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16:45:09

마이클 일리치

Mike Ilitch
마이클 일리치
파일:external/www2.pictures.zimbio.com/Mike+Ilitch+Detroit+Tigers+Introduce+Prince+3n80E2gvbtGx.jpg
<colbgcolor=#fff> 이름 <colbgcolor=#fff>Michael Ilitch Sr.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929년 7월 20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사망 2017년 2월 10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직업 기업인, 구단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역대 구단주
톰 모나한(1983~1992) 마이클 일리치(1992~2017) 크리스토퍼 일리치(2017~)

1. 개요2. 프로 스포츠 구단주가 되기까지
2.1. 디트로이트 레드윙스2.2. 디트로이트 타이거스2.3. 공격적인 투자와 적자를 개의치 않는 운영
3. 이모저모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기업인 겸 프로스포츠 구단주.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구단주였다.

아내 마리안 일리치와 함께 미국에서 손꼽히는[1] 피자 체인점인 리틀 시저스 피자를 창립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리틀 시저스 피자 덕분에 오늘날 일리치 부부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수준의 부를 쌓아올릴 수 있었다. 일리치가 디트로이트의 스포츠 구단들을 인수한 이후 그의 생전 동안 레드윙스는 4번의 스탠리컵을 손에 넣었으나, 결국 원하던 타이거스의 우승을 보지 못한채 2017년 2월 10일 향년 8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2. 프로 스포츠 구단주가 되기까지

미시간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마이클 일리치는 해병대에서 4년을 복무하고[2] 돌아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야구팀에게서 3000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였지만 2루수로서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 뒤 아내 마리안과 합심하여 미시간주 가든 시티에서 피자집을 하나 열었는데, 이것이 미국 전역으로 뻗어나간 거대 프랜차이즈로 성장한 리틀 시저스 피자다.[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ittle_Caesars_Logo.png
이 사업은 대성공을 거둬서 전미에 수천개의 체인점을 거느릴 정도로 성장했고 오늘날 그의 부를 쌓아올리는 데에 있어 원동력이 되었다. 2016년 현재 58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규모를 자랑하며 포브스 기준 미국 부호 랭킹 86위에 부부의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억만장자의 면모보다 더 유명한 것은 프로 스포츠 구단주로서의 행보. 모든 스포츠에서 랑이(...), 잘 나가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영 좋지 않은 배드 보이즈, 데드 윙스(...), 그리고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왜 이것만 본래 이름 그대로야라는 흑역사를 겪던 디트로이트 프로스포츠의 암울한 시기를 극복하고 기어이 디트로이트 시민들에게 하키와 야구에서 영광을 안겨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2.1.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1982년 일리치는 아내와 함께 데드윙스라는 암흑기를 겪고 있던 디트로이트의 NHL 아이스하키팀 레드윙스를 인수했다. 그리고 레드윙스는 절묘한 시기를 맞아 1983년 NHL 드래프트에서 스티브 아이저맨을 뽑아 팀의 리더로 성장시켰고, 이후 동구권, 북유럽권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고 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 감독을 지낸 명장 스카티 바우만을 영입하여 끝끝내 1996-97, 1997-98 두 시즌 연속 스탠리 컵 우승을 일궈내며 미국 최대 하키 타운의 명성을 드높였다.

2001-02 시즌에도 우승했고 디비젼을 꾸준히 우승했음에도 스탠리 컵을 못 먹던 시기가 있었지만 다시 2007-08 시즌에 스탠리 컵을 들어올렸다. 1600만불이라는 운영적자에도 불구하고 2004-05년 파업을 앞두고 NHL의 가장 가치 높은 프랜차이즈로 꼽히기도 했다. 1991-92 시즌부터 2013년까지 플레이오프에서 매년 레드윙스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2.2.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92년 일리치는 자신이 젊을 적 뛰기도 했던 야구팀인 타이거스를 피자 업계 라이벌인 도미노피자의 창립자 톰 모나한으로부터 인수하였다.

하지만 그 시기는 한 시대를 풍미한 잭 모리스 앨런 트래멀 등의 선수들이 노쇠화를 맞아 쇠락하거나 팀을 떠나는 시기였다. 게다가 라이벌인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고 뉴욕 양키스는 한술 더떠 1998년~2000년 3년 연속 우승에 4년 연속 월드 시리즈 진출(...). 그렇다고 프랭크 토마스를 데리고 있던 시카고 화이트삭스마냥 리그를 뒤흔드는 강타자라도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일본프로야구에서 역수입해온 세실 필더[4] 외의 타선은 시궁창이었다. 그리고 세실 필더마저 떠난 이후에는 토니 클락이라든지, 바비 히긴스라든지, 딘 팔머라든지(...) 디트로이트 내에서는 인기가 있었지만 리그 전체로는 존재감이 없는 선수들이 태반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게다가 타이거 스타디움을 떠나 새로 옮긴 코메리카 파크는 시설 자체는 관중 친화적이고 야구 관람하기 좋은 구장이지만 파크팩터 면에서 지나치게 투수 친화적인 구장[5]이어서 1990년대를 풍미한 타점머신 후안 곤잘레스를 8년 $140M으로 묶으려다 거절당하기도 했다. 거의 매년 5할 승률을 찍지 못하는 루징 시즌을 맞았고 급기야 2003년에는 역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119패 시즌[6]을 치르며 팬들을 절망케 했다. 지금이야 희대의 대인배 구단주로 평가받지만 당시에는 하키팀 신경쓰느라 구단주가 야구팀은 거들떠도 안 본다던 얘기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일리치는 2002년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데이브 돔브로스키 단장을 데려와 필사의 리빌딩을 준비하고 있었다. 2003년의 119패야 전체 1픽을 향한 레이스였다 치고, NHL의 파업이 겹치고 2004년 드래프트 전체 2순위아니 119패를 하고도 1픽을 얻지 못했다니![7] 저스틴 벌랜더를 지명하였다. 그리고 2004년을 앞두고 베테랑 포수 이반 로드리게스와 유격수 카를로스 기옌를 영입하더니 2005년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프랭크 토마스, 폴 코너코와 함께 TKO 타선을 구성하던 아줌마 매글리오 오도녜즈를 FA로 모셔오며 보라스 쓰리런을 완성, 나름대로 무시 못할 전력을 갖춘다.

비록 2005년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우승했지만, 2006년에 기어이 미네소타 트윈스에 이어 지구 2위로 와일드카드를 따내더니 플레이오프에서는 오도녜즈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마무리 휴스턴 스트리트를 박살내는 홈런을 작렬,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다! 비록 WS에서는 토니 라 루사가 이끌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4-1로 승리를 차지[8]하지만, 아이스하키 말고도 강점이 있다는 점을 시민들에게 어필하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이후 중부지구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까지 우승을 차지하는 혼전 양상으로 빠져들며 다시 관심을 끌어모으는데 실패하는가 했다. 그래도 2008년을 앞두고 단행한 플로리다 말린스 미겔 카브레라+ 돈트렐 윌리스를 6명의 유망주 패키지로 영입한 뒤 장기계약을 맺은[9] 딜이 D-트레인의 처절한 쇠락에도 불구하고 역대급의 놀라운 결과로 나타나며 미래를 보장했다. 더욱이 저스틴 벌랜더 역시 금강불괴의 포스를 내기 시작하며, 2010년대에 일리치 구단주의 타이거스는 다시금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의 강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2011년 미네소타 트윈스를 포함해 지구 라이벌들의 동반 부진과 벌괴의 MVP 퍼포먼스에 힘입어 지구 우승을 차지하고 뉴욕 양키스 호구잡아 ALCS까지 진출하지만 텍사스 레인저스에 패했고, 이에 만족할 리가 없는 일리치 옹은 2012년 미기를 3루로 보내면서 프린스 필더를 9년 계약으로 영입하는 데에 직접 개입하였다.[10] 그리고 그 결과는 미기의 트리플 크라운과 필더의 전경기 출전 3할-30홈런-100타점 시즌으로 귀결되며 2012년 다시 월드 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로 나타났다. 그런데... 믿었던 벌괴가 1차전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털리고 말았다. 그 뒤로도 마치 자이언츠에게 홀린 듯 무기력한 경기력을 이어가며 홈에서조차 한 경기도 이기질 못하고 장렬히 스윕패.

일리치 옹은 이에 대해 몹시 아쉬워하며 타이거스의 우승을 보기 전엔 절대 못 죽는다는 원한집념(...)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뻥타선은 정상급이나 작전야구가 아쉬웠던 타이거스 타선에 교타자 토리 헌터를 추가로 영입하였다. 그리고 타이거스는 2013년 6월 초 현재 지구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벌괴도 새로 투수 역대 최고액의 장기계약을 발표한 뒤 구속 저하니 뭐니 해도 금강불괴로 돌아왔고 미기 또한 트리플 크라운에 다시 도전중이며 헌터와 필더도 모범 FA의 면모를 보이는 중. 이제 호랑이네만 우승하면 하키와 야구 두 스포츠에서 구단주로 명전에 입성하는 기록을 쓰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쉽 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패배하면서 우승은 다음 기회로.

결국, 2017년 2월 별세하시면서 끝내 타이거스의 우승을 보지 못했다.

2.3. 공격적인 투자와 적자를 개의치 않는 운영

일리치 구단주와 타이거스 돔브로스키 단장은 여러 면에서 조지 스타인브레너 브라이언 캐시먼이 성격 순하고 화합 잘되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록 세이버메트릭스에서 최근 중시하는 요소들이나 유망주 육성 면에서는 인내심이 부족하여 취약한 면모를 보이지만, 승리를 위해서라면 적자를 감수[11][12]하면서 돈을 얼마든지 투자하고[13] 팬 및 지역사회와 화합하는 일리치 구단주의 모습은 악의 제국과는 다른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른 팀의 팬들도 옛날 스타인브레너 살아있을 적엔 그만큼 싸가지 없어보이는 인물이 또 없었지만 일리치는 정감이 간다고 할 정도.[14] 이는 레드윙스에서도 마찬가지로, 암흑기에 빠져든 팀을 드래프트 잭팟을 터뜨리며 리더를 세운 뒤 적자 따위 얼마든지 감수하며 러시아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는 공격적인 투자를 가져가며 레드윙스를 강팀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고인이 되기 전 마지막 2~3년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마지막으로 질러 준 계약들은 대부분 평가가 좋지 않았다. 이들이 대부분 먹튀로 전락하여 팀의 체질이 심각하게 악화되고 말았다.

레드윙스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플레이오프 연속 진출 기록을 이어가기 위해 그저그런 선수들한테 재계약을 주면서 트레이드 거부 조항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줘 버렸고, 이는 팀의 구성 및 운영에 큰 제약을 줘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계약을 한 선수가 부진할 경우, 만료되는 계약을 앞둔 선수를 신인 지명권이나 유망주로 순환시켜서 팀을 운영하는 것이 기본인데, 트레이드 거부 조항이 있으면 좋은 오퍼를 받아도 선수가 "내가 왜 거기로 감?"이라고 하면 구단의 손이 묶인다. 이는 결국 고액을 지불하면서 성적은 형편없고, 팀을 구조조정할 수도 없는 상황을 만들게 되었다. 결국 16-17시즌부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현재까지 기나긴 리빌딩을 하는 중이다.

3. 이모저모

  • 2013년에는 타이거스의 코메리카 파크 외야에 달린 쉐보레 광고판을 내릴 위기에서 무료로 광고 계약을 연장해주는 패기를 선보였다. 자동차 산업으로 먹고사는 디트로이트 시에 기여한 바가 큰 업체라서 그깟 광고비 안 받아도 된다고 한다.
  • NBA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리빌딩 체제로 접어들고 구단 매각에 대한 카더라가 돌기도 했는데 디트로이트 팬들은 일리치 구단주가 농구팀도 인수하는 통큰 행보를 가져가길 기대했다 카더라. 실제로 "저런 훌륭한 명문팀이 디트로이트를 떠나서는 안 된다!"라며 피스톤즈의 전 구단주 빌 데이비슨의 미망인인 캐런 데이비슨과 매각협상에 나서기도 했지만 인수가 성사되진 않았다. 피스톤즈는 한동안 망조 테크를 타다가 새 구단주 톰 고어스에 인수되며 안정화에 들어갔다. 또한 NFL 디트로이트 라이언스를 탐내기도 했는데, NFL 사무국에게 태클이 걸리며 무산되었다.[15]
  • 자신이 축적한 부의 사회 환원, 자선사업 쪽에서도 열심이다. 노스다코타 주에 홍수 피해가 났을 때 200만여 명의 이재민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식량을 지원하기도 했고, 상이군인들을 돕는 활동도 하고 있다.[16] 아마추어 하키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고, 종합(?) 자선단체도 운영한다. 자선단체 쪽은 스케일이 꽤 큰데, 초기에는 어린이들의 보육과 교육에 신경썼지만 이제는 더 나아가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고 성장한 뒤의 경제력과 일자리 확보 같은 요소까지 신경쓰고 있다.
  • 타이거스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게 현질에 치중하고 현재 만을 신경쓴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 단적인 예가 1라운드에서 뽑은 투수 유망주들(고교/대학을 막론하고 모두)의 콜업에 있어 느긋하게 바라보는 일이 없이 최소한 다듬을 것만 다듬고 올려버렸다가 경험을 쌓지 못한 여파로 에이스급 포텐셜이 하위 선발급으로 약화된다거나 하는 문제로,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에이스급 투수는 벌괴 뿐이다. 트레이드와 유망주 보호에 있어서도 결과적으로 내보낸 유망주들이 대개 망하고 들어온 유망주들 중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경우가 많기에 덜 까이는 것 뿐이지 육성에 있어서는 까여도 할 말이 없다. 2012-13 오프시즌에는 NC 다이노스에 입단하는 아담 윌크가 TOP 10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팜은 시궁창이었다. 팬들은 제 돈도 아니고 우승 한번 해보자고 펑펑 쓰는 구단주를 말릴 이는 없지만, 돔브로스키 단장이 현질과 유망주 보호에 있어 적정한 선을 지켜나가야 타이거스의 향후 행보에 좋은 영향을 끼칠 듯. 이런 분을 봐서라도 꼴랑이는 어서 우승을 해야... 그러나 디트로이트시가 파산한 상황에 아들인 크리스토퍼 일리치가 야구에 아버지보다 관심이 없다는 소리가 있어서 이분이 돌아가시면 한동안 크게 지르는건 못 볼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많은 팬들이 빨리 우승을 해야 한다고 소리를 치고 있다. 허나 결국 2017년 2월 10일 일리치가 타계하며 그는 타이거스의 우승을 볼 수 없게 되었다.
  • 부인과 함께 마케도니아계 미국인이다. 마케도니아계 미국인 안에서는 인지도나 사회적 입지 등이 압도적이라 봐도 무방하다.
  • 작은 아들인 아나타스 일리치는 배우로 활동했다. 저예산 영화 3편에 나와 사라졌지만... 로저 코먼이 제작하고 전 시리즈를 여성 감독이 감독한 슬래셔 영화 슬럼버 파티 학살 시리즈 가운데 2편(Slumber Party Massacre 2/1987. 한국 비디오 제목은 <여름날 파티에서 대학살>. 1은 대우비디오에서 슬럼버 파티에서 생긴 일이라는 제목으로 출시)에서 드릴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로 나왔던 게 그나마 알려진 경우.


[1] 21세기 들어서 미국 내에선 도미노피자가 선두를 달리고 그 다음을 피자헛, 셋째 자리를 리틀 시저스가 가져간다. 말석에는 파파존스가 자리하고 그 아래는 매출 규모가 네 개의 선두 기업에 비하면 상당히 작다. [2] 미군은 어떤 군종을 막론하고 기본 의무복무기간이 4년이다. [3] 참고로 대한민국에도 1990년대 중반에 버거킹 한국사업을 하던 일경식품을 통해 진출한 적이 있는데, 하필 진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IMF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철수하였다. [4] 프린스 필더의 아버지 맞다. [5] 지금은 펜스를 앞당겨서 중립 구장으로 평가받는다. [6] 참고로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의 역대 최다승 기록이 116승이었다. 그리고 이 시즌의 승률은 2003년 롯데 자이언츠와 같은 .265로, 세이버메트릭스 WAR에서 일컫는 대체선수들로 꾸린 팀의 승수인 48승보다도 적은 승수인 43승에 머물렀다. 당시에는 자칫하다간 호랑이네에서만 20패 듀오가 나올 뻔한 아찔한 시즌이었다.(마이크 매로스 20패, 제레미 본더먼 19패) [7]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의 규정상 전체 승률 역순으로 순위를 짜는건 지금과 똑같으나 1픽의 결정에 있어서만큼은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 양 리그 꼴찌가 번갈아 1픽을 가져갔다. 2005년부터는 그냥 전체 꼴찌가 1픽 갖는 걸로 바뀌었다. [8] 이 우승은 2020년 현재까지도 역대 가장 낮은 승률로 월드 시리즈를 우승한 팀으로 남아있다. 정규시즌 성적이 겨우 83승 79패. 와일드카드가 3장인 현재도 83승으로는 포스트시즌 진출마저도 손에 꼽을 수준이다. 심지어 저 때의 카디널스는 저 성적이 지구 우승 성적이였는데, 이렇게 된 건 저 당시 내셔널 리그 중부지구 팀들이 모두 인터리그 성적이 5할을 넘기지 못했던 데다가 2위였던 휴스턴 애스트로스도 82승 80패에 머물렀으며 3위부턴 전부 5할 승률도 찍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중부지구 내 하위 두 팀이 90패 이상인 건 덤. 정규시즌 한정으로는 지구 내의 6팀이 모두 전적이 좋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인데, 심지어 카디널스는 정규시즌에도 타이거스를 인터리그에서 딱 세 번 만나서 스윕패. 그런데 월드 시리즈에서 이 열세를 뒤집은 것이다. 이후 2023년부터는 인터리그가 확대되고 지구 내 팀과의 대결이 각 13경기로 줄어들면서 이 정도 승률로 와일드카드를 확보하는 팀이 나올 가능성이 생겼고, 곧바로 이와 비슷한 승률(84승 78패 승률 0.519)로 와일드카드 막차를 타고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한 팀이 나왔다. [9] 이 과정에서 타이거스는 많은 팬들이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만 내는 줄로 알았던 사치세도 냈다. [10] 실제로 돔브로스키 단장은 이 계약에 대해 검토조차 않았다가(당연히 커다란 몸집으로 인한 내구성 의혹 때문...) 사인이 임박해서야 덜컥 통보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만큼 일리치 구단주와 싸우지 않고 우승을 향한 투자를 이어가고 미기에게 포지션 변경을 부탁했다. [11] 쉽게 말해 사재를 털어가며 운영한다. 메이저리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프로스포츠보다 훨씬 수익성을 중시하는 시스템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구단주가 적자를 감수하면서 구단을 운영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구단이 흑자를 보면서 팀을 운영할 수 있는 적정 금액으로 산정되는 것이 페이롤인데, 디트로이트의 지출은 팀의 수익 구조를 한참 초과해서 이뤄지고 있다. 일리치가 사망할 경우에는 적어도 페이롤이 현재보다 30%, 심하면 절반 정도까지 감소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이 때문. 참고로 자식들은 일리치의 이러한 과도한 투자에 대해서 불만이 많은 모습을 수차례 드러낸 바 있다. 이와 비슷했던 형태로 돌아갔던 프로스포츠 구단이 바로 로만 아브라모비치 재임기의 첼시 FC. 대신 이쪽은 사재를 털어가면서 운영을 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적자까지 로만 아브라모비치 본인이 구단을 매각하면서 다 들고 떠나서 구단에 한 푼의 부채도 남기지 않았다. 이쪽은 선수 판매 수익을 통해 어떻게든 꼬박꼬박 적자가 난 적은 없었지만, 대신 그 스팬딩의 대부분이 선수단의 주급으로 탕진되었었다. [12] 사실 마이클 일리치 구단주가 '본인은 디트로이트에 살며 돈을 벌만큼 벌어 부유해졌기에 디트로이트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하며 그를 위해 구단주인 본인이 마땅히 행할 의무는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는 철학이 구단 경영에 반영되었기에 이런 운영이 지속가능했다. [13] 그럼에도 일리치 구단주가 가져간 하키와 야구에서의 투자에서 실패한 먹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생각보다 적다. 최근에는 기껏해야 탈선기관차 돈트렐 윌리스 정도. 물론 능력 있는 프런트를 기용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말이다. [14] 마침 2013년에는 일리치가 삘 받아서 추신수를 지를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었....으나 결국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를 영입했다. 일리치 옹의 신의 한수 [15] NFL은 다른 종목 구단주가 NFL 프랜차이즈를 인수할 수 없게 하고 있다. 하지만 NFL 구단주가 타국의 타 종목 구단을 인수하면 상관없다. 그의 사후 2018년부터는 이런 규정이 없어졌고, 미국내 타 구단들을 자기 아들 명의로 운영하는 꼼수를 쓰던 스탠 크랑키도 지금은 덴버 너기츠 등의 운영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중이다. [16] 이 상이군인 지원 활동으로 미국 제대군인부 장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