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
|
|||||||||||||||||||||||||||||||||||||||||
|
<colbgcolor=#000><colcolor=#fff> 로니 제임스 디오 Ronnie James Dio |
|
|
|
본명 |
로널드 제임스 파다보나 Ronald James Padavona |
출생 | 1942년 7월 10일 |
미국 뉴햄프셔주 포츠머스 | |
사망 | 2010년 5월 16일 (향년 68세) |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
학력 | 버팔로 대학교 ( 약학 / 중퇴) |
장르 | 하드 록, 헤비메탈, 블루스 록 |
악기 | 보컬, 베이스 기타, 건반 악기 |
소속 |
엘프 (1967~1975) 레인보우 (1975~79) 블랙 사바스 (1979~82, 1991, 1991~92, 2006~10) 디오 (1982~91, 1993~2010) 헤븐 & 헬 (2006~10) |
활동 | 1957년 ~ 2010년 |
신장 | 163cm |
배우자 |
로레타 베라르디 (1963년 ~ 1973년, 이혼) 웬디 월터스 (1978년 결혼) |
자녀 | 1명 (입양) |
종교 | 무종교( 불가지론) |
링크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전설적인 록/메탈 뮤지션.[1] 커리어 내내 스케일을 벗어나는 수준의 압도적인 실력과 암 투병 중에도 앨범을 내거나 라이브 공연을 하는 등의 열정을 보이며 헤비 메탈, 하드 록 사상 최고의 뮤지션이자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하였다.
서구권에서는 영국의 아이언 메이든과 더불어 파워메탈의 뿌리격 되는 인물로 본다.[2]
그의 대표작은 Holy Diver.
2. 상세
본명은 로널드 제임스 파다보나(Ronald James Padavona)로, 미국 뉴 햄프셔에 정착한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사족으로 그의 집안은 독실한 가톨릭 성향이었지만, 디오는 이것을 불편해했다고 한다.[3]1942년생으로 보는게 합리적이지만, 후술되어있듯 메탈계에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입문한 것도 있고 해서 한창 활동할 당시인 1980년대 초반까지도 1949년생으로 활동했다. 허나 디오가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처음 낸 7인치 싱글이 1958년에 나왔고, 196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1942년생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여타 설을 그대로 따르면 디오는 11세 혹은 30대 중반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말이 된다.
음악 경력은 트럼펫 연주자로 스타트를 끊었으나 곧 가수로 전향, 엘프의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다가 리치 블랙모어의 눈에 띄어 레인보우의 초대 보컬리스트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그 후 블랙 사바스를 거쳐 자신의 밴드 ' 디오'를 만들어 활동. 2007년에는 블랙 사바스 시절의 오리지널 멤버와 헤븐 앤 헬이라는 밴드를 재결성했으며, 2009년 신보를 내고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했다.
자신의 예명이자 자신이 이끌었던 밴드의 이름인 '디오'는 이탈리아어로 '신'을 의미하며, 실제로 그는 1970~80년대의 전성기 시절 락/메탈 씬의 본좌급 보컬리스트로 군림해 왔으며 많은 락 뮤지션들의 존경을 받았다. 지금도 레전드 락커로 명성이 있기에 그의 곡은 많은 락/메탈 뮤지션들 사이에서 리메이크되고 있다.
보면 록 음악의 역사를 그대로 밟아 온 인물이기도 하다. 워낙에 활동을 일찍 시작한 탓에 젊었을 때는 R&B와 두왑, 로큰롤 성향의 음악을 했었고, 시대가 바뀌자 "비트 밴드"라고 불리기도 하는 머시 비트 사운드로 진화했으며 사이키델릭의 시대가 오자 사이키델릭 성향의 음악을 했다. 데뷔가 50년대 후반이지만 록 스타가 된 건 사실상 70년대가 다 되어서의 이야기. 그만큼 인고의 세월도 오래 견딘 뮤지션인 것.
출생년도가 두 가지로 알려진 것도 사실 다른 장르를 하다가 록으로 전향한 터라[4],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인 20세기 말까지도 대중 어필용으로 나이 속이기가 횡행됐던 연예계에서 실제 나이인 1942년생으로 활동하기는 꽤나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하여튼 유명해지기 시작한 레인보우 시절에도 1945년생인 리더 리치 블랙모어보다 나이가 적은 1949년생으로 활동했고, 블랙 사바스 시절에도 1948년생인 토니 아이오미보다 적은 1949년으로 꿋꿋이 밀고 나갔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자신의 밴드 디오가 유명해지면서 헤비메탈 보컬의 1인자 자리에 오르고, 그러고도 한참 뒤부터 1942년생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메탈 팬들에겐 충격과 공포(?)의 60년대 디오
1965년작. 훨씬 원숙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역시 1965년작. 퍼즈톤의 기타를 쓴 '비트 밴드' 느낌의 곡.
1967년작
Elf의 'Hoochie Koochie Lady'(1972년작) 이때까지는 블루스 록 밴드로서의 엘프 음악을 느낄 수 있다.
Elf의 'Crosseyed Mary'(1972년 라이브)[5]
사생활도 깨끗하고 매너도 좋아서, 문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생활이나 술, 마약 등으로 인한 가십거리가 비교적 흔한 락 씬에서 그는 농반진반 ' 성직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사회적 활동도 해서, 1980년대 한창 활동할 당시 그의 주도로 만든 프로젝트 그룹 'Hear 'n Aid'는 이른바 헤비메탈판 'USA for Africa' 프로젝트로 불렸다. 이때 번 음반의 수익금은 전부 아프리카의 기아 구제 성금으로 사용되었다.
3. 보컬
[6]
롭 핼포드를 카피하는 것은 매우 굉장한 일이다.
브루스 디킨슨을 카피하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나 로니 제임스 디오를 카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세바스찬 바흐[7][8]
세바스찬 바흐[7][8]
이안 길런, 로버트 플랜트, 롭 핼포드등과 함께 헤비메탈 보컬의 지존으로 평가받는다. 풍부한 성량과 힘 있고 육중한 음색, 센스 있는 표현력은 발군. 앞서 언급된 요소들을 조화한 특유의 순발력 넘치는 보컬은 음을 줄넘기처럼 뛰어넘듯 변화무쌍하게 움직인다. 그의 기교와 스타일을 직접 잇는다고 할 수 있는 보컬리스트들을 찾기 힘든데,[9]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독보적인 존재였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도 있다.[10]
전성기의 보컬도 보컬이지만[11], 60세를 훌쩍 넘기면서도 목소리의 힘이 달리지 않는 완숙한 창법으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활발하게 현역으로 활동했다. 85년 일본 라이브 영상을 보면 관객을 항해 대화 하듯이 말할 때와 노래할 때의 성량이 한마디로 넘사벽이다. 이미 40이 훌쩍 넘은 시절인데 기타는 기본이고 하이라이트 파트에서는 드럼까지 안드로메다로 보내는 가공할 성량을 보여준다. 음역이 완전히 다른 배이스 정도를 빼고는 로니가 작정하면 무대를 모조리 본인 목소리로 채울 수 있다. 아직 그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할 만한 보컬이 보이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다. 게다가 디오는 공연 전반부와 후반부 차이가 거의 없다. 세상 어려운 곡들을 세트리스트 마지막에 넣는 건 그게 밴드의 상징인 곡인 경우를 빼면 거의 볼 수 없는데, 이 분은 첫곡으로 때려도 쉽지 않은 Stand Up And Shout을 맨 뒤에 놓고 첫 곡 마냥 부르는 차력쇼를 밥먹듯이 보여준다.
사실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하면 떠올리는 찢어지는 고음이나 샤우트 등은 말년을 제외하고 그의 곡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로니 본인은 오히려 흉성 기반의 탄탄한 중고음역을 바탕으로 한 두터움과 묵직함으로 각인되는 보컬리스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벨팅을 토대로 판소리의 단련법과 흡사한 성대갈이 훈련을 한 거다. 다만 그렇게 파워만 대단했던 보컬이었다면 역사상 최고의 록 보컬이 되지도 못했을 터, 디오의 목소리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만한 것은 바로 강약조절과 전달력이다. 원래 벨팅 자체가 성대에 다소 힘을 줘 긴장시킨 상태로 발성하는 창법인만큼 힘을 쏟기엔 좋으나 세세한 감정의 컨트롤이 어렵고 특정 발음을 정확히 발음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 디오는 그런 문제점에서 거의 자유롭다시피 한데 심지어는 벨팅에 스크래치를 팍팍 걸어서 노래를 부르는데도 발음이 전혀 뭉개지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거기에 강약조절에 도가 터 힘을 강하게 줄 땐 주되 힘을 뺄 때는 빼는 것이 자유로워 노래가 살아 움직이는 듯 변화무쌍하다.
디오 본인은 젊었을 적 목소리가 너무 깨끗하고 음역이 좁아서 고민했다고 한다.[12] 그러다가 자신의 최대 장점이 성량이라는 점을 깨닫고 '디스토션 건 일렉기타'를 이길 만한 사운드를 목에서 뿜어내는 쪽으로 연습하였다고. 그러나 실제로 그의 전성기 시절 보컬(레인보우+밴드 DIO 초기)을 들어보면, 일반 남성들의 파사지오 영역에 해당하는 음들을 가공할 만한 후압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힘을 주어서 내는데[13], 이걸 따라하다보면 호흡이 딸려서 숨이 턱턱 차오르며 눈 앞이 노래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실 남성의 파사지오 영역이 일반적으로 F4에서부터 높으면 B4까지인데, 디오의 성종이 로우 테너 정도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일반인이 소리를 내는 게 힘든 구간은 아니다. 다만, 파사지오를 거친 하이 음역대(대략 C5, D5 이후의 초고음역대)보다도 파사지오에서 어마어마한 압력을 성대에 내는 게 더 빡세며, 애초에 파사지오의 극복이 발성의 크나큰 과제인 것을 생각해보자면 이 구간을 자유자재로 음 하나하나 컨트롤해가면서 부르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 작업인지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순간적으로 호흡을 뱉어내는 샤우팅처럼 한순간에 확 분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음색이 변해가는 구간에서 자기 목소리를 100% 내면서 고음 구간까지 똑같은 파워와 음색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다. 즉, 100m 달리기처럼 완전히 풀전력은 아니지만 400m 달리기에서 거의 풀전력을 계속 유지하면서 달리는 셈이다.[14] 성대 또한 근육이기에 한번에 땡겨주는 것보다 지속적으로 고음역대를 낼 때 성대에 피로가 확 몰려서 풀리기 쉽다. 그렇기에 단시간 최고음을 내는 것보다 이 부분이 훨씬 어렵다.
레인보우의 명곡 'Kill the King'의 경우 거의 고함을 지르는 수준의 샤우팅으로 G4~C5 구간을 거의 똑같은 압력으로 음을 짚는다. 경악스러운 건 쩔어주는 성량에도 불구하고 음 하나하나의 처리가 굉장히 깔끔하고[15] 표현조차 생생하다는 것. 다시 말해, 음에 파워를 일정하게 거는 수준이 아니라 거기에 소리의 입자를 풍부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 디오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것. 사실 디오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하고 자주 카피되는 'Holy Diver'은 디오의 곡 중 그나마 부르기 쉬운 거다. 레인보우 시절에 불렀던 'Stargazer'나 블랙 사바스 시절의 'Heaven and Hell', 동명 밴드 시절의 'Don't talk to strangers', 'We Rock' 'Rainbow In The Dark' 같은 곡들은 아예 파사지오와 3옥타브 이상의 음을 완벽하게 소화해낼 것을 고려해 설계된 정신 나간 곡들이다.
락커치곤 고음을 잘 못낸다는 인식이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디오의 노래를 들어보면 2옥타브 후반대의 음을 굉장히 여유롭게 올리고 그 음역대를 유지하는 게 전혀 힘이 안 드는 것처럼 들리는데, 이런 식으로 노래하기 위해선 3옥타브 대의 고음을 쉽게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중고음역대에서 음 하나하나를 강조하면서 파워를 계속 유지하는 차력쇼를 하는 괴물인데다, C5 이상의 고음이 많이 안나와서 그렇지 그의 노래도 상당히 음역대가 높은 편이다.[16] 많은 트레이너들이 보통 고음을 잘 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중고음역대의 정복이라 이야기한다.[17] 때문에 그런 음역대에서 40 넘은 나이에 차력쇼를 했던 디오에게 고음역이 약점이 되었다고는 볼 수 없으며, 본인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초고음역대를 뺀 것이다.
사실 고음을 포기했다고 보기도 뭐한 게, 2옥타브 시나 3옥타브 도 같은 음들은 곡의 최고음으로 한 번 찍을 때나 별로 높은 음이 아니지, 디오처럼 아예 그 음역대에서 주로 노는 건 고음으로 유명한 보컬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디오는 나이 40이 넘은 80년대 초중반까지 그 음역대를 무난히 소화했고, 80년대 후반부터 앨범은 괜찮았으나 라이브에선 고음부에서 파워가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으며, 50대가 된 90년대부터는 확실히 고음부가 전성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84년에 발매된 The Last In Line 앨범에서 부른 "We Rock"을 84년에 라이브로 부른 것과 2002년에 라이브로 부른 것을 비교해보자. 후렴구에서 "We rock!"이라고 파워있게 음을 유지하지 않고 한껏 낮춰 부르는 걸 확인할 수 있다. 93년 라이브에선 "We rock" 부분은 그대로 두고 "Sail on, sing a song, carry on" 부분을 낮춰 부른다. 물론 절대 오해는 말아야 할 것이, 디오는 93년 라이브에서 51세였고 02년 라이브 때는 60세였으며, 기량이 떨어진 저 상태에서의 라이브조차 굉장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워낙에 정신나간 난이도의 곡들이라 난이도를 조금씩 낮춰 부르는 거지, 나이 육십을 넘겨서도 저 곡을 저렇게 소화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사실 디오가 워낙 늦게 빛을 봐서 그렇지 위에서 저 미친 곡들을 풀파워로 부르는 84년 라이브 영상 당시 그는 42세로 관리 안하는 웬만한 보컬들은 이미 노화로 기량이 서서히 저하되기 시작할 나이였다. 사실 레인보우 시절과 비교한다면 저것도 살짝 저하된 것이다.
30대 중반 시절 보컬을 들어보면 고음을 포기했다는 말도 무색할 지경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1ssc26Sj2Y 레인보우 시절 부른 L.A. Connection이란 곡인데 첫 음부터 3옥타브 도가 튀어나와 노래 전체가 2옥타브 솔에서 3옥타브 도를 오가는 비상식적인 곡이다. 음색 때문에 별로 높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직접 불러보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디오 특유의 파워넘치는 발성을 감안하지 않아도 음역대만으로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실제로 이 곡은 전성기 당시에도 라이브할 때는 중간중간에 음을 낮추고 호흡을 아껴가며 불렀고 고음에서 약간 뭉개지는 걸 들을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jgQVO8eMno, 40대 이후 (레인보우 탈퇴 이후)에는 거의 부르지 않았다. 그만큼 천하의 디오에게도 소화하기 힘들었던 곡. 다만 이건 대형 공연장에서 부르는 콘서트 때 얘기고[18], 78년에 "Don Kirshner's Rock Concert"란 TV 프로그램에 나와 스튜디오에서 라이브 무대를 선보일 때는 그야말로 완벽한 보컬을 선보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biE0zdEKn5A[19]
의외로 말년에 이런 찢어지는 샤우트를 꽤 자주 보여줬는데, 그의 다양한 음악적 시도 중 하나로 보인다. 10초부터. 뒤의 둘은 녹음된 곡이다. 중간중간 소리주의.[20]
다른 락/메탈 보컬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커리어 내내 기량이 꾸준했다는 점과 라이브에서도 기복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락이나 메탈은 보컬의 한계까지 쥐어짠다는 특성상 성대 소모가 크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평소보다 못하는 무대도 많기 마련인데 디오는 성대 자체가 노화하는 50대 전까지는 목소리도 거의 변하지 않았고, 목소리가 조금 변한 이후에도 60대 후반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며 매우 완만한 하락세를 보였다.[21][22]
워낙 기본기가 좋고 하드웨어가 뛰어나다보니 말도 안되게 빡센 곡들을 공연 내내 소화하고도 힘이 넘칠 정도였다. 1985년 일본에서 했던 콘서트를 보면 당연히 '쉬어가는' 곡이 하나도 없는 세트리스트에도 끝까지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는데, 마지막 곡이 Stand Up and Shout란 곡이다. 이 곡은 디오 1집 1번 트랙으로서 템포가 빠를 뿐더러 가사의 밀도도 높고 음도 역동적으로 마구 왔다갔다하는데다 고음도 많아 엄청나게 부르기 빡센 곡이다[23] 그런데 한 시간 넘게 공연을 한 상태에서 이 빡센 곡을 전혀 지친 기색 없이, 그것도 쇼맨십까지 곁들여서 여유롭게 부르고 있다. 참고로 저때 그는 43세였다.
딥 퍼플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영상.
주종목인 헤비 메탈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임에도 노련한 솜씨를 볼 수 있다.
4. 투병과 사망
2009년 11월 25일, 그의 웹사이트에 위암 초기 진단을 받았으며 곧 항암 치료를 시작할 것이라는 안타까운 소식이 떴다. 그리고 결국 2010년 5월 16일 위암으로 사망했다.
오늘 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로니가 5월 16일 오전 7시 45분에 사망했습니다. 그가 눈을 감기 전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로니는 그가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알 거에요. 저희는 여러분의 성원에 정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며칠 시간을 갖겠습니다. 팬들에 대한, 그리고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 웬디 디오[24] - |
5. 디오의 대표곡
1980년 10월 17일 뉴욕 라이브 공연에서 "Neon Knights"을 열창 중.
Dio 시절 그의 대표곡 'Holy Diver'의 뮤직 비디오. 사실 1집 ' Holy Diver'와 2집 'Last in Line'이 너무 포스가 강했던 탓인지, 그의 이후 음반들은 다소 존재감이 약한 측면이 있다. 4집 정도까지 보통 전성기로 치는데, 이는 여타 밴드들도 초반 커리어에 비해 후반부가 처지는 경우가 많다.
사실 디오 본인의 작곡 능력은 대단히 뛰어난 편이었다. 밴드 디오의 전곡은 물론이고 레인보우 시절에도 거의 전곡을 리치 블랙무어와 함께 작곡했고, 사바스 시절에도 작곡에 적극 참여했다. 명곡 Stargazer나 Heaven & Hell 역시 디오가 공동작곡한 곡들.[25] 실제로 이 곡들은 밴드 디오 초창기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문제는 작곡 실력이 아니라 본인의 스타일이 너무나 또렷했고,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점. 80년 후반까지는 누구나 인정할만한 명반들을 찍어냈지만 디오 자체가 변화를 잘 하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90년대 들어선 이미 낡은 스타일이 되었고 50대에 접어든 디오의 음악적 역량이 예전에 비해 떨어진 것도 있어 이때부턴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진 못하게 된다. 사실 90년대 앨범들만 봐도 그리 못 만든 곡들도 아니고 보컬이 떨어지는 건 더더욱 아닌데, 80년대 앨범과 비슷한 열화판이 나오는 셈이니 평이 높을 수가 없다. 매너리즘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디오의 음악적 고집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26] 그의 행적을 보면 알겠지만 이 양반은 음악적 색깔이 뚜렷한데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실력까지 있어 자신이 몸담는 모든 밴드를 디오화시키는 인물이다.
참고로 'Holy Diver'의 뮤직비디오는 MTV가 선정한 역사상 최악의 뮤직비디오 1위에 랭크되기도 하는 불명예를 겪기도 했다. 허나 그게 다가 아니다. 그의 최고의 명곡 중 하나로 꼽히는 'Rainbow In The Dark'의 뮤직비디오 역시 20위권 안에 랭크되는 신급의 센스를 보여줬다.
보다시피 그의 중세풍 뮤직비디오 센스는 최악이다. 심하게 말하면 병맛까지 느껴질 정도. 헌데 또 묘하게도 그가 몸담았던 블랙 사바스, 그의 밴드인 DIO, 그리고 새 밴드 Heaven and Hell의 신보 'The Devil You Know'까지 그의 앨범들의 아트워크들은 대부분 아주 멋지다.
이런 괴리(?)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디오는 Dio의 모든 곡의 멜로디와 가사를 스스로 만드는 싱어송라이터로 유명하다. 가사를 자세히 들어보면 중세 영웅담 판타지스러운 내용이 많으며, 본인 스스로도 이런 주제를 매우 선호한다. 그가 리치 블랙모어와 사이가 벌어지고, 결국 레인보우를 떠나 블랙 사바스로 이적하게된 계기가 4집 이후 리치가 컨셉을 좀더 현대적인 걸로 하자는 주장에 대한 반발때문이었다.[27] 아트워크 역시 판타지의 느낌이 물씬 묻어나오는데, 이 취향을 뮤직 비디오까지 적용하니 적은 예산[28]+ 발연기 때문에 완성도가 많이 부족한 뭔가 병맛스러운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듯하다. 연출가로써의 역량까지는 갖추지 못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디오를 존경한 메탈 뮤지션들이 중세풍 뮤직비디오를 찍는 풍습이 생겼다...
참고로,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holy tiger라는 검색어를 넣어보면 이런 영상이 뜬다. Holy Diver와 록키 3의 주제가 Eye of the Tiger가 bpm차이가 좀 나서 그렇지 기타리프나 곡 진행이 많이 비슷해서 둘을 매쉬업해도 티가 안날 정도로 잘어울려서 이런 영상이 만들어지는 것. 참고로 Eye of the tiger가 먼저 발표된 곡이다.
레인보우 시절 커리어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Stargazer.
다른 멤버들의 기량도 마찬가지이지만, 보컬인 디오의 인외마경급 폭주를 들을 수 있다.
로니 제임스 디오 & 잉베이 말름스틴 - 에어로스미스의 'Dream On'
역사상 최강의 커버곡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원곡에는 있는 초고음 샤우팅을 안 올렸다는 점 정도.
레인보우 시절 발표한 레전드급 발라드 곡인 'Rainbow Eyes'.
헤비 메탈의 아이콘으로 각인되어 있는 디오이지만 이런 감성을 저미는 발라드를 표현하는 데에도 상당한 역량을 보이며 과연 정점에 도달한 보컬리스트임을 보여주고 있다.
여담으로, 이승철이 이 곡을 커버한 영상이 있는데 악성 억빠 팬덤이 많은 이승철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반응들이 "디오만 못하지만 이정도면 괜찮다."이다. 실제로 상당히 잘 소화해내기도 했다. 디오의 다른 유명한 발라드인 'Catch the Rainbow'를 커버했던 김경호는 아예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디오의 발라드 중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곡으로, 리치 블랙모어의 인상적인 기타 멜로디와 디오가 좋아하는 중세 판타지풍 테마가 잘 어우러진 명곡이다. 신해철이 특히 좋아했던 곡으로 알려져있다. 이 곡에서 디오가 정말 대단한 점을 꼽자면 무척이나 호흡을 세밀하게 조절한다는 것. 이 노래가 결코 낮은 노래가 아님에도 풍성함을 유지한 채로 능수능란하게 강약을 조절하는 걸 듣자면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블랙 사바스 시절 첫 번째 앨범의 타이틀 'Heaven and Hell'
매우 인상적인 도입부의 기타 리프가 특징으로, 상당한 명곡으로 평가받는다. 비록 오지 오스본이 없었지만 블랙 사바스의 곡 중에서 명곡으로 꼽히며 장르를 통틀어서도 매우 고평가를 받는 곡이다. 정홍일을 비롯한 후배 가수들이 심심하면 커버하는 곡이기도 하다.
위에서 소개된 헤븐 & 헬의 타이틀곡 'Atom & Evil'.
2002년 앨범 타이틀곡 'Push' MV 잭 블랙의 터네이셔스 D가 찬조출연.
그의 마지막 레코딩곡(2010) 중 하나인 'Metal Will Never Die'. 이 곡에서도 그의 열정이 느껴지는데, 자칫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샤우트를 간간히 날려주면서 그 전보다도 더욱 중후해지고 연륜이 느껴지는 보컬을 들려준다.
6. 여담
-
락의 상징이 된 로큰롤 사인(Rock & Roll Sign)으로 불리는 유명한 손 모양의 원조로도 알려져 있다. 디오가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배웠다는, 악마의 눈을 찔러서 쫓아내는 손동작이라고 한다. 락이나 메탈이 안티들에게 '악마의 음악'이라고 까이기도 하는 걸 생각해볼 때, 락/메탈의 상징이 이런 의미라는 건 좀 아이러니. Sign of the horns 항목도 참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최소한 디오는 액땜으로 사용한 게 맞다. 메탈룰스닷컴과의 인터뷰를 참고해보면 유래에 대한 디오의 입장을 알 수 있다. 우습게도 보수 기독단체에서 이 손동작을 악마의 뿔이라고 지칭하며 이 손동작을 사용하는 모든 뮤지션들을 사탄의 추종자라는 식으로 매도했다. 그 기원이 위와 같이 할머니가 손주에게 전해준 구수한 사연이 있는 것임을 알고나 그런 것인지.
- 토니 아이오미나 비니 어피스 등 동료들에 따르면 공연 전에는 특별히 보컬 워밍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와인이나 맥주 한 잔에 심지어 담배 피우고 있다가 곧바로 공연을 시작하곤 했음에도 라이브에서 엄청난 성량을 보여줬으니 참으로 대단한 재능이라고 하겠다. 담배를 피웠다는 것이 의외일 수도 있는데, 당장 레인보우의 유명한 라이브인 1977 Rockpalast 공연만 보더라도 앵콜곡인 Do You Close Your Eyes를 할 때 중간에 뒤에서 담배를 피다가 손에 담배를 든 상태 그대로 나와서 입으로 도넛을 만들어가며 노래를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Hear N' Aid의 메이킹 필름에서도 스튜디오 안에서 담배를 피는 모습이 나온다. 2000년대 초반에 로니와 함께 했던 기타리스트 덕 앨드리치[29]는 로니가 처음 곡을 만들 때는 작은 방에 베이스기타와 담배 한갑 들고 들어가서 하루 종일 틀어박혀서 아이디어를 구상하곤 한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상기했듯 디오도 깨끗한 본인의 목소리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고 하니 당시 보컬들이 걸걸한 목소리를 가지기 위해 담배를 피는 경우도 있긴 했다지만, 사실 현대 발성학에서 권장되는 사항은 아니긴 하다.[30][31]
- 터네이셔스 D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듯. 터네이셔스 D가 그의 뮤직비디오에 카메오로 참여했으며, 디오 본인도 그들의 영화 《 터네이셔스 D》에 카메오로 참여했다. 영화 초반부에 어린 잭 블랙이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나서 디오의 포스터에 조언을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포스터 안의 디오가 정말 살아나서 아버지에게 벗어나 헐리우드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라고 명한다. 실제로 디오는 잭 블랙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으며, 터네이셔스 D의 곡 중 "Dio"는 그에게 바치는 곡이라고.
-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등장인물인 디오 브란도( DIO)는 이 사람의 이름을 모티브로 삼았다.
- Band Aid와 We Are the World 등의 프로젝트에 감명받아 "Hear n Aid"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만들어 ' Stars'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다. 1980년대 헤비메탈/ 하드록의 계보도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멤버들을 끌어모아 만든 곡.
- 2014년에는 메탈리카, 앤스랙스, 모터헤드,[32] 터네이셔스 D, 스콜피온즈, 롭 헬포드, 슬립낫, 스톤 사워의 코리 테일러, 헤일스톰, 킬스위치 인게이지, 도로 페스치[33], 마이크 포트노이가 있었던 아드레날린 몹, 딥 퍼플의 글렌 휴즈, 레인보우와 DIO 활동을 같이 했던 지미 베인, 헤이트브리드의 제이미 자스타 등 위에서 나온 hear n aid 수준의 쟁쟁한 밴드들과 메탈 보컬리스트들이 대거 참여한 트리뷰트 앨범이 발매되었다. 디오의 미공개 곡도 포함되어 있어 그 이름에 걸맞은 후덜덜한 앨범이다. 다만 샤우팅에선 디오를 능가하던 롭 헬포드가 이젠 고음을 전성기만큼 내지 못해서 그 부분이 아쉽다는 평이 많다.
- 2019년 홀로그램 라이브로 잠시나마 팬들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기사가 떴다. #
-
프런트맨으로써 너무 늦게 하드록씬에 들어왔고, 40살에 와서야 온 전성기를 남의 밴드 객원 보컬 신세로 지내서 그런 건지, 밴드보단 보컬이 부각돼서 그런 건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명성과 경력, 실력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상복이 없다. 그 정도 나이대면 아직 세분화 되기 전이라 한번쯤 올랐을 법한
빌보드 1위나
그래미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디오가 하는 장르를 위해 존재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얼터너티브나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 차트에조차 1위를 먹은 적이 없는데다가 심지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조차 아직 오르지 못했을 정도.
이는, 로니가 하드록,메탈씬에서 가진 정체성이 워낙 북미시장에서 마이너한 것이 크다. 이는 북미에서 주다스 프리스트,아이언 메이든[34] 같은 NWOBHM[35],유러피안 메탈의 거장들이 미국에서 받는 대접과도 비슷한데, 미국의 하드록,메탈씬에서는 이들 유럽의 거장 밴드들이 매우 저평가받고 있으며, 디오는 미국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영국 밴드에서 활동하며 영국의 하드록,메탈을 했기 때문에 미국인이라는 존재감이 매우 희박하다. 위에서 객원보컬이라고 표현했고 1집 앨범 이름 자체가 '리치 블랙무어의 레인보우'일 정도로 당시 이미 메이저 스타였던 블랙무어의 존재감이 크긴 했지만, 사실 3집까지 총 3곡을 제외한 전곡이 디오, 블랙무어 공동 작곡이었으며 3집은 전부 디오가 작사했다. 특히 1집의 경우 블랙무어/디오가 공동 프로듀싱했다. (2집부터는 마틴 버치가 담당) 그만큼 인지도가 더 높았던 블랙무어를 앞세웠을 뿐 비중은 둘이 동등하게 컸고, 엘프 멤버들은 전부 잘렸으나 디오는 아무리 블랙무어라도 함부로 자를만한 인물이 아니었고 스스로 탈퇴를 선택했었다.
어쨌든 당시 블랙무어와 디오 간 갈등의 원인이 블랙무어가 '검과 마법'같은 판타지 테마를 버리고 좀 더 대중적인 방향의 앨범을 만들고 싶어했기 때문인데, 실제로 레인보우는 디오 탈퇴 이후 경쾌한 멜로디와 간단하게 따라부를 수 있는 'Since You Been Gone'이나 "I surrender" 등 대중적인 곡들을 발표하며 전성기를 누린다. 반면 디오는 본인 취향인 마법, 판타지 등의 테마를 디오 밴드 시절에도 적용시켰기에[36],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도 대중적인 인기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디오 본인부터 선호하는 스타일이 뚜렷하고, 당시 유행하는 스타일이나[37] 대중의 기호에 맞춘 음악 스타일이 아닌 본인만의 음악세계를 고집하기에 확고한 매니아 층이 존재하고 실력 자체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지만, 그만큼 대중적 인기는 떨어질 수 밖에 었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곡인 Holy Diver가 대표적인데, 이 곡은 현재 누구나 인정하는 하드록의 명곡 중 하나이지만 당시엔 빌보드의 메인차트도 아닌 메인스트림 록 차트에서도 40위에 오르는데 그쳤다.
사실 디오 뿐 아니라 밴드멤버들도 저명한 뮤지션들이었고 퀄리티는 쩔다보니 1,2집 모두 플래티넘 인증을 받을 정도로 앨범 자체는 꽤나 많이 팔린 편이다. 80년대엔 락 음악의 팬층도 현재보다 훨씬 탄탄했고 매니아 층도 확고한 편이었고. 그러나 다른 밴드들처럼 전세계를 뒤흔드는 인기곡은 없었다. 한마디로 본인의 색깔이 너무나도 확고했는데 그 색이 딱히 대중적인 편이 아니다보니 대외적인 영향력에서 한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인기와 별개로 디오의 색은 중저음 보컬과 파워 메탈에게 남긴 거대한 유산이 되어 위상을 확고히 했다. 위 문단의 포인트는 디오가 대중적인 인기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지, 디오의 음악성이나 실력을 진지하게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대중적인 인기를 떠나 후배 뮤지션들의 엄청난 추앙과 평단의 인정을 받고 있는 위대한 보컬리스트이다.
- 평상 시 목소리와 노래를 부를 때의 목소리가 전혀 다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목소리는 그냥 동네 아저씨같은데 노래만 부르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의심스러운 파워를 보여준다.
- 은근 성종에 대한 말이 많다. 주로 구사한 음역이 그다지 고음은 아니란 점에서 로우 테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초창기 목소리들은 고음을 무척 깔끔하고 단단히 구사했다고 주장하면서[38] 못해도 미들 테너급은 된다고 한다.
-
디오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 코틀랜드 시티에 디오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일명 'Dio Way'
* 불가리아 카바르나에는 디오의 동상이 있다. 카바르나 시장이 오랜 디오의 팬이었으며 디오도 불가리아 카바르나에서 공연을 자주했고, 특히 1998년 발생한 의료역사상 최악의 병원감염 사건중 하나인 리비아 벵가지소재 엘파티흐 어린이 병원 집단 HIV 혈액 수혈사건때 현장에서 활동했던 불가리아 출신 간호사 5명[39]에 대한 구명운동에도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 미국의 한 오페라 가수는 Stargazer 분석 영상에서 디오의 보컬을 리뷰하며 "모든 오페라 가수들은 디오를 들으면서 뭔가 배울 수 있다(Every single opera singer could learn from just listening to Dio.)"라고 하기도 했는데, 이 영상에서 디오가 얼마나 테크닉적으로 완벽한 동시에 엄청나게 뛰어난 표현력을 지녔는지를 짚고 있다. 이 가수는 2021년에 첫 영상을 올리기 전까지 디오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디오의 팬이 되었는지 이후 디오의 비디오만 5개를 올리고(같은 기간 쥬다스 프리스트는 2개를 올렸다) Holy Diver가 팬투표로 선정되어 리뷰하기로 되어있었음에도 따로 Gates of Babylon 리뷰 영상을 올리면서 "그의 신같은 목소리(God-like voice)"라고 하는 등 디오를 무한찬양하는 모습을 보였다. 디오가 60대에 부른 Don't Talk To Stranger 리뷰 비디오에선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가수들이 디오의 보컬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1]
영국 밴드인
블랙 사바스와
레인보우를 거쳤고 NWOBHM가 태동하고 전성기를 맞이할 때 이름을 드높였던 인물이라 으레 영국 출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상당히 많으나 실은 미국 출생인 인물이다. 아무래도 평소 어투에 영국 느낌의 억양이 살짝 묻어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는 영국 억양이 아닌 뉴욕/뉴져지 토박이 특유의 발음이다. 단어 끝의 R을 희미하게 발음한다던지. R탈락 현상과 메리를 마리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 커피를 코피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은 전형적인 뉴욕 사투리이지만 디오가 워낙에 말을 조용조용하게 하는 성격이고 한국에선 뉴욕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은지라 이런 혼란이 온 것. 보통 많이들 알려진 뉴욕 사투리는 뉴욕 출신인 두 명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가 구사하는 말투인데, 이 둘은 갱스터 연기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 이 말투 자체가 미국 대중들 사이에서 갱스터식 말투로 오인받기도 한다. 참고로 미국의 표준어에 가까운 얌전한(?) 발음은 중서부식 발음이며, 뉴욕 사투리는 상당히 투박한 편이다.
조 페시의 툭툭 던지는 말투 역시 전형적인 뉴욕 말투인데, 우연에 가깝게도 페시, 드 니로, 파치노 모두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인지라 이 발음 자체가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쓰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어디까지나 뉴욕 지방에서 쓰는 사투리이다.
[2]
디오는 파워메탈의 스테레오 타입인 판타지 서사와 이미지의 차용을 본격적으로 시도했고, 스피드와 멜로디의 훅이 강조된 메탈 넘버가 각 앨범마다 꼭 한곡씩은 삽입되었으며, 키보드의 비중 역시 높았다.
[3]
훗날
인터뷰에서 종교를 딱히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 보통의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 "그것은 현생을 사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천국으로 만들 수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4]
사실 정확히 말하면 디오가 데뷔할 당시엔 아예 지금 우리가 아는 하드록이나 헤비 메탈이란 장르 자체가 없었다. 하드록의 시초를 보통 60년대 초반, 성장기를 60년대 중후반 이후로 보는데 디오는
1957년부터 가수 생활을 하던 사람이다. 게다가 하드록의 거의 조상격인
지미 헨드릭스와 동갑이며 음악경력만 따지면 오히려 선배격이다. 즉, 다른 장르로 전향했다기보단 초창기에는 당시에 유행하던 대중적인 로큰롤에 가까운 음악을 하다가 이후 생겨난 하드록/헤비 메탈을 받아들인 셈. 장르 자체보다 디오 본인의 커리어가 오래됐다보니 생긴 일.
[5]
제쓰로 툴의 aqualung에 수록된 곡으로,
아이언 메이든도 커버한 적이 있다.
[6]
음역이 0옥타브 미(E2)~4옥타브 도(C6)로 나오는데, 3옥타브 시(B5) 이상은 찢어지는 괴성에 가까워 실가창의 의미가 없다. 고로 실 음역대는 0옥타브 미(E2)~3옥타브 라(A5)로 보는 것이 맞다.
[7]
참고로 세바스찬 바흐의 저 말은 원문이 있는 말인데, 어떤 음악 잡지에서 헤비메탈 보컬 특집을 하면서 표현했던 '롭 핼포드는 완벽하다. 브루스 디킨슨은 따라할 수 없다. 디오는 디오다'에서 나온 말이다.
[8]
물론 주관적인 평인건 감안하자. 나머지 두 보컬도 커버하려면 상당히 어렵다. 롭을 카피하자니 음 하나하나마다 일일이 거는 톱날 비브라토와 디오 못지 않게 요구되는 중고음이 문제고, 브루스를 따라하자니 하이노트에서까지 100% 전달되는 딕션과 디오 맞먹는 숨 가쁜 호흡이 걸린다.
[9]
찾아보자면
요른 란데와
러셀 알렌 정도가 있겠으나 이 둘은 파워풀한 벨팅을 주요 창법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디오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표현력에서 뒤지는 경향이 있다.
앙그라 前 보컬 에두 팔라시는 변화무쌍한 음을 보이지만 디오보다
브루스 디킨슨의 영향을 받아 아이언 메이든 보컬 오디션을 봤었다.
[10]
디오하면 강력한 샤우팅에서 나오는 파워가 가장 돋보이지만, raspy한 목소리와 클린한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미성에 가까운 보컬도 자유자재로 선보였다. Rainbow Eyes나 Catch the Rainbow는 디오 특유의 샤우팅은 전혀 없는 곡임에도 아름다운 음색과 섬세한 표현력으로 명곡으로 꼽힌다. Temple of the King 역시 음역대는 평범함에도 특유의 밀도 있는 보컬과 세밀한 표현으로 디오다운 명보컬을 선보였다
[11]
라이브에서 성량으로 다른 악기들을 관광 태우는 경악스런 모습을 보여준다.
[12]
다만 이는 초창기 시절 얘기로, 디오의 전성기였던 레인보우 시절 음역대는 락보컬치고도 상당히 넓은 편이다. 시대별로 비교해보면 70년대에 접어들면서 보컬 역량이 확연히 발전했음을 볼 수 있다.
[13]
전문적인 단어로 '테누토'를 건다고 한다. 음 하나하나를 강조하는 방법 중 하나.
[14]
실제로 계주 선수들이 하는 말 중 하나가 400m가 제일 빡세다고 한다. 풀전력을 걸기도, 그렇다고 1km 이상의 계주처럼 속도를 완전히 뒤로 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이 간극을 컨트롤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15]
아이러니하게 Hear 'N Aid 프로젝트 녹음 도중 그가 삑사리를 내는
장면을 통해 그의 정확한 음처리를 알 수 있다. 4:34초와 4:48초에 보면 고음은 완벽하게 처리하고도 저음부에서 호흡이 제대로 안 들어가 삑사리가 나는데, 바꿔 말하면 디오는 평상시에 저렇게 평범한 음조차 호흡을 꽉차게 불어넣어 풍부한 소리가 나도록 처리한다는 말이다. 삑사리난 "Fire and stone" 부분을 4:45초에 제대로 부른 것을 한번 들어보면, 저음부의 정말 평범한 부분인데도 거기에 신경써서 음처리를 한다.
[16]
레인보우 1집 Ritchie Blackmore's Rainbow의 노래들은 대부분 최고음이 3옥타브 레 ~ 미로 굉장히 높은 편이다.
[17]
성구전환이 이뤄지는 이른바 파사지오 구간이기 때문. 사실 음역대만 맞으면 성구전환이 된 3옥타브 이상이 더 노래하기 편할 수도 있다. 음색이 문제일 뿐.
[18]
즉, 70년대의 열악한 음향기기로 두 시간동안 저런 미친 곡들로 레파토리를 채워 부르는 공연 때 저런 보컬을 선보였다는 소리다. 게다가 당시 락밴드들은 공연이 굉장히 잦았다. 음반판매 수익도 많지 않고 방송 출연도 적었기 때문에 주 수입원이 공연수익이었기 때문.
[19]
당시 방송 환경 한계 때문에 보컬만 라이브를 하고 밴드 멤버들은 음악에 맞춰 핸드싱크를 했다.
[20]
하지만 역시 진성을 기반한 보컬을 수련한 탓에 동 시대에 활동한
롭 핼포드나
브루스 디킨슨과 비교해 보면 샤우팅이 약간 부족한 편이다.
[21]
1976년 Stagazer 라이브 영상과 2004년 Stargazer 라이브 영상을 비교해 보면 확실히 톤이 두꺼워졌고, 음을 올리는 것도 힘겨워하는 게 보인다. 물론 2004년은 디오가 62세이던 시절이니 기량 저하가 없을 리가 없다. 2006년에 개봉한 Tenacious D: Pick of Destiny를 보면 60대 중반에 가까운 이때까지도 스튜디오에선 무서운 역량을 보였는데, 당연히 성대도 근육이다보니 60대 노인인 그가 전성기 수준의 힘은 낼 수 없어 공연에서 전성기에 비해 많이 떨어져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디까지나 다른 락 보컬에 비해 굉장히 하락세가 적다는 것이지, 디오도 인간이다.
[22]
디오 전성기 시절 라이브 보컬을 듣고 싶으면 80년대 영상들을 추천한다. 실제 전성기는 70년대였지만 이때 공연들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영상도 거의 없고 그나마 유튜브 등에서 볼 수 있는 영상들은 영상과 화질이 매우 조잡해 보기 힘들다. 위의 L.A. Connection 라이브도 사실 완벽을 기준으로 해서 굳이 짚어내지만 그나마 저 정도 단점이 있다는 거지 말이 안 나올 정도의 미친 보컬인데, 음질이 개판이라 듣기가 힘들다. 디오 타이틀로 정식으로 낸 라이브 앨범은 총 4개이고 그중 Dio at Donington UK: Live 1983 & 1987을 추천한다. 다시 상기시키면 83년이면 당시 디오의 나이는 40세이다.
[23]
김경호의 Shout와 문제점을 거의 공유한다. 초고음 샤우팅만 없을 뿐. 그래도 Stand Up and Shout이 평균음은 한 음 정도 낮긴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선 그게 그거다.
[24]
디오의 아내이자 매니저.
[25]
이 곡들이 디오 특유의 색깔이 강하게 묻어나오는 점, 보컬은 주로 멜로디 위주로 작곡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해당 곡들의 메인 멜로디를 만든게 바로 디오일 가능성이 높다.
[26]
디오는 판타지 테마를 정말 좋아한다. 디오 특유의 미드템포, 무거운 메탈 사운드와 판타지 테마의 영향이 가장 적은 앨범이 오히려 디오 1집인데, 80년대 유행하던 헤비메탈 음악 영향을 받아 경쾌하고 밝은 곡들이 있다. Caught in the Middle나 Gypsy같은 곡들이 대표적인데, 사실 이 곡들은 발매될 당시 말고는 그가 공연할때 레파토리에 잘 들어가지 않는 곡들이다.(반면 스타게이저나 헤븐앤헬은 타 밴드 시절 곡이었음에도 굉장히 자주 부른다) 1집조차 타이틀 곡인 Holy Diver은 지극히 디오스러웠다.
[27]
이제 꽤 알려진 사실이지만, 리치 블랙모어는 당시 날리던 하드락&메탈 뮤지션 중 유달리 팝 음악을 좋아했다. 레인보우 시절 리치가 멤버들 앞에서 '나는
ABBA의 음악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라고
커밍아웃하자 다른 멤버들이 내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들은 거냐는 표정으로 리치를 쳐다보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28]
의외로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디오는 본인이 엄청난 실력을 지녔었지만 1집
Holy Diver 와 2집 The Last In Line 이후의 앨범이 상업적인 실패를 하기도 했고 성공했다는 1,2집도 막 엄청난 성공을 한 것은 아니라 락스타 치고는 자금력이 부족했다.
[29]
90년대에는 배드 문 라이징, 2000년대는 디오와
화이트스네이크, 2010년대 후반부터는 더 데드 데이지스에서 활동한 기타리스트.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감성적인 솔로를 보여준 덕에 일본에서 지명도가 있는 기타리스트다.
[30]
가수나 보컬 코치들이 디오의 영상을 분석하는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디오의 보컬 자체가 목에 굉장히 무리가 가는 스타일이다. 디오는 성대 뿐 아니라 온 몸을 이용해 발성을 하는 훌륭한 테크닉을 지녔지만 그 과정에서 성대를 사정없이 긁는데 이렇게 하면 당연히 성대가 상한다. 이런 짓을 커리어내내 하면서 기복이 거의 없는데다 장수하고, 심지어 클린한 소리와 raspy한 소리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건 그냥 타고난 것이다. 괜히 디오를 카피하는게 불가능하다고 하는게 아니다. 디오의 테크닉 자체는 굉장히 배울게 많고 기본기에 충실하지만 그의 보컬 스타일을 어설프게 따라했다간 목이 금방 상한다.
[31]
하나 언급하자면 디오의 raspy한 목소리는 순수하게 테크닉으로 내는 것이며, 그의 목소리는 60대 때까지 기본적으로 깨끗한 목소리였다. 즉 디오는 외부영향으로 걸걸한 목소리가 '만들어진'게 아니라 흡연이나 과도한 공연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유지된 특이한 케이스. 당연한게 담배를 피워서 허스키한 목소리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상해서 만들어진 성대는 그만큼 약해진다. 과도한 흡연과 음주 등으로 걸걸한 목소리가 된 엑슬 로즈같은 경우 성대가 망가져서 전성기 때도 기복이 극악으로 심했다. 로즈의 공연을 들어보면 레전드급 무대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거칠어진 성대를 쥐어짜는 보컬이기 때문에 컨디션이 나쁘면 그야말로 민망한 수준의 공연도 있었다.
아직 30이던 92년 라이브를 보면 쥐어짜는데 보컬이 안 나와 상당히 듣기 힘들다.
[32]
본래 보컬인 레미가 다들 알다시피 보컬에 멜로디가 거의 없는 고로
색슨의 보컬리스트 비프 바이포드가 함께 참여했다.
[33]
80년대
독일 메탈 밴드
워락에서 활동한 독일을 대표하는 여성 메탈 보컬리스트다.
[34]
대신 이쪽은 유럽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자랑한다.
[35]
데프 레퍼드는 예외.
[36]
밴드 디오는 모든 곡들의 멜로디와 가사를 디오가 썼다. 세션 멤버들을 영입하는게 아니라면 원래 연주 파트는 웬만하면 그 파트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작곡하는게 기본이었기에 앨범 전체의 방향을 디오 오롯이 혼자서 결정했다고 볼 수 있다.
[37]
하드락이 잘나가던 70년대에도 디오같은 무거운 미드템포의 음악보다는, 딥퍼플처럼 경쾌한 음악이 많은 사랑을 받았고, 80년대에 각광을 받은 헤비메탈도 주다스 프리스트나 메탈리카, 메가데스같이 신나게 헤드뱅잉할 수 있는 음악이 인기를 끌었다. 반면 디오는 '정말 쩐다!'란 소리가 나올만한 곡들은 많지만 편하게, 혹은 신나게 들을 수 있는 곡들이 거의 없다. 딥 퍼플의 Highway Star나 주다스 프리스트의 Breaking the Law,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의 분위기나 디오의 곡들을 비교해보면 더욱 극명하다. 심지어 가사조차 마법사와 용 이런 것이니...
[38]
대표적으로 Man On The Silver Mountain에서 Sil 부분이 3옥타브 레다.
[39]
이때 수사과정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정치적 외압으로 이들이 자백강요 고문을 받았으며 리비아 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았다가 EU와의 협상끝에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