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23:35:44

레알 마드리드 CF/디 스테파노 체제(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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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 ~ 1994
초대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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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카르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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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요렌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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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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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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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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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엔시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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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킨코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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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알베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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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킨코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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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키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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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알베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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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스카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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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이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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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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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카르닐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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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무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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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대
카르닐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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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대
플레이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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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대
무뇨스
( 무뇨스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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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몰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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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대
밀랴니치
( 밀랴니치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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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대
몰로니
( 몰로니(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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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대
보슈코브
( 보슈코브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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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몰로니
( 몰로니(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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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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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 스테파노(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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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대
아마로
( 아마로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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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대
몰로니
( 몰로니(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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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대
베인하커르
( 베인하커르(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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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대
디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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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대
베인하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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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 보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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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알 마드리드 CF 감독(41대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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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CF
디 스테파노 체제
파일:Di_stefano_dt_river.jpg
제31대 감독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colbgcolor=#FFF><colcolor=#000> 감독 파일:스페인 국기.svg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제31대 감독
회장 파일:스페인 국기.svg 루이스 데 카를로스 / 제12대 회장 (1978~1985)
주장 파일:스페인 국기.svg 미겔 앙헬 곤살레스 / 제26대 주장 (1980~1986)
계약 기간 1982년 7월 1일 ~ 1984년 5월 22일
(1년 10개월 21일 / 691일)
계약 종료 (성적 부진으로 경질)
연봉 미상
전술 스타일 공격적인 플레이와 유연한 포메이션
┗ 클래식 4-4-2 또는 4-3-3 포메이션
┗ 상대 맞춤형 전술
┗ 공격적인 플레이
┗ 수비에서 공격으로의 빠른 전환
┗ 중원 장악 강조
┗ 높은 압박을 통한 상대 실수 유도
┗ 다재다능한 선수 중시
역대 전적 108경기 63승 23무 22패 (승률 58.33%)
192득점 113실점
우승 경력 -
0회 우승

1. 개요2. 감독 선임 과정3. 연혁
3.1. 1982-83 시즌3.2. 1983-84 시즌
4. 득점 순위5. 시즌별 성적
5.1. 대회 성적5.2. 승패 기록
6. 평가

[clearfix]

1. 개요

레알 마드리드 CF의 제31대 감독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1기 체제를 정리한 문서이다.

2. 감독 선임 과정

전임 루이스 몰로니 감독이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하며 시즌을 잘 마무리한 후 사임하자 레알은 새 감독으로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레전드 디 스테파노를 선임했다. 디 스테파노는 1970-71 시즌에 발렌시아 CF 감독을 맡아 라리가 우승을 차지했고, 다시 부임해 1979-80 시즌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CA 리버 플레이트에서도 리가 프로페시오날 우승을 차지했었기에 성과로 입증된 감독이었다.

3. 연혁

3.1. 1982-83 시즌

  • 최다 출전 : 요하네스 메트호트 (56경기 5골)
  • 최다 득점 : 산티야나 (48경기 30골)

팀의 레전드 출신 감독이 부임했지만 여전히 레알의 재정은 좋지 않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은 영입하지 못했다. 대신 AZ 알크마르에서 요하네스 메트호트를, 나머지 후안 호세, 파코 보네트, 촐로, 후안 알베르토 아코스타 등은 국내 클럽에서 영입했다. 그리고 고요 베니토, 안토니오 가르시아 나바하스, 안드레스 사비도 등이 팀을 떠났다. 한편, 지속적인 부상으로 고생하던 로리 커닝엄은 시즌 도중인 4월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임대 이적했다.

전반기 디 스테파노의 레알은 승승장구했다. 1라운드에 무승부를 거두기는 했으나 이후 3연승을 기록했고 데르비 마드릴레뇨에서 3-1 승리를 거뒀다. 이후 CD 말라가전 승리, 라싱 산탄데르전 5-1 대승을 거두며 1위 자리를 차지했고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RC 셀타 데 비고, 레알 소시에다드에 모두 무실점 승리를 기록했다. 그리고 1974-75 시즌 이후 8시즌 만에 진출한 유러피언 컵위너스컵에서는 1라운드에서 FC 바이아 마레를 합계 5-1로 꺾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한편 시즌 도중인 10월 9일, 루이스 데 카를로스 회장이 라몬 멘도사와의 선거 경쟁에서 약 3000표 차로 승리하며 재선에 성공했으며 라몬 멘도사는 부회장이 되었다. 이렇게 클럽 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는 듯 했으나, 멘도사 부회장이 언론에 의해 KGB에 연루된 사실이 보도되면서 부회장직에 사임하는 중대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11월 27일, 홈 엘 클라시코에서 메트호트, 보네트가 동시에 퇴장당하는 악재가 터지며 0-2로 패배했다. 엘 클라시코에서 패배하며 잠시 흔들리는가 했으나 다음 경기인 엘 비에호 클라시코 원정을 4-2로 승리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전반기 리그를 16전 10승 4무 2패 1위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컵위너스컵에서는 2라운드에서 우이페슈트 도자 SC를 만나 산티야나의 3골에 힘입어 홈, 원정에서 모두 승리했고 합계 4-1로 8강에 진출했다. 10월과 12월에 치러진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는 1차전 홈에서 1-0으로 승리했으나 2차전 원정에서 연장에만 3골을 내주는 등 0-4로 대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후반기에도 레알은 1월까지 쭉 기세를 밀고 갔고 1월 2일 발렌시아 CF전 5-1 대승을 시작으로 6경기 무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무패였으나 무승부가 3번이었고 23라운드 CD 말라가 원정에서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1-2로 패배해 1위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레알은 아틀레틱 클루브와 마지막 라운드까지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쳤고 승점 차는 매우 좁았다. 이 치열한 우승 경쟁에서 레알은 치명적인 패착을 저질렀는데, 30라운드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패배한 것이다. 20분 후아니토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디에고 마라도나와 페리코 알론소[2]에 연달아 골을 먹히며 1-2로 역전패했고 이 패배로 빌바오에 다시 1위 자리를 헌납했다. 그나마 레알은 31라운드 빌바오와의 맞대결에서 가르시아 에르난데스와 피네다의 골로 2-0 승리를 거두고 이후 32, 33라운드도 승리하며 1위 자리를 지켰다.
순위 경기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진출 or 강등
1 레알 마드리드 33 20 9 4 57 24 +33 49 유러피언 컵 1라운드 진출
2 아틀레틱 클루브 33 21 6 6 66 35 +31 48 UEFA 컵 1라운드 진출
33라운드까지는 레알이 1점 차로 앞서고 있었고, 맞대결 전적에서도 레알이 2승을 거뒀기에 레알이 단 1점만 추가한다면 빌바오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둬도 우승을 확정짓는 상황이었다. 1위 레알의 마지막 라운드 상대는 강등권 싸움을 하고 있던 발렌시아 CF였고, 빌바오의 마지막 라운드 상대는 발렌시아와 강등권 싸움을 하고 있던 UD 라스팔마스였다. 모두 강등권 두 팀이 홈이었고 리그 1차전에서 모두 레알과 빌바오가 승리했기에 두 팀 다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레알의 우승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1983년 5월 1일, 에스타디오 데 메스타야 에스타디오 인술라르에서 대망의 최종 라운드가 치러졌다. 첫 흐름은 레알에게 좋게 흘러갔는데 빌바오의 데 안드레스가 자책골을 넣는 행운이 따르며 1-1 무승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흐름이 깨졌다. 39분 미겔 텐디요가 코너킥에서 헤더로 선제골을 넣으며 발렌시아가 앞서갔으며 이어 40분에는 빌바오가 역전골을 넣으며 순위가 뒤집혔다. 그래도 레알이 1골을 넣고 라스 팔마스가 분전한다면 레알이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는데, 빌바오는 57분부터 연이어 3골을 몰아넣으며 5-1 대승을 거뒀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는 무조건 레알이 득점해야 했는데, 끝까지 발렌시아의 골문을 열지 못했고 레알은 그대로 메스타야 원정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순위 경기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진출 or 강등
1 아틀레틱 클루브 (C) 34 22 6 6 71 36 +35 50 유러피언 컵 1라운드 진출
2 레알 마드리드 34 20 9 5 57 25 +32 49 UEFA 컵 1라운드 진출
레알은 끝내 마지막에서 무너져 내렸다. 24주 동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중요한 길목에서 패배하며 라이벌에게 우승을 내주었는데, 레알이 우승 결정전이라 할 수 있는 맞대결에서 모두 승리했음에도 우승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한편, 8강에 진출했던 컵위너스컵에서는 세리에 A 4위를 차지하고 있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를 만났다. 1차전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유리한 고지롤 거뒀고, 2차전 홈에서 20분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에게 선제골을 먹혔으나 살게로와 산티야나가 후반에 연달아 2골을 넣으며 합계 3-2로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는 FK 아우스트리아 빈을 만났는데, 1차전 원정에서 전반전 1-2로 끌려갔으나 53분 산 호세의 동점골이 터졌고 2-2 무승부를 거두며 유리한 상태로 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4월 20일,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산티야나의 멀티골과 후아니토의 결승골로 3-1 승리를 거둬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결승에서는 알렉스 퍼거슨이 이끄는 애버딘 FC였다. 당시 에버딘은 셀틱 FC 레인저스 FC의 양강 체제를 깨고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고, 1978년 UEFA 클럽 랭킹 106위에서 1983년 20위로 급상승한 신흥 강호였으며 8강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올라온 팀이었다. 한편 레알은 전통 강호였고, 1위 바르셀로나에 이어 클럽 랭킹 2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선제골은 의외로 애버딘이 터뜨렸다. 7분 만에 애버딘의 존 블랙이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나갔다. 그러나 레알도 만만치 않았는데, 경기장에 비가 내려 생긴 진흙으로 인해 애버딘의 패스가 중간에 멈췄고 이를 레이튼 키퍼가 잡으려고 뛰쳐나오다 산티야나를 걸어 넘어뜨려 페널티킥이 선언되었다. 그리고 이 페널티킥을 후아니토가 성공시키며 1-1이 되었고, 레알은 요하네스 메트코트와 울리 슈틸리케의 활약으로 수비와 중원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고 전반전을 지배했다. 후반에 돌입하자 양 팀은 서로 공격을 주고 받았으나 득점하지 못했고 결국 이 치열한 경기는 연장전으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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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 후반 7분, 헤더로 결승골을 기록한 애버딘의 존 휴잇
연장전에 팽팽했던 균형이 깨졌다. 112분, 왼쪽 측면을 돌파한 마크 맥기가 존 휴잇에게 크로스를 올렸고, 이 크로스를 휴잇이 헤더로 연결하면서 애버딘이 다시 앞서 나갔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레알이 애버딘의 수비를 뚫지 못했고, 그대로 경기가 종료되며 레알은 지난 1970-71 시즌에 이어 12년 만에 다시 컵위너스컵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 대회는 알렉스 퍼거슨을 세계 정상의 감독으로 만들어주었고, 디 스테파노 감독에게는 치욕이 되었으며 레알은 끝내 1999년 컵위너스컵이 폐지될 때까지 우승을 차지하지 못해 컵위너스컵은 유일하게 레알이 참가한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대회가 되었다.

한편 코파 델 레이는 16강에서 카디스 CF를 4-1로, 8강에서는 세비야 FC를 4-2로 꺾고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는 스포르팅 히혼을 만났는데, 홈에서 산티야나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6-0 대승을 거뒀다. 사실상 결승행을 확정지은 상황에서 원정을 떠났는데, 전반에만 3골을 먹히며 0-4로 대패했다. 그나마 득실차가 있었기에 합산 6-4로 2시즌 연속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라이벌 바르셀로나를 만났는데, 전반전에 선제골을 먹히며 끌려갔으나 50분 산티야나가 동점골을 넣으며 치열하게 마지막까지 끌고 갔다. 그리고 90분 전까지 추가 득점이 나오지 않으며 연장전으로 흘러갈까 싶었던 찰나, 90분 마르코스 알론소 페냐에게 결승골을 헌납하며 패배했고 이는 이 시즌 레알의 4번째 준우승이었다.

그리고 1980년대 스페인에는 코파 데 라리가라는 리그컵이 존재했는데, 모든 시즌이 종료된 6월에 경기가 치러졌다. 8강에서는 레알 소시에다드를 만났는데, 홈에서 1-0으로 승리한 후 원정에서 무승부를 거두며 합산 2-1로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는 레알 사라고사를 만났고 맞대결 2경기에서 홈 팀이 모두 5-3으로 승리하며 합산 8-8이 되었다. 그리고 결승 티켓의 향방은 승부차기로 정해지게 되었는데, 이 승부차기에서 레알이 5-4로 승리하며 리그컵 결승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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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마라도나의 바르셀로나와 맞붙은 레알
결승에서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FC 바르셀로나를 다시 만났는데,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1차전에서 로보 카라스코와 마라도나에게 먼저 실점하며 0-2로 끌려갔으나 비센테 델 보스케 후아니토가 연달아 골을 넣으며 1차전이 2-2 무승부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2차전 원정에서 마라도나와 호세 라몬 알레산코에게 연달아 실점하며 끌려가 패색이 짙어졌고 산티야나가 만회골을 넣었으나 추가 득점을 하지 못해 3-4로 패배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 시즌 레알은 중요한 순간에서 모두 패배하며 초유의 한 시즌 5개 대회 준우승이라는 대기록이자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쓰게 되었다.

3.2. 1983-84 시즌

  • 라리가 : 2위 (34전 22승 5무 7패, 49점 / 59득점 37실점)
  • 코파 델 레이 : 4강 (12전 9승 1무 2패 / 23득점 7실점)
  • UEFA 컵 : 1라운드 (2전 1무 1패 / 3득점 4실점)
  • 코파 데 라리가 : 1라운드 (2전 1무 1패 / 3득점 4실점)
  • 합계 : 50전 31승 8무 11패 / 88득점 52실점
  • 최다 출전 : 앙헬 데 로스 산토스 (45경기 4골)
  • 최다 득점 : 후아니토 (40경기 21골)

비록 지난 시즌 디 스테파노 감독의 레알 마드리드가 5개 대회 준우승으로 무관을 기록했지만, 이사회는 디 스테파노 감독을 믿고 계약을 1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디 스테파노 감독은 안도감을 표했고, 아무런 주급 협상도 없이 구단 측이 제시하는 연봉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편, 루이스 데 카를로스 회장은 레알과는 달리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바스크의 아틀레틱 클루브 레알 소시에다드를 따라 스페인 선수들을 중심으로 선수단의 연령대를 낮추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직전 시즌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세군다 디비시온 우승 주역들을 콜업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콜업된 유스들이 바로 이후 '독수리 5형제'로 불리며 레알의 1980년대 후반 황금기를 이끌었던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마놀로 산치스, 마르틴 바스케스, 미겔 파르데사였다.[3] 그리고 이 4명 이외에도 베르나르도 무르시아, 마르틴 곤살레스 등을 승격시켰다. 승격 외에도 영입이 있기는 했는데, RSC 안데를레흐트에서 영입한 후안 로사노와 UD 라스팔마스에서 영입한 훌리오 수아레스가 있었는데 주전 자원이 아닌 후보 자원급이었다. 그리고 이때즘 지쿠에게 다시 접근했으나 지쿠가 우디네세 칼초가 그를 영입하며 계획이 틀어졌다.

직전 시즌의 실패를 만회하려 했으나 레알은 시즌 초반 크게 흔들렸다. CD 말라가 원정에서 후아니토의 멀티골에도 불구하고 2-6 대패를 당했으며 홈에서 마리오 켐페스에게 실점하며 발렌시아 CF에게 패배했다. UEFA 컵에서는 1라운드 AC 스파르타 프라하에게 탈락해 이변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원정에서 수비 불안으로 3골을 먹힌 것이 패착이었고, 홈에서도 1골에 그치며 무승부를 거둔 것이 탈락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다행히 최악의 한 달이었던 9월이 지나가고 이사회가 디 스테파노에 대해 신뢰를 표명하자 레알은 반등했고 다시 리그 순위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레알 소시에다드 카디스 CF를 이겼고, 10월 22일 엘 클라시코 원정에서 후아니토와 산티야나의 득점으로 1-2 승리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어 9라운드 데르비 마드릴레뇨에서 5-0 대승을 거두며 1위로 올라섰다. 비록 세비야 FC전 1-4 대패로 순위가 5위까지 떨어지기는 했으나 상위권의 승점은 매우 촘촘해 반등의 여지가 있었고 이후 7경기 6승 1무를 기록하며 1983년 리그 전반기를 1위로 마무리지었다.

1월에는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전 1-4 대패를 거두고 1승 2무 1패의 안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2위로 순위가 떨어졌으나 2월에 치러진 모든 리그 경기를 승리하며 1위로 반등했다. 그리고 2월 25일,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에 실점했으나 2-1 승리를 거뒀다. 그런데 이 좋았던 분위기는 3월에 무너져버렸다. 홈에서 대승을 거뒀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0-1로 패배했고, 이어 치러진 2경기에서 모두 무승부를 기록하며 2위로 추락했다.
순위 경기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진출 or 강등
1 아틀레틱 클루브 (C) 34 20 9 5 53 30 +23 49 유러피언 컵 1라운드 진출
2 레알 마드리드 34 22 5 7 59 37 +22 49 UEFA 컵 1라운드 진출
그리고 4월 1일 우승 경쟁을 치르고 있는 아틀레틱 클루브에게 1-2로 패배하며 1위 자리를 내주었고, 31라운드부터 남은 4경기를 모두 승리했음에도 빌바오도 전승을 기록하면서 양 팀은 승점 동률을 기록했다. 승점은 동률이었으나 상대 전적에서 1무 1패로 밀렸고, 결국 레알은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빌바오에게 우승을 내주었다.

한편, 코파 델 레이에서는 2라운드 CD 바다호스를 합계 9-2로, 3라운드에서 레알 오비에도를 합계 3-0, 4라운드에서 CE 사바델을 합계 5-2로 꺾고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는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틱을 만났고 1차전 원정에서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홈에서 산티야나가 43분 결승골을 넣으며 아슬아슬하게 1-0 승리를 거둬 8강으로 진출했다. 8강에서는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를 만났고 1차전 원정에서 1-2로 패배해 4강행에 적신호가 커졌으나 홈에서 3-0 대승으로 합산 스코어를 뒤집어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는 라이벌 아틀레틱 클루브를 다시 만났는데, 홈에서 0-1로 패배하며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떠난 산 마메스 원정에서 의외로 피네다의 선제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뒀는데, 연장전에서도 양 팀이 득점에 실패하자 결국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빌바오는 3번 키커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성공시켰으나, 레알은 1번 키커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와 3번 키커 울리 슈틸리케가 실축하면서 3-4로 패배해 4강에서 코파 델 레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대회가 마무리된 5월, 코파 데 라리가에서 1라운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만났는데, 합계 3-4로 패배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디 스테파노 감독은 이번 시즌에도 4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에 실패하며 무관을 기록하고 말았고, 스페인의 언론들은 디 스테파노가 이끄는 레알에 많은 비판을 쏟아냈다. 결국 그는 5월 22일 루이스 데 카를로스 회장에 의해 경질되고 말았다.

4. 득점 순위

순위 이름 레알 소속 기간 경기 수 득점 경기당
득점
국적
1 산티야나 1971 ~ 1988 89 47 0.53 파일:스페인 국기.svg
2 후아니토 1977 ~ 1987 88 38 0.43 파일:스페인 국기.svg
3 프란시스코 피네다 1980 ~ 1985 61 25 0.41 파일:스페인 국기.svg
4 리카르도 가예고 1980 ~ 1989 85 11 0.13 파일:스페인 국기.svg
5 이시드로 디아스 1977 ~ 1985 57 10 0.18 파일:스페인 국기.svg
6 울리 슈틸리케 1977 ~ 1985 75 9 0.12 파일:독일 국기.svg
7 요하네스 메트호트 1982 ~ 1984 85 7 0.08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8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1984 ~ 1995 12 6 0.5 파일:스페인 국기.svg
앙헬 데 로스 산토스 1979 ~ 1985 94 0.06 파일:스페인 국기.svg

5. 시즌별 성적

5.1. 대회 성적

시즌 라리가 유럽 대항전 코파 델 레이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코파 데 라리가
1982-83 2위
( 1)
UEFA 컵위너스컵
준우승
준우승 준우승 준우승
1983-84 2위
( = )
UEFA컵
1라운드
4강 × 1라운드

5.2. 승패 기록

시즌 경기 수 득점 실점
1982-83 58 32 15 11 104 61
1983-84 50 31 8 11 88 52
합계 108 63 23 22 192 113

6. 평가

엄연히 따지자면 실패한 감독이다. 구단의 엄청난 레전드 출신이고, 발렌시아 CF에서 라리가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을 이끈 감독이었지만 레알에서는 단 1개의 트로피도 얻지 못했다. 비록 구단의 재정 악화로 인해 변변한 영입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지쿠 영입에도 실패하는 등 디 스테파노 감독을 옹호할 수 있는 상황도 있기는 했지만 중요한 순간에서 모두 패배해 2시즌 연속 무관을 기록한 것은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디 스테파노 감독은 1959-60 시즌 중도 경질된 마누엘 플레이타스 감독 이후 24년 만에 레알 감독 부임 기간 중 단 한 개의 트로피도 얻지 못한 감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쓰게 되었으며, 정규 1시즌을 모두 치른 감독을 기준으로 하면 1952-53 시즌을 무관으로 마무리한 후안 안토니오 이피냐 이후 31년 만이다.

비록 2년 간의 감독 기간 동안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마놀로 산치스, 마르틴 바스케스, 미겔 파르데사 등 유스들을 콜업하고 1군에 뛰게 함으로써 이들이 성장할 기회를 주었다. 이들이 이후 '독수리 5형제 시대'로 일컫어지는 1980년대 후반 전성기를 이룬 것을 생각하면 이 전성기의 초석을 다져놓았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1] 스페인의 리그컵 [2] 샤비 알론소의 아버지이다. [3] 남은 한 명인 미첼 곤살레스는 이미 1군 무대를 경험했지만 다음 시즌인 1984-85 시즌에 정식으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