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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드라마)/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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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왜곡 내용과 유사역사학적 요소
2.1. 패권주의적 민족주의
3. 전쟁에 대한 뒤틀린 인식4. 병맛 연출 및 스토리5. 중언부언이 많은 대사6. 전투씬7. 최후반부의 병맛 전개8. 엔딩9. 청년배우의 연기력10. 시대적 재현 오류
10.1. 연도 오류
11. 지나친 삼국지연의 차용12. 주인공과 서브 주인공의 관계13. 별 의미가 없는 1부 전개14. 캐릭터 붕괴와 몰개성이 난무하는 고구려 파트
14.1. 위선자 주인공14.2. 무능한 2부 고구려 수뇌부
15. 기타

1. 개요

드라마 연개소문의 비판점을 정리한 문서.

2. 역사 왜곡 내용과 유사역사학적 요소

이 드라마에는 환단고기+조선상고사+화랑세기 필사본+삼국지연의 등 좀 유명하다 싶은 야사들의 내용이 거의 다 들어가 있다. 일례로 이 드라마에서 화랑과 비슷한 존재로 나오는 조의선인이라는 집단이 무술수련 집단으로 존재했다는 것은 오직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만 나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실체는 별개의 관등인 조의와 선인을 오해한 것이다. 그러니 연태조와 연개소문이 조의선인으로 수련했다는 것도 판타지에 불과하다.

후술된 갓쉰동전과 규염객전의 주인공이 연개소문을 모티브로 했다는 것도 순전히 신채호의 독자적 주장일뿐더러 그 어떤 사서도 연개소문이 정치에 나서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싣고 있지 않다.

1차 여수전쟁 당시 해전에서 승리한게 도인이던 막리지 연태조가 바람을 불러왔다는 설정[1]에 도인들은 나라의 운명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연개소문이 소싯적 신라에 들어가 있을 때 매우 어설픈 청춘 러브 스토리를 펼치기도 하고 의형제라든지 상단이야기에 무협지를 연상시키는 내용까지 잡탕한 완벽한 판타지 그 자체다.[2][3] 신라가 메인인 드라마가 아니라서 큰 비중은 없다지만 미실 역과 천관녀 역의 배우까지 등장한다.[4]

연개소문이 신라로 가게 되어 김유신 가문의 종노릇을 잠깐 했다는 갓쉰동전 설화를 반영하기도 하고[5] 김유신의 누이 보희와 젊은 연개소문이 잠깐 사랑을 한다든가[6], 연개소문이 중국으로도 넘어가 소싯적 이세민과 뜻을 같이 한 동지 관계를 맺는다든가 하는 등, 온갖 기괴한 내용이 펼쳐지곤 했다. 이건 규염객전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게 다 작가가 통째로 지어낸 판타지는 아니고 알고보면 이런저런 실제로 존재하는 옛 설화적 기록들을 참조해서 덕지덕지 엮어놓은 부분이기는 한데, 신라-고구려-중국(수나라/당나라)을 종횡무진하며 하나의 사극에 집어넣기에는 역사적으로는 너무 극적이고 무리한 설정이 산만하게 많이 포함되어 드라마를 망치고 말았다.

사실 이런 것도 사극 아닌 판타지 드라마였다며 그냥저냥 넘어갈 만한 요소라고 봐줄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보다 심각한 역사왜곡과 유사역사학적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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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환빠 사상을 홍보하려는듯 의도한 것 같은 환단고기의 내용을 자주 언급하기도 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대륙백제설까지 등장하는 실로 환빠스틱하기 그지없는 드라마다. 오죽하면 "환개소문"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거기에다가 작중에서 고구려 백제가 중국을 오랑캐라고 말한다거나[7]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서로 하나의 민족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고구려는 중국에 가장 많은 조공을 바쳐 수도 없는 책봉을 받았고[8], 백제 역시 오랑캐라고 무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조공을 바쳤다. 거기에 삼국이 서로 같은 민족이라고 여겼다는 건 지나치게 민족사관을 대입시킨 설정이라고 봐야 한다. 후삼국 시대 견훤 후백제를 세운다고 했다거나, 궁예 후고구려를 세운다고 했을 때 구 고구려와 구 백제 유민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삼국은 서로 동족 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게다가 작중에서 삼국이 고조선을 계승하려는 뉘앙스를 드러내는데 사료를 찾아봐도 고조선 계승 같은 건 안 나온다.[9] 또한, 2부에서는 고구려 장군들이 '어아가'를 부르기도 하며[10], 내레이션은 환단고기를 인용하여 이를 마치 오래된 우리의 노래처럼 소개한다.

도교에 대한 묘사도 실제 기록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각본을 쓴 이환경이 도교까인 건지는 몰라도 도교가 대책 없이 까이는데, 도교에 대한 수용 자체가 마치 고구려의 종속을 위한 당나라의 문화적 침략인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 상편 2년조 기사를 보면 당나라에서 도교를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 바로 연개소문이다[11][12]. 게다가 그 도교와 대립하는 측도 실제 기록 상에 묘사된 불교 세력이 아니다.[13] 작중에서는 '선도'라는, 사료 어디에도 언급이 없는[14] 고구려 고유의 신앙을 중심으로, 당에서부터의 도교 전래를 강경하게 반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즉, 사료에서의 행적과 극중의 행적이 완전히 정반대인 셈이었다. 또 극중의 묘사를 보면 도교는 백성들을 바보 멍청이로 만들라는 교리를 가진 종교로 고구려의 귀족들이 크게 반발하는데, 과연 도교가 이렇게 대책 없는 종교였다면 애초에 당나라가 국교로 지정했을까? 그리고 한 발 양보하여 설사 도교가 우민화 정책을 주장하는 종교였더라도, 귀족들은 반대하기는커녕 얼씨구나 했을 것이다. 왜냐? 당연히 백성들이 멍청해야 다스리기 쉽기 때문이다. 애초에 도덕경에서 지식을 부정적으로 보는 구절은 어디까지나 영악해지지 말라는 소리지, 진짜로 멍청해지라는 뜻이 아니다. 그 외 도교 역시 한민족의 선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은 덤이다.

사료를 왜곡한 또다른 부분으로는 44화 끝부분에서 내호아가 이끄는 수의 수군이 고건무의 계책에 휘말려 대패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이 장면 자체는 별로 틀린 부분이 없다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내레이션으로 자치통감의 한 대목을 소개하면서 전혀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인 것. 사료를 주욱 읊으면서 마지막에 '고구려 왕제 건무의 효용이 참으로 절륜하였다...라고 하였다'라고 하는데, 자치통감 원문에는 효용이고 절륜이고 하는 소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고(구)려군에게 패했다고만 되어 있을 뿐 건무라는 이름 자체가 나와있지 않다.[15] 고건무의 이름이 나온 사료는 수서이지, 자치통감이 아니다. 극중의 인물들이야 소속 국가에 따라 고구려 만세 수 제국 만세를 외칠 수 있는 일이고, 한국에서 만들어져 대다수의 한국인 시청자들에게 방영하는 사극인 이상 내레이션 역시 고구려에 어느 정도 치우쳐 흘러갈 수밖에 없긴 하나, 사료의 원문을 대놓고 왜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중국에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작중 중국과의 조공, 책봉은 무조건 굴욕이며, 위대한 고구려는 그런 굴욕적인 행위를 한 적이 없는 것처럼 묘사된다. 영류왕이 당나라에게 책봉을 받자, 이를 굴욕이라고 반발하는 강이식이 대표적. 그러나 이는 고대 중국과의 외교 방식과 실제 기록을 무시한 묘사로, 실제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이후의 모든 왕이 다 책봉을 받았고 조공을 안 해본 왕도 없다. 반대로 주변국들이 고구려에게 보내는 조공 또는 축하 사신은 고구려에 대한 복종으로 묘사된다. 또한 고구려는 비굴함을 절대 보여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있는 것인지, 을지문덕과 강이식 등 고구려 군부는 중국과의 휴전, 화친 자체를 굴욕으로 여기는 묘사가 나온다.[16] 2차 고수전쟁 당시 을지문덕은 거짓 항복을 이용해 수나라 별동대를 상대로 시간을 질질 끌었지만, 그마저도 을지문덕이 비굴한 척 연기하기는커녕 항복하는 사람 치고는 지나치게 당당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오히려 이런 조공이 치욕이라는 식의 묘사는 실제 학계에서 지적하는 조공-책봉 체제의 허실을 사실인 양 오도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고구려-당나라 1차 전쟁을 다룬 91회에서 당태종 이세민이 연개소문에게 항복하면서 애걸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물론 당태종이 패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간신히 빠져나오는건 맞지만, 이세민이 고구려에 항복하는 내용은 역사서 그 어디에도 없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의 내용을 차용하여 당태종 굴욕을 극대화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타 문단에 서술된 것 처럼 정작 그 묘사가 워낙 어처구니가 없는 나머지, 그 장면은 오히려 연개소문이 쓸데없는 짓을 하다가 오히려 당태종을 생포하거나 죽일 기회를 놓치고 후반부 전투때 당나라 군대에 의해 연수정(연수영)과 낭자군만 잃는 꼴로 묘사되고 말았다.

2.1. 패권주의적 민족주의

작중 중국은 한민족에게 열등감과 질투심을 가지고 있기에 고구려를 공격하는 것이라 언급되며, 거기다 명백히 중화인이 분명한 인물들을 한민족이나 고구려 출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령 백이와 숙제 같은 인물들은 동이족이니까 한민족이고, 이밀은 고조선의 부흥을 꿈꾸는 동이족 인물이 되었으며, 고경은 고구려의 고씨 성을 쓰는 인물이 되었다.

또한 중국의 문화나 사건들도 마치 한민족과 관련이 있는 식으로 묘사된다. 가령 분서갱유는 고조선에 대한 자료를 지워버린 사건이며, 중국의 영산인 태산은 중국 황제들이 태백산을 향해 제를 올리던 그런 곳이 되었다. 도교가 원래는 동이 땅에서 생겼다는 주장까지 했고, 수양제나 연태수가 좋은 것은 죄다 고구려에 있다는 식의 말을 하는 묘사도 있다.

실제로는 그런 게 전혀 없는 중원vs동이의 숙명적인 라이벌 구도를 계속 주입하면서 심지어는 645년의 전쟁에서 고구려가 만리장성을 넘어서 중원을 공격하는 식으로 묘사했다. 물론 얼마 못가 실패하고 물러나긴 했지만 말이다.[17]

작가는 동북공정에 대항하여 드라마를 집필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드라마의 묘사는 중국이 한국의 문화를 자신의 것이라 생떼를 부리는 그 수준과 마찬가지였다.

3. 전쟁에 대한 뒤틀린 인식

연개소문에는 왜곡된 민족주의 및 전체주의적 성향이 다분한 묘사가 다수 등장한다.

작가의 전작인 태조 왕건에 비해서 전쟁에 대한 사고방식[18]이 극단적인데, 작중에서는 일단은 고통이건 뭐건 전쟁에서 이기고 보자는 내용이나, 병사들이 자살에 가까운 돌격 지휘관의 말에 어떠한 토도 달지 않고 닥돌하는 장면이 있다.

또한, 작중 등장인물 상당수가 생명을 굉장히 가볍게 여기고[19], 결과(승전)만 중요시 여기는 장면들이 많은 편이다. 주인공은 백성의 삶이나 장기적인 계획을 위한 국고의 비축 보다 국가의 자존심과 서토정벌을 중시하며, 마치 전쟁과 정복이 마음만 먹으면 벌일 수 있는 쉬운 행동인 것처럼 묘사된다. 타 문단에 서술된 내용이지만, 전쟁에 대한 드라마의 뒤틀린 묘사는 고구려의 명장들이 졸지에 전쟁광 똥별로 묘사되는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전쟁에 대한 고구려 내부의 불만 사항도, 마치 나약하고 부패한 귀족들이 자기 재산 지키기 위해 자국의 자존심도 내다버리는 짓거리를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정작 중국 파트에서의 전쟁 반대 묘사는 경제 파탄으로 인한 항거 또는 무리한 전쟁을 반대하는 현명한 조언 식으로 묘사된다.

4. 병맛 연출 및 스토리

처음부터 끝까지 병맛이 넘치는 드라마로 유명하다. 2부부터는 400억원의 제작비를 모두 소모했는지 1부의 장면을 재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나라군이 행군하는 장면은 수나라군이 행군하던 장면을 그대로 재활용 해버리는 바람에 당나라군 복장이 수나라군 복장처럼 됐고, 당나라군 깃발에 당이 아니라 수가 쓰여 있고, 이미 죽은 우문술과 우중문, 장형이 당나라군과 행군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또 당 태종이 태자에 책봉되는 장면이나 황제로 즉위하는 장면도 수 양제의 것을 재활용했다. 당나라 수군도 수나라 수군을 재활용한 게 허다하고 당나라 수군이 비사성을 공격하는 신은 수나라가 비사성 공격할 때의 장면을 약간 손만 봐서 재활용 했는데, 그나마 제대로 된 해전 신은 전혀 없고 지휘관과 부관 둘이서 전쟁 상황 중계하듯 몸개그하며 떠드는 게 전부. 안시성 전투 장면에서도 수나라군이 나오는 장면들로 때우는 등 재활용을 무진장 많이 했다.

더군다나 작중 안시성 전투에 등장하는 토산도 무진장 작은 크기로 묘사되는데, 정작 고구려군이 목책으로 다리를 만들어 토산으로 넘어와서 당군과 회전을 벌이는 장면까지 나온다. 이는 SBS가 대하사극을 만드는 노하우가 부족했던 탓이 크다. 실제로 연개소문 이전까지 SBS는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대하드라마를 극히 소수만 만들었다. 특히, 대규모 전투 장면이나 컴퓨터 그래픽이 1990년대 초반의 드라마와 같을 정도였다. 이 드라마에 따르면 당시 고구려의 깃발은 휴먼옛체로 쓰여 있었다. 창칼 부딪히는 소리와 화살 쏘는 사운드 역시 1990년대 드라마와 비슷하게 매우 어색하다.

극 초반부에는 합판으로 배경의 왕궁을 재현한 탓에 합판소문이라는 별명과 함께 한바탕 신나게 까였으며[20], 최후반인 96회에 의자왕[21]이 당나라의 공격을 피해서 도망가는 장면이 잠깐 나오기 전에는 한국 드라마 최고의 병맛 발 CG중 하나인 그야말로 꽃들코털이 떨어지고 있구나. CG가 있다.[22] 이 CG는 후에 무한도전 쪽대본 드라마에서 패러디될 정도로 필수요소로 자주 쓰였다. 사실상 드라마 자체를 평가하는 명대사다.

1부에서는 존재감이나 활약이 적었던 연개소문이 2부에 들어가면 얼마 안되어 켄시로 급의 인간흉기로 나온다. 비도술로 단검을 날려서 적을 제압하는 장면[23][24]이 있는데 흔히 만렙소문, 고구려의 뮤탈리스크, 욘두소문 등으로 불린다.[25] 또한, 작중 주요 전쟁신 연출은 현재까지도 패러디되고 있으며, 희대의 괴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여성 무장들은 기합 소리가 참으로 아름답다. 2부가 되면 고작 3년이 지났을 뿐인데, 사람들이 삭은 걸 보면 30년은 흘렀다.[26] 영류왕의 호위 무사로 일하는 연개소문 역할을 중년 배우 유동근에게 맡기느라 젊어 보이게 하려고 분장을 떡칠했는데, 눈 주변을 매우 시커멓게 만들어 놓았다.

5. 중언부언이 많은 대사

작가의 특성상 여기서도 쓸데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대사가 많아서 불필요한 분량이 많다. 예를 들자면 "갑옷을 가져오라!", "갑옷… 말씀이십니까?", "그래, 더 이상은 짐이 두고 보질 못 하겠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등. 그리고 "요동성으로 가야 해. 요동성 말이야, 요동성…"이나 "고돌발 장군은 실전 경험이 전무해. 실전 경험 말이야, 실전 경험..." 그외에도 비가 내리는 상황이 발생하면 "비야! 비가 내리고 있다고! 비가!" 등등 인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단어를 불필요하게 반복하며, 문맥이나 내용에 관계 없이 연설 및 다른 대사의 끝은 언제나 "아니 그런가?"로 장식된다. 물론 김갑수 같은 명배우는 이런 어색한 대사도 환상적으로 소화하긴 했다.[27]

6. 전투씬

연출과 CG가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은 차지하더라도, 드라마에 묘사된 전투씬은 작가의 전작 태조 왕건의 단점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태조 왕건의 전투씬은 굉장한 것도 있지만 사실상 삼국지연의의 열화카피로 취급 되는 것도 있는데, 연개소문은 그보다도 퇴화한 모습을 보이는 것.

전투 대부분은 공성전 아니면 이 패턴의 반복이다.

1. '매복을 한다, 또는 뻔한 계략을 꾸민다 → 사전 정찰을 제대로 하지 않는 적군이 밤중에 사지로 들어간다/상대가 아군을 얕잡아보며 방심한다 → 상대가 매복에 걸린다 → 병력을 크게 잃은 장수가 통곡하거나 탄식하며 도망간다'

2. 별다른 계획 없이 '적들이 빤히 보이는 사지로 돌격한다 → 몰살'

싸움이 벌어지고 고구려 장수가 나서서 칼질 할 때마다 적군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질 뿐이다. 기습공격은 만능 치트라서 수나라, 당나라군은 물론 심지어 고구려군 조차 당하는 쪽은 무조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경계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을 지경. 고구려 장수들은 수시로 선제공격과 서토 정벌을 외쳐 대지만, 정작 고구려군이 회전으로 수나라, 당나라 군대와 대결을 펼치고 이기는 묘사가 없다.

전투 자체가 상대방만 바보로 만드는 묘사에 의존하기 때문에(또는 날씨를 바꾸는 초능력으로 열세를 만회하는 황당한 전개) 전투는 긴박함과 처절함이 아니라 지루함과 뻔함만 있을 뿐이었다. 드라마 초반에 묘사된 1차 고수전쟁은 이 문제점이 크게 두드러진다. 중국 측에서 축소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나라의 패배를 작가의 창작으로 보완해야 하는데, 그 결과는 함정에 무조건 걸리는 바보 멍청이들로 묘사되는 수나라 수뇌부들과, 삼국지연의 표절, 그리고 초능력으로 태풍을 일으키는 황당한 전개였다.

7. 최후반부의 병맛 전개

유동근이 연기한 연개소문 파트는 55화에서 시작하며, 71화에 영류왕이 사망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그 이후부터 91화까지 제1차 고당전쟁을 다루었고, 92화부터 마지막 화인 100화까지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의 갈등 및 고구려의 내부 분열, 멸망을 다루었다. 문제는, 연씨 삼형제의 갈등과 고구려의 멸망은 드라마의 마지막을 비극적으로 장식할 만한 대사건임에도 불구하고 92화가 시작된 시점에서 이에 관련해서 쌓아 놓은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남건, 남산 형제의 출생 당시에 던져진 예언만 있을 뿐. 다른 작품이었다면 그동안의 갈등과 감정선을 터뜨리며 메인 스토리를 마무리 짓거나 후일담을 묘사해야 할 상황에서, 드라마는 그제서야 후반부 서사 구축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게다가 드라마는 서둘러서 서사 구축을 해야 할 마당에 엉뚱한 내용으로 시간을 채웠다. 연씨 3형제의 갈등은 93화부터 묘사되기 시작되긴 하지만, 이들의 감정이나 내면을 묘사하는 데 시간을 쓴 것이 아니라 내레이션으로 가볍게 때우고 넘어가도 충분할 신라, 백제, 당나라에 비중을 할애한 것이다. 가령 92~93화에서는 측천무후가 핵심 캐릭터로 등장하며, 94~96화는 백제가 멸망하는 과정이 중점적으로 다루어진다[28]. 97화와 98화에서는 제 2차 고당전쟁이 엉성한 전투신으로 얼렁뚱땅 묘사되었다. 연씨 3형제와 고구려 수뇌부의 갈등 및 분열은 99화에나 제대로 그려졌으며, 마지막 화인 100회에서야 연남생이 쿠데타로 축출당해서 당나라로 간다. 그렇기에 드라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제3차 고당전쟁도 내부 분열 후 빠르게 평양성 함락으로 흐지부지되고 만다.

이렇듯 서사를 구축할 시간 자체가 얼마 없었던데다 이마저도 스스로 까먹다 보니, 그렇게 나온 결과물도 처참하다. 연씨 삼형제의 갈등 구조는 엉성하기 그지 없는데, 연남생의 어머니가 이밀의 누이라는 말을 들은 뇌음신은 갑자기 연남생을 적대하며 내분을 일으켰고, 이 갈등 관계에서 크게 비중이 없었던 고죽리[29]는 뜬금없이 마지막에 연남건에게 살해 당한다.

쿠데타 묘사 역시 태조 왕건의 신검과 능환의 쿠데타에 비하면 엉성하기 짝이 없다. 일단 신검의 쿠데타의 경우 국왕인 견훤이 등창에 걸려 골골거리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꾸준히 각인시켜 왔다. 등창에 막 걸린 견훤이 자꾸 등을 긁는 모습을 보이자 최승우나 능환, 능애 등이 이를 이야기하는 장면도 있고 작중의 운주성 전투에서 후백제군이 패한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견훤의 등창이었으며, 어의가 등창을 치료할 때 견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장면까지 나올 뿐 아니라 견훤의 개그신 가운데 하나로도 회자되고 있다. 신검이 금강을 제거하고 있을 무렵에는 견훤이 심한 악몽에 시달리며 "내가 왕건 아우에게 빌다니...ㅉㅉ" 하는 대사를 칠 정도로 기력이 쇠해 있었고, 견훤을 대신해 궁궐을 지켜야 할 금강도 박영규가 연금되었는 줄도 모르고 (신검의 쿠데타를 생각하지 못했으므로) 신검파였던 상애에게 궁궐 수비를 맡기며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야겠다는 대사를 치거나 부관들과 함께 낮술을 즐기는 도중 무언가 수상하다는 보고가 들어와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등, 방심하고 있음을 시청자에게 분명하게 전달했다. 반면에 연남건, 연남산의 쿠데타는 허점을 노린 기습 내지는 철저한 준비를 거친 봉기와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쿠데타 직전까지 연남건 일행에 대한 감시망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남건 형제가 당일치기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정작 조의선인들은 아무 행동도 안 하고 그저 동부 가문의 자택만 지키고 서 있었다.

드라마가 인과관계, 인물 간의 갈등 구조를 너무 운명론에만 의존하다 보니, 오히려 드라마의 유사역사학적인 요소가 그 운명론과 충돌하는 괴악한 묘사까지 등장한다. 당장 55화 도입부는 조실의 설명을 통해 환국과 배달국, 그리고 고조선의 오랜 역사를 간략하게 묘사하였다. 그 국가들은 못해도 1500년, 길면 2천 년 단위로 존속된 것으로 묘사되는데, 정작 고구려는 900년 밖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처음부터 예언이 된 것으로 묘사된다(11화). 심지어 조실은 900년 된 고구려에 대해 너무 늙었다, 국가가 천 년 이상 존속 되는 것은 인간이 천수를 누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 같은 소리를 했다.[30]

8. 엔딩

고구려가 멸망하기 최소 2년 전에 죽는 연개소문 고구려가 멸망하는 순간까지 살아있으면서, 노환으로 죽기 전 고구려 멸망의 원흉들[31]을 직접 처단하는 것으로 묘사된다.[32]


결국 마지막회 100화에서 고구려 당나라에게 멸망한 이후, 이적에게 "이 땅 위에 고구려가 다시 서게 될 것이야."라는 정신승리 시전 대사를 남기며 조용히 퇴장해 삼족오를 타고 태양으로 날아가는 연개소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장면은 연개소문 고구려의 마지막 수호자였고 고구려의 명맥이 훗날 발해, 고려를 거쳐 오늘날까지 코리아(Korea)란 영문명으로 이어져오고 있음을 강조시키려는 의도로 쓰였겠지만, 연개소문이 멸망한 나라를 내버리고 정신승리를 하며 저승으로 달아나는 꼴로 받아들이는 시청자가 많았다.

연개소문의 마지막 대사는 드라마 내내 묘사된 주제 의식과 비교하면 더욱 기괴하다. 작중에서 서토 정벌은 한민족의 사명이고 서토 오랑캐와의 싸움은 한민족이 주인이 되느냐 노예가 되느냐를 가르는 숙명으로 묘사된다. 결국 고구려는 제3차 고당전쟁때 당나라 신라에게 패하고 백성들은 서토 오랑캐의 노예로 전락했지만, 연개소문 고구려의 실패와 패배를 비통해하지 않는다. 이적에게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일 뿐이며 그저 이 나라를 잠시 맡긴 것일 뿐이라고 정신승리를 하며 저승으로 도망간다.

이는 드라마 제작 의도와 실제 역사가 서로 충돌하면서 벌어진 문제로, 동시기에 방영된 주몽, 대조영처럼 연개소문 역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여 고구려의 찬란한 역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제작되었다. 하지만 온갖 고난들을 이겨낸 끝에 창업군주가 된 동명성왕, 고왕과는 반대로 연개소문은 그가 죽고 얼마 후에 내부분열,나당연합군에게 고구려가 멸망한다. 드라마가 고구려 멸망까지 다룬다면 결국 연개소문을 마지막에 패배하는 주인공으로 묘사해야 하지만 작가와 드라마는 연개소문의 패배를 끝내 인정하지 않는다. 끝내 중국에게 패배한다는 전개는 드라마 제작 의도와 상충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모순을 통해 백성 운운 하면서 남을 일갈하기는 잘해도 정작 고구려의 멸망과 백성들이 겪을 고통 따위는 슬퍼하지도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위선자 주인공이 탄생하고 말았다.

9. 청년배우의 연기력

이환경 작가의 전작 야인시대처럼, 이 드라마 역시 초반부는 주인공의 청년기를 다루며, 청년 배우들이 비중있게 등장한다.[33] 문제는 이미 연기력이 검증된 안재모가 주인공이었으며 다른 청년 배우들도 연기가 멀쩡했던 야인시대 1부와는 달리, 연개소문 1부는 반대로 청년 배우들의 발연기가 두드러졌다는 것. 당시 주인공 배역인 이태곤은 물론 다른 청년 배우들도 거슬릴 정도의 발연기를 해댔으며,[34] 거기다 지루한 스토리 전개까지 더해져 결국 드라마 초반부는 수양제가 하드캐리하였고, 연개소문이 수나라에 간 뒤로는 수양제의 비중이 높아져버린다. 실제로 수양제가 사망한 해는 618년으로, 이 시기의 연개소문은 아직 10대 중반이었다. 즉, 수양제가 연개소문 드라마의 1부에서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부터가 완벽한 판타지로 절대 사극이라고 볼수 없다.

배역 캐스팅도 조금 어색해서 이태곤의 청년 시절 연개소문에 대한 묘사는 도대체 소드마스터급의 실력을 보일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고[35], 이태곤의 포스도 상당히 밀린다는 얘기들이 있다. 결국 대한민국 배우의 갑, 연기의 갑이라고 불리는 김갑수가 연기한 수양제에 밀려 페이크 주인공이 되었다.[36] 게다가 동시기에 출연하는 우문화급이나 왕세충, 이밀 같은 조연들에게조차 포스가 밀리는 것 같다는 의견이 다수 있다. 고구려 측에서도 영양왕, 을지문덕, 강이식 등에 중견급 배우들이 맡아 청년 연개소문보다 더 존재감이 컸으며 극중에서 강이식은 2부에서 연개소문의 스승격 존재로 묘사되었다. 그나마 유동근으로 교체된 2부에서는 주인공으로서 존재감이 살아나는듯 싶었으나 이때도 수양제의 뒤를 이어 서인석이 맡은 당태종의 분량도 제법 많았다.[37]

10. 시대적 재현 오류

이미 유사역사학적 요소에 역사왜곡이 판치는 드라마에 고증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역사왜곡 판타지 드라마가 아닌 일반 사극에서도 종종 발생할 수 있는 고증 오류도 따로 분류해본다. 작중 인물의 생몰년도는 물론 사건과 행적에 대한 오류가 엄청나게 많다. 심지어 작중 묘사가 드라마 자체 설정까지 무시하는 부분도 꽤 있을 정도였다.

중국사에 관련된 부분에 오류가 많은데,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오류가 아닌 부분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 예가 하도 많아 일일이 언급하기는 어렵고 진시황이 여불위의 아들이라고 설명하는 것부터 해서, 수나라 말기에 국한해서 살펴보자면[38] 다음과 같다.

먼저 극중 반란 세력의 우두머리였던 양현감이 죽자마자 양현감의 동료인 이밀을 찾아내어 새 주군으로 옹립하는 적양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실존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가 이밀을 떠받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밀 쪽에서 수나라 말기에 할거한 반란군 수장들 가운데 자신의 뜻을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인물을 찾다 찾다 만난 사람이다[39]. 게다가 극중에서 그는 철저히 이밀의 수하 장수로 나오며 수나라 군대와 싸우다 전사하지만, 실존인물 적양은 그의 세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던 이밀에 의해 제거되었다.[40][41] 또한 극중의 이밀은 장안성을 나와 정처 없이 떠돌다 죽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실제로는 반란을 꾀하던 도중 발각되어 처형되었다.[42] 물론 그가 '조선의 재건' 따위를 전혀 거론한 적이 없다는 건 당연하다.

이 밖에도 황제를 칭하고 정(鄭)이라는 나라를 세운 반란군 우두머리인 왕세충이라는 인물의 대사 가운데 '황제 한 번 되어보려 했더니 다 틀렸다'라는 것이 있는가 하면[43] 수 양제를 시해한 근위대장 우문화급이 반란을 일으킨 과정이 엉키는 등 정말 오류가 많다.[44]

2부가 시작되면서는 유화 정책을 펼치던 영류왕을 '뜻은 좋았지만 의욕이 지나쳐서 굴욕적인 외교를 펼쳤다' 라고 까고 들어가는데, 주인공의 정적이었으니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까지야 어떻게든 넘어간다 쳐도 그 근거로 당에 조공을 바친 부분을 심히 비판한 것은 부적절했다. 일단 전통 동아시아식 국제 관계에서는 중국과의 외교가 곧 조공이었으므로, 조공을 바쳤다는 것 자체로 중국에 고개를 숙였다는 것은 생각할 여지가 있다[45]. 양제의 3차 침공 때 고구려가 항복을 청했던 것은 치욕이 아니라 형식적인 것이었다고 잘 파악했으면서 이제 와서 이러는 건 이해가 안 되는 부분. 게다가 내레이션으로 "신라와 백제는 아직까지 신생국 당의 사정을 살피며 간을 보고 있었는데 승전국인 고구려만 조공을...!"이라는 식으로 거품을 무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평왕조와 백제본기 무왕조를 보면 이들도 비슷한 시기에 조공했다. 고구려가 서기 619년, 신라가 서기 621년에 처음으로 당에 조공을 바쳤으니 별 차이도 안 나고, 고수전쟁 당시 수를 돕겠다 약속해 놓고 실제로는 신라를 때리는 등 정말로 간을 본 나라인 백제는 624년이었다.

당항성과 관련한 부분도 괴이하기 그지없는데, 극중에서는 계백 휘하 일부 백제군의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고구려군이 주도해서 성을 공격했고 함락된 이후 잠시 고구려가 영유하다가 김유신의 공격으로 함락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보장왕조에는 당항성에 대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고, 백제본기 의자왕조에는 백제군이 공격했으나 신라가 당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철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즉 고구려군이 공격을 주도는커녕 참전했다고 볼 근거조차 없으며[46], 성이 함락되었던 것도 아니다[47]. 원래 백제의 성이었다가 장수왕이 점령한 사실은 까먹었는지 '원래 우리 고구려의 땅이었으니 원 주인이 되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온사문과 그 말에 동조하고 앉아있는 계백의 모습에 이르면 웃음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조의들과 연수정 휘하 낭자군들도 기괴한 게, 조의들은 싸움을 잘한다면서 정작 당나라군 알보병에게 툭하면 창 맞아 죽는 장면이 허다할뿐더러[48], 조의와 낭자군은 소수라면서 끝도 없이 공급되는지 끝도 없이 나와서 끝도 없이 죽는다. 낭자군은 마치 수십 명처럼 묘사했다가, 최후에 당태종 항복 직전에 고작 몇 명밖에 안됐다는게 밝혀졌다.[49] 그리고 낭자군들은 무식하게 자기들 대장이 죽었다고 원거리에서 궁병한테 돌격했다가 죄다 화살에 맞아 전멸한다.

6화에선 온군(온달의 아들)에게 "경의 아버지는 나의 처남이고 경은 나의 조카가 된다."고 하였다. 평강공주는 영양왕의 여동생이므로 온달은 매제가 된다. 작가씩이나 돼서 한국인의 가족관계 용어조차도 혼동했다는 소리가 된다. 이것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8촌을 4촌의 4촌[50]이라고 했을 만큼 한국 드라마에서 의외로 자주 보이는 실수이기는 하지만.[51]

초창기에는 조정에서 회의를 할 때, 장군들도 관복을 입었으나 갈수록 장군들이 궁궐 안에서도 갑옷을 입고 평상시에도 입고 다닌다. 평상시에 갑옷을 입는 거야 한국 사극에서도 흔한 일이지만, 초창기 조정에서 문무대신들이 관복만 입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 실제 역사에서도 공포정치를 행한 권신들을 기록할 때나 조정에서도 칼을 차고 갑옷을 입었다고 기록할 정도로 거의 금기시되었다.

그리고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하고 정권을 잡은 것은 비교적 잘 알려진 사실이나 드라마에서 영류왕은 연개소문이 보는 앞에서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고 연개소문은 오히려 이를 말리려 했던 것도 압권.[52] 내레이션은 이를 '연개소문을 증오하고 두려워하던 중국 사서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살펴서 다시 음미해야할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는 선택적 미화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데, 정작 작가는 1부의 수양제에 대해서는 작위적인 부분(독고황후가 사망한 뒤 가식적으로 통곡을 했다는 것 등의 기록)들은 그대로 묘사하면서, 심지어 기록에 전혀 없는 부분(진부인 살해)까지 창작해 내면서 수양제를 광인으로 묘사하였다.

30화에서는 내레이션으로 '그(양제)는 진시황과 더불어 중국 역사상 가장 잔인한 폭군으로 불리운다'라며 시황제와 수 양제를 나란히 폭군으로 지칭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으며, 51화에선 양제가 말하는 장면의 배경으로 쓰인 병풍에 마오쩌둥의 시가 적혀 있는 문제가 있었다.

중국의 복성에 대한 혼동도 있었다. 곡사정의 경우가 그런데, 그의 성은 곡사씨이지, 씨가 아니다. 그런데, 병부시랑 시절 곡사정을 호칭할 때 곡사시랑이라고 안하고 곡시랑이라고 하며 친구로 등장하는 양현감이 곡사정을 부를 때 이보게, 정이가 아닌 이보게, 사정이라고 부른다.[53]

10.1. 연도 오류

등장인물들의 나이대 설정이 죄다 엉망이다. 전체적으로 출생 년도가 10~20년 씩 올라가거나, 반대로 크게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캐릭터 나이 묘사에 일관성 조차 없다.

가령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은 모든 면에서 총체적 난국이다. 대걸중상이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이름[54]으로 나오는 데다가, 제1차 고구려-수 전쟁(598년 시작) 때 이미 일선에 활동하는 청년 장수로 묘사된다. 실제 역사상 사망 연도(697년 경)와 비교하면 너무 오래 산 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작중 설정을 존중하면 연개소문보다 최소한 10살 이상이어야 하는데, 중년의 대걸중상이 연개소문을 만났을 때 "우린 나이도 비슷하고."라는 대사를 해 설정붕괴까지 일어났다[55]. 또한 쿠데타 시점에서 대걸중상은 못해도 60대 이상의 노년이어야 하지만, 정작 드라마에서는 한창 일선에 활동하는 장년으로 묘사된다.

검모잠, 생해, 뇌음신 등 고구려 장수들에 대한 나이 묘사도 엉망이다. 2부 스토리가 622년 쯤 시작하는데, 다들 그 때부터 청년 장수로 등장한다. 때문에 이들은 고구려 멸망 시점에서 대부분 6~80대의 노인이 되어버린다. 특히 생해는 601년에 이미 상선 무사의 대장이었을 정도로 어느 정도 나이가 있었기에, 사망 시점에는 못해도 7~80대 노인이 된다. 그런데도 고구려 캐릭터들은 1차 고수전쟁이 끝날 때 까지 계속 장년의 장수들로 묘사된다. 대걸중상 건과 마찬가지로 이는 622년~642년의 약 20년 세월을 마치 단기간처럼 묘사한 저질 각본 때문이다.

연태수, 사비류 같은 욕살들에 대한 묘사도 엉망이다. 연태수, 사비류는 1차 고수 전쟁 당시에도 이미 원숙한 정치인으로 묘사되는데, 그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쿠데타 시점에도 여전히 원로 대신으로 있다.

신라 파트도 엉망진창이다. 진평왕 시기(626년 이전)에 묘사되었을 김춘추-문희 혼인 장면이 642년 연개소문 쿠데타 이후에 등장한다. 그것도 대야성 전투와 동시기에 벌어지기 때문에, 졸지에 김춘추는 대야성과 고타소를 걱정하는 동시에 결혼을 하느냐고 야단법석을 벌이는 주책 맞은 인간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설정에 의하면 문희는 590년 쯤 태어난 연개소문과 그리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 따라서 연개소문의 쿠데타 시점에서 문희는 50대 노인인데, 정작 드라마에서는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로 묘사된다.

생몰년도가 정확히 밝혀진 연남생에 대해서도 오류가 있다. 연남생을 억지로 이밀의 조카로 설정하다보니, 연남생은 633년 보다 한참 전에 태어난 꼴이 되고 말았다. 이밀이 618년에 사망하는데, 그 이후로 연개소문은 이밀의 여동생인 이화와 만난 적이 없기 때문. 게다가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시점에서 연남생은 이미 안재모가 연기하는 청년으로 나와야겠으나, 여전히 수련을 받고 있는 소년으로 묘사된다. 또한 연개소문의 쿠데타 이전에 태어난 것이 확실한 연남산, 연남건도 실제 출생년도 보다 꽤 늦게 태어난 것으로 묘사된다.

11. 지나친 삼국지연의 차용

태조 왕건이 지나친 삼국지연의 차용을 보였던 것처럼, 이 드라마에서도 삼국지연의를 대놓고 차용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가령 눈에 화살을 맞은 이세민은 화살과 함께 뽑힌 눈알을 씹으며[56] 1차 고수전쟁에선 적벽대전 제갈량처럼 조의들이 허수아비를 이용해 수나라 군이 쏘는 화살을 모으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연태조는 적벽대전의 신풍을 불러일으킨다. 심지어 연태수가 연태조의 모습을 제갈공명에 비유하는 장면도 있다.

유동근이 연기한 연개소문이 화살 맞은 상처를 치료받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은 관우가 팔을 치료 받았다는 기록을 대놓고 차용했다. 연개소문과 같이 장기를 두던 걸걸중상은 이에 대해 삼국지의 관우를 언급하기까지 한다[57].

613년에 출전할 때 우문술이 관을 챙겨간 부분은 연의의 방덕을 떠올리게 한다.

수나라 태자 양용과 아우 양광의 대화 장면에서도 양용이 머리에 큰 뿔이 나는 꿈을 꾸었다고 대화나눈 부분은 촉장 위연의 내용을 차용했다.

양제가 고구려 2차정벌 때 양현감의 반란때문에 본국으로 복귀하고자 배를 타고 돌아갈 때 우문화급이 어거지로 욱여타려는 병사들의 손을 자른 장면은 후한의 헌제가 수로를 통해 안읍으로 피신할 당시 호위하던 도적 이락이 창으로 배에 달라붙은 관리들의 손가락을 자른 내용을 차용했다. (정사는 주체가 동승이지만 연의에선 이락)

2차 고수전쟁에서 내호아가 평양성에서 고건무, 고승에게 패퇴하고 물가에서 도망치는 장면(갑옷을 벗어던지고 도망치는 장면)은 연의의 조조가 마초에게 패퇴 중 수염을 자르고, 붉은 망토를 벗어던지고 도망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90화에서 당 태종이 계관산으로 패퇴 중 식사할 때 "하늘은 어찌하여 날 낳으시고 또 연개소문을 낳으셨는가?" 라고 한탄하는 대사는 연의의 주유가 형주에서 후퇴하던 중 죽기 직전 대사를 그대로 반영했다.

동북공정에 대항하여 고구려의 역사를 그려내는 것을 표방한 드라마가, 정작 중국의 고전소설을 대놓고 차용한 것에 대해서 당연히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고구려인들의 삼국지 언급은 드라마의 분위기와도 전혀 맞지 않은데, 작중 고구려는 중국을 서토로, 한족을 서토 오랑캐라고 경멸한다. 고구려인들이 오랑캐의 특정 역사를 마치 상식처럼 여기는 꼴이 되는 것이다.

12. 주인공과 서브 주인공의 관계

작품에서 주역이 페이크 주인공 취급받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진주인공 취급 받는 신 스틸러라고 해도, 그런 캐릭터들은 주역과 직접적인 대립 관계이거나 못해도 주변인 정도는 된다. 당연히 메인 플롯에 관련이 있는 캐릭터에게 비중을 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인공에게 모자란 부분을 신 스틸러가 보완을 하거나 아예 서브 주인공이 작품을 하드캐리를 하더라도, 시청자들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파트를 완전 무시할 수는 없다. 가령 같은 작가가 쓴 태조 왕건만 해도, 시청자들은 궁예를 전반부 진주인공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태조 왕건 전반부 스토리에서 왕건 이야기를 완전히 배제한다면, 메인 플롯은 물론 궁예의 개인 이야기조차 제대로 이해 할 수 없게 된다.[58][59]

하지만 연개소문은 다른 작품들과 달리, 주인공과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 캐릭터가 서브 주인공을 맡았다. 양제에게 청년 연개소문은 그저 양소의 빈소에서 만난 엑스트라에 지나지 않으며, 연개소문에게도 양제는 중원을 망가뜨리는 폭군 내지는 주군인 이밀의 적 그 이상이 되지 않는다.[60] 즉, 주인공과 서브 주인공의 관계가 지나가는 엑스트라와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 수양제 파트와 연개소문 파트는 사실상 배경만 공유할 뿐인 별개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수양제 파트는 연개소문을 완전히 떼어버려도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으며[61] 연개소문 파트도 수양제 파트까지 일일이 챙겨볼 것 없이 "고구려 정벌에 미쳐서 수나라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황제가 있다" 정도만 알면 된다. 그런데 수양제 파트가 인기를 끌다보니 작중 수나라 비중이 늘어났고, 때문에 드라마 제목은 '연개소문'인데도 정작 연개소문은 비중이 없거나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배우가 유동근으로 교체된 2부가 시작되는 55회부터 봐도 극중 연개소문의 서사를 이해하는 데에 큰 지장이 없다.

13. 별 의미가 없는 1부 전개

연개소문은 작가의 전작인 태조 왕건, 야인시대처럼 1/2부로 나뉘어져 있고, 특히 전반부가 주인공의 유년기~청년기를 묘사한다는 면에서 야인시대와 유사하다. 하지만 연개소문 1부는 주인공의 캐릭터성을 구축하기는 커녕, 주인공의 비중을 내팽개치고 오직 고수전쟁과 수나라에만 집중했다. 이는 그나마 시청률을 유지했을지는 몰라도 극중 전개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그 1부의 내용은 이환경 작가의 전작인 태조 왕건 야인시대의 1부 장점은 열화되고 단점만 악화된 작품으로, 설정 충돌과 캐릭터 붕괴가 다분한 쪽대본에 촉박한 일정의 촬영, 그리고 선택과 집중에 실패한 전개 등으로 인해 망작이 되고 말았다. 특히나 연개소문의 전반부는 주인공의 소년~청년기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야인시대 1부와 유사했는데, 정작 야인시대 1부의 김두한이 연관되어 있던 장점[62]과는 정 반대의 단점[63]만 보여주었다. 2부는 그나마 주인공 배우가 바뀌면서 연개소문의 비중과 연기력이 일신하긴 하지만, 그 내용 역시 태조 왕건의 열화판[64]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 사이 드라마는 수나라, 당나라 군대가 고구려 장수들의 칼질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기발한 계략과 매복 공격(실상은 멍청한 적군이 대놓고 함정에 들어서고, 야간 기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한심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에 대군을 잃은 중국 장수들이 울부짖거나 통곡하는 장면을 통해, 고구려와 연개소문의 위대함을 묘사하고자 했다. 하지만 고구려에 대한 처참하기 그지 없는 초,후반부 서사와 캐릭터 묘사 탓에, 민족주의 열풍이 불던 당시에도 고구려 파트는 OME 취급 당하며 오히려 중국사(수,당) 파트가 본편 취급 받았었다.

일단 1부는 몇몇 요소(연남생이 이밀의 조카, 연개소문과 생해는 의형제 관계, 연개소문은 김유신, 이세민과 면식이 있음)를 제외하고는 2부 전개에 크게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연남생의 출생의 비밀은 최후반부 날림 전개로 대충 소모되었고 생해가 연개소문의 동생임을 내세우거나 강조하는 장면은 전혀 없으며, 연개소문과 김유신, 이세민의 관계 역시 2부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65]. 태조 왕건, 야인시대 2부가 전반부에서 쌓은 인간 관계를 이용해 아자개의 귀순이나 김두한- 정진영의 대립 등 굵직한 이야기를 바로 시작했던 것과는 반대로, 연개소문 2부는 주인공 연개소문이 고구려 인물들과 관계를 맺는 느릿한 전개를 또 다시 진행해야만 했다[66].

또한 이 드라마는 연개소문이 주인공이기에 연개소문이 활약한 고당전쟁을 더 퀄리티 있게 만들었어야 했다. 허나 1부 수나라와의 전쟁때 예산을 많이 소비한 나머지 2부 고당전쟁들은 수나라때 전투씬을 돌려 쓸 정도로 초라해졌고, 특히나 연개소문이 제일 크게 활약한 2차 고당전쟁은 이 드라마 전쟁씬 중에서 제일 허접하게 만들어져서 연개소문의 위상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연개소문이 아무것도 못한 제3차 고-당전쟁 마무리도 요상하긴 마찬가지.

14. 캐릭터 붕괴와 몰개성이 난무하는 고구려 파트

고구려 파트에 해당되는 문제점. 수트콤 소리를 들을 정도로 등장 인물들의 개성이 넘쳤던 수나라 파트, 적어도 캐릭터 간의 케미가 있던 당나라 파트와는 정반대로, 고구려 파트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몰개성함과 캐릭터 붕괴를 보였다.

고건무, 연태수 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한 상당수의 등장인물들이 전형적인 무장, 전형적인 간신배, 전형적인 찌질이, 전형적인 나약한 귀족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생해 정도나 약간 의형제 티를 낼 뿐이지, 뇌음신과 검모잠, 고돌발 등 연개소문의 의형제들은 연개소문의 충실한 부하 A 수준으로 행동할 뿐이라서 주인공과 의형제를 맺은 의미가 없다. 대걸중상 역시 최후반부로 가면 비중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등장 이유도, 연개소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이유도 알 수 없다. 양만춘, 온사문 같은 무장들도 그저 의무에 충실한 군인으로 묘사될 뿐, 캐릭터만의 개성이나 특징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양만춘에 대해서는 드라마의 연출과 설정이 서로 충돌한다. 작중 인물들이 양만춘을 연개소문에 버금가는 거물로 높이 평가하는데, 정작 양만춘이 대활약을 해야 하는 안시성 전투에서는 연개소문이 안시성 내부로 들어가 비중을 다 잡아먹는다. 때문에 양만춘은 그 평가가 무색하게도 그저 활 잘 쏘는 똑똑한 장수 A로 전락하고 말았다. 심지어 신궁 묘사마저도 이세민을 애꾸로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 연개소문과 대비되는 캐릭터 특징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양만춘이 활 잘쏘는 동안 연개소문은 아예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거나, 검을 던져서 적군을 여러 명 씩 죽이는 초능력을 쓰고 있다.

고구려 군부는 상무정신과 호전성이 투철하다 못해 무개념 전쟁광으로 묘사된다. 중국 사신의 목을 베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개 장수가 서토 오랑캐 포로도 아니고 타국의 축하 사절단에게 만세 소리가 작다며 호통치는 갑질을 부리지 않나,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선제 공격과 서토 정벌을 주장하지 않나, 영양왕이 전권을 맡긴 태자가 서토정벌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군부의 수장이 바락바락 대드는 등, 묘사가 상당히 극단적이다.

검모잠에 대한 묘사는 똥별과 맹장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92화인데, 작중 고구려 군부는 김춘추를 위험인물로 간주하였고, 때문에 고죽리는 검모잠에게 김춘추(당시 사신으로 당나라에 갔다가 해로를 통해 귀환하고 있었다.)를 처단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하지만 검모잠은 수색 대상인 신라함선이 대놓고 수상함을 드러내는데도(전혀 선원생활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선원이 있고, 아예 일부 선원들이 숨겨둔 무기를 가져다 고구려 수군을 공격한다), 자기가 김춘추라고 주장하는 온군해[67]가 자살해버리자 남은 선원들은 배나 모는 자들이 뭔 죄가 있냐며 그냥 보내버린다. 대놓고 수상한 짓거리를 하는 선원들이 고구려 병사들을 살상했음에도, 검모잠은 이 위험분자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잡아다 심문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강이식과 을지문덕 장군은 유사역사학과 서토 정벌에 함몰된 각본으로 인해 캐릭터 붕괴까지 일으킨다. 작중 을지문덕은 화전양면전술을 구사하며 적의 약점(보급의 어려움, 수뇌부의 갈등으로 인한 작전 지연 등)을 극대화하는 지장인데, 정작 자국의 정책에 대해선 보급, 작전, 통치에 대한 계획도 없이 무작정 서토정벌을 외치는 전쟁광 꼰대로 묘사된다[68]. 2차 고수전쟁 직후, '진작에 수나라로 쳐들어갔다면 지금 쯤 장안에 도달했을 것이다' 라고 을지문덕이 고건무에게 일갈하는 부분을 보자면, 이 캐릭터가 과연 명장인지 아니면 적과 전쟁을 가볍게 여기는 똥별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 이는 작중 묘사와도 비교해봐도 말이 안되는데, 고구려는 그냥 수나라를 싸워 이긴 것이 아니라 평원왕 시절부터 중원의 침공을 철저히 대비해 왔다는 언급이 있고, 심지어 고구려 정벌에 미쳐서 국정을 말아먹던 암군 수양제 마저도 군대 보급 만큼은 철저하게 신경 쓰는 묘사가 있다. 그런데 정작 고구려의 명장들이라는 분들은 중국을 호구로 보며 무작정 서토 정벌을 외쳐댄다.

심지어 각본의 엉성함으로 인해 졸지에 연개소문과 고구려 군부가 2차 고수전쟁 당시 수나라 군대처럼 바보짓을 하는 묘사까지 나온다. 우중문, 우문술, 유사룡이 서로 삽질한 것은 그나마 지휘관 간의 알력다툼, 지휘체계의 분열 등 비교적 현실적인 이유라도 있었지, 고구려 군부가 삽질하는 것은 그냥 송양지인인 것이 특징. 가령 안시성 전투 직후 연개소문은 이세민을 추격하여 만리장성까지 넘어간다. 적국 영토 깊숙이 들어선 만큼 속전속결로 이세민을 생포하던가 처단해야겠으나, 연개소문은 의식까지 치르면서 항복을 받는답시고 쓸데없이 시간을 끌었다. 결국 때 맞춰 당나라 태자가 원군을 이끌고 도착하였기에 고구려는 이세민을 사로잡는데 실패하고, 오히려 연수정과 낭자군만 잃는 피해를 입었다. 드라마는 이를 연개소문의 서토 정벌 및 당나라의 대굴욕으로 포장하지만, 실상은 고구려가 얻은 실익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국력만 잡아먹는 고려성 몇 개만 생겼을 뿐.

그 외 고승이나 뇌음신처럼 신라 전선에서 활동한 것 외에는 별다른 기록도 없는 인물들이 졸지에 낙하산 인사 내지는 간신배로 묘사되었다. 여기서 작가가 그나마 있는 고구려 기록마저도 전혀 활용을 못했음이 드러나는데, 작중 북한산성 전투는 뇌음신, 생해가 아닌, 연남건, 연남산 형제가 지휘한 것으로 묘사된다. 뇌음신이 생해와 함께 한 적이 없으니 그가 생해를 질투하고 꺼리는 묘사가 나올리 없었고, 때문에 막판에 뇌음신이 생해를 질투하여 간신으로 전락하는 것이 뜬금없는 전개가 되고 말았다. 부족한 사료와 작가 필력의 한계, 그리고 비중 배분에 실패한 전개에 의해 발생한 총체적 난국인 셈.

14.1. 위선자 주인공



유동근이 연기한 연개소문에 대해서 드라마는 마치 신이 내려준 영웅으로 묘사하지만, 처참한 각본 때문에 그 묘사가 오락가락한다. 가령 61회에서 영류왕 연개소문이 설전을 벌일 때, 영류왕이 국력 비축과 민생 안정을 근거로 당나라와의 화친을 합리화하자, 연개소문은 민생보다도 국가의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는 전체주의적인 주장을 한다. 이때 연개소문은 당장은 백성들이 풍년가를 부를지는 몰라도, 나중에 저 서토 오랑캐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 때는 통한의 피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발언한다. 정작 마지막회인 100회에서 고구려가 멸망했을 때, 연개소문은 이적 앞에서 통한의 피눈물을 흘릴 백성들을 위해 슬퍼하기는 커녕, 역사는 도는 것이고 이 땅에 새로운 고구려가 세워질 것이라고 정신승리를 하며 퇴장해 삼족오와 함께 저승으로 도망가 버린다. 대조영 연개소문이 막판 사망하기 전 조바심으로 당나라 정벌을 주장하고 막나가 양만춘과 대립하긴 했으나, 그래도 화해하고 대조영 앞에서 그동안의 인연을 말하며 대모달(양만춘)을 부탁하고 자신이 키운 아들로 인정 이후 쓸쓸히 사망하는 것과 대조적.

안시성 전투에서 성이 고립당하고 식량이 바닥나자,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백성들은 결국 죽은 자식을 뜯어먹는 지경에 이른다. 이를 목격한 술탈이 보고를 올리지만, 연개소문은 서토 오랑캐에게 굴종하는 것보다는 인육을 씹는게 더 낫다는 식의 소리를 하며 이를 일축해 버린다. 이렇게 연개소문은 백성들의 안위보다는 국가 자존심을 우선시 하는 인물인데, 정작 94회에서 장수들이 자신을 환영할 때, 도성 밖까지 나와 마중 나올 여가가 있다면 백성들 밭고랑이나 하나 더 갈아주라고 일갈한다. 졸지에 연개소문은 남 일갈할 때는 백성을 팔아먹지만, 정작 최종화때 사망하는 자신은 고구려의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 위선자가 되고 말았다.

14.2. 무능한 2부 고구려 수뇌부

연개소문과 그의 측근들은 나중에 영류왕 및 연태수를 위시한 고구려의 반전파 욕살들을 당나라에 굴복한 매국노들이라고 맹비난하며, 정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강경하게 서토정벌과 선제공격을 외치는 것과는 정 반대로, 정작 1차 고당전쟁 때 고구려의 지휘부는 1부 고수전쟁 당시 고건무와 욕살들보다 못한 수준으로 묘사 되었다.

그렇게 당 태종(이세민)을 향해 쳐들어 올 테면 와 보라고 큰 소리를 떵떵 치던 연개소문과 고구려는, 1차 전쟁에 당나라의 군사들이 쳐들어왔을 때 현도성, 개모성, 비사성, 백암성, 요동성을 모조리 내어준다. 정작 성을 정말 잘 지킨 건 1부 고수전쟁 당시 고건무 지휘부였다.[69] 이는 고수전쟁의 지휘부였던 장수들과 욕살들은 대부분 실전 경험이 풍부한 지휘관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태대형에서 막리지로 진급한 연태수는 고건무와 여러 전장을 종군한 베테랑이었고, 고승 또한 노련한 장수였다.

그에 비해 연개소문과 그의 주변 고구려군 지휘관들은 고정의나 대걸중상, 온사문, 양만춘을 제외하고는 묘사상 검모잠, 뇌음신, 고돌발과 같은 초급 장수들이었다. 당연히 이들은 연개소문의 기대에 비해 하나같이 실전경험도 부족하고 용병술에도 초보였다. 게다가 그나마의 인선 조차 각 장수들의 단점을 전혀 보완하지를 못했다.

예를 들면
  • 검모잠은 비사성 방어를 충실히 해야 한다는 연수정과 고구려의 노련한 수군 장수들의 말을 무시하였고, 결국 장량이 이끄는 당의 수군에게 비사성을 내준다.
  • 고돌발의 경우 자신을 과신하다가 이세적에게 개모성을 내준다.[70]
  • 뇌음신은 현도성을 이세적에게 내줬다. 다만 현도성은 크기도 작은데다가 병력도 적었다는 점에서 그나마 참작이 된다.
  • 백암성의 손대음은 주변에서 평이 별로 좋지 못한 인물임에 불구하고, 고구려 수뇌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71] 요동성 함락 후 결국 손대음은 배신한다.
  • 왕족인 고연수 고혜진은 그 유명한 주필산 전투의 일등 공신이 되시겠다. 당시 고연수와 고혜진은 15만이란 대군을 맡고 있었고 이는 당에 큰 위협이였다. 그래서 이세민은 그 15만 대군을 와해시킬 교병계를 계획한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연개소문은 이세민의 영악함을 고연수와 고혜진에게 누누히 경고했고, 고정의와 남생 또한 이세민을 조심하자고 했다. 하지만 자만심과 공에 눈이 먼 두 왕족은, 대기하고 있다가 당군을 공격하라는 연개소문의 지시를 씹고 이세민의 교병계에 걸려들어 15만 대군이 그 자리에서 제대로 전투 한번 못 해보고 포로가 됐다. 그나마 고연수는 그 자리에서 왕족의 명예를 지킨다고 자결했으나, 고혜진은 당에 항복한다.
  • (2차 고당전쟁)당나라가 다른 장수들의 반격으로 큰 피해를 본 것과 달리 전혀 경험이 없는 연남건, 연남산 형제가 신라 전선을 맡았다. 게다가 두 형제를 보좌하는 무관도 걸걸중상 같은 백전노장이나 연개소문의 의형제들이 아닌, 선도해, 신성 같은 전혀 믿을 수 없는 인물들이었다. 결국 선도해, 신성의 이간질+신라 전선을 후방으로만 여기는 근시안적 발상+ 형에 대한 열등감 등으로 인해 두 형제는 무리하게 북한산성을 공격, 고구려군은 아무런 성과 없이 큰 피해만 입고 말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1차적 원인은 연개소문의 한심한 용병술 묘사에 있다. 해전도 모르고 경험도 초짜인 검모잠을 비사성같은 해상 요충지의 최고 지휘관으로 임명하여 비사성이 함락되게 한다. 마찬가지로 초짜 장수인 고돌발을 개모성에 배치하여 3만이라는 성 내 병력으로 6만의 적에게 개모성이 함락당하게 했다.[72] 그리고 적이 우회하여 현도성으로 갑자기 들이닥칠 것을 예상하지도 못해서 현도성도 요절이 나게 만든다. 적을 가벼이 보고 공에 눈이 멀어 있는 고연수와 고혜진에게 잔머리의 귀신인 당 태종을 상대하도록 한 것 또한 제정신이 아니다 싶을 정도다. 손대음 같은 나약하고 자신의 부귀영화만 탐하며 옛 고구려 욕살들과 정치적으로 친했던 인물에게 백암성처럼 중요한 곳을 지키게 해서 결과적으로는 백암성은 물론 요동성까지 내주게 만들기도 했다. 작중에서는 신이 내린 영웅호걸인 것처럼 묘사되는데다 그의 최대 숙적으로 청년 시절에 천책상장이라 불렸던 당 태종이 높이 평가한 인물이 바로 연개소문인데, 그런 그가 2부에서 보여주는 용병술과 전략은 안시성 전투이전까지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숙청되어 퇴장한 영류왕과 욕살들이 참으로 불쌍해 보일 지경이다.

15. 기타

등장 캐릭터들에 대한 묘사와 평가는 작가의 입맛대로 오락가락하기가 그지 없다. 가령 김춘추는 복수에 눈이 멀어 외세를 끌어들이는 민족 배반자로서, 타국에게 질타당하고 능욕당하는 것이 마땅한 한심한 인물로 그려진다[73]. 그러나 명백한 매국노인 연남생, 연정토는 미화되면서 그 배신 행위 역시 대충 묘사되고 넘어간다. 또한 타 문단에 언급된 대로 고승, 뇌음신 같이 신라 전선에 활동한 것 외에는 아무 기록도 없던 장수들은 졸지에 간신배가 되었다. 비록 형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키긴 했으나 끝까지 당나라에 맞서 싸우다 끌려가는 최후를 맞이한 연남건은 욕심만 많은 바보에, 연남생을 서토의 오랑캐 피가 있다고 적대시 하여 형제 갈등 일으키고 아버지의 측근을 살해하는 패륜아로 묘사해 버렸다.

드라마가 중국과의 외교를 무조건 굴욕으로 묘사한 탓에, 오히려 영양왕의 업적이 크게 축소되었다. 드라마는 '2차 전쟁 이전에 영양왕이 노환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묘사한다. 때문에 수나라와의 전투가 치열했던 2~4차 전쟁에서는 정작 영양왕이 한 일이 없고 오히려 그 업적들이 죄다 영류왕의 것이 되었다.

내레이션은 단순히 당시 기록과 배경을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서, 작가가 멋대로 해석한 역사관을 시청자에게 주입한다. 가령 11회에서 1차 고수전쟁에서 승리한 영양왕이 경관을 쌓고 신집 편찬을 명령했음이 언급되는데, 내레이션은 이를 영양왕의 중원수복(서토정벌)에 대한 집념이라고 평가한다.

[1] 이걸 본 시청자들은 삼국지연의 제갈량 적벽대전에서 동남풍 부르는 장면 패러디라고 깠다. 작가 이환경이 태조 왕건에서 도원결의를 패러디한 전례도 있어서 확실하다. 자치통감을 완역한 권중달 교수까지 끌고 와 쉴드를 쳤을 정도로 제작진도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2] 한편 같은 시기 대조영에서 이 짓을 똑같이 해서 보는 이들을 식겁하게 만들었다. 대조영 항목 참조. [3] 애당초 실제 역사에서 연개소문은 그냥 동부가의 귀족으로 상단 일을 할 리가 없으며 전성기라면 모를까, 7세기 중엽의 신라를 중국의 상단이 방문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연개소문이 중국에서 살았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4] 미실은 3년 후에 방영한 모 신라 사극에서 역대급의 캐릭터로 등장해서 이제는 전국민이 아는 이름이 되었지만, 이때는 매우 생소한 인물이었다. [5] 이 때 신채호의 사서에서 언급된 연개소문의 순우리말 아명이 언급된다. 연개소문의 아버지가 50살이 돼서 본 자식이라고 '갓쉰동'이란 아명이 있었다고. 갓쉰동전의 내용으로 이 스토리는 이전에 방영되었던 삼국기에서도 나왔던 내용이다. 덤으로 걸걸중상이 대걸중상으로 표현되면서 고구려에서 장군 노릇하고 있는 것도 삼국기의 설정이다. 역사성, 고증, 전개를 비롯해 연출과 각본마저도 대조영과 연개소문은 매우 유사하다. [6] 이 이야기는 유사역사학에서 연개소문이 일본에 건너가 덴무 덴노가 되고, 연개소문과 보희의 아들인 문무왕 몬무 덴노가 된다는 설에서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연출되면 엄청난 반발이 있기에 약간 어레인지 순화했을 뿐이다. [7] 실제로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오랑캐 취급했다. [8]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바치는 조공은 조공무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종의 국가간 무역이나 다름이 없었다. 천하의 주인이라는 명분과 조공품을 가져다주면, 중국에서는 사례품을 명목으로 조공품 이상의 문물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또, 중국에 바치는 조공의 양은 곧 그 나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요소였다. 즉, 조공을 많이 바치면 바칠수록 중국으로부터 받아오는 문물의 양도 많았으며, 동시에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 중에서 국력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중국이 인정해준다는 의미기도 했다. [9] 다만, 고조선과 고구려가 모두 맥족 국가이고 고구려 인물 몇몇이 자신의 묘지에 조선인이라고 적거나 고조선에 도래했다던 기자(다만, 기자가 고조선의 지배자를 중국인 기자로 헷갈렸을 수도 있다.)에게 제사를 지녔다는 기록, 가한신을 섬겼다는 기록(단군이 텡그리 신앙과 관련이 있고, 가한이 지배하던 돌궐 등의 국가가 텡그리 신앙을 가졌다는 걸 보면 단군조선과 문화적으로 관련이 있었을 수는 있다. 문제는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이라는 것.) 등을 보면 고구려 말기 쯔음에 고구려인 일부가 조선과의 연관성을 인식했을 수도 있다. [10] 61화에서 연개소문이 영류왕 앞에서 부른 것을 시작으로 이후 강이식과 양만춘, 온사문이 연개소문과 같이 불렀다. 그리고 강이식이 죽을 때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얘기한다. [11] 사료 원문은 다음과 같다. 三月 蘇文告王曰 三敎譬如鼎足 闕一不可 今儒釋並興 而道敎未盛 非所謂備天下之道術者也 伏請遣使於唐 求道敎以訓國人 大王深然之 奉表陳請 太宗遣道士叔達等八人 兼賜老子道德經 王喜 取僧寺館之(3월, 연개소문이 왕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삼교{유교, 불교, 도교}는 솥의 다리와 같아 하나라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지금 유교와 불교는 함께 흥하지만 도교는 아직 성하지 않으므로 천하의 도술을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엎드려 청하건대 당나라에 사절을 보내어, 도교를 구해 나라 사람들을 다스리소서.’라 하였다. 대왕이 참으로 그러하다고 여기고 표문을 올려 간곡히 청하였다. 태종이 도사 숙달 등 여덟 명을 보내고, 더불어 노자 도덕경을 하사하였다. 왕이 기뻐하여 불교 사찰을 그들의 숙소로 택해 주었다.) [12] 이러한 사실은 나중에 같은 시대를 다룬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에 의해 언급되는데, 이 드라마와는 정반대로 반당을 외치면서도 당의 국교인 도교를 받아들인 고구려와 연개소문의 모순을 까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13] 이때 연개소문의 도교 우대와 불교 탄압으로 인해 불교계는 연개소문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서게 되었다. [14] 아마 단월드 등에서 유포한 주장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단월드는 연개소문 제작에 협찬을 한 단체다. [15] 원문은 다음과 같다. '右翊衛大將軍來護兒帥江, 淮水軍, 舳艫數百里. 浮海先進, 入自浿水, 去平壤六十里. 與高麗相遇, 進擊, 大破之. 護兒欲乘勝趣其城, 副總管周法尚止之, 請俟諸軍至俱進, 護兒不聽, 簡精甲四萬, 直造城下. 高麗伏兵於羅郭內空寺中, 出兵與護兒戰而偽敗. 護兒逐之入城, 縱兵俘掠, 無復部伍. 伏兵發, 護兒大敗. 僅而獲免, 士卒還者不過數千人. 高麗追至船所, 周法尚整陳待之, 高麗乃退. (우위위대장군 내호아가 수군을 지휘했는데, 배를 모으자 배의 앞부분에서 뒷부분까지가 수백 리 이어졌다. 바다에 떠서 먼저 나아가며 패수에 들어갔는데, 평양까지의 거리는 60리였다. 고구려군과 서로 마주쳐 진격하여 그들을 크게 물리쳤다. 내호아가 승기를 타서 평양성을 점령하고자 했는데, 부총관 주법상이 만류하며 군대가 모두 이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아가자 했지만 내호아가 듣지 않고 정예병 4만을 뽑아 평양성 아래까지 바로 이르렀다. 고구려가 외성 안쪽과 빈 사찰 안에 복병을 숨겨 두었다가 내호아와 맞서 싸워 거짓 패했다. 내호아가 그들을 쫓아 성 안으로 들어가서 병사들이 마음대로 포로를 잡고 약탈하게 하니 대오를 수습할 수 없었다. 복병이 일어나니 내호아가 크게 패했다. 그는 가까스로 포로가 되는 것을 면했지만, 돌아온 군사가 불과 수천 명이었다. 고구려군이 배를 정박시켜 둔 곳까지 쫓아왔으나 주법상이 진열을 정비하고 기다리니 이내 물러갔다.)' [16] 특히 52화에서 고건무가 이에 대해 정말 수나라에게 숙이는 것이 아닌, 그저 회군 명분을 제공하는 것 뿐이라며 이것도 나름대로 외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을지문덕은 끝까지 전쟁을 외치더니 급기야 고건무와 계급장(?) 떼고 한판 붙으려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17] 실제로는, 만리장성은 후진의 석경당이 연운16주를 요나라에 넘겨주기 전까지 단 한번도 뚫린적이 없는 요새였다. 흉노를 비롯한 외세도 만리장성을 돌아서 중원을 침략한 것이었으며, 만리장성을 넘어서 중원을 공격한 사례는 5대 10국 시대 이전에는 없다. [18] 의외로 드라마 태조 왕건은 국가 자존심이나 지도자의 욕망을 현실보다 우선시 하는 경우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였고, 그 끝은 모두 좋지 못하였다. 가령 기훤은 양길을 상대로 잠시 굽히기 싫다며 무리한 전쟁을 일으킬려다 부하에게 살해당했고, 궁예와 아지태는 허황된 북벌을 추구하다 국가 경제를 파탄내고 결국엔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견훤은 최승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패퇴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태조 왕건은 전쟁을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영웅담이긴 하지만, 한편으로 임금과 지휘관의 책임 역시 강조함으로서, 전쟁을 마냥 가볍게 묘사하지 않았다. [19] 오히려 아치에너미인 당태종 이세민이 필요할 때면 인력을 갈아넣긴 해도(특히 토산 완공을 이틀 내에 끝내라고 한 것), 위급한 상황에서는 수하들의 목숨을 챙기는 묘사가 있다. 정작 같은 시기의 연개소문은 조의사범 술탈에게 백성들이 인육을 먹는다는 보고를 받고도, 이를 술탈답지 않은 소리라 치부하며, 사람의 목숨보다도 민족의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는 전체주의적인 철학을 읊는다. [20] 사실, 충북 단양군의 제2종합세트장 공사가 수해로 늦어지고, 단양군이 예산을 제때 주지 않아 문경새재 세트장으로 가서 합판을 써야했다고 한다. 사전제작이 이루어지지 않은 드라마들의 문제점이 그대로 노출된 셈이며 이러한 제작 여건은 MBC도 예외는 아니어서 주몽 방영 당시 수십명의 군사들을 수천, 수만 명으로 둔갑해야 했고 태왕사신기 편집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뉴스데스크의 방영 시간을 억지로 늘리는 꼼수로 간신히 방영을 했다. 태왕사신기는 조금 불운한 게 상당 부분 사전제작이 이뤄진 드라마였으나 제작진의 교통사고와 출연진들의 부상 등으로 인해 촬영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배용준은 종영 후 한동안 목발에 의지할 정도였다. [21] 계백, 성충, 흥수 다 나온다! 이쯤이면 이미 연개소문이 아니라 오히려 예전 드라마 삼국기를 SBS에서 리메이크한 수준이다. [22] 심지어 이전에 태자 시절 문무왕이 저거 궁녀들 같다고 하는 대사도 어색함이 묻어나왔다. [23] 물론, 중국에는 비도술로 무쌍을 찍으며 추격하는 연개소문을 설인귀가 막아낸다는 내용의 전승이 있다. [24] 연개소문의 비도가 하늘을 날아 다닌다면서 무슨 괴물 보듯 하는 것도 비슷하다. [25] 이 장면도 삼천궁녀 추락 장면에 맞먹을 정도의 발CG를 자랑한다. 단검과 화살에 하얀 테가 드러나는 데다가 사운드의 무지막지한 부조화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26] 사실, 갑자기 삭는 건 작가의 전작 야인시대도 마찬가지였다. [27] 사실 이런 특성은 이환경 작가가 집필한 사극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야말로 고질적인데, 태조 왕건이나 제국의 아침, 야인시대, 그리고 후에 방영한 무신에서도 되풀이되었다. 매우 부자연스러운데도 이러는 이유는 작가의 집필 스타일에 있는데, 그가 술에 만취한 상태로 캐릭터의 대사와 동작, 억양, 감정 등을 연기하면 보조 작가가 그것을 보고 글로 쓴다고 한다. 이환경 문서 참고. [28] 96화에서는 연개소문이 죽리로부터 백제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멘붕하는 것 외엔 고구려 파트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29] 단지 대막리지 휘하 관료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한다. 작가의 전작인 태조 왕건 최승우와 비슷한 위치이긴 하지만, 견훤과 신검 일파의 갈등 구조와 관련하여 최승우는 연개소문의 고죽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서사가 구축된 상태에서 퇴장했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최승우는 견훤에게 예성강 공략전을 진언하며 신검에게 총사령관을 맡기라고 진언하고 참모로 종군하기도 했고, 금강에게 왕이 되려는 생각을 버리라고 직언한 적도 있으며, 견훤에게 차라리 신검 형제를 제거하라고 간한 적도 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잘 되어가지 않자 후백제의 멸망을 예견하며 일생을 정리하는 장면도 나온다. 반면 고죽리는 연개소문 옆에 있으면서 이렇다 할 만한 장면이 전혀 없다. 덧붙여 최승우는 극 초반부터 후백제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로 줄곧 비중이 높았는데, 고죽리는 극 중반부터 나올 뿐 아니라 연개소문 옆에 있으면서 당과의 전쟁을 비롯해 중요한 사건에서 맡은 역할이 없다시피하다. 굳이 들라면 대당전쟁 당시 설연타를 설득해 당의 배후를 치게 한 정도? 이렇다 보니 오랫동안 최승우를 시기하고 미워했던 능환이 그의 최후를 지켜본 다음 돌아서서 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은 인상적인 장면도 당연히 연출될 수 없었다. [30] 정작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서기 668년이라 705년만에 망했다. 아마 고구려의 건국 년도를 기원전 1~200년대로 보는 학설을 받아들인 모양인데, 항목에도 나오듯 그닥 지지받지는 못하고 있다. [31] 뇌음신, 선도해, 신성. [32] 조의 사범 술탈이 조의들에게 "주군께 예물을 올리거라!"라고 명령하는데 그 예물이 바로 세 사람의 목이다(잘린 머리의 뒷 부분만 화면에 나왔다). 연남건 연남산의 목도 베려 했으나 한 명은 당나라에 포로로 잡히고, 다른 한 명은 보장왕과 함께 이미 당나라에 항복해 버렸다. [33] 태조 왕건도 주인공의 유년기를 다루긴 했지만, 기간이 매우 짧았다. [34] 특히 청년 시절의 김흠순을 연기한 이켠이 가장 심했고, 반대로 양만춘과 온사문, 양량 정도가 양호했다. [35] 사실, 극중에서 연개소문이 소드마스터급의 실력을 얻은 건 조의들에게 훈련을 받은 이후, 그러니까 배우가 유동근으로 교체된 시점(55화)부터이기 때문에 청년 시절엔 당연히 1화만큼의 포스는 없는 것. 어릴 때는 고구려에서 조의 수련을 받고 훗날 신라에서 지내던 시절에는 화랑 수련까지 받은 터라 무예 솜씨가 어느 정도 있기는 했지만 고수전쟁 당시 고구려에서 만난 조의 사범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 것을 봐도 2부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부족해 보이긴 한다. [36] 결국, 그 해에 열린 SBS 연기대상에서 유동근은 무관에 그친 반면, 김갑수는 이 작품으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37] 그 외에 신라 김춘추의 젊은 시절 김유신 집안과의 인척 관계 및 의자왕 부분도 마찬가지. [38] 물론, 수나라 말기에만 오류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1차 고구려 원정 당시 수 양제가 고구려 공격에 협력하겠노라는 백제의 사신을 접견하는 장면에서 극중의 양제는 도움 따위 필요 없다며 내보내고는 형편 없는 족속들이라며 혀를 차는데,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조와 구, 신당서 백제전에는 양제가 크게 반겼을 뿐만 아니라 사절까지 파견하여 작전을 논의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극중에서는 선화부인 진씨가 조국인 진나라의 복수를 하겠다며 양제가 즉위하는 데 크게 관여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그런 거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녀는 극중에서 수 양제에게 훈계를 하다가 처형당하는데, 실제로는 병사하여 양제를 크게 슬프게 했다. 복수 운운이야 각색을 했다 할 수 있지만, 병사한 사람을 화살받이로 만든 것은 꼼짝없는 고증 오류였다. [39] 공자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다만 공자는 자신의 뜻을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제후를 평생 만나지 못한 반면, 이쪽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금방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40] 이 시기를 배경으로한 홍콩 TVB의 퓨전 무협 사극 '대운하'에서는 적양이 이밀에 의해 암살당하고, 주인공 규염객이 이밀의 계략에 의해 적양의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41] 실제 역사에서 드라마의 적양 포지션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왕백당이다. 왕백당은 군주를 찾아 떠돌던 이밀을 적양에게 소개시켜 주었으며 이밀이 적양을 죽인 뒤에도 그와 함께했고 후에 이밀이 당에 반란을 일으키려 할 때도 그를 따랐다가 같이 잡혀서 죽는다. [42] 홍콩 TVB의 퓨전 무협 사극 '대운하'에서는 전형적인 악역, 천하의 개쌍놈으로 나오며 마지막회에서는 돌궐까지 끌어들여 당나라를 없애려 하였으나 주인공 규염객에 의해 그 음모가 저지되고 결국 규염객의 손에 죽는다. [43] 즉위식 장면이 편집된 걸로 이해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끝까지 '폐하'가 아닌 '장군' 소리를 듣는다. 다만 '극중에서 황제 즉위를 안 했다'고 하면 어설프지 않고 납득이 가기는 하지만, 이렇게 되면 실제 역사와 다르게 되니 역사 왜곡이 된다. [44] 극중에서는 양제의 손자를 잠시 앉혔다가 시해한 뒤 황제를 자칭하고 이밀의 군대와 교전을 벌이는데, 실제로는 이밀의 군대와 먼저 교전을 벌이다가 그게 잘 안 풀리자 양제의 손자를 시해한 뒤 황제를 칭했다. [45] 한 마디로 조공이 아니고서는 중국과 공식적인 외교를 할 길이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또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장수왕편을 보면 조공을 바친 기사가 수없이 나온다. [46] 이 무렵 백제와 고구려가 우호관계였으므로 합동작전을 벌였을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수는 없으나, 역으로 연합군이 결성되었다는 근거도 없다. 신라본기 선덕왕조에 "(백제가) 고구려와 모의했다(又與高句麗謀欲取党項城)" 라고 되어 있기는 한데 이 모의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만큼 이것만 가지고 연합군으로 해석하기는 애매하며, 삼국사기에 양국의 합동작전이었다고 분명히 기록되는 것은 당항성 공격으로부터 10년 이상 지난 655년의 일이다. [47] 항목에 나와 있지만 당항성은 중국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으므로, 백제와 고구려 모두 신라에 적대적이었던 걸 감안하면 당항성이 함락될 경우 신라로서는 그야말로 큰일나는 것이었다. 애초에 당항성 일대 자체가 신라가 백제를 배반하면서까지 확보했을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다. [48] 그런데 정작 수나라편에서는 조의들이 궁병이나 기병 같은 병종이 아닌, 그냥 보병들 상대로 압도하는 장면이 주로 나왔다. 당나라편에서는 국방을 강화한답시고 연개소문이 조의들에게만 전해져 오던 비밀 수련법을 모든 병사들이 익히도록 하라고 명령하는데, 이 수련이 어렵다면 병크인 것이고 쉽다면 조의 자체가 정예군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오히려 2부에서의 조의는 연개소문의 사병이라고 보면 된다. [49] 이게 낭자군이 소진되어 저 정도 남았다라고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작중에서 낭자군 죽는 장면이 손에 꼽힐 정도로 거의 없다. [50] 물론, 4촌의 4촌이 8촌이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다만 작중에서처럼 4촌 형제의 4촌 형제가 8촌(형제이던 아니던)이 되는 경우는 불가능하다. 계촌법 문서 참고. [51] 사실 너무 당연하게 잘못 알고 있어서 이게 실수인지 확인할 생각을 못하는 걸수도 있다. [52] 이는 이환경 작가가 맡았던 태조 왕건 1부 마지막에 궁예 한탄강에서 왕건과 술 한 잔 한 뒤 부하에게 시켜 자신을 죽이게 하는 방식으로 자결한 장면(정사나 평강군 일대 전설에서는 평강군 방향으로 도망치다가 백성들이나 부하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나온다.)과 비슷한 전개이다. [53] 반대로 우문씨와 장손씨는 복성 그대로 적용됐다. [54] 문헌에서 걸걸중상, 사리걸걸중상, 대걸걸중상, 아니면 후대에 후손들에 의해 강제 개명(?)된 대중상은 나와도 대걸중상이라는 표기는 찾아볼 수 없다. [55] 다만 이건 "조정의 늙은이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드니 우리 세대가 뒤집어 엎어야 한다" 라는 식의 말이었으므로 어느 정도 감안할 여지가 있다. 그래도 작중의 설정을 존중하면 "우린 나이도 비슷하고" 보다는 "우리는 같은 세대이니" 정도가 더 나았을 것이다. [56] 웃긴건 이 장면은 작가의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도 나온 걸 또 재탕했다는 것. 견훤의 아들 금강이 눈에 화살을 맞은 것을 뽑아내서 '하후돈도 이랬다더라' 대사까지 치고 씹어먹는데(특수제작된 눈알을 먹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왔다), 금강이 실명한 기록을 토대로 만든 장면이라지만 당연히 금강이 화살에 눈에 맞았단 기록은 없을 뿐더러, 935년에 죽은 금강이 그보다 400년 뒤 인물인 나관중이 쓴 소설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하후돈의 눈알 먹방은 연의의 창작이다) 물론 실제 안구를 관통한 화살을 억지로 뽑으면 시신경이 같이 뽑혀나와 끔찍하게 죽는다. 태조 왕건은 이환경 작가의 삼국지 사랑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인데, 나주 공방전 2차 당시 지형상 말도 안되는 남동풍 부르는 제사가 나오는가하면(제갈량처럼 바람 제사를 지내는 태평 군사는 덤), 왕건의 둘째 의형제 신숭겸은 어느 순간부터 은근슬쩍 언월도를 쓰고 수염이 점점 길어지며 녹색옷을 입는 등 관우 코스프레를 시키고 있었다. [57] 다만 같은 무마취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수술 중 끝까지 참았던 관우와 달리 연개소문은 괜한 오두방정을 떨며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58] 몇 가지만 예를 들어도 신라 관군에게 쫓기던 궁예를 구해준 것은 왕건의 아버지 왕륭이었고, 극중에서 궁예가 왕건을 '아우'로 대하며 신임하는 장면은 수없이 나온다. 궁예가 강비와 두 아들을 의심해 처형한 것도 강비가 예전 왕건의 정혼자였기 때문이었고, 극중에서는 4기장이 쿠데타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이것이다. 결국 궁예를 밀어내고 왕위를 차지한 이도 왕건이다. [59] 다른 작품만 봐도 선덕여왕 미실 정도전 이인임이 대표적인 사례로 메인 주인공( 선덕여왕, 정도전)을 뛰어넘는 강렬한 존재감으로 극의 인기를 기여했으며 메인 주인공이 반드시 넘어야 할 정적이었다. [60] 작중의 연개소문에게 "중원을 망가뜨리는 폭군" 을 몰아내고 중원의 질서를 회복해야 할 책무가 있음이 강하게 묘사되었다면 모를까 그저 주군인 이밀의 적이라 적대하는 것 뿐이고, 그 이밀과 양제의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조차 아니다. [61] SBS 공식 유튜브인 빽드에서 매주 화, 목마다 연개소문 영상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연개소문이 수나라 상단에 노예로 팔려가는 시점부터 빽드 영상에 연개소문은 띄엄띄엄 등장하며, 이후 수나라와 수양제 파트만이 영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튜브 시청자들은 수나라 파트를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을 받지 않고 있다. 심지어 고구려 파트가 나오면 고구려놈들 왜 나오냐 내지는 고구려 분량 줄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62] 안정된 연기력의 주인공,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스토리 전개를 주도해가는 주인공, 매력적인 아치 에너미들, 주인공의 서사를 뒷받침 해주는 조연 캐릭터들 등. [63] 그저 국어책 읽기 하는 주인공 및 같이 발연기를 하는 청년 캐릭터들, 메인 스토리에 겉도는 탓에 다른 캐릭터들과 전혀 엮이지 못하는 주인공, 개성 없는 주변 인물들, 아치 에너미의 부재, 지루한 사랑타령 외엔 별 내용 없는 메인 전개, 성장을 하기는 커녕 비중만 줄어버리는 주인공 등. [64] 먼치킨을 넘어서 아예 유치한 초능력을 쓰는 주인공, 주변 인물들 간의 케미조차 없어서 맺은 의미가 없는 의형제들, 서사를 구축하기는 커녕 날림 전개를 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쓰이는 운명론, 오락가락하는 주제 의식, 선택과 집중에 실패하여 늘어지는 전개 등. [65] 그나마 연남생의 경우 동생들과 왜 갈등을 빚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긴 했고, 연개소문과 이세민이 친했다는 것 또한 1차 고당전쟁 때 두 인물 간의 라이벌 구도를 부각시키는 데 활용되긴 했다. 다만 생해, 김유신과의 관계는 이럴 거면 왜 굳이 1부에 집어넣었나 싶을 정도로, 어떻게든 옹호하려 해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별다른 기능이 없다. 김유신과는 둘이 만나 술 한 잔 한 것이 전부이며, 생해는 애초에 역사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인물도 아니고 아예 출연이 없었어도 문제가 없으며, 극중에서의 역할도 측근 A를 벗어나지 못했다. [66] 더군다나 그 느릿한 전개가 다 끝난 다음에는 반란 이후 굵직한 이야기를 터뜨렸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검모잠이나 고돌발이나 뇌음신 등은 연개소문의 측근 장군 A를 넘어서는 비중을 받지 않았으며, 대걸중상도 연개소문의 쿠데타 동지 티를 조금 내는가 싶더니 이내 비중이 없어진다. 고죽리도 연개소문의 책사라는 역할을 받기는 했지만, 서토 공략을 위해 책사로서 내놓은 기발한 책략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보면 이렇다 할 것이 없다. 태조 왕건의 박술희와 아자개의 관계 같은 경우 존재감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톡톡 튀어서 드라마의 분위기를 해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계속 약방의 감초 같은 역할을 했으며, 주인공인 왕건과 의형제 관계를 맺은 캐릭터들을 보면 궁예, 견훤은 물론이고 유금필, 박술희, 신숭겸 모두 극중에서의 비중이 결코 낮지 않은 캐릭터들이라 극중의 누군가가 의형제 운운하지 않아도 존재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야인시대의 김두한과 정진영의 갈등 같은 경우도 1부 이후 2부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다. [67] 이때 온군해는 자신의 주인인 김춘추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자신이 김춘추의 옷으로 갈아입고 김춘추 연기를 했었다. [68] 가령 3차 고수전쟁 직전에 고건무가 을지문덕, 강이식과 술자리를 가지는데, 이때 을지문덕, 강이식은 지금이 기회라며 서토정벌을 강하게 주장한다. 정작 저 시점에서 수나라는 3차 침공을 위해 탁군에 30만 대군을 집결하고 있었다. 당연히 적국 한 가운데서 수십 만 대군을 어찌 대적할 지에 대해선 아무런 계획이 없다. [69] 4차 침입 때 남부 욕살 설유가 성주로 있었던 비사성을 내어 주긴 했지만, 나라 사정이 엉망으로 된 수나라가 이 성을 발판으로 삼아서 작전을 더 벌인다거나 하지는 못했다. 2차 전쟁 때 평양성을 내어준 적도 있기는 하지만 수나라군이 평양 외성에 잠시 발을 들였을 뿐이지 정말로 중요한 내성은 무사했으며, 애초에 이것은 미끼로 던져준 것이지 고구려의 역량이 부족해서 무너진 것이 아니다. [70] 이세적은 이세민과 함께 여러 전장을 종군하던 당의 명장이었다. [71] 특히 쿠데타 당시 선도해와 더불어 살려준 점이 문제. [72] 공방전은 수성 측 병력이 공성 측보다 한참 부족하더라도 공성 측이 꽤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정도로 수성 측에 유리하다. 즉 2배 많은 정도로는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며, 작중에서도 백전노장인 이세적이 "우리 병력으로는 버겁다" 라고 평한다. 그런데도 함락이 되었다는 건 일단 고돌발에게 잘못을 묻는 것이 합당한 일이다. [73] 복수에 눈이 멀었다는 부분까지는 용납될 수 있다. 딸인 고타소를 잃은 충격에 한참 동안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다가 "백제를 멸하지 못하고서야 내가 어떻게 사내라고 하겠는가!"를 외치고 백제를 정복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닌 건 삼국사기에도 기록된 사실이기 때문. 다만 이걸 "한심한 민족 배반자"라는 식으로 묘사하는 건 근대에 등장한 민족 공동체 개념을 무리하게 적용하여 삼국이 서로 같은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느꼈다는 유사역사학에 입각한 명백한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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