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04:42:35

마이크 무시나

마이크 무시나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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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df4601> 파일:볼티모어 오리올스 엠블럼.svg 볼티모어 오리올스
역대 1라운드 지명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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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9,#ffffff
1965년 ~
1965
스캇 맥도널드
투수 / 전체 15번
1966
테드 파크스
유격수 / 전체 16번
1967
바비 그리치
유격수 / 전체 19번
1968
주니어 케네디
유격수 / 전체 10번
1969
돈 후드
투수 / 전체 17번
1970
제임스 웨스트
포수 / 전체 24번
1971
랜디 스타인
투수 / 전체 23번
1972
켄 토마스
포수 / 전체 24번
1973
마이크 패럿
투수 / 전체 15번
1974
리치 다우어
유격수 / 전체 24번
1975
데이브 포드
투수 / 전체 23번
1976
댈러스 윌리엄스
외야수 / 전체 20번
1977
드렁고 헤이즈우드
포수 / 전체 19번
1978
로버트 보이스
3루수 / 전체 22번
1979
FA 스티브 스톤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1980
제프 윌리엄스
외야수 / 전체 26번
1981
FA 짐 다이어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1982
조 쿠차스키
투수 / 전체 24번
1983
웨인 윌슨
투수 / 전체 25번
1984
존 후버
투수 / 전체 25번
1985
FA 프레드 린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박탈
1986
FA 후안 베니케즈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박탈
1987
크리스 마이어스
투수 / 전체 7번
1987[1]
브래드 듀발
투수 / 전체 15번
1987[1]
피트 하니시
투수 / 전체 27번
1988
그렉 올슨
투수 / 전체 4번
1988[3]
리키 구티에레스
유격수 / 전체 28번
1989
벤 맥도널드
투수 / 전체 1번
1990
마이크 무시나
투수 / 전체 20번
1991
마크 스미스
외야수 / 전체 9번
1992
제프리 해몬즈
외야수 / 전체 4번
1993
제이 파웰
투수 / 전체 19번
1994
FA 시드 페르난데스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1995
알 셰퍼드
투수 / 전체 21번
1996
FA 로베르토 알로마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1997
제이슨 워스
외야수 / 전체 22번
1997[4]
다넬 맥도널드
외야수 / 전체 26번
1997[4]
느테마 느던기디
외야수 / 전체 36번
1998
릭 엘더
외야수 / 전체 26번
1998[6]
마몬 터커
외야수 / 전체 39번
1999
마이크 파라디스
투수 / 전체 13번
1999[7]
리차드 스탈
투수 / 전체 18번
1999[8]
래리 비그비
외야수 / 전체 21번
1999[9]
키스 리드
외야수 / 전체 23번
1999[9]
조슈아 세나테
투수 / 전체 34번
1999[7]
스캇 라이스
투수 / 전체 44번
1999[8]
브라이언 로버츠
유격수 / 전체 50번
2000
뷰 헤일
투수 / 전체 14번
2000[13]
트리퍼 존스
투수 / 전체 32번
2001
크리스 스미스
투수 / 전체 7번
2001[14]
마이크 폰테넛
2루수 / 전체 19번
2001[14]
브라이언 배스
유격수 / 전체 31번
2002
애덤 로웬
투수 / 전체 4번
2003
닉 마카키스
외야수 / 전체 7번
2004
웨이드 타운젠드
투수 / 전체 8번
2005
브랜든 스나이더
포수 / 전체 13번
2005[16]
개릿 올슨
투수 / 전체 48번
2006
빌리 로웰
3루수 / 전체 9번
2006[17]
페드로 베아토
투수 / 전체 32번
2007
맷 위터스
포수 / 전체 5번
2008
브라이언 마투스
투수 / 전체 4번
2009
맷 홉굿
투수 / 전체 5번
2010
매니 마차도
유격수 / 전체 3번
2011
딜런 번디
투수 / 전체 4번
2012
케빈 가우스먼
투수 / 전체 4번
2013
헌터 하비
투수 / 전체 22번
2013[CBA]
조시 하트
중견수 / 전체 37번
2014
FA 넬슨 크루즈, 우발도 히메네스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박탈
2015
DJ 스튜어트
외야수 / 전체 25번
2015[19]
라이언 마운트캐슬
유격수 / 전체 36번
2016[20]
코디 세들록
투수 / 전체 27번
2016
FA 요바니 가야르도 영입으로
인한 지명권 상실
2017
DL 홀
투수 / 전체 21번
2018
그레이슨 로드리게스
투수 / 전체 11번
2018[CBA]
카딘 그레니어
유격수 / 전체 37번
2019
애들리 러치맨
포수 / 전체 1번
2020
헤스턴 커스태드
외야수 / 전체 2번
2020[CBA]
조던 웨스트버그
유격수 / 전체 30번
2021
콜튼 카우저
외야수 / 전체 5번
2022
잭슨 홀리데이
유격수 / 전체 1번
2022[CBA]
딜런 비버스
외야수 / 전체 33번
2023
엔리케 브래드필드 주니어
외야수 / 전체 17번
2024
밴스 허니컷
외야수 / 전체 22번
2024[24]
그리프 오페럴
유격수 / 전체 32번
* 취소선 처리된 선수는 오리올스 구단과 계약하지 않은 선수

[1] FA 릭 뎀프시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 [1] [3] 브래드 듀발 지명 거부로 인한 지명권 보상 [4] FA 데이비드 웰스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 [4] [6] FA 랜디 마이어스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 [7] FA 에릭 데이비스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 [8] FA 라파엘 팔메이로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 [9] FA 로베르토 알로마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 [9] [7] [8] [13] FA 아서 로즈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 [14] FA 마이크 무시나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 [14] [16] 웨이드 타운젠드 지명 거부로 인한 지명권 보상 [17] FA B.J. 라이언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 [CBA] [19] FA 넬슨 크루즈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 [20] FA 천웨이인 이적으로 인한 지명권 보상 [CBA] [CBA] [CBA] [24] 거너 헨더슨 신인왕 수상으로 인한 추가 지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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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df4601> 파일:볼티모어 오리올스 엠블럼.svg 볼티모어 오리올스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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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9,#ffffff
<rowcolor=#dc4405> 1901 1902~1903 1904 1905~1907 1908
핑크 홀리 레드 도나휴 에드 시버 해리 하웰 바니 펠티
<rowcolor=#dc4405> 1909 1910 1911 1912 1913~1915
잭 파웰 빌 그레임 잭 파웰 조 레이크 칼 와일먼
<rowcolor=#dc4405> 1916 1917 1918 1919 1920
밥 그룸 얼 해밀턴 그로버 로더밀크 데이브 데이븐포트 앨런 소도론
<rowcolor=#dc4405> 1921~1924 1925 1926 1927 1928~1930
어반 쇼커 불렛 조 부시 밀트 개스턴 톰 재커리 샘 그레이
<rowcolor=#dc4405> 1931~1932 1933 1934 1935 1936
레프티 스튜어트 범프 해들리 조지 블래홀더 보보 뉴섬 아이비 앤드류스
<rowcolor=#dc4405> 1937 1938~1939 1940 1941 1942
오랄 힐데브랜드 보보 뉴섬 슬릭 코프만 엘든 오커 밥 먼크리프
<rowcolor=#dc4405> 1943 1944 1945 1946 1947
알 홀리스워스 잭 크레머 시그 자쿠키 넬스 포터 데니 게일하우스
<rowcolor=#dc4405> 1948 1949~1952 1953 1954 1955
프레드 샌포드 네드 가버 버질 트럭스 돈 라슨 루 크레토우
<rowcolor=#ffffff> 1956 1957 1958 1959 1960
빌 라이트 할 브라운 코니 존슨 잭 하시맨 제리 워커
<rowcolor=#ffffff> 1961 1962 1963 1964 1965~1966
밀트 파파스 빌리 헤프트 스티브 바버 밀트 파파스 스티브 바버
<rowcolor=#ffffff> 1967 1968 1969~1971 1972 1973
데이브 맥널리 톰 포버스 데이브 맥널리 팻 돕슨 데이브 맥널리
<rowcolor=#ffffff> 1974~1977 1978 1979~1980 1981 1982~1983
짐 파머 마이크 플래나간 짐 파머 스티브 스톤 데니스 마르티네즈
<rowcolor=#ffffff> 1984 1985 1986 1987~1988 1989
스캇 맥그레거 스톰 데이비스 마이크 플래나간 마이크 보디커 데이브 슈미트
<rowcolor=#ffffff> 1990 1991 1992~1993 1994~1996 1997
밥 밀라키 제프 벨라드 릭 서클리프 마이크 무시나 지미 키
<rowcolor=#ffffff> 1998~2000 2001 2002 2003 2004
마이크 무시나 팻 헨트겐 스캇 에릭슨 로드리고 로페즈 시드니 폰슨
<rowcolor=#ffffff> 2005~2006 2007 2008~2009 2010 2011
로드리고 로페즈 에릭 베다르 제레미 거스리 케빈 밀우드 제레미 거스리
<rowcolor=#ffffff> 2012 2013 2014~2016 2017 2018
제이크 아리에타 제이슨 해멀 크리스 틸먼 케빈 가우스먼 딜런 번디
<rowcolor=#ffffff> 2019 2020 2021~2022 2023 2024
앤드류 캐시너 토미 마일론 존 민스 카일 깁슨 코빈 번스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132448> 파일:뉴욕 양키스 엠블럼.svg 뉴욕 양키스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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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9,#ffffff
<rowcolor=#ffffff> 1901 1902 1903~1906 1907 1908
조 맥기니티 톰 휴즈 잭 체스브로 알 오스 슬로우 조 도일
<rowcolor=#ffffff> 1909 1910~1911 1912 1913 1914
덕 뉴턴 히포 본 레이 칼드웰 조지 맥코넬 마티 맥헤일
<rowcolor=#ffffff> 1915 1916~1917 1918~1919 1920 1921
잭 워홉 레이 칼드웰 조지 모그리지 밥 쇼키 칼 메이스
<rowcolor=#ffffff> 1922 1923~1924 1925 1926 1927
새드 샘 존스 밥 쇼키 어반 쇼커 밥 쇼키 웨이트 호이트
<rowcolor=#ffffff> 1928 1929~1930 1931 1932~1937 1938~1940
허브 페녹 조지 핍그라스 레드 러핑 레프티 고메즈 레드 러핑
<rowcolor=#ffffff> 1941 1942 1943 1944 1945
마리우스 루소 레드 러핑 타이니 보넘 행크 보로위 어틀리 도널드
<rowcolor=#ffffff> 1946~1947 1948 1949 1950 1951~1953
스퍼드 챈들러 앨리 레이놀즈 에디 로팟 앨리 레이놀즈 빅 래스키
<rowcolor=#ffffff> 1954~1955 1956 1957 1958 1959
화이티 포드 돈 라슨 화이티 포드 돈 라슨 밥 털리
<rowcolor=#ffffff> 1960 1961~1962 1963 1964 1965
짐 코츠 화이티 포드 랄프 테리 화이티 포드 짐 보튼
<rowcolor=#ffffff> 1966 1967~1970 1971 1972~1974 1975
화이티 포드 멜 스토틀마이어 스탠 반슨 멜 스토틀마이어 덕 메디치
<rowcolor=#ffffff> 1976~1977 1978~1980 1981 1982~1984 1985
캣피시 헌터 론 기드리 토미 존 론 기드리 필 니크로
<rowcolor=#ffffff> 1986 1987 1988 1989 1990
론 기드리 데니스 라스무센 릭 로든 토미 존 데이브 라포인트
<rowcolor=#ffffff> 1991 1992 1993~1995 1996~1997 1998
팀 리어리 스캇 샌더슨 지미 키 데이비드 콘 앤디 페티트
<rowcolor=#ffffff> 1999 2000 2001~2003 2004 2005~2006
로저 클레멘스 올랜도 에르난데스 로저 클레멘스 마이크 무시나 랜디 존슨
<rowcolor=#ffffff> 2007 2008 2009~2014 2015~2017 2018
칼 파바노 왕젠민 CC 사바시아 다나카 마사히로 루이스 세베리노
<rowcolor=#ffffff> 2019 2020~2023 2024
다나카 마사히로 게릿 콜 네스터 코르테스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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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무시나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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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92 MLB 올스타전 로고.png 파일:1993 MLB 올스타전 로고.png 파일:1994 MLB 올스타전 로고.png 파일:1997 MLB 올스타전 로고.png 파일:1999 MLB 올스타전 로고.png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1992 1993 1994 1997 1999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bordercolor=#df4601> 파일:볼티모어 오리올스 엠블럼.svg 볼티모어 오리올스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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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91919,#ffffff
브룩스 로빈슨 프랭크 로빈슨 데이브 맥널리 부그 파웰 거스 트리안도스
루이스 아파리시오 마이크 퀘이야 마크 벨란저 얼 위버 폴 블레어
폴 리차즈 밀트 파파스 짐 파머 켄 싱글턴 알 범브리
스티브 바버 짐 젠틸 딕 홀 스튜 밀러 행크 바우어
스캇 맥그레거 할 브라운 진 우들링 돈 뷰포드 마이크 플래나간
조지 밤버거 척 톰슨 제리 호프버거 빌리 헌터 칼 립켄 시니어
해리 달튼 릭 뎀프시 데이비 존슨 바비 그리치 리 맥파일
리 메이 프랭크 카센 에디 머레이 잭 던 3세 티피 마르티네즈
에디 와트 마이크 보디커 엘로드 헨드릭스 행크 피터스 렉스 바니
데니스 마르티네즈 호이트 윌헬름 밥 브라운 칼 립켄 주니어 브래디 앤더슨
어니 타일러 더그 데신세이 크리스 호일스 랄프 살본 에디 위드너
빌 오도넬 B.J. 서호프 와일드 빌 하기 필 이조 그렉 올슨
해롤드 베인스 줄리 와그너 레니 존스톤 레이 밀러 자니 오츠
리치 반셀스 마이크 보딕 리치 다우어 마이크 무시나 월터 야우스
로베르토 알로마 돈 프라이스 존 로웬스타인 게리 레너키 멜빈 모라
프레드 율맨 시니어 브라이언 로버츠 프레드 만프라 모 가바 J.J. 하디
마이크 데버로 조 앙헬
}}}}}}}}}}}} ||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Mussina_HOF.jpg
마이크 무시나
헌액 연도 2019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76.70% (6회)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6년 ~ 199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마크 랭스턴
(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마이크 무시나
( 볼티모어 오리올스)
케니 로저스
( 텍사스 레인저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케니 로저스
( 텍사스 레인저스)
마이크 무시나
( 뉴욕 양키스)
케니 로저스
( 텍사스 레인저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케니 로저스
( 텍사스 레인저스)
마이크 무시나
( 뉴욕 양키스)
케니 로저스
( 텍사스 레인저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요한 산타나
( 미네소타 트윈스)
마이크 무시나
( 뉴욕 양키스)
마크 벌리
( 시카고 화이트삭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다승왕
지미 키
( 뉴욕 양키스)
마이크 무시나
( 볼티모어 오리올스)
앤디 페티트
( 뉴욕 양키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번호 42번
론 키틀
(1990)
<colbgcolor=#000000> 마이크 무시나
(1991)
셔먼 오반도
(1993~1995)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번호 35번
데이브 갤러거
(1990)
마이크 무시나
(1992~2000)
조시 타워스
(2001~2002)
뉴욕 양키스 등번호 35번
클레이 벨린저
(1999~2000)
마이크 무시나
(2001~2008)
데이브 아즈마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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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ike_Mussina_Baltimore_Orioles.webp
마이크 무시나
Mike Mussina
본명 마이클 콜 무시나
Michael Cole Mussina
출생 1968년 12월 8일 ([age(1968-12-08)]세)
펜실베이니아 주 윌리엄스포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몬투어스빌 고등학교 - 스탠퍼드 대학교 (경제학 학사)
신체 188cm / 83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87년 드래프트 11라운드 (전체 273번, BAL)
1990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0번, BAL)
소속팀 볼티모어 오리올스 (1991~2000)
뉴욕 양키스 (2001~2008)

1. 개요2. 선수 시절
2.1. 아마추어 시절2.2. 메이저리그
2.2.1. 볼티모어 오리올스2.2.2. 뉴욕 양키스
2.2.2.1. 2001년2.2.2.2. 2002년2.2.2.3. 2003년2.2.2.4. 2004년2.2.2.5. 2005년2.2.2.6. 2006년2.2.2.7. 2007년2.2.2.8. 2008년
3. 피칭 스타일4. 명예의 전당 입성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5. 연도별 성적6. 여담7. Mr. Almost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미국 국적의 볼티모어 오리올스, 뉴욕 양키스의 전 투수. 별명은 성에서 딴 대로 Moose이다.[1]

1990년대 스테로이드 시대에 활약했던 투수들 중 한 명으로 당대 최고의 투수들 중 한 명이었다.

또한, 스탠퍼드 대학교 경제학 학사라는 학력까지 가진 MLB 역사상 보기드문 엄친아 투수이다. 그리고 그 학력에 어울리는 스마트한 유형의 잘생긴 외모는 덤.

또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불운의 아이콘이자 콩라인의 상징이기도 하다.[2]

통산 성적은 270승 153패, 3562.2이닝, 3.68 ERA, 2813삼진, 785볼넷, K/9 7.1, BB/9 1.98, K/BB 3.58, HR/9 0.94, 57완투, 23완봉을 기록했다.

2. 선수 시절

2.1. 아마추어 시절

일찍이 고등학교 때부터 야구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고등학교 때 기록은 24승 4패에 평균 자책점은 0.87이였다. 또한 축구와 농구도 수준급이었다고 한다.[3] 이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지명되었으나 입단을 대학 졸업 후로 보류하고 당시 고등학교 전교 2등의 성적으로 스탠퍼드 대학교에 진학한다.[4] 무서운 점은 재학 당시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녔다는 점과 3년반 만에 조기 졸업,[5] 대학교 진학 후에도 그 실력은 상승세를 보였으며 졸업 후 바로 오리올스에 입단하였다. 오리올스에서도 애지중지하던 투수로, 마이너에서조차 불펜 투수로 등판한 적이 없고 전부 선발 투수로 출전했다.[6]

2.2. 메이저리그

2.2.1. 볼티모어 오리올스

1991년 8월 4일 시카고 화이트삭스 전에 선발 등판하며 빅 리그에 데뷔했다. 7.2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후 8월 14일 텍사스 레인저스 전에서 8이닝 10k 2실점 호투를 통해 통산 첫 승을 기록한다.

1992년 본격적으로 풀 타임을 뛰며 18승 5패에 2.54의 자책점을 기록하며( 당시 경기영상) 돌풍을 일으켰으나 사이 영 상에선 4등을 하며 고배를 마셨다.[7]

파일:external/60ft6in.com/Mike-Mussina.jpg

하지만 이후에도 15승을 넘나드는 활약을 보이며 오리올스의 에이스 역할[8]을 맡았다.

2.2.2. 뉴욕 양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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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시즌 후 FA자격을 얻은 무시나는 뉴욕 양키스와 6년 8850만 달러 계약을 채결한다. 이후 꾸준히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 역할을 맡았다.
2.2.2.1. 2001년
시즌 17승 11패와 평균자책점 3.15, 탈삼진 214개, 완봉 3번, 탈삼진/볼넷 비율(5.10개) 등 4개 분야에서 리그 2위, 9이닝당 탈삼진(8.42개)과 완투(4번)에서 리그 5위를 하였다. 추가로 그는 2아웃 득점권 상황에서 피안타율이 .216로 매우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였다. 이해 사이영상 투표 5위에 올랐으며 이는 양키스에서 거둔 가장 높은 순위이다. 삼진, 이닝, ERA, WAR 등 여러 분야에서 실제 수상자인 로저 클레멘스를 앞질렀으며, 2010년대 이후로 바뀐 투표 성향이었다면 수상이 유력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2001년 월드 시리즈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1차전과와 5차전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1이닝에서 4.09의 방어율과 1 패만을 기록했다.
2.2.2.2. 2002년
18승을 거두며 아메리칸 리그 2위, 182개의 탈삼진과 9이닝당 탈삼진(7.60개)에서 리그 3위을 거둔다.
2.2.2.3. 2003년
9이닝당 탈삼진 8.18개와 탈삼진/볼넷 비율 4.88로 리그 3위를 기록한다. 17승은 리그 5위, 평균자책점 3.40은 리그 8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었다.

2003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에서 양키스 선발 투수 로저 클레멘스가 3이닝 4실점 후 강판되자 커리어 첫 불펜 등판에 나섰다.[9]
2.2.2.4. 2004년
12승 9패 평균자책점 4.59로 시즌을 마감했다. 탈삼진 195개는 리그 4위, 9이닝당 볼넷은 2.19개로 8위였다.
2.2.2.5. 2005년
13승 8패 4.41 ERA를 기록했고 9이닝당 탈삼진은 7.11개로 리그 7위를 기록했다.
2.2.2.6. 2006년
32경기에 등판하여 197⅓이닝을 소화하며 15승 7패 탈삼진 172개를 기록했다. 9이닝당 볼넷 1.60개로 커리어 하이 기록을 세우며 리그 1위, 피출루율 0.279로 리그 2위, 0.241의 피안타율과 탈삼진/볼넷 비율은 4.91로 리그 3위, 평균자책점은 3.51로 리그 4위를 기록하는 등 우수한 시즌을 보냈다.

6월 25일 플로리다 말린스 전에서 코디 로스를 상대로 통산 2500번째 탈삼진을 기록했다. 또한 아메리칸 리그 투수로는 최초로 15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한 투수가 되었다.
2.2.2.7. 2007년
양키스 소속으로 100번째 승리를 거두며 역대 9번째로 서로 다른 2개 팀에서 100승을 거둔 투수가 되었다.[10] 하지만 전체적으로 부진한 시즌이었으며 이안 케네디에게 밀려 선발진에서 밀려나는 등 이적 후 처음으로 규정 이닝을 넘기지 못했다.

특히 노쇠화로 인한 패스트볼 구속 하락이 부진의 원인이 되었다. 무시나는 마이너를 포함해서 전 경기를 선발 투수로 등판했는데 2007년 시즌 중반에 성적 부진으로 인해 불펜 계투로 잠깐 돌린 적이 있고, 딱 한 경기 불펜 투수로 등판했는데[11], 그게 무시나가 프로가 되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펜 투수로 등판한 경기가 되었다.[12] 부진의 이유는 패스트볼 구속이 너무 떨어져서 변화구랑 구속 차이가 크게 안 난다는 게 핵심적 문제였는데 그는 이 극복하기 힘든 문제를 변화구 구속을 낮춘다는 획기적방법으로 타개하는 데 성공했다.

9월 23일 토론토 블루제이스 전에서 7이닝 3실점 호투로 시즌 11승이자 통산 250승을 달성했다.
2.2.2.8. 2008년
2008년 시즌 초반에도 부진이 이어지자 공동 구단주 자격으로 있던 행크 스타인브레너가 '무시나는 제이미 모이어처럼 던질 필요가 있다' 라며 듣기에 따라서 빅 리그 짬밥이 20년 가까이 되는 베테랑 투수에게 상당히 치욕적인 말을 한 바가 있는데 이에 '나에겐 왼손잡이용 글러브가 없다'고 간단히 응수했다. 왕젠민을 더불어 그와 앤디 페티트를 제외한 모든 선발 로테이션 멤버가 부상으로 들락날락하는 최악의 팀 상황에서도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키며 분투, 선수 생활 최초이자 최후로 20승을 달성하고 몇 시즌만 더 던지면 통산 300승이 유력한 상황에서 팀의 재계약 제안을 뿌리치며[13][14] 깔끔하게 은퇴해버리면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무시나는 통산 270승/2,813 탈삼진을 기록했는데, 실제로 3년 정도 더 뛰었다면 300승 클럽과 3,000K 클럽에 동시에 가입한 메이저리그 역대 11번째, 실질적으로는 10번째[15] 투수가 될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 아무리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무시나가 3년 정도 더 뛰면서 300승과 3,000K를 모두 달성하고 은퇴했더라면 명전 입성은 당연한 것이고 첫 턴 입성도 노릴 수 있었을 것이다.[16]

2008년 11월 20일, 무시나는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무시나는 1966년 샌디 쿠팩스 이후 20승을 거둔 직후 은퇴한 첫번째 투수이자 20승 직후 은퇴한 유일한 우완 투수이다.

3. 피칭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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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구였던 너클 커브

[kakaotv(395054340)]

전성기 시절 무시나는 90마일 중반대에 육박하는 패스트볼 너클 커브, 자신만의 고유한 그립을 잡고 던지는 체인지업으로 타자를 상대하는 파워 피쳐였으며,[17] 그이외에 투심, 커터, 슬라이더도 간간히 던졌다. 나이를 먹고 빠른공의 평균 구속이 88~89마일 정도로 떨어지면서 상황에 따라 완급조절이나 팔각도 조절 같은 지능적인 투구로 상대 타자를 현혹하는 타입으로 변신에 성공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커리어 말년을 보냈다. 릴리즈 후 살짝 앞으로 뛰는 특유의 투구폼이 인상적.

4. 명예의 전당 입성

연도 득표율(%)
2014 20.3
2015 24.6
2016 43.0
2017 51.8
2018 63.5
2019 76.7
  • 첫 해인 2014년 20.3%로 무난한 출발을 했다. 몇 년간은 쟁쟁한 선수들이 올라오기 때문에 이 정도 득표율에서 장기 투숙할 것으로 예상됐다.
  • 2년차인 2015년에도 24.6%의 득표율을 보였다. 승산은 있어 보이지만 자격유지 한도가 10년으로 단축되었기 때문에 쉽진 않을 것으로 보였다.
  • 2016년에는 43%로 두 배 가까이 수직상승 하면서 충분히 입성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투표인원 숫자가 줄어든 수혜를 크게 본 케이스이긴 한데, 배리 본즈, 로저 클레멘스, 커트 실링 등이 투표자 수는 크게 변화가 없거나 약물 선수들의 경우는 오히려 줄어들었음에도 득표비율이 상승한 케이스라면 마이크 무시나는 확실히 투표자수가 늘어난 케이스라는 것이 긍정적이다. 다만, 앞에 열거한 선수들보다는 득표비율이 낮다는 것이 문제.
  • 4년차인 2017년 득표율은 51.8%이다. 전년도만 해도 오히려 50%를 넘었던 커트 실링이 화려한 아가리질의 결과로 잔뜩 어그로를 끌어 45%로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긍정적인 신호였다.
  • 2018년에는 63.5%를 득표. 득표율이 크게 올랐다. 비교대상이었던 커트 실링은 50% 초반, 본즈와 클레멘스는 50% 중반이라는 것과도 비교되는 상승폭이었다.
  • 2019년, 76.7%의 득표율로 결국 6수만에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하였다. 자신은 볼티모어와 양키스 두 모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다고 밝혔고, 결국 자신의 의견대로 빈 모자를 썼다.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마이크 무시나 15 250 121 54
HOF 입성자 평균 40 185 100 50
  • JAWS - Starting Pitcher (9th)
career WAR 7yr-peak WAR JAWS
마이크 무시나 82.8 44.5 63.6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3 50.0 61.6

5. 연도별 성적

파일:MLB 로고.svg 마이크 무시나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91 BAL 12 4 5 0 0 87⅔ 2.87 77 7 21 1 52 1.118 139 1.7 2.2
1992 32 18 5 0 0 241 2.54 212 16 48 2 130 1.079 157 5.3 8.2
1993 25 14 6 0 0 167⅔ 4.46 163 20 44 3 117 1.235 100 2.8 1.6
1994 24 16 5 0 0 176⅓ 3.06 163 19 42 1 99 1.163 164 3.4 5.4
1995 32 19 9 0 0 221⅔ 3.29 187 24 50 1 158 1.069 145 5.1 6.1
1996 36 19 11 0 0 243⅓ 4.81 264 31 69 3 204 1.368 103 5.3 3.7
1997 33 15 8 0 0 224⅔ 3.20 197 27 54 3 218 1.117 137 5.4 5.5
1998 29 13 10 0 0 206⅓ 3.49 189 22 41 4 175 1.115 130 5.1 5.0
1999 31 18 7 0 0 203⅓ 3.50 207 16 52 1 178 1.274 133 6.1 4.4
2000 34 11 15 0 0 237⅔ 3.79 236 28 46 3 210 1.187 125 6.3 5.6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1 NYY 34 17 11 0 0 228⅔ 3.15 202 20 42 4 214 1.067 143 6.9 7.1
2002 33 18 10 0 0 215⅔ 4.05 208 27 48 5 182 1.187 109 4.7 4.6
2003 31 17 8 0 0 214⅔ 3.40 192 21 40 3 195 1.081 130 6.1 6.6
2004 27 12 9 0 0 164⅔ 4.59 178 22 40 2 132 1.324 98 2.9 2.4
2005 30 13 8 0 0 179⅔ 4.41 199 23 47 7 142 1.369 96 2.5 3.4
2006 32 15 7 0 0 197⅓ 3.51 184 22 35 5 172 1.110 129 5.1 5.0
2007 28 11 10 0 0 152 5.15 188 14 35 4 91 1.467 88 2.6 1.0
2008 34 20 9 0 0 200⅓ 3.37 214 17 31 8 150 1.223 131 3.6 5.1
MLB 통산
(18시즌)
537 270 153 0 0 3562⅔ 3.68 3460 376 785 60 2813 1.192 123 81.3 82.8

6. 여담

  • 오프시즌에 고향 고교 팀에서 풋볼, 농구 코치를 할 정도로 다재다능하며, 성품이 온화하고 성실한 선수이지만 한편으로 승부근성이 강한 선수로도 유명하다. 2006년 디트로이트 전에서 6-1로 완투승을 앞두고 있던 9회 2사에[18] 주자를 출루시키고 나서 조 토레 감독이 교체를 위해 마운드로 올라오려 하자 'No, You stay there'라 얘기하며 말린 일화가 있다. 다만 이 사건으로 은근히 성질 있는 선수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로는 조 토레 감독이 같은 이닝에 올라온 적이 있어서 2번째로 라인을 밟는 즉시 무조건 투수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에하무시나가 자신의 강판을 말리려고 급하게 제스처를 한 것이었다. 이밖에도 1993년 시애틀 매리너스의 빌 헤슬먼과 벤치 클리어링을 벌인 적이 있다.
  • 은퇴 후에 YES 네트워크의 양키스 경기 중계에 출연하거나 고향 고교 팀 선수들에게 농구를 가르치는 모습이 알려진 바 있다.
  • 박경림과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박경림 항목 참조.

7. Mr. Almost

무시나의 별명 중에는 성에서 따온 Moose 뿐만 아니라 Mr. Almost 도 있다. 이는 각종 대기록에 아쉽게 미치지 못한 무시나의 커리어를 빗대어 생겨났다. 우선 퍼펙트 게임에 도전하다 무산된 등판이 몇몇 있었다.
  • 1997년 5월 30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전 9회 1아웃까지 퍼펙트 행진을 이어오다가 샌디 알로마 주니어에게 1루타를 내주며 무산되었다. 하지만 무시나는 남은 두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3 대 0 완봉승을 따냈다.
  • 1998년 8월 4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전 8회 2아웃까지 퍼펙트 행진을 이어오다가 프랭크 카탈라노토[21]에게 2루타를 내주며 무산되었다. 팀은 4-0으로 승리했으며 무시나는 2피안타 완봉승을 따냈다.
  • 2001년 9월 2일 보스턴 레드삭스 전 9회 2아웃까지 퍼펙트 행진을 이어오다 대타로 들어온 칼 에버렛에게 단타를 허용하며 무산되었다. 이 경기 역시 1피안타 완봉승을 거뒀으며 13탈삼진을 기록했다.
  • 그 외에도 1992년 7월 15일 텍사스 레인저스 전과 2000년 8월 1일 미네소타 트윈스 전에서도 1피안타 완봉승을 기록했다.

또한 커리어 내내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었는데[22] 은퇴 직후 시즌인 2009년 뉴욕 양키스가 우승[23]을 해버린다. 게다가 통산 270승에 2813탈삼진으로 300승 3000탈삼진을 달성하지 못했다. 개인 수상 부문에서도 상복이 없는 편이었는데 사이영상도 받지 못했으며, 골드글러브 7회 수상을 제외하면[24] 1995년 다승왕(19승)이 유일하다.

8. 관련 문서




[1] 한국식으로 말하면 말코손바닥사슴이지만 학자들이 아닌 이상은 다들 무스라고 부른다. [2] 그 명성과 실력에 비해, 유독 상복이 없었던 투수. 거기다가 모든 투수들의 목표이자 꿈인 퍼펙트 게임을 달성 직전에 세 번이나 놓친, 불운한 투수.(1997년 9회 1사후 안타, 1998년 8회 2사 후 안타, 2001년 9회 2사 후 안타(심지어 펜웨이 파크에서였다!) 2004년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7회 1사 후 안타를 포함하면 4번) 그리고 이상하게 그 화려하던 1998년부터 2000년까지의 양키스 우승 신화가 공교롭게도 무시나가 영입된 2001년부터 끊겨버린지라 양키스 팬들이 간혹 '무시나가 오고 나서부터 우승 못했다. 재수없다.' 하는 식으로 대차게 까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은퇴한 직후인 2009 시즌. 양키스는 27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Mr. Almost. 그나마 위안이라면 골드 글러브는 7번이나 수상했을 정도로 수비 능력이 민첩하고 빈틈이 없다. [3] 무시나는 마이너리그 시절 부족한 월급 때문에 중고등학교 농구 코치로도 활동한 바가 있다. [4] 이때 전교 2등으로 졸업한 이유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 루머로 떠도는 말이 "고등학교 졸업 연설을 하기 싫어서 일부러 2등을 했다"는 것이다. [5] 이와 비슷한 인물로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졸업학점(GPA) 3.8을 받고 졸업한 로스 올렌도프, 예일 대학교 분자생물학을 전공해 의대까지 합격했지만 밀워키 브루어스의 지명으로 모든걸 포기하고 MLB에서 활약한 크레이그 브레슬로우, 바르셀로나 의과대학에 입학한 파우 가솔, 의학박사이자 소아과전문의였던 소크라치스, 약학대학을 졸업한 디켐베 무톰보, 예일 대학교를 포기한 맷 보너, 스탠퍼드 대학교 출신의 랜드리 필즈, 수학장학생으로 조지아 공과대학교을 입학한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테디어스 영,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데이비드 로빈슨, 에메카 오카포,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제레미 린, 그 외 엘튼 브랜드, 그랜트 힐,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영, 라이언 가코 등 생각보다 공부 잘 하는 운동선수가 많다. [6] 마이너 통산 31경기에 등판했으며 모두 선발등판이었다. [7] 이 해 1위는 데니스 에커슬리 [8] 이 시기 볼티모어는 지독하게 문제가 많은 팀이었다. 그 극강의 타고투저 시즌에도 불구하고 타선은 약했으며 불펜도 부실했다. 단적인 예가 2000년. 팀타율 리그 11위, 팀장타율 11위, 팀홈런 10위였고, 더 심각한 것은 구원 투수진으로 팀 전체 세이브 33개로 15위. 결국 마이크 무시나의 팀동료였던 시드니 폰손이 평균자책점 4.82로 222이닝을 던져서 리그 이닝 5위에 오르는 처참한 상황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크 무시나는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제외하고 지구인 중에서는 아메리칸 리그 투수 중 최고의 활약을 했다. 이닝 237 2/3(1위). 평균자책점 3.79(3위) Whip 1.19, 탈삼진 210개(3위). 하지만 그의 성적은 11승 15패. [9] 무시나는 당시까지 메이저리그는 물론 마이너에서도 불펜으로 등판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10] 볼티모어 소속 통산 147승, 양키스 소속 통산 123승 [11] 9월 3일 시애틀전이며 3.2이닝 2실점 기록 [12] 리그 한정이다. 포스트시즌에선 2번의 불펜 등판이 있다. [13] 물론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양키스가 FA 사냥에 나서기 위해 다년 계약을 제의하지 않았고 300승 도전을 위해 3년 연장 계약이 아니면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14] 통산 270승으로 은퇴했기 때문에 2~3년 정도 더 뛰었다면, 양키스 전력에 비춰볼 때, 본인만 삽질하지 않으면 300승은 무난했다. [15] 2016년 기준으로 300승과 3,000K를 모두 달성한 투수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월터 존슨, 스티브 칼튼, 톰 시버, 돈 서튼, 게일로드 페리, 필 니크로, 놀란 라이언,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로저 클레멘스 [16] 2016년 기준으로 300승과 3,000K를 모두 달성한 투수 10명 중 약쟁이를 제외한 9명은 전부 명전에 입성했다. 다만 전부 첫 턴에 간 것은 아니고 게일로드 페리가 3수, 돈 서튼 필 니크로가 5수 하긴 했는데, 기록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부정투구 논란과 너클볼러라는 트집 같은 기록 외적인 마이너스 요인에 발목잡혔던 것. 별다른 기록 외적 마이너스 요인이 없었던 스티브 칼튼, 톰 시버, 놀란 라이언,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은 전부 95% 이상의 득표율로 첫 턴에 입성했다. ( 월터 존슨은 83.63%의 다소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그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최초의 5인이므로 예외적인 사례이다.) 무시나에게 야구 외적인 마이너스 요인은 없었으므로 그가 만약 300승과 3,000K를 전부 채우고 은퇴했다면 지금처럼 명전을 가냐 마냐 아웅다웅하는게 아니라 첫 턴도 충분히 노려볼만하고, 설령 첫턴에 미끄러져도 최소 3수 안에는 무조건 갔을 것이다. 부질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들어가긴 했으니. [17] 이 체인지업에 대한 일화가 있는데,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양키스 포수 호르헤 포사다가 무시나가 체인지업을 던질 때마다 홈런을 때렸다. 무시나가 어이없어하며 포사다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물어보자, 포사다는 던질 때 잡는 방법이 보인다고 귀띔해줬다. 이 말을 듣고 개량한 것이 무시나의 체인지업. 결국 포사다는 무시나의 너클 커브를 대신할(포사다의 수비 능력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체인지업을 만들어준 셈이다. [18] 저 1점도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실책으로 내줬던 거라 자책점은 없었다. [19] 그의 아내는 무시나와 결혼하기 전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20] 우리가 아는 농기계 트랙터가 아닌, 뒤에 무동력 차량(트레일러)을 달고 다니는 큰 트럭을 의미한다. [21] 1997-2010까지 디트로이트, 텍사스, 토론토 등에서 활약했던 선수. 통산 .291 84홈런 457타점 기록 [22] 2001년과 2003년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준우승에 그쳤다 [23] 게다가 무시나가 양키스로 이적하기 직전해인 2000년은 양키스가 우승한 시즌이었다. [24] 미국의 골드글러브는 한국과 달리 순수 수비만을 평가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으며, 사이영상이 투수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