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로이 호지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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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FC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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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 현재 | ||||
초대 바클레이 ☆ |
2대 맥케나 ☆ |
3대 왓슨 ★★☆ |
4대 애시워스 ★ |
5대 맥퀸 ★ |
|
6대 패터슨 |
7대 케이 ★ |
8대 웰시 |
9대 테일러 |
10대 샹클리 ( 샹클리 체제) ★★★☆ ★★★ |
|
11대 페이즐리 ( 페이즐리 체제) ★★★★★★ ★★★★★★★★ |
12대 페이건 ( 페이건 체제) ★★★ |
13대 달글리시 ( 달글리시 체제(1기)) ★★★ ★★ |
14대(대행) 모란 ( 모란 체제) |
15대 수네스 ( 수네스 체제) ★ |
|
16대 에반스 ( 에반스 체제) ★ |
16&17대 에반스& 울리에 ( 에반스&울리에 체제) |
17대 울리에 ( 울리에 체제) ★★★★★ |
18대 베니테스 ( 베니테스 체제) ★★★ |
19대 호지슨 ( 호지슨 체제) |
|
20대 달글리시 ( 달글리시 체제(2기)) ★ |
21대 로저스 ( 로저스 체제) |
22대 클롭 ( 클롭 체제) ★★★★ ★★★ |
23대 슬롯 ( 슬롯 체제) |
||
★
프리미어 리그 / ★
FA컵 / ★
EFL컵 / ☆
EFL 챔피언십 ★ UEFA 챔피언스 리그 / ★ UEFA 유로파 리그 / ★ UEFA 슈퍼컵 / ★ FIFA 클럽 월드컵 |
[[로이 호지슨| |
|
제19대 감독 로이 호지슨 |
|
<colbgcolor=#d00027><colcolor=#fff> 감독 |
[[스코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로이 호지슨 / 제19대 감독 |
코치 |
[[스코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스티브 클라크 (수석 코치)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새미 리 (수석 코치) [[스코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케빈 킨 (수석 코치)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마이크 켈리 (골키퍼 코치)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대런 버지스 (컨디셔닝 코치)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조던 밀섬 (컨디셔닝 코치)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마크 헐스 (피트니스 코치) |
주장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스티븐 제라드 / 제47대 주장 (2003~2015) |
계약 기간 |
2010년
7월 1일 ~
2011년
1월 7일 (6개월/ 191일) |
계약 종료 (성적 부진에 따른 상호 협약 해지) | |
연봉 | 미상 |
전술 스타일 |
킥 앤 러시 기반의 속공 축구 ┗ 4-4-2 포메이션 ┗ 롱 볼 플레이를 통한 속공 |
역대 전적 | 31경기 13승 8무 10패 (승률 41.9%) |
우승 경력 | - |
[clearfix]
1. 개요
리버풀 FC의 제19대 감독 로이 호지슨 체제를 정리한 문서.2. 감독 선임 과정
조지 질레트 주니어, 톰 힉스 구단주의 횡포에 의해 어려움을 겪은 라파엘 베니테스가 결국 성적 부진으로 팀을 떠난 후, 리버풀 FC은 새로운 감독 후보군에 로이 호지슨, 케니 달글리시, 마누엘 펠레그리니를 올려놓게 되었다. 당시 팬들은 구단의 레전드인 달글리시를 원했고, 당시 리버풀 FC 아카데미에서 일하고 있던 달글리시 또한 감독직을 원하여 자신이 팀을 맡을 것을 구단 수뇌부에 건의했지만 팬들의 바람과 본인의 의사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은 호지슨을 감독으로 선택했다.당시 리버풀이 호지슨을 선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달글리시는 셀틱 FC에서 임시 감독을 맡은 이후 감독직에서 오래간 멀어져있던 상황이었고, 펠레그리니는 직전 시즌 레알 마드리드에서 실패하여 빅클럽 감독으로서의 역량에 의문부호가 달려있었다. 반면 호지슨은 국내외에서 오랜기간 다양한 경험을 쌓은 자국 베테랑 감독으로 명망이 높았고, 2007년부터는 풀럼 FC의 지휘봉을 잡아 2부 리그 강등 위기에 몰린 풀럼을 극적으로 잔류시킨 감독이었다. 심지어 잔류에 성공한 그 다음 시즌엔 풀럼을 이끌고 리그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2009-10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준우승을 일궈내기도 하는 등 최근의 성과도 주목받고 있었다. 이에 호지슨의 선임은 당시 위기 상황에 처해있던 리버풀에 숙련된 리더십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리버풀은 풀럼에 보상금을 지급했고, 결국 2010년 7월에 호지슨이 리버풀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주장단 스티븐 제라드, 제이미 캐러거는 베테랑 감독 호지슨의 부임을 환영하며 지지를 보냈고, 호지슨은 부임하자마자 언론 인터뷰를 통해 팀을 결집시켜 나아가겠다며 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3. 연혁
3.1. 2010-11 시즌
자세한 내용은 리버풀 FC/2010-11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호지슨은 알짜배기 영입을 노리며 다양한 선수들을 수급했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결국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되자, 그 전에 유벤투스로부터 크리스티안 폴센을 영입하여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미리 대체했고, 왼쪽 풀백 잔혹사를 끝내주리라 기대하며 풀럼에서 잘 써먹은 폴 콘체스키를 데려왔다. 또한 요시 베나윤을 첼시 FC로 이적시키고 자유 계약으로 빅 네임인 조 콜을 데려오며 공격진의 무게감을 더했다. 알베르토 아퀼라니도 임대로 팀을 떠났지만 FC 포르투로부터 하울 메이렐레스를 영입하여 중원이 보강되었다. 대니 워드, 존조 셸비와 같은 유망주도 영입되었다. 그리고 팀을 떠날 것이 우려되었던 스티븐 제라드와 페르난도 토레스가 모두 잔류하면서 새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된 이후, 호지슨호의 이적생들은 하울 메이렐레스를 제외하면 모조리 기대 이하의 활약만을 보였고, 팀의 추락이 시작되었다. 폴센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며 전반기 내내 암울한 폼을 보여줬고, 팬들의 기대를 받았던 콜 또한 이름 값에 맞지 않는 부진한 모습으로 일관했다.[1] 또한 콘체스키는 시종일관 공수에서 모두 수준 이하의 역량만을 보이며 최악의 영입생이 되었다.
이에 리버풀은 1라운드부터 비기며 10위로 리그를 시작했고 이후 계속해서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6라운드까지 중하위권을 전전, 7라운드부터는 연패를 거듭하며 8라운드가 끝난 시점에는 리그 19위로까지 추락하는 전례없는 부진을 보여줬다.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 클럽이 강등권으로 떨어지는, 프리미어 리그 시대 개막 이후 시작된 리버풀의 암흑기 최악의 순간이었다. 이후엔 연승을 구가하며 다행이 중위권으로 올라섰지만, 호지슨은 계속해서 역량의 부족을 노출했고 중반기를 지나는 내내 8~12위 권에 머무르며 최악의 행보를 보였다. 결국 20라운드 블랙번 로버스에게 3-1로 패배하며 경질[2]되는 시점의 리그 성적은 12위. 20라운드까지 7승 4무 9패의 끔찍한 성적이었다.
유로파 리그에서는 3차 예선과 플레이오프 라운드 경기들을 모두 잡아내며 조별 예선에 진출했다. 이후 이어진 조별 예선에서도 무패를 달렸으나, 실질적인 경기력에서는 답답함이 이어지며 2승 4무로 1위를 확정지었다. 리그컵에서는 3라운드부터 4부 리그의 노스햄튼 타운 FC을 만났으나 졸전을 벌이며 홈에서 2-2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패배해 충격적인 탈락을 보였다.[3]
시즌이 진행되던 중 팀을 드디어 인수하게 된 펜웨이 스포츠 그룹은 달글리시의 부임 제안과 팬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일단 호지슨을 믿고 박싱 데이에 돌입했으나, 시종일관 수준 이하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리그컵에서의 충격패와 더불어 리그에서 최악의 부진을 지속하던 호지슨을 결국 1월 7일자로 상호 협약 해지를 통해 사실상 경질했다.[4] 이후 팬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있던 케니 달글리시가 다시금 소방수로 부임하게 되었다.
케니 달글리시 2기 체제에 대한 내용은 리버풀 FC/달글리시 2기 체제 문서 참고하십시오.
4. 공격 포인트 순위
5. 시즌별 주요 성적
로이 호지슨의 시즌별 주요 성적 |
||||||||||
시즌 | 리그 | FA | EFL | CS | UCL | UEL | USC | ICC | 감독 | |
2010-11 시즌[5] | 12위 | - | 3R | - | - | 조별예선 1위 | - | - |
로이 호지슨 ↓ 케니 달글리시 |
6. 평가
리버풀 FC의 21세기 암흑기를 상징하는 감독이자, 라파엘 베니테스가 이룩한 중흥기를 박살내며 팀을 강등권인 19위로까지 추락시킨 전례 없는 무능함을 선보인 구단 역사상 최악의 감독 중 하나다. 2010-11 시즌 전반기 동안 단 31경기만을 지휘했으나 리그 노스웨스트 더비와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모두 패배하고, 중하위권 팀들에게도 압도당하는 등 그야말로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며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모조리 써내렸다. 심지어 리그컵 3R에서 구단 역사상 최초로 4부 리그 팀에게 패배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호지슨은 당시 리버풀에 페르난도 토레스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스트라이커 자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6] 4-4-2 기반의 투톱 축구를 고집했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부상에 시달리던 토레스의 회복 및 관리를 고려하지 않은 채 토레스를 톱에 두고 속공 축구만을 구사해 의미 없는 공격만을 답습하는 무능을 보였다. 또한 선제 득점을 하면 수비에 일관하여 잠그기 전술을 구사하는 등 빅클럽에 전혀 맞지 않는 중하위권식 축구를 구사하며 답답함을 유발했다.
여기에 더하여 베니테스가 이식한 대륙 기반의 패스 플레이를 완전히 버리고 후방에서의 패스 기반 빌드업 체계를 완전히 없앴으며, 전방으로 롱볼을 때리는 축구만을 구사했다. 이에 센터백은 비교적 투박한 제이미 캐러거와 마르틴 슈크르텔[7]로 구성되었고, 패스 역량을 갖춘 다니엘 아게르는 레프트백으로 기용되었다.[8] 스위퍼 키퍼로서의 능력을 갖춘 페페 레이나 또한 그저 보수적으로 기용했다. 또한 선수 기용에 고집을 보여 당시 떠오르던 수비수 유망주 마틴 켈리[9]는 제대로 써보지도 않았다.[10]
또한 이적 시장에서도 최악의 행보를 보이며 팀의 리빌딩에도 대실패했다. 2010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리버풀은 스티븐 제라드와 토레스를 붙잡기는 했으나, 결국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까지 떠나보내며 스쿼드 곳곳에 부족함이 보이던 상태였다. 그러나 호지슨은 기량이 떨어진 선수거나 제대로 활약할 수 없는 수준의 선수들에 도박수를 걸며 최악의 영입을 선보였다. 크리스티안 폴센은 완전히 전성기가 끝나 유벤투스 FC에서 기량 하락이 이뤄지고 있던 선수였고, 폴 콘체스키는 이후에 영입되는 알리 시소코, 알베르토 모레노와 함께[11] 리버풀 역대 최악의 레프트백으로 꼽히며 리버풀 레프트백 잔혹사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조 콜은 첼시 FC 시절부터 계속된 큰 부상으로 전성기 때의 폼을 잃어버리며 부진을 거듭했다. 그나마 하울 메이렐레스가 제 포지션이 아닌 오른쪽 윙에서도 제 몫을 해주는 활약을 했다.[12]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지슨은 콘체스키와 폴센을 주야장천 기용하였고, 리버풀은 제대로 성적을 낼 수 없었다. 영입한 선수들의 수준부터 기용까지 모든 면에서 문제가 많았고, 결국 케니 달글리시 체제로 바뀐 이후 대부분의 선수들이 정리되었다.
종합하자면 이견의 여지가 없는 21세기 리버풀 역사상 최악의 감독이다. 단 반 시즌 가량 팀을 지휘했지만 최악의 이적 시장, 최악의 경기력, 최악의 리그 순위를 기록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리버풀을 반등시킬 수 있다며 근거 없는 자신감만을 내비치다 팬들의 엄청난 원성만을 샀던 인물이다. 실제로 리버풀의 서포터즈 단체들은 호지슨의 만행을 참다 못해 경질하라는 시위를 벌였으며, 경기 중에 달글리시의 이름을 연호하며 감독 교체 압박을 넣기도 했다. 물론 조지 질레트 주니어, 톰 힉스 구단주 체제에서 선임되었기에 별 다른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호지슨은 그러한 고려조차 필요 없는 성적으로 자신의 무능력함을 증명했으며, 이후 중하위권 클럽들에서는 다시 반등한 것을 보아 빅클럽 레벨에서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던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그나마 리버풀은 호지슨 체제에서 펜웨이 스포츠 그룹에 인수되며 끔찍했던 사상 최악의 구단주를 뒤로하고 새로운 시대를 개막하는 기념비적인 시기를 보내기는 했다.
[1]
리그 1라운드
아스날 FC전부터 퇴장을 당하며 끔찍한 모습을 보여줬다.
[2]
실질적으로는 상호 협약 해지였지만 경질에 가까웠다.
[3]
리버풀 역사상 4부 리그 팀에게 패배한 것은 최초의 일이었다.
[4]
리버풀은 전통적으로 감독을 대놓고 경질한 역사가 없었으며 항상 상호 협약 해지를 통해 감독을 떠나보내왔다.
[5]
해임 당시 성적
[6]
다비드 은고그와
디르크 카윗, 밀란 요바노비치가 공격수로 뛸 수는 있었으나 은고그와 카윗은 모두 결정력 부족으로 윙포워드로 기용되던 자원이었고, 요바노비치도 카윗과 비슷한 유형이었다.
[7]
심지어 슈크르텔은 지난 시즌부터 파트너에 따라 기복이 심해 불안정한 경기력을 구가하던 중이었다.
[8]
이에 아게르는 "호지슨의 전술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난 공을 갖고 있는 걸 좋아한다. 잦은 롱패스는 싫다."라며 후에 이를 언급했다. 결국 부상으로 인해 레프트백으로도 아게르를 오래 기용하지 못했다.
[9]
전 시즌에 라이트백으로도 뛰었지만 주 포지션은 센터백이었다.
조 고메즈와 비슷한 케이스. 리버풀을 떠난 후에는 라이트백으로 거의 고정되었다.
[10]
호지슨을 대신해 소방수로 부임한
케니 달글리시는 존슨을 좌측 풀백으로 기용하고 켈리를 라이트백으로 기용하며 반등을 이끌었다.
[11]
사실 모레노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5시즌이나 뛰었다. 시소코는 임대로 한 시즌, 콘체스키는 아예 반 시즌밖에 뛰지도 못 한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 모레노는 이 두 선수보다는 나은 편이긴 하다.
[12]
메이렐레스는
케니 달글리시 체제에서 제라드, 루카스와 함께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더 좋은 활약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