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3 22:50:45

칼 크로포드

칼 크로포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 align=center><table bordercolor=#092c5c> 파일:탬파베이 레이스 엠블럼.svg 탬파베이 레이스
명예의 전당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ccac00> No. 66 No. 12 No. 13
<rowcolor=#092c5c> 돈 짐머
Donald William "Don" Zimmer

파일:미국 국기.svg | Coach
1931.01.17~2014.06.04
with Rays 2004~2014
웨이드 보그스
Wade Anthony Boggs

파일:미국 국기.svg | 3B
1958.06.15~
with Rays 1998~1999
칼 크로포드
Carl Demont Crawford

파일:미국 국기.svg | LF
1981.08.05~
with Rays 2002~2010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일자 순서대로 배치하였으며, 같은날 헌액될 경우 낮은 등번호 순서대로 정렬합니다.
영구결번 된 선수의 등번호는 황금색, 아닐 경우 하얀색으로 표기하며, 영구결번이 아닌 선수는 해당 선수의 대표 등번호 하나만 기재합니다.
}}}}}}}}} ||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3~2004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도루왕
알폰소 소리아노
( 뉴욕 양키스)
칼 크로포드
( 탬파베이 레이스)
숀 피긴스
(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6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도루왕
숀 피긴스
(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칼 크로포드
( 탬파베이 레이스)
칼 크로포드
( 탬파베이 레이스)
브라이언 로버츠
( 볼티모어 오리올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07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도루왕
칼 크로포드
( 탬파베이 레이스)
칼 크로포드
( 탬파베이 레이스)

브라이언 로버츠
( 볼티모어 오리올스)
자코비 엘스버리
(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MLB 로고.svg 2006년 메이저 리그 좌익수 부문 필딩 바이블 상
신설 칼 크로포드
( 탬파베이 레이스)
에릭 번즈
(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파일:MLB 로고.svg 2008 ~ 2009년 메이저 리그 좌익수 부문 필딩 바이블 상
에릭 번즈
(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칼 크로포드
( 탬파베이 레이스)
브렛 가드너
( 뉴욕 양키스)

파일:MLB 로고.svg 2009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게임 MVP
J.D. 드류
( 보스턴 레드삭스)
칼 크로포드
( 탬파베이 레이스)
브라이언 맥캔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등번호 8번
마이크 디펠리스
(1998~2001)
칼 크로포드
(2002)
말론 앤더슨
(2003)
탬파베이 데블레이스 / 레이스 등번호 13번
아지 기옌
(2000)
칼 크로포드
(2003~2010)
벤 프란시스코
(2012)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13번
앙헬 산체스
(2010)
칼 크로포드
(2011~2012)
핸리 라미레즈
(2015~2018)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25번
짐 토미
(2009)
칼 크로포드
(2013)
윌 베너블
(2016)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3번
스킵 슈마커
(2013)
칼 크로포드
(2014~2016)
크리스 테일러
(2016~)
}}} ||
파일:Carl Crawford Devil Rays.webp
칼 데먼트 크로퍼드
Carl Demonte Crawford
출생 1981년 8월 5일 ([age(1981-08-05)]세)
텍사스 휴스턴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제퍼슨 데이비스 고등학교
포지션 좌익수
투타 좌투좌타
신체 188cm, 104kg
프로입단 1999년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52순위, TBD)
소속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레이스 (2002~2010)
보스턴 레드삭스 (2011~201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13~2016)
가족 아들 저스틴 크로포드, 사촌 J.P. 크로포드
1. 개요2. 선수 경력3. 연도별 성적4. 여담5.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미국의 前 야구 선수.

탬파베이 레이스 시절에는 훌륭한 주력과 컨택을 바탕으로 탬파베이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군림했지만, 2011년에 보스턴 레드삭스와 7년 142M의 매머드급 장기계약을 맺은 후에는 먹튀로 전락하며 파워와 선구안이 떨어지는 선수에게 장기계약을 주면 안된다는 모범적인 예시로 남아버린 선수다.[1]

2. 선수 경력

2.1.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레이스

파일:Carl Crawford Rays.jpg
고등학교 재학 시절 자신이 한 야구, 농구, 미식축구 모두에 재능을 보이면서 만능 스포츠맨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대학 진학이냐 프로 진출이냐를 고민하던 시점에서 크로포드는 야구에서는 0.636이라는 엽기적인 타율을 기록하며 고등학교 리그를 초토화시켰고, 농구에서는 UCLA에서 포인트 가드 역할로 장학금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미식축구에서는 쿼터백 자리 보장과 함께 무려 5개 대학에서 장학금 제안이 들어왔다. 아울러 야구에서는 1999년 드래프트 1999년 2라운드에서 탬파베이 데빌레이스에 지명되었다. 진지하게 네브래스카 대학으로 미식축구하러 갈 생각을 했다가 탬파베이가 부른 1,553,000달러라는 무시무시한 계약금을 받고 야구를 선택했다.

마이너리그에서 수련을 쌓은 후, 2002년 시즌 중반부터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외야에서 활동했다. 빠른 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견수를 보는 편이 어떨까 싶었지만, 소녀어깨라 중견수를 보지 못했다. 선수 자신도 중견수 수비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한 것까지 겹치면서 좌익수로 정착했다. 어깨가 약할 뿐 수비력 자체는 훌륭해서 골드글러브를 한 차례 수상하기도 했고, 세이버메트리션들이 평가하는 필딩바이블에서도 수상한 바 있다.

2002년 데뷔 시즌에는 0.259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점차 성장하며 완전히 메이저리그에 정착했다. 리드오프형 타자로서 주로 1, 2, 3번을 치면서 레이스의 암흑기부터 전성기까지를 모두 목격하며 팀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4번의 도루왕과 4번의 최다 3루타 기록을 세운바 있고 3할 타율을 유지하면서 두자릿수 내외의 홈런, 81%의 도루 성공률과 리그 최고의 좌익수 수비까지 갖췄기 때문에 리드오프로서 매우 출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참을성이 워낙 없어놓아서 삼진률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2005년 3월 장기 계약(4년 $15.25M + 2009년, 2010년은 팀 옵션)을 발표하고 동시기 마약에 자살시도 등 흑역사를 보내고 있던 조시 해밀턴과 달리 메이저리그에 살아남아 당당한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잡았다. 재정도 약하고, 팀을 떠나는 선수들이 많은 약체 탬파베이에서 오래도록 팀을 지킨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 허접했던 시절을 지나 2008년 월드시리즈 진출까지 함께 하며 탬파베이에서는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고, 팀의 간판으로 4차례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그렇게 1경기 6도루 경기, 2009년 올스타전 MVP에 뽑히기도 하는 등 수준급의 리드오프로서 활약하던 중 2010년을 마치고 드디어 제이슨 워스, 클리프 리 등 쟁쟁한 스타들과 함께 FA가 되었다. 탬파베이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타자였지만, 전미 최악의 스몰마켓인 탬파베이의 재정은 크로포드를 눌러앉힐 수 없었다. 오죽하면 2010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모든 전문가들이 올 시즌이 크로포드의 레이스 소속으로서 마지막 시즌일 것이라고 언급했을 정도.

2.2.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20200526_175703.jpg
그리고 FA로 풀린 크로포드를 잡은 팀은 바로 보스턴 레드삭스. 테오 엡스타인이 마찬가지로 FA로 풀렸던 아드리안 벨트레 거르고 크로포드를 시전하며 7년 $142M의 계약을 크로포드에게 안겨줬다.[2]

사실 당시 보스턴에는 자코비 엘스버리가 부상이 있긴 하지만 리드오프로서 충분히 기량이 검증된 점도 있고,[3] 더스틴 페드로이아가 현역 최고의 공수겸장 2루수로서 버티고 있는 상황에 보스턴이 크로포드를 지르는 것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의문을 표했다. 아무리 펜웨이 파크가 크로포드 같은 중거리 좌타자들에게 유리한 구장이라곤 하나 라인업에서 우타 거포 하나라도 지키는게 급한데 비록 그린몬스터에 튕겨나오기 일쑤라지만 아드리안 벨트레 특유의 무릎샷을 포기하면서 7년 $142M씩이나 크로포드에게 안겨줄 필요가 있었냐는 것.

게다가 크로포드가 똑딱이 주제에 삼진이 적은 것도 아니고, 도루가 좋다고 리드오프를 시키자니 본인도 3번 타순을 더 선호하는 데다가 참을성 없이 막스윙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출루율 영 좋지 않아 테이블 세터에 이상적인 선수가 아니며, 최대 강점이 수비 툴과 주루 툴인 선수지만 정작 펜웨이 파크는 그린 몬스터로 인해서 딱히 뛰어난 수비능력을 갖춘 좌익수가 필요한 곳이 아니고[4], 장기계약을 맺은 고액 연봉자일수록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도로 능력 자체가 퇴화하거나 부상 위험 때문에 도루 시도 자체가 적어지는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FA 영입 시 가장 꺼려질 수밖에 없는 툴 타입이다.

그래도 다소 오버페이긴 해도 탬파베이에서는 빼어난 선수였기 때문에 보스턴에서도 잘 할 것이라는 예측이 당연했으나, 크로포드의 2011 시즌은 대실패로 귀결되었다. 크로포드는 생전 처음으로 하위타순을 전전하면서[5] 적응에 애를 먹더니 닥치는대로 스윙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23BB를 얻어내는 동안 104K로 귀결되었고, BABIP가 커리어에 비해 유난히 낮다는 변호마저 무색케 했다. 또한 그간 최고의 장점으로 평가받던 좌익수 수비도 그린 몬스터의 위엄에 빛을 잃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리스크가 그대로 맞아떨어져 40~50도루 쯤은 껌으로 넘기던 선수가 레드삭스 이적 첫해에 18도루(6실패)에 그치고 말았다. 차라리 같은 금액이라면 제이슨 워스를 사는 게 나았다는 평도 있을 정도.[6]
파일:external/assets.sbnation.com/crawfordbotches.gif
여기에 2011년 마지막 경기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는 필딩바이블과 골드글러브를 모두 제패한 좌익수답지 않는 로버트 안디노의 타구를 히 드랍 더 볼[7]을 시전하며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며 조너선 파펠본을 패전투수로 만들어 더욱 대차게 까였다. 물론 결과론적인 시각으로 저 슬라이딩 캐치가 쉬운 건 절대 아니었지만, 이미 전진수비를 갖춰놓은 상황이었기에 무리한 슬라이딩 캐치 대신 홈 송구를 통한 승부가 더 나을 수도 있었던 상황. 이 끝내기로 보스턴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고, 결국 2011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역사적인 DTD에 있어 주역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보스턴 팬들은 고액 연봉으로 장기계약을 안겨준 선수가 이런 모습만 보여주니 뒷목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

물론 크로포드가 프로로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단점에 대해 자각하고 참을성을 기르고 공을 많이 보는 버릇을 들이다보면 첫 시즌의 평가보다는 나은 평가를 받을 수는 있겠다. 하지만, 레드삭스 라인업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크로포드는 대체 왜 이런 거금을 줘가며 모셔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라인업이다. 차라리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나란히 먹튀짓 시전한 제이슨 워스는 우타 빅뱃으로서 중견수로도 괜찮은 수비를 펼치기라도 했다. J.D. 드루가 2011년 이후 은퇴할 가능성이 높은 마당에 외야 포지션을 엘스버리-워스-드루로 간 뒤에 엘스버리를 다시 중견수로 돌리고 워스를 우익수로 돌리고서 다른 괜찮은 좌익수를 사는 것도 크로포드의 가격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선에서는 괜찮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외야수 유망주 조시 레딕[8]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오버페이까지 해가며 좌익수를 데려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9] 레드삭스가 크로포드를 이런 계약으로 지른 것은 크로포드에게 이치로가 빙의하여 7년간 연평균 200안타씩 때려내지 않는 한, 아니 200안타를 실컷 때려낸다고 가정해도 절대 오버페이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계약이었다. 버논 웰스 트레이드 뒤 슬러거 데려왔다고 좋아한 토니 리긴스가 생각난다. 아아, 그분은 그야말로 천사였다. 결국 이 딜을 실행한 테오 엡스타인은 팀을 떠났다.

2012년에는 보삭스로서는 차라리 다행스럽게도 팔꿈치 부상으로 내내 재활을 계속하다가 토미 존 서저리를 요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본인은 재활하기로 결정했고, 7월 16일부터 다시 경기에 나서게 됐다. 그러나 결국 8월 하순 수술을 결정하였다.

같은 먹튀라도 존 래키는 5년이라는 적절한 계약기간에 연평균 $16M이라는 먹튀치고는 그래도 적절한 연봉이라도 수령하는 편이지만, 크로포드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 동안 연평균 $20.3M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연봉을 수령한다. 이건 마쓰자카 다이스케 훌리오 루고를 뛰어넘을 전설의 레전드 흑역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계약으로 평가받았다. 여기에 더더욱 뼈아픈건 크로포드를 잡기 위해 포기한 아드리안 벨트레가 텍사스 이적 후 무려 8시즌간 롱런하며 명예의 전당을 사실상 예약해뒀다는 점이다. 벨트레를 FA로이드로 보고 잡지 않고 케빈 유킬리스를 3루수로 되돌린 뒤 크로포드를 지른 결과 크로포드는 크로포드대로 망하고 유킬리스는 OPS가 1할이 떨어지고 최고수준의 수비력 역시 크게 감소했으며, 이는 보스턴의 어메이징한 DTD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더구나 벨트레를 포기하고 크로포드를 지른 가운데 기대하던 유망주 윌 미들브룩스의 성장이 다소 정체되며 3루 자리에 공백이 생기자 보스턴은 파블로 산도발이라는 크로포드를 아득히 뛰어넘는 FA 먹튀를 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벨트레 이후의 3루수 공백은 라파엘 데버스의 포텐셜이 터진 2019시즌까지 오랜 시간 이어지며 보삭스 팬들은 더더욱 크로포드의 계약 내용을 보며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10]

결국 한국의 MLB 팬덤에서 크로포드는 지톸ㅋㅋㅋㅋㅋㅋ에 이어 칼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 되었다. 일부에서는 CC로도 부른다지만 진짜 CC의 퍼포먼스와 크로포드를 비교해보면 글쎄....

2.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파일:GettyImages-512674188.jpg
결국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보스턴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조시 베켓 애드리안 곤잘레스를 처분하는 딜에 끼여 들어가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이로써 LA 다저스는 칼 크로포드- 맷 켐프- 안드레 이디어로 이어지는 황금외야진을 갖게 되었다. 물론 ㅋㅋ가 살아난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2.3.1. 2013년

2012년 8월에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다저스로 이적해서도 잔여경기에 출장을 못하게 되었고 2013 시즌 개막전 출장을 목표로 재활을 하기 시작했다. 2013년 시범경기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수술 이후 잃어버렸던 경기감각을 빠르게 되찾았고 결국 개막전에 합류하는데 성공했다.

시즌 초반의 모습을 보면 레드삭스 시절은 안식년이었던 듯(...) 레이스 시절의 타격 메커니즘과 선구안을 회복한 거 같다는 평. 부상당하기 전인 6월 1일까지만 해도 .301 .358 .470의 전성기급 비율 스탯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햄스트링 부상이 도지면서 장기간 결장이 확정되었고, 7월달에 복귀했다. 그러나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스탯을 까먹으면서 전반기를 .273 .332 .421 5홈런 13타점 9도루라는 성적으로 마감했다.

2013년 8월 13일 뉴욕 메츠와의 경기에서 1:4로 앞서던 9회초 결정적인 호수비로 난조를 보이던 마무리 켄리 잰슨이 그나마 1실점에 그치게 만들어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그렇지만 9월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여전히 영 좋지 않은 모습. 은근히 잔부상도 많고 찬물질도 자주해서 다저스가 비록 2013년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했다지만 불안요소로도 보는 팬들이 있다.

그런데 포스트시즌에서 미쳐주고 있다! NLDS 2차전까진 병살타를 날려주며 부진했지만 류현진이 부진한 NLDS 3차전에선 역전 쓰리런에 이어 미친 호수비를 보여주더니 4차전엔 연타석 홈런까지 날려버리며 팀의 NLCS 진출에 큰 공헌을 하고있다. 아예 인터넷에서는 '이젠 ㅋㅋ라 부르지 않고 칼 크로포드라 부르겠습니다.' (...) 는 간증까지 나왔다.

시즌을 총평하면 그야말로 계륵.

포스트 시즌에서는 어느 정도 활약해 주었지만 결국 다저스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고, 페넌트 레이스 때의 모습을 보면 보스턴 시절보다는 낫지만 2000만불 몸값에 비해서는 약간 모자라는 활약이다. 레이스 시절에도 썩 높지 않던 출루율은 여전해서 리그 평균보다 약간 높은 정도고 그렇다고 장타율이 좋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전성기 4할 후반에 한참 못 미치는 4할 장타율. 거기에 도루를 5, 60 개씩 찍어주던 스피드도 감소해서 기껏해야 15 개 도루 밖에 하지 못했다.
못했다고 보기에는 무리지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엔 어려운듯. 다만 수비범위는 넓어서 다른 야수들보다는 확연히 뛰어나다. 2013년 WAR은 bWAR 기준으로 1.7이다. 몸값에 비해서 매우 좋지 않은 성적이다.

그래서인지 안드레 이디어와 더불어 끊임없이 트레이드 설이 나오고 팬들이 가장 트레이드를 많이 원하는 선수. 하지만 실제로 트레이드 될 확률은 이디어가 더 높다는 말이 많은데 2013년도 이디어의 몸값과 활약도 대비 효율성이 그나마 칼크보다는 낫기 때문. 뭐 다저스가 연봉보조를 하면 칼크도 트레이드가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평이긴 하다.

그러나 실제로 이디어는 중견수 소화가 가능하지만 칼크로포드는 중견수 소화가 어려운지라 팀사정상 두명 모두 트레이드는 어렵다.

2.3.2. 2014년

2014년 들어와 발목 부상으로 빠진 사이 중견수 수비에서 영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던 켐프가 코너 외야수로 전향하면서 그동안 중견수는 꺼렸던 크로포드도 결국은 중견수 수비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서 켐프가 우익수 포지션으로 출장하면서 푸이그가 중견수로 이동, 칼 크로포드의 주 포지션인 좌익수만 비게 되어 그대로 좌익수를 유지, 이디어가 기회를 받지 못하고 크로포드가 주전이자 스캇 반 슬라이크와 플래툰으로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8월부터 질주하기 시작해서 월간타율 3할에 복귀하더니, 9월에는 .448/.473/.716의 맹타를 휘둘러 기어이 3할 타율을 맞추면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300/.339/.429에 23도루로, 8월에만 8도루를 하는 등 주루 면에서도 과거의 모습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bWAR은 2.4를 기록. 14시즌 들어 타격이 회복되면서 이디어와 미묘하게 입장이 뒤바뀌어, 이제는 크로포드가 몸값대비 성능이 이디어보다 그나마 좋아서 트레이드 가능성이 높다는 평. 투고타저가 가속화되고 14-15 오프시즌에 외야수 FA 매물이 대단히 빈약하기에 생각보다 잘 팔릴 수도 있다.

2.3.3. 2015년

2015년에는 시즌이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4월 28일 근육 부상으로 15일 DL에 들어갔다. 말만 15일 DL이지 부상 정도가 좀 심해서 2~3달은 결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지만 크로포드가 DL에 들어가면서 엄청난 타격감을 자랑하는데도 백업으로만 나오던 반슬라이크나 게레로의 선발 출장기회가 늘면서 오히려 외야 정리가 쉬워졌다. 사람들도 크로포드가 유리몸인 거는 다 알고 있으니 나중에 돌아와서 가을에만 잘 해주면 된다는 반응이다(...) 후반기에 돌아왔는데 하필 푸이그도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고, 게레로도 부진이 땅을 파다보니 얼떨결에 자연스럽게 좌익수 자리를 다시금 확보했다. 크로포드 개인은 운이 좋고, 다저스로서는 뭔가 영 아닌 상황에 놓였다고 해야하는지...

하지만 시즌 후반기에야 겨우 복귀했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기대와 달리 아무 활약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동안은 후반기에라도 반짝 활약을 보여주면서 체면치례라도 했는데 2015년은 팬들 사이에서 이름조차 언급하기 싫어질 정도로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타격,수비 모두 폭망하며 팀의 패배 원인을 제공하였기에 그동안의 활약에 대한 실드조차도 사라지고 말았다.

2.3.4. 2016년

2016년에도 계속 팀에 민폐를 끼치고 있다. 이대로 계속되면 보스턴 시절의 모습을 다시 재현한다는 소리가 나올 지경. 결국 2016년 6월 5일자로 다저스에서 공식적으로 지명할당. 다저스의 팬들은 앤드류 프리드먼 사장의 이같은 결정에 해냈다 해냈어 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다저스는 칼 크로포드가 최종적으로 방출조치 되자마자 귀신같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2.4. 은퇴와 근황

결국 방출 후 새 팀을 구하지 못하며 조용히 은퇴했다.

2020년 부턴 자신의 고향 휴스턴에서 1501certified entertainment라는 엔터기획사를 만들어 래퍼들을 양상하는 기획사 사장님이 되었다. 엔터사업은 2021년 전미 가요대회에서 수상한 에리카 뱅크스(Erica Banks)를 발굴하는등 나름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듯 하다.

3. 연도별 성적

4. 여담

  • 탬파베이 레이스의 홈구장 트로피카나 필드의 왼쪽 파울 폴 근처에는 펜스가 다른 외야에 비해 유난히 낮은 구역이 있는데, 이는 데블레이스 시절이던 2006년 팀 최고의 스타였던 크로포드가 홈런성 타구를 잡는 멋진 모습을 더 많이 연출할 수 있도록 구단 측이 조성해놓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크로포드가 보스턴으로 떠난 2011 시즌, 역사에 남을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크로포드가 치명적인 미스로 보스턴의 탈락에 일조하는 사이, 에반 롱고리아가 이 미묘한 공간으로 공을 넘기는 끝내기 홈런을 때려내면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다.칼크 그는 뼛속까지 레이스맨이었다...
  • 2022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한 표도 받지 못하며 첫 해에 바로 탈락했다.
  • 아들인 저스틴 크로포드가 현지 시간으로 7월 17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1라운드 17번으로 지명 받으면서 부자가 1차 지명을 받는 경사를 누렸다.

5. 같이 보기


[1] 같은 해 FA가 되어 똑같이 장기계약을 한 제이슨 워스의 행보와 심히 대조된다. [2] 당시 아드리안 곤잘레스 트레이드 영입으로 인해 레드삭스 내에서는 케빈 유킬리스가 좌익수로 갈거라 예상되었다. 그런데 레드삭스가 FA로 뜬금없이 크로포드를 지르면서 엡스타인은 유킬리스를 3루로 돌리고 벨트레를 눌러앉힐 의향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표출했다. 결국 벨트레는 텍사스 레인저스로 향했다. [3] 더군다나 자코비 엘스버리와 칼 크로포드 모두 발이 빠르고 컨택능력이 좋은 중거리 타자로 어느 정도 플레이 스타일이 겹쳐 중복투자가 되는 점도 있었다. [4] 정확히 말하면, 뛰어난 수비능력을 갖춘 좌익수도 그린 몬스터 앞에서는 평범한 좌익수로 수비능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칼 크로포드의 좌익수로서의 최고 장점은 압도적인 스피드를 살린 수비범위였는데 펜웨이의 좌측 외야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좁아 넓은 수비범위가 쓸모가 적은 대신 펜스만 기괴하게 높아 펜스플레이 비중이 매우 높은, 타 구장들과는 전혀 다른 환경. 그래서 애초에 레드삭스는 좌익수를 영입할 때 수비능력은 외야를 뛰어다니면서 캐치를 할 수 있느냐 정도만 봐도 어찌저찌 외야가 굴러갈 수 있다. 그 와중에 매니 라미레즈 같은 전설(...)이 나오기도 하는 거고. 냉정히 말해서 칼 야스트렘스키라는 역대 최고의 좌익수를 제외하고 그린 몬스터 앞에서 수비 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인간은 그냥 없다. [5] 크로포드에게 3, 4, 5번타순을 맡기기에는 크로포드의 장타력이 너무 떨어졌고, 보스턴에는 애드곤조와 육길이 외에도 데이빗 오티즈라는 빅스타가 있었다. 크로포드가 탬파 말년의 15홈런, 19홈런을 레드삭스에서도 친다 해도 그보다 나은 거포들이 이미 있었기에 크로포드가 경쟁에서 유리한 게 전혀 없었다. [6] 당시 FA 행선지 예측 기사에선 대부분 제이슨 워스의 행선지로 레드삭스를 뽑았다. 당시 기사 그런데 제 3의 팀이 거금을 들고 나타나는 바람에... 반면 크로포드를 노리던 모 팀은 대신 당시 30홈런을 치면서 부활하는 기미를 보인 어떤 청정타자를 데려갔고 그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7] 이것은 2012년 1월 1일 나온 MLB닷컴의 히드랍더볼 프라임 나인 리스트에서도 영예의 1위를 먹었다. [8] 2011년 이후 트레이드를 통해 오클랜드에 가서 골드글러브를 수상한다. [9] 물론 이는 전부 결과론이다. 가령 2011년 엘스버리의 리그 최고 수준 UZR을 보면 이 결과론 역시 반박의 여지가 충분하다. [10] 그나마 2011년은 케빈 유킬리스가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0.8이 넘는 OPS를 기록했고, 2012년에는 미들브룩스가 괜찮은 1년차 시즌을 보내서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13년 이후는 답이 없는 수준이었으며, 특히 2018년은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고도 3루 자리는 21살 애송이였던 데버스의 OPS+ 94가 그나마 가장 괜찮은 생산성이었을 정도로 WS 우승팀답지 않은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