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1 02:10:29

모하메드 데이프

<colbgcolor=#007f00><colcolor=#fff> 이즈 앗딘 알카삼 여단 참모장
모하메드 데이프
محمّد ضيف
파일:모하메드 데이프.jpg
출생 1965년 ([age(1965-01-01)]세)
아랍 연합 공화국 가자 칸유니스 난민캠프
(現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국적
[[팔레스타인|]][[틀:국기|]][[틀:국기|]]
학력 가자 이슬람 대학교
직업 군인
계급 불명
참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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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팔레스타인의 군인으로 하마스의 군사조직 이즈 앗딘 알카삼 여단의 참모장이다.

하마스의 수장인 이스마일 하니예와 더불어 이스라엘 최대의 적수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이스라엘의 연이은 암살시도로 인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철저히 막후에서 활동하는 은둔형 지휘자로서 비상한 두뇌와 전략안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2002년 이래 현재까지 하마스 군사조직의 사령관으로 활동해 왔다. 지난 30여년간 이스라엘군 납치, 로켓포 개발, 땅굴 건설 등 하마스의 숱한 군사작전에 관여해 온 베테랑이다. 군사적 재능 뿐 아니라 이란의 지원을 이끌어내 하마스의 전력을 강화하는 등 수완도 상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워낙 치밀하게 정체를 숨기고 다닌 인물이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연설한 경우는 없다. 흔히 그의 이름으로 알려진 데이프(Deif)도 가명이며 본명은 모하메드 디압 이브라힘 알마스리(Mohammed Diab Ibrahim Masri)로 알려져 있다. "데이프"는 아랍어로 "손님"을 뜻하는 가명인데 이는 그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현재 그의 사진으로 알려진 것도 최소 20년 전에 찍힌 오래 전의 모습이며 그의 은신처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고 이스라엘이 9번에 가까운 공습을 포함한 직접 타격 공격에도 살아남아서 이스라엘 정보부에서는 '사기를 올리기 위한 가상인물 혹은 죽을 위기를 매번 넘기는 전설적 인물'이라고 평할 정도다.

2. 생애


1965년 가자 지구의 칸 유니스 난민 캠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삼촌 등은 모두 1950년대에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가풍과 난민촌의 열악한 환경은 이후 그의 행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980년대에 가자 이슬람 대학교에 입학해 생물학을 전공했는데 이 시절부터 교내의 이슬람주의 학생단체에서 활동해 왔고 20대 후반이 되었을 즈음 하마스에 가담했다. 이후 폭탄 제조법을 배우고 이스라엘군의 납치 및 살해에 관여하는 등 하마스에서 존재감을 키워 갔다.

1996년 하마스의 폭탄 제조책이었던 예히야 아야시가 이스라엘군에게 사살되자 그의 뒤를 이어 하마스의 폭탄 공격 및 테러 공작을 배후에서 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12월 팔레스타인의 제2차 인티파다 당시 수감 중이었던 팔레스타인 교도소에서 탈출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측은 당시 데이프가 탈옥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스라엘 측은 교도소의 간수들이 그를 풀어주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이스라엘에 의해 최우선 수배 대상자에 지목되었다.

2002년 살라 셰하데가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알카삼 연대의 최고 사령관이 되었다. 이스라엘군은 이후 최소 7차례나 데이프를 암살하려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다만 그도 불사신은 아닌지라 이스라엘군의 습격에 중상을 입어 신체 일부에 장애를 얻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1] 한때 중상으로 인해 부관인 아흐마드 알자바리에게 최고 사령관직을 넘기기도 했다.

2009년, 미국 국무부는 데이프를 테러리스트로 지정하며 그가 하마스 군부의 핵심인물로서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수많은 테러 공격의 책임자라고 밝혔다.

2012년 11월에 후임 사령관인 아흐마드 알자바리가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사망하자 다시 최고 사령관직으로 복귀했다. 한편 하마스 측의 발표에 따르면 2014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아내와 어린 아들을 잃었다고 한다. 한때 이 공습으로 데이프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2014년에 육성 메세지를 공개하면서 이스라엘이 기자 지구에 대한 봉쇄를 멈출 때까지 휴전은 없다는 뜻을 밝혔다.

2021년에 육성 메세지를 공개하여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 대한 하마스의 요구를 받아 들이지 않으면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2023년 10월 7일 이른바 "알아크사 홍수" 작전으로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하는 등 다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스라엘 침공 직후 육성 메세지를 공개하면서 "지구상 마지막 점령을 끝내기 위한 가장 큰 전투의 날", "광란의 장벽을 부수고 혁명시대를 되찾을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오늘은 세계에서 마지막 인종차별 정권인 이스라엘에 종지부를 찍는 위대한 혁명의 날입니다."

"우리는 신의 도움과 힘으로 '알 아크사 홍수 작전'의 첫 번째 타격을 처음 20분 동안 적의 공항과 군사 요새들을 목표로 했고, 5000개 이상의 로켓과 미사일을 발사했음을 알립니다."

"우리는 신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의 압제를 끝내려 한다. 적들은 아무 책임 없이 괴롭히는 시간은 끝났음을 이해해야 한다."

2023년 10월 11일 이스라엘 공군이 그를 노리고 그의 저택에 공습을 가했는데 그 결과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제인 메드하트 데이프는 물론이고 그의 자녀들과 친척들까지 몰살당했다고 한다. #

2023년 12월 22일 이스라엘 언론에 의하면 앞서 언급된 데이프의 부상이나 휠체어, 의족설 등이 부정되는 영상이 입수되었다. 그에 따르면 데이프는 걸음을 절기는 했어도 활동에는 무리가 없다고 한다. 그로 인해 데이프의 신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스라엘 정보부의 무능이 부각되었다. #

[1] 한쪽 눈을 잃어 외눈박이라는 설, 팔, 다리가 날아가 불구가 됐다는 설이 있으나 이것도 추정일 뿐 정확한 상태는 밝혀진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