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웃나라의 문제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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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 구성 | ||
윗첨자1: 舊 가로세로 세계사 1~4권. |
1. 아우랑제브의 평가 문제
아우랑제브의 통치에 대해 독선적인 이슬람 통치로 제국을 붕괴시킨 폭군이라는 과거의 시각이 남아 있는 서술을 하고 있다. 실제로는 아우랑제브의 통치는 잦은 전쟁으로 인해 국고가 낭비되는 등 문제가 적지는 않았으나, 제국의 통일성을 위해서는 필요한 부분도 있었으며[1], 안보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도 남인도의 힌두 세력들은 북인도 이슬람계 왕조의 지배에 매번 반발하여 왕조를 기어이 전복시키는 경우가 많았고, 아우랑제브 생전에는 힌두교 뿐 아니라 이슬람계 왕국들조차 무굴 제국에게 반기를 들고 있었고 오히려 이들과 더 자주 전쟁을 벌여야 했을 정도였다.심지어 무굴 제국은 유목적 관습 때문에 잦은 내전과 반란이 벌어지던 상황이었는데, 아우랑제브는 90세가 넘는 나이로 죽을 때까지 전장을 돌아다니며 이런 내부의 반란까지 평정하면서 제국을 유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아우랑제브의 대외 원정의 실패로 마라타의 급성장을 불러오게 되지만, 당시 그가 처한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판단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많은 것. 게다가 그 와중에도 제국은 안정적으로 통치하고 있던 점 등으로 제국을 망국으로 몬 폭군이라고만 보기에는 복합적인 부분이 많은 인물이다.
2. 샤 자한의 정무 소홀 문제
샤 자한이 사랑하는 아내인 뭄타즈 마할이 죽은 뒤 실의에 빠져 사치와 향략에 젖어 암군이 되었다는데 샤 자한은 아내인 뭄타즈 마할이 죽은 이후에도 정무를 정상적으로 봤다. 단지 아내를 추모한 타지마할 건설에 대해 비난을 받을 뿐이지 무굴제국에 대한 영토확장 경제 성장과 무역과 외교에 관한 업적은 많이 남겼다. 다만 샤 자한이 암군이 된건 1650년대와 폐위하기 전 까지였다.3. 파키스탄 분리에 대한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의 태도
분량의 문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독립 이후 인도 파키스탄 문제에서 간디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을 찬성하는 것 처럼 묘사했다. 이후 그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에 대해 좌절하는 장면을 넣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간디는 인도 파키스탄을 분리[2]하는 것을 찬성한 것처럼 묘사되는데 사실 간디는 분리 반대파였고 분리를 막기 위해 대중들을 동원했고, 실제로 상당히 위협적인 세력을 보여주고 있었다.4. 번역 문제
Princely State를 왕자 국가로 오역했다(.....). 번왕국과 같은 다른 표현도 있고 실제 번국이라는 다른 표현도 나와서 더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왕자 국가' 가 된 건 Prince를 왕자로 옮긴 것인데, 항목에도 나오듯 "Prince = 왕자" 라고 보면 조금 많이 곤란하다. 오히려 후작이나 공작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제대로 된 번역에 가깝다.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Prince라는 단어를 왕자라고 일괄적으로 번역한 사례가 다른 서적에도 흔했는데 그 흔적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강태용 신부의 저서 《동방정교회》에서 모라비아 '공작' 라스티슬라프를 모라비아 '왕자' 라스티슬라프로 잘못 설명한다든가. 아예 오역된 제목이 정식 명칭으로 굳어진 사례도 있다.5. 민족 설명 오류
쿠샨 제국을 세운 쿠샨족을 인도-게르만어계 민족으로 잘못 설명했다. 비록 게르만과 쿠샨족이 모두 아리아계 민족에 속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쿠샨족은 인도아리아인으로, 게르만과의 관계는 속하는 혈통만 빼면 완전히 다른 민족이다.
[1]
전근대에서 종교는 정체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에 아우랑제브의 이슬람화 정책은 그의 제국을 하나로 묶기 위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근대 이후에도 이런 폭압적인 방법으로 정체성을 통일시키는 일은 여전히 일어난다.
[2]
의외로 당시 통일 인도 권역을 유지하는 데 찬성하던 입장에서도 인도 파키스탄 분리를 찬성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인 점도 있지만 분리된 이슬람계 국가가 스스로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스스로 붕괴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후 인도와 파키스탄이 전쟁을 벌일 때, 파키스탄은 같은 이유로 인도군을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