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31 15:04:48

대중상(대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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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극중 행적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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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 대하드라마 < 대조영>의 등장인물. 배우는 임혁.[1]

2. 특징

고구려의 장군이자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으로 알려져 있는 양반이지만 대조영과 성을 맞추기 위해 대중상으로 개명당했다.[2]

스스로가 칭하는 이명은 고구려 최후의 무장. 양만춘 장군의 심복 부장이었다보니 그에 걸맞게 무술 실력도 최상급.[3] 고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들 모두를 압도하는 무술 실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4]

격을 따질 때 북방의 또다른 메이저 세력들인 당나라의 설인귀, 거란의 이진충에 대응되는 원로격 인물이다. 같은 세대인 이진충과 설인귀가 노환으로 골골대는 중반부를 넘어가서도 혼자 팔팔하다.

3. 극중 행적

고구려의 활은 무쇠를 꿰뚫고 바위를 깨부순다!
안시성 전투가 벌어졌을 당시에는 안시성 성주 양만춘 휘하에서 활약했던 용맹하면서도 문무를 겸비한 장수였으나 대조영이 제왕지운을 타고났다는 모함 때문에 큰 공을 세우고도 역도로 몰려 처형당할뻔 했으며 양만춘 덕에 도주에는 성공했지만 본인은 칼에 맞아 쓰러지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연개소문은 대중상을 죽이지 않는 대신 멀리 고려성으로 보내버린다.

수십년 후 2차 고구려-당전쟁때 고려성으로 찾아온 대조영과 재회하게 되며[5] 이후 다시 안시성으로 복귀하게 된다. 양만춘이 살해당하자 안시성을 떠맡게 되며 고구려 멸망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부흥운동을 전개하나 고안승의 배신으로 고구려국이 무너진다. 설인귀의 안동도호부가 미처 점령못한 요동 일대를 마저 정리하려 하자 적당히 피해를 입히다 모조리 도주하는 방법으로 설인귀에게 수치를 준다.[6]

이후 한성 부근에서 비밀리에 병력을 모으고 대조영의 동명천제단에 합류시켜 요동성의 안동도호부와 맞서지만 실패, 붙잡혀 처형 위기까지 몰리다가 당나라로 압송된다. 도중에 대조영과 계필사문의 습격으로 탈출에 성공하나 정작 대조영이 붙잡힌다. 아들의 모진 고생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아비의 모습이 연이어 보인다. 당나라의 정치에 엮이고, 귀부산 노예 사냥터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밟는 등 위태로운 아들을 구하기 위해 설인귀에게 무릎까지 꿇어가며 동분서주한다. 귀부산에서 항전하는 대조영에게 밥이라도 챙겨 먹인 뒤 함께 거짓 충성맹세로 당나라에 거주하다가 대조영이 숙영과 혼인을 하고 이문의 마도산 토벌대에 합류하여 당나라를 탈출하자 뒤이어 합류한다.

당나라에서 탈출한 후 동모산에서 조용히 대조영이 말갈 세력들을 규합하고 병사를 양성한다. 영주의 고구려촌 유민들과의 교류를 이어가다 거란국을 돕게 되면서 설인귀와 재회하기도 한다. 이후 거란국이 세워지고 당나라와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키워왔던 병사 3만을 데리고 와 대조영을 지원해준다. 당나라와 전쟁이 끝이 나고 거란과 동맹을 맺자 거란국에 머무르면서 훗날을 대비하기 위한 군사들을 추가로 양병하거나 현지의 고구려 유민들을 통솔하고 현지의 정보를 취합한다. 이는 직후에 있을 대조영의 요동 정벌의 뒷배가 되었고, 대중상은 고구려 유민세력의 대표로 그려진다.[7] 비록 패망한 국가의 유장이지만 거란국 황제인 이진충과 상호 존대를 할 정도로 높은 위상을 갖는다.

거란 황궁에서 손만영의 반란에 대항하는 초린과 연합하여 한동안 쉬고 있던 것이 무색하게 가볍게 손만영의 반란을 진압해버리는 위엄을 보여준다.

이진충 사후 거란과 관계가 심각해져서 안시성에서 머무르던 중 직접 거란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아우 고돌발과 영주로 왔다가 이해고와 신홍의 간계에 속아서 붙잡히고 그대로 설계두와 도협에 의해서 아우와 함께 정말 허망하게 죽을 뻔 하지만 검이의 도움 덕분에 구사일생한다. 구출된 뒤 피신하던 도중 도협에게 중상을 입는다. 한동안 검이가 알려준 은신처에서 몸을 회복하던 중 검이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걸사비우와 금란에게 인계된다.

하지만 대중상은 죽음의 대위기에도 불구하고 안시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는데 돌궐이 영주를 침공해왔다보니 유민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졌기 때문. 혼란을 역이용하여 아우 고돌발과 걸사비우, 금란, 장산해, 무염 등과 함께 유민들을 데리고 나가다가 중간에 손만영에게 막히지만 검이가 손만영을 설득한다.[8] 이미 거란은 멸망했다보니 백성들만이라도 지키려고 한 손만영이 허락한 덕분에 영주를 무사히 빠져나오며[9] 손만영의 마지막 부탁을 받은 초린과 이검 역시 대중상 일행과 동행한다. 이 동행 과정에서 걸사비우와 초린이 조용히 만나는 걸 보고 이검이 대조영의 아들임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걸사비우에게 끝까지 함구하라고 지시하며 이에 따라서 이후 걸사비우는 대중상에게 검이와 관한 사안을 보고하며 지시받는다.

안시성으로 드디어 돌아온 뒤에는 영주에서 워낙 고생했다보니 한동안 휴식을 취함과 동시에 안시성에서 재정비를 가지며[10] 발해 건국의 대업을 위해 동모산으로 마지막 대여정을 떠나기 전 상관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양만춘 장군의 사당에 가서[11] 그에게 마지막으로 도와달라고 간청한다.

그후 발해 건국 직전의 최후의 전투로 나오는 천문령 전투에서 거란의 배신으로 대위기에 처하자 아들과 본영,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 동료 노장들과 남아서 맞섰다. 하지만 워낙 압도적인 수이다보니 무염이라도 보내고 그대신 고돌발과 함께 붙잡힌다. 사로잡혔을 당시, 동모산 일대에 사는 2만의 말갈족 지원군이 끝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사자로 온 미모사에게 전해듣고 크게 낙담한다.[12] 이 즈음에서야 드디어 이해고가 자신의 오래전 친구 부지광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이해고에게 부지광의 진심을 밝히며 이해고가 그만 폭주를 멈추기를 충고한다. 그리고 고돌발에게는 최후의 선택을 할 것임을 넌지시 드러낸다.

초린과의 포로 교환이 이뤄지고, 즉시 이어진 최후의 전투에서 죽음을 맞는다. 이해고한테 죽을 때에도 자신이 부지광을 죽일 때와 같은 구도로 그려진다.[13] 이는 아군을 분기탱천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적인 동귀어진으로 설인귀가 직접 설명해준다.[14] 결국, 이검의 설득으로 말갈족장이 늦게나마 지원군과 함께 직접 지원에 나설 때까지 대조영 군벌이 버틸 수 있던 것은 대중상의 동귀어진이었다. 군영의 존경을 받는 총사령관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대중상이었던 만큼 그의 죽음에[15] 분노한 고구려군은 당나라군 20만을 물리친다.

대중상과 이해고의 마지막 일기토에서 칼을 돌려잡아 죽음을 선택한 대중상의 모습을 본 이해고는 그 심경이 복잡했음을 표정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구기며 '저승에 가서 내 아버님께 사죄하라.'며 대중상의 몸에 칼을 더 깊이 밀어넣는다.

대중상이 이해고의 친부이자 본인의 친구 부지광의 죽음을 재현함으로써 이해고에게 마지막 충고를 했지만 이해고는 어떤 것도 깨닫지 못했다. 결국 자신의 죽음으로 고구려의 안위를 지킨 부지광, 발해의 건국을 지킨 대중상과 달리 이해고는 거란과 처자식, 본인을 따르던 병사, 심지어 자신까지도 지키지 못했다.

대중상이 칼에 맞고 대조영 품에서 남긴 유언의 내용도 인상적이다. 고구려의 무장으로 그의 품에 안기다가, 대조영의 아버지이자 달기의 지아비로 아들과 부하의 품에서 죽는다.

아래는 대중상이 마지막 대혈투를 벌이기 전의 명대사

파일:maxdefault (1).jpg [16]
나는 대고구려의 장수 대중상이다. 일찍이 안시성에서 양만춘장군을 도와서 당나라 황제 이세민의 백만대군을 물리쳤으며
연개소문 장군과 함께 요서를 휘저으며 만리장성을 넘어 서토의 심장을 위협을 했다!
" 고구려의 장졸들은 내 마지막을 똑똑히 보아두거라! 우리가 이 싸움에서 패한다면 살아서도 꿈을 잃을 것이나 승리를 한다면 우리는 죽어서도 지킬 나라가 생길것이다!


나 대중상은 이제 마지막 칼을 뽑아 부끄럽지 않은 생을 마치려 한다!


살아서 꿈을 잃느니 죽어서도 이 천문령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리라!!!"

4. 기타

첫 등장부터 중견 배우인 임혁이 연기했기 때문에, 겉모습만 보자면 양만춘 또는 연개소문과 동 세대 인물처럼 보인다.[17] 그러나 안시성 전투 시점의 대중상은 많아봤자 20대의 청년 장수로서, 이미 고구려의 중견 정치인이자 지휘관인 양만춘, 연개소문과는 나이 차이가 꽤 날 것이다. 약 57년 후인 천문령 전투 시점의 대중상은 7~80대의 노인이 된다. 어찌됐든 드라마 내적으로만 보면 상당한 고령의 노장임에도 불구하고 노익장을 제대로 과시하는 무서운 강자. 천문령 전투 때 자신의 나이를 걱정하는 아들 대조영에게 한 말로 자신의 실력이 굳건함을 증명하며, 실제로 최후에도 본인이 의도적으로 칼을 빼지 않았다면 이해고에게 최소한 중상을 입혔을 수준으로 연출된다.[18] 젊었을 때는 1화 요동성 전투 때 활을 쏴서 적병의 방패를 꿰뚫고 한방에 원샷원킬을 하는 괴력을 선보인다.

설인귀와는 라이벌이자 애증의 관계인데, 안시성 전투 당시 처음 만난 이후로 거의 일평생을 숙적으로 지내면서도 서로의 무예와 지략을 존경하는 수준에 이르었다. 때문에 적대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목숨을 구원해준 적이 여러 번 있다. 죽어라 싸우면서도 한쪽이 죽을 위기에 처하거나 자존심이 무너지는 꼴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워할 정도이니 거의 브로맨스 수준.[19] 진중한 덕장인데다, 활을 잘쏘며, 무엇보다 이덕화가 연기한 캐릭터와 애증의 관계라는 점에서 임혁이 전작 무인시대에서 연기한 두경승과 비슷하다. 물론 설인귀 역시 이의민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실제 역사속에서는 걸걸중상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대조영과 실제로 부자지간인지도 의심을 받고 있다. 일단 대중상이 대조영의 아버지가 맞다고 보는 측에서는 '걸걸'이 당시 고구려어 혹은 말갈어로 '크다'라는 뜻이었다고 해석한다. '큰' 중상, '큰' 조영인데 아버지는 음차로, 아들은 뜻으로 표기했다는 것. 일단 말갈 유민을 이끈 걸사비우와 비교되어서 고구려 유민을 이끌어서 고구려 계통으로 보기는 한다. 고구려에서의 행적은 전혀 알 수 없는 인물로, 지금은 위서로 밝혀진 협계태씨족보에서는 중급군관 정도로 기록되어 있다. 대조영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장군감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인지 삼국기나 연개소문 등에서도 장군으로 나오는 경향이 있지만 영주라는 땅의 의미를 고려하면 절대로 지금으로 따져서 장군급은 될 수 없는 인물이다. 영주 탈출과정에서는 초기에 사망. 사실은 어떻게 죽었는지도 기록에 없다. 분명한 것은 당나라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명목상 대조영 휘하 고구려측의 총사령관이지만, 직접 부대를 지휘하기 보다는 대외 활동 등이 많다보니 아들 대조영이 실질적 총사령관을 담당하고 있고 대중상은 뒤에서 조력하는 편이 상당하다.[20] 그래서 드라마 행적은 대부분 각색일지언정 대조영 아버지 + 엄청난 무력 + 고구려 내 상징성에 비하면 극 중 영향력을 나름대로 제한시켜 둬서 임팩트 있는 조연으로만 남을 수 있었다.

극중 최후반부에 이르면 위상도 대단히 높아진다. 설인귀가 당의 대장군으로서 이진충, 묵철 등 타국의 왕이라도 함부로 극존칭을 쓰지 않는데, 마찬가지로 대중상도 거란국의 황제인 이진충에게 극존칭을 쓰지 않고 서로 대등한 호칭을 쓸 정도. 작중 나라들의 위상을 비교하면 당나라=고구려>>>>>>>나머지 국가들 정도 되니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1] < 용의 눈물>의 하륜, < 무인시대>의 두경승, < 명성황후>에서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 < 징비록>에서는 홍의장군 곽재우 역을 맡았다. < 삼국기>에서는 양만춘 역을 맡아 대조영에게 고구려를 다시 세우란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2] 이 작품 때문인지 걸걸중상을 대중상으로 표현하는 일이 늘었다. 한술 더 떠서 대걸걸중상이라는 표기도 보인다. 다만 신오대사리는 기록엔 그를 '대걸걸중상'이라 표기된 부분이 있다. [3] 상관인 양만춘과 연개소문, 친구 부지광, 유일한 적수 설인귀를 제외하면 그와 맞먹는 강자가 하나도 없다. 최후의 혈투에서 당나라 대군(이해고, 이문 등 포함)을 빼앗은 당병의 검으로 압도했다보니 보다 못한 이해고가 단검을 던져서 치명상을 입힌다. 거기에 이문, 우면, 수봉, 설계두, 도협 등 당나라 측 무장들이 협공해서 상처를 입히고도 쩔쩔매서 자신의 아들과 동급의 무력을 가진 이해고가 마무리를 넣었을 정도다. 포로로 있다가 다수의 적과 싸워 중상을 입은 상태의 대중상이 검을 거꾸로 쥔 상태에서 이해고와 마지막 합을 겨뤄 사실상 일부러 자살했기에, 제대로 쥐고 마지막 합을 겨루었으면 이해고 또한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4] 이에 걸맞게 초창기 전성기 시절엔 언월도로 보이는 무기를 주로 사용했고 나이가 좀 든 뒤부터는 검으로 고정이지만 그 검술 실력마저도 상술했듯이 설인귀가 아닌 이상 그에게 당해낼 적수가 없다. [5] 이때 대중상은 자기 친아들을 당나라 첩자로 오해하고 죽일 뻔한 걸 마침 타이밍 좋게 찾아온 걸사비우가 해명해준 덕분에 살릴 수 있었다. 다만 아들인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한참 후이다. 17회에서 검모잠과 재회 이전까지는 아들인 것을 전혀 모른다. [6] 고사계의 항전으로써 시간을 번다. [7] 원래는 대중상도 요동으로 같이갈 예정이였나 이해고와 신홍의 계략에 의해 영주에 발이 묶이게되나 대중상도 영주에 남아있는 유민들이 마음에 걸려 그냥 영주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 대신 미모사도 검이를 요동탈환에 데리고 간다. [8] 검이의 설득에 앞서서 장산해가 거란 백성들도 자신들이 데리고 있는 인파에 속해있다면서 손만영을 설득하기도 한다. [9] 손만영이 최후까지 묵철을 막았다. 그 덕분에 대중상 일행은 묵철에게 들키지 않고 무사히 탈출에 성공한다. [10] 대조영이 돌궐을 막기 위해 출전했을때도 잔류하며 숙영과 함께 향후 대응방안 및 이해고와 거란에 관해서 긴히 논의하고 그들을 지속적으로 철저히 경계한다. [11] 대조영과 고돌발만이 양만춘의 사당에 동행한다. [12] 대중상은 상관 양만춘 장군의 영향으로 상당히 진중한 성격인데 그런 대중상이 마지막 희망이 꺼졌다고 말할정도로 낙담한다. [13] 아주 오래전 친구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것으로 보인다. [14] 더군다나 그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인의 전투력에 대해 느끼고 그 이후로도 지긋지긋하게 느꼈기에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 [15] 이해고에게 치명상 단검을 맞은 뒤에도 이해고, 이문 등을 상대로 혈투하다가 여러 번 베이고 결정적으로 이해고에게 위와 선술한 대로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지는 않았다. 그 엄청난 무술 실력에 걸맞은 위상인 셈. 아들 대조영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긴 뒤에 사망한다. [16] 사진은 명대사이후 대혈투를 벌이다가 이해고에게 단검을 맞았을 때의 모습. [17] 실제로 양만춘을 연기한 임동진은 1944년 생, 대중상을 연기한 임혁은 1949년 생이다. [18] 반면 같은 연령대인 설인귀의 경우 노인이 된 뒤로는 몸이 약해져서 직접 전장에 나서진 못했고, 한 번은 몸살이 나서 고생할 정도로 몸이 약해진다. 그래도 완전 늙기 전에는 대중상과의 대련에서도 밀리지 않는 등 여전히 훌륭한 무사. [19] 고구려 멸망 이후에 설인귀는 대중상한테 고구려는 부흥 운동은 그만하고 당나라의 장수가 되라고 제안했지만 당연히 대중상은 거절했고 설인귀는 정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벗으로써의 제안 뿐만 아니라 분명히 능력이 있는 대중상을 장수로 부리고 싶은 사령관으로써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20] 보통은 아들과 미모사의 말을 따르나, 완강하게 나갈 때는 절대로 뜻을 굽히지 않고 밀어붙이기도 한다. 다만 그런 경우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정말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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