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13:36:17

김지훈(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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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CF2FF><colcolor=#000> 김지훈
金智勳[훈음] |Kim Ji Hoon
파일:2006kimjihoon.jpg
출생 1973년 3월 21일[3]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사망 2013년 12월 12일 (향년 40세)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김해 김씨 (金海 金氏)
신체 183cm[4], 73kg[5], A형
가족 아버지 ( 1978년 작고), 어머니 ( 1936년생)[6]
누나 1명, 큰 형 김강연[7], 작은 형
아들 김동혁 ( 2007년생)[8]
학력 서울북성국민학교 (졸업)
한성중학교 (졸업)
인창고등학교 (졸업)
명지전문대학 (실용음악학 / 전문학사)[9]
종교 개신교
활동 투투 ( 1994년 5월 1일 ~ 1996년 1월)
( 1998년)
듀크 ( 1999년 ~ 2007년 6월 1일)
솔로 활동 ( 1997년 하반기, 2007년 6월 ~ 2013년 12월)

1. 개요2. 보컬3. 생애
3.1. 유년기3.2. 투투, 솔로 활동3.3. 듀크3.4. 듀크 이후3.5. 사망
4. 예능 활동
4.1. 퀴즈 예능
5. 연기 활동6. 사후7. 가족오락관8. 음반
8.1. 정규음반8.2. 비정규음반8.3. 참여 음반과 참여곡
9. 출연작
9.1. CF 광고9.2. 시트콤9.3. 뮤지컬9.4. 영화9.5. 기타
10. 수상경력
10.1. 시상식10.2. 가요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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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0년 ~ 2006년 김지훈 무대 모음
대한민국 가수. 생전 그룹 투투, 남성 듀오 듀크의 보컬이였다.

2. 보컬

성악을 했던 그의 목소리 미성에 속하면서도 파워풀했다.

동아일보의 허엽 기자는 듀크 1집 시절 그의 창법에 대해 '탁' 터지는 창법, 가성은 허공을 메아리치는 것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음역대가 높아서 저음에 속하는 사람들은 성별에 상관없이 그의 노래를 원음대로 부르긴 쉽지 않은 데다가, '그'만의 독특한 창법이 있어 모창하기가 쉽지 않다. 표현하는 음역대가 넓어서 고음뿐만 아니라 저음도 잘 표현한다.[10]

앨범(음원)상 최고음은 3옥타브 파 #이며 투투 시절~듀크 2집까지는 2옥타브 후반 ~ 3옥타브 중반대에 몰려있어 일반인은 도전이 불가능한 수준이었고[11], 3집 이후의 곡들은 2옥타브 중반대 위주의 중음 곡들이 대부분이라 생각보다 높지는 않지만 일반 변성기를 거친 남성들이 부르긴 꺼려지는 편이다.

투투로 데뷔한 1994년부터 듀크 초반까지는 '노래 잘하는 가수'로 인정받았지만, 듀크 시절부터 각종 예능에 자주 출연하며 본업인 가수 활동보다 예능 활동에 집중하여 만능 엔터테이너적인 이미지가 강해진 데다가, 댄스 음악을 하는 가수들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뛰어난 가창력에 비해 가수로서의 가치가 갈수록 낮게 평가받았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김지훈 사후 그의 가창력이 재평가되면서 현재는 가창력 면에서는 탑급이었다고 인정받고 있다.

3. 생애

3.1. 유년기

1973년 3월 21일, 3남 1녀 중 막내로 출생한 김지훈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6살 때부터 꿈이 가수였던 그는 서울 북성초등학교 재학 시절엔 생활기록부에 '용의 단정하고 매사 성실하며 온순함(1학년), 온순하고 침착하며 매사에 성실함(2학년).' 등으로 기록되며 학교에서 조용하고 온순한 학생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12] 그림 그리기에 특기가 있었던 그는 한성중학교 재학 시절(중학교 2학년 시절)에는 꿈이 만화가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성악을 배우는 등 가수로서 꿈을 키워가던 그는 서울 인창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교내 중창단 써클리트(Circlet)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13], 교내 밴드부 유토피아의 보컬로 활동하며 가수의 꿈을 키워갔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배려[14]로 고등학생 시절에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 자유로운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낮에는 오지 오스본의 'Goodbye To Romance'나 스틸하트의 ' She's Gone[15]' 등의 카피 곡을 노래하며 헤미메탈 록 밴드 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교회에서 클래식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당시에 음악을 지도하던 선생님과 친분이 두터워, 투투로 데뷔 한 뒤에 투투 1집 음반을 들고 그 선생님께 찾아가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제3회 KBS 청소년 창작가요제에서 김지훈
파일:kimjihoon0.gif
제3회 KBS 청소년 창작가요제에서 지나간 순간은 찢겨진 가슴되어를 부르는 김지훈 제3회 KBS 청소년 창작가요제 영상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0년 12월, 제3회 KBS 청소년 창작가요제(1990년 12월 25일 방송)에서 '지나간 순간은 찢겨진 가슴되어'로 본선에 진출했다.[16][17] 다만 본선에서 가사를 놓쳤던 터라 수상자 명단에는 들지 못했지만, 동네에서 조용한 아이로 인식되던 그는 TV 출연으로 동네의 유명 인사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청소년 창작가요제는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대회였던 터라 "동네에서 인기가 지금(2008년)에 부럽지 않았어요. 여학교에서 인기투표를 하면 제가 1등을 하기도 했어요."라고 고등학생 시절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에 여러 가요제에서 대상, 금상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1년에는, 활동하던 밴드의 보컬 자리가 공석이 되자 보컬을 구하던 강남 지역 출신의 오지훈, 유현재가 1991년 당시 유현재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노래방에서 알게된 선배의 소개로[18] 김지훈은 1991년에 그 둘과 처음 만나게 되었다.
Q[19]: 너 노래 잘해?
김지훈: 응. 잘해 ~
그는 밴드에 합류해달라는 둘의 제안을 받고, 그 둘이 있는 밴드의 보컬로 합류했다.

3.2. 투투, 솔로 활동

첫 방송을 하고 ( 남자 멤버) 셋이서 이대 입구로 워커를 사러 갔는데 알아보더라고요. 그러더니 2주 만에 갑자기 떠버린 거예요.   2012년 11월 8일자 tvN E News 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지훈은 1992년에 오지훈, 유현재와 명지전문대학 동기로 입학[20]했으며 투투 결성 전까지도 셋은 계속 밴드 활동을 이어나갔다.[21] 그는 머리를 길게 기르고 가죽 점퍼를 입고 금속성이 짙은 목소리로 록 밴드(예: 아트)의 보컬로 활동했다고 한다. 모터사이클이 타고 싶어 관련 면허를 따고[22], 친척이 타던 모터사이클을 중고로 사서 종종 타고 다녔다고 한다.
투투 1집 활동 영상 모음
일과 이분의 일 무한 반복 영상 KBS2 가요톱10 1994년 11월 5주 그대 눈물까지도
내일은 늦으리 1994 환경보존 슈퍼 콘서트[23] 1994년 12월 3일 양산동부지역 부산직할시 편입축하 쇼 내 인생의 러시아워

1994년 5월 1일에 고3 시절부터 같이 밴드 활동을 했던 오지훈, 유현재와, 그리고 앨범 작업이 끝난 이후에 객원 멤버로 영입된 황혜영과 함께 그룹 투투의 보컬로 복권 추첨방송인 KBS 2TV《홈런! 일요일》에서 방송 데뷔를 했다. 아담하고 귀여운 외모에 무표정한 표정으로 인기를 얻은 황혜영과 대조적으로, 김지훈은 깔끔한 미성에 시원한 고음과 소울풍의 창법으로 훤칠한 키에 장난끼 있는 무대 매너로 소녀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는 평을 받았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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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1f9 <좌> KBS2 가요톱10 1994년 8월 1주 일과 이분의 일
1994년 4월에 발매된 투투 1집의 타이틀곡인 일과 이분의 일은 1994년 6월 1주에는 KBS2 가요톱10에서 28위로 첫 진입을 하였고, 6월 4주 18위, 6월 5주에는 8위로 수직 상승하여, 7월 2주에는 4위, 7월 3주에는 2위를 기록했다.[25] 일과 이분의 일은 SBS TV 가요 20에서 5번 1위를 기록하였으며, (1994년 7월 3주, 4주, 8월 1~3주) 가요톱10에서는 1994년 7월 27일부터 8월 24일까지 5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하여 골든컵을 받게 되었다.

그는 일과 이분의 일로 투투가 크고 많은 인기를 얻게 되자 쉴 틈 없이 강행군인 스케줄 때문에 건강에 무리가 왔었다. 폐의 기능이 나빠져 산소통을 끼고 다닐 정도였는데, 하루에 3시간 이내로 잘 정도로 꽉 찬 스케줄의 영향도 있지만, '라이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라이브로 부를 수 있는 상황에선) 최대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려고 했기 때문이다. 투투 활동 초기에는 아직 곡에 대한 감정 표현이 서툴러 남몰래 눈물을 훔칠정도로 음악활동에 진심을 다해 활동했다. 그는 데뷔 초기 부터 '라이브 무대의 콘서트를 여는 것'이 꿈이라고 각종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꿈을 밝혔고, 유현재에게 기타를 배우는 등 투투 활동 시기에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후속곡인 '그대 눈물까지도'는 김지훈이 보컬을 맡고 오지훈이 기타, 유현재가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곡으로 가요톱10에서 1994년 10월 첫 주에 24위로 첫 진입 후 11-20권 내에 머물다가 12월에는 10위권 안에 들면서 1995년 초까지 상위권(최고 순위: 가요톱10 5위)에 머물렀다. '그대 눈물까지도'는 그의 청아한 음색이 잘 드러난 노래라 그를 상징하는 노래로 회자되며, '일과 이분의 일' 때와 색다른 매력을 선보인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해 투투는 KBS 가요대상과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現. 골든디스크)에서 신인상을, 서울 가요대상에서 랩댄스 부문 대상을, 골든디스크 본상[26]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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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e1f9 <좌> KBS2 가요톱10 1995년 8월 2주 바람난 여자

이어 투투 2집 시기인 1995년에는 그룹의 리더[27]와 보컬로서 활동하였고, 엠넷의 '고 엠넷 고'로 첫 MC 데뷔를 하게 되었다. 2집 수록곡 중 주된 방송 활동곡은 '바람난 여자'와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이며 2집 노래의 대부분을 김지훈이 불렀다. 나머지 멤버들은 객원 멤버 형식으로 앨범 당 한 곡 또는 두 곡만 참여하였다.
[navertv(4308864)]
KBS 가요톱10 1995년 10월 1주 1위 후보곡 바람난 여자
바람난 여자는 가요톱10에서 1위 후보에 오르는 등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였다.
SBS TV가요20 1995년 11월 19일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
그는 1996년 1월 5일자 MBC 인기가요 BEST 50에서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의 무대[28]를 끝으로 투투 활동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활동 중에 입대한 터라 그의 입대 후에도 니가 내것이 되갈수록은 한동안 가요톱10에 순위권에 머물렀다.

김지훈은 1990년대부터 엄청난 인기를 얻어서[29] 투투 활동시기에 돈도 많이 벌었을 것 같다는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그 당시에 데뷔 전 연습 기간까지 포함해서 약 2년간 약 1,800만 원 정도의 수입만 받았다고 한다.[30][31][32] 투투 데뷔 전에는 남자 세 명이 봉천동 숙소[33]에서 돈이 없어 컵라면을 나눠먹으면서 서로를 다독였고, 1기 시절인 1994년, 소속사에서 밥을 제공하지 않을 때에는 수중에 돈이 없어 멤버들이 밥을 굶기도 했다. 그는 1990년대 활동하던 댄스가수들을 보면 화려해 보이고, 밝고 역동적인 모습들을 보여주지만 결국 뒷면에는 힘든 때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1994년 가요톱10에서 골든컵을 타던 날 남자 멤버 셋(김지훈, 오지훈, 유현재)이 방송 끝나고 숙소에 들어가보니 담배값이 없어 길에 떨어진 담배꽁초 중 긴 담배꽁초들만 주워서 피었다는 일화를 그 예로 제시했다.[34]

그는 1996년 1월에 훈련소에 입소했다. 훈련소 동기로 개그맨 김경식이 있다.[35] 선임들이 김경식에게는 딱따구리 소리를 내라고 하고, 김지훈에게는 반쪽 춤을 추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복무 중 군화를 묶으려고 허리를 숙이다가 그대로 허리를 다쳐서 소집해제를 했다.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109회(1997년 9월 20일) 익숙해진 슬픔 소개 영상

제대 후 1997년 하반기에는 '익숙해진 슬픔'이라는 락 발라드 곡을 타이틀곡으로 하는 솔로 앨범을 내고 활동했다. 솔로 앨범에서는 프로듀싱에 참여하였고, 자신이 작곡한 '꿈속에서'를 싣기도 했다. 솔로 앨범의 수록 곡들은 투투 시절의 앨범 수록 곡들보다는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때는 소속사와의 문제도 있었고 매니저가 돈을 받고 일을 잡지 않아 방송에 많이 나오지 못했다. 1997년 9월 20일자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의 신곡 콜렉션 코너에 잠깐 출연한 것과 역시 동년 가을에 출연한 KBS 2TV 슈퍼 선데이를 포함해, 솔로 앨범을 발매한 1997년부터 듀크로 데뷔한 해인 1999년까지 그가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이 손에 꼽을 정도로 매우 적었다.

그는 듀크로 데뷔한 이후의 방송에서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힘들었던 시절의 예로 솔로 앨범 활동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던 적이 있었다. 2008년 인터뷰에서는 세상을 조금 알아가는 나이가 되가면서 (솔로 앨범 활동 시기에 겪었던) 그런 경험이 이제부터는 당하지 않는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지훈은 2002년 11월 27일에 방송된 '야! 한밤에'의 '진실 혹은 대담'[36]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냐.'는 이정현의 질문에 대해 솔로 앨범 활동부터 약 2년간의 시기를 꼽으며 그 시기에 대해 '어머니는 미국에 살고 있는 누나의 집으로 가시고 형들도 사업이 안 좋아서 자신을 도와줄 입장도 안 되었고, 아버지도 안 계셨으며 (자신은) 후배들의 작업실에서 살았다.'고 대답했다.[37] 그 2년 동안 후배에게 피아노도 배우고 그때 써놨던 가사들과 곡들을 듀크 시절에 많이 사용했다고 방송에서 언급하며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 바닥까지 갔다 오면 지금 하고 있는 자신의 일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 일인지 알게 돼요."라고 질문에 대한 답을 마무리했다.

3.3. 듀크

1998년 8월부터 11월까지 김석민, 김진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갱(Gang)'으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이재민의 골목길을 리메이크한 '골목길', 김지훈이 작사, 작곡한 '비연', 그리고 '쉽지 않아'가 있다.[38] 갱 앨범과 듀크 1집에 수록된 비연은 듀크 앨범에 수록된 곡 중에서 김지훈이 가장 처음으로 작사, 작곡한 자작곡이다. 또한 비연은 일과 이분의 일, 바람난 여자 등 투투 시절 앨범의 여성 보컬로 참여한 이윤정이 여성 보컬로 참여한 곡이다.

1999년에는 갱 활동을 같이 했던 뉴 투투 출신의 김석민과 듀크를 결성했다. 투투였던 멤버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그가 노래를 부를때 김석민이 랩을 하자 김석민과 굉장히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어 같이 음악을 하기로 했고 듀크활동까지 같이 하게 되었다.
김지훈과 김석민이 직접 프로듀싱한 듀크 1집 음반은 테크노, 발라드, 락으로 나눠져 있다. 투투 이전 시기부터 록 음악을 했던 김지훈과, 랩을 했던 김석민이 함께한 음반이기에 랩과 락을 접목하면 어떨까하고 1집 음반의 락 파트에 수록된 펑크 락 스타일의 '쉽지 않아'를 타이틀곡으로 1999년에 데뷔했다. 그러나 1999년에서 2000년대 초반에는 한국에서 하드코어 록 음악이 대중적이지 않았고, 듀크는 데뷔 후 6개월 가량 TV 방송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고 지역 행사위주로 활동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듀크 1집의 반응은 저조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든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테크노 열풍에 힘입어 테크노 장르의 곡인 Starian으로 타이틀곡을 바꿨다.
MBC 음악캠프 45회 (2000년 4월 15일) Starian
1집의 타이틀곡인 Starian(스타리안)의 경우 독일 테크노 그룹 '666'의 음악을 듣고 나서 테크노의 마력에 빠져 만든 곡으로 김지훈의 작품[39]이다. 'Starian'은 인조인간인 스타리안이 인간의 감정을 느끼고 싶다고 절규하는 내용을 가사로 담고 있다. 그는 1999년 12월 29일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듀크 1집 활동에 대해 "신인보다 더 어렵습니다. 이전 팬들의 기대에 대한 부담도 크고, 한편에서는 어떤 음악을 했나하는 시선도 보냈고."의 말을 하며 그의 심경을 토로하였고, 듀크 1집에서 테크노라는 장르에 충실하기 위해 창법의 변화를 시도했음을 언급했다.[40]

Starian은 노래가 나왔을 당시 현영이 출연했던 뮤직비디오가 약간 주목을 받았지만[41] 다른 가요들에 비해 크게 인기 끈 노래는 아니었기 때문에 소속사 사무실에서 눈치를 보기도 했었다고 한다.[42] (Starian의 경우 1999년에 DDR 3rd Mix version Korea에, 그리고 2001년에 펌프 잇 업 EXTRA부터 수록되어, 펌프 잇 업의 대표적인 장수곡으로 꼽히나, 발매 당시에 인기가 없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2집의 타이틀곡 Party tonight 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듀크 초창기인 Starian으로 활동할 때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해 동료 가수들로부터 외면을 받아 그는 '방송이라는게, 연예계라는건 이런 거구나'라는 걸 느껴 정신적으로 굉장히 충격을 받었다고 한다. 라디오 공개 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해 Starian과 팝송 Unchained Melody, 그대 눈물까지도를 부른 뒤로 그는 듀크 데뷔 후 첫 팬레터를 받았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43]

2000년 2월 8일에 김석민과 함께 출연한 서세원쇼 토크박스에서 토크왕에 선정되며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2000년 3월 14일자 서세원쇼 토크박스에 혼자 재출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날 방송에서 그는 노래 홍보를 위해 예능방송에서 스타리안을 개인기의 소재로 활용했다. 그의 장기인 맹구 성대모사를 이용해 '스타리안을 부르는 맹구(맹구 버전 스타리안)'로 캐릭터를 재창조해서 맹구 모창을 했다. 이는 듀크 1집의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로 이어졌다.
KBS2 이소라의 프로포즈(2000년 3월 18일) 소원, Breaking The Law [44]
서세원쇼를 비롯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를 얻은 이후[45], 각종 음악 방송과 예능에 출연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2000년 11월에 발매한 듀크 2집은 듀크 1집에 비해 많이 팔렸다.
MBC 음악캠프 (2000년 7월 8일) 휘리릭 스페셜 Starian + Good Night
KBS2 뮤직뱅크 (2000년 12월 14일) Party Tonight

듀크 2집은 듀크 1집과 마찬가지로 김지훈과 김석민이 작사, 작곡, 음반 프로듀싱에 직접 참여한 음반이다. 김석민은 듀크 2집 수록곡 중 김지훈이 만든 White[46]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손꼽았다. 그 노래만의 느낌이 있는 노래를 좋아하는 김석민은 평소 김지훈에게 '노래에 어떤 느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김지훈이 만든 화이트를 들으면 따뜻한 느낌이 든다고 노래만의 느낌이 있는 곡으로 2001년에 미스터 케이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듀크 2집의 타이틀곡인 Party Tonight의 경우 2001년 1월 뮤직뱅크에서 2주 연속 7위[47]를 기록했고 뮤직뱅크를 비롯해 각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20위 안에 들었다. 그 영향으로 MBC 게릴라 콘서트(2001년 2월 4일 방송)에 출연했고, '신동진의 미니콘서트'에 두 번 출연했다.[48]

그는 2001년 3월에 컴필레이션 앨범 수호천사[49]의 타이틀 곡 '수호천사'의 녹음에 참여하였다.
Starian과 Party Tonight으로 가수로서 성공하자 듀크는 듀크 2집 마지막 활동으로 출연한 2001년 3월 27일자 MBC '신동진의 미니콘서트'에서 최초로 '쉽지않아'의 라이브 무대를 공개했다.
KBS 열린음악회 월드컵 자원봉사자특집 (2001년 11월 11일) Party Tonight
2.5집 시기인 2001년 하반기에는 열린음악회의 11월 11일자 방송에서 파티 투나잇을 부르기도 했다.[50]

그러나 판매량이 좋았던 듀크 2집과는 다르게 그 뒤에 나온 앨범들은 판매량이 2집에 비해 저조하여 음반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웠다.
MBC 음악캠프 109회 (2001년 9월 8일) Boom Boom
2001년 7월에 발매한 2.5집의 타이틀곡인 'Boom Boom'은 1집 타이틀 곡인 Starian처럼 김석민, 김지훈이 작사를, 김지훈이 작곡한 곡으로[51] 순위 프로그램에서 12위, 18위 등을 기록해 2집의 후속곡인 두 번째 소원보다는 순위가 좋았으나 앨범 판매량이 2집에 비해 저조했다. 그래서 잘생긴팀의 게스트로 출연한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2기 합숙 9주차 1부 오프닝( 2001.10.27 방송)에서 듀크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이번에 저희가 특이하게 앨범을 접고 있습니다. 붐붐으로 한여름을 아주 강타하려다가 쨉만 몇대 날리다가..."로 재치있게 대답했다.

Boom Boom에 이어 궁둥이 댄스로 듀크 2.5집 활동을 마무리했다. 궁둥이 댄스는 듀크 2집에도 실린 곡이다.
MBC 음악캠프 158회 (2002년 12월 7일) 천국에서 내린 비
SBS 인기가요 (2002년 12월 15일) 주말의 명화
2002년에 발매한 3집의 타이틀곡인 천국에서 내린 비는 라디오 신청곡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02년 12월 26일자 KBS2 뮤직뱅크에서 후속곡인 주말의 명화가 HOT10에 선정되기도 했으나, 3집 앨범은 2집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2005년 5월에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엑스터시 1건, 대마초 1건)'으로 불구속 기소되어, 당시 기획했던 듀크 콘서트와 앨범 발매가 무산되었다. 그 후 일부 매체와의 인터뷰와 결혼식의 축가를 부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2006년 상반기까지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다. 2005년 8월, 동년 5월에 불구속 기소되었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 2,000만원과 추징금 41,500원을 선고받았다.[52]

2005년에는 키스엔터테인먼트를 퇴사하고, 듀크 결성 시기부터 2.5집 활동까지 소속되어있었던 GF엔터테인먼트의 이사로 들어갔다.
2006년 여름, 듀크의 싱글 앨범을 발매한 후 방송에 복귀하였으나 저조한 음반 판매로 수입이 나지 않았던 터라 그룹 듀크는 2007년 6월 1일에 해체했다.

3.4. 듀크 이후

김지훈은 2007년에 결혼했다.[53] 2007년 하반기에는 SBS 드라마 황금신부의 OST인 '사랑합니다'를 불렀으며, 그는 이에 대한 소감으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연기자 수업으로 노래 연습을 전혀 못해 첫 녹음처럼 긴장한 가운데 녹음을 진행했다."고 하면서, "처음 해보는 OST 음악 작업이기에 녹음이 있는 당일까지 노래 연습을 계속했다."고 첫 OST 참여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2008년 6월 27일에 결혼식을 올린 뒤, 2008년과 2009년에는 솔로 가수로서 싱글 음반(솔로 2집)을 내려고 계획하기도 했으나 그 계획은 최종적으로 실행되지 않았다.

2008년에서 2009년까지 신곡 활동없이 음악 관련 예능이나 라디오 방송, 기업 행사 및 결혼식을 비롯해 각종 행사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행사 진행을 맡기도 했다. 가수로서의 활동보다는 예능 출연, 연기 활동을 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활동을 이어갔다.

결혼 이후에 결혼 전과 다른 캐릭터도 부여받으면서 각종 예능과 교양 프로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2009년 7월에 엑스터시를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됐다. 2009년 12월 2일,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3만원을 선고받았다.[54] 이 사건으로 출연하던 프로그램들에서 하차했고, 그 이후로 방송 활동이 없는 긴 자숙 기간을 보내게 되었으며, MBC에서 출연금지 명단에 올랐다.

2010년 하반기에 협의 이혼 서류를 서울가정법원에 제출했고, 3개월의 이혼 숙려 기간이 끝난 후에 이혼했다. 동년에 뮤지컬 코로네이션 볼 2기에 캐스팅되어 2010년 12월에 재기를 노렸으나, 이혼 관련 소식으로 작품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고 의견을 밝히며 제작 발표회 전날인 2010년 12월 14일에 자진 하차했다. 그 후 몇몇 행사와 공연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재기의 의지를 드러냈지만, 2012년 tvN e-news 과의 전화 통화 외에는 방송 활동이 없었다.

2012년에는 가수 이은하의 재즈 음반에 삽입된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를 피처링했다.

2013년 7월 6일에는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있던 제 6회 약손명가 페스티벌에 김성면, 이성욱 등과 함께 초대 가수로 공연에 참가[55]하기도 했으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 것[56]을 제외하고 그가 참여한 (언론에 보도된) 공식적인 공연 중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3.5. 사망

2013년 12월 12일 오후 1시경 서울 중구 장충동의 한 호텔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만 40세( 향년 4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이다. 김지훈과 그 일행은 12월 5일경부터 해당 호텔에 투숙했으며, 일행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 조사 결과 자살로 추정되었으며,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망하기 약 1주일 전에도 자살을 시도했던 적이 있었으며 우울증으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그가 2009년 7월까지 있었던 소속사이자 그의 마지막 소속사였던 GF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발표했다. #

2009년 엑스터시 투약으로 지상파 방송 출연이 뚝 끊긴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고, 생전 빚으로 경제적 문제도 좀 있었다. 그 와중에 신내림 받은 아내가 무당[57]이 되겠다고 해서 갈등하다가 이혼하는 등 가정사적으로도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해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분당추모공원 휴에 안치되었다. 김지훈의 영정사진은 같은 듀크의 멤버였던 김석민이 직접 들었다.

4. 예능 활동

1994년 투투 시절부터 각종 라디오 방송과 TV 예능에 출연하며, '투투의 뮤직 극장'에서는 성대모사를 '밤과 음악 사이'에서는 나훈아 모창을 하기도 했었다. 일과 이분의 일로 활동할 때도 김종서 모창을 잘하기로 유명해 1994년 경포해변축제에서 '지금은 알 수 없어'로 김종서 모창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투투 시절의 그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도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데다가 소속사에서도 신비주의를 유지하라는 권고가 있었기 때문에, 음악 활동에 집중했다.

1995년 하반기에는 M.net 《고 엠넷 고》와 KMTV 《쇼! 뮤직탱크》에서 그룹 투투가 MC를 맡기도 했지만 투투 시절에는 만능 엔터테이너적인 면보다 음악적인 면으로 대중들에게 많이 각인이 되어있었다. 1997년에는 KBS2 슈퍼 선데이에 출연하여 익숙해진 슬픔도 부르고, 개인기를 선보이기도 했으나 솔로 앨범 활동 자체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듀크 시절부터 그에게 예능 출연은 양날의 검이 되었다.
"토크박스에 있어서 제가 한 획을 긋지 않았습니까? (중략)
개인기였습니다. 개인기가 없었으면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죠?
성대모사는 말이죠. 한 사람을 연구하는 자세죠. 한 번, 한 두 번봐서 비슷한 게 아니라 수천 번을 보면서 그 목소리 톤과 어디쯤에서 꺾이느냐 이런거에 대해서 굉장히 연구를 많이해야 됩니다."
- 서세원쇼 토크박스 마이너리그 1회(2000년 10월 31일 방송)에서 일일 강사로 출연한 김지훈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 초반의 대한민국에서는 방송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성대모사, 모창 등 이른바 개인기를 요구할 정도로 개인기 열풍이 크게 일어났던 시기였다. 그는 음악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음악 활동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방송에서 개인기를 보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룹 듀크와 듀크의 음악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당시 대세 예능인 서세원쇼에 출연하길 학수고대했기에 캐릭터를 파악하고 정확하게 흉내낼 단계에 오를 정도로 시간을 따로 내어 3개월간 미친듯이 연습했다. 매니저와 백댄서들에게 성대모사와 모창을 자문하기도 했다. 그는 매니저에게 3개월간 토크박스 한 번만 나가게 해달라고 스케줄을 잡아주기를 부탁했고 매니저도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고 한다.
마침내 김석민과 함께 출연한 서세원쇼 - 서세원의 토크박스(2000년 2월 8일 방송)에서 토크왕을 차지했고, 2000년 3월부터 홀로 혹은 김석민과 함께 출연했다. 2000년 6월 이전까지 토크박스에 세 번 출연했으며 세 번 모두 토크왕에 선정되었기에, 2000년 6월 27일 상반기 왕중왕전, 2000년 12월 26일 연말 결산 특집에도 출연했다. 그룹 듀크는 2000년 2월부터 각종 방송에 자주 나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음반 홍보 효과를 누렸다. 예능에 출연하지 얼마 안 된 2000년 2월에도 좀처럼 크게 상승하지 않은 Starian의 방송 순위가 동년 3월부터 급상승했다.

2000년 2월부터 2000년 4월 중순까지 목표달성 토요일의 보조 MC를 맡기도 했다.(1회부터 1차 개편 직전까지 MC로 출연했으며, 2000년 4월 8일자 방송에는 스튜디오의 MC뿐만 아니라 무한 대결(무식한 대결)의 보조 MC로도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각종 음악 방송, 라디오 방송과 TV 예능에 출연했다. 2000년부터 4개 이상의 프로그램에서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듀크 1집 후속곡인 Good night으로 활동하던 2000년 6월 17일에 첫 방송을 시작한 iTV 파워클릭 가요베스트의 MC를 맡았다.[58]

그는 여느 가수처럼 긴급조치 19호 출연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고 KBS 2TV 스타 집현전(2003년 5월 9일 방송)에서 밝혔다.
앨범 활동이 없던 2003년~2004년 초 [59]에도 복수의 예능 방송과 교양 방송에서 고정 출연[60]하며 인기를 얻었다.
2003년 5월 4일부터 2004년 5월 2일까지 타임머신에서 패널로 출연하였으며, 일부 에피소드에서 코믹하고 유머러스한 연기를 했다.

듀크는 2007년 6월 1일에 해체했다. 그는 듀크 해체 이후에도 케이블 방송에서 MC를 맡는 등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의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반고정으로 출연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줄였다가, 2008년부터 다시 예능 프로그램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출연방송에서 대놓고 진행자에게 생계형 연예인으로 불리는 등 불편함을 감내하고, 가장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가수와 연기자로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활동을 했다.
그의 경우 한동안 방송 활동을 잠시 쉰 적도 있는 데다가, 빠르게 변해가는 예능 트렌드에 적응하기 힘들어 했던 터라 2008년과 2009년에는 고정으로 출연하는 예능(예: KBS JOY 오빠가 왔다)에서 예능 적응의 어려움을 언급하기도 했다.
SBS 남희석의 색다른밤에서 티삼스의 매일 매일 기다려를 부르는 듀크 (2001년 1월 17일 방송)
락, 발라드, 댄스, 트로트 등 장르 불문하고 가창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외운 노래도 많기에 도전 1000곡에 출연했을 때 유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61] 도전 1000곡, 대결 노래가 좋다 등 노래를 부르는 예능에 단골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듀크 활동 때 듀크의 멤버인 김석민과 같이 예능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혼자서 출연하는 경우도 많았다. 김석민의 경우 예능에 익숙해하지 않아 예능에 출연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경우 김석민이 일화를 제시해주고, 김지훈이 그 일화를 소스로 삼아 방송에서 언급하여 재미를 살려주는 식으로 방송 활동을 하기도 했다. 아니면 패널들이 "김석민 씨는 지금 뭐 하시나요? 혹은 왜 같이 안 나오셨나요?"라고 물으면 "석민이 형은 (지금) 자요."라고 대답(농담)을 하거나.
듀크 2집 때는 과도한 스케줄로 몸이 아파 목표달성 토요일 동거동락 1기 게스트(2001년 2월, 7번째 탈락자 선정 회차)로 출연이 확정되었지만, 녹화 당시 건강 상태(체온 40도, 빈혈, 구토증세)가 상당히 좋지 않아 녹화 당일에 하차했다. "웬만하면 이 재미있는 코너에 저 굉장히 하고 싶었는데 부득이하게 몸이 갑자기 아픈 바람에 못하게 되어서 정말 정말 제 자신이 아쉽습니다."라고 하차 소감을 말하고 "말 주변은 저보다 못하지만 힘은 굉장히 세거든요."라고 재치있게 말하며 김석민에게 게스트 자리를 넘긴 적이 있었다.
목표달성 토요일 - 스타데이트에서 개인기를 선보이는 김지훈 (2000년 5월 27일 방송)
폭소클럽 19회 - 박준형의 게스트 클럽에 출연한 김지훈 (2003년 3월 14일 방송)

그는 기본적으로 목소리의 톤이 높기 때문에 성별에 상관없이 정해 놓은 인물의 성대모사와 모창을 잘 소화했다. 그의 개인기 중에서 특히 맹구 성대모사가 유명해,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15년 가까이 맹구 성대모사를 선보였다. 맹구 성대모사의 경우 맹구 캐릭터가 생긴 1991년부터 갈고 닦아왔기에, 가장 맹구 흉내를 잘 내는 연예인으로 알려졌다. 원조 맹구의 목소리와 싱크로율이 높은 지라 2000년 12월 31일에 방영한 연말특집 개그 콘서트 봉숭아 학당에 맹구 동생 멍구로 특별 출연해 "그리고 질문있어요. 왜 다른 가수들은 멀쩡한데 나만 이래요?"라고 말하며 대본에 없는 능청스러운 즉흥 연기도 선보였다.
성대모사와 모창에 능했던터라 배기성과 더불어 개인기 열풍의 대표주자로 부각되어 그룹 듀크가 2000년 12월 6일자 KBS 뉴스에도 출연했다. 김지훈은 KBS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반면에 알찬 음반에도 불구하고 음반이 많이 안 팔린다는 것, 많이 안 나간다는 게, 이미지가 아예 저 친구들은 재밌기만 하고 음악적으로는 성숙하지 못했다는 이미지가 많으신가 봐요."라고 말하며 재미있는 연예인으로만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월간지 Mr.K(2001년 3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는 듀크가 재미있는 연예인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 '웃긴 모습으로 비치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모습에도 관심을 가져줄 거라고 믿으며, 그런 날들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자신의 견해를 드러냈다.

시간이 지나 2008년 1월에 출연한 KBS 2TV 감성 매거진 행복한 오후에서는 "처음에는 굉장히 노래를 하고 싶었는데 자꾸 웃기라 그러니까 별로 안 좋았었는데. 지금와서 느껴보면 여러 어르신들도 알아보시고 저를 보면 굉장히 즐거워 하셔요. 식당 같은 데 가면 '아이구 이 맹구 왔네.' 이러면서 반찬도 좀 더 주시고. 그런게 괜찮은 이미지구나라는 걸 느껴요."라고 말하며 예능 출연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듯 그가 듀크 시절부터 예능 방송에서 이름을 날린 뒤로 그에게 좋은 결과만 나타나지 않았다. '웃기는 가수'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개인기로 뜨게 된 이후로 다른 가수에게는 노래 등 음악적인 요소를 중점적으로 두는 방송조차, 본업이 가수인 그에게 맹구 흉내를 포함한 개인기만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토크쇼에서 웃기는 모습은 그의 모습 중 일부인데 이에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데도, 우습고 만만한 이미지로 취급받으며 예능 방송에서 무시를 받기도 했다. 그는 생전에 이런 점에 관해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하기도 했다. 진지하게 대중음악 이야기를 하면 대중에게 무시를 받기도 했으며, 인터넷에는 그의 뛰어난 가창력을 저평가하는 의견까지 등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음반 매출은 오히려 떨어졌다. 천국에서 내린비는 명곡으로 불리면서도 예능 출연으로 굳어진 듀크의 밝은 이미지와 맞지 않다는 평이 있어 활동을 세 달만에 접는 등 활동에 제약이 생겼다.
“서세원쇼요? 맞아요. 당시 제가 실수를 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많은 고민을 해야 했죠. 듀크를 알리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오히려 활동에 큰 제약을 받더라고요. 음반 매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나 할까요. 또 사람들이 가수인 제게 ‘웃겨보라’고 할 때 느꼈던 그 스트레스가 어땠겠냐고요.” [62]

듀크 시절과 그 이후의 방송에서 입담이 좋기로 유명한 그였으나, 실제로는 여리고 숫기가 없는 편이라고 한다. 숫기가 없었다는 것은 그의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던 일로, 그가 출연한 방송들을 보면 투투 시절에 쑥스러움을 많이 탔던 것은 물론이고 결혼 이후에 출연한 개그 프로그램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 웅이 아버지 53화에서도 관객들을 향해 제스처를 취하다가도 쑥스러워서 손으로 입을 가리기도 하는 등 숫기 없는 모습들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생활기록부에서도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본업은 가수지만 예능적 스킬인 입담과 몸개그 등이 뛰어나서 예능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김종민, 김종국 등의 가수들도 많고 김지훈이 예능에 적극적으로 출연했던 2000년대 초반은 물론 1990년대에도 그러했으나 김지훈의 경우 예능에서 본인의 뛰어난 가창력이나 모창 등 가수로서의 실력은 잘 조명받지 못했고 소속사와 방송사로부터 무작정 개인기만 요구받아 가수와 예능인으로서의 강점을 동시에 살리기 힘들었던 측면이 있었다. 때문의 김지훈의 경우는 가수로서의 실력도 출중하고 예능인으로서의 실력도 뛰어났지만 소속사와 방송사를 잘못 둔 탓에 고정적인 팬층을 키울 기회가 있었음에도 실패한 케이스가 되었다.

4.1. 퀴즈 예능

퍼즐특급열차 (1995년 9월 25일)

퀴즈 형식의 예능에서는 문제를 잘 맞혀 출연자 중에서 상위권을 달린 적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제시어에 대한 설명도 잘하는 편이라 가족오락관의 스피드 게임에서는 문제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고, 첫번째 주자부터 마지막 주자까지 연속으로 정답을 제시해야하는 넷이서 한마음(퀴즈 5인 5답)에서는 남성팀 마지막 순서에 서있었다. 알부라리 ch.27의 경우 정답을 예측할 수 없는 4차원 이상의 퀴즈를 내는 경우가 많지만 순발력으로 맞춰 매 회차 퀴즈마다 우승하는 경우가 많았다. [63]
KBS 가족오락관 800회 특집 (2000년 4월 5일)[64]

특히 브레인 서바이버에서는 (2라운드 1등으로 결승 확정을 포함하여) 결승전까지 네 번 진출해서[65] '가요계의 브레인, 브레인 서바이버의 공식 브레인[66]'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우승을 여러 번 놓치자 '문턱 전문'[67]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브레인 서바이버의 네 번째 출연회차인 2003년 9월 21일(47회)자 방송에서 우승하여[68], 2003년 12월에 서울 인창고등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했다. 전달 당시 후배들의 환호가 가히 '남고에 여자 연예인이 방문했을 때와 같았다'라는 후문이 있다. 인창고등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한 뒤에는 한성중학교로 명패를 달고 출연했으나 최고 성적 준우승으로 마무리했다.
MBC 브레인 서바이버 2004년 2월 15일자 결승전에서 김지훈과 강동원
2004년 2월 15일자 브레인 서바이버 출연 영상으로 결승전에서 '우승 경험이 있는 재주꾼(한성중 김지훈) VS 첫 출연에 결승에 오른 순수청년(거창고 강동원)'의 대결이라고 MC 김용만이 언급하였다. 출연진들의 즉석 투표에서는 김지훈에게 표가 더 나왔으나, 이날 방송에서는 순수 청년이 우승했다.

5. 연기 활동

그는 투투 시절인 1994년에 SBS '기쁜 우리 토요일', KBS2 '톱스타 인생극장' - 투투의 뮤직 극장[69], 좋은 친구들 - 사랑학 개론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회성으로 짧게 콩트 연기를 했지만, 1990년대에는 가수로서의 활동에 집중했다.

그는 경인 방송(iTV)의 시트콤 립스틱(2001)에 세 주인공이 사는 집의 가정부 역할로 출연하면서 주연 배우 못지않은 분량의 조연으로 연기 활동을 했다. 이어 2001년 3월에 뉴 논스톱에 카메오로 출연했으며, 2003년에는 논스톱3에서 카메오로 두 번 출연(효진의 과외를 받은 대학 입시생, 대학 입시에 실패한 뒤 문화대학교 근처에 위치한 카페를 운영하는 카페 사장 역)한 뒤, 논스톱3의 출연진 개편 후 조연으로서 극의 마지막까지 등장했다.

영화 내사랑 싸가지(2004)에서는 거지 역할로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연기학원을 다니며 연기 수업을 본격적으로 배웠고, 2007년 10월부터 12월까지 SBS 심리 극장 천인야화에 출연하여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천인야화에서는 재연극에서 재연배우로 출연하거나, 스튜디오에서 패널로 출연하였으며 MBC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에는 카메오로 출연하였다.[70] 2007년부터 가수로서의 활동보다는 연기자로서의 활동을 늘려나갔는데, 듀크 활동 시기에는 연기에 대한 욕심이 없었지만 듀크 해체 후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고 나서는 연기에 흥미와 욕심도 생겼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2009년 상반기에는 정성산이 연출한 뮤지컬 '위대한 Show'에 탤런트 안신우(성민)와 남자 주인공인 북한군 장교 '조동팔' 역으로 더블 캐스팅이 되어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다. 뮤지컬의 주연배우로 참여한 것은 '위대한 Show'가 처음이었다.[71]

2010년에는 프랑스의 뮤지컬 '스타마니아'의 아리아를 이용해 제작된 뮤지컬 '코로네이션 볼'(2기)에서 클럽 DJ이자 오염된 아이 캐릭터인 '지기'역을 맡았었다. 그는 힘든 기색 없이 다른 배우들보다 일찍 와서 연습에 참여하는 등 작품에 대한 열의를 나타냈었다고 한다. 출연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어쩌면 내가 '지기'처럼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진정을 담아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이 맡은 역할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2010년 12월 연예계 약물 파문으로 1년 전 자신의 사건도 수면에 다시 오르는 데다가 동월에 이혼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심적인 부담에 시달린 그는, 뮤지컬에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제작 발표회 전날인 12월 14일에 자진 하차했다. 하차 후 그가 맡은 역할의 일정에는 다른 뮤지컬 배우가 출연하게 되었고, 공식적으로 2009년에 출연한 '위대한 Show'가 마지막 뮤지컬 출연 작품이 되었다.

6. 사후

김희철: '그대 눈물까지도'는 그야말로 메인보컬 김지훈 씨의 가창력이 굉장히 돋보이는 곡이죠.

김형석: 김지훈 씨 같은 경우는 미성이잖아요. 되게 고음이고. 보통 미성에 고음이면 파워가 사실은 대게 약할 수 있는데 파워풀한 창법이 그냥 마치 화살이 과녁 뚫듯이 쭉 뻗어나가는 그러한 창법을 구사했어요. 그래서 아주 대단한 보컬리스트였고요. 당시 독보적이었죠.

KBS 2TV 전교톱10 2020년 11월 30일자 방송

2013년 12월 13일에 방송된 tvN 드라마 《 응답하라 1994》 16화에 투투 시절에 부른 그대 눈물까지도가 추모의 의미로 흘러나왔다.[72] '그대 눈물까지도'는 1995년에 발매된 투투 2집에는 영어 버전으로, 1997년에 발매된 그의 솔로 앨범과 2000년에 발매된 듀크 1집에 수록되기도 했으며[73], 그가 참석한 각종 행사와 결혼식에서도 축가로 부를 만큼 생전에 그가 아낀 곡이자 그를 상징하는 노래였기에 그의 장례식에서도 흘러나온 노래라고 한다.

그의 발인식이 있었던 2013년 12월 14일자의 KBS2 《 연예가중계》에서는 그의 부고 소식을 전하며 그가 생전에 자주 부르던 노래인 김범수의 '지나간다[74]'를 추모의 의미로 틀기도 했다.

그의 장례식 이후 편곡자의 하드디스크에서 그가 부른 '그대 눈물까지도'의 음원이 발견되었다. 그의 가족들과 투투의 前 멤버이자 작곡가 오지훈의 허락하에 그의 1주기를 기념하여 2014년 12월 11일에 그대 눈물까지도가 유작으로 공개되었다. 유작으로 공개된 '그대 눈물까지도'는 김지훈이 세상을 떠나기 약 6개월 전인 2013년에 녹음한 버전이라고 한다.

2014년 11월 1일, 11월 8일, 12월 20일, 12월 27일, 2015년 1월 3일 총 5회에 걸쳐서 방영된 무한도전 토토가1이 방송된 후, 90년대 대중가요를 듣던 사람들은 그 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거나 자신들이 보고 싶은 스타에 대해 그리움을 나타내기도 했고 토토가 시즌 2에 대한 염원을 나타냈다. 그러나 90년대에 활동하던 가수들 중 몇몇은 하늘로 떠났거나 불미스러운 일로 활동할 수 없는 팀들도 존재하기에 아쉬움을 자아냈는데, 김성재, 서지원, 신해철과 마찬가지로 김지훈도 보고 싶지만 볼 수 없는 하늘로 떠난 스타로 언급되었다.[75]

일과 이분의 일의 경우 2006년 12월 3일자 X맨을 찾아라에서 김지훈이 출연자 이현지의 무대를 돕기 위해 깜짝 출연하여 이현지와 같이 일과 이분의 일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 유재석이 반쪽 춤을 따라 출 정도로 유재석이 좋아하는 노래라고 방송에서 언급하였고, 무한도전 자메이카 편에서는 유재석이 자메이카 사람들 앞에서 일과 이분의 일을 직접 부르며 반쪽 춤까지 추었던 터라 '김지훈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가 토토가 1에 나올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는 의견들이 있었다.

게다가 '일과 이분의 일'은 1994년에 나온 대중가요 중에서도 가장 사랑 받는 노래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에, 토토가 방송 이후에도 그의 부재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의견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일부 어린 세대와 일부 외국인의 경우 박보검 아이린이 2015년에 뮤직뱅크 MC 신고식에서 '일과 이분의 일'을 부른 영상을 보고 노래를 알게 된 경우도 있어 (혹은 다른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서 일과 이분의 일과 반쪽 춤이 나온 것을 보고 알게 된 사람들도 있다.), 원곡 영상을 보고 추모 댓글들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듀크 시절에 부른 Starian은 Pump it up의 영향으로 남미를 비롯한 해외에도 알려진 노래이기에, 그가 떠난 후 Starian을 비롯한 듀크 시절 활동 영상에 외국인들도 추모 댓글을 남기고 있다.

투투 1집의 후속곡인 '그대 눈물까지도'도 역시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였고, 음악 소재 예능과 복고 소재 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최근에도 (2016년) 상당한 지라 그가 부른 투투 시절의 노래들이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을 비롯한 음악 관련 방송에서 재조명되길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2016년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33회에서 그룹 투투 1기 멤버였던 오지훈, 유현재, 황혜영이 희열팀의 출연자로 출연하였고, 인피니트 우현이 복원 슈가송으로 그의 노래인 '일과 이분의 일'과 '그대 눈물까지도'를 불렀다. 일과 이분의 일의 경우 우현과 투투 1기의 멤버들이 함께 무대를 선보였으며, 투투 멤버들의 근황 인터뷰와 출연진들이 그에 대한 회상을 한 뒤에 우현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그대 눈물까지도'를 불렀다.

오지훈은 '그대 눈물까지도'는 김지훈의 유작으로도 발매되고, 듀크 1집에도 실을 정도로 아끼는 곡이었다.'고 노래에 대해 설명하였다. 오지훈의 간략한 설명 뒤에 우현이 김지훈에 대한 추모곡으로 '그대 눈물까지도'를 부를 때 슈가맨에서 자료화면으로 그의 사진과 천국에서 내린 비의 뮤직비디오의 영상으로 틀어주었다.[76]

그의 독특한 음색과 넓고도 높은 음역대를 완전히 소화하기 힘들기 때문에 실제 복원 무대와 추모 무대에서는 원곡보다 키를 낮추어서 무대를 선보였다.[77] 방송에서 MC 유희열은 "(김)지훈 씨 노래가 고음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했으니... 가창력뿐만 아니라 예능에서의 입담도 뛰어났던 그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무표정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황혜영은 김지훈의 장례식 때 만삭이라 그의 발인식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큰 충격을 받은 그때의 기억 때문에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제작진의 출연 제의를 여러 번 거절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꿈에 너무 밝은 얼굴의 김지훈이 나왔던 터라,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는 응원'이라고 생각하여, 슈가맨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방송이 나간 후 우현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78]에서 '선배님들께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솔로 활동을 하면서도 잠을 못 잘 정도로 끊임없이 연습했다'고 하며 "고 김지훈 선배님의 노래를 부르면서 선배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학창시절 때 선배님의 재치 있는 입담을 좋아했거든요. 또 선배님이 노래를 워낙 잘하셔서 제가 잘할 수 있을까 많이 걱정했죠."라고 대답하였다. 자신 또한 가슴 한 켠이 아리고 아팠기에 노래에 더 집중하였다고 복원송에 참여한 소감을 이야기하였다.

2020년 11월 30일 KBS 2TV 전교톱10 패자부활전 8번째 곡으로 투투의 '그대 눈물까지도'가 선정되면서 그의 이름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전교톱10에서는 그대 눈물까지도를 '김지훈의 가창력이 빛을 발하는 곡'이라고 자막으로 소개했다.

2021년 2월 11일 일과 이분의 일 오리지널 감독판 뮤직비디오가 김세훈 감독의 유튜브 채널에서 독점 공개되었다. 27년 간 미공개 상태로 있던 영상을 4K 화질로 복원해서 업로드 한 영상이라고 한다.

2023년 12월 12일부로 10주기를 맞이했다.

6.1. 장자연 관련

미투 운동이 불면서, 그리고 2019년 3월에 있을 장자연의 10주기를 앞두고,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수사 요청이 빗발쳤다. 이 시기에 김지훈이 장자연 사망 이후인 2009년 3월 중순에 MBC 기분 좋은 날에서 장자연을 추모하며 했던 말이 주목받았다. 김지훈은 당시 아내를 통해 아내의 지인인 장자연을 알게 되었다. 그는 연예계 선배로서 장자연의 고충을 들어주고 장자연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또한 GF 엔터테인먼트의 이사인 그는 GF 엔터테인먼트 대표에게 장자연의 영입을 제안했고, GF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장자연은 GF 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이적에 관한 얘기를 나눈 후에 GF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하기로 결정하고 이적 절차를 밟고 있었다고 한다.[79]

김지훈은 2009년 3월 18일자 MBC '기분좋은 날'에서 이와 관련해 찔리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자연의 유족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연예인인 자신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해 장자연의 영정사진을 직접 들었다.

7. 가족오락관

  • 2000년 3월 15일
  • 2000년 4월 5일
  • 2000년 11월 18일
  • 2001년 1월 6일
  • 2001년 8월 25일
  • 2002년 12월 7일
  • 2003년 2월 1일
  • 2003년 7월 5일
  • 2006년 8월 19일
  • 2006년 10월 7일
  • 2006년 11월 25일
  • 2009년 1월 3일

8. 음반

8.1. 정규음반

<rowcolor=#373a3c> 음반 제목 발매일 타이틀곡 그 외 활동곡
투투 1집 TWO TWO 1994년 5월 1일 일과 이분의 일 그대 눈물까지도, 내 인생의 러시아워[80]
투투 2집 TWO TWO 2 1995년 6월 30일 바람난 여자 니가 내 것이 되갈수록
김지훈 1집 KIM JI HOON VOL. 1 1997년 7월 21일 익숙해진 슬픔 -
듀크 1집 2000 Duke Part One 1999년 Starian Good Night, 소원
듀크 2집 Two House 2000년 11월 8일 Party Tonight 두번째 소원
듀크 3집 In Autumn (A Road, Sky And D.K) 2002년 10월 29일 천국에서 내린 비 주말의 명화
듀크 4집 포르노 그라피 2004년 7월 2일 아가씨, Hunters[81] -

8.2. 비정규음반

<rowcolor=#373a3c> 음반 제목 발매일 타이틀곡 그 외 활동곡
싱글 앨범 Gang First Album 1998년 8월 1일 - -
듀크 2.5집 Duke Summer Special 2001년 7월 26일 Boom Boom 궁둥이 댄스, Alone, Come Tonight
리믹스 앨범 Duke Story Of Winter(Winter Special Great Hit Remix) 2002년 1월 18일 - -
싱글 앨범 The Rebirth Of Duke 2006년 7월 18일 Superman(Feat. 강수지) -
디지털 싱글 김지훈 정식 추모앨범 2014년 12월 11일 그대 눈물까지도 -

8.3. 참여 음반과 참여곡

<rowcolor=#373a3c> 음반 참여곡 발매일
'90 KBS 청소년 창작가요제 지나간 순간은 찢겨진 가슴되어 1991년 1월
'94 내일은 늦으리 아름다운 세상으로, 용사의 외침 1994년 11월 6일
룰라 투투의 크리스마스 Silver Bell, 저 들밖에 한 밤중엔, 동화속의 크리스마스,
석별의 정, White Chirstmas
1994년 12월
수호천사 수호천사 2001년 3월 29일
Dj처리의 Cross Over Vol. 1 Last Night's Story, One Night Stand 2001년 10월 10일
Happy Christmas Last Christmas X-Mas Party (Feat. DJ 사빈, DJ 이탁) 2001년 11월 27일
Stars On 45 Carol - 크리스마스를 빛낸 45인의 명사들 펠리스나비다 2002년 11월
I Love Christmas + Dance + Hiphop White Christmas 2002년 11월 26일
Kiss In The Rain We Can Do, Love Hunters 2004년 7월 23일
황금신부 정규앨범 OST 사랑합니다 2007년 9월 10일
이은하 - My Song My Jazz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 (Feat. 김지훈) 2012년 2월 21일

9. 출연작

9.1. CF 광고

<rowcolor=#373a3c> 연도 작품
1994 (주) 마이크로 - 마이크로 터치 샤프
1994 미코팬시 #
1994 롯데제과 개성파 초코 바 #
1995 한국종합유선방송협회 30개의 채널 케이블 TV
2000 오리온 새알 #
2000 오리온 비틀즈 #

9.2. 시트콤

<rowcolor=#373a3c> 연도 작품 역할
2001 iTV(경인방송) 립스틱 가정부 김지훈
2001 MBC 뉴 논스톱 성악과 학생 김지훈 (카메오 출연)
2003 MBC 논스톱3 김지훈
2007 MBC 김치 치즈 스마일 카메오 출연(70화: 의사, 83화: 신문 기자)

9.3. 뮤지컬

<rowcolor=#373a3c> 연도 작품 역할
2009 위대한 Show 조동팔

9.4. 영화

<rowcolor=#373a3c> 연도 작품 역할
2004 내 사랑 싸가지 거지 (특별 출연)

9.5. 기타

<rowcolor=#373a3c> 방송일자 작품 소제목 역할
2001. 01. 24. MBC 가수들의 설날동화 피의자
2007. 10. 19. SBS 심리극장 천인야화 체크드라마 조급증 - 바쁘다 바빠 서차장의 하루 서차장
2007. 11. 09. SBS 심리극장 천인야화 Dear 해미 해미에게 물어보세요 - 너는 내 운명 선배 약사
2007. 11. 23. SBS 심리극장 천인야화 Dear 해미 해미에게 물어보세요 - 남편의 덫 담임 선생님
2007. 12. 07. SBS 심리극장 천인야화 Dear 해미 해미에게 물어보세요 - 내 남편은 양치기 소년 오동팔
2007. 12. 21. SBS 심리극장 천인야화 Dear 해미 해미에게 물어보세요 - 내 남편은 팔불출 남편

10. 수상경력

10.1. 시상식

<rowcolor=#000000> 연도 시상식 명 수상 부문
1994년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SKC 신인 가수상
제5회 서울가요대상 랩댄스 부문 대상[82]
KBS 가요대상 신인상
골든디스크[83] 본상
2002년 제10회 한국최고인기연예대상 신세대가수상

10.2. 가요 프로그램

<rowcolor=#000000> 날짜 곡명 방송명 비고
1994.07.17. 일과 이분의 일 SBS 생방송 TV가요 20 첫 1위
1994.07.24. SBS 생방송 TV가요 20 2주 연속 1위
1994.08.07. SBS 생방송 TV가요 20 1위
1994.08.14. SBS 생방송 TV가요 20 2주 연속 1위
1994.08.21. SBS 생방송 TV가요 20 3주 연속 1위
1994.07.21. KBS 가요톱텐 가요 톱텐 첫 1위
1994.08.03. KBS 가요톱텐 2주 연속 1위
1994.08.10. KBS 가요톱텐 3주 연속 1위
1994.08.17. KBS 가요톱텐 4주 연속 1위
1994.08.24. KBS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 골든컵


[객원멤버] [훈음] 슬기 / 공적 [3] 음력 1973년 2월 17일. 공식 프로필에 기재된 1973년 5월 5일은 주민등록상의 생일이다. 김지훈이 안치되어 있는 분당추모공원 휴에는 생년월일이 1973년 2월 17일(음력)로 기록되어 있다. 유주연, 「[단독영상] "보고 싶습니다"…故 김지훈, 사망 1주기 추모식 '눈물 바다'」, OBS, 2014.12.12. [4] 투투, 듀크 시절 공식 프로필 키이며 신문, 잡지에도 기록된 키. [5] 몸무게의 경우, 공식 프로필 상의 몸무게(63kg)는 듀크 초창기 시절의 몸무게다. 2008년 1월 감성매거진 행복한 오후에서 투투 시절은 지금(2008년)보다 20kg 정도 덜 나갔고, 솔로 앨범 시기엔 15kg 정도, 듀크 시절엔 10kg 정도 덜 나갔다고 언급하였다. 이 언급들로 짐작해보면, 투투 시절에는 53kg, 솔로 앨범 시기에는 58kg, 2008년의 체중은 73kg였던 걸로 보인다. [6] 김지훈이 생전 출연한 2007년 4월 19일자 《 생방송 투데이》 958회에서 어머니의 연세를 세는나이로 72세라고 언급했다. [7] 4남매 중 둘째. 관련 기사 김지훈과 돌림자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김강연은 항렬자에 따라 작명되었고 김지훈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8] 2008년 6월 30일의 KBS 연예수첩에서는 이름이 '김찬'으로 나와 있으나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혼 후 전처와 김지훈 사이를 오가다 김지훈 사후 완전히 전처에게로 갔다. [9] 92학번. 재학 당시 교명과 학과명은 명지실업전문대학 음악과 [10] 투투 시절 때 메가 히트곡인 일과 이분의 일의 최고 음역대는 "3옥타브 도#(C#5)"이며 네 어깨 손 올는 다른 어떤 사람 구간에서 최고 음역대를 찍는다. 그것도 후렴구가 아닌 구간에서. 이윤정(무대에서는 황혜영이 이윤정 대신 무대에 섰다.)의 파트보다 음이 더 높다. 노래 말미에 흥얼거리는 파트까지 포함하면 리믹스 버전은 최고 음역대가 "3옥타브 미(E)"까지 올라간다. 여성 파트의 최고 옥타브는 "2옥타브 시(B4)" 참고로 Starian의 경우 최고 옥타브는 "3옥타브 미(E)"며, 듀크 2집에 수록된 38˚의 최고 옥타브는 "3옥타브 솔(G)"이다. [11] 심지어 웬만한 곡들이 2옥타브 후반~3옥타브 초반을 마구 난사하고, 쉴 틈이 거의 없었다. 김지훈이 괴물같은 가창력 보유자였기에 가능했던 일. 난이도로 치면 웬만한 곡들이 임창정의 헬곡들이나 엠씨 더 맥스의 1~2티어 곡들 수준으로 어려웠다. 일부 소수의 곡은 이들 이상의 김경호의 블러드 같은 메탈 곡 난이도 수준의 헬곡이었다. [12] TV는 사랑을 싣고 2003년 10월 26일자 방송에서 그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의 일부가 공개되었으며, 온순하다는 표현은 학년별 평가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단어다. [13] 재학 시절 내내 중창단 활동을 한 것은 아니고 중간에 탈퇴했다고 한다. [14] 즉, 선생님에게도 가수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고등학교 시절이 1989~1992년이었음을 감안하면 체벌과 군기가 당연하던 시절이었음에도 이 정도로 배려를 받은 것이다. [15] 김지훈이 생전 예능에서 자주 불렀으며 원 키 그대로 소화해 그의 가창력을 뽐내기도 했다. 1994년 9월 28일에 방영한 《밤과 음악 사이》에서는 She's Gone을 부를 때 살짝 실수를 하였지만, 2003년 3월 14일에 방송한 ' 폭소클럽 - 박준형의 게스트 클럽'에서는 완벽하게 소화해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지식인 등 웹사이트에서도 그가 'She's Gone'을 소화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6] 김지훈은 KBS 2TV '감성매거진 행복한 오후'의 2008년 1월 31일자 방송에서 청소년 창작가요제 본선에 진출한 사실을 언급하였다. 그가 참가한 제3회 청소년 창작가요제의 우승자는 가수 윤영아며, 가수 김경호는 제2회 청소년 창작가요제의 수상자였다는 사실도 언급했다.[84] 김지훈은 수상자 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1990년 제3회 KBS 한국방송공사 청소년 창작가요제의 LP 음반에는 그의 노래도 수록되어 있다. LP 음반은 수상자 8팀(대상 윤영아, 금상 2팀, 은상 2팀, 동상 3팀)과 본선 진출자 중 비수상자 4팀의 노래가 수록되어있다. 김지훈의 경우, LP 음반 뒷면 본선 참가자 명단 부분에서 동상 수상자 다음으로 사진과 이름이 배치되어 있다. [17] 본선 참가번호: 11번 [18] 유현재의 선배는 유현재에게 김지훈을 소개하기 전에, 1990년 청소년 가요제에 나온 아이라고 하며 밴드 보컬로 김지훈을 추천했다고 한다. [19] 오지훈 또는 유현재 [20] 김지훈: 실용음악과, 오지훈: 전자계산학과, 유현재: 기계설계학과 [21] 셋은 신촌에서 언더그라운드 록밴드로 활동했는데 그당시 부른 곡 중에 하나가 Room Tiger로 2000년 7월 2일자 'SBS 러브게임 - 클럽 싱글즈 연예인 특집 제1탄 가수편'에서 김지훈이 기타를 치며 부르기도 했다. [22] 그러나 1994년에 김지훈과 유현재는 자동차 운전 면허가 없어, 투투 구성원 중에서 유일하게 자동차 운전 면허를 소지한 오지훈이 운전하는 차로 스케줄 이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투투 1기 시절에는 로드매니저가 없었고, 매니저도 운전 면허가 없어 투투 활동 이전부터 자동차를 소유한 오지훈이 직접 자신의 차에 멤버들을 태우고 다녔다. [23] 투투 참여 부분: 내일은 늦으리 1994, 2부 - 일과 이분의 일, 투투 인터뷰, 용사의 외침, 아름다운 세상으로 [24] 출처: 4인조 그룹 <투투> 해외시장 "노크", 1994. 7. 20., 김종림 기자, 연예정보신문 [25] 가요톱10의 1994년 7월 1주차 방송은 상반기 결산 방송이며, 7월 1주의 순위를 측정하지 않았다. [26] 골든디스크로 알려져 있는 대한민국 영상 음반대상과는 다른 시상식이다. [27] 투투 2집은 오지훈이 군입대 당일까지(1995년 5월) 프로듀서로 참여한 앨범이지만 가수로서는 참여하지 않았기에, 투투 정규 멤버 중 김지훈만 2집 앨범에 참여했다. 투투 2기는 정규 멤버 김지훈에 객원 멤버 셋이 구성되었기에 김지훈이 그룹의 리더가 되었다. [28] 투투 2집 활동 말기에 다리를 다쳤던 터라 한 동안 병원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녔기에, 마지막 무대에서는 다리를 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9] 일과 이분의 일이 수록된 데뷔 앨범은 1994년에 120만 이상 팔렸다고 한다. 출처: MBC 뉴스투데이, 2020. 8. 24. TV 앨범 '일과 이분의 일' 투투 [30] 2008년 1월 31일자 KBS2 감성매거진 행복한 오후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투투 시절의 수입 문제는 투투의 1집과 2집의 객원 멤버로 활동했던 황혜영도 2011년 ~ 2013년 사이에 출연했던 SBS 자기야, tvN e-news(2012년 11월 8일에 방영)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31] 투투 1집은 김지훈, 오지훈, 유현재, 이윤정이 보컬로 참여한 음반이다. 음반이 완성된 후에 여성 파트의 실연자인 이윤정이 개인사정으로 일과 이분의 일의 무대에 설 수 없자 황혜영이 일과 이분의 일 무대 활동을 위한 객원 멤버로 들어왔고, 황혜영은 이윤정이 부른 노래에 립싱크를 했다. 그러므로 투투 1집 정규 음반에는 황혜영의 이름이 실리지 않았다. 투투 1집 음반이 약 120만장이 팔렸어도 1994년 여름에 발매된 재판 앨범 겉표지 사진과 가사집 속 사진을 제외하고는, 황혜영에겐 투투 1집(초판, 재판 모두) 음반 수록곡에 대한 (광의의) 저작권이 없다. 황혜영은 일과 이분의 일 리믹스 버전 녹음 이후인 1994년 7월부터 1994년 12월까지 일과 이분의 일로 활동할 때 그녀의 목소리로 녹음된 리믹스 음원을 사용할때도 있지만, 투투 시절 대다수의 활동은 이윤정의 목소리로 녹음된 음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투투 2집에 수록된 일과 이분의 일의 영어 버전, 바람난 여자의 여성 파트의 실연자도 이윤정이다. 게다가 연기자 활동 분야에서는 투투로서 계약이 만료(1994년 12월 31일)된 직후인 1995년 1월부터 연기자 매니지먼트 회사인 '스타서치'의 소속 배우로 연기자 활동을 해오다가 음악 활동 분야에선 투투의 소속사인 휘트니스와 객원 멤버 계약을 맺은 황혜영의 경우, 김지훈과 수익 정산 방식에 있어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혜영이 투투 소속사로부터 받은 금액도 그녀가 일한 기간에 비해 너무나 적은 액수였다. 심지어 오지훈의 경우 투투 1집과 2집의 앨범 수록곡의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오지훈의 자동차로 멤버들을 태우고 이동(출퇴근 포함)하는 등 운전 업무까지 했음에도, 오지훈이 투투 활동 후 정산 받은 금액은 김지훈이 받은 금액과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고 코러스를 부른 유현재도 마찬가지로 정산을 제대로 못받았다. 참고로 룰라 멤버들도 1990년대 중반에 받은 1인당 수입은 투투 멤버들이 받은 1인당 수입과 비슷했다고 한다. [32] 투투 활동에 대한 정산이 불공정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듀크 활동할 때는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는 정산을 괜찮게 받은 편이었다. 듀크 멤버였던 김석민은 듀크 활동으로 억대의 수익을 벌었다고 스페이스A의 멤버 박재구의 유튜브 채널 응답하라재구가간다에서 이야기했으며, 듀크 활동 당시 개인 활동을 병행한 김지훈이 김석민보다 많이 벌면 많이 벌었지 적게 벌지는 않았다. 김지훈은 생전에 투투 시절에 돈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오해를 받았기에 투투 시절 일화와 정산 이야기를 방송에서 가끔 해온 것이지 21세기엔 1990년대 중후반 만큼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지 않았다. 듀크 활동 후반기부터 김지훈의 매니저를 맡은 김지훈의 사촌 동생은 2013년 12월 인터뷰에서 '형은 젊었을 때부터 연예계 바닥에 있는 힘든 동료들을 정말 많이 도운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의 경제적 상황을 추측한 기사들의 내용을 부인했다. [33] 오지훈이 휴대폰을 판 돈으로 1993년 여름에 유현재와 마련한 작업실 겸 숙소로 소속사에서 마련한 청담동 숙소로 이사(1994년 8월)가기 전까지 거주했다. 김지훈은 1994년에 숙소에 합류했다. [34] 남궁연의 고릴라디오 (2007. 3. 9.) [35] 투투 활동 이전에 방위 판정을 받았으며, 1996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36] 출연자: 주영훈, 이정현, 싸이, 이기찬, 황보, 김지훈 [37] 김지훈의 아버지는 김지훈이 6살 때 세상을 떠났다.(이 사실을 2009년 5월에 방영된 KBS Drama 채널의 '하하호호 부부유친'에서 언급하였다.) 그는 듀크로 활동하면서 번 돈을 모아 2001년 상반기에 집을 산 뒤 미국의 누나 집에서 거주했던 어머니를 모셔왔고, 2007년 4월까지(결혼 전까지) 어머니와 같이 살았다. 그는 여러 예능에서 1집만 세 번(투투, 솔로, 듀크) 냈었다는 사실을 언급했었다. [38] 세 곡은 모두 듀크 1집에 수록되어있다. '비연'은 듀크 2.5집에도 수록되어 있다.(1집 버전 편곡: 김한규, 2.5집 버전 편곡: 김진수) 듀크 2.5집에 수록된 비연은 김석민, 김지훈 둘의 목소리로 리메이크했다. [39] 작사: 김석민, 김지훈, 작곡: 김지훈 편곡: 최재은 [40] '듀엣 듀크 테크노 전사로 뜬다.', 허엽, 1999.12.29., 동아일보 [41] 그 당시 현영은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42] 타이틀곡을 2개 정도 썼지만 흥행하지 못해 소속사 사무실에서 눈치를 봤다고 2002년에 출연한 야! 한밤에 - 진실 혹은 대담에서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듀크 1집의 타이틀곡인 'Starian'과 듀크 2.5집의 타이틀곡인 'Boom Boom'을 언급하는 듯하다. [43] 김지훈은 특히 Unchained Melody를 부른 뒤에 팬레터를 받고, 홈페이지에 사연이 올라오는 등 듀크의 음악적인 면모를 알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며 힘든 시기 듀크에게 꿈과 희망이 된 노래라고 2001년 3월 27일자 신동진의 미니콘서트에서 말했다. [44] 원곡: 주다스 프리스트 Breaking The Law [45] 한 예로 2001년 7월 10일과 동년 7월 17일에 방송한 토크박스 3년 결산 왕중왕전에 듀크가 출연했다. 듀크는 토크박스를 빛낸 스타 베스트 15에서 14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46] 작사: 김지훈, 김석민 작곡: 김지훈, 최재은 [47] 2001년 1월 2주, 2001년 1월 3주 [48] 2001년 1월 30일, 2001년 3월 27일 방송 [49] 수호천사는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기 위해, 앨범의 수익금을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들에게 전달해주고 치료되어가는 과정을 전달하려는 의도로 기획된 앨범이다. [50] 열린음악회에서 'Party tonight'은 김석민, 김지훈이 랩을 다 소화하고 김태영의 피처링 부분은 김지훈이 불렀다. [51] 다만 편곡은 김석민, 김진수가 하였다. [52] 마약복용 듀크 멤버 김지훈, 벌금 2,000만원, 헤럴드POP, 정은정, 2005.08.17 [53] 다만 결혼식은 2008년 6월 27일에 올렸던 터라 일부 언론에서는 결혼식 이전의 혼인 기간을 사실혼 또는 동거 기간으로 언급했다. 대한민국은 법률혼 국가기 때문에 결혼식 날부터 결혼이 성립했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김지훈은 2007년 4월부터 신혼집에서 거주했다고 방송에서 사실을 알렸다. [54] 관련기사: '마약 투약' 가수 김지훈 집행유예, 연합뉴스, 김계연, 2009.12.02 [55] 관련기사: 포토 가수 김지훈, 관객들과 하이파이브!, 한국경제 [56] 2013년 10월 초에 후배 연예인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렀다. [57] 2011년경 올린 트위터에선 본인이 무당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2013년 전 남편이 사망할 당시 해명한 기사로는 사실이 아니고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밝혔다. # [58] 2000년 6월 17일부터 매주 토요일 마다 iTV에서 방송한 순위제 가요 프로그램이다. 초대 MC는 김지훈과 여성 가수 '나라'다. 관련기사 - 김지훈 음악쇼프로 MC 맡아, 중앙일보, 2000. 6. 2., 45면 [59] 브레인 서바이버를 패러디한 '노 브레인 서바이버' 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렉시와 함께 게스트로 나왔었다. [60] KBS 2TV 스타집현전(2003년), SBS 위기탈출 수호천사(2003년), MBC 타임머신(2003년 ~ 2004년), KBS 2TV 성공예감 경제특종, MBC 와! e멋진세상, KBS 2TV TV 교과서 학교야 놀자 등 [61] 한 예로 도전 1000곡 13회에서 우승해, 왕중왕전인 19회와 20회에 출연했다. [62] [셸위토크]김지훈, 물오른 재치입담 살아난 MC 본능, 2008. 4. 13. 스포츠경향 [63] 퀴즈 전적: 가족오락관의 경우 12번 출연해(797회, 800회, 831회, 838회, 870회, 925회, 933회, 952회, 1103회, 1110회, 1117회, 1224회) 9승 1무 1패(2006년 10월 7일에 방송된 1110회 추석 특집 노래의 제왕 편은 승부를 내지 않았다.), 퍼즐특급열차(1994년 9월 26일 방송)에선 준우승, (1995년 9월 25일 방송)에선 우승, 2003년 상반기에 고정 출연한 스타 집현전에서도 대부분 최종 순위 5위 이내(1라운드 1위 포함)의 성적을 거뒀다. [64] 우승한 가수팀 출연자는 먼 훗날 브레인 서바이버의 우승자가 된다. 서수남(24회), 김흥국(107회), 조갑경(65회) [65] 총 여섯 번 출연 중 결승전 네 번 진출 [66] 브레인 서바이버에서 결승전에 여러 번 진출하고 우승도 세 번이나 했던 이윤석의 라이벌로 불리기도 했다. 이윤석은 그 전에 퍼즐특급열차(1996년 6월 24일 방송,136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었다. [67] 당시 안재모, 유진에게 패했다. 2003년 8월까지 총 세 번 출연 중 결승전에 두 번 진출했기에 네 번째 출연회차인 47회에 '문턱 전문'으로 불렸다. [68] 논스톱3에 출연했던 김지훈은 당시 논스톱4에 출연 중인 예학영과 결승전에서 대결했다. [69] 1994년 10월부터 방영된 주말 예능프로그램 톱스타 인생극장의 하위 프로그램으로, 출연 연예인의 이름을 붙인 ○○의 뮤직 극장이 제목으로 붙는 콩트다. 뮤직 극장에는 주로 가수들이 출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70] 83화. 극중 엄기준을 괴롭히는 초등학교 동창이자 신문 기자로 나왔다. [71] 여자 주인공 '럭시' 역할로는 바나나걸 1대 멤버인 안수지가 출연했으며, 김진수가 조연으로 출연했다. [72] '응사' 김지훈 떠났기에 더 슬픈 '그대 눈물까지도' [73] 그대 눈물까지도는 1994년과 1995년은 노래를 작곡한 오지훈이 편곡을, 1997년, 2000년, 유작은 다른 사람들이 편곡했다. [74] 연예가중계에서는 더원이 부른 버전으로 나왔다. 생전에도 '지나간다'와 '가슴에 지는 태양'을 비롯한 김범수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그가 2003년에 조연으로 중간투입 된 논스톱3에서도 김범수의 '하루'를 부르기도 했다. [75] 관련 기사: [연예의 법칙] ‘보고 싶지만…’ 토토가에서도 볼 수 없는 90년대 스타들, 스포츠 동아, 2015.01.06. [76]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는 김지훈이 부른 1994년도의 원곡도 몇 초간 추모곡으로 흘러나왔다. [77] 일과 이분의 일은 한 키를 낮추어서 노래를 불렀고 그대 눈물까지도는 두 키 정도 낮추어서 불렀다고 한다. [78] '슈가맨' 남우현 "故 김지훈 생각나, 가슴 아렸다", OSEN [79] 관련 기사 [80] 1994 한국 슈퍼모델 선발대회》 에서 선보였다. [81] 팬들의 의견을 물어 정한 더블 타이틀 곡이다. [82] 1994년 제5회 서울가요대상 수상자 목록 - 올해의 가수상(=대상): 김건모/ 트로트 부문 대상: 임주리, 최유나, 설운도 /팝발라드 부분 대상: 신승훈, 부활, 신성우 /랩댄스 부문 대상: 김건모, 투투, 룰라 /신인상: 구본승 /특별상: 이애숙 /최고작곡가상: 김창환 /최고편곡자상: 김형석 /최고작사가상: 양인자 /최고인기가요기획상: 사맹석 [83] 2001년에 '골든디스크'로 바뀐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과는 다른 시상식이며, 전국음반도매상연합회가 주최한 행사였다. 유현재의 입대 후 있던 시상식으로, 시상식에는 멤버 3명과 음반기획자가 참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