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에 대한 내용은 종교학 문서
, 엄밀한 의미의 신학에 대한 내용은
신학
문서
참고하십시오.1. 개요2. 구성3. 역사
3.1.
사도 시대3.2.
교부 시대3.3. 중세 신학3.4.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3.5. 근대 신학
4.
기독교 전체가 동의하는 신학5. 칼케돈파 기독교의 그리스도론6. 비칼케돈파 기독교의 그리스도론7. 관련 문서3.5.1.
이신론과 자연 종교3.5.2.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발흥3.5.3. 레싱과 범신론3.5.4. 임마누엘 칸트3.5.5.
낭만주의
3.6. 현대 신학3.5.5.1.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3.5.6. 초자연주의와 부흥주의3.5.7.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3.5.8. 쇠렌 키르케고어3.5.9. 마르크스와 사회주의3.5.10. 알브레히트 리츨3.5.11. 다윈과 진화론3.5.12. 중재신학3.5.13. 쇼펜하우어와 니체3.5.14. 아돌프 폰 하르낙3.5.15. 에른스트 트뢸치3.5.16. 급진 비평과 종교사학파3.5.17. 과정 신학3.5.18. 합리주의에 대한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반응3.6.1. 종교사회주의 운동3.6.2. 루터교 부흥주의3.6.3. 신정통주의
3.6.3.1. 칼 바르트3.6.3.2. 루돌프 불트만3.6.3.3. 폴 틸리히3.6.3.4. 프리드리히 고가르텐3.6.3.5. 에밀 브루너3.6.3.6. 라인홀드 니부어3.6.3.7. 디트리히 본회퍼
3.6.4. 역사의 재발견3.6.5. 20세기 가톨릭 신학자들3.6.6. 위르겐 몰트만3.6.7. 사신신학과 기독교 무신론3.6.8. 해방신학3.6.9. 세속화 신학3.6.10. 후기자유주의 신학3.6.11. 포스트모더니즘 신학3.6.12.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신학[clearfix]
1. 개요
|
신학에서 가장 큰 분야이자, 오늘날에는 단지 '신학'이라고 주로 불리는 기독교 신학에 대한 내용을 서술한다.
넓은 의미로 따지면 신을 믿는 모든 종교에 신학이 존재한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물론이고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가 아닌 힌두교/ 불교 등에도 신학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좁은 의미이자 일반적인 의미의 신학은 그야말로 기독교학이나 다름없다. 당장 신학이라는 말의 유래부터가 그리스어의 Theo(신)와 학문을 의미하는 접미사 -logy의 합성으로 서양 유럽 문화권에서 출발한 학문이었음이 드러나는데, 따라서 여기서의 '신'의 의미는 많은 유럽권 사람들이 믿었던 종교인 기독교의 신인 야훼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어 지금의 신학은 '기독교에 관한 학문'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당장 신학대학이 우리나라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보면 현대 신학에 대한 정의는 그 의미가 대폭 축소되어 기독교에 대한 연구가 곧 신학이라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독교 신학은 하느님을 다루지만 동시에 하느님을 믿는 인간에 대해서도 연구하는 학문이고, 결국에는 하느님을 목적으로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위해 신앙을 체계화시킨다. 어찌됐든 '하느님을 믿는 인간'이라는 부분은 떼어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신학은 점차 철학을 시작으로 각종 유관학문들과의 연계를 통해 점차 성장해나갔고, 일찍이 신학의 본산이었던 유럽의 신학대학들은 이제 단순한 기독교에 대한 연구와 성직자 양성을 넘어서 사실상 여러 인문사회과학들을 기독교라는 틀 안에서 연관시키고 이를 기독교에 접목시키는 종합 인문학 연구소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후술할 각종 신학의 분야들도 각종 인문학과 유관학문적 성격을 매우 강하게 띠고 있다.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나는 유식한 말이나
지혜를 가지고 하느님의 그 심오한 진리를 전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지내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 특히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공동번역 개정판,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고린도전서)[1] 2장 1-2절
공동번역 개정판,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고린도전서)[1] 2장 1-2절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우러러 모시고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
공동번역 개정판, 베드로의 첫째 편지(베드로전서)[2] 3장 15절
전통적인 신학은 복음의 진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이단적인 가르침을 방지하며 모범적인 신앙생활의 표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대적인 신학은 기존의 기독교 전통에서 잘못 알려진 사실을 정정하거나 소속 종교의 교도권과 상관없이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기능도 있다. 당연하겠지만 신학도 보수파, 중도파, 진보파가 있으며
학파 간의 갈등이 있다.공동번역 개정판, 베드로의 첫째 편지(베드로전서)[2] 3장 15절
2. 구성
신학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성서신학
- 역사신학
- 조직신학
- 실천신학
- 다문화 신학
2.1. 성서신학
성서신학 또는 성경신학은 기독교에서 "초자연적 계시" 또는 "하느님의 말씀"/"하느님에 대한 증언"으로 여겨지는, 성경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성서석의학 (또는 성서주석학 또는 성서주해학)
- 구약학
- 구약 개론학
- 구약신학
- 구약 윤리학
- 이스라엘 역사학
- 성서 입문학
- 해석학
- 신약학
- 사본학
- 신약 개론학
- 신약신학
- 신약 윤리학
- 초기 기독교 역사학
- 외경학
2.2. 역사신학
역사신학은 기독교 교리, 교회, 및 종교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교리사학
- 교회사학
- 기독교 교리, 교파, 및 교회의 역사
- 기독교 연대사
- 에큐메니즘의 역사
- 종교사학
2.3. 조직신학
조직신학은 일관되고 통일된 신학 체계를 구성하려는 학문이다.- 변증학
- 기초신학
- 종교론
- 계시론
- 교회론
- 교의학
- 신앙론
- 창조론
- 신학적 인간론
- 죄론
- 칭의론
- 신론
- 신 존재 증명
- 신의 본질, 속성, 및 섭리
- 삼위일체론
- 신론의 형태들
- 무신론
- 기독론
- 구원론
- 성령론
- 성례론
- 종말론
- 기독교 윤리학
- 과학신학
- 종교철학
2.4. 실천신학
실천신학은 기독교의 교회나 관행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고행학
- 교회 건축학
- 교회법학
- 교회 성장학
- 교회음악학
- 기독교 고고학
- 성서고고학
- 기독교 교육학
- 교리학
- 종교 교육학
- 회중 교육학
- 기독교 언론학
- 목회상담학
- 목회신학
- 봉사학
- 선교학
- 전례학
- 설교학
- 성례론
- 예배학
2.5. 다문화 신학
세계화에 직면한 기독교에 의해 최근 등장한 신학인, 다문화 신학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의 관계에서의 기독교와 타 문화 및 타 종교를 연구한다. 문화 간 신학 또는 종교 연구와 문화 간 신학으로도 불린다.- 비교신학
- 상황신학
- 토착화 신학
- 해방신학
- 기독교 사회주의
- 달리트 신학
-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
- 민중신학
- 생태신학
- 아시아계 미국인 신학
- 탈식민주의 신학
- 팔레스타인 해방신학
- 페미니즘 신학
- 아시아 페미니즘 신학
- 우머니즘 신학
- 흑인 신학
- 히스패닉 신학
- 화해신학
- 에큐메니즘 신학
- 기독교-불교 대화
- 기독교-시크교 대화
- 기독교-유교 대화
- 기독교-유대교 대화
- 기독교-이슬람 대화
- 기독교-힌두교 대화
3. 역사
3.1. 사도 시대
-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 – 약 108, 135–140년, 또는 140년대)
- 복음사가 필립보 (? – ?)
- 대 야고보 (? – 44년)
- 사도 베드로 (약 1년 – 64–68년)
- 사도 바울로 (약 5년 – 약 64/65년)
- 복음사가 요한 (약 15년 – 약 100년)
- 교황 클레멘스 1세 (약 35년 – 99년)
-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 (약 60년 – 약 130년)
- 폴리카르포스 (약 69년 – 약 155년)
3.2. 교부 시대
서양 철학사 중세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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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자연철학 | 작센의 알베르트 · 장 뷔리당 · 오트레쿠르의 니콜라스 | ||||||||
신비주의 | 베르나르도 · 에크하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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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2세기에서
6세기까지의 신학 시대를 정의내리는 용어인 교부 시대는 말 그대로, 주로
교부라고 불리는 위대한 초기
신학자들이 여러
이교,
이단 신학자들과
키배 논박과 논쟁을 거듭하며 초기 기독교 교리를 확립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3.2.1. 외적 분쟁
순교자 유스티누스 |
오리게네스 |
기독교가 공공 질서의 유지를 위협한다고 생각한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정치적이고 철학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변증가들은 이에 맞서 기독교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그리스-로마 종교를 공격했다. 특히 변증가들은
중기 플라톤 철학과
스토아 철학을 통해 기독교가
철학 전통에서 그리스-로마 종교보다 우월하며 동시에 종교의 완성이라고 주장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 Martyr(c. 100 – c. 165)는 그리스도와
로고스(이성)의 동일시를 통해 그리스도 전에서부터 존재했던 여러 단편적 진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고 성취되어 기독교를 통해 주어졌다고 보았다. 그는 이교에도 부분적으로 진리가 있음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철학은 모든 종교의 만남의 장소로 이해했다. 그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를 그리스도교의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음을 주장했다. '로고스의 씨앗'이라는 이름의 이 주장에 따르면, 모든 진리의 실마리들은 최종 계시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한
진리가 될 수 있다.
유스티누스의 뒤를 이어, 기독교 플라톤주의를 전개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 of Alexandria(c. 150 – c. 215)와 클레멘스의
제자였던
오리게네스Origen(c. 185 – c. 253)에게서 철학과 신학의 융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오리게네스는 당대의 철학 전통뿐만 아니라
필론의 가르침과
영지주의 사상을 기독교 사유와 완전히 종합시켰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또한
철학자
켈수스Celsus(2 c.)의 기독교 비난에 맞서서 변증서인 ⟪켈수스를 논박함⟫을 저술했다.
더 읽어볼 만한 글
1차 문헌
* 순교자 유스티누스: ⟪그리스도인 변호⟫. 수와진, 2021 (trans. 진규선).
* 오리게네스: ⟪켈수스를 논박함⟫. 새물결, 2005 (trans. 임걸).
* Ibid. ⟪원리론⟫. 아카넷, 2014 (trans. 이성효 등).
1차 문헌
* 순교자 유스티누스: ⟪그리스도인 변호⟫. 수와진, 2021 (trans. 진규선).
* 오리게네스: ⟪켈수스를 논박함⟫. 새물결, 2005 (trans. 임걸).
* Ibid. ⟪원리론⟫. 아카넷, 2014 (trans. 이성효 등).
2차 문헌
* 말테 호센펠더: ⟪헬레니즘 철학사⟫. 한길사, 2011 (trans. 조규홍).
* 말테 호센펠더: ⟪헬레니즘 철학사⟫. 한길사, 2011 (trans. 조규홍).
3.2.2. 내적 분쟁
같은 시대, 초기 교회들은 소위 정통 교리를 두고서 신학 내전이 벌어졌다. 신학적 논쟁에서 '패배한' 교리들이나 운동들은 박해받고 정죄되었다.
3.2.2.1. 영지주의의 도전
자세한 내용은 영지주의 문서 참고하십시오.
이레나이우스 |
영지주의Gnosticism는 크게는
기원전 2세기부터, 작게는 기원후 1세기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종교 운동이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 안에서 하나의 보편적 가르침으로 이끄는 혼합주의화 현상이었던, 영지주의는 우주적인 영적인 앎(
영지gnosis)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 반우주적으로 여겨지는
물질과
육신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특징을 가지곤 했다. 영지주의는
신플라톤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이로 인해 영지주의 철학에서는
이데아의 유출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이데아가 희미해지거나 소멸된다는 경향을 가졌다. 이데아가 많은 존재일수록 영적이고 신성하며, 반대로 이데아가 적을수록 물질적이고 악한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이렇게 영과 물질의 이원론적 대립을 주장했다. 당대 많은 영지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악한 창조신(
데미우르고스demiurge)과 선한 최고신 (모나드Monad) 간의 대립 사이에서 데미우르고스의 창조에 의해
영pneuma이 물질hyle에 갇히게 되었다. 이 악한 물질로부터 영을 해방시켜줄 존재가 모나드인데, 모나드는 구원자인 동시에 지혜의 불꽃으로 여겨졌다. 영적인 지혜는 물질의 악함을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계층의 꼭대기에 있는 모나드를 향해 영을 해방시켜 준다. 신플라톤주의의 사상을 차용했을 뿐만 아니라 악의 현존을 설명해 주기까지 한, 영지주의는 자연스럽게 당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에 대항한 반영지주의 신학자들은 이원론과, 물질을 악하게 보는 견해가 기독교의 사상에 부적합하다고 여겼다.
이레나이우스Irenaeus(c. 130 – c. 202)는 영지주의에 맞서 '정통'과 '이단'을 분리시킨 최초의 신학자다. 그는 교회가 사도들로부터 넘겨받은 신앙의 규범을 정통으로 규정하며,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사도들로부터 전해진 전통 규범이 없음을 주장했다. 이레나이우스에 의해 성서에 대한 해석이 '특정 일부의 성서 이해'에서 '교회의 보편적 성서 이해'로 옮겨가게 되는 토대가 놓일 수 있었다.
영지주의는 초기 교회에 의해 많은 핍박을 받게 되었으나, 중세와 근대에 가서 정신적 흐름이 살아남게 된다.
더 읽어볼 만한 글
1차 문헌
* 이정순 (ed.): ⟪나그함마디 문서⟫. 동연출판사, 2022 (trans. 이규호).
* 이레내우스: ⟪에피데익시스⟫. 부크크, 2022 (trans. 김광채).
1차 문헌
* 이정순 (ed.): ⟪나그함마디 문서⟫. 동연출판사, 2022 (trans. 이규호).
* 이레내우스: ⟪에피데익시스⟫. 부크크, 2022 (trans. 김광채).
2차 문헌
* 조재형: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동연출판사, 2020.
* 조재형: ⟪초기 그리스도교와 영지주의⟫. 동연출판사, 2020.
3.2.2.2. 마르키온주의의 도전
자세한 내용은 마르키온파 문서 참고하십시오.
테르툴리아누스 |
마르키온Marcion of Sinope(c. 85 – c. 160)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이자 선박 상인이었다. 그가 두 명의 신들을 가르치고 세상을 비판했기 때문에 기독교 교부들은 마르키온을 영지주의자로 인식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서, 마르키온은 영지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영지주의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신화적 사변을 하지 않았고, 창조신을 율법으로 다스리는 정의로운 조물주로 여겼다. 그래서 마르키온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희생을 통해 창조신의 율법을 폐기하고 정의 위에
사랑을 세운
메시아였다. 그는 영지주의처럼 영적인 사람과 물질적인 사람을 구분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율법의 폐기로 말미암아 사랑만이 사람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마르키온은 당대 교회가 변질되었다고 생각해 교회를 개혁하고자 했다. 그의 개혁 중 하나는 구약성서를 성서에서 제외시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사람들은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는데, 유대교의 율법이 여전히 구약성서 안에 들어있다는 판단에 의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문서 중에서도 유대교와 거리가 멀다고 본 책들을 모아 자신만의 경전을 만들었다. 이 경전에는
루가의 복음서를 변형시켰다고 추측되는 마르키온의 복음서와
로마서,
고린토전서,
고린토후서,
갈라디아서,
에페소서를 변형시켰다고 추측되는 라오디케아서,
필립비서,
골로사이서,
데살로니카전서,
데살로니카후서,
필레몬서, 반명제가 수록되어있다. 반명제에는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서로 상치하는 구절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마르키온은 철저히 유대교로부터 기독교를 분리시키려고 하였는데, 이는 율법으로부터 복음을 분리시키고자 한 마르키온 사상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이에 맞서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c. 155 – c. 220)는 구약성서와 기독교의 통일성을 옹호하였다. 그는 성서의 권위를 강력하게 옹호해, 비기독교적 문헌이나 철학으로 신학을 세우려는 어떤 시도도 비난하였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간의 신이 동일함을 옹호한 테르툴리아누스의 주장은
삼위일체론의 기초를 놓았다고 평가받는다.
마르키온의 개혁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20세기에 들어서야 신학자 아돌프 폰 하르낙에 의해 긍정적으로 재평가받게 되었다.
2차 문헌
* 조재형: "그레코-로만 배경에서 영지주의 연구(9) - 마르키온의 영지주의", ⟪성서마당⟫ 제132호. 한국성서학연구소, 2019.
* 조재형: "그레코-로만 배경에서 영지주의 연구(9) - 마르키온의 영지주의", ⟪성서마당⟫ 제132호. 한국성서학연구소, 2019.
3.2.3. 고대 교리의 확정
3.2.3.1. 사도신경
보편교회의 전통은 정통 규범으로 사용할 신앙고백인 사도신경Apostles' Creed를 선포해왔다. 이것은 12개의 작은 신경들로 구성되어 있다 (대괄호 표기는 티란니우스 루피누스의 사본에 없는 부분이다):|| 1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Creatorem caeli et terræ,]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
2 | et in Iesum Christum, Filium Eius unicum, Dominum nostrum, |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
3 | qui [conceptus est] de Spiritu Sancto, natus ex Maria Virgine, |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나시고, |
4 | [passus] sub Pontio Pilato, crucifixus, [mortuus,] et sepultus, |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에서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
5 | [descendit ad inferos,]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 [저승에 가시어]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셨으며, |
6 | ascendit ad caelos, 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
7 | inde venturus est iudicare vivos et mortuos. | 거기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
8 | [Credo] in Spiritum Sanctum, | 성령을 [믿으며], |
9 |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sanctorum communionem,] |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과] |
10 | remissionem peccatorum, | 죄의 용서와 |
11 | carnis resurrectionem, | 육신의 부활과 |
12 | vitam æternam. Amen. | 영원항을 [믿습니다]. 아멘. |
사도신경은 "예수는 주님이시다,"라고 선포했던 최초의 신경와 성인 세례 지망자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 만들어졌던 로마 신경,에서 유래했다 (질문에는 "나는 믿습니다,"로 답했다). 티란니우스 루피누스가 사도신경을 열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 부분마다 서로 다른 열두 사도에게 유래한다고 주장한 이래로, 중세에는 종종 이 신경을 열두 부분으로 나누고는 했다.
더 읽어볼 만한 글
2차 문헌
* 프랜시스 영: ⟪신경의 형성⟫. 비아, 2022 (trans. 강성윤 및 민경찬).
2차 문헌
* 프랜시스 영: ⟪신경의 형성⟫. 비아, 2022 (trans. 강성윤 및 민경찬).
3.2.3.2. 삼위일체론 이전의 입장들
고대 교회는 유일신론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성자와 성령의 존재를 고수하고 또 셋을 구별하고자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삼신론이나 천사 숭배는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1. 양자론Adoptionism은 예수가 원래 인간이었으나 어느 순간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는 믿음의 교리다. 바트 D. 어만에 의하면, 우리는 마르코와 루가의 복음서를 통해 예수가 세례받을 때에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되는 장면을, 그리고 마태오의 복음서를 통해 그의 잉태에서 아들로 입양됨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오래된 사본인 코덱스 베자에 판본의 루가 3:22의 세례 장면에서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양자론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 또는 선지자들 간의 차이를 설명하기 어려웠고, 자칫하면 그리스도 숭배의 근간이 흔들릴 우려가 있었다. 양자론은 3세기 말에 이단으로 정죄될 때까지 많은 인기를 가졌다.
2. 양태론Modalism은 하느님의 단일성과 유일성을 절대적으로 고수함으로서, 아들이나 영은 단지 하느님의 다른 "양태" 또는 "현시"로 이해하는 교리다. 삼신론과 양자론의 대안으로 탄생했던 이 교리는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의 영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요한 공동체의 문헌에서도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신학자 사벨리우스가 유사한 주장을 다뤘기 때문에 사벨리우스주의Sabellianism로도 불린다. 그러나 양태론은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았던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한 양태일 뿐이라면, 고난을 당했다고 말할 수 없으며, 결국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다른 신학을 전개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 따라서 양태론은 십자가의 의미가 약화되었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양태의 개수와 실체를 자의적으로 상정시킬 수 있다는 위험이 있었다. 결국 양태론은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가 아니라 가상이라는 가현설Docetism과 연결되었다. 양태론과 가현설은 4세기에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3. 로고스 기독론Logos Christology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말씀이며, 그는 (그리고/또는 성령도) 하느님으로부터 나왔지만 동시에 하느님과 결합되어 있다는 교리다. 말씀이 하느님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종속론Subordinationism이라고도 불려졌다. 또한 이것은 필연적으로 성부와 성자(-성령) 간의 수직적 위계가 이루어져 있다고 보는 입장이기도 하다. 안티오케이아의 이그나티우스와 오리게네스 또한 종속론을 믿었던 것으로 확인되며,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3세기 신학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종속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 아버지보다 뒤에 나왔기 때문에 성부에 대한 믿음과 성자에 대한 믿음 간의 차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었다. 종속론은 6세기에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3.2.3.3.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
아리우스 |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
아리우스Arius (c. 260 – 327-)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사제이자 장로였다. 그는 318년경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 주교를 사벨리우스주의 (이 시기에 사벨리우스주의의 의미는 잘못 오용되곤 했다. 아리우스는 알렉산더의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동등하다는 주장을 이단으로 여겼다)로 고발했는데,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는 처음에는 화해를 요구했으나, 결국 아리우스의 추방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리우스는 테르툴리아누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그리고 오리게네스가 지지했던 성부와 성자의 본질적 차이를 강조했는데 이것이 새로운 신학적 담론의 문제로 여겨졌다. 아리우스는 성서, 교부 전통, 및 철학에 근거해서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그리스도 간에는 서로 다른 본질에 속한다는 것을, 정확히는 로고스인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에서 나셨으며 그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여기에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면모를 신학에 보존하고자 했던 아리우스의 정신도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신의 인격성은 부정되었다). 아리우스에 의하면 아들과 아버지 둘 다 하느님이지만, 아버지는 비인간적이기 때문에 유일한 "참 하느님"이다. 아리우스 이후에 그를 지지하는 신학적 입장을 " 아리우스주의"라고 부른다. 325년에 콘스탄티누스 1세는 아리우스주의와의 타협을 위해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고 니케아 신조를 체결시켰다. 아리우스주의에서 그리스도의 본질이 성부보다 낮음에도 그리스도가 구원과 심판의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은, 그리스도보다 본질이 낮은 특정한 인간이 신적인 특권을 갖는 것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위험이 숨겨져 있었다. 여기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아리우스주의가 황제의 권위를 정당화 하는데 더 유용하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아차렸다는 것이 밝혀진다. 아리우스는 니케아 신조를 거부했으나, 황제에 의해 327년경에 복권되었다. 아리우스주의는 그가 죽은 후에 새 황제 콘스탄티누스 2세의 열렬한 지지로 당시 교회의 주류 입장이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of Alexandria (c. 300 – 373)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이자 반아리우스주의자였다. 그는 아리우스의 주장과 종속론 전통에 반대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동등한 본질에 대해 주장했다. 그는 오로지 성서와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에 대한 자신의 확신에만 기초하여 아리우스주의자들을 격렬하게 공격했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의 입장이 기독교의 유일신론적 근간을 흔든다고 생각했다. 그는 두 번에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하고 니케아 신조에 동의했다. 그후 그는 아리우스주의와 전보다 더 타협적인 방향을 선택했다. 아타나시우스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의 신학은 아리우스주의를 이단으로 정죄시키고 정통으로 확립되었다. 여기에는 오늘날 카파도키아 교부라고 불리어질 세 교부들 ( 카이사레아의 바실레이오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우스)의 신학적 공이 컸다. 아타나시우스가 확립한 신약성서 27권 목록 또한 정통으로 확립되었다.
더 읽어볼 만한 글
1차 문헌
* 아타나시우스: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죠이선교회, 2022 (trans. 오현미).
1차 문헌
* 아타나시우스: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죠이선교회, 2022 (trans. 오현미).
2차 문헌
* 리차드 루벤슈타인: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trans. 한인철).
* 리차드 루벤슈타인: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셨는가⟫.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trans. 한인철).
3.2.3.4.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3.2.4. 암브로시우스
3.2.5.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3.2.6. 동방의 새 갈래
====# 주요 신학자 #====
- 시노페의 마르키온 (약 85년 – 약 160년)
- 발렌티누스 (약 100년 – 약 180년)
- 순교자 유스티누스 (약 100년 – 약 165년)
- 이레나이우스 (약 130년 – 약 202년)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약 150년 – 약 215년)
- 테르툴리아누스 (약 155년 – 약 220년)
- 오리게네스 (약 185년 – 약 253년)
- 키프리아누스 (약 210년 – 258년)
-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약 296-298년 – 373년)
-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약 329년 – 390년)
- 카이사리아의 바실레이우스 (330년 – 379년)
-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약 335년 – 약 395년)
- 암브로시우스 (약 339년 – 약 397년)
- 히에로니무스 (약 342–347년 – 420년)
-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354년 – 430년)
- 네스토리우스 (약 386년 – 약 450년)
- 위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테스 (5–6세기)
3.3. 중세 신학
3.3.1. 비잔틴 신학과 중세 초기
3.3.2. 스콜라신학 초기
3.3.3. 스콜라신학 중기
3.3.4. 스콜라신학 후기
====# 주요 신학자 #====- 다마스쿠스의 요한네스 (약 675/676년 – 749년)
- 신신학자 시메온 (949년 – 1022년)
- 안셀무스 (약 1033년 – 1109년)
- 피에르 롱바르 (약 1096년 – 1160년)
- 로버트 그로스테스트 (약 1168년 – 1253년)
-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1181/1182년 – 1226년)
- 토마스 아퀴나스 (1225년 – 1274년)
- 단테 알리기에리 (약 1265년 – 1321년)
- 둔스 스코투스 (약 1265/1266년 – 1308년)
- 오컴의 윌리엄 (약 1287년 – 1347년)
-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 (약 1296년 – 1357/1359년)
- 존 위클리프 (약 1331년 – 1384년)
- 얀 후스 (약 1372년 – 1415년)
-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 (1463년 – 1494년)
- 에라스뮈스 (약 1466년 – 1536년)
- 토머스 모어 (1478년 – 1535년)
3.4.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
3.4.1. 에라스뮈스
3.4.2. 종교 개혁
3.4.2.1. 마르틴 루터와 루터교
3.4.2.2. 개혁주의
3.4.2.3. 성공회
3.4.2.4. 종교 개혁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반응
3.4.3. 구개신교 정통주의
3.4.4. 경건주의
====# 주요 신학자 #====- 마르틴 루터 (1483년 – 1546년)
- 훌드리히 츠빙글리 (1484년 – 1531년)
- 장 칼뱅 (1509년 – 1564년)
- 존 녹스 (약 1514년 – 1572년)
- 아빌라의 테레사 (1515년 – 1582년)
- 테오도르 베자 (1519년 – 1605년)
- 십자가의 요한 (1542년 – 1591년)
- 로베르토 벨라르미노 (1542년 – 1621년)
- 앤드류 멜빌 (1545년 – 1622년)
- 프란시스코 수아레스 (1548년 – 1617년)
-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 (1560년 – 1609년)
- 요한 게르하르트 (1582년 – 1637년)
- 존 로크 (1632년 – 1704년)
- 존 톨런드 (1670년 – 1722년)
- 존 웨슬리 (1703년 – 1791년)
- 조너선 에드워즈 (1703년 – 1758년)
3.5. 근대 신학
3.5.1. 이신론과 자연 종교
3.5.2.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의 발흥
3.5.3. 레싱과 범신론
3.5.4. 임마누엘 칸트
3.5.5. 낭만주의
3.5.5.1.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3.5.6. 초자연주의와 부흥주의
3.5.7.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3.5.8. 쇠렌 키르케고어
3.5.9. 마르크스와 사회주의
3.5.10. 알브레히트 리츨
3.5.11. 다윈과 진화론
3.5.12. 중재신학
3.5.13. 쇼펜하우어와 니체
3.5.14. 아돌프 폰 하르낙
3.5.15. 에른스트 트뢸치
3.5.16. 급진 비평과 종교사학파
3.5.17. 과정 신학
3.5.18. 합리주의에 대한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반응
====# 주요 신학자 #====-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1768년 – 1834년)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1770년 – 1831년)
-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1772년 – 1834년)
- 페르디난트 크리스티안 바우어 (1792년 – 1860년)
- 찰스 호지 (1797년 – 1878년)
- 존 헨리 뉴먼 (1801년 – 1890년)
- 호레이스 부시넬 (1802년 – 1876년)
- 이자크 아우구스트 도르너 (1809년 – 1884년)
- 쇠렌 키르케고르 (1813년 – 1855년)
- 알브레히트 리츨 (1822년 – 1889년)
- 빌헬름 딜타이 (1833년 – 1911년)
- 아브라함 카이퍼 (1837년 – 1920년)
- 찰스 어거스터스 브릭스 (1841년 – 1913년)
- 아돌프 폰 하르낙 (1851년 – 1930년)
- B. B. 워필드 (1851년 – 1921년)
- 프리드리히 폰 휘겔 (1852년 – 1925년)
- 헤르만 바빙크 (1854년 – 1921년)
- 알프레드 르와지 (1857년 – 1940년)
-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1861년 – 1947년)
- 조지 티렐 (1861년 – 1909년)
- 우치무라 간조 (1861년 – 1930년)
- 월터 라우션부시 (1861년 – 1918년)
- 모리스 블롱델 (1861년 – 1949년)
- 헤르만 궁켈 (1862년 – 1932년)
- 요하네스 바이스 (1863년 – 1914년)
- 에른스트 트뢸치 (1865년 – 1923년)
- 루돌프 오토 (1869년 – 1937년)
- 니콜라이 베르댜예프 (1874년 – 1948년)
- 알베르트 슈바이처 (1875년 – 1965년)
3.6. 현대 신학
제1/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서, 계몽주의 시대의 기독교 자유주의가 기대했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은 빛을 잃게 되었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여러 견해들에 반항하며 일어난 신정통주의 신학 사조는 기독교 신학을 인간 중심에서 다시 하느님 중심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라인홀드 니부어, H. 리처드 니버, 칼 바르트, 루돌프 불트만, 에밀 브루너, 에두아르드 투르나이젠, 폴 틸리히 같은 신학자들이 이 사조를 이끌었다.
가톨릭 모더니즘이 이단으로 정죄된 후, 가톨릭 교회에서는 새롭게 누벨 테올로지 사조가 일어났다.
3.6.1. 종교사회주의 운동
3.6.2. 루터교 부흥주의
3.6.3. 신정통주의
3.6.3.1. 칼 바르트
3.6.3.2. 루돌프 불트만
3.6.3.3. 폴 틸리히
3.6.3.4. 프리드리히 고가르텐
3.6.3.5. 에밀 브루너
3.6.3.6. 라인홀드 니부어
3.6.3.7. 디트리히 본회퍼
3.6.4. 역사의 재발견
3.6.4.1. 에른스트 케제만
3.6.4.2.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3.6.5. 20세기 가톨릭 신학자들
3.6.6. 위르겐 몰트만
3.6.7. 사신신학과 기독교 무신론
3.6.8. 해방신학
3.6.8.1. 흑인신학
3.6.8.2. 여성신학
3.6.8.3. 퀴어신학
3.6.8.4. 기타 해방신학
3.6.9. 세속화 신학
3.6.10. 후기자유주의 신학
3.6.11. 포스트모더니즘 신학
3.6.11.1. 급진정통주의
3.6.11.2. 약한 신학
3.6.12.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 신학
====# 주요 신학자 #====- 피에르 테이야르 드샤르댕 (1881년 – 1955년)
- 존 그레섬 메이천 (1881년 – 1937년)
- C. H. 다드 (1884년 – 1973년)
- 루돌프 불트만 (1884년 – 1976년)
- 카를 바르트 (1886년 – 1968년)
- 폴 틸리히 (1886년 – 1965년)
- 프리드리히 고가르텐 (1887년 – 1967년)
- 에두아르드 투르나이젠 (1888년 – 1974년)
- 에밀 브루너 (1889년 – 1966년)
- 류영모 (1890년 – 1981년)
- 라인홀드 니부어 (1892년 – 1971년)
- H. 리처드 니버 (1894년 – 1962년)
- 코넬리우스 반 틸 (1895년 – 1987년)
- 앙리 드 뤼박 (1896년 – 1991년)
- 찰스 하츠혼 (1897년 – 2000년)
- C. S. 루이스 (1898년 – 1963년)
- 게르하르트 폰라트 (1901년 – 1971년)
- 오스카 쿨만 (1902년 – 1999년)
- 에른스트 푹스 (1903년 – 1983년)
- 카를 라너 (1904년 – 1984년)
- 이브 콩가르 (1904년 – 1995년)
- 버나드 로너간 (1904년 – 1984년)
- 장 다니엘루 (1905년 – 1974년)
-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 (1905년 – 1988년)
- 디트리히 본회퍼 (1906년 – 1945년)
- 에른스트 케제만 (1906년 – 1998년)
- 프리츠 부리 (1907년 – 1995년)
- 헬무트 틸리케 (1908년 – 1986년)
- 자크 엘륄 (1912년 – 1994년)
- 프란시스 쉐퍼 (1912년 – 1984년)
- 게르하르트 에벨링 (1912년 – 2001년)
- 칼 F. H. 헨리 (1913년 – 2003년)
- 폴 리쾨르 (1913년 – 2005년)
- 토마스 F. 토렌스 (1913년 – 2007년)
- 에드바르트 스힐레베이크스 (1914년 – 2009년)
- 버나드 램 (1916년 – 1992년)
- 존 로빈슨 (1919년 – 1983년)
- 존 스토트 (1921년 – 2011년)
- 존 힉 (1922년 – 2012년)
- 조지 린드벡 (1923년 – 2018년)
- 야로슬라프 펠리칸 (1923년 – 2006년)
- 르네 지라르 (1923년 – 2015년)
- 윌리엄 해밀턴 (1924년 – 2012년)
- 폴 반뷰렌 (1924년 – 1998년)
- 존 B. 캅 (1925년 – 현재)
- 후안 루이스 세군도 (1925년 – 1996년)
- 고든 D. 카우프만 (1925년 – 2011년)
- 위르겐 몰트만 (1926년 – 현재)
- 제임스 패커 (1927년 – 2020년)
- 가브리엘 바하니안 (1927년 – 2012년)
- 베네딕토 16세 교황 (1927년 – 현재)
- 토마스 J. J. 알타이저 (1927년 – 2018년)
- 우타 랑케하이네만 (1927년 – 2021년)
- 존 하워드 요더 (1927년 – 1997년)
- 마틴 E. 마티 (1928년 – 현재)
- 슈버트 M. 오그덴 (1928년 – 2019년)
- 한스 큉 (1928년 – 2021년)
-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1928년 – 현재)
- 요한 밥티스트 메츠 (1928년 – 2019년)
-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1928년 – 2014년)
- 메리 데일리 (1928년 – 2010년)
- 피터 L. 버거 (1929년 – 2017년)
- 하비 콕스 (1929년 – 현재)
- 도로테 죌레 (1929년 – 2003년)
- 로버트 젠슨 (1930년 – 2017년)
- 존 폴킹혼 (1930년 – 2021년)
- 존 셸비 스퐁 (1931년 – 2021년)
- 토마스 C. 오든 (1931년 – 2016년)
- 찰스 테일러 (1931년 – 현재)
- 존 음비티 (1931년 – 2019년)
-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1932년 – 현재)
- 데이비드 켈시 (1932년 – 현재)
- 찰스 스탠리 (1932년 – 현재)
- 앨빈 플랜팅가 (1932년 – 현재)
- 샐리 맥페이그 (1933년 – 2019년)
- 던칸 B. 포레스터 (1933년 – 2016년)
- 앤 카 (1934년 – 2008년)
- 에버하르드 융엘 (1934년 – 2021년)
- 엔리케 두셀 (1934년 – 현재)
- 리처드 스윈번 (1934년 – 현재)
- 잔니 바티모 (1936년 – 현재)
- 로즈메리 래드포드 류터 (1936년 – 현재)
- 제임스 H. 콘 (1938년 – 2018년)
- 키스 워드 (1938년 – 현재)
- 레오나르도 보프 (1938년 – 현재)
- 혼 소브리노 (1938년 – 현재)
- 데이비드 트레이시 (1939년 – 현재)
- 존 맥아더 (1939년 – 현재)
- 메롤드 웨스트펄 (1940년 – 현재)
- 스탠리 하우어워스 (1940년 – 현재)
- 존 D. 카푸토 (1940년 – 현재)
- 마커스 보그 (1942년 – 2015년)
- 존 딜리 (1942년 – 2017년)
- 찰스 윈퀴스트 (1944년 – 2002년)
- 칼 라슈케 (1944년 – 현재)
- 마크 C. 테일러 (1945년 – 현재)
- 존 파이퍼 (1946년 – 현재)
- 장뤽 마리옹 (1946년 – 현재)
- 미하엘 벨커 (1947년 – 현재)
- N. T. 라이트 (1948년 – 현재)
- 슬라보예 지젝 (1949년 – 현재)
-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1949년 – 현재)
- 스탠리 그렌츠 (1950년 – 2005년)
- 로완 윌리암스 (1950년 – 현재)
- 팀 켈러 (1950년 – 2023년)
- 새라 코클리 (1951년 – 현재)
- 마르셀라 알타우스레이드 (1952년 – 2009년)
- 존 밀뱅크 (1952년 – 현재)
- 알리스터 맥그래스 (1953년 – 현재)
- 코넬 웨스트 (1953년 – 현재)
- 캐서린 켈러 (1953년 – 현재)
- 로버트 M. 프라이스 (1954년 – 현재)
- 리처드 카니 (1954년 – 현재)
- 미로슬라브 볼프 (1956년 – 현재)
- 캐스린 태너 (1957년 – 현재)
- 그레그 보이드 (1957년 – 현재)
- 존 비비어 (1959년 – 현재)
- 로버트 모리스 (1961년 – 현재)
- 폴 워셔 (1961년 – 현재)
- 윌리엄 T. 캐버너 (1962년 – 현재)
- 마리오 코피치 (1965년 – 현재)
- 제임스 K. A. 스미스 (1970년 – 현재)
- 캐서린 픽스톡 (1970년 – 현재)
- 제프리 W. 로빈스 (1972년 – 현재)
- 피터 롤린스 (1973년 – 현재)
- 린 톤스태드 (1978년 – 현재)
4. 기독교 전체가 동의하는 신학
기독교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인정하는 종파 전체를 폭넓게 아우르는 말이라 의외로 상당히 적다. 중복 서술을 피하기 위하여 이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 기독교 문서를 참조할 것.5. 칼케돈파 기독교의 그리스도론
양성론은 칼케돈파 기독교 그리스도론의 정체성으로, 양성론을 부정한다면 소위 정통, 즉 칼케돈파 기독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칼케돈 공의회에서 정의된 교리로, 양성론에 동의한 기독교는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가 있다.사실상 칼케돈파 기독교가 주류 기독교를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칼케돈 공의회 이후로도 기독교 신학계에서 "성경에서 나타난 신의 속성을 취합하면 신을 삼위일체 하느님(하나님)으로 정의하는게 옳다는 합의"가 꾸준히 이뤄졌기 때문이다. 비칼케돈파 종파들이 몇몇 국가의 국교로 인정되기도 했지만 해당 국가의 토착 종파로 취급되어 타국가 선교에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물론 양성론에서 일치하지만 구원론를 비롯한 다른 중요 교리에서 일치하지 못해 이단이 된 비주류 교파도 상당히 많다. 이러한 교파들은 이단/기독교 문서를 참조하라.
5.1. 가톨릭
신학/가톨릭 참조5.2. 정교회
신학/정교회 참조5.3. 개신교
신학/개신교 참조6. 비칼케돈파 기독교의 그리스도론
칼케돈파 기독교의 그리스도론이 양성론이라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것과 달리 비칼케돈파 기독교는 그리스도론에 있어 오직 비칼케돈 교파들을 아울렀던 개념이길래 서로 간의 괴리가 심하다.비칼케돈파 기독교는 교파별로 크게 세 가지 그리스도론로 나눌 수 있으며, 특히 이성론이나 합성론을 단성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해당 교회에게 이단이라는 심각한 모욕이 될 수 있다.
- 단일신론 - 예수의 위격이 인성 혹은 신성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 에비온파, 영지주의, 아리우스파, 단성론, 단의론이 주장했다.(영지주의, 단성론, 단의론은 신성만, 에비온파는 인성만[3], 아리우스파는 삼위일체를 거부하고 성자는 성부와 동등한 참된 신격이 아니라 성부보다 낮은 위격에 존재한다고 주장함)
6.1. 아리우스파
기독교 최초의 공의회인 제1차 니케아 공의회와 두 번째 공의회인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된 교파. 아리우스파 참조6.2. 네스토리우스파
세계사에서 언급되는 동방 기독교 종파‘경교’가 이 교파를 지칭한다. 에페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된 교파. 네스토리우스파 참조아시리아 동방교회가 해당된다.
6.3. 단성론
칼케돈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된 교파. 단성론 참조.오리엔트 정교회는 정확히는 합성론이었지만 단성론과 동일시되어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콥트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시리아 정교회가 해당된다. 합성론, 오리엔트 정교회 참고.
7. 관련 문서
[1]
사도 바울로(바울)이 자신이 세운 그리스 고린토 지역의 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2]
바울과 달리 베드로의 편지는 불특정다수를 위해 쓰여졌다.
[3]
후대의
이슬람은 에비온파의 기독론를 수용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비칼게돈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
[4]
얼핏보면 양성론과 별 차이 없어보여도 양성론은 인성과 신성이 모두 존재한 채로 결합하여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둘은 다르다. 연합은 같이 속해있지만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지만, 결합은 분리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네스토리우스파와 개신교의 공통점에 주목하는 개신교 신학자들이나 강력한
에큐메니컬 성향을 보이는 신학자들에게 사실 용어만 다르지 똑같은 것을 말했을 뿐인데, 당시 로마 정치인들과 주류 교회의 정치공학적 이유 때문에 이단으로 낙인찍혔다는 주장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