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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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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원작 평가
2.1. 종합적인 평가2.2. 부정적인 평가와 그에 대한 반론2.3. 결말에 대한 평가
3. 애니메이션 평가
3.1. 애니메이션의 문제점

1. 개요

일본 만화가 오이마 요시토키의 만화 < 목소리의 형태> 와, 그것을 원작으로 하는 야마다 나오코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 목소리의 형태〉의 평가에 대한 문서이다.

2. 원작 평가

2.1. 종합적인 평가

목소리의 형태는 표면적으로 봤을 때,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은 서로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였지만 다시 만나 친구가 되고 서로의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전인미답(前人未踏)[1]의 스토리로 인해 많은 이목을 받은 작품이다.

목소리의 형태는 작가가 악역으로 규정한 인물은 없는 악역이 없는 작품으로 모든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렸다. 이 점에서 인간은 단편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라는 메시지를 잘 보여주었다.[2] 전체적으로 보자면 장애인과의 소통 및 이해, 트라우마의 극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 주제의식과 캐릭터성을 붕괴시키지 않고 이야기를 끝마치는 데 성공해 만화의 짜임새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리고 목소리의 형태는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관점이 아니라 각각의 캐릭터 개인의 시점에서 전개되며, 사람과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작품에서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며 각 캐릭터의 감정선이 매우 자세하게 묘사가 되어있다.

다만 소재가 소재인지라 두 주인공이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였다는 설정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며 소재로 썼다는 사실 자체를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3][4] 실제로 목소리의 형태는 원래대로라면 단편이 신인상을 받은 2008년에 연재될 예정이었으나 청각장애인에 대한 왕따라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관통하는 작품 내용 때문에 연재가 취소된다. 그러나 5년 후인 2013년에 목소리의 형태의 단편 리메이크가 나오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결국에는 장편으로 연재될 수 있게 된 작품이다.

목소리의 형태를 문제작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 작품이 만화계에서 한 획은 그은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5][6] 작품의 기승전결과 등장인물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 그리고 교훈등이 자세하게 나오기 때문에 여러 시상식에서 상을 쓸어 담았으며 완결이 된지 10년이 지난 현재도 회자될 만큼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2. 부정적인 평가와 그에 대한 반론

이 작품을 혹평하는 쪽에서는 왕따 가해자의 자기 위안 판타지라고 비판한다. 작가도 그걸 의식했는지, 초반부 유즈루의 입을 통해 쇼코를 만나러 온 쇼야에게 자기 위안을 위해 온 거라면 돌아가란 말을 한다. 또한 몇 번이고 쇼야 본인의 독백을 통해,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본적으로 왕따는 피해자에게 엄청난 트라우마이며 보통 가해자와 재회하면 트라우마가 발동해 공포감과 증오감부터 들지, 연민이나 호감을 품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작중에서 쇼코는 과거 왕따 가해자인 쇼야에게 원망, 공포, 증오 등의 불쾌한 감정을 거의 표현하지 않다시피 한다. 오히려 항상 다정하고 상냥한 모습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 작품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측에서는 결국 가해자인 내가 그 어떤 잘못을 해도 용서해 주고, 예쁘고 착하고 순진하며 장애가 있어 내가 보호해 주어야만 하는, 즉 나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장애 캐릭터 모에, 첫사랑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켜 주는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한다.[7]

그러나 작품을 제대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목소리의 형태에서 왕따 가해자를 옹호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쇼야는 절대로 '선한 주인공'이 아니며 작품에서도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절대로 쇼야의 행동을 옹호해주지 않는다. 왕따 가해자였던 쇼야는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있으며, '왕따 가해자'라는 낙인이 찍혀 자신이 한 짓과 똑같이 왕따를 당했고, 중학생 때는 똑같이 왕따였고, 고등학생 때까지 외톨이로 살고 있는 데다가 그런 그도 자기혐오와 삶의 의미에 대해 비관하며 작중 초반 자살 시도까지 한다. 결국 신체적, 정신적으로 죗값을 치르려고 하며, 자신을 희생해서 과거에 왕따시킨 피해자였던 쇼코를 구하는 데까지 성장하는 캐릭터이다.[8]

쇼야는 자살하려는 쇼코를 목숨바쳐 구하다가 추락해 혼수상태에 빠진다.[9] 이 때문에 쇼코 어머니와 유즈루는 다음날 병원에서 쇼야 어머니한테 도게자를 한다. 쇼코 어머니와 유즈루는 한때 쇼야를 몹시 증오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지금은 쇼야가 다친 것 때문에 도게자를 하며 사과한다는 것은 쇼야가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10]

목소리의 형태를 왕따 가해자의 자기 위안 판타지라고 비난하는 이들은 "당신은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가 갑자기 찾아오면 용서해줄거냐?"는 말을 하는데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다뤘다. 바로 쇼야가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인 시마다를 만난 부분이다. 쇼야는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캐릭터로 쇼야는 자신이 괴롭힌 쇼코를 만나러 갔을 때, 쇼코가 자신을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을 할 지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쇼야가 놀이공원에서 우에노에 의해 자신을 괴롭힌 시마다를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 쇼야는 쇼코가 당시에 자신에게 무슨 감정을 느꼈을 지 간접적인 방식으로 알게 되었다.[11] 작가는 가해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화해하자고 하는 게 유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쇼야와 시마다의 만남 장면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위에 전술한 쇼코에 대한 평가는 쇼코라는 캐릭터를 완전히 잘못 분석한 것이다. 여주인공인 쇼코는 단순히 몹시 착한 성격인 게 아니라, 그저 자기혐오에 빠진 나머지 일부러 착한 이미지를 연기하는 캐릭터다. 원작에서 그렇게 나오기 때문이다. 작가도 언급했던 이야기로, 쇼코는 우에노와의 갈등을 겪으며 '나는 내가 싫다'는 본심을 드러낸 적이 있으며, 우에노에게 보낸 편지에서 상대방의 비위가 상하지 않도록 억지 웃음을 지으며 연기를 했던 것이라고 털어놓았던 적도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든 늘 미소를 지으며 화답하는 쇼코의 태도는 쇼코의 성격이 마냥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마찰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도피성 연기를 하는 것이다. 즉 쇼코의 착하고 순진해 보이는 성격은, 왕따 피해자에 대한 환상[12]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 거듭되는 갈등 끝에 쇼코가 선택한 일종의 방어기제일 뿐이라는 것. 쇼코에 대한 묘사가 애니메이션 버전보다는 낫지만 원작에서도 직접적인 부분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은 마이너스 요소다. 애니메이션의 쇼코만 놓고 보면 상술한 쇼코의 억지 웃음과 같은 요소를 자세히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착한 게 아닌가 싶을만 하지만, 원작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무슨 천사나 성녀처럼 보이는 쇼코도 결국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쇼코는 전형적인 왕따 피해자가 아니다. 쇼코는 쇼야한테 왕따를 당했을 때 "내가 왕따를 당하는 건 이시다가 나를 말렸음에도 노래를 끝까지 불러서 반에 폐를 끼친 나의 잘못에 대한 벌이다"고 생각했다.[13] 그래서 쇼야를 향한 입버릇이 계속 "미안해"였던 것이다. 그리고 쇼야가 학급재판에서 왕따 가해자로 낙인찍혀서 이제는 왕따를 당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쇼코가 쇼야의 책상을 닦아주던 것도 "나 때문에 이시다가 왕따를 당했다"는 죄의식에 기반한 행동이다. 즉 쇼코는 애초에 쇼야를 용서를 해줘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과거에 자신을 괴롭힌 왕따 가해자였던 쇼야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쇼야는 자신이 예전에 버렸던 필담노트를 돌려주고, 수화까지 배워가며 자신과 소통을 하려는 의지를 드러내어 그때와는 다르게 개과천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쇼야를 친구로 받아준 것이다. 쇼코는 절대, '모든 것을 용서해주는' 피해자에 대한 판타지를 담은 캐릭터라서 용서해준 것이 아니다.[14] 이는 쇼코가 쇼야와는 생각이 다른, 또 다른 가해자인 우에노를 마주할 때마다 난처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이것이 증명된다. 쇼코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쉽게 용서하지는 않는 성격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쇼코가 쇼야를 좋아하는 감정을 갖게 되는 과정은 다소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을지 몰라도 목소리의 형태를 개연성이 없는 왕따 가해자의 자기 위안 판타지라고 볼 수는 없다. 착해보이는 태도는 사실 트러블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쇼야의 경우 진심을 확인했기 때문에 친구로 받아 준 특수한 케이스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애니메이션만 보면 뭔가 전개에 허전함을 느낄 수 있다.

애니메이션 마지막 장면에서는 친구들 전원의 얼굴을 한 번씩 비춰주면서, 이 인물들이 진심으로 웃는 모습을 상상하는데, 이때 마지막으로 쇼코의 진심으로 웃는 얼굴을 떠올린 쇼야는 눈물을 터뜨리게 된다. 그동안 억지 웃음만을 지어왔던 쇼코가 진심으로 웃는다는 것은, 용서를 바라는 쇼야에게 있어 의미가 깊기 때문이다. 원작에서도 영화 심사회 이후 갔던 레스토랑에서 우에노의 농담에 쇼코가 웃음을 터뜨리자, 쇼야가 유즈루와 함께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이 나온다.

작품의 주인공이 무조건 착해야 한다는 법은 없고, 평화로운 만화만 그려야 한다는 법도 없다. 게다가 가해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반성하는 이는 쇼야 뿐이고, 용서하는 것은 피해자의 마음이다. 쇼코가 쇼야를 받아준 것은 어디까지나 쇼코의 선택으로서 독자들에게 실제 현실에서 가해자가 사과하러 오면 피해자는 사과를 받아주고 용서를 해줘야 한다고 강요한 적도 없다. 만화 속 상황을 자신의 인생에 대입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결국, 가해자를 용서해주는 건 괜찮지만, 그래도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였던 둘을 로맨틱하게 엮는 건 심하지 않나?라는 주장이 주된 비판이다. 결국 캐릭터가 아닌 스토리를 지적하는 것. 열린 결말로 끝났으나, 분명 플래그가 있었고 쇼코는 쇼야를 좋아한다고 입 밖으로 내뱉기까지 했다. 과거를 용서하고 친구로 지내는 것은 이해하나, 진심으로 사랑까지 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다.

목소리의 형태가 가해자의 자기위안 판타지는 아니지만 작품에 대한 비판할 수 있는 점은 존재한다. '왕따가 아니라 소통이 주제이므로 비판은 대부분 요점을 잘못 파악한 것이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작품을 전부 파악한 후에 작품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구조적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소통의 부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왕따'라는 소재를 사용했으면 안되었다는 의견이 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왕따의 원인은 '소통의 부재'가 아니기 때문이다.[15] 절대다수의 사례가 그렇지 않은데 마치 소통의 부재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묘사하고, 결과에 불과한 요소를 원인인 것처럼, 마치 쇼코가 타인과 좀 더 소통했으면 더 나은 결말이 있었을 것처럼 우에노 앞에서 비참하게 무릎 꿇려놓고 가해자가 하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는 식으로 전개한다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폭력을 '소통의 실패로 인한 의도치 않은 결과'인 것처럼 그리고 있는데 이것이 매우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나마 우발적인 폭력이라면 예술적 허용이 가능하겠지만, 집단괴롭힘은 실수 따위가 아니라 작중에서도 묘사되듯이 굉장히 의도적인 형태이며, 이런 소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과거와의 화해, 소통'을 도출해내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다.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에 대해 제대로 표현하고 싶다면, 오해나 무관심같은, '커뮤니케이션에 속하지만 잘못된 형태'를 묘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스스로 중심 주제를 흐리는 소재(왕따)를 가져와 놓고, 자연스럽게 그 쪽에 시선이 쏠린 독자를 탓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장애아동이 당하는 왕따를 반드시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싶었다'는 것이 이유라면, 적어도 주제는 다른 쪽으로 잡았어야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16]

스토킹이나 강간을 다른 이유('상대를 지나치게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등)로 벌어진 것처럼 그린 작품이 비판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묘사가 용인되는 분야가 있다면 할리퀸이나 탐미지향적인 소설들인데, 그런 경우는 애초에 현실적일 것을 기대받지 않기 때문에 비판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목소리의 형태'는 장애 아동에 대한 다큐멘터리 급의 디테일한 묘사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심 주제는 비현실적으로 풀어나가니[17] 위화감이 큰 것이다.

작중에서 쇼코가 청각장애인의 어눌한 말투 때문에 놀림당하고, 쇼야에 의해 보청기가 부서지는 건 실제 청각장애인들도 많이 경험하는 것이며 청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왕따를 당했던 적이 있는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작품 전체에 그들의 트라우마를 유발할 만한 요소들이 산재한데, 비록 진심으로 반성했다고 해도 이들 입장에선 누구보다 증오스러울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을 넘어 사랑까지 하는 피해자를 순순히 납득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18] 목소리의 형태가 청각장애인을 비중있게 다룬 작품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청각장애인에게 해당 작품을 추천하는 경우도 있는데,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목소리의 형태는 청각장애인이 주역이라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작품에서 말하는 '소통의 부재'란 결코 쇼코가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작품 초반 쇼야의 입을 통해 말했듯이, 소통을 끊은 것은 가해자 쪽이었고, 쇼코는 계속해서 소통을 시도하려 노력했음을 보인다. 소통의 부재라는 표현이 '쌍방간에 이루어지는 소통이 없다'라고 이해하기 쉽지만 작품을 제대로 이해해서 해석하면 '소통의 의지를 한 쪽이 일방적으로 끊어냈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쉽게 설명하자면 쇼코는 소통하려 노력했지만 가해자들이 일방적으로 소통을 거부했고, 그 결과가 왕따로 나타났다는 것. 이런 관점에서의 '소통'이란 단순히 말과 말의 대화가 아닌 서로를 이해하려 하고 서로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려하는 의지일 것이며, 작품 또한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따진다면 결국 현실에서의 왕따의 원인도 피해자의 고통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재미만을 탐닉하는 가해자들에 의해 일어진 일이므로 작품의 설정이 틀리다고 할 수 없다. 폭력을 커뮤니케이션의 잘못된 방법으로 묘사한 것도, 가해자들이 쇼코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기에 그들이 쇼코에게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인 혐오를 제외하면 전할 감정이 없었고, 그 혐오를 전하는 수단 중 가장 당연한 것이 폭력이기에 이것 역시 당연한 묘사다.

또 한, 쇼코가 사죄를 하러 다니는 장면은 범죄 피해자가 되레 사과하러 다니는 일차원적인 연출 혹은 그렇게 보는 확대해석이 있는 것과 달리 그저 생을 마감하려 했던 쇼코가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다시금 본인에 대한 혐오와 대면하고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죄는 지난 날 무미건조하게 다정하며 상기 문단처럼 피해자이면서 되레 가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다닌 부자연스러움, 혹은 시청자들이 느꼈던 불편함과는 다르다. 겉으로 보이는 쇼코의 다정함과 상냥함은 상기 문단에도 나왔듯 자기혐오와 원망이 자아낸 방어기제이면서 쇼코만의 처세술이다. 그리고 자살 시도 이후 소극적이었던 과거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걸로 그녀 자신에게 변화를 주며, 이는 여러 장면을 통틀어 그저 자신의 죽음이 주변 사람들의 삶을 환원시킬 거라는 믿음으로 사라지려고만 했던 쇼코가 다시금 현실과 마주하고 왜 변하려는지에 대한 서사를 뒷받침한다. 이에 대한 변화는 이러한 행동 외에도 한 쪽 귀의 청력이 좋지 못하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조차 그저 씁쓸히 웃고만 있었을 정도로 항상 특정 표정만을 연기하고, 심지어는 자기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에도 어떤 표정을 드러내야 할지 머뭇거리기만 하던 지난 날과 교차해보면 그저 연기가 아닌 단순한 미소 하나에도 풍부함이 차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다른 비판 중 작가의 의중은 쇼코가 타인과 좀 더 소통했으면 더 나은 결말이 있었을 것이란 해석 또한 가해자인 우에노 앞에 무릎 꿇려놓고 가해자가 옳다는 식으로 전개됐다는 착각을 하니, 마치 본 작가가 전하고픈 메시지가 '우에노의 시선에 입각하여 소위 독자를 가르치려 드는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냐?' 라는 형태로 독자들에게 보이게 되는 것이고, 이 때문에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피해자가 되레 가해자에게 감화되고 자기반성이나 하고 있다는 잘못된 해석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에노의 자기합리화나 쇼코에게 가하는 조언 아닌 조언들은 본인의 과오로 지난 날 수없이 반성하고 고통받고 성찰하게 된 쇼야와는 공감되기 어려울 정도로 오히려 너무나 대조된다. '자신이 저지른 죄는 그대로 돌아서 자신에게 돌아온다', 나지막이 불교의 카르마론을 읊조리는 쇼야와 달리 우에노는 모든 원인을 쇼코의 존재로 두고 있고 쇼코의 부재가 자신들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렇기에 우에노가 쇼코에게 하고자 하는 말에 설령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 해도 독자들은 바보가 아니기에 공감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이입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쇼코의 소통이 정말 왕따의 원인이었으면, 이 작품에 대한 호평이나 작가의 인터뷰 또한 그 순간을 넘기기 위한 또 다른 처세술이자 그저 임기응변에 불과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쇼코의 캐릭터성으로 인해서, 혹은 그 안에 용서나 사랑이란 테마에 대해서 오히려 피해자를 분개하게 만든다는 서술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특히 이 작품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서양의 '나쁜 남자 길들이기'나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여자'와 같은 형식으로 해석해버리면 애초에 비판 문단에서 언급된 '작품에 대해 전부 파악했다고 말하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먼저 저 주장에는 장애인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다를 바 없는 디테일급 묘사 대비 쇼코같은 캐릭터가 현실성이 없다는 주변근거를 내세우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쇼야 같은 자기반성형 성찰형 캐릭터 또한 현실에서 찾기 어렵다는 것을 중론으로 내세워야 한다. 학생의 신분으로 그간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170만엔이란 거금을 모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쇼코와의 소통을 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수화를 배우고, 본인의 죗값을 치르려는 대가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도, 단지 장애 아동에 대한 다큐멘터리 급의 디테일한 묘사가 특징이라 해서 '실제로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다고?' 와 같은 현실성의 측면을 두고 논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쇼야와 같이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또한 그와 같이 일생동안 괴로워해 진심으로 뭐든 하려고 든다면 용서할 수 있다는 학창 시절 쇼코와 같은 불우했던 과거를 가진 사람들의 의견도 존재한다.[19] 이는 마치 피해자가 가해자 혹은 그 가해자가 속한 집단에 대해 싫은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도덕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보는 의견이라 문제가 있다. 설령 이러한 요소를 비난하고 싶다 하더라도 목소리의 형태는 쇼코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쇼코와 쇼야 두 사람의 이야기로, 상기 문서처럼 소통의 부재를 그저 쇼코의 장애 하나로 일단락 짓지만 않는다면 그동안 항상 귀를 막고 눈을 감아버리며 오직 목소리로 의사소통 하는 것 밖에 모르던 철없던 어린아이인 쇼야가, 감싸안은 손과 닫아둔 귀와 눈을 열고, 그에 따라 갑자기 학교를 나온 그를 향한 비난에도 더이상 피하거나 멈추지 않고 세상과 마주할 수 있게 된 그의 성장과 소통의 넓은 측면까지 같이 바라볼 수 있게 된다.[20]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매체에서 단적으로 보여주는 쇼코의 인간 관계는 초등학교 전학 이후에도 협소하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잔인함과 그로 인한 수없이 많은 상처로 삶을 어린 나이에 체념해버린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다가와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 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 자신을 왕따시킨 가해자였던 쇼야였다. 또 그런 그녀의 일상에 변화를 일구어낸 것 역시 쇼야다. 사람의 감정은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며, 과거에 일방향적인 의사소통 밖에 모르던 쇼야의 일방적인 거부로 이루어지지 않은 단절된 대화가 재회 후에는 제대로 서로 마주하는 것으로 이어짐으로써 그 마음 또한 쇼코에게 면밀히 전해진다. 쇼코는 그저 상기 문서처럼 내가 보호해 주어야만 하는, 즉 나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캐릭터가 아니며, 쇼야와의 만남 후 자살 시도가 있기 전에도 본인의 발음이 이상하다는 걸 자각하면서도 쇼야의 시선에 맞춰 수화 대신 구두로 대화하려 했고, 자신의 표정관리가 서투르단 것을 알았음에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앞에 다가가 마음을 전했다. 그녀의 변화는 분명 쇼야와의 만남으로 진전되었지만, 자살 시도 후에, 쇼야가 쇼코의 삶을 지탱해줄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이 나왔음에도 그 호의에 기대는 의존적인 모습이 아닌 역으로 여전히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쇼야를 지탱해주는 상호보완적 관계가 된다.

목소리의 형태에서의 소통의 부재는 다른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로의 관념 속에 세워진 벽과 같은 장애물이 소재가 아니다. 원 반박 문서처럼 소통은 말의 대화가 아닌 서로를 이해하려 하고 서로의 시선에서 세상을 보려하는 의지이며, 그 시선의 교차가 서로의 세계를 허무는 매개체이다. 어린 시절 쇼야의 시선에는, 쇼코의 다정함과 상냥함, 그리고 씁쓸한 미소가 답답하기만 하다. 그는 다른 친구들처럼 쇼코에게 계속 대화를 하라고 윽박지르지만, 정작 쇼코는 그렇게 하고 있었고 쇼야는 그 시선을 마주하려 애쓰지 않기에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이후 그는 가해자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되면서 학교생활에 점점 지쳐만 간다. 그런 그가 쇼코와 친구가 되는 것에 대해 나가츠카와 고민하면서 이전에는 시도조차 못했던 쇼코의 시선을 제대로 바라보려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무언가로 정의 되는 게 아닌 말이나 논리를 초월한 것에 있다는 걸 이해하는 순간이 바로 소통의 부재가 끝나는 순간이다.

목소리의 형태에서 전하고자 하고싶은 말은 가해자와 피해자, 둘다의 트라우마 극복일 것이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는 과정을 통한 죄책감의 극복이 없다면 피해자만의 트라우마 극복은 반쪽짜리 극복이나 다름 없다. 작중 쇼야는 쇼코를 왕따시켰고 이로 인해 본인이 저지른 것과 똑같이 왕따를 당하게 된다. 배신감에 그는 세상과 단절하고 자살할 날까지 잡으며 자신의 가치를 "죽어야 마땅한 인간"정도로 평가하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사과하기 위해 수화까지 배워가며 찾아갔고 쇼코를 만나자 그녀가 포기한 필담노트를 돌려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에게 또 보자는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 이에 쇼야는 자살을 포기한다. 나중에는 자신이 괴롭힌 쇼코를 목숨걸고 구해냄으로써 그녀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행동으로 전하게 된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이 자살했었더라면 못 구했을,살아 있는 쇼코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눔으로써 자신의 가치에 대해 깨닫고 그녀로부터 세상과 마주 할 용기를 얻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외면했던 세상과 마주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극복과 철없는 왕따가해자에서 벗어나 한층 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쇼코는 자신이 가진 청각장애로 인해 주변에 폐를 끼치고 있어서 모든 사람이 자신을 싫어하고 왕따를 당해도 나때문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가해자 의식을 가졌을 정도로 자기혐오가 심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쇼야한테 왕따를 당하면서 무시당하자 여동생에게 죽고 싶다고 말했고 결국 쇼야와 싸우고 전학을 가게 되자 그녀는 그가 싫어하는 사람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5년후 자신을 왕따시킨 쇼야가 찾아왔다. 처음에 그녀는 그를 싫어했기 때문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서 도망쳤지만 그가 과거에 자신이 포기했던 필담노트를 돌려주고 자신과 소통을 하기 위해 수화를 배웠다는 사실에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그리고 그가 그때와는 다르게 개과천선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를 친구로 받아들여줬으며 나중에는 쇼야를 짝사랑해서 고백까지 한다. 그런데 다리 위에서 과거에 있던 왕따로 쇼야의 인간관계가 파탄나자 자신이 있으면 쇼야가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한때는 자신을 죽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가해자인 쇼야가 자신을 구해주면서 본인을 소중히 해주는 사람이 있음을 깨달았고 쇼야에게 자신이 살아가는 걸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이토록 영화는 우리에게 트라우마의 극복의 자세뿐만이 아닌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해준다고 볼 수 있다.여기서 제목인 '목소리의 형태'의 의미는 구두의 목소리가 아닌 행동에서 나오는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쇼야가 과거에 쇼코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쇼야는 작품에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유일한 인물이고 쇼야가 쇼코에게 한 선행도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쇼야는 쇼코와 소통을 하기 위해 수화를 배웠으며 쇼코의 무너진 인간관계를 되찾고자 노력했다. 쇼야는 다리 위 사건으로 본인의 인간관계가 파탄났는데도 관계회복보다 쇼코만 행복하면 된다는 생각뿐이었고, 쇼야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도 가장 먼저 한 행동을 쇼코를 찾으러 한 것이었다. 쇼코에게 쇼야는 과거에 자신을 왕따 가해자였지만 현재는 자신을 지켜주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쇼야는 '쇼코의 행복했어야 할 과거'를 되찾을 수 없지만 '쇼코가 행복해질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소통'이라는 작품의 주제 의식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캐릭터이다.

목소리의 형태는 회복적 정의의 모범적 사례를 다룬 작품으로 목소리의 형태에서 ' 사과'와 ' 용서'라는 가치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쇼야가 쇼코를 왕따시킨 가해자에서 쇼코와 친구가 되고, 결국 마지막에는 쇼코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으로까지 바뀔 수 있었던 것은 쇼야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해 쇼코에게 사과를 하러 간 것을 시작으로 쇼코가 쇼야를 친구로 받아주고 그녀의 가족들도 쇼야를 용서해준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쇼야가 한때 자신이 괴롭혔던 쇼코를 목숨 바쳐 구한 것은 사과와 용서의 효과가 매우 극단적이면서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목소리의 형태라는 작품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과해야 하는가를 표현한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완결이 된 지 10년이 되는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목소리의 형태라는 작품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나뉜다. 위에 전술한 쇼야가 쇼코를 구하다가 떨어져 다친 것 때문에 쇼코 어머니와 유즈루가 쇼야 어머니한테 도게자를 하며 사과하는 장면은 쇼야가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장면인데 이 작품의 기본 설정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은 가해자-피해자 관계를 역전시켜서 싫다거나, 피해자 가족들이 가해자 어머니한테 사과하는 것 자체가 싫다는 반응을 했다. 그리고 쇼코가 사죄를 하러 다니는 장면이 마치 범죄 피해자가 되레 사과하러 다니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고쳐쓰는 거 아니라며 아예 작품의 내용 자체를 부정한다거나 가해자가 반성해도 자기는 절대로 용서해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은 이 작품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고,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해서 사과하면 용서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작품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추천을 통해 이 영화를 접했으며 청각장애인 버튜버인 큐랑 역시 이 영화를 리뷰하였는데 청각장애인들 사이에선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아무리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가해자 옹호 영화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더라도 정작 당사자들은 주관적으로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2.3. 결말에 대한 평가

최종화 '목소리의 형태'편은 시간이 흘러 쇼야, 쇼코, 우에노, 사하라, 나가츠카, 카와이, 마시바 등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후에 만 20세의 나이로 스이몬시 성년의 날 행사에 참석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2년 후에 각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나온다. 쇼야는 이발사가 되어 어머니를 도와 일하고, 쇼코는 도쿄에 가서 이발사가 되었다. 사하라랑 우에노는 같이 패션 브랜드를 차렸고, 나가츠카는 영화 전문 대학에 진학하였으며, 카와이와 마시바는 같은 국립대를 진학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즈루는 우에노, 사하라가 다닌 학교에 진학했으며, 쇼야 어머니와 쇼코 어머니는 매우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브라질인으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마리아의 아버지인 페드로가 돌아왔고, 쇼야의 누나는 둘째를 임신하고 있는 상태다.

성년의 날 행사에 참석한 이들 중 다른 초등학교를 나온 나가츠카와 마시바는 자신이 다닌 초등학교 출신들이 있는 방으로 가겠다고 말하고 헤어지며, 나머지는 모두 스이몬 초등학교 출신들이 있는 방으로 가게 된다.
쇼야는 친해진 동창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하다가 한 어린아이가 자신을 툭치자 아이의 엄마가 나타나서 사과를 하고 '스이몬 초등학교'라는 간판이 있는 방으로 가는데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남자는 히로세였다.

쇼야는 히로세를 보고 이 자리에 왕따를 방관했던 선생인 타케우치와 자신을 왕따시킨 시마다 등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쇼코는 쇼야와 함께 참여한 성인식에서 과거에 괴롭힌 아이들과도 만난다는 사실에 얼굴이 어두어진다. 쇼야가 괜찮냐고 묻자 긴장된다고 수어로 표현했고 쇼야는 자신도 그렇다며 한마디한 후 쇼코의 손을 잡은 후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만화가 끝난다. [21]

결말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리는데, 깔끔하게 완결날 거란 예상을 뒤엎고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어, 대체적으로 아쉽다는 평이 많다. 수준급 전개와 흐름을 보여주었음에도 결말 부분에선 미적지근하게 마무리되어 아쉽다는 평. 그리고 타케우치, 카와이, 우에노, 시마다, 히로세 등 왕따에 가담한 캐릭터들 중 그 누구도 벌을 받지 않고 끝났기 때문에 더욱 그런 반응이 나온다.이것은 작가가 인간은 단편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기 위해서 그런 것으로 작가는 목소리의 형태에서 '악인'으로 규정한 캐릭터는 없다고 말했다. 왕따에 가담한 캐릭터 중에 그 누구도 벌을 받지 않고 끝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가 편수를 미리 예상하고 줄거리를 써나갔기 때문에, 뒷부분에서 풀어야 할 갈등이 정리가 덜 된 것은 사실이다. 독자들은 더 연재하기를 원했지만 더 끌지 않고 그 편수까지만 하겠다는 작가의 결심이 확고했다. 그래도 예상보다 연재한 양이 좀 더 늘어나긴 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무리해서 과거의 실타래를 풀지 않고 열린 결말로 가능성을 남겨둠으로써, 목소리의 형태답게 끝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작중에 등장하는 여성 등장인물들을 보면 알 수 있듯 본 작품은 현실적 요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인공이니까 모든 것이 해결되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가능성을 열어두는, 목소리의 형태다운 결말이라는 것. 또한 작품의 주제 자체가 과거의 관계나 권선징악, 쇼코와 쇼야의 연애 관계 등이 아닌 쇼코와 쇼야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소통하는, 두 개인의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즉 연애관계, 권선징악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연애관계에 대한 더 이상의 복선이나 권선징악과 같은 묘사로 작품의 주제를 곡해할 수 있다. 그 상태에서 오히려 억지로 완결시켜 버리면 작위적인 전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열린 결말이 나은 선택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작가는 공식팬북에서 쇼야는 여전히 과거의 자신을 좋아하지는 못하고 30대가 되어서까지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힘들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럴 만도 한게 쇼야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과거에 자신의 손으로 상처입혔으니 그때까지 죄책감과 죄악감를 가지면서 살고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3. 애니메이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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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8.96 / 10.0

★★★☆[22]
그 모든 후회에도 불구하고, 끝내 살아라, 고쳐 살아야 한다.
- 이동진

★★★★
설정 만으로도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 있다
- 허남웅

★★★★
호흡을 장악하고 감각을 조율하는 솜씨가 일품
- 김수빈

★★★☆
놀랍게도 <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 버금간다
- 이용철

★★★☆
서툴고 어설퍼 상처를 남길지라도. 마음에게 마음이
- 송경원

목소리의 형태 애니메이션영화는 2014년에 나온 원작 최종 연재분인 62화에서 극장 애니메이션을 제작중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공개되었으며 약 2년 뒤인 2016년 9월에 개봉했다.

인간의 감정을 말이 아니라 표정과 행동, 카메라 구도, 사물과 상징으로 표현하는 영화적 기법을 즐겨쓰는 야마다 나오코 작품 중에서도 이러한 연출이 가장 깔끔하게 정리되었다는 평을 받으며 그녀가 영화계에서 인정받게 되는 첫 작품이 되었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시청자보다는 이런 연출을 많이 접한 영화 매니아들에게 호평을 받는 구성이다.

일본에서는 개봉 시기가 너의 이름은.과 겹쳐 두 영화를 비교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신카이 마코토는 이 영화에 대해 "따라할 수 없는 연출"이라며 극찬했다.[23] 평론가들과 관람객들 모두 호평일색이나, 원작팬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원작에 비해 많은 사건이 축약되고, 주변 인물들의 내면과 심리에 대해 자세히 알기 어렵다는 점, 끝맺음이 아쉽다는 점, 등을 단점으로 꼽는다. 반면에 호평하는 쪽은 뛰어난 연출과 음악, 수려한 작화, 무거운 주제를 잔잔한 이야기로 잘 그려낸 점 등이 장점이라 말한다. 무엇보다도 성우들의 연기가 제대로 먹혀들었다. 니시미야 쇼코 역의 인기 성우 하야미 사오리의 연기가 상당히 리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단이나 관객들이나 대체로 원작을 뛰어넘는 작화와 성우들의 수려한 연기, 무겁고 명확한 주제를 담아낸 점을 많이 호평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경우 디즈니가 없기 때문에 수상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었다. 다만, 디즈니보다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상을 더 많이 받아본 픽사의 2017년 작품 코코가 많은 호평을 받아 수상은 어려워 보였고 결국 코코가 상을 탔다.

원작의 완결까지 목표로 하지 않았지만, 영화가 고른 골 지점까지만 해도 고작 2시간도 안 되는 시간으로 쉽게 담을 만한 분량이 아니었고 결국 원작을 만족스럽게 다루지 못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쇼코의 억지 웃음에 관한 요소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으며 [24] 무엇보다 왕따 피해자인 쇼코가 스스로를 가해자로 여기는 장면을 완전히 삭제되는 바람에 애니만 본 사람들에게 쇼코의 착함이 천사인가 싶을 정도로 그려지고 말았다. 쇼코는 자신이 쇼야한테 왕따를 당한 것을 '반에 폐를 끼친 나의 잘못에 대한 벌'로 받아들여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쇼코는 애초에 쇼야를 용서해줘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으며 그 덕분에 과거에 자신을 괴롭힌 왕따 가해자였던 쇼야를 받아들일 수 있던 것이다. 또한 쇼야는 자신이 예전에 버렸던 필담노트를 돌려주고, 수화까지 배워가며 자신과 소통을 하려는 의지를 드러내어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그가 개과천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쇼야를 친구로 받아준 것이다. 쇼코는 절대, '모든 것을 용서해주는' 피해자에 대한 판타지를 담은 캐릭터라서 용서를 해준 게 아니다. 이 부분은 쇼야와는 생각이 다른, 또 다른 가해자인 우에노를 마주할 때마다 난처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쇼코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쉽게 용서해주지 않는 성격이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런 쇼코의 인간적인 성격이 제대로 묘사되지 못하는 바람에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품은 환상만 반영하는 캐릭터로 비추어지고 말았다.

또한,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사이트 라프텔에선 어째서인지 총 평점과 달리 베스트 댓글이 혹평 천지인 상황이 발생하였다. 위에 목소리의 형태의 원작 평가 항목에서 언급하는 혹평이 바로 그런 종류의 것이다. 특히 여주인공이 어째서 한때 자신을 왕따시킨 남주인공을 사랑하는 것인지에 대해, 개연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보였다. 사실 원작에서도 어느 정도 나오는 지적인데 애니에서는 그나마 개연성을 채워줄만한 자잘한 부분들이 스킵되었으니 좀 더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작중 등장인물의 태도의 변화로 최소한의 묘사는 이루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혹평하는 리뷰보다는 이해하는 측의 리뷰가 베스트 리뷰로 올라오고 있다.

2020년 4월 16일(미국시간), IMDb Top 250 명단에 처음 등재되었다.

3.1. 애니메이션의 문제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목소리의 형태(애니메이션)/원작과의 차이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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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의 원작은 총 62화라는 많은 분량을 자랑하기 때문에 러닝타임 약 130분의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려면 스토리 스킵 및 압축은 필수불가결이였고, 실제로 주인공 이시다 쇼야 니시미야 쇼코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대부분의 서브 플롯이 잘려나갔다. 대표적인 예로 조연 캐릭터들의 개인사나 곁가지 사건들의 묘사가 크게 축소되고, 주요 등장인물들이 힘을 함쳐 인디 영화를 제작하는 에피소드는 아예 삭제하는 각본을 사용했다. 하지만 인물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캐릭터마다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원작의 특성을 전부 스킵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이 부분 묘사를 위해 애니메이션 영화치곤 상당히 긴 러닝 타임을 갖고 있다. 원작 존중의 의미도 있고, 원작의 특정 구간만 보여주거나 별개의 에피소드를 만들지는 않고 장편 한 편을 시작부터 결말까지 2시간으로 표현한 영화이니, 생략은 불가피했다. 목소리의 형태의 원작을 본 팬들은 영화가 아니라 TVA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반응까지 많이 나온다.

애니에서 생략된 중요한 장면들을 정리한 글이 있다.( 2023년 1월 18일에 올라온 글, 2024년 3월 17일에 올라온 글) 애니메이션에서 삭제되면서 개연성에 큰 문제가 생긴 장면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쇼야에게 쇼코가 처음에는 순수한 호기심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준 장면(1~2화) → 삭제
원작에서 쇼야는 스이몬 초등학교로 전학 온 쇼코를 처음 만났을 때 귀가 들리지 않았던 쇼코를 정말 순수하게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여겼다. 쇼야의 앞자리에 쇼코가 앉아서 쇼야가 공책을 말아 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쇼코의 귀에 큰 소리를 쳐서 쇼코가 놀라는 장난을 친다. 물론 이때 쇼야의 행동이 잘못되기는 했지만 악의는 없었고, 쇼코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쇼야가 쇼코에게 이런 장난을 계속 치자 담임 타케우치가 쇼야를 불러서 "니시미야가 특이하다고 니시미야를 놀리며 안된다"며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게 있다"는 말을 하자 쇼야는 쇼코를 놀리는 행동을 멈췄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런 묘사가 삭제되면서 쇼야가 처음부터 쇼코를 악의적으로 괴롭힌 것으로 나온다.

2.쇼야가 필담으로 쇼코가 왕따가 당하지 않게 해주려고 소통하려 했던 장면(2화) → 삭제
원작에서는 쇼코가 정말로 노래를 못 불렀기 때문에 쇼야가 필담노트에 "넌 노래 부르는 척만 해"라면서 정말 쇼코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도와주려고 한 장면이 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쇼코가 여학생들 무리에서 멀어지자 "너 말이야,좀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애들이 싫어할 거야"라고 말한다. 이에 쇼코가 쇼야에게 어눌한 목소리로 '친구'라는 수화를 보낸다. 그러자 쇼야는 재수 없다며 쇼코에게 모래를 뿌렸다.

3.쇼코 때문에 합창 콩쿠르가 망했다는 언급(2화) → 삭제
원작에서는 쇼코가 합창 콩쿠르에 참여했고 쇼코가 노래를 못 부르는 바람에 진짜로 망했다. 그래서 이것이 반 아이들이 쇼코를 미워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합창 장면에서 우에노가 이번 대회는 망한 거 같다고 혼잣말을 하는 장면만 나오고 끝난다.

4.쇼야가 쇼코를 괴롭히게 된 계기에 대한 독백(2화) → 삭제
쇼야가 쇼코를 괴롭힌 이유는 '다른 학급 구성원들을 니시미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 어린 쇼야의 시점에선 쇼코가 반에 큰 폐를 끼쳐서 평범한 일상을 망가뜨렸기 때문에 학급을 괴롭히는 것으로 비쳐졌다. 그래서 본인이 앞장서서 학급을 지키려 한다는 이유로 쇼코를 괴롭힌 것이다. 이 장면은 소통없이 일방적으로 공격하는건 잘못된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인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삭제돼서 쇼야가 그냥 장난으로 쇼코를 괴롭힌 것으로 나온다.

5.쇼코가 스스로를 가해자로 생각하는 장면과 묘사 → 삭제
그 무엇보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쇼코는 쇼야한테 왕따를 당했을 때 "내가 왕따를 당하는 건 이시다가 나를 말렸음에도 노래를 끝까지 불러서 반에 폐를 끼친 나의 잘못에 대한 벌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쇼야를 향한 입버릇이 계속 "미안해"였던 것이다. 학급재판에서 쇼야가 왕따 가해자로 낙인찍혀서 왕따를 당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쇼코가 쇼야의 책상을 닦아주던 것도 "나 때문에 이시다가 왕따를 당했다"는 죄의식에 기반한 행동이다. 즉 쇼코는 애초에 쇼야를 용서를 해줘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과거에 자신을 괴롭힌 왕따 가해자였던 쇼야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쇼코가 스스로를 가해자로 생각하는 묘사가 완전히 삭제되는 바람에 쇼코가 무슨 천사나 성녀처럼 보이게 되었다.

6.쇼야가 쇼코를 만나러 수화 교실을 찾아갔는데 쇼코가 5년 만에 쇼야를 보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 도망쳤고 이에 쇼야가 쫓아간다. → 묘사 달라짐
  • 만화: 쇼야가 쇼코를 쫓아가다가 넘어진다. 쇼야는 그럴 만도 하다며 자포자기했는데 쇼코가 다시 와서 쇼야의 손바닥에 '어째서?'라고 손가락으로 적으며 물었고 쇼코가 쇼야를 직접 일으켜 세워준다.
  • 애니메이션: 쇼코가 쇼야한테서 도망치다가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숨는데 쇼야가 쫓아와서 쇼코에게 말을 건다.
이 장면 때문에 영화 목소리의 형태를 왕따 가해자의 일방적인 소통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많았다.

7.유즈루가 가출해서 쇼야를 만났을 때 쇼야한테 "쇼코도 자기 잘못이라는 생각에 화를 못 낸 걸까?"라고 묻는 장면(12화) → 삭제
유즈루는 과거에 언니를 괴롭혔던 쇼야를 증오해서 쇼야를 정학당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쇼코한테 혼내면서 유즈루는 가출을 했고 놀이터에 있는 놀이기구에서 노숙을 하다가 쇼야를 만난다. 거기서 쇼야는 자신을 정학당하게 만든 사람이 유즈루라는 걸 알고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했다. 유즈루가 뭐가 다행이냐고 묻자 쇼야는 "내가 왜 그런 짓을 당했는지 알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이 말을 들은 유즈루는 쇼코를 떠올리며 쇼야한테 "쇼코도 자기 잘못이라는 생각에 화를 못 낸 걸까?"라고 질문하듯 물었다. 이건 유즈루의 말이 맞다. 전술했듯이 쇼코는 쇼야한테 왕따를 당한 걸 '반에 폐를 끼친 나의 잘못에 대한 벌'로 받아들였다. 유즈루의 이 대사는 쇼코가 쇼야한테 왕따를 당한 걸 자기 잘못으로 여겼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대사이다.

8.쇼코가 실종돼서 쇼야가 유즈루와 같이 쇼코를 찾으러 다닌 사건(12~13화) → 삭제
만화에서는 유즈루가 가출하고 다음날 새벽에 쇼코 어머니가 쇼야네 가게 겸 집으로 찾아왔다. 쇼코 어머니는 딸아이(쇼코)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하면서 여기왔는지 물어본다. 쇼코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쇼야는 유즈루와 같이 쇼코를 찾으러 다닌다. 둘은 오랫동안 쇼코를 찾다가 유즈루가 "나 혼자 찾을 테니까 돌아가라"고 하자 쇼야가 돌아가지 않겠다면서 "나는 니시미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라고 말을 해서 유즈루가 놀라게 된다. 이후에 유즈루는 쇼야를 받아들이게 된다.[25]

9.쇼야가 쇼코 어머니에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를 보여준 장면(13화) → 삭제
쇼야는 쇼코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새벽 중에 유즈루와 같이 쇼코를 찾으러 다니다가 결국에는 쇼코를 찾았다.[26] 그리고 쇼야는 쇼코 어머니와 다시 마주치게 된다. 쇼코 어머니는 쇼야한테 "저기, 네가 아무리 안간힘을 써봤자 행복했어야 할 쇼코의 초등학생 시절은 돌아오지 않아"라는 말을 했다. 나무 뒤에 있던 쇼야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큰 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한다.[27]

10. 쇼코가 웃는 모습을 보고 본인도 웃다가 곧바로 "아,나는 웃으면 안 되지"라며 자학하는 장면(14화) → 삭제
[ 해당 장면 ]
>니시미야 그렇게 웃는 구나
처음 봤어···.
(쇼코를 괴롭힌 과거를 떠오른 쇼야)
웃긴 뭘 웃는 거야, 내가 지금···!!
난 웃으면 안 되잖아!
(나가츠카: 왜 그래? 이시다?)
(쇼야:아니,아무것도 아냐···.)
나 자신이 싫다
옛날 잘못을 용서 받고
자기 편한 결과가 나오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건가?
그럴 리가!
잊으면 안 돼.
원래는 미소로 가득했어야 할 시간도.
어두운 기억도.
하지만 그 미소를 보고 있으면
언젠가 잊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쇼코의 이
미소를 보고 있으면 잊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이 미소를 되찾기 위해 들인 시간도.
어두운 기억도.

11. 쇼코는 사하라를 만나자 매우 기뻐하면서 미소를 짓자 쇼야가 쇼코를 보며 한 독백(16화) → 삭제
쇼야는 쇼코의 미소를 보고 "만약 졸업식 날 니시미야가 학교에 있었다면 사하라는 말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중학교에도 니시미야가 있었다면 사하라는 매일 보건실이 아닌 교실로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빼앗은 것은 나다. 나는 내가 니시미야에게서 빼앗은 수많은 것들을 돌려줘야 한다. 두 사람의 미소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독백했다.

12. 쇼야가 사하라한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사하라가 쇼야를 용서해준 장면(17화) → 삭제
일요일에 쇼야는 쇼코,사하라,나가츠카하고 같이 노래방에 갔다. 거기서 쇼야는 사하라가 자신보다 쇼코와 더 친하게 지내는 모습에 사하라를 질투하는 감정이 든다. 하지만 쇼야는 자신이 유즈루한테 한 말을 떠올리며[28]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노래방에서 나온 후 쇼코와 나가츠카가 돌아가서 쇼야는 사하라와 둘만 남게 된다. 여기서 쇼야는 죄책감을 크게 느껴서 사하라한테 자신의 죄를 고백했고, 사하라는 쇼야를 용서해주었다.
[ 해당 장면 ]
>사하라에게 이야기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쇼야:사하라,잠깐 시간 있어?)
전부 다 이야기했다.
내가 저지른 짓.
나 때문에 니시미야가 전학가게 만든 것.
사하라는 쭉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사하라:(쇼야한테 작별인사를 하면서)이만 가볼게.얘기해줘서 고마워.)
(사하라한테 작별인사를 하는 쇼야)
돌아갈 때 약간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밤 사하라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시다는 괜찮아.
쇼코가 웃고 있으니까 나도 웃기로 했어.
이거 줄게(つ^∀^)つ
파일:17화 사하라가 보낸 사진.png
(쇼야:사하라···!)
난 조금 울었던 것 같다.

13. 우에노가 자신의 집을 찾아와서 그동안 도와주지 못한 것에 사과하자 쇼야가 우에노한테 "나는 상관없으니까 니시미야한테 가서 사과해"라고 말하는 장면과 쇼야가 우에노의 말에 죄책감을 느껴서 괴로워하자 유즈루가 쇼야를 위로해주는 장면(22화) → 삭제
[ 해당 장면 ]
>(우에노가 쇼야의 집을 찾아와서 쇼야에게 그동안 도와주지 못한 것에 미안했다며 사과한다.)
(우에노가 자신한테 사과하자 쇼야가 당황한다.)
(둘 사이에 잠깐 침묵이 흐른다.)
쇼야:난 상관없으니까 니시미야한테 가서 사과해![29]
너도 욕했으면서···! 거기다 지난주에도···!
니시미야한테 사과해서 걔가 용서하면 나도 방금 그 말은 인정해줄게···!
우에노:뭐어···?![30]
(잠시 침묵이 흐른다.)
우에노:뭐야 그게 진짜 재수없거든···?
난 너한테 사과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웬 니시미야?! 네가 걔 보호자라도 돼?
난! 니시미야한테 용서받고 싶은 게 아냐! 너한테···!
(우에노는 얼굴이 빨개지며 한숨을 쉰다.)
우에노:난 그냥··· 돌려놓고 싶었던 것뿐이야. 이시다랑 내 시간을··· 니시미야 때문에 망가져버린 그 시간을···!
(쇼야가 현관문을 연다.)
쇼야:돌아가. 네 얼굴 보고 싶지 않아.
(우에노가 문 밖으로 나간다.)
우에노:'니시미야도 같은 생각하고 있을걸. 걔, 억지웃음이 특기잖아.
(쇼야가 현관문을 닫는다.)
(쇼야는 쇼코가 자신에게 "돌아가. 네 얼굴, 보고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상상을 한다.)
쇼야:하아아아···아아···
(쇼야는 자신이 이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라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 한다.)
(그때 뒤에서 유즈루가 쇼야를 부른다.)
유즈루:이시다.
그 억지웃음은 그냥 언니 버릇이야. 그 표정 나한테도 지으니까.
응? 그러니까 괜찮다고.[31]
오히려 이시다가 찾아온 뒤로 여러가지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됐어. 난 기뻐.
쇼야:유즈루···
유즈루:이 이상 내 격려나 받고 싶지 않다면 혼자 낑낑대는 건 관둬.
그리고 화요일에 다리로 좀 와줘. 언니가 주고 싶은 것도 있는 모양이고.
그럼···.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면서 유즈루가 돌아간다.)

이후에 우에노는 주조연 8명이 놀이공원에 놀러 가는 에피소드에서 쇼코와 대충이라도 화해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쇼야 앞에서 쇼코한테 친한 척을 한다. 그런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우에노가 쇼야의 집을 방문하는 에피소드가 삭제되면서 우에노가 뜬금없이 쇼코한테 친한 척을 하는 장면이 되어버렸다.

14. 쇼코가 우에노에게 보낸 편지(28화,44화) → 삭제
[ 편지 내용 ]
>난 지금까지 내가 듣는 것에 자신이 없었어.
내가 느끼는 것이 진실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판단할 수가 없었어.
난 진실을 딴 애들보다 한 발 늦게 알게 되다 보니
누가 나한테 말을 해도 애써 미소를 지으며 적당히 무난한 답변을 해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 없도록 꾸며 왔어.
반 애들 눈에는 정 떨어지고 재미없는 애로 보였을 거야.
하지만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됐어.
나 때문에 돌을 맞는 동생을 위해 딴 애들과 같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보통 애들과 함께 있고 싶었어.
하지만 동시에 반 애들한테 폐를 끼치고 말았어.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안 매번 억지웃음을 짓는 것밖에 할 수 없게 됐어.
그래서 나오카가 관람차안에서 내 고민의 근원이 되는 문제를 눈치채준 걸 알고 정말 기뻤어.
한국어 번역[32]

쇼코가 억지 웃음을 지은 이유는 상대방의 비위가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연기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이 편지가 삭제되면서 쇼코가 왜 억지웃음을 짓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15. 다리 위에서 쇼야가 5년만에 자신이 쇼코에게 저지른 왕따에 대해 사과하자 쇼코가 "왜 사과하는 거야?"라고 묻는 장면(54화) → 삭제
이 장면은 초등학생 때 쇼코는 자신이 쇼야한테 왕따를 당한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겼다는 걸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니까 쇼코는 자신을 왕따시킨 쇼야를 애초에 용서해줘야할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였던 쇼야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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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까지 아무도 하지 않음. [2] 실제로 작가는 "왕따 가해자를 단순히 나쁜 사람으로 그리는 것은 그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실례라고 생각했다. (중략) 그래서 모든 캐릭터에 자신만의 감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자 중에는 학교 선생님도 있고 왕따를 한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캐릭터에 대해 해설을 요구해도 제대로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 문서에 나와 있다. [3] 이것은 가해자인 쇼야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가진 방어기제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피해를 입는 상상은 자주 해도, 자신이 피해를 입힌다는 상상은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기본적으로 방어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죄없고 선한 주인공에 독자가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4] 그리고 피해자인 쇼코의 경우에는 실제로 자신이 왕따를 당했던 사람의 경우‘나(피해자)는 선하고 가해자는 악하다’는 생각이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었을 것이다. 즉 쇼코를 자신과 동일시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 작품이 마치 선한 피해자인 나보다 악한 가해자가 더 주목받고 용서를 받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겪었던 사람들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엄연히 목소리의 형태를 완전히 잘못 해석한 것이다. 작품을 평가할 때는 자신의 경험은 별개라 생각하고 각 등장인물 개인의 시점으로 보면서 판단해야지, 작품 속 등장인물에 스토리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자신의 경험을 대입하며 판단했기 때문에 이 작품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5] 목소리의 형태를 문제작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은 작품이 가해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것이 불편해서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올바르지 못한 평가이다. 작품을 단점을 이야기할 거면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연출 같은 것을 이야기해야지. 그 스토리 자체가 불편하다고 작품을 문제작으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예를 들어 1936년에 출판되어 엄청난 사랑을 받은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남부의 시점에서 전개되어 남부를 미화하고 당시의 노예제도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는 묘사가 나온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 소설과 영화문학계와 영화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명작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6] 여기서 일반인과 평론가의 차이점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일반 대중들은 통념적, 보편적인 사상과 관념들에서 벗어난 주제, 혹은 소재를 쓴 경우에 거부감을 느끼고 꺼리는데, 평론가들은 단순히 통념에 위배됐다거나, 보편적이지 못한 주제임을 근거로 작품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또한 평론가들은 단순히 작품의 개연성이나 서사를 중요시하는 대중들과는 달리 작품의 구조, 작가의 작품세계, 메시지나 상징 등 훨씬 다층적으로 작품을 이야기해야 하는 만큼 작품을 바라보는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 [7] 참고로 혹자는 목소리의 형태를 인스피레이션 포르노, 장애인 학대 포르노라고 비난을 하기도 한다. [8] 다만 작가는 왕따와 가해자, 피해자에 대한 주제보다는 제목 그대로 소통의 부재로 인한 철없던 시절의 집단 따돌림과 후회, 사죄에 대한 소재를 이용하여 사람 사이의 소통이 부족한 현대 사회에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그런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9] 그런데 이때 쇼야 어머니는 아들이 아파트에서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 '쇼야가 또 쇼코를 괴롭히다가 떨어졌나보다'라고 생각했다. 즉 어머니가 아들을 믿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쇼야가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10] 이 장면을 오열하며 봤다는 사람까지 나왔을 정도다. 쇼야가 두 사람에게 용서할 수 없는 왕따 가해자에서 가족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으로 변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27일이었다. 이 장면은 엄청난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과거에 쇼코 어머니와 유즈루는 쇼야를 몹시 증오해서 각각 쇼야의 뺨을 때리고,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도촬해서 정학당하게 만들었는데 이 행동은 두 사람에게 명백한 흑역사되었다. 현재 쇼야는 쇼코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 되어서 쇼야는 두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될 가족같은 존재가 되었는데 그런 쇼야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했다는 건 두 사람에게 명백한 흑역사다. [11] 당시에 쇼코는 쇼야를 으로 여겼기 때문에 쇼야가 자신을 찾아오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서 도망쳤다. 물론 쇼코는 쇼야와는 달리 쇼야가 넘어진 것을 보고 다시 쇼야한테 와서 쇼야의 손바닥에 "어째서?"라고 손가락으로 적으며 물었고 쇼야를 직접 일으켜세워주기까지 했다. [12] 뭐든지 용서해 주고 받아주는 사람 [13] 만화에서는 쇼코가 정말로 노래를 못 불렀기 때문에 쇼야가 필담노트에 "넌 노래 부르는 척만 해"라면서 정말 쇼코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도와주려고 했다. 그리고 합창 콩쿠르는 쇼코 때문에 망했다. 그래서 반 아이들이 쇼코를 미워하게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쇼야는 쇼코가 반에 큰 폐를 끼쳐서 평범한 일상을 망가뜨렸기 때문에 학급을 괴롭히는 것으로 비쳐졌다. 그래서 본인이 앞장서서 학급을 지키려 한다는 이유로 쇼코를 괴롭힌 것이다. 이 장면은 소통없이 일방적 공격하는건 잘못된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인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전부 삭제되는 바람에 쇼코가 무슨 천사나 성녀처럼 보이게 되었다. [14] 공식 팬북에서도 작가는 쇼코가 쇼야한테 왕따를 당하고 쇼야와 싸워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자 쇼야는 스이몬 초등학교에서 가장 싫은 상대로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쇼코는 자신을 왕따시킨 쇼야를 으로 여겼는데 갑자기 6년 후에 쇼야가 자신을 찾아오자 깜짝 놀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했다. 작가는 쇼코가 '나를 왕따시킨 이시다가 왜 나를 찾아 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5] 작중에서도 만악의 근원은 '아이들 사이의 갈등'이 아닌 자격미달 교사의 한심한 대처와 장애아동을 위한 제대로 된 커리큘럼의 부재이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 누구도 제대로 된 언급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동시에 비중을 주었으면 지금과 같은 격렬한 비판에 직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6] 작가는 공식팬북에서 자신이 그리고 싶은 걸 그리기 위해서는 왕따라는 소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아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왕따로 이어지는 것이 현실적이고, 지속적인(영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통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왕따라는 소재밖에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17] 피해자 입장에서는 한때 자신을, 자살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괴롭힌 사람을 친구로 받아준 것이 비현실적이고, 가해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흑역사 그 자체인 피해자를, 바로 옆에 있는 친구로 둬서 항상 자신의 흑역사를 떠올리는 걸 감수한다는 게 비현실적이라는 말이다. [18] 물론 이것은 쇼코가 전형적인 왕따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19] 가해자들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피해자들의 마음이 존중받아야 하듯, 상기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 역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비록 피해 당사자가 청각 장애인은 아니지만, 가해자의 일원에서 개과천선하고 피해자를 옹호해 친구가 된 케이스도 있다. 약간의 주작 논란은 있었지만 이런 걸 콘텐츠로 삼는 모 스튜디오에서도 진심어린 가해자들의 사과에 용서하는 피해자들도 있다. 원 평가 문서는 이를 원천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20] 공식팬북에서 작가는 왕따 가해자인 쇼야의 시점에서 그린 이유가 나오는데 그녀는 " 스스로가 초래한 일과 똑바로 마주해야 비로소 배움이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쇼코를 주인공 삼아 왕따 피해자 시점에서 어떻게 그들과 마주할 것인지 그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것은 초등학생 시절 쇼야의 입장이 바뀌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쇼야의 배움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21] 작가는 이 시점에서 둘은 연애관계는 아니지만 쇼야와 쇼코가 더이상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관계는 아니라는 것을 모두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22] 이전에는 4개였으나 현재는 반개 내려갔다. [23] 너의 이름은.》을 수입한 수입사 대표의 말에 따르면, 신카이 마코토는 자신의 이 말이 영화의 홍보에 사용된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스러워했다고 한다. 위 발언이 진심인지, 아니면 그냥 립서비스인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신카이 마코토는 야마다 나오코가 이전에 만든 타마코 러브 스토리도 트위터에 호평을 남긴 적이 있다. [24] 쇼코의 억지 웃음은 거듭되는 갈등 끝에 본인이 선택한 일종의 방어기제일 뿐이다. [25] 애니메이션에서는 이 대사가 삭제되고 유즈루가 "너 위선자냐?"면서 쇼야한테 역겹다고 말하자 쇼야가 "뭐,니시미야한테 들었겠지. 그래 맞아. 나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고, 원래는 살아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야. 그냥 더이상 니시미야를 울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라며 자책하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26] 쇼코는 가출한 유즈루를 찾으려고 혼자서 다음 날 새벽까지 돌아다닌 것이다. [27] 그런데 쇼코 어머니는 쇼야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기 우산을 쇼야에게 주었다. 이것은 쇼코를 찾아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쇼야가 "예"라고 대답했을 때 분명 방금 전까지 없었던 우산을 들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후에 15화에서 쇼코한테 너네 어머니한테 빌린 우산이라면서 돌려준다. [28] "나는 니시미야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칠 수 있다." [29] 이때 우에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30] 이때 우에노가 식은땀을 흘렸다. [31] 이때 유즈루의 뒷모습에 십자가 그림자가 비친다. 이것은 유즈루가 쇼야를 용서해줬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32] 참고로 원문은 존댓말이었다. 일본어는 친하면 반말을 쓰고 친하지 않으면 존댓말을 쓰는 친소어이기 때문에 쇼코는 친하지 않은 우에노한테 존댓말을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