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 미사 제1번 D단조
(Messe Nr.1 d-moll/Mass no.1 in D minor)
1. 개요
안톤 브루크너의 미사곡 하면 대개 1864~68년에 작곡한 세 곡을 명작이라고 쳐주곤 한다. 물론 그 전에도 크고 작은 미사곡을 쓴 적이 있고 1854년의 '장엄미사' 는 나름대로 작곡가로서의 성장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연주 빈도는 여전히 현시창.하지만 이 곡은 지몬 제히터와 오토 키츨러라는 두 스승에게 각기 음악이론과 관현악법/음악형식론을 빡세게 배우고 난 뒤 탄생시킨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브루크너 자신도 '내가 이런 곡을 쓸 줄은 몰랐다' 라고 스스로 놀랐다고 할 정도.
작곡 시기는 아직 키츨러 문하생이자 린츠 대성당의 수석 오르가니스트로 재직 중이었던 1863년 2월부터 1864년 봄 또는 여름까지. 연주 시간은 약 47~50분으로, 브루크너가 그 때까지 작곡한 종교음악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2. 곡의 형태
여느 미사곡들과 마찬가지로 로마 가톨릭의 통상적인 미사 전례문인 자비송(Kýrie), 대영광송(Glória), 신앙 고백(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Credo), 거룩하시도다(Sanctus),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 5개 섹션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 시대의 미사곡이 늘 그랬듯, 이 곡도 '거룩하시도다' 는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Benedíctus qui venit in nómine Dómini.)" 부분부터를 '베네딕투스(Benedíctus)' 라고 해서 한 번 더 나누고 있다. 이렇게 하면 총 6개 섹션. 가사는 미사 원문인 라틴어를 쓰고 있다.대영광송과 신앙 고백 악보에서는 각각 첫 문장들인 'Glória in excélsis Deo' 와 'Credo in unum Deum' 이 생략되어 있다. 바로 아래에 언급된 것처럼 선창 부분을 그레고리오 성가 선율을 그대로 쓰기 위함이다. 이는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태동되었다고 전해지는 '나폴리식 미사' 에서도 나타나는 독특한 양식으로, 모차르트의 초기 미사곡에서도 이렇게 첫 문단을 생략하고 다음 문단부터 들어가는 곡들이 발견된다. 브루크너는 소년 시절 성가대에서 모차르트의 미사곡을 부른 경험이 있었다는데, 그 경험에서 착상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이 곡과 후속작인 미사 제2번에서는 저 두 구절을 테너 독창자 또는 합창단의 테너 파트장이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로 독창하고 시작하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다.
처음으로 완편된 관현악을 사용한 종교음악인 만큼, 전체적인 사운드도 훨씬 장려하고 짜임새있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거기에 제히터에게 배운 대위법 스킬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고, 특히 대영광송 후반부의 정교한 푸가 진행은 주의깊게 들어볼 만한 대목이다. 아직 맛보기 수준이지만, 교향곡에서 독특한 스킬로 정립되는 반복 진행인 '브루크너 시퀀스' 도 나오고 있다.
연주 편성은 독창자 네 명(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과 혼성 4부 합창(마찬가지로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파트)이라는 성악진에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2/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현 5부(제1 바이올린-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라는 전형적인 고전시대풍 2관 편성 스펙의 관현악이 가세한다. 미사 제3번이나 테 데움에서처럼 오르간을 더해 연주하는 공연이나 녹음도 있는데, 다만 오르간은 원곡 악보에서 넣어도 좋고 안넣어도 상관없는 옵션으로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미개정판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3. 초연과 출판
브루크너는 이 야심작을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생일인 1864년 8월 18일에 봉헌될 축전 미사에서 초연하려고 했지만, 공연 계획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취소되었고 가을이 되어서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최초 공연: 1864년 11월 20일에 린츠 대성당에서 성당 부속 성가대와 관현악단의 연주로 초연됨. 지휘는 누가 맡았는지 불명확한데, 성가대의 지휘를 종종 담당하기도 했던 브루크너가 맡았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식 보직인 오르가니스트로 참가했을 수도 있어서, 확언하기는 힘들다.
갓 완성되었을 때는 관현악 외에 오르간도 완편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 공연 후 12월 18일에 린츠의 레두텐잘에서 재연했을 때 홀에 오르간이 없던 이유로 오르간 솔로가 나오는 부분을 클라리넷과 바순의 연주로 대체했다는 기록이 있다.
초연과 몇 차례의 재연 후에는 1876년과 1881~82년에 두 차례 개정했는데, 교향곡 처럼 대규모 리모델링을 한 것은 아니고 오르간의 비중을 옵션으로 줄이거나 셈여림이나 이음줄/붙임줄 등의 아티큘레이션과 관련한 세부적인 수정 작업 위주였다. 1882년에 최종 개정된 판본은 1892년에 간행된 초판에서도 기본 자료로 사용되었다.
''1892년 초판: 인스브루크의 요한 그로스 음악출판사에서 출판됨. 1881/82년판과 큰 차이점 없음.''
1864년 미개정판: 미발표. 아직 편집 작업도 없는 상태임.
1876년 개정판: 역시 미발표.
1881/82년 개정판: 음악학자 레오폴트 노바크의 편집으로 1975년에 출판됨.
상용되는 악보는 역시 노바크 편집의 최종판이고, 그 전에는 그로스 출판사의 초판본이 유일한 간행 악보로 통용되었다. 성악부의 가창 난이도는 약간 높은 편이지만, 후속작들인 두 곡의 미사나 테 데움 등과 같이 목청 관광보낼 정도라고 설레발을 칠 만큼 고난도는 아닌 터라 오스트리아나 독일의 성당 성가대들도 종종 공연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