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18 19:28:59

댄 존슨

파일:danjohnsonsigned.jpg
대니얼 라이언 "댄" 존슨
Daniel Ryan "Dan" Johnson
출생 1979년 8월 10일 ([age(1979-08-10)]세)
미네소타 주 쿤 래피즈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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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네브래스카-링컨 대학교
포지션 1루수, 지명타자 투수[1]
투타 우투좌타
신체 188cm, 95kg
프로입단 2011년 드래프트 7라운드 전체 221번 ( OAK)
소속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05~2008)
탬파베이 레이스 (2008)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009)
탬파베이 레이스 (2010~2011)
시카고 화이트삭스 (2012)
볼티모어 오리올스 (2013)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15)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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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야구선수. 타자 시절에는 주로 1루수나 지명타자로 나섰다.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는 MLB의 인지도가 떨어지기에 은퇴한지 좀 지났고 커리어도 특출날거 없는 선수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인데, 댄 존슨은 중요한 경기에서 보여준 기적적인 활약 때문에 이름이 알려졌다.

2. 선수 경력

2.1.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시절

미네소타 주 블레인 고교를 거쳐 대학야구는 네브래스카-링컨 대학교에서 최고의 성적을 냈다. 당시 대학야구 올 아메리칸 팀에도 뽑히고 팀의 칼리지 월드 시리즈 진출에도 일조했다. 그리고 얼리 드래프티 자격으로 2001년 드래프트 7라운드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지명을 받았다. 입단과 동시에 쇼트싱글A부터 출발한 댄 존슨은 특유의 장타력을 바탕으로 마이너리그에서 성장세를 이어갔고, 2005년 5월 27일, 드디어 메이저에 콜업되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원정에서 8번타자 1루수로 선발 출전하며 메이저 데뷔전을 치렀다. 콜업 초반에는 장타가 안 나오고 똑딱질만 어찌저찌 하며 부침을 겪었고, 이로 인해 당초 5~6번 타순에 들어서던게 나중에는 7~8번으로 조정되기도 했다. 타순 조정이 어느정도 먹혔는지 6월 21일 세이프코 필드 원정에서 7번타자로 나와 메이저 통산 첫 홈런을 때려내더니, 이후 포텐셜을 보여주며 빠르게 팀의 중심타선으로 자리잡고 고정 5번 타자를 담당했다. 7~8월 두달간 50경기에서 홈런 10개를 때려낸 것을 포함, 타출장 .320/.401/.556의 아름다운 비율스탯을 보여줬으나, 어느정도 분석이 됐는지 9월부터 극심한 부진에 빠지며 다소 아쉽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데뷔시즌 성적은 109경기 타출장 .275/.355/.451 15홈런 58타점 fWAR 1.4로, 9월에 까먹은 성적이 아쉽지만 그래도 데뷔 첫 시즌인걸 감안하면 만족스러운 성적이다. 0.806의 OPS는 마크 엘리스에 이어 팀 내 2위였고 부동의 4번 타자 에릭 차베스보다도 높았으며, 직전 시즌 댄 존슨과 비슷한 1루/지타 롤로 나와 커리어 하이를 찍은 에루비엘 두라소가 부진에 빠지고 스캇 해티버그의 노쇠화는 가속화되는 시점에서 존슨의 선전은 더더욱 팀에게 도움이 되었다. 특히나 홈구장이 그 악명높은 오클랜드-앨러메다 카운티 콜리세움인걸 감안하면 더욱 의미있는 성적.

그러나 2006년에는 개막 엔트리부터 메이저리그에 합류했음에도 지난 시즌 막바지의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1루수가 OPS 7할을 턱걸이하는 상황 끝에 올스타 브레이크때 다시 마이너로 내려갔다. 9월 확장엔트리 때 다시 콜업되었지만 성적은 여전히 신통치 않았고 결국 91경기 .234/.323/.381 9홈런이라는 아쉬운 기록을 남긴 채 시즌을 마감했다. 존슨이 비운 1루 자리는 닉 스위셔가 땜빵으로 들어갔다가 그대로 포스트시즌까지 1루 주전으로 나섰고, 스위셔가 자리를 옮기며 빈 좌익수 자리는 제이 페이튼이 의외의 활약으로 괜찮게 메워줬다. 결국 자리를 완전히 잃은 존슨은 팀이 서부지구 1위를 차지했음에도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이 해 선탠 로션을 바르다가 로션이 눈에 들어가 복시 증상이 생겨서 성적이 급락했다고 한다. 후술하겠지만 그리 특출나지 않은 컨택을 눈야구로 커버하는 스타일인 선수가 복시를 겪었으니 성적이 안 떨어질 수 없었다.

복시 증상은 2007시즌을 앞두고 모두 해소되었고, 2005년의 모습만 보여준다면 존슨이 에이스의 1루를 따내는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스위셔야 외야로 돌아가야할 선수고 대안이라고 할만한 선수라고 해봐야 수비 불능으로 사실상 지명타자 마이크 피아자나 아직 풋내기인 대릭 바튼 정도였으니. 실제로 개막전 1루수는 댄 존슨이 유력했지만, 스프링 트레이닝 막바지에 고관절 부상을 당해 엔트리에서 빠졌다. 다행히 빠르게 회복하고 4월 25일 엔트리에 합류한 존슨은 5월들어 맹타를 휘두르며 9할대 OPS로 에이스의 3번~4번 자리를 차지하고 2005년에 남겨둔 포텐셜을 마저 다 터뜨리나 싶었지만, 6월부터 컨택이 무너지면서 성적이 급전직하했고, 6월 말 타순 조정으로 잠깐 살아나나 싶더니 7월 중순부터 다시 페이스가 떨어지며 7월 한달간 타율 .156을 찍는 부진을 겪었다. 이후로는 7할 후반대 OPS를 유지하다가 시즌을 끝냈다. 최종 성적은 117경기 .236/.349/.418 18홈런 62타점. 어느새 27~28세로 적지 않은 나이가 된 존슨이 성장까지 정체되고 뚜렷한 약점을 보이자, 결국 빌리 빈 단장은 바튼을 빠르게 메이저로 콜업하기로 하고 2008년 4월 9일 존슨을 DFA했다.

2.2. 탬파베이 레이스 1기: 미라클 비긴즈

DFA 9일 후인 4월 18일,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존슨을 클레임했지만 5일만에 다시 DFA 처리되었고 결국 트리플A로 내려갔다. 그렇게 트리플A에서 시즌 내내 머물다가 9월 9일 확장엔트리 시행과 함께 다시 메이저 무대를 밟았다.

콜업 당일 탬파베이는 펜웨이 파크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다. 당시 탬파베이는 창단 이후 20년만에 처음 지구 우승에 근접한 상황이었으나, 9월 들어 1승 5패의 부진한 성적으로 승차가 1.5경기까지 줄어들었고, 전날 있었던 시리즈 1차전에서도 패하면서 승차는 반 게임까지 줄어들고 펜웨이 파크 시즌 전패라는 굴욕을 이어가는 상황이었다. 존슨은 원래 이 날 선발 라인업에 포함될 예정이었지만 비행기가 연착되면서 카를로스 페냐가 1루로, 클리프 플로이드가 지명타자로 먼저 선발 출전했다. 보스턴을 상대로 강한 스캇 카즈미어가 6이닝 2실점을 기록하고, 타선이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3점을 득점하며 앞서던 상황이었으나, 8회 말 제이슨 베이가 댄 윌러에게 역전 투런포를 때려내며 스코어는 3:4로 역전되었다. 9회 초, 탬파베이는 조나단 파펠본이 이미 2연투를 한 상황이라 등판하기 힘들 것을 생각하고 오카지마 히데키를 상대하기 위해 플로이드 타석에 우타자 저스틴 러지아노를 대타로 내보냈지만,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당연하단듯 3연투를 감수하고 파펠본을 올렸다. 결국 조 매든 감독은 러지아노를 다시 들여보낸 뒤, 댄 존슨을 대타로 내보냈다. 오클랜드에서 4월 2일 대타로 딱 한 타석 들어선 뒤 5개월만에 다시 들어서는 메이저리그 타석이었다.


기적과도 같은 동점 솔로 홈런을 날렸다. 결국 이 홈런을 기점으로 3연투 여파가 제대로 터진 파펠본은 페르난도 페레즈와 디오너 나바로에게 연속 2루타를 맞고 5:4 역전을 허용했고, 9회 말 등판한 트로이 퍼시벌이 실점 없이 이닝을 막아내며 탬파베이가 경기를 잡아내게 된다. 당시 지구 우승을 위해 분위기가 한참 오르고 있던 보스턴은 이 경기에서 기세가 꺾이며 다음날 연장 14회 혈투 끝에 패해 시리즈를 탬파베이에게 내줬고, 결국 반등하지 못하고 지구 우승을 탬파베이에게 내주게 된다. 결국 이 해에 탬파베이 레이스가 처음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했고 나아가 포스트시즌에서는 다시 만난 보스턴을 또 다시 격파하고 창단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뤄냈다.

2.3.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시절

2009년 시즌을 앞두고 NPB 요코하마 베이스타즈[2]와 120만 달러에 계약하며 일본 리그에 진출했다. 일본에서의 성적은 117경기 .215/.330/.462 24홈런 57타점으로, 공갈포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팬들 사이에서는 1루밖에 못 보는 선수를 외야수랍시고 데려왔다 결국 1루만 본[3], 암흑기 요코하마 프런트의 무능함을 보여준 사례로도 회자되고 있다. 결국 1년만에 팀을 나와 미국으로 돌아왔다.

2.4. 탬파베이 레이스 2기: 미라클 리턴즈

미국으로 복귀한 존슨은 탬파베이와 1년 50만달러 스플릿 계약을 맺었고, 트리플A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여전히 트리플A에서는 여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다가 1루수와 좌타 대타감이 필요했던 팀 상황[4] 덕분에 8월들어 메이저로 콜업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메이저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이라이트 영상
그러다 8월 28일, 7번 1루수로 선발 출전해 10회 말 선두타자로 나와 스캇 애치슨을 상대로 끝내기 솔로 홈런을 때려냈다. 이 즈음 보스턴은 2년 전보다는 약해도 기세를 꽤 끌어올리며 포스트시즌 진출 의지를 내비치던 시점이었고, 이 경기 전날에는 존 레스터가 14K 호투로 탬파베이를 발라버린지라 분위기 반전도 필요했는데 그 타이밍에 귀중한 홈런을 때려냈다.


하이라이트 영상
9월 15일, 뉴욕 양키스와의 홈 경기에서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탬파베이는 이 때 오락가락하는 경기력으로 뉴욕 양키스에게 지구 1위 자리를 위협받더니 전날 경기를 내주면서 1위 자리에서 내려온 상태였다. 1위 탈환을 위해서라도 중요한 경기에서 탬파베이는 때마침 에이스 제임스 쉴즈가 나섰고, 양키스는 필 휴즈가 등판한 상황. 댄 존슨은 이 경기에서 0:1로 지던 5회 말 1사 3루 상황에서 휴즈를 상대로 역전 투런포를 때려냈고, 커티스 그랜더슨의 홈런으로 양키스가 다시 2:3 리드를 잡자 7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휴즈에게 또 다시 역전 투런포를 때려냈다. 그리고 탬파베이는 그 점수 그대로 4:3 승리를 거뒀고 존슨은 혼자 팀의 4득점을 쓸어담으며 팀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었다. 이 승리로 탬파베이는 지구 1위를 탈환했고, 시즌 마지막까지 수성하는데 성공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9월 한달간의 활약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존슨은 텍사스 레인저스를 상대로 하는 ALDS 엔트리에도 승선하며 커리어 첫 포스트시즌 경험을 갖게 되었다. 1, 2차전 모두 대타로 나온 존슨은 3차전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멀티 히트를 기록하며 활약했다. 하지만 4차전과 5차전은 무안타로 침묵했고 팀은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쉽게 탈락하며 존슨의 첫 포스트시즌도 그대로 끝났다.

2010시즌 최종 성적은 40경기 .198/.343/.414 7홈런 23타점. 콜업 이후 초반에는 부진했으나 8월 말~9월 초에 좋은 활약을 보여줬고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도 포함되며 어느정도 반등에 성공했다. 시즌 종료 후 카를로스 페냐가 팀을 떠나며 1루 자리가 비었고, 직전시즌 9월 한 달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존슨이 주전 자리를 꿰차게 될 것으로 예상했으며 실제로 개막 엔트리에도 포함되고 선발 1루수로 나섰다. 그러나 시즌 초반 손목에 사구를 맞았고 통증을 참고 계속 뛰다가[5] OPS가 4할대라는 극악의 부진을 겪으며 결국 1루 자리를 케이시 코치맨에게 내준 뒤 5월 20일 다시 DFA되었다. 그리고 4일 뒤 마이너로 계약이 이관되었고, 시즌 내내 마이너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나마도 마이너를 폭격했던 작년에 비해 트리플A 성적도 하락세를 보인 상태. 하지만 마땅한 1루 백업이나 대타감이 없었기에 탬파베이는 9월 확장엔트리가 시행되자 존슨을 다시 콜업했다. 하지만 대타로 주로 나서며 5타수 무안타 1볼넷이라는 정말 별 볼일 없는 성적을 남기고 있었다.

2.4.1. 2011 MLB 와일드카드 레이스 : 미라클 라이즈

트레이드 데드라인때만 해도 다소 애매한 성적이었던 탬파베이는 9월들어 추락하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한 발 한 발 따라잡으며 와일드카드 막차 탑승의 희망을 살려내고 있었고, 9월 27일 양키스전 승리로 드디어 보스턴과의 승차를 0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시즌 마지막 경기에 탬파베이의 운명이 달려있었다. 자세한 전후 상황은 2011 MLB 와일드카드 레이스 문서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으니 이 문단에서는 다소 간략하게 작성한다.

그렇게 시작된 9월 28일 시즌 최종전. 홈에서 뉴욕 양키스를 상대하는 탬파베이는 에이스 데이비드 프라이스를 내세웠지만 마크 테세이라에게 멀티 홈런을 내주고 7점차로 끌려가고 있었고, 동 시간대 보스턴은 캠든 야즈 원정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한 점차 리드를 가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캠든 야즈에 비가 내려 경기가 중단된 사이, 탬파베이 타선은 분 로건과 루이스 아얄라를 공략하며 3득점에 성공하더니, 에반 롱고리아가 좌월 쓰리런을 작렬하며 순식간에 스코어를 6:7 한점차로 좁혔다. 그리고 9회 말, 양키스는 코리 웨이드를 마운드에 올렸고 웨이드는 벤 조브리스트 케이시 코치맨을 범타로 돌려세우며 아웃카운트 2개를 잡아냈다. 경기 종료까지, 아니, 어쩌면 포스트시즌 탈락까지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만 남은 9회 말 2아웃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탬파베이 벤치는 샘 펄드의 타석에서 댄 존슨을 대타로 내보냈다.

문서를 쭉 읽었다면 알겠지만 이 시즌 댄 존슨은 굉장히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타율 .108, OPS .334에 홈런은 4월에 친 것이 마지막. 하지만 동시에 이 문서를 다 읽었다면 알겠지만, 댄 존슨은 일발장타툴을 가진 선수였고, 이를 알고 있던 탬파베이 로컬 방송을 담당하는 Fox Sports Sun의 해설자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Well.. Now, Dan Johnson. Dan Johnson is coming up for one reason. An one reason only.. 'Hit the ball. Out of the ball park.'
(음... 지금 댄 존슨이네요. 댄 존슨이 올라온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오직 하나... 공을 쳐서, 담장 밖으로 넘기는 것.)
- Fox Sports Sun 해설위원 브라이언 앤더슨

파일:DJ_rays.gif 중계 영상
Johnson into down the right field line.. That balls gonna be.. Fair! AND GONE! Dan Johnson! Does it again![6]
- Fox Sports Sun 캐스터 드웨인 스타츠 (Dewayne Staats)
Dan Johnson maybe a ray for a life!"
- 브라이언 앤더슨

2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존슨은 웨이드의 6구를 받아쳐 우측 담장을 넘겨버렸다. 최악의 시즌을 보낸 1할 타자가 9회 말 2사 2스트라이크에서 때려낸 동점 홈런. 말 그대로 기적같은 홈런으로 탬파베이는 극적으로 회생해 연장전에 돌입했고, 11회에는 무사 1, 3루의 위기도 맞이했지만 3루주자 그렉 골슨의 주루 미스를 놓치지 않은 롱고리아가 빠른 판단으로 골슨을 잡아내고 뒤이어 제이크 맥기가 올라와서 이닝을 실점 없이 마무리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경기가 재개된 캠든 야즈에서는 보스턴이 9회 초 추가득점 기회를 주루사로 날려버린 뒤 9회 말 클로저 조나단 파펠본을 올렸으나, 2사까지 잡아놓고 연속 2루타를 맞아 블론세이브를 작렬하더니 로버트 안디노의 끝내기 안타와 칼 크로포드 히 드랍 더 볼이 겹치며 보스턴이 볼티모어에게 패했다. 보스턴의 패배가 전해지며 원 게임 플레이오프행을 확정짓자 트로피카나 필드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고, 그 직후 롱고리아가 분위기를 하늘 위로 뚫어버리는 좌월 끝내기 솔로 홈런을 쳐내며 레이스가 와일드카드 막차를 타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 기적적인 홈런으로 존슨은 MLB 사무국이 선정하는 GIBBY(Greatness in Baseball Yearly) 2011 올해의 순간 어워드(Moment of the Year Award This Year in Baseball Awards) 수상자가 되었으며, 레이스 구단은 이 홈런이 닿은 곳, 140섹션 T열 10번 좌석을 흰색으로 칠하였고 댄 존슨 좌석이라 불리게 된다.

이 문서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내셔널리그 또한 똑같은 상황이 펼쳐졌었다 보고싶다면 아래 영상을 보면 된다.

2.5. 이후

기적적인 홈런으로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보냈지만, 그 이전에 기록한 성적이 워낙 나쁜 탓에 당연히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는 들지 못 했고 시즌 종료 후 FA로 풀렸다. 이후 2012년 2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마이너에서 쭉 뛰다가 확장 엔트리때 콜업되었고, 시즌 마지막 경기인 10월 3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원정에서 한 경기 3홈런을 때려내기도 했다.[7]

2013년을 앞두고 뉴욕 양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지만 콜업되지 못하고 8월 30일 방출되었으며, 이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했다.

2014년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했다. 트리플A에서는 꾸준히 뛰지만 메이저에서는 확장 엔트리때나 주전 선수 부상 때 잠깐 콜업되어 한 시즌 10경기 남짓 나왔다.

2015시즌을 앞두고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가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되었고, 4월 말 방출되었다. 이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뛴 뒤, 2016년 다시 한 번 탬파베이 레이스와 계약했는데, 놀랍게도 타자가 아닌 투수로, 그것도 너클볼로 전향했다고 한다. 그러나 스프링캠프가 끝나고 방출된 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지만 더블A에서 몇 경기 나오고 방출되었다.

이후 멕시칸 리그와 독립리그에서 뛰다가 2018년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끝마치고, 2019년부터는 본인이 나왔던 네브래스카-링컨 대학교의 보조 코치로 재직중이다.

3. 플레이 스타일

타율은 다소 낮지만 준수한 선구안과 일발 장타력을 갖춘 전형적인 OPS 히터. 준수한 선구안을 바탕으로 거의 1에 가까운 BB/K를 기록했고, 투수 친화 구장으로 유명한 오클랜드-앨러메다 카운티 콜리세움을 홈으로 쓰면서도 풀 시즌 20홈런을 기대할만한 일발 장타도 갖췄다. 특히나 이런 일발장타는 탬파베이에서 보여준 여러 기적적인 홈런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컨택에서 고질적인 문제를 보여 포텐셜을 다 터뜨리지 못한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이러니한게 기록을 보면 컨택률은 동기간 리그 전체에서 꽤 상위권에 들어가는 편이고 그와 동시에 존 바깥으로 오는 공은 잘 안 건드리는 선구안도 보여줬는데, 그럼에도 이런 타율이 나온걸 보면 발사각에 문제가 있었다던가, 혹은 배트에 맞긴 하는데 정타로 맞추는 부분에서 문제가 있던거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온다.

한편으로는 여러모로 AAAA리거라고 부를만한 선수. 메이저에서는 포텐셜을 다 보여주지 못했지만 트리플A에서는 통산 OPS가 9할에 육박한다. 오클랜드 마이너 시절 타자 친화로 유명한 PCL에서 뛴 점도 감안해야 하지만, 30대 중반에 들어서며 까먹은 스탯도 있으니 서로 상충한다고 보면 나름 쌤쌤. 결정적으로 탬파베이 마이너 시절에는 IL에서 뛰었는데도 트리플A를 씹어먹는 수준의 성적을 냈다.

4. 여담


인터뷰 영상


댄 존슨의 커리어를 정리한 영상.

파일:Dan_Johnson.jpg
구글에서 댄 존슨을 영문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게 이 사진인데, 잘 보면 알겠지만 2011년 9월 28일 경기때 홈런을 친 사진이다. 다만 종합 검색창의 이미지만 저게 먼저 뜨고, 이미지 부분만 들어가면 다른게 먼저 뜬다.

이 문서는 원문 다음의 도움을 받아 최초 작성되었다. 현지 팬글

5. 관련 문서


[1] 2016년 너클볼러로 전향했다. [2] 현재의 이름이 된건 2012년으로, 당시에는 그냥 베이스타즈였다. [3] 주전 1루수이던 우치카와 세이이치 좌익수로 전향하고 준수히 활약하며 어찌저찌 포지션 문제는 해결됐다. 하지만 요코하마는 51승 93패 승률 .354, 리그 1위와 42.5경기차의 꼴찌로 암울한 시즌을 보냈다. [4] 카를로스 페냐가 부진에 빠졌고, 대타감이라고 할 선수 가운데 좌타자는 맷 조이스 한 명이었다. [5] 당시 존슨의 담당 의사가 부상 부위를 오히려 너무 방치하고 쉬게 두면 신경 결손이 발생할 수 있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적어도 신경이 사라지는 최악의 사례보다야 통증 참고 뛰는게 나으니... [6] 캐스터의 말을 보면 존슨이 '또 다시 해냈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영상 전체를 보면 알겠지만 캐스터가 2008년 조나단 파펠본을 상대로 때려낸 홈런을 언급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7] 당시 존슨이 때린 3홈런중 2개를 허용한 선수가 나중에 LG 트윈스로 오게 되는 데이비드 허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