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드라큘라(브로드웨이판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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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랭크 와일드혼의 뮤지컬 드라큘라의 일본 후지 테레비 프로덕션 버전. 2011년 초연과 2013년 재연을 올린 적 있으며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최초임과 동시에 세계 최초로 여성배우가 혼성 무대에서 드라큘라를 연기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1] 한국 OD컴퍼니 라이선스 버전이 나올 수 있는 영향을 줬단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일본 후지 테레비 프로덕션은 2007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프로덕션에 이어 드라큘라의 브러시업 2단계 버전이라고도 불린다.2011 드라큘라 후지 테레비 프로덕션 포스터 |
<rowcolor=#fff> 드라큘라 & 미나 | 드라큘라 役 와오 요우카 | 미나 役 하나후사 마리 |
일본 드라큘라를 맡은 배우는 전 다카라즈카 가극단 주조 남역(男役) 톱스타이자 현 프랭크 와일드혼의 배우자인 와오 요우카(和央ようか), 미나는 전 다카라즈카 가극단 설조ㆍ주조 여역(娘役) 톱스타 하나후사 마리(花總まり).[2][3]
일본판 초연과 재연 캐스트는 베테랑 배우[4]와 당시엔 와카테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지금은 크게 활약 중인 배우들이 대거 참석하고 있어 상당한 호화 캐스트를 자랑한다. 무려 초연 때는 루시, 재연 때는 하나후사 마리의 대역으로 미나를 연기한 배우가 모닝구 무스메 출신인 아베 나츠미. 2011년 초연은 기간 한정 수량으로 DVD가 발매된 바 있다.[5]
연출은 초연과 재연 모두 요시카와 토오루(吉川徹)가 담당했으며, 기획ㆍ제작은 후지TV 교도 도쿄가 맡았다. 연출이나 무대는 한국판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라면 좀 심심할 수 있고, 드라큘라 역의 와오 요우카가 굉장히 정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6] 대신, 가창보다 연극성과 대사의 연결이 얼마나 잘 되고 있는지를 주목하면서 세부적이고 디테일한 미학을 더 중요시하는[7] 일본 뮤지컬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공연 중에 하나이며 내용의 개연성과 극의 설득력에서는 일본판 드라큘라 쪽이 더 괜찮다고 평가해주는 이들도 있다. 일본판은 주로 오스트리아 그라츠버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거기서 대사가 더 들어간 스토프레[8] 형식으로 되어있고, 타이틀롤 드라큘라의 이미지가 비현실적인 인외감(人外感)을 주기 위해 장발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9] 또한, 드라큘라의 신부들이라 불리는 뱀파이어 슬레이브들이 일본판에서는 뱀파이어 3형제로 TS되어 남자배우들이 연기하는 특징도 보여준다.
현재는 일본에서 상연하지 않고 있는 뮤지컬 중에 하나인데, 이유는 후술.
2. 제작진
- 기획·제작: 후지TV 교도 도쿄 フジテレビジョン キョードー東京
- 번역: 토키타 케이코 常田景子
- 역사·연출: 요시카와 토오루 吉川徹[10]
- 음악감독·지휘: 우에가키 사토시 上垣聡
- 안무·스테이징: 마에다 키요미 前田清実
- 안무: 하세카와 타츠야 長谷川達也[11]
- 미술: 마츠이 루미 松井るみ
- 조명: 타카미 카즈요시 高見和義
- 음향: 야마모토 코이치 山本浩一
- 의상 디자인: 아사즈키 신지로 朝月真次郎
- 헤어·메이크업: 타카나 에미 田中エミ[12]
- 가창 지도: 야마카와 타카후미 山川高風
- 액션: 아츠미 히로시 渥美博
- 조연출: 토요타 메구미 豊田めぐみ
- 무대감독: 타카하라 토시코 瀧原寿子
- 음악 제작: AZA컴퍼니 カンパニーAZA
- 제작: 드라마틱 디파트먼트ドラマチック・デパートメント
3. 2011년 일본 초연
<rowcolor=#fff> 드라큘라 役 와오 요우카 | 미나 役 하나후사 마리 | 드라큘라 & 미나 |
<rowcolor=#fff> 드라큘라 & 렌필드 | 반 헬싱 外 | 드라큘라 役 와오 요우카 |
일본 초연 해금은 2010년 12월 17일에 발표되었다. # 일본 초연은 8월 20일부터 도쿄 국제 포럼, 9월 16일부터 우메다 예술 극장에서 상연했으며, 당시 티켓비는 도쿄 공연이 프리미엄석 20,000엔, S석 12,000엔, A석 9,000엔, B석 6,000엔. 오사카 공연은 SS석 19,000엔, S석 12,000엔, A석 9,000엔, B석 6,000엔으로 발매했었다.
2011 초연 쇼케이스 | 2011 초연 ‘Fresh Blood’ |
주역 2인 캐스트 해금 당시부터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전 주조 남역 톱스타 와오 요우카와 전 설조ㆍ주조 여역 톱스타 하나후사 마리의 공동 출연으로 화제를 불렀다. 상기했듯 세계 최초로 여성이 드라큘라를 연기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은게 2011년 일본 드라큘라 초연이다. 공연 시작하기 전, 와오 요우카가 피아(ぴあ)에서 일본 초연기념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 거기에 더해서 다카라즈카를 퇴단한 후 4년간 무대 활동을 쉬었던 전 주조 여역 톱스타 하나후사 마리의 본격적인 무대 복귀작이라 하나후사 마리의 팬들에게도 환호를 받았다.[13] 2011년 드라큘라 초연이 결정나자 와오 요우카는 2010년 크리스마스 디너쇼[14]에서 하나후사 마리를 게스트로 초대하여 드라큘라 백작과 미나의 듀엣 'Mina's Seduction'(독일어: Die Verf-ührung)를 부르기도 했다.[15]
2010 와오 요우카 디너쇼 ‘Mina's Seduction’ |
일본 후지 테레비판 드라큘라의 타이틀롤이 세계 최초 여성배우로 나올 수 있던 것은 원작자 프랭크 와일드혼의 적극적인 지지 및 지원이 가장 크다. 와오 요우카의 인터뷰에 따르면 와일드혼은 와오 요우카를 보자마자 드라큘라에 굉장히 어울릴 것 같다고 기뻐하며 얘기해줬다고 한다.[16] 와오 요우카가 와일드혼의 제안을 곧바로 승낙하자, 와일드혼은 그녀를 드라큘라 타이틀롤로 올리기 위해 I Have a Choice를 새로 작곡하기도 했으며, 연출가 요시카와 토오루 역시 다카라젠느 때부터 와오 요우카의 재능을 알아봤기에 작곡가 와일드혼과 함께 니혼 테레비와 협의하여 드라큘라 일본 초연 무대 제작에 들어갔다. 시사회는 공연 시작 전인 2011년 7월 21일에 개최되었다. #
상기한 설명대로 일본판은 오스트리아 그라츠판을 베이스로 삼아 공연되었는데, 이유는 드라큘라가 브로드웨이판 초연 당시 개연성 등에서 혹평을 받았던 것을 2007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새로운 버전으로 올리면서 비평가들과 관객들 사이에서 호평 받았기 때문이다. 이 그라츠판을 일본에도 올리게 된 것. 널리 알려진 곡 It's Over도 그라츠판에서 먼저 추가된 곡이며, 일본판에서도 당연히 드라큘라를 맡은 와오 요우카와 반 헬싱을 맡은 스즈키 소마가 듀엣 씬을 연기한다. # 따라서 오스트리아 그라츠판[17]이 일본판에 영향을 주고, 그 뒤 한국판을 비롯한 전세계 드라큘라 프로덕션도 그라츠판과 일본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2007년 그라츠판에서 처음 연주되었던 반 헬싱의 넘버 Roseanne도 나오며 스즈키 소마가 부른다.[18]
또한 2004년 브로드웨이 스튜디오 레코딩 앨범에만 수록되었던 드라큘라와 미나의 듀엣 At last가 처음으로 정식 연주된 버전이 일본 후지 테레비판. 2004년 브로드웨이 초연과 2007년 오스트리아 그라츠판만 하더라도 At last가 연주되지 않았으나 와일드혼이 와오 요우카와 하나후사 마리를 위해 정식으로 추가하게 되었고, 한국판에도 At last가 연주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단, 일본판에서의 At last는 2막 끝부분에서만 나오며 한국판에서는 1막의 She 다음에 연주되고 2막에 다시 한 번 나온다는 차이가 있다.[19]
3.1. 캐스트
- 드라큘라 : 와오 요우카 和央ようか
- 미나 : 하나후사 마리 花總まり
- 루시 : 아베 나츠미 安倍なつみ
- 조나단 : 코니시 료세이 小西遼生
- 잭 스워드 : 카미야마 류지 上山竜司[20]
- 아서 : 야자키 히로시 矢崎広
- 렌필드 : 오노다 류노스케 小野田龍之介[21]
- 반 헬싱 교수 : 스즈키 소마 鈴木綜馬
- 퀸시 모리스: 마츠하라 츠요시 松原剛志
4. 2013년 일본 재연
<rowcolor=#fff> 드라큘라 役 와오 요우카 | 미나 役 아베 나츠미 |
<rowcolor=#fff> 렌필드役 사쿠라이 타카유키 | 드라큘라 & 렌필드 | 드라큘라 & 미나 |
후지 테레비판 드라큘라 재연에 대한 해금은 2013년 3월 22일에 발표되었다. 동시에 이플러스(Eplus)에서 홍보도 했다. 재연은 2013년 8월 23일부터 9월 8일까지[22] 도쿄 국제포럼 C홀에서 상연되었다. #
2013 재연 티저 영상 |
초연 당시 다카라즈카 역사상 톱 레벨이라 불리며 재연을 기대하는 소리가 컸지만, 실은 초연이 끝날 즈음 이미 재연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초연과 마찬가지로 와오 요우카가 타이틀롤을 맡았고, 상대 역 미나는 하나후사 마리에서 아베 나츠미로 바뀌었다. 아베 나츠미는 초연 때 루시를 연기하여 당시 사적인 흑역사 건이 언급되던 상황에서도 호평 받은 바 있다. 그 외에도 루시는 아베 나츠미를 대신하여 키쿠치 미카, 조나단은 코니시 료세이에서 영국과 일본인 혼혈계 뮤지컬 배우인 신겐, 잭 스워드는 카미야마 류지에서 와타나베 다이스케로 바뀌었다.[23] 와오 요우카가 연기한 드라큘라의 가발도 갈색 웨이브 장발에서 당시 와오 요우카 본인이 고수했던 헤어스타일에 가까운 중발 정도의 짧은 가발로 바뀌었는데, 아베 나츠미의 신장(身長)과 이미지를 고려하여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로 보인다.[24]
4.1. 캐스트
- 드라큘라 : 와오 요우카 和央ようか
- 미나 : 아베 나츠미 安倍なつみ
- 루시 : 키쿠치 미카 菊地美香
- 조나단 : 신겐 辛源
- 잭 스워드 : 와타나베 다이스케 渡辺大輔
- 아서 : 야자키 히로시 矢崎広
- 렌필드 : 사쿠라이 타카유키 櫻井貴之
- 반 헬싱 교수 : 스즈키 소마 鈴木綜馬
- 퀸시 모리스: 마츠하라 츠요시 松原剛志
5. 일본에서 드라큘라를 재연하지 않는 이유
2013년 재연 이후 드라큘라의 일본 상연이 이루어지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2011년 초연 출연진인 드라큘라 역의 와오 요우카와 미나를 연기했던 하나후사 마리의 불화로 인한 결별과 와일드혼 뮤지컬의 상연권을 모두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넘긴 것이다. 먼저 하나후사 마리의 경우 1994년부터 1997년까지 다카라즈카 가극단 설조의 여역 톱스타로 활동하다가[25] 1998년부터 주조로 조이동을 하여 그쪽에서 여역 톱스타 활동을 했으며, 2000년부터 와오 요우카가 주조 남역 톱스타로 취임하자 2006년 7월 2일에 동반 퇴단을 할때까지 '타카하나(タカハナ)[26]'라는 애칭으로 주조 톱 콤비를 이루며 공연하면서 동시에 역대 다카라즈카 톱스타 콤비 중 팬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27]이 시기 두 사람은 다카 주조에서 초연한 팬텀과 주조에서 2001년 베르사이유의 장미 재연에서 환상적인 호흡으로 호평 받았고, 하나후사 마리는 청초한 미모와 가창력을 살려 설조 96년 엘리자벳에서 씨씨를 맡아 인지도를 얻은 것에 뒤이어 다카라즈카 여톱계 레전드가 되었다.[28] 2006년 7월 2일, 와오 요우카와 함께 〈Never Say Good bye ~어느 사랑의 궤적~〉 #[29]으로 다카라즈카를 퇴단하고, 이후 와오 요우카의 개인 소속사에 들어가 매니저로 활약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하나후사 마리는 4년간 무대 활동 휴식 기간을 갖게 되었다.[30] 하나후사는 본명인 다이고 마리코로 와오의 매니저 활동을 했고, 2008년 시카고 일본 초연 때 와오 요우카가 벨마 역으로 출연할 때도 하나후사가 내조해주었으나, 2009년 와오 요우카가 주연을 맡은 서유기 모티브의 무대극 『슈퍼 몽키』가 갑자기 전공연 상연 중단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일명 슈퍼 몽키 전공연 상연 중지 사건(スーパーモンキー 事件) #. 그 전에도 일본 무대계 상연도중 갑자기 중지가 된 경우는 배우 컨디션 문제 및 싱글 캐스트를 고집하기 위한 대역 교체 불가 등으로 종종 있었지만, 슈퍼 몽키는 일본 무대계 역사상 처음부터 끝까지 전공연이 중단이 되었던 대사건이라 당시 일본 연뮤덕들에게 패닉과 분노를 안겨주기도 했다. 거기다 와오 요우카와 토호판 모차르트!때 볼프강으로 인지도를 높였던 나카가와 아키노리[31]의 더블 주역극으로 홍보와 시사회때도 많은 주목을 받았던 데다 첫날 공연도 시작하지 않은 채로 전공연이 중단되었기에 당시 일본 연뮤덕들과 와오 요우카의 팬들 및 나카가와 아키노리의 팬들도 큰 충격을 받고 패닉까지 갔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 상연 중단 사건은 공식 측에서 와오 요우카의 컨디션 불량으로 공지했지만[32], 그 당시 일하던 스탭진의 SNS에 의하면 이 사건으로 와오 요우카와 하나후사 마리가 대판 실랑이를 벌였다고 한다. 와오 요우카는 하나후사에게 "다이고(하나후사 마리) 씨는 매니저로서 자격이 없다!"라고 비난했고, 하나후사 마리 역시 와오 요우카에게 제멋대로의 태도를 보인다며 지적했다. 이 목격담은 당시 무대 스탭과 팬들이 SNS에 기재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전에도 와오 요우카는 자존심이 강하고 호불호 성향이 심한 걸로 유명했다. 다카 활동 시절에도 잦은 연습 불참과 멋대로 나가버린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고 전해졌으나, 이런 호불호 강한 성향은 다카라즈카 주조 2대 톱스타가 되면서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슈퍼 몽키 사건의 경우 와오보다 제작진의 잘못이 더 크다라는 의견도 있는데, 아직 부상의 후유증이 있던 와오 요우카와 상의도 없이 격렬한 액션을 상당수 넣어놨으며 와오 요우카가 액션을 조금 조절하라고 항의하자 기각되어 와오 요우카와 슈퍼 몽키 제작사와의 거센 마찰이 생겼고 이에 대한 배려 부족으로 인해 와오 요우카가 화가 나서 출연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당시 일본 뮤지컬은 싱글 캐스트가 대부분이었고 당연하게 여겼던 때라 와오 요우카를 대신할만한 더블 캐스트나 언더, 스윙조차 없었고 구하지도 못했기에 전공연 중단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만 것. 이 사건으로 하나후사 마리는 와오 요우카와 점점 틀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와오의 개인 회사에서 나와 2010년 아오야마 극장에서 올린 연극 드미트리에서 에디트 피아프 역으로 무대 활동 재개를 시작한다. 반대로 와오 요우카는 이 시기에 2006년 주조 젠느 때부터 인연이 있던 프랭크 와일드혼과 재회하여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했다. 둘의 재회로 인해 와일드혼이 와오 요우카에게 드라큘라 타이틀롤을 제안했고, 와오 요우카도 적극 찬성했기에 2011년 드라큘라 일본 초연 결정도 났다.
하나후사 마리의 본격적인 무대 활동 재개가 2011년 드라큘라 일본 초연이었기에 다카라즈카 시절 때부터 봐 오던 팬들에게 환호를 받았고, 특히 타카하나 톱 콤비 팬들은 두 사람이 화해하여 같이 무대생활을 다시 할거란 기대의 반응도 많았다. 하지만, 이 공연 당시에도 하나후사 마리와 와오 요우카는 상기한 2010년 디너쇼는 물론이고, 2011 드라큘라 일본 초연 시사회와 무대 위에서 보인 모습과는 달리 신경전이 있었으며, 결국 드라큘라 초연의 총막공(大千秋楽)을 마치고 완전히 결별하게 되며 그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난 현재도 하나후사 마리와 와오 요우카는 다카라젠느 콘서트에서 같이 출연조차 하지 않고 있다. 2009년 슈퍼 몽키 상연 중단 사건으로 다카라즈카 극단 톱 콤비 때부터 친한 사이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으니,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콘서트에 같이 출연하지 않을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증하는 셈. 이로 인해 하나후사 마리는 2011년 드라큘라 초연과 2013년 몬테크리스토 일본 초연 이후 프랭크 와일드혼의 작품에 출연하지 않고 있다. 콘서트에서조차 와일드혼 넘버는 부르지 않을 정도. 이후 하나후사 마리는 2012년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 갈라콘서트에 참석하여 팬들 및 다른 다카라젠느들과 함께 환호를 받았다. 2012년 다카판 엘리자벳 갈라콘서트가 끝나고 다카판과 토호판의 연출가 코이케 슈이치로가 하나후사 마리를 도쿄 제국극장에 데려와 당시 제극에 올릴 신작 레이디 베스를 준비중이던 실베스터 르베이와 미하일 쿤체에게 하나후사 마리를 다시 한 번 소개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쿤체도 르베이도 다카판 엘리자벳 시절 하나후사 마리가 보여줬던 애수에 가득찬 비련의 황후 씨씨에 대해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창법에도 의문을 느껴 하나후사 마리한테 자신들의 신작 레이디 베스의 타이틀롤을 맡기는 것에 의구심과 우려를 표했다. 코이케 슈이치로는 하나후사 마리를 제극 배우로 기용하기 위해 어떻게든 쿤체와 르베이를 설득시켰고, 이에 미하일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는 하나후사 마리와 함께 공연할 또 다른 레이디 베스 배우를 한 명은 기용하되, 오디션을 보게 하라는 조건에서 하나후사 마리를 레이디 베스로 캐스팅하는데 허가를 받게 된다.[33]
레이디 베스 초연 캐스트가 모두 해금된 후 하나후사 마리는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월까지 잇세이 극장과 우메다 예술극장, 아이치현 예술극장대홀(愛知県芸術劇場大ホール)에서 열린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에서 메르세데스를 연기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레이디 베스 연습 기간을 가졌고, 2014년 4월 14일 레이디 베스 마티네(낮 공연)에 출연하여 도쿄 제국극장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실베스터 르베이와 쿤체 역시 레이디 베스 공연으로 하나후사 마리의 실력을 인정하고, 그녀가 다카 시절에 표현했던 비련의 엘리자벳 황후 캐릭터 해석 역시 또 하나의 씨씨로 인정하게 되었으며 하나후사 마리는 이치로 마키에 이어 르베이 뮤지컬 히로인 배우 겸 토호 뮤지컬 출연자 중 오디션을 보지 않고 출연할 수 있는 오고쇼에 해당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다카라즈카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후사 마리는 황족 분가라는 재력을 이용해 토호 및 제극에 엄청난 지원자금을 보내기도 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로 인해 토호연극부 측과 우메다 측에서는[34] 하나후사 마리를 의식해 지킬 앤 하이드, 4월은 너의 거짓말 뮤지컬판을 제외한 와일드혼의 나머지 뮤지컬의 상연권을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모두 넘기게 된다.[35] 한마디로 하나후사 마리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토호 측에서 눈치를 보고 있다는 얘기.
이 와일드혼의 뮤지컬 상연권을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거의 팔아넘기라 지시한 것은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과 토호판 엘리자벳, 토호판 모차르트!, 우메다와 호리프로 라이선스 제작판이자 일본 뮤지컬 와카테 등용문작이라 불리는 로미오와 줄리엣, 실베스터 르베이의 두번째 일본 제작 뮤지컬 레이디 베스, 뉴시즈, 포의 일족, 뤼팽~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의 비밀~로 유명한 일본계 명연출가 코이케 슈이치로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로 코이케는 일본에 엘리자벳을 가져온 장본인이지만[36], 토호판 엘리자벳 초연부터 타이틀롤 역의 "다카라즈카틀(宝塚縛り)캐스트" 및 "외부 뮤지컬 무대의 지나친 다카라즈카 스타일화를 강요"한다는 비판이 많음에도[37] 일본 연뮤계에서의 인지도 및 영향력은 엄청난 데다[38] 다카라즈카 때부터 하나후사 마리가 설조 여역 톱스타가 될 수 있도록 적극 밀어준 것으로도 유명[39]하며 실제로 두 사람은 깊은 사제관계이다. 당장 하나후사 마리가 다카라즈카 가극단 77기생으로 입단할때부터 첫 출연작이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위대한 개츠비인데[40], 이 중 위대한 개츠비 다카라즈카 버전은 코이케의 연출작이다. 이 위대한 개츠비로 코이케와 하나후사 마리가 인연이 닿았고, 다카라즈카 가극단 주조도 코이케 슈이치로가 하나후사 마리를 독자적인 여역 톱스타로 내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조라고 얘기가 나올만큼 두 사람의 깊은 사제관계는 물론이고, 2014년에 하나후사 마리가 레이디 베스로 토호 뮤지컬계에 들어온 이후로는 "하나후사 마리와 코이케 슈이치로가 일본 무대계를 장악하는 상태"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 위치이기에 코이케가 제자 격인 하나후사 마리의 사적인 부분[41]을 위해 프랭크 와일드혼의 뮤지컬 상연을 제지하거나 다카라즈카의 판권을 넘기라 지시한 것도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코이케 슈이치로의 영향도 있다는 의견도 납득이 안 가는 것도 아니며 2023년 9월 30일에 발생한 다카라즈카 가극단 소속 배우 자살 사건과 그 여파로 나오게 된 코이케 슈이치로의 갑질 및 동성 조수 성가해 의혹 보도 이후 이 가설에도 조금씩 힘이 실리고 있다. 이러한 일로 인해 서양의 일본 뮤덕들은 하나후사 마리에 대해 캐릭터 해석 뿐만 아니라 겸손한 일면도 가식에 가깝다고 평하는 의견도 있으며 일본 무대계가 하나후사 마리와 코이케 슈이치로, 다카라즈카 가극단과 한큐전철의 장악력과 연줄이 심하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연출가 요시카와 토오루의 자살과 일본 드라큘라의 전체 판권을 여전히 후지 테레비 교도 도쿄가 갖고 있다는 것. 일본 후지 테레비판 드라큘라를 연출한 요시카와 토오루는 야마모토 코지 주연의 뮤지컬 『 멤피스』의 번역·역사를 담당한 바 있고, 일본 역대 시카고 공연 중 역대 다카라즈카 젠느 출신자들만으로 이루어진 시카고 무대의 연출도 맡았다. # # 이렇게 최일선의 연출가로서 활약해오다가 2015년 1월 3일 아내 요시카와 루미가 암으로 사망하자,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고 이로 인해 한동안 무대 연출을 쉬겠다고 선언 후 2015년 7월 29일 54세의 생일을 맞이하면서 동시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 이역시 상기한 슈퍼 몽키 전공연 중단 사건과는 다른 의미로 일본 무대계에 꽤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기도 했는데, 요시카와 토오루 본인이 논란이나 사건·사고를 일으킨 적 없이 활약중이었기에 더욱 충격이 컸고,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우울증이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해졌음을 알게되자 더욱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많았다.[42] 결국, 다카라즈카 젠느들만 출연한 시카고 무대가 요시카와 토오루 감독의 마지막 연출작이 되었고, 이로 인해 드라큘라도 상연을 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 일본에선 요시카와 토오루가 연출하고 와오 요우카와 하나후사 마리가 출연한 2011년 초연이 꽤 호평이었으니 팬텀처럼 상연권과 감독이 바뀌지 않은이상 일본 드라큘라의 재상연은 요원하다는것이 중론이다.
세 번째로는 프랭크 와일드혼과 와오 요우카와의 혼인 및 2011년 일본 초연만을 절대적으로 기준 삼는 일본 뮤지컬 관객 측의 인식도 포함된다.
6. 의의와 비판
6.1. 의의
일본 후지테레비 프로덕션 버전은 본뮤지컬의 두번째 브러시업 버전[43]이라는 것과 세계 최초로 여성배우에 의한 드라큘라를 내세우게 했기에 현재시점에서는 젠더프리 캐스트의 시초를 만든 만큼 그 의미가 크다고 평가받는다. 그 이전의 웨스트 엔드, 브로드웨이, 일본 뮤지컬계를 포함한 전세계 뮤지컬계에서는 여자배우가 남자역할로 캐스트 되는것에 생소해하거나 회의적인 시선이 많이 있었다.[44] 또, 남자역할을 연기하는 여배우에 대해선 일본에서든 해외에서든 엄연히 다카라즈카 가극단같은 여성극단 한정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2011년 일본 후지테레비 프로덕션은 엄연히 다카라즈카 이외이자 혼성배우들이 출연하는 무대인 오사카 우메다 극장에서 진행이 된 것이기에 일본무대계 최초이자 세계최초의 젠더프리 캐스트를 내세웠고, 이는 브로드웨이 무대계를 포함한 전세계 뮤지컬계에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는 라이센스 판권을 구입한 후지테레비쪽이 아니라 작곡가인 프랭크 와일드혼 본인이 직접 와오 요우카를 드라큘라에 캐스트했다는 의의가 크고[45], 이에 대한 영향으로 브로드웨이 무대계에도 서서히 젠더프리(이하 젠프) 캐스트를 시도하는 계기를 마련했단 것도 크다.[46] 뿐만 아니라 퇴단 후 무대위에서 연기하는 배우일을 다시 할 생각이 없었던 와오 요우카에게 있어 다시한번 무대 배우로서 일을 하게 된 작품이 와일드혼의 드라큘라이며[47] 더 나아가자 아시아 국가에서 최초로 올려진 프로덕션이라는 의미도 크다. 이러한 것도 있어 일본내에서 와오가 연기한 드라큘라에 호평한 이들이나 비판하는 이들도 일본에 드라큘라를 상연할 수 있게 만든 공헌자라고 인정하는 편.[48][49] 이외에도 흥행실패했던 브로드웨이 초연버전과 2007년 오스트리아 그라츠판에 비해 보다 더 코폴라 영화판으로 본뮤지컬의 정체성을 잡아간 것을 포함하여[50] 2004년과 2005년에 출신된 브로드웨이판 컨셉 스튜디오 레코딩에서만 수록되었던 At last가 2011년 일본 후지테레비판에서 정식 채택 되었다는 것도 커다란 의미를 갖고있다.6.2. 비판
2011년 후지테레비 프로덕션에 대한 비판견해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드라큘라에게 엘 리 자벳의 토트의 인외감(人外感)을 양산했다는 것을 포함하여 2011년 초연 시기때를 한정하여 두 주역 캐스트[51]의 다카라즈카 출신자 묶음(宝塚縛り) 및 젠더프리 공연에서 주는 위화감과 이에 따르는 앞으로의 과제, 일본 무대계에서 보여주는 젠더프리 캐스트의 한계, 여전히 부실하게 진행되어버린 마지막 전투씬과 결말 연출에 대한 비판이다.일본 후지테레비 프로덕션에서 와오 요우카의 드라큘라는 여성 배우가 세계 최초로 남자주인공 역할을 맡았고, 그것도 다카라즈카 극장에서가 아닌 혼성무대에서 진행된 세계최초 젠더프리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문제는 와오 요우카가 보여준 드라큘라가 드라큘라라는 캐릭터가 아닌 엘 리 자벳, 그 중에서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의 초연때의 이치로 마키가 보여준 토트의 느낌을 거의 복사한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와오 요우카의 드라큘라 비주얼을 보면[52] 브램 스토커 원작의 드라큘라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판에서 게리 올드만이 분장한 드라큘라의 비주얼도 아닌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 토트의 특징이라 볼 수 있는 파충류적 질감의 중성적(양성적) 외형의 중장발을 가진 무기질적인 인외 이미지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53] 문제는 분위기마저 비슷하게 나와버렸기에 드라큘라와 토트의 캐릭터 구분성이 모호해졌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으며 거기 더하여 원작에서는 여성이었던 뱀파이어 슬레이브들이 뱀파이어 3형제로 TS 된 것 역시 엘리자벳의 토트와 죽음의 천사들[54]과 너무 비슷한 느낌으로 나와서 "토트의 인외감만을 양산화하여 드라큘라라는 작품과 캐릭터만의 개성이 사라졌다.", 명백히 외부 뮤지컬 무대 공연인데, 지나치게 다카라즈카 가극단 방식의 사물화(自物化)가 심하다."라는 비판도 많았다.[55] 특히 일본판 Fresh Blood 장면에서 드라큘라 백작이 조나단의 피를 흡혈하고 회춘해가는 과정에서 TS화 된 뱀파이어 슬레이브들이 "Immordite nosferatu"라고 외치는 부분에서 춤을 추기까지하는데 움직임이 정말로 토호판 엘리자벳의 토트댄서를 연상케 할 정도이다. #
[1]
일본에서 상연한 드라큘라는 젠더프리의 시초라는 의미도 있다. 물론 이 젠더프리에 대한 의견은 지금도 찬반논쟁의 한 요소로 꼽히기도 하며, 오늘날 전 세계 뮤지컬계에 이것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대한 숙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과 함께
인외 캐릭터 배역에서나마 성별을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바로 와오 요우카가 연기한 드라큘라이다. 또한,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의 토트(죽음)와는 달리 다카라즈카 극장이 아닌 남자 배우들과 함께 공연하는 혼성 외부 무대였기에 젠더프리 배역 면에서는 더 의미가 크다고 평가 받기도 한다.
[2]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 초연의 엘리자벳이자
토호판 엘리자벳 신무대판을 처음 장식한 일본
엘리자벳의 대표이면서 일본 내 최고의 엘리자벳 배우로도 꼽힌다. 이외에도
실베스터 르베이가 작곡한 엘리자베스 1세의 공주 시절 이야기인 레이디 베스의 베스, 다카라즈카판 〈
베르사유의 장미〉, 도브 아띠아의 〈1789 ~바스티유의 연인들~〉, 르베이의 〈
마리 앙투아네트〉에 출연하는 등
마리 앙투아네트가 등장하는 뮤지컬을 3작품이나 맡은 바 있으며, 2023년 12월에는
베토벤의 히로인 안토니 브렌타노 역할로 출연했을 만큼 르베이 뮤지컬의 히로인 전문 배우로 불린다. 본명은 다이고 마리코(醍醐まり子)이며 다이고(醍醐)가문 자체가 일본 황족 분가이기에 황손계에 해당된다. 이 위치 때문에 일본 뮤지컬계의
오고쇼라 불리며 오디션을 보지 않고도 바로 캐스팅 되는 높은 위치에 속한 토호 뮤지컬 여자 배우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양의 뮤지컬 팬들 입장에서는 하나후사 마리가 다카라즈카 시절부터 토호 뮤지컬에서도 재력을 이유로 지나치게 지원받고 있다는 것과, 오디션 없이 특정 배역에 캐스트 될 수 있다는 위치라는 것에 대한 논란 및 모든 배역에 과도한 비극성과 가련함만을 강조한 연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있으며, 이런 이유로 인해 레이디 베스는
히라노 아야,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사모토 레나, 엘리자벳은
마나키 레이카를 더 높게 쳐주는 경우가 많다.
[3]
하나후사 마리와 와오 요우카는 다카라즈카 주조 톱스타 콤비로 활약했으며, 팬들에게 와오하나(和花) 혹은 와오 요우카의 본명인 오카와 타카코(大川貴子)에서 따온 타카하나(貴花)라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두 배우는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에 두 번이나 출연했으며, 2006년 〈Never Say Good bye ~어느 사랑의 궤적~〉을 끝으로 다카를 퇴단했는데 이 작품의 작곡가가 프랭크 와일드혼이었고, 이 시기부터 와오 요우카와 하나후사 마리는 와일드혼 뮤지컬과 인연을 이어나가게 된다. 한편, 와오 요우카는 2010년에 와일드혼과 재회하여 오랫동안 교제한 끝에 2015년에 하와이에서 결혼에 골인했다. 연출은
엘리
자벳,
토호판 모차르트!로 유명한 코이케 슈이치로(小池修一郎)이기에 다카라즈카 오리지널 창작극 중 최초로 유명 서양인 작곡가에 의해 작곡된 뮤작이자 다카라즈카 역사상 최초의 미ㆍ일합작 오리지널 창작극이기도 했기에 일본 내에서 꽤 화제가 되기도 했다.
[4]
반 헬싱 교수를 맡은
극단 사계 출신 스즈키 소마가 예시. 스즈키 소마는
토호판 엘리자벳 초연과 구판무대 시대(2000~2008년 까지)때 프란츠 요제프 역을 맡았으며 한국 뮤지컬 토호 라이선스판
프랑켄슈타인의 룽게/이고르를 맡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룽게/이고르의 일본판 배우로 좀 더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23년 3월 도쿄 제국극장(帝国劇場)에서 상연되었던
스파이 패밀리 뮤지컬판의
헨리 헨더슨 역에 캐스트 되어 연기했는데 엄청난 싱크로율을 자랑하여 호평받았다.
[5]
현재는 절판이라
메루카리 같은 중고판매장에서 구입해야하며 가끔 히비야 다카라즈카점에 중고매물이 나오긴 한다.
[6]
그러나 와오 요우카가 연기한 드라큘라가 정적인 것은 당시 상태를 감안해야 한다. 와오 요우카는 2005년 다카 창작극 『W-ing』공연 도중 와이어가 끊겨 높은 위치에서 떨어져 골절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오랫동안 부상 후유증이 지속되었다. 그래서인지 와일드혼과 혼인 이후로는 무대 출연보다 콘서트 중심으로 활동중이다.
[7]
좀 쉽게 말하자면 노래를 부를 때에도 연극으로 대화하듯이 연기하는 것을 더 중시한다는 얘기다. 일본은 거의 대부분 뮤지컬의 개념을 연극이라는 인식을 두고 감상하는 경우가 많으며, 가창을 잘하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출연자가 얼마나 캐릭터에 적합한 이미지를 보여주는지, 몸짓의 기품과 우아함같은 느낌을 뿜어내면서 연기를 능숙히 하는지에 더 주목한다. 오히려 샤우트를 막 써서 내지르면 욕먹는 쪽인데, 극에 몰두해서 연기를 하는게 아니라 싸움만 한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 그 이유. 그 외에도 섬세하고 디테일한 미학을 얼마나 잘 살릴 수 있는가도 중시한다. 이는
카이 쇼마의 인터뷰에서도 확인이 가능한데 한국 뮤지컬은 파워계를 중시하는 반면 일본 뮤지컬은 세부적인 미학을 선호한다고 언급하기도 했으며, 자신 역시 일본에서도 한국 뮤지컬의 파워계처럼 강한 가창으로 부르는 스타일로 밀고 나가고 싶어도 일본 연뮤 관객들의 선호도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8]
스토프레(ストプレ)는 스트레이트 플레이(Straight Play)의 줄임말로 전통적인 연극의 한 형태를 뜻한다. 통상적인 의미로는 등장인물의 논점이나 심경, 사고방식 등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불리며, 스토프레에서 말하는 이야기의 진행이란 불가분의 가창을 포함하지 않는 연극, 즉 오페라와 오페레타, 뮤지컬(이상을 종합적으로 칭해서 가극이라고 하는 것들) 이외의 연극을 가리킨다. 다만, 스트레이트 플레이에서도 '가창 장면'을 포함하기에 엄밀하게는 구별할 수 없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9]
이러한 비현실적 인외감을 주기 위해 장발로 설정된 캐릭터의 시초는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의
이치로 마키가 연기한 토트(죽음) 캐릭터 디자인부터 본격적으로 성행되었다. 물론 그 전에
엘리자벳의 음악을 일부 사용한 다카라즈카 작 로스트 엔젤에서 타천사
메피스토를 연기한
스즈카제 마요가 있으나, 로스트 엔젤은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이 정식 계약을 맺은 후 저작권상의 이유로 상연하지 않고 있으며, DVD나 블루레이화도 되지 않은 작품이기에 장발 인외의 시초는 이치로 마키가 연기한 토트를 꼽는다.
[10]
일본 역대
시카고 무대 공연 중
다카라즈카 가극단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다카라즈카 전 남역 출신자들만 출연한 시카고 버전
# 무대를 연출한 감독이 바로 이 사람이다. 이 시카고 무대에서도 와오 요우카가 벨마 역으로 출연. 안타깝게도 이 다카라즈카 남역 출연판 시카고 무대가 요시카와 토오루 감독의 마지막 무대 연출작이 되었다. 그는 2015년 7월 29일에 우울증으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11]
일본 드라큘라 뱀파이어 3인방 중 한 명으로 출연.
[12]
스튜디오 AD(スタジオAD) 소속.
[13]
후술되는 내용을 이유로 2011년 일본 초연 드라큘라는 와오 요우카와 하나후사 마리의 오랜 일본 팬들이 가장 꺼리는 공연으로 꼽힌다. 아예 이단으로 지목하는 수준.
[14]
와오 요우카가 매년 크리스마스 기간마다 일본에서 진행하는 디너쇼. 와일드혼과 본격적인 교제 및 혼인 이후론 남편 와일드혼이 반주자를 맡는다. 가장 최근 공연인 23년 와오 요우카 데뷔 35주년 기념 크리스마스 디너쇼에선 미노루 코우, 아이카 미레, 시온 유우,
김준수를 게스트로 초대하기도 했다. 젠느 톱스타 시절 부상 후유증으로 뮤지컬 무대보다 콘서트 중심으로 진행하는 와오 요우카의 장기 활동 중 하나이다.
[15]
다만, 후술한 내용과 연계해서 생각하면 이 시기에도 와오 요우카와 하나후사 마리는 불화로 인해 굉장히 신경전인 상태였다.
[16]
이후
프랭크 와일드혼이
JTBC에서 진행한
모 방송 115회에서 출연할때 파트너이자 아내인 와오 요우카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일본 초연 드라큘라 겸 일본인 최초로 NY
시카고 무대에 출연했다고 엄청난
팔불출스러운 자랑을 하기도 했다.
[17]
국제 음악 극장에서 라이선스를 받은 드라큘라 공연 역시 바로 그라츠판을 기반에 두고 있다. 그라츠판 캐스팅 레코딩은 2008년에 출시되었고 판매 차트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18]
이 Roseanne은 반 헬싱이 행방불명이 된 자신의 아내를 그리워하는 넘버로, 2014년에 초연된 한국 OD컴퍼니판 헬싱과 줄리아의 서사의 틀이 되는 넘버이기도 하다. 단, 한국판 공연에서 이 넘버는 삭제되었으며 대신 새로 작곡된 Last man standing이 수록되었고, 드라큘라의 She와 함께 한국판만의 오리지널 넘버가 되었다.
[19]
정확히 한국판은 1막에서 탈선드립 후에 한국판 오리지널곡인 She-At last-Loving you의 순서로 진행되고, 2막 마지막 전투 이후 미나가 모든 기억을 되찾을 때 단독으로 리프라이즈를 부른다.
[20]
훗날
토호판 엘리자벳 22-23년 공연에서 쿠로바 마리오와 함께 아니키스트 캐릭터인 루이지 루케니를 연기하게 된다. 하나후사 마리와의 인연은 드라큘라가 최초다.
[21]
2011년
실베스터 르베이 국제 콩쿨 우승자. 드라큘라 일본 초연으로 하나후사 마리와 첫 인연을 맺었으며, 23년 12월 9일에 일본 초연한 르베이의 신작 뮤지컬
베토벤에서
극단 사계 출신 카이호 나오토와 함께 더블캐스트로 카스파 베토벤을 맡으면서 하나후사 마리와 또 다시 공연하게 된다.
[22]
초연에 비하면 상당히 굉장히 짧은 기간이다.
[23]
애초에 일본 드라큘라의 루시, 조나단과 잭 스워드 배역은 갓 활동중인
와카테 등용문으로 설정 잡아 캐스팅 되었다고 한다. 초연과 재연에서 갑자기 바뀐 것도 그 이유. 물론, 미나의 경우는 당시 하나후사 마리가 와오 요우카와의 불화로 결별하여 드라큘라 초연 이후로는 참여하지 않게 된 것도 있다.
[24]
초연의 하나후사 마리는 163cm이고, 재연의 아베 나츠미는 152cm이다. 일본인 여성의 평균 신장이지만, 174cm인 와오 요우카와 비교하면 꽤 작은 편에 속한다. 비(非)다카라즈카 뮤지컬 여배우들은 신장이 작은 배우들이 많은데, 이런 이유 때문에 비엔나판부터 강하게 신장 제한을 지시해서 적용이 된
실베스터 르베이의 대표작인
엘리자벳의 타이틀롤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반대로 160cm 이상은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이 더 많은 편.
[25]
이 시기 하나후사 마리가 맡은 배역 중 가장 인지도를 높인 것이 1996년 설조에서 초연한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의 씨씨. 지금도 일본에서는 하나후사 마리의 씨씨를 최고로 여기며 그녀를 기준으로 삼을 때가 많다. 물론 하나후사 마리가 연기하는 씨씨는 원작자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우아하고, 아름다운 비련의 황후에 가까운 캐릭터상이라 해외에서는 비판도 많았다.
[26]
와오 요우카는 스미레코드 규정하에 사용한 예명. 본명은 오가와 타카코(大川貴子)이며, 젠느 시절 애칭은 본명에서 따온 '타카코(たかこ)' 혹은 '타카짱(たかちゃん)'으로 불렸다.
프랭크 와일드혼과 혼인 이후 프랭크 타카코(フランク TAKAKO)로 바뀌었으며, 월드투어 콘서트 활약시 역시 본명에서 본뜬 TAKAKO로 활동중이다. 한국 드라큘라 배우인
김준수 역시 와오 요우카를 타카코라고 부르는데, 이는 김준수의 공식 인스타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27]
그 유명한 성우 출신 뮤지컬 배우
히라노 아야도 주조 톱 콤비 타카하나의 열렬한 팬이라 두 젠느의 공연을 자주 보러오곤 했다.
[28]
하나후사 마리는 혈통 자체가 일본 천황가의 피를 잇는 가문 출신이고, 이로 인해 입단 초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고 다카라즈카 극단 내에서 집객력도 상당했다. 황손 혹은
화족계 출신이라는 이유로 다카라즈카 가극단 내부에서 입단 초반부터 하나후사를 철저히 보호하고 아꼈다는 얘기도 있다. 황족 분가 후손인 것 뿐만 아니라 하나후사 마리가 이시마루 칸지의 라디오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 언급한 바에 의하면 모친은 쇼치쿠(松竹) 가극단의 유명 스타였다. 즉, 황손이면서 연예인 2세라는 얘기. 하나후사 마리는 다카라즈카 여역 톱스타 중에 높은 호칭까지 받았으며, 2006년 7월 2일에 다카를 퇴단할 때까지 여톱으로써 임기는 총 12년을 넘었고, 이는 역대 다카 남톱과 여톱을 통틀어 최장 기록이 되었다.
[29]
코이케 슈이치로가 각본을 쓴 다카라즈카 창작극 중 유일하게 걸작 취급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이 좋은 편. 올드 다카라즈카 팬들 사이에선 전 주조 톱 콤비 타카하나를 위시한 것이 잘 드러난 작품이란 평도 있다.
[30]
하나후사가 와오의 매니저로 일하게 된 것은 자진해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심지어 두 사람이 다카 젠느 활동 시절에는 사이가 너무 좋아서 동성연애를 하는 관계가 아니냐는 소문도 퍼질 정도였다. 두 배우가 아이를 입양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거기다 다카 주조 톱스타 젠느 활동 당시 와오하나(和花) 혹은 와오 요우카의 본명인 "오카와 타카코(大川貴子)"를 본뜬 타카하나(貴花) 주조 콤비 혹은 커플이라 불릴 만큼 다카 팬들에게 인기도 상당했다.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퇴단 후에도 함께 개인 회사를 차렸다는 얘기마저 나올 정도로 2011년 와일드혼의 뮤지컬 드라큘라 일본 초연 때까지는 서로 사이가 좋았다는 것은 확실하며, 일본 내에선 우정 이상의 관계였다라는 것이 중론.
[31]
대한민국에서는 일본 토호
프랑켄슈타인의 빅터 프랑켄슈타인 W캐스트 배우로도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20세 나이에 토호판 모차르트! 초연(2002년)에서 이미 떴던 배우이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중이다.
[32]
물론 와오 요우카의 컨디션 불량도 일리 없는 말은 아니다. 와오 요우카는 주조 다카라젠느로 활약 시절 공연 중 부상을 크게 당한 적이 있다. 2005년 다카 창작극 『W-ing』공연 도중 와이어가 끊겨 높은 위치에서 떨어져 골절부상을 입었고, 이는 일본 내 다카라즈카 상연 도중 최악의 사고ㆍ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와오 요우카가 퇴단 후 콘서트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도 젠느였던 시절에 입은 부상과 관련이 없지는 않은 것이 퇴단 후 무대에서도 격한 액션이 나오는 뮤지컬 출연은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2011년 드라큘라 초연 때 와오 요우카가 정적인 느낌을 보였던것도 부상 후유증도 포함되어서다.
[33]
그렇게 해서 더블 캐스트로 들어온 배우가 애니메이션 성우 출신
히라노 아야. 히라노 아야는 2013년
레 미제라블의 에포닌으로 제극 무대에 데뷔했고, 오디션을 통해 하나후사 마리와 레이디 베스 더블캐스트가 되었다. 이는 제극 뮤지컬 최초이자 일본 뮤지컬계 왕족 역으로는 최초로 다카라젠느와 비(非)다카라즈카 뮤지컬 여배우이자 성우 출신이 왕족 히로인을 맡은 파격적인 사례였다.
[34]
어차피 토호나 우메다 둘 다 같은
한큐전철 소속이라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자회사라고 보면 된다. 자녀에 비유하자면 다카라즈카가 장남(장녀), 토호가 차남(차녀), 우메다가 한큐전철의 삼남(삼녀)에 해당한다.
[35]
와일드혼의 다른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도 포함.
엑스칼리버가 현 주조 남역 톱스타인
세리카 토아를 주연으로
다카라즈카 버전으로 올려진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와일드혼 뮤지컬 중
데스노트도 있으나 이는
호리프로 제작 뮤지컬이기에 논외. 다만 데스노트를 제작한 호리프로 역시 이를 의식해서인지
한국 프로덕션보다 상연 횟수는 적은 편. 호리프로 뮤지컬에 하나후사 마리가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음에도 그만큼 일본 뮤지컬계에서의 위치와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
[36]
실질적 공헌자는
이치로 마키이다. 이치로 마키는 코이케 슈이치로 감독과 설조 프로듀서와 함께 비엔나에 가서 "비중이 적더라도 엘리자벳의 토트를 하고 싶다."라고 했었고, 그로 인해 비엔나 VBW와
실베스터 르베이, 미하일 쿤체를 만나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 계약을 성사시켰다. 결과는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이 첫 해외 라이선스판이라는 기록 및 엘리자벳이라는 뮤지컬이 전 세계 프로덕션 버전으로 나온 계기를 마련했으며, 이치로 마키도 토트 역으로 다카라즈카를 퇴단하면서 쿤체와 르베이에게 인정받고, 토트 역으로 완전 뜬데다 르베이가 코이케의 연락을 받고
이치로 마키를
토호판 엘리자벳의 씨씨로 올려주기 위해 토호판 초연에만 연주되었던 새로운 씨씨의 넘버곡 "꿈과 현실의 벽에(夢とうつつの狭間に, Zwischen traum und wirklichkeit)"도 작곡하게 했거니와 이 토호판 엘리자벳을 통해서 대한민국에서도 엘리자벳이라는 뮤지컬의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계기도 만들어낸 것.
이치로 마키가
토호판 엘리자벳 당시 다카라즈카 남역 발성의 부작용 및
다카판의 초연 때 상대 역이었던
하나후사 마리를 비롯한 여역(娘役) 씨씨의 우아함과
외강내유에 초점을 맞춘 비엔나판 버전과는 전혀 거리가 먼 캐릭터 해석으로 비판은 상당했어도 일본 및 동아시아 국가에다 엘리자벳을 알리게 해준 공헌자라는 것은 거의 공통된 중론.
[37]
특히 토호 장기 레퍼토리인
레 미제라블과
미스사이공의 팬들은 코이케 슈이치로 및 다카라즈카 출신들이 쉽게 캐스팅 되는 비엔나 뮤지컬에 대한 불호가 엄청 큰 걸로 유명하다.
[38]
당장 토호 뮤지컬계 최초의 도쿄예대 성악과 출신
이노우에 요시오를 포함하여
야마자키 이쿠사부로를 더 적극적으로 기용했단 것과 한국계
극단 사계 출신인
박동하, 우라이 켄지와
미우라 료스케,
카이 쇼마같은 라이더 출신,
카토 카즈키,
후루카와 유타, 이레이 카나타, 타테이시 토시키, 쿠로바 마리오,
키무라 타츠나리, 히로세 유스케 같은
테니뮤 출신,
쿄모토 타이가같은
쟈니스 출신을 포함하여 지역 아동 극단인 키즈 뮤지컬 토스 출신이자 2016년에 열린 '전일본가창력선수권 가창왕(全日本歌唱力選手権 歌唱王)' 결승전 진출자이기도 한
키노시타 하루카와
노기자카46 1기생인
이쿠타 에리카, 소녀신당의
아오이 와카나를 기용하여 뮤지컬계로 데려온것도 코이케 슈이치로이다. 이 중에서 코이케 슈이치로가 높이 평가하는 배우는
후루카와 유타,
쿄모토 타이가,
야마자키 이쿠사부로, 타테이시 토시키,
이노우에 요시오,
키노시타 하루카,
미우라 료스케이다. 그러나
작년부터 다카라즈카에 대한 불미스런 일이 보도되면서
코이케 슈이치로에 대한 보도도 나오게 되었는데, 이 보도가 나오면서 그들의 재능과는 별개로 코이케 슈이치로가 추구하는 다카라즈카 젠느 같은 분위기와 관상이 아니었다면 코이케가 쉽게 등용하지 않았을 것, 관상을 이유로 재능을 폄하하고 후려쳤을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생기는 중이다. 실제로
이노우에 요시오,
야마자키 이쿠사부로,
쿄모토 타이가,
후루카와 유타,
키노시타 하루카, 타테이시 토시키, 히로세 유스케,
키무라 타츠나리,
미우라 료스케는 일본 내에서 다카라젠느에 가까운 분위기와 관상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기도 하는 뮤지컬 배우들이기도 하다. 특히
후루카와 유타는 "다카라즈카 암조(闇組) 톱스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다카라젠느같은 분위기가 있으며, 타테이시 토시키는 처음 본 이들이 다카라젠느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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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하나후사 마리를 설조 여톱으로 만들기 위해 가극단 내부인들과 함께 하나후사의 전임 설조 18대 여톱이었던 무라사키 토모(紫とも)를 거의 내쫓듯이 퇴단시켰다라는 논란도 있다. 이는 묻혀진 사건이지만
아마미 유키와
스즈카제 마요,
다이치 마오가 활약하던 시절을 지켜본 일본 내 올드 다카라즈카 팬들은 지금도 무라사키 토모의 퇴단 건을 가끔씩 언급할때가 많다. 이유는 무라사키 토모의 퇴단 공연임에도 노래를 부르는 씬은 거의 없고, 당시 2등 여역이었던 하나후사 마리에게 노래를 부른 장면이 쏠렸을 정도로 하나후사에게 몰빵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코이케 슈이치로의 개입이 크게 들어갔단 얘기가 있으며, 당시의 무라사키 코모의 퇴단 공연을 본 이들은 현재까지도 여러모로 의구심이 느낄 때가 많다고 언급하곤 한다.
[40]
두 작품 모두 1991년에
다카라즈카 가극단에서 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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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오 요우카와의 불화 및 결별 건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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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카와 토오루의 관계자에 의해 유서 역시 발견되었는데 "1월부터 정리해와서, 지금은 상쾌한 기분입니다."라고 쓰여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식사를 거르는 일도 많았다고. 아내 사후 요시카와 토오루의 우울증이 심각한 상태였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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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브러시업은 It's Over가 처음 연주가 된 2007년 오스트리아 그라츠판.
[44]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킹의 라피키의 경우 여자배우가 연기하지만, 원작에서는 늙은 남성캐릭터였던것을 뮤지컬판에선 여제사장으로 TS화 시킨것이므로 엄연히 젠더프리 캐스트와는 다르다.
[45]
프랭크 와일드혼이 뉴욕에서 직접 와오 요우카 출연의 일본판 드라큘라를 홍보하고 호평하는 강연을 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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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와일드혼은 뮤지컬 시카고에서 와오 요우카를 포함한 전 다카라즈카 남역톱스타들만 출연한 요시카와 토오루 무대•연출버전을 미국 브로드웨이에도 올려질 수 있도록 적극 지지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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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오 요우카 자신도 다카라즈카 퇴단작 Naver Say Goodbye와 함께 와일드혼과 인연을 다시 맺게 해준 작품이라 얘기하며 드라큘라의 큰 애정을 가진 인터뷰를 올린바가 있다. 또한, 거기에 그치지않고 2007년 오스트리아 그라츠판을 직접 관람하면서 와일드혼이 작품 내에서 들려준 음악성에서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와오 본인이 퇴단공연작과 같이 애착을 가진 작품이라고 얘기할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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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사례도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의 토트(죽음)를 연기하여 퇴단했던
이치로 마키도 일본에서 엘리자벳이 상연된 것과 동시에
실베스터 르베이와 미하일 쿤체를 일본 뮤지컬계로 이끈 공헌자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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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금 더 성공한 쪽은 이치로 마키와 엘리자벳이며, 와오 요우카와 드라큘라는
상기한 일본 무대계의 해프닝건과 후술하는 토트의 인외감을 드라큘라에 복사한 듯한 표현으로 인해
엘리
자벳보다 크게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상기한 2009년 슈퍼 몽키 전공연 중지사건으로
하나후사 마리와 함께 와오 요우카에 대한 비호의적 시선이 꽤 있는 편이고, 이는 현재도 두 젠느들에 대해 여전히 싸늘한 시선도 많다. 오히려 와일드혼의 드라큘라같은 경우 일본현지의 뮤지컬
덕후들에게도 한국 OD컴퍼니판이 더 성공한 버전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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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확실하게 코폴라 영화판에 가까워진건 2014년에 초연이 된 한국OD컴퍼니판. 한국 라이센스판도 그라츠판, 후지테레비판처럼 논레플리카 무대이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김준수의 제안으로 한국판에서만 추가가 된 She에서 영화판에도 나온 미니와 드라큘라의 과거이야기를 잘 표현하여 코폴라 영화판의 팬들에게 호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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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와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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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본 초연때인 2011년 공연때의 와오 요우카가 드라큘라로 분장한 비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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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충류적 질감의 중성적(양성적) 외형의 중장발을 가진 무기질적인 비(非)인간적 존재라는 설정은 빈판 오리지널 엘리자벳 92년 초연 당시의 우베 크뢰거가 연기한 토트가 시발점이긴 하다. 이 시기의 우베 토트의 비주얼과 메이크업을 보면 정말로 중장발의 양성적인 이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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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빈판 엘리자벳 초연 시기의 우베 크뢰거가 연기한 토트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여 어레인지 된 것이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의 토트의 이미지이다. 다카판과 같은 해인 96년에 초연했던 헝가리 부타페스트판의 구판무대 버전도 우베 크뢰거가 연기했던 토트의 이미지를 어레인지해서 디자인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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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벳의 원판 독일어에서는 Todesengel(토트의 천사들 혹은 죽음의 천사들)이며, 일본 다카판에서는 흑천사, 토호판에서는 토트댄서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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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물화 문제는 원작 캐릭터를 이용해서 정작 원작고유의 느낌을 퇴색하게 만든다는 것에서 질책받기도 하는 문제요소로 꼽히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 그 캐릭터를 붕괴시키거나 더럽히는 용도로 악용될 수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성우
후루야 토오루의
불륜건때 후루야 토오루가
자신이
맡았던
캐릭터를 불륜에 이용하면서 최악의 형태로 모욕했던 일을 꼽을 수 있으며,
다카라즈카판 엘리자벳과
토호판 엘리자벳,
토호판 모차르트!의 연출감독 코이케 슈이치로가
갑질논란건에 대한 보도가 도마에 오르면서 그간 연출했던 작품은 물론 2023년 11월에 제국극장에서 공연되었던 《뮤지컬 뤼팽~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의 비밀~
#》도 원작 캐릭터의 사유화 및 외부 뮤지컬 무대의 다카라즈카화(宝塚化)가 심하다고 비판받는 중이다. 그 외에 다카라즈카에서 공연이 된 라이센스 뮤지컬 공연이나
원작
만화와
소설을 기반으로 하여 제작이 된 다카라즈카 창작극도
작년에 생긴 갑질로 인한 생도 젠느의 자살사건 여파로 인해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사물화가 심한게 보인다는 것과 이를 외부 뮤지컬 무대(토호, 우메다)에서도 심하게 적용할때가 많다는 비판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