너는 울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결국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벌어졌고, 브렛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고용주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을 거라며 이해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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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시 관중들은 폭동 분위기를 띄며 매우 위험한 기류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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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데이비 보이 스미스가
셰인 맥마흔을 말리다가 심각한 부상을 당했고, 진통제를 과다하게 사용하다 결국 진통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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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이후 골드버그는 두번다시 슈퍼킥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후일 인터뷰에서 "브렛은 죽을 때까지 나를 원망하지 않을 테지만, 그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도 안타깝다. 수백 번을 설명해도 후회스럽다."고 심경을 밝혔다. 정작 당사자인 브렛은 프로레슬링을 하다 보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면서 골드버그를 탓하지 않고 두둔해줬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팟캐스트 등지에서는 '골드버그는 상대를 부상시킨다'며 쿨타임 돌 때 마다 깐다. 아무래도 상대를 부상 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프로레슬러의 가장 큰 덕목으로 삼는 브렛이기에 개인적인 악감정은 없어도 레슬러로서는 좋지 않게 평가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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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영상으로 보면 둘이 여전히 어색해하는 듯한 모습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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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레슬매니아 26에서 숀이 은퇴 경기를 가진 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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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한 RAW에서 빈스는 브렛을 "단물이 다 빠진 껌 같은 존재"라는 조롱을 하였고, 2월 1일 브렛에게 다시 한 번 굴욕을 주기 위해 이러한 상황을 만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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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스 맥맨은 단 1대도 때리지 못한채, 37대의 체어샷을 맞는 등 브렛에게 압도적인 공격을 당했다.본격 회장님 몰매 맞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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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럼버잭 매치 일환으로 참여한 하트 파운데이션 멤버들에게 몰매를 맞고 기술까지 맞은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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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경기가 NO DQ 매치가 되면서 다른 선수들의 난입으로 인해 상황이 유리해지긴 했다. 하트 다이너스티가 미즈에게 하트 어택을 작렬하면서 사실상 넉 다운 된 미즈를 샤프슈터로 요리했기 때문. 이 경기는 NO DQ, NO COUNT OUT 매치였으나 다른 선수들만 난입할 뿐 무기는 나오지 않는다.거지같은 Rated PG 하기사 뇌진탕때문에 고생하다가 간신히 재활한 사람한테 그런 걸 쓴다는 것도 좀 그렇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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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전문가들 또한 WWE에서 브렛 하트의 말은 믿었겠지만, 타이틀을 자진 반납 하면 그만큼 가치가 떨어져 이런일을 벌였을걸로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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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스크류잡을 재연하는 각본에 대해 브렛 하트 본인이 승낙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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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리바이벌의 대쉬 와일더는 용의자의 죽빵을 날리는 참교육을 시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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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입한 재커리를 퇴장한 후, 드레이크가 마이크에 대고 "저 사람을 신경쓰지 마시고 계속 연설을 이어갑시다!"라고 말해 관중들은 점점 환호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