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후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SK 와이번스 등번호 69번 | ||||
문승원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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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근 (2013~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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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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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등번호 31번 | |||||
홍성호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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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D1C24> 김정후 (2018~2018.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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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빈 (2018.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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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등번호 22번 | |||||
성영훈 (2018~2018.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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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후 (2018.9.8.~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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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연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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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등번호 43번 | |||||
손주영 (2017~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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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후 (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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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원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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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26번 | |||||
이상민 (2018~2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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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후 (2020~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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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앙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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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후[1] 金正厚|Kim Jung-H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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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8년 9월 26일 ([age(1988-09-26)]세) |
서울특별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서울고명초 - 건대부중 - 경동고 - 단국대 |
신체 | 178cm|95kg |
포지션 | 외야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2013년 10라운드 (전체 87번, SK) |
소속팀 |
SK 와이번스 (2013~2014) 니가타 알비렉스 베이스볼 클럽 (2017)[2] 두산 베어스 (2018) LG 트윈스 (2019) 키움 히어로즈 (2020~2021) |
지도자 | 원주중학교 야구부 코치 (2022~2023) |
병역 |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10년 11월 29일~2012년 9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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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006년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으로 22회 세계 청소년 야구선수권에서 우승한 이력이 있다.[3] 이후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상무에 지원해 합격하여 군복무를 수행했으며, 상무에서 유난히 성적이 좋아 군복무를 마친 후에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지명된 특이한 케이스다.[4]2.2.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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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의 2차 10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이 당시에는 우투우타.
2013 시즌 시범경기에서 빠른 배트 스피드와 타석에서의 적극성을 보여줘 이만수 감독이 차세대 4번 타자로써 점찍었다.[5] 시즌이 시작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은 팬들에게 인상 깊게 남았으나 정작 공을 배트에 못 맞히는 선풍기 스윙을 보여주며 시즌 대부분을 2군에서 보냈다. 당시 스윙 영상
그리고 2014 시즌 2군 스프링캠프 청백전 도중 외야에서 슬라이딩 수비를 하다 왼쪽 어깨가 그라운드에 찍혀 극상근 손상에 연골까지 다쳤고, 탈골까지 되어 2014년을 통째로 재활군에서 보냈다. 그리고 시즌 후 방출되었다.
2.3. 일본 독립 리그 시절
그 후 1년 간 쉬다가 경동고 시절 투수코치였던 곽채진 당시 언북중 야구부 감독이 투수 전향을 권유해서[6] 오른쪽으로 던져 봤는데, 구속 147km/h까지 나오게 되자 에이전트를 통해 일본 사회인 야구를 거쳐서 독립 리그팀인 니가타 알비렉스 베이스볼 클럽에서 활동했다.이후 일본프로야구 진출을 시도하여 치바 롯데 마린즈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지만 불합격했다.[7]
2.4. 두산 베어스 시절
결국 국내 복귀를 택한 그는 2017년 말에 두산 베어스와 계약하여 2군에서 2018 시즌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3월 17일 시범경기 LG전에서 팀의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0.2이닝 동안 볼넷 3개를 허용하며 1실점을 하고 내려갔다. 첫 타자를 아웃처리했으나 그 이후 3타자를 연속 볼넷으로 내보낸 것을 보아 제구가 조금 불안해 보인다.
4월 3일 LG전을 앞두고 시즌 첫 1군 콜업되었다.
4월 10일 삼성전 9회말 1사에 등판해 아웃카운트 두 개를 뜬공과 삼진으로 처리했다. 긴장했는지 제구는 조금 불안했지만 그래도 구위가 좋았고 특히 마지막 삼진잡는 변화구도 좋았기 때문에 기대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던 등판.
4월 13일 넥센전에서 12점 차로 앞선 9회말 등판해 가비지 이닝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이날 공 19개를 던졌는데, 1개를 제외하고 전부 직구였다. 12점 차라는 넉넉한 점수차에도 불구하고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다.
4월 17일 선발투수 유희관이 5이닝 5실점으로 탈탈 털린 5:2 상황에서 등판해 3이닝 무실점으로 추격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냈다. 투타가 다 죽쑤는 경기에서 유일한 소득.
5월 4일 kt전에서 1,856일 만에 타석에 복귀하였다. 상대한 투수는 이종혁. 안타를 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했으나, 결과는 이종혁의 몸쪽 높은 139km/h 직구에 헛스윙하며 7구 헛스윙 삼진. 1,856일만의 타자 복귀전이었지만 소득 없이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다음 날 인터뷰
5월 8일 KIA전에서는 현도훈이 7실점하고 내려간 후 2.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평균자책점을 1.88까지 낮췄고 삼진도 3개를 잡았다. 그러나 5월 8일 기준 ERA와 FIP(6.06) 간의 격차가 상당히 큰 편이라는 것이 고민.
5월 22일 연장 11회에 등판했으나 피안타 이후 번트 타구를 잘 잡고도 송구 실책을 범해 무사 2,3루의 위기에 몰렸다. 결국 다음 타자에 끝내기 안타를 맞아 패전 투수가 되었다.
다음날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2군에서 변화구를 연마하고 있다고 한다.
9월 결국 등번호 31번을 원 주인 정수빈에게 뺏겼다.
9월 중순부터는 2군 실전에도 투입되는 중. 상황에 따라 1군 재콜업도 기대해볼만 하다.
웨이버 공시된 이후 일주일 동안 김정후를 데려가려고 나서는 구단은 없었고, 결국 자유계약 선수가 되었다고 한다.
2.5. LG 트윈스 시절
이후 스포츠투데이에 의하면 LG 트윈스의 2군 선수단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이후 이렇다 할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9년 1월 14일 LG에서 공식으로 영입을 발표했다. 처음 소식이 나온 뒤로 한 달 정도가 지나서야 공식 영입을 발표한 것이 위 문단에서 언급한 폭행 관련 루머 때문이 아닌가라는 추측이 있었으나 확실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4월 20일 키움전 9회초 시즌 첫 등판을 가졌다. 결과는 0.2이닝 1피안타 1삼진 무실점으로 1군 실전등판이 오래된 것치고는 괜찮았다.
4월 23일 KIA전에서도 등판하여 1이닝을 잘 막아주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4월 29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2군에서는 꽤 좋은 모습이지만 7월 31일 KIA전을 마지막으로 등판이 없다가 시즌 후 방출되었다.
2.6. 키움 히어로즈 시절
[SC인터뷰] '파란만장' 키움 김정후 "오승환 선배와의 만남, 상상만으로도 설레"
2019년 11월 26일 키움 히어로즈와 계약을 맺으며 다시 한 번 기회를 부여받게 되었다. 일본 독립야구 시절부터 뒷바라지를 해줬던 아내와 12월에 결혼한다고 한다. 이로써 이성열에 이어 서울 3팀에서 모두 뛰어본 진기록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포스트시즌에서 대활약한 이영준이 단국대학교 3년 후배. 따라서 이 팀에 단국대학교 출신 투수가 두 명이나 있게 되었다.
2020년 1월 17일 처음으로 단독 인터뷰 기사가 떴다. 본인 말로는 예전에도 히어로즈에서 연락이 왔었는데, 본인이 못 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좋은 우완 투수들이 너무 많아서 겁이 났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매니저 덕에 결국 키움에 입단했다고 했는데, 너무도 고맙고 미안하다고, 목표는 "이 팀에서 은퇴하겠다 생각하고, 원 없이 던지고 싶다. 그 말을 책임지고 싶다."고. 해서 키움 팬들 입장에서도 이영준처럼 괜찮은 구위로 성공한 케이스가 있으니 굉장히 기대하는 중.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퓨처스 리그 등판도 전혀 없다가 6월 19일에 비로소 퓨처스 첫 등판을 했다.
7월 5일 수원 kt전에서 무사 만루를 만들어 놓은 이승호를 이어 등판했으나, 밀어내기 볼넷 포함해 철저하게 분식해주고 본인도 실점했다. 140km/h 중후반까지 나오는 구속이지만, 제구 불안 문제는 여전히 안 고쳐진 듯하다. 물론 무사만루에서 시즌 첫 등판을 하는 투수를 올린 손혁 감독이 문제라는 의견도 많았다. 이를 지켜보던 키움 팬들은 볼질하는 손승락→볼승락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게다가 2군에서 9점대 ERA를 찍고 있는 투수를 것도 무사 만루에 이적 후 첫 등판을 시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결국 기사도 뜨고 말았다. 무사 만루 등판… ‘150㎞’ 김정후에게 가혹했던 키움 데뷔전
7월 7일 삼성전에서는 삼진 2개를 곁들여 1이닝을 막았으나 3안타를 얻어맞으며 1실점했다.
7월 10일 KIA전에서 1점 차로 뒤진 상황에 등판하여 3타자를 상대했으나 터커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볼넷을 내주는 등 아웃카운트를 하나밖에 잡지 못했다. ⅓이닝 1실점. 11일 KIA전에서도 ⅔이닝 동안 5타자를 상대하며 볼넷 두 개를 곁들여 1실점.
7월 5일 키움 데뷔전 이후 네 경기를 등판했는데 매 경기 꼬박꼬박 실점했다. 3이닝 동안 7안타 4볼넷을 허용하며 이닝도 전혀 먹지 못했다. 시즌 첫 등판이 다소 가혹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로 이닝 소화가 어려우면 패전처리로도 기용하기 힘들어진다. 결국 7월 12일자로 다시 2군행 통보를 받았다. 젊은 선수도 아니고 이미 30대 초반인 김정후에게는 앞으로의 전망에 먹구름이 가득 낀 셈.
그런데 시즌 후 그보다 1군 경력이 좋고 나이도 젊은 정대현, 신재영 등이 부진으로 방출되는 와중에도 살아남았다! 1군 기록은 물론 퓨처스에서도 ERA 7점대로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기에 매우 의외인 부분.[8]
2021 시즌 개막 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7월 2일 SSG 랜더스와의 퓨처스리그에서 2021 시즌 첫 등판을 가졌다. 팀이 1-7로 지고 있는 가운데 9회초 등판했고, 1이닝을 단 13개로 처리하며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8월 17일 두산 2군과의 경기에서도 비록 0.1이닝 뿐이긴 했지만 삼진으로 깔끔하게 막아냈다.
10월 27일 웨이버 공시되었다. 이 때까지 시즌 1군 성적은 없고, 2군에서도 두 경기에서 겨우 1.1이닝(삼진2개, 0피출루)만 던졌을 뿐이다. 아무래도 부상이 있거나 개인적인 사정이 생긴 모양.
3. 지도자 경력
현역 은퇴 이후 원주중학교 야구부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4. 피칭 스타일
김정후 특유의 투구폼.
본래 포수, 외야수로 뛰면서 단련된 강견으로 150km/h를 넘나드는 직구를 뿌리며, 공의 무브먼트도 상당히 좋은 편. 다만 제구에 있어서는 조금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도 좋은 직구를 갖고 있어 변화구 구종만 어느 정도 잘 적응되면 중간계투 투수로 제몫을 할 가능성이 보였던 선수.
오승환의 투구영상을 보고 연습하여 투구폼이 오승환처럼 역동적이다. 오승환 특유의 더듬는 동작을 제외하면 딜리버리 과정이 매우 흡사하며, 투구 후 미세하게 제자리 점프를 뛰는 동작까지 닮았다. 체격도 오승환을 연상시킬 정도로 다부지다. 다만 투구 후에 자세가 무너지는 건 영락없는 손승락이다.
타자에서 투수로 전향하기도 했고, 투구폼이 워낙에 역동적이기 때문에 선발 투수로는 부적합하다.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키움 입단 후 투구폼 교정을 시도했는지, 대만과의 연습경기에서 폼이 일부 바뀐 것이 확인되었다. 이후에는 손승락처럼 아예 점프 동작을 투구폼의 일부러 승화시켜 버린 수준까진 아니게 되었다.
평균 구속은 140km/h 중후반대에 최고구속 151km/h의 포심과 스플리터, 슬라이더, 커브 등의 변화구를 던지는 것으로 보인다. 데뷔 첫 등판 당시 그립은 슬라이더인데 궤적은 커터처럼 날아가 팬들 사이에서 구종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심 이외의 구종들의 가치는 그리 좋지 못하기에 주자가 있을 때 올리면 영 좋지 않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타자 기록 | ||||||||||||||||
연도 | 소속팀 | 출장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wRC+ |
2013 | SK | 5 | 4 | .000 | 0 | 0 | 0 | 0 | 0 | 0 | 0 | 0 | 2 | .000 | .000 | -131.4 |
2014 | 1군 기록 없음 | |||||||||||||||
연도 | 소속팀 | 출장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wRC+ |
2018 | 두산 | 2 | 1 | .000 | 0 | 0 | 0 | 0 | 0 | 0 | 0 | 0 | 1 | .000 | .000 | - |
KBO 통산 (2시즌) |
<rowcolor=#1F2023> 7 | 5 | .000 | 0 | 0 | 0 | 0 | 0 | 0 | 0 | 0 | 3 | .000 | .000 | -122.8 |
역대 투수 기록 | |||||||||||||||||
연도 | 소속팀 | 출장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ERA+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8 | 두산 | 13 | 17⅓ | 0 | 1 | 0 | 0 | 0.000 | 3.63 | 139.1 | 12 | 3 | 12 | 12 | 8 | 7 | 1.39 |
연도 | 소속팀 | 출장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ERA+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9 | LG | 2 | 1⅔ | 0 | 0 | 0 | 0 | - | 0.00 | - | 1 | 0 | 1 | 1 | 0 | 0 | 1.20 |
연도 | 소속팀 | 출장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ERA+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20 | 키움 | 4 | 3 | 0 | 0 | 0 | 0 | - | 12.00 | 39.2 | 7 | 1 | 4 | 3 | 4 | 4 | 3.67 |
2021 | 1군 기록 없음 | ||||||||||||||||
KBO 통산 (2시즌) |
<rowcolor=#1F2023> 19 | 22 | 0 | 1 | 0 | 0 | 0.000 | 4.50 | 102.3 | 20 | 4 | 17 | 16 | 12 | 11 | 1.68 |
6. 여담
- 2018년 두산에 입단했을 당시 힘들게 돌아온 과정만큼 공 하나하나에 감성적인 반응을 보이는 편이었다. 한 구 한 구 절실하게 던지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에 이 점이 두산 팬들 사이에서는 호감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들 "이런 선수가 잘 돼야 한다"며 진심으로 투수로서 잘 되길 기원했다. 덕분에 언론의 조명도 많이 받았다. [홍기자의 알콩달콩 인터뷰] 투수 변신 대성공, 김정후의 네버엔딩 스토리 <1>, [홍기자의 알콩달콩 인터뷰] 투수변신 대성공, 김정후의 네버엔딩 스토리 <2> 또한 야구를 대하는 태도가 진지하고 절실하여 두산 팬들 뿐만 아니라 타 팀 팬들도 김정후를 진심으로 응원하기도 했다.
-
득점 주자가 들어올 때마다 덕아웃에서 신나게 ‘깝’을 보여주는 장면이 자주 보이는데다, 눈웃음이 매력적이라 팬들 사이에서 귀요미로 등극했다.
- 두산 베어스 갤러리 등의 야구 커뮤니티에서 '김코시'라고 불렸다. 김태형 감독이 2018년 4월 10일 김정후가 경기를 끝낸 후 포효하던 모습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줄 알았다"고 얘기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 원래 좌타였다가 상기한 2014년 2군 스캠에서 슬라이딩 캐치 도중에 부상을 입었고, 방출 후 은사인 곽채진 언북중 감독을 찾아갔는데, 곽채진 감독이 "오른쪽이 남아있지 않냐"면서 피칭을 해보라고 했고, 몸을 안 만들었는데도 140㎞/h 중반대의 구속이 나오면서 투수로 전향했다고 한다.
- 서울연고 3팀에서 모두 뛰었다.
- 마구마구에서는 성명권 문제로 인하여 본명이 아닌 ‘김선종’이라는 선수카드가 있다.
7. 관련 문서
[1]
개명 전 이름은 김경근.
[2]
일본
독립 리그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소속 팀.
[3]
당시 포지션은
포수였다.
[4]
최근에는 프로선수들만으로 상무 야구단이 구성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져 프로 진출을 하지 않고서는 상무 입대가 상당히 힘들어졌다.
[5]
당시
이만수 감독은 타자에선 김정후를 포함해
이명기,
한동민,
조성우,
박승욱, 투수에선
여건욱,
백인식 등의 유망주들을 키워 리빌딩을 하려 했다. 그리고 이 선수들 중 야수들은 조성우를 제외하면 모두 프로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6]
원래 좌타였다.
[7]
정확히 말하면 나이가 많아서 일단은 불합격이되 독립 리그에서 투수로 전반기 리그를 무사히 보낸다면 합격시켜준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단에 호의적이었던
이토 쓰토무 감독이 2017년 중 사임을 발표하면서 결국 입단이 무산되었다. 이토의 후임
이구치 타다히토는 선수 시절부터 이토의 팀 운영에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었고, 용병을 많이 쓰는 걸 선호하지 않고 용병 쿼터를 다 채우지 않더라도 일단은 국내 선수로만 팀을 운영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토의 지시였던 김정후의 입단을 무산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8]
150km/h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던질 수 있다는 게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대성이나
김대우만 생각해 보더라도 150km/h를 던질 수 있다는 것 하나로 선수 생활을 길게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