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김시진의 지도자 경력을 서술한 문서.2. 투수 코치 시절
1992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 대구상고/삼성시절의 인연으로 정동진 감독의 부름을 받아 태평양 돌핀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했으나 중간에 현대 피닉스가 창단되면서 인스트럭터[1]로 일했으며, 1998년에 다시 현대 유니콘스로 복귀하여 투수코치로 오랜 기간 부임해왔다.[2] 과거의 명성답게 투수 육성에 강점을 보이면서 현대 유니콘스를 투수왕국이자 강팀으로 이끄는데 일조했고, 투수 전문가로써 명성을 올리게 되었다.그러나 그의 조련을 겪은 투수들은 한동안 좋은 스탯을 보여 주다가도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부진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김수경, 조용준, 오재영, 신철인, 황두성 등 많은 투수들이 부상으로 신음했다.[3] 무엇보다 가장 문제인 건 엄청난 연투를 시키면서도 혹사라고 생각하지 않는 등 현대 야구와는 맞지 않는 투수관을 가지고 있으며, 본인이 연투를 시키고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등 오직 감으로만 투수교체를 한다. 코치 시절부터 연투와는 상관없이 그저 지나 이기나 무조건 기용하는 선수만 기용하는 극단적인 좌우놀이 성향을 보였다. 2000년대 초반의 신철인의 6연투 기사는 김시진의 투수관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6연투를 시켰다는 기사
상체보다 하체 위주로 피칭을 시키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서양인과 동양인의 골격이 너무 달라 자칫하면 큰 부상이 오는 투구폼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반대로 하체 위주보다 상체로 전력투구를 하는 선수가 있는데 바로 마이클 보우덴이 이렇게 피칭을 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좌완 투수의 폼을 잡아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완 투수들과는 달리 그가 키워낸 좌완들의 경우, 투수 개개인의 체질과 스타일은 무시한 채 똑같은 투구 폼을 일률적으로 적용시켰다. 대표적으로 舊 유니콘스 & 現 히어로즈의 소속이었던 이상열[4] 오재영[5] 장원삼[6]. 등은 투구폼이 모두 비슷하다.[7]
김시진 본인과 정민태 코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정통파 투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떠난 이후로도 히어로즈의 투수들은 상당수가 140km/h의 볼과 그것을 뒷받침 할 슬라이더와 120Km/h의 낮은 커브나 벌컨 체인지업과 스플리터 볼을 주무기로 삼고 있는데 제구 불안이라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고 이걸 떠날 때까지 해결하지 못했다. 히어로즈 투수진들 보면 아직도 장작 쌓고 불놀이 하는 투수들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시진 경질 이후 변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경질 이후 2013년에는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해서 투수를 키워내기는 커녕 있는 투수마저 다 망가뜨리는 모습에 골수 팬덤에서는 투수 조련가란 명성이 거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에도 나오던 평이었는데 당시 현대는 아마 시절부터 최고로 꼽혔던 선수들을 비싼 계약금을 주고 싹쓸이했었다.
그러나 코치시절 김시진의 평은 높은 편인데, 2000년대 초중반까지 야구가 그렇듯이 선수들의 부상이나 부진은 대부분 혹사 탓이 크다. 지금에서야 투수코치 권한이 조금 늘어났지만 지금도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감독이 투수운용의 전권을 휘두르며 불펜투수를 노예질하기 마련이다. 또 롯데 자이언츠에 있는 2군 투수들이 왜 크지 못했는지 생각해보면, 황폐화된 2군 코치진을 첫번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모든 투수를 박명환과 비슷한 폼으로 고치려고 한 2군 감독은 물론 코치 진의 실적부터 의문스럽고, 코치 숫자는 항상 부족하다. 또한 현장의 평이나 아마추어 시절 평가를 종합해 보면 롯데는 절대 자질이 좋지 않은 선수들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다.
3. 감독 시절
7년 간 감독 자리에 있으면서 좋은 성적을 단 한 번도 내지 못했기에 야구계의 스타 선수가 위대한 감독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의 대표 예시로 분류된다. 단적으로 7시즌 감독 생활을 하면서 단 1시즌도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2012년 넥센 감독 시절에는 전반기를 3위로 마쳤지만 후반기 뒷심 부족으로 6위로 밀려나면서 가을야구에 가지 못했으며, 또한 시즌 도중에 경질되는 아픔도 겪여야만 했다. 2013년 롯데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5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포스트시즌에 못 가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다만 실적에 비해 이미지는 좋은 편인데, 이는 넥센 감독 시절엔 애초부터 4강이 힘든 전력이였기에 어느 정도 쉴드가 있었다. 또한 넥센측이 장원삼, 이현승, 이택근은 물론 여기에 트레이드 불가라고 하면서 애지중지 키웠던 황재균마저 트레이드로 보내버렸기 때문에 넥센 감독 시절엔 욕보단 동정하는 쪽이 더 많았다. 애시당초 맡았던 팀들도 전부 모기업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해체 직전의 오늘내일하던 팀이거나, 자체 스폰서가 없어서 트레이드로 운영하는 팀이거나, 선수단을 CCTV로 일일이 감시하고 프런트가 감독 작전권까지 간섭하는 희대의 개막장 팀 등 감독 혼자 뭔가 손써보기에는 난이도가 몹시 높은 꽤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도 참작되어 더욱 그러하다.또한 롯데 감독 시절 2013 시즌의 포스트시즌 탈락이야 감독의 책임이라고 쳐도 2014 시즌에는 시즌 전 이미 권영호 수석코치부터 별 이유 없이 2군 감독으로 발령받았다가 1주일만에 잘린 것을 시작해서 프런트의 선수를 향한 폭언과 훈련 스케줄에 대한 과한 간섭, 또한 시즌이 시작된 후에는 최하진 대표이사가 4월부터 '번트 대지 말라', ' 최준석, 장성우를 2군에 내려라', ' 박종윤을 쓰지 말고 최준석과 히메네스를 쓰라'[8], '기타 타순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등(이 때 김시진은 이미 사퇴 의사를 한 번 밝혔지만 기각당했다.) 이미 2014년 시즌의 롯데의 성적의 향방은 시즌 전부터 이미 그의 손에서 서서히 떠났다고 봐야 한다. 특히 팀이 잘 나갈 때 내려가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 히메네스와 유먼의 교체를 요청했지만, 프런트에서는 스카우트만 파견한 후 유야무야했고[9], 시즌 중반에 DTD할 때 공필성 코치가 투수 운용에 간섭하여 정민태 코치와 대판 싸우고, 프런트 고위 관계자는 감독 욕을 프린트해서 코치들 앞에 던지고, 이후 배재후 단장이 감독 불러서 그나마 남아 있는 사단의 정민태와 박흥식 포함 4명을 2군으로 내린다고 협박하며 사퇴를 종용할 때 두 번째로 사퇴한다고 하는 등 2014 시즌에는 팀에 대한 통제권이 사실상 없어진 상태였기에 동정표를 받고 있다. 게다가 그 다음 시즌에 적극적인 지원과 프런트의 불간섭을 등에 업고도 화끈하게 8위를 기록하고 단 한 시즌만에 해고된 이종운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 이후 롯데가 가을야구에 단 한 번 진출한 암흑기의 신호탄을 쏜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비판이 덜한 이유는 이러한 사유들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어쨌든 김시진이 인품에 있어서만큼은 호평을 받고 불운도 참작되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7시즌 동안 감독을 하면서 단 한 차례도 팀을 포스트시즌에 이끌지 못했다는 좋지 않은 결과[10]는 감독으로서의 커리어가 대실패로 귀결되었다는 게 중론이다. 어떻게 보면 종신 감독의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기도 하다.[11] 실제로 2014년을 끝으로 롯데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행정직인 경기운영위원이나 국가대표팀 기술위원장 같은 자리만 맡고 있을 뿐 다시는 코치나 감독 같은 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3.1. 현대 유니콘스 시절
현대 유니콘스 No.79 |
김시진(金始眞) |
2007년 LG 트윈스로 이적한 김재박 감독의 후임으로 투수코치에서 감독에 선임되었다. 당시 현대 타선은 팀타율 1위를 찍을 정도로 강타자들이 즐비한 좋은 타선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초반부터 광적으로 번트 지시를 하였다.[12] 투수관리 미흡과 노환수, 조용훈으로 대표되는 몇몇 투수들만 자주 기용하는 투수운용[13], 지나친 좌우놀이등으로 답답한 경기 운영능력을 보여주었다. 타선에서는 나이가 많은 선수들이 많음에도 2군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잘 주지 않았다. 결국 현대는 중위권과 하위권을 오락가락 하다가 최종 순위를 6위로 마치게 되었다. 감독으로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시즌이 끝나고 현대가 해체하게 되면서 현대의 마지막 감독이었다는 이유만으로 팬들의 동정을 사게 된 편이다.
3.2. 서울- 넥센 히어로즈 시절
넥센 히어로즈 No.79 |
김시진(金始眞) |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잘 모르겠지만 이제 우리가 확인하러 가겠다.
2012년 8구단 출사표 인터뷰에서.
2012년 8구단 출사표 인터뷰에서.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우리 히어로즈로 재창단되는 과정에서 이광환에게 밀려 감독 자리에서 해임되었고,[14] 2008년 KBO 기록관으로 근무하다 2009년 시즌을 앞두고 서울 히어로즈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용병을 모두 타자로 가져가면서 덕 클락, 황재균, 이택근, 클리프 브룸바, 강정호, 송지만 등이 이끄는 강력한 타선을 내세워 한때 4강 싸움까지 노려봤으나 에이스 이현승을 4일 로테로 굴리는 등 투수들을 땡겨쓰거나 혹사로 투수진이 흔들리면서 6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가장 문제점은 히어로즈 감독으로 복귀하자마자 어려운 팀 상황에서 팀 투수진을 이끌고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했던 정명원 코치를 대뜸 2군에 보내놓고 코치 경력이 1년은커녕 단 1주일조차도 없던 생초짜 정민태를 자신의 한양대 후배라는 이유로 1군 투수코치에 앉히면서 골수 팬덤으로부터는 학연야구로 투수진을 망가뜨렸다는 식의 비난에 시달렸다. 더군다나 2011년 시즌 후 2군 감독으로 내정되어 있던 정명원이 김진욱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부터 투수코치 제안을 받고 고민하던 중 김시진 감독과 면담을 통해 "두산에서 코치 제의가 왔지만 내년에 1군 투수코치 보직을 맡겨준다면 넥센에 남겠다" 라고 1군 승격을 요청했으나 "두산 가서 잘해"라고 끝까지 1군 승격을 거부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넥센을 떠나 두산 투수코치로 옮겨갔는데, 자기 라인 챙기느라 멀쩡한 코치를 내치고 타 팀에 빼앗기는 데 일조했다고 팬들에게 까였다.
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의 영웅방[15]에서는 투수들이 단체로 부진하자 연일 김시진과 정민태를 비난하는 글들이 많았으나 시즌 후 역대급의 현금 트레이드가 터지면서 선발투수 세 명과 중견수를 모두 잃는 바람에 이때부터 김시진 감독을 동정하는 분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김시진은 시즌 후 방출 대기령 선수에서 동명이인이던 베태랑 투수 전준호, 이상열 등이 대거 방출되는 것과 팀이 돈이 없어서 FA로 LG에 떠나보낸 정성훈과 간판 투수들 및 타자 주전 멤버 4명을 대거 트레이드로 보내는 등 어수선해지기 마련이었다. 김시진이 여기서 막고 싶어하였으나 방출 된 선수들에게 미안하고 지켜주지 못했다는 등 말을 제대로 전달을 못 했다고 했다.
2010 시즌에는 금민철과 고원준이라는 새로운 투수를 발굴해내는 등 분전했으나 순위는 작년보다 떨어진 7위로 마감했다. 개구라 치다 걸린 이장석의 황재균을 팔아먹고 트레이드로 온
2011 시즌은 넥센을 완전히 무기력한 팀으로 만들면서 창단 첫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본인이 점찍어 놓은 트레이드 된 4번타자 박병호의 가능성[17]로, 이택근의 FA를 통한 친정 복귀 등 팀의 플러스 요소들이 많이 보이면서 다음 시즌에 기대를 갖게 했고 본인 역시 구단으로부터 재계약을 받으면서 한층 더 안정된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2012 시즌, 새로운 거포 박병호와 3년만에 20홈런으로 복귀한 강정호, 27승을 합작한 외국인 선발 듀오, 신인왕 서건창 등 출중한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고, 비싼 야구장이고 인기없는 야구팀이지만 이에 힘입어 근근히 만원관중이 될 때 팀도 승승장구하며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전반기 이후 점점 불안한 기미를 보이더니 DTD를 선보이게 되었다. 더불어 오심 판정도 엄청나게 받더니, 생애 첫 퇴장까지 당하지 않나. 거기에 2군의 지역을 비하한 인간도 있었다. 이 때문에 결국 빡쳐버린 넥센 팬들이 넥센 히어로즈 공홈 게시판에서 김시진과 정민태를 퇴출하자는 릴레이를 펼쳐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즌을 끝으로 김시진은 경질된다.
참고로 넥센 시절 김시진의 행보로 인한 나비효과가 있는데, 정치설로 인해 LG 트윈스에서 반 강제적으로 나왔던[18] 염경엽(前 현대 유니콘스 수비코치)을 다시 넥센 히어로즈로 데려오고 이장석을 설득해 그에게 주루/작전코치직을 맡긴 것이다. 어쩌면 후임자를 자기 스스로 데려온 셈이다. 예전 염경엽과 이장석은 불화설이 있었고 게다가 LG시절 흘러나오는 염경엽과 관련된 흉흉한 소문들이 겹쳐 야구 커뮤니티나 팬덤에서는 염경엽이 다시 넥센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분위기였으나, 결론적으로 김시진의 입김이 통해 염경엽을 다시 팀에 복귀시켰고, 김시진이 팀을 떠난 뒤 후임 감독으로 임명된 염경엽 체제하에서 넥센은 최초로 포스트시즌 진출 및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성과도 내게 된다.
코치시절 염경엽에 대한 현장의 평가가 호의적이었던 편이라 두산 베어스가 그를 데려오려는 시도를 적극적으로 했는데, 염경엽 체제하에서 성과를 내던 시절의 넥센팬들은 우리팀에 와서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었다.
2020년대로 접어들면서 야구 커뮤니티나 팬덤에서는 김시진 감독이 비록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지는 못했어도 신인 선수들. 특히, 선발투수를 어떻게든 발굴하려는 노력을 한 감독이라는 재평가가 이뤄지는 중이다. 김시진 체제 하에선 팀 사정상 선수층이 얇기도 했고, 서건창, 박병호를 1군에 적극 기용하는 모습을 보여 둘 다 포텐을 터뜨렸다. 특히 박병호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홈런왕 장기집권을 한 것은 물론이고, 시대를 대표하는 거포로 자리잡을 수 있게 도와준 감독이었다는 점이 다시 한번 재조명을 받고 있다.[19]
반면 염경엽은 넥센 감독직에서 내려온 시점부터 팬덤에서 안 좋은 쪽으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는데, 감독 재임 당시 김시진의 유산, 특히 투수진이 황폐화되었다는 측면이 더해져 더욱 그러하다. 그 외에도 선발투수감인 최원태가 분명 있었는데도 제대로 키우지 않고 2군에 방치한 점 때문에 염경엽 체제 하에서 가장 큰 피해자라는 얘기가 나왔다.[20] 다만 이는 넥센 구단의 감독 선임 기준과도 관련이 있는데 외부에서 감독을 데려온다기 보다 내부인사의 승격 또는 감독 경험 없는 경력이 일천한 초보 감독을 데려오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21] 실제로 염경엽의 후임인 장정석은 첫 임기인 1년 동안 이 잿더미 된 투수진 때문에 엄청 고생을 했다. 2년차부터는 단기전에도 강한 타선을 만들어낸 것도 모자라, 장기적으로 쓸 수 있는 선발투수와 좋은 불펜투수들을 많이 발굴해냈다는 점에 비해 염경엽은 즉시전력감을 활용해 성적은 뽑아냈어도 선수 발굴과 육성 측면에서는 장정석의 성과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을 듣는다. 오죽하면, 손 댔다 하면 투수들이 망가진 공통점 때문에 정민태가 오버랩된다는 얘기도 있다. 참고로 염경엽을 영입하는데 실패한(?) 두산 베어스는 2015, 6, 9까지 우승을 세 번이나 하게 되었으니, 두산 베어스 입장에서는 빈약한 불펜투수가 무너질 뻔 했던 것이다. 또한 넥센 감독직에서 내려온 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로 이적해 2018년 우승한 디펜딩챔피언 SK 와이번스를 가지고 포스트시즌에서 전패하고 탈락한 2019년, 아예 최하위로 떨어진 2020년의 실패가 겹쳐져 더욱 평가 하락에 일조하고 말았다.
3.3. 롯데 자이언츠 시절
롯데 자이언츠 No.79 |
김시진(金始眞) |
2012년 11월 5일, 자진사퇴 형식으로 경질된 양승호의 뒤를 이어서 롯데와 3년 감독 계약을 체결하였다. 더불어 정민태 코치도 세트로 딸려갔다.
롯데 입성이 확정된 후 롯데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뜨뜻미지근하다. 일단 2012 시즌의 변변찮은 경기 운영 모습에 평판이 많이 나빠진 상태인 것도 있고, 무엇보다 팀 스타일을 1년만에 바꿔 우승한다는 건 무리라는 평이 많기 때문.[22] 다만 한 수 아래라 평가받던 넥센이 김시진을 경질한 이유는 '우승하기 위해서'인데, 롯데는 그런 감독을 역시 '우승하기 위해서' 데리고 온 것이었으니 자존심도 좀 상할 일이다. 무엇보다 김시진이 마음에 안 든다기보단 같이 데리고 왔던 오른팔 정민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크다. 정민태 때문에 썩 괜찮게 투수진을 이끌었던 주형광이 2군으로 밀려나면서 별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차라리 정민태만 안 데려왔으면 환영했을 거란 의견도 많다.
다행히 인터뷰를 예쁘게 해[23] 팬들 사이에서 나름 평가가 좋아졌다. 그러던 중 넥센 히어로즈가 마무리 훈련을 한창 하고 있던 도중에 박흥식 타격코치를 전화 한 통으로 롯데로 꼬셔왔다. 과거 김시진 감독 역시 김재박 감독의 코치 빼가기에 큰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행한 것. 이로 인해 롯데 팬들 사이에서는 지지도가 많이 올라갔으나, 그나마 남아있던 우호적인 넥센팬들은 대부분 김시진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다.
급작스러운 감독 교체로 사기가 떨어진 롯데 자이언츠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지 기자들한테 많은 질문을 받았다. 취임 전이므로 이에 대한 말은 아끼고 있지만, 조정훈을 잘 만들어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3.3.1. 2013 시즌
지금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2013시즌때) 조금, 선수생명을 그때 많이 깎아먹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 때 욕심에 계속 나가고 싶었던 제 욕심도 있었지만, 그걸 제가 좀 더 현명하게 대처했다면....사실 저 13시즌 끝나고 어깨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거든요. 어깨는 한 번도 아팠던 적이 없었어요. 두산 옮기고는 거의 어깨에 주사 맞으면서 던졌으니까. 저때...좀 아쉽죠. 좀 더 좋은 모습을 오래 보여 드릴 수 있었을 텐데...(
김시진)감독님 탓도 아닌 거고 제 욕심에 제가 했던 거죠. 후회하죠. [24]
김성배. 스톡킹에 출연했을 때 2013시즌을 회상하며.
김성배. 스톡킹에 출연했을 때 2013시즌을 회상하며.
자세한 내용은 김시진/2013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3.3.2. 2014 시즌
자세한 내용은 김시진/2014년 문서 참고하십시오.4. 비판
장기 근속에도 불구하고 성적을 내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이 매우 많다. 그의 부진을 두고 열악한 팀 사정 탓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7년이나 감독을 맡고도 한번도 포스트시즌을 밟아보지 못한 감독은 없으며[25][26], 2012년 넥센의 전력은 이택근이 LG에서 돌아오고 박병호의 재능이 만개하면서 충분히 4강권을 노려볼 만한 전력이었기 때문에 팀 탓만으로 그의 무능함을 전부 옹호할 수 없다. 전반적으로 넥센에서는 후임자인 염경엽 감독과, 롯데에서는 전임자인 양승호 감독과 비교당하며 그다지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다.
넥센에서는 성적을 내지 못했으나 리빌딩에 성공했다는 옹호론이라도 있었으나, 투수진을 태워먹은 롯데에서는 넥센 시절처럼 세대 교체를 잘 한 것도 아니다보니 그마저도 옹호를 받지 못했다. 특히 아무리 프런트 문제와 2군 인프라가 중요하다지만 투수조련사로서의 명성과 다르게 그가 감독을 맡은 팀이 타신투병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평가가 박해지는 중이다. 이에대해 골수 팬덤에선 그가 그나마 넥센에서 중간이나 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염경엽, 박흥식 등 '우수한 코치의 덕을 많이 봤을 뿐, 본인은 하는 것이 없으면 오히려 다행인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롯데 시절의 행보는 오늘날까지의 암흑기의 단초를 제공한 것 만으로도 큰 비판을 받는다. 양승호-김시진 시대 롯데에서 혹사당했던 불펜투수들이 다시는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방화 집단으로 전락하며 팀 성적도 갉아먹었기 때문에 김시진에 대한 여론은 롯데 팬들 사이에서 지금도 정말 차가운 편이다. 양승호 감독은 일단 혹사를 해서라도 성적을 냈기 때문에 덜 까이고[27]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성장하는 와중에 비리로 감옥에 갔기 때문에 추억보정이 있는 편이지만, 김시진은 한화 시절 김성근과 비슷하게[28] 성적도 못내고 혹사도 시키고 그렇다고 노장만 주야장천 중용하면서 리빌딩에 도움을 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2013년 이후 롯데의 몰락은 100% 김시진만의 책임은 아니다. 2015년 취임한 이윤원 단장은 무조건적인 선수 영입으로 고비용 저효율 팀으로 만들면서 2019년 꼴찌 추락에 제대로 일조했고 결국 시즌 도중 경질되었다. 그 이후 취임한 성민규 단장은 신인 육성에서는 나름 방향성을 보이나 조급한 정책으로 말아먹어 최근 암흑기에 크게 일조했다. 그러나 어쨌든 김시진 시절의 혹사와 더딘 리빌딩으로 인해 암흑기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그에게 큰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다. 사실 이렇게 암흑기를 만든 감독이라면 오늘날까지도 나쁜 의미로 꾸준히 언급되어야 마땅하지만[29] CCTV 사찰 사건이라는 방패가 있다보니 본격적인 암흑기를 도래시킨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암흑군주 이미지는 약한 편이다.
다시 넥센 시절로 돌아가면, 2009년에 욕을 많이 먹었지만[30] 2010, 2011년도에는 팀 사정상 동정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2012년 시즌 히어로즈 창단 이후 최고의 전력을 만들어줬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거품이 많이 벗겨졌다.
2010년도부터 말도 안되는 번트 야구를 구사하는 중인데, 이게 성공률도 낮아 팬들이 뒷목을 잡고 있다. 2011년도는 이게 더욱 악화되어 무사 2루라도 번트라는 운영을 보여주고 있다. 김재박은 번트를 잘 훈련시키기라도 했고, 하다못해 양승호는 적재적소에 작전을 구사했었지만, 김시진은 그 결과가 지극히 좋지 않았다. 물론 타선이 워낙 제때 터져주지 못해서 이런 극한 스몰볼을 구사하는 걸 수도 있지만, 그 스몰볼이 작전 능력도 없고, 투수 능력도 없는 팀에는 득보다 실이 더 크기 때문이다. 마치 2010 시즌에 한대화가 직면했던 문제와 비슷했다.
투수 운용에서는 불펜혹사의 역대급 감독이다. 현대-히어로즈 시절에 굴려진 투수들만 해도 이보근, 조용훈, 위재영, 신철인, 조용준, 황두성, 송신영, 오재영, 박준수, 노환수, 이상열, 권준헌, 마일영, 이현승, 박장희 등이 있다. 그나마 송신영은 고무팔이라 오랫동안 기량을 유지했지만, 오재영, 이보근, 마일영, 이현승은 구위가 떨어지며 다시 살아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31] 그래도 이정도로 버틴거면 다행이고, 조용준, 신철인, 박준수, 노환수, 황두성, 조용훈 등은 재기도 제대로 못하고 쓸쓸히 은퇴하거나 방출당했다! 그리고, 롯데로 이적한 후에는 이명우, 강영식, 김성배, 정대현의 노예질이 돋보이고 있다.[32]
불펜 운용에서 또 하나의 문제점은 맹목적인 좌우놀이이다. 이것 때문에 2010년~2011년 LG 트윈스 감독이었던 박종훈 前 감독이 팬덤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김시진은 그 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다만 김시진 재임기간 동안 넥센이 비인기 구단이라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을 뿐, 2012 시즌 시작하자마자 터진 4월 8일 경기의 씨앗도 김시진 감독의 좌우놀이로부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는 팬들은 뒷목 잡고 쓰러질 지경.[33] 2012시즌 이후 투수 좌우놀이는 적어진 편이나 타자를 좌우놀이 형식으로 배치하는 것은 여전하다.
이러한 좌우놀이 성향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지나칠 정도의 원 포인트 릴리프 기용이다. 잘 던지던 김상수를 내리고 오재영을 올려서 볼넷주고 다시 또 한현희로 바꾼 적도 있었다. 2011년 임찬규가 그렇게 위기상황에서 굴려지다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생각한다면 우려되는 부분이었는데, 결국 한현희는 부진 끝에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2012 시즌 후반기의 부진 때문에 팬들에게 비판받는 횟수가 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팬덤에서는 투수교체 타이밍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큰데, 물론 정명원 코치가 떠난 이후[34]로 2012년도 넥센의 불펜이 2010, 2011년도보다 상대적으로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김시진 감독의 투수교체 타이밍이 실패로 귀결된 횟수가 워낙 많아 이당시 팬덤의 여론이 매우 좋지 못했고, 결국 전반기의 호성적을 안고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바람에 김시진이 결국 경질되는 빌미가 되었다.
2010년과 2014년 한정으로 화요일 징크스가 있었다. 2010년 넥센의 화요일 성적은 2승 1무 18패로 역대 최저였는데, 4년만에 롯데에서 1승 1무 18패를 찍으면서 본인의 기록을 직접 갱신했다.
전반기에 선수들을 쥐어짜서 성적을 올려놓은 뒤 후반기에 가서 DTD를 시전한다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스프링 캠프 때부터 자기가 찍어둔 선수를 위주로 중용하는 이른바 쓸 놈만 쓰는 야구를 반복하다보니 주전 선수들의 체력 안배가 안 되는데, 그걸 개선하지 못한 채 해마다 반복 중. 소위 쓸놈쓸 야구는 2012시즌 넥센 DTD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투수진이 완전 붕괴된 상태에서도 2군에서 호투하고 있는 전유수, 이태양, 임창민 등은 김시진 하에서 기회를 받지 못했다. 결국 이 세 명은 히어로즈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트레이드와 특별지명으로 다른 팀으로 옮기자 마자 1군 주전으로 자리잡았다.[35][36] 심지어 자기가 찍은 선수는 부상 중이라도, 재활이 끝나지 않았더라도 무조건 계속 쓴다는 점도 있는데, 일례로 2012시즌의 송지만, 유한준, 정수성이 대표적으로 이 3명 모두 재활이 안 끝난 상태에서 무리하게 끌어쓰다가 선수 개인 성적도 망치고, 팀 성적도 망쳤다. 심지어 정수성은 손뼈에 금이 간 상태로 대주자로 내보내더니, 수비에 나중에는 타격까지 시켜서 당시 양상문 해설위원이 저러면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고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시한 적도 있다.
[1]
대한야구협회와 한국야구위원회의 알력다툼 때문에 프로 출신은 아마야구 코치, 감독이 될 수 없어 인스트럭터로 계약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투수코치였다. 이는
김봉연 인스트럭터도 동일.
[2]
다만 1996년
현대 유니콘스 창단 첫 해 1군 투수코치는
하기룡이 맡았고, 이 당시 김시진은 같은
현대그룹 소속
실업야구팀인
현대 피닉스 투수코치를 맡다가 1998년부터 유니콘스 1군 투수코치를 맡았다.
[3]
김수경은 2001년 투구폼 수정을 전후하여 부상을 당한 이후 10승 4점대 평균자책점을 꾸준히 기록하는 평범한 투수가 되었고, 조용준은 2005 시즌 중 수술을 하러 사라졌으며, 이후 1군에서 몇 경기 못 올라오고 은퇴했다. 신철인은 2006 시즌 이후로 잔부상 때문에 1군과 2군을 오가는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조용준, 신철인은 2010년에 모두
방출당했다. 황두성 역시 2009 시즌 이후로 1군 경기에 등판하지 못하고 2011년에 은퇴했다. 다만 오재영의 경우는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허리 부상이 문제였고 그나마 이 쪽은 20년 가까이 선수로 뛰었다.
[4]
한화 이글스 소속 당시에는 부진했기 때문에 트레이드 되어 오히려 성적이 좋아진 케이스
[5]
첫해 신인상을 얻었지만
2년차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망했다가 결국,
군대에 갔다와서 재기에 성공하였지만, 또 다시 부상
[6]
망해가던 현대 유니콘스 시절 좌완 에이스로 2006년에 입단하여 동기들인
류현진,
한기주,
나승현과 함께 리그 올해 신인 Best 4에 올랐다. 단, 저들과 달리 장원삼은 마산상고(마산용마고) 재학 시절 지명을 받았으나 계약금 없이 입단조건을 제의받자
경성대를 거쳐 대학 최고의 투수로 거듭난 후 프로에 왔다. 앞서 셋은
고졸 출신들
[7]
스트라이드되는 오른발의 내딛는 위치를 조정해 축이 되는 왼발과 스트라이드되어 뻗는 오른발의 위치를 좁게 해서 상체의 반발력과 회전반경을 크게 해서 공의 구력을 높이고 적절하게 릴리스 포인트를 조절한다.
[8]
사실 박종윤의 성적을 생각하면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최하진 대표이사의 다른 문제점들이 절대로 잘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9]
게다가 구단 사장이 야기한 선수단과의 갈등으로 수석코치 자리에서 해임된 친 프런트 인사가 스카우터로 일하고 있을 정도로 롯데는 노답이었다.
[10]
아무리 선수 시절에 스타였거나 사람이 좋다 한들 지도자가 되고 나면 그걸 무조건 성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도 능력이며, 그렇지 않으면 말짱 허당이다.
[11]
다만 종신 드립의 경우도 단순히 성적만 못 내는 감독에게나 붙지
한화 이글스 시절의
김성근이나
이종운,
허문회처럼 인격적인 면에서까지도 온갖 구설수 및 막장 행각을 일으킬 경우 타 팀팬들까지 당장 하루빨리 꺼지라고 성화를 부리기 때문에 종신 대상에서 제외된다.
[12]
'김시진의 현대'도 번트가 많은 이유는?
[13]
이후 노환수는 이광환 임기 중에도 핵심 계투요원으로 활동하다가 군 입대와 함께 부상으로 잊혀져 조용히 은퇴했고, 조용훈 역시 똑같은 태크를 타다가 사라졌다.
[14]
사실 현대 해체 후 히어로즈 재창단 당시 구단 수뇌부는 김시진 감독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검토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박노준 단장 주도로 이광환을 창단 감독으로 선임하고 김시진에게는 2년간 수석코치 자리를 맡다가 차기 감독으로 승진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결론적으로 한 해만에 히어로즈 감독으로 돌아오면서 1년 빨리 앉은 셈이 됐다.
[15]
현재의 영웅게시판이다.
[16]
당시 김민성은 겨우 2할 턱걸이로 10시즌을 마쳤고, 김수화는 2군에서 8점대 방어율과 3승 11패를 거두고 바로 은퇴한다.
[17]
공교롭게도 박병호는 2024년부터 김시진이 선수로 업적남겼던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고 있다.
[18]
절친인 김기태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승진하면서 수석코치직을 권했지만, 본인이 여론을 감안하여 고사했고, 히어로즈로 갔다.
[19]
당장에 박병호가 넥센에 합류하기 전인 LG 시절만 하더라도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는 평을 받았을지언정 실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넥센 합류 후 좋은 활약을 하였던 점을 미루어봤을때 충분히 팀의 시스템을 재정립시킨 점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20]
물론 넥센 감독 부임 이후 4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 및 한국시리즈 1회 준우승의 성과가 있다는 것은 폄하할 수는 없다. 염경엽 이전 넥센은 한국시리즈는 커녕 가을야구 진출조차 전무하였기 때문이다.
[21]
김시진 경질 이후, 감독 대행을 하던
김성갑이 감독 물망에 오르기도 했었다.
[22]
그러나 롯데가 퇴보하고 있다면 모를까 매 시즌 눈에 띄게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제리 로이스터 체제에서는 멘탈을 가다듬었고, 양승호 체제에선 세밀한 플레이를 많이 향상시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비밀번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건 멘탈 면에서나 기량 면에서나 팬들이 생각하는 것보단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23]
'대충 지금 팀을 봤을때 어떤 면이 부족해 보이나'란 상투적인 질문에 '오자마자 그런 말을 하기엔 팀을 이끌었던 前 감독(양승호)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라고 노 코멘트했다. 이 인터뷰 하나로 지지율은 급상승했다.
[24]
스톸킹에 출연 하여 김시진 감독 시절 혹사를 언급 할 때 '투수의 팔은 소모품'이라고 설명 하였다. 당시 김시진의 노장 선호 및 신인 외면이 여기서 드러난다.
[25]
당연한 면이 있는게 보통의 경우 감독으로서 계속 저런 성적이나 찍고 있으면 애초에 7년씩이나 자리에 붙어 있을 수가 없다. 가까운 예로 한 번 감독직을 맡은 뒤로, 타 팀 감독으로 부름받지 못 하는
한대화,
이순철 등이 있다.
[26]
심지어 단장 중 최악인 홍준학도 7년 중 1년은 가을야구에 갔다. 그 뒤에 롯데 단장을 맡은 성민규도 가을야구에 못 갔으나, 그가 팀을 맡은 기간은 4년이며 홍준학도 재임 첫 4년은 9688을 기록했다.
[27]
물론 비싸게 사온 유망주 고원준의 혹사는 욕을 먹는 편. 거의 데드암이 왔고 토미존 서저리 이후에도 2016년 구속회복이 안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다만 이것도 고원준 본인의 워크에씩 논란 때문에 또 비난의 초점이 희석되는 측면이 강하다.
[28]
정확히 말하자면 롯데 시절 김시진이 한화 시절 김성근의 선행 사례라고 봐야 한다.
[29]
8888577을 제공한
백인천,
6668587667을 제공한
이순철은 이미 해당 팀 팬덤에서 금지어 취급을 받으며
5886899678을 제공한
김인식 역시 임기 초의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결국 암흑기를 연 장본인이기 때문에 평가가 매우 나쁘다.
99688의 시발점인
김한수 역시
홍준학에 가려져서 그렇지 투수 혹사와 더딘 리빌딩 성과 때문에 삼성 팬덤에서의 평가는 상당히 나쁘다.
[30]
2007년에는 현대그룹에서 지원을 중단한 뒤 팀의 미래조차 기약할 수 없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31]
툭히
이보근은 불펜 전천후로 뛰며 3년 연속 8~90이닝을 소화하며 어깨부상에 시달려야했고, 결국 150이 넘나들던 패스트볼 구속이 140 초반까지 떨어져버렸다. 그나마 재활과 관리를 거쳐 2018년들어 구속이 다소 살아나긴 했다.
[32]
보다시피 롯데 시절에는 신인은 외면한 채 노장만 죽어라 혹사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33]
윗부분에서 언급한 대로 타자 운용시 좌우놀이는 더욱 심각한 맹신급이다. 계투진 운용에서의 좌우놀이는 많이 줄어든 편이지만 선발 타자 라인업이나 대타를 내는 경향을 살펴보면 좀 심할 정도로
플래툰을 신봉하는 듯 하다.
[34]
거기다 정명원 코치가 떠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김시진 감독의 정민태 편애였기 때문에 스스로 자초했다는 시선이 많기 때문에 누구 탓 할 것도 없다.
[35]
2011 시즌 퓨처스리그 세이브왕 출신인 전유수는 군 제대 후인 2012 시즌 들어서 1군 구경도 못해보고 강진에 쳐박혀 있다가, SK로 건너가자마자 준수한 추격조 불펜이 되어 사실상 전천후 불펜으로 활약했다. 2012 시즌 전반기 내내 퓨쳐스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준수하게 활약하던 임창민과 이태양은 1군에선 고작 3~4이닝이 끝이었고, 결국 둘 다 NC로 이적해 이태양은 준수한 토종 선발이, 임창민은 A급 중간계투를 거쳐 리그 정상급 마무리로 발돋움했다 이태양은 결국 흑역사가 되긴 했지만...
[36]
더구나 많지 않은 1군 기회조차도 콜업후에 첫 1군 출전을 무사만루같은 위기상황에 올려서 실패하지 다시 2군으로 보내버린 적도 있으며, 롯데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