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0:27:31

QF 3.7인치 대공포

Q.F 3.7인치 대공포에서 넘어옴
제2차 세계 대전의 영국군 화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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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i1327.photobucket.com/untitled-5670_zps81950643.jpg
Ordnance QF 3.7-inch heavy AA gun (견인포형)
1. 개요2. 제원3. 역사
3.1. 배경3.2. 개발3.3. 양산
4. 운용
4.1. 대공포4.2. 대전차포4.3. 야포4.4. 전차포
5. 형식6. 포가7. 포탄8. 실전과 말로9. 미디어

1. 개요

오드넌스 QF 3.7인치 대공포는 영국에서 전간기에 개발하고 사용한 구경 3.7인치(94mm) 중(重) 대공포이다. #

독일의 88mm 대공포나 미군의 90mm M1 대공포와 마찬가지로 포가를 360도 돌릴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영국군과 영연방군에서 본래 목적인 대공용에도 충실하고 북아프리카 전역에도 투입되어 대전차전도 긴급 상황에서 어느 정도는 수행 가능했던 만능포의 가능성을 보여준 화포였다.

그러나 고각도 대공사격만 염두에 둔 설계 때문에 저각 사격이나 곡사 포격시 주퇴복좌기를 비롯한 포신과 포가 전체에 비정상적 마모가 일어나는 등의 단점으로 인해 대공포로만 주로 사용해서 독일의 88mm 대공포나 미국의 90mm 대공포보다는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2. 제원

파일:external/i1327.photobucket.com/untitled-5498_zpsc9816ed1.jpg
오드넌스 QF 3.7 인치 대공포 (고정포형)
구분 Mk.I - Mk III Mk VI
중량 9,317kg
전장 8.6m
전폭 2.4m
전고 2.5m
구경 94mm (3.7인치)
포신장 4,700m (50구경장 ) 6,110mm (65구경장)
포탄 94 x 675mm R 94 x 857mm R
탄두중량 13kg
폐쇄기 수평 슬라이딩 방식
주퇴복좌기 유압식 주퇴기와 공기식 복좌기
포좌선회각도 360° 자유선회
포신부앙각도 -5° 에서 +80°
포구초속 792 ~ 814m/s 1,044m/s
최대사거리 (수평) 5,600m
최대사거리 (곡사) 12,000m
최대사거리 (대공) 9,000m 13,700m
운용인원 7명
생산기간 1937년 - 1945년
사용기간 1937년부터 현재[1]
생산량 약 10,000문

3. 역사

QF 3.7인치 대공포는 1920년대부터 개발되어 1937년에 등장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처음으로 실전 투입되었다.

3.1. 배경

영국군이 기존에 운용한 QF 3인치 20cwt 대공포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효과적인 방공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1차대전이 끝난 후에 해당 대공포를 제외한 다른 대공포들은 폐기되었다.

그러나 페르디난트 그라프 폰 체펠린이 개발한 비행선 고타 G.IV같은 복엽기 방식의 초기형 폭격기들이 영국 본토를 폭격한 경험은 아직 생생했고 1922년에는 영국 육군은 평시용 대공포 부대를 재창설했으며 1925년에 영국 공군은 영국 방공군 (Air Defence of Great Britain (ADGB))을 창설하고 대공포 부대를 휘하에 집결시켰다.

1924년에서 1925년 사이에 영국의 전쟁성에서는 대공포술에 관한 2권의 지침서를 발행했으며 해당 지침서에는 대공포에 대해 5개의 주요한 권장사항을 수록했다.
  • 포탄은 기계식 시한신관을 사용해야 하며 포탄 외피도 공기역학적으로 날카롭게 바꾼 고폭탄을 도입해야 한다.
  • 자동화를 도입하여 더 높은 연사속도를 지원한다.
  • 광학식 거리측정기를 좀 더 크고 정밀한 것을 도입해서 고도 측정을 원활하게 한다.
  • 탐조등의 방향을 비행소음이 들리는 방향으로 빠르게 돌리도록 하고 화망 형성에 대한 계획을 빠르게 제공하도록 한다.

위의 5가지 권장사항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래와 같다.
  • 대공포로 최대한 목표를 조준사격하기 위해서 목표의 고도와 방향과 속도를 연속적으로 빠르게 사격제원에 입력하고 수정하는 작업이 가능해져야 한다.
  • 중(重) 대공포는 최대 7,300m 고도에 있는 목표를 대상으로 사격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에는 기존의 도화선식 시한신관은 고도가 높아질수록 연소 속도가 불규칙하게 변화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도화선의 길이를 고도에 맞추어서 빠르게 조절하는 것이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에 고도 변화에도 정상적인 작동을 보장하는 기계식 시한신관이 필요하다.
  • 자동화를 통해서 일정한 속도로 연사가 가능해져야 발사한 각각의 대공포탄들이 목표의 위치와 방향과 속도에 맞추어서 목표의 예상 위치를 따라 적절하게 나누어져서 도달이 가능해진다.

이런 이유로 인해 1920년대에 비커스 비커스 거리 측정기 (Vickers range clock)를 발전시켜서 대공포용 사격통제장치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에 따라 초보적이지만 거리 측정기에서 얻은 데이터와 대공포 조준수가 목표를 조준하면서 얻은 자료 및 기타 데이터를 통합해서 연산하는 전기 작동식 기계식 컴퓨터를 구현했으며 대공포 포수는 해당 장치를 통해 대공포탄 신관 설정에 대한 예측 수치를 받고 사격통제장치를 가동시켜서 계기에 나오는 포인터가 지시하는 수치와 포구의 수치를 일치하도록 할 수 있었다. 해당 장치는 QF 3인치 20cwt 대공포에도 적용되었다.

이와 함께 1928년에는 나중에 QF 3.7인치 대공포가 되는 차기 대공포의 일반적인 요구조건이 결정되었다. 구경은 94mm (3.7인치)고 11kg의 대공포탄을 발사해서 8,500m 고도까지 도달시켜야 한다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 일어난 항공기의 급격한 발전과 작전고도의 대폭적인 상승이 발생하면서 폭격기 무적론이 등장하게 된다. 해당 이론은 신형 항공기는 고속 성능을 가지기 때문에 발견당할 때면 이미 목표지점 근처까지 온 경우가 많아서 대응할 시간이 별로 없는데다가 고고도로 고속 비행하므로 대공포를 발사하더라도 목표가 있는 고도까지 포탄이 올라가지 못하거나 항공기가 지나간 후에나 포탄이 도달하는 사태가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 공군의 폭격기 부대에 대한 기대도가 올라감과 동시에 대공포 부대에 대한 필요성이 낮아지게 된다. 그래서 대공포 개발 및 생산이 크게 정체된다.

3.2. 개발

1930년대 중반부터 초보적인 레이더가 등장하면서 적군 항공기를 빠르게 찾아내서 조기경보가 가능해지므로 적군 항공기를 요격하거나 대공사격해서 막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다시 발견되었다.

그래서 슈퍼마린 스핏파이어같은 신형 전투기를 우선적으로 생산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전투기는 다른 용도로도 사용해야 하고 수요도 많은 편이라 대공포도 다시 대량으로 필요하였다.

하지만 이미 전간기부터는 항공기 기술들이 발전하면서 1차대전보다 훨씬 빠르고 높게 비행할 수 있는 항공기들이 등장하였고, 이러한 항공기들은 기존의 QF 3인치 20cwt 대공포의 사정거리를 벗어나서 비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높게 비행하는 신형 항공기들도 사격할 수 있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대공포가 요구되면서 개발이 시작되었다.

상황이 다급해지면서 차기 대공포에 대한 요구조건이 강화되었다. 구경은 94mm로 동일하지만 13kg 중량의 대공포탄을 포구초속 910m/s의 속도로 발사하여 11,000m 고도까지 포탄이 도달해야 하며 견인시 허용가능한 속도도 40km/h이며 최대 중량은 8톤이고 대공포 진지에 도착해서 방렬을 완료할 때까지 15분을 넘어가면 안되도록 구체적인 수치도 지정되었다.

상황이 다급하여 1934년에 비커스-암스트롱사 (Vickers-Armstrongs)는 대공포의 모형을 제작하고 프로토타입 개발을 서두른다. 그래서 경쟁사를 제치고 1936년에는 제식화 승인 실험을 통과했다. 그러나 급하게 개발한 덕분에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대공포의 중량이 목표를 초과했고 포구초속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으며 기계식 시한신관인 No. 206의 경우에는 개발된 지 얼마도 안된 상태라 간신히 양산이 시작된 관계로 재고가 거의 없었기에 기존의 No. 199 도화선식 시한신관을 사용해야 했으므로 신관 문제 때문에 스펙상의 유효사거리가 줄어들고 포탄이 도달할 수 있는 고도도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없었기에 1937년 4월까지 여러가지 테스트를 통과하자마자 양산결정이 내려져서 1937년 말에 실제로 QF 3.7인치 대공포의 양산이 시작되었다.

3.3. 양산

이렇게 번갯불에 콩을 구워먹듯이 사소해보이는 문제는 다 무시하고 대공포의 양산이 시작된 이유는 당시의 영국은 대공포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1938년 1월 1일 기준으로 영국 방공군은 50mm보다 구경이 큰 대공포가 180문 밖에 없었으며 대다수가 이제는 능력이 부족한 구식이 된 QF 3인치 20cwt 대공포였다. 그래서 대공포 양산을 서둘러서 1938년 9월의 뮌헨 협정 시기에는 341문의 QF 3.7인치 대공포가 생산되었고 1939년 9월의 폴란드 침공 시기까지 540문으로 늘어났으며 영국 본토 항공전 시기에는 1,140문이 생산되었다. 그 이후에도 QF 3.7인치 대공포의 생산은 1945년까지 이어졌으며 월평균 228문의 생산량을 기록하였고 영국 본토 외에도 호주 자치령에서도 분산해서 생산하였다.

그리고 높은 고도까지 대공포탄을 도달하게 하려고 포탄 1발 발사할 때마다 장약을 고충전 사양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대공포이므로 이런 식으로 대량의 포탄을 빠른 연사속도로 발사하기 때문에 포신 교체 및 예비포신 부족 문제가 1940년 말에 발생했다. 그래서 예비용 포신의 상당량이 캐나다 자치령에서 양산되었다.

4. 운용

여러가지 용도로 활용해보고자 했으나 고각도 대공사격만 염두에 둔 설계 때문에 다른 용도로 전환하면 부품의 비정상적 파손과 마모가 발생하므로 전환이 어려워서 주로 대공포로만 사용했다.

4.1. 대공포

영국 방공군 (Air Defence of Great Britain (ADGB)) 소속으로 대부분의 QF 3.7인치 대공포가 배치되었으며 QF 3인치 20cwt 대공포를 대체하였다.

보통 1개 포대가 대공포 8문과 2개 부대로 구성되었으며 3개 포대가 1개 연대를 구성했다. 개전 초반부터 영국이 위기상황이던 시기에는 대부분의 대공포가 영국 본토에 배치되었으나 곧 북아프리카 전역이나 몰타 항공전같은 격전지에도 소량을 배치하기 시작했고 인도 제국, 호주 자치령, 캐나다 자치령에도 배치되었다.

1957년에 영국군의 대공포가 대공 미사일로 교체될때까지 대량으로 운용되었고 최종형인 Mk.VI는 1959년까지 배치를 유지했다.

4.2. 대전차포

나치 독일군의 8,8cm FlaK과는 달리 긴급시에 어쩔 수 없이 대전차포로 사용된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QF 3.7인치 대공포는 대전차포로 운용되지 않았다.

긴급 사용시에도 일단 위력은 확실하여 영국군 및 영연방 호주군 및 뉴질랜드군, 남아프리카 연방군 등의 기록에 따르면 쉬르첸이 장착된 4호 전차 H형이나 4호 전차 G형을 정면관통하여 쉬르첸째로 통째로 불태운 사례나 6호 전차 티거의 정면장갑을 관통하여 그야말로 산산히 찢어버리며 폐차 수준으로 유폭시킨 기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차포로 사용을 거의 못한 이유는 아래와 같이 설명된다.
  • 영국이 위기에 몰리던 시절에는 대공포로 쓰기에도 수량이 부족했다. 영국 본토 항공전 시절에도 고작 1,140문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포신 마모율이 높아서 예비포신 부족사태가 이미 1940년 말에 발생하는 상황까지 몰리자 최전선에 대전차포로 배치할 수량 자체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영국이 위기상황을 벗어났을 때에는 이미 2파운더 대신 6파운더가 대전차포의 주력이 된 시점이며 곧 17파운더가 등장하면서 QF 3.7인치 대공포를 굳이 대전차포로 쓸 필요가 없게 된다.
  • 해당 대공포의 대부분이 배치된 대공포 부대는 영국 공군 아래에 있는 영국 방공군 휘하의 중(重)대공포 부대인지라 명령 계통부터 영국 육군과 전혀 다르고 업무도 후방에서 대공사격 위주로 운영하기 때문에 보통 군단이나 야전군소속으로 활동한다. 그래서 일선에서 독일군 전차같은 강력한 상대와 전투를 벌이는 사단 이하의 부대에는 QF 3.7인치 대공포가 배치되지 않았기에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다.
  • 중량이 8,8cm FlaK 36에 비해서 2배나 무겁고 대차 구조도 복잡하며 방렬 시간도 오래 걸리는데다가 구조상 고각도 대공사격만 생각한 탓에 포구를 저각도로 내려서 전차같은 지상목표를 사격하거나 하면 주퇴복좌기의 기어같은 중요 부품의 마모나 손상이 발생하며 저각사격을 지속하면 포가나 포신에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견인차량인 AEC 마타도어도 도로나 지면이 단단한 곳에서만 견인을 쉽게 할 수 있어서 대전차포로 쓰려고 QF 3.7인치 대공포를 험지에 배치하기가 어렵다.

    방렬을 한 상태에서도 이렇게 안좋은 증상이 발생하는데 이동대차에 실린 채로 긴급사격을 하면 대공포 전체에 큰 충격이 가해져서 손상이 크게 일어나므로 아예 해당 긴급사격 자체가 금지되었다. 이래서는 대전차포로 사용하기 매우 어렵다.

4.3. 야포

나치 독일 공군의 위협이 크게 감소하자 영국 본토와 같은 곳에서 대공포로서는 실업자 상태가 된 QF 3.7인치 대공포가 생겨났고 일선에서 야포로 사용해보겠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실제로 군단포병과 같이 사용해본 결과 최대 18,000m의 사정거리 안에서 VT신관이나 개선된 기계식 시한신관인 No. 207을 사용할 경우 독일군 야포나 박격포의 머리 위에서 포탄을 작렬시킴으로서 치명적인 파편세례를 독일군에게 뿌릴 수 있다는 점이 알려졌고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고각도 대공사격만 생각한 구조적 문제점 때문에 야포로 사용하는 경우라도 저각도로 사격을 지속할 경우에는 점점 주퇴복좌기, 포가, 포신에 비정상적 마모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여전하였다.

야포로서의 사용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부터 베를린 공방전 까지 서방 연합군의 작전시에 약방의 감초격으로 자주 사용되었으며 종종 나치 독일군의 벙커 같은 강력한 목표를 공격하는 간이형 공성포로도 활용되었다.

4.4. 전차포

기본적인 화포 자체의 능력은 대전차용으로 써먹기에도 훌륭했으므로 개조를 통해 전차포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워낙 포 자체가 무겁고 부피가 큰 관계로 전차포로 개조하더라도 중전차급 차체 정도에만 탑재가능하여 전차포의 주력은 17파운더 및 후속작인 20파운더로 넘어간다.

제2차 세계 대전기에 개발된 영국제 초중전차 A39 토터스에 탑재된걸로 알려진 32파운더 대전차포도 3.7인치 대공포에서 파생되었다. 그 외에도 램 전차의 차체 위에 QF 3.7인치 대공포를 탑재해서 자주대공포 대전차 자주포로 사용하려는 실험작도 존재한다.

5. 형식

  • Mk.I
    첫 생산 모델. 모노블록 포신. 50구경장 포신과 94 x 675mm R 포탄을 사용한다. 유압식의 주퇴기와 공기식의 복좌기로 구성된 주퇴복좌기를 가진다. 초기형이므로 공기식 복좌기의 실린더가 공기 누출을 일으키는 문제가 있었고 공압식 실린더를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 Mk.II
    포신이 루즈 라이너로 변경되었다. 제조는 비커스-암스트롱사가 1943년까지 진행했고 그 이후에는 캐나다 자치령이 Mk.IIC의 형식번호로 제조를 계승한다.
  • Mk.III
    Mk.1의 포미와 Mk.2의 포신을 결합한 버전.
  • Mk.IIIA
    대공포 자체는 Mk.III과 비슷하지만 관측장치, 조준장치, 사격통제장치가 모두 바뀌었다. 이를 통해서 자동신관설정장치와 자동장전장치가 도입됨으로서 대공사격의 연사속도가 증가하고 대공화력의 효율이 향상되었다. 94 x 675mm R 포탄을 사용하는 마지막 모델이다.
  • Mk.IV
    기존의 3.7인치용 약협 대신에 QF 4.5인치 함포, 정확히 말해서는 영국 해군의 4.5인치 (114mm) 45구경장 QF Mark V의 약협에 3.7인치용 탄두를 결합해서 더 강력한 장약으로 대공포탄을 쏘게 만든 버전. 포신 마모가 심각했기 때문에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취소되었다.
  • Mk.V
    Mk.IV와 비슷하다. Mk.VI이 채택되면서 취소된다.
  • Mk.VI
    처음에는 영국 해군의 5.25인치(134mm) 50구경장 QF Mark I의 포가를 활용해서 포신의 길이를 늘린 신형 94mm 포신을 결합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중량과다등의 문제로 인해 Mk.IV와 비슷한 개발계획으로 돌아왔고 포버트 (Probert) 대령이 포신의 강선을 더 완만하게 변경하였다. 강선의 홈 깊이는 포구의 앞 5구경(탄환 직경의 5배의 길이)의 영역부터 서서히 얕아져 포구에서는 제로까지 감소한다. 이것에 의해 포탄에 장착된 강선용 탄띠의 움직임을 매끄럽게 함으로서 항공역학에 적절한 상태를 만들게 됨으로서 탄도를 개선시키고 포신 내부 마모를 줄인다.

    해당 대공포는 신형 65구경장 포신을 채용하고 포탄도 94 x 857mm R로 교체하여 대공포탄을 15,240m 고도까지 도달시킬 수 있었다. 중량 증대 문제로 인해 완전 고정식 포가인 Mk IIA와 후속 고정포 포가에만 장착했으므로 견인이 불가능해서 견인포가 아니라 고정포가 되었다.

    포탄 발사용 장약도 변경해서 Mk.I에서 Mk.III까지 사용했던 부식성이 강한 코르다이트 (cordite) 장약은 Mk.VI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그 대신에 17파운드와 2 ~ 6온스의 다양한 단일 베이스 형태의 나이트로셀룰로스 장약을 사용한다. 개선점이 많았기 때문에 1944년부터 1959년까지 Mk.VI는 현역으로 배치가 가능했다.

6. 포가

견인포 포가와 고정포 포가가 모두 존재했다. 포가의 종류에 관계없이 360도의 포좌 선회와 -5도에서 +80도의 포신부앙각도가 보장되었다. 포가에는 관측장치, 조준장치, 사격통제장치가 포함되었다.

견인포 포가는 8,8cm FlaK의 견인포 포가와 비슷하지만 QF 3.7인치 대공포의 중량이 2배나 되므로 좀 더 크고 무거우며 트레일과 레벨링 잭이 있는 바퀴 달린 이동 대차인 Mk.I 이나 Mk.III 으로 구성되었고 방렬시에 바퀴를 들어올리거나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가능했다.

고정포 포가는 Mk.II 이며 보통 포가를 놓는 자리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단단한 플랫폼 위에 결합용 받침대가 있었다. Mk.II도 포대를 변경하기 위해서 이동식 대차가 있긴 했으나 대도시같이 포장이 잘 된 도로에서 단거리 이동할 때나 쓰는 물건이지 거친 지형이 있는 야전에서 사용하는 것과 장거리 견인은 불가능한 물건이었으며 필요시에만 대여해서 장착하는 물건이었다.

Mk.II의 이동 문제가 의외로 피곤한 일이기에 1944년에는 철도용 화차 위에 고정식으로 장착하여 대공포 이동에 철도를 사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으며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다.

Mk.II는 고정포 포가이기 때문에 견인포 포가보다 크기가 작으면서도 강력한 반동을 받아낼 수 있었고 부가적인 설비를 장착하기에도 편했다. 그래서 Mk.IIC 포가에서는 자동신관설정장치와 자동장전장치등의 부가설비가 더 늘어나서 대공포탄을 자동신관설정장치에 투입하는 것 외에는 완전자동으로 대공포 포격이 가능해졌다.

7. 포탄

QF 3.7인치 대공포의 포탄은 고폭탄 유산탄이 존재한다. 포탄 자체의 성능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중점적으로 일어난 것은 신관이었다. 높은 고도를 고속으로 비행하는 목표를 상대해야 하므로 도화선식 시한신관은 불충분했기에 기계식 시한신관을 도입했으나 No. 199 도화선식 시한신관은 작동시간이 고작 30초에다가 고도가 올라갈수록 연소속도가 균일해지지 않아서 조기폭발하는 문제가 있었으며 No. 106과 No. 107은 기계식 시한신관이지만 신뢰도가 낮았다. 그래서 최대작동시간이 43초인 No. 208이 표준 신관으로 도입된다.

1942년부터는 자동신관설정장치인 No. 11을 도입해서 고정식 포가인 Mk.IIC를 채택한 QF 3.7인치 대공포와 견인식 포가를 가진 Mk.IIIA 기종은 연사속도가 분당 20발까지 늘어났고 그 후에는 VT신관을 도입해서 V1(로켓) 격추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대공포 자체의 변화보다는 포탄 신관과 자동신관실정장치의 개량으로 일단 원래대로의 스펙을 뽑은 다음 대공포의 개량으로 성능이 더 올라가게 된다.
세부형식 신관설정장치 신관 최대도달고도
Mk.III No. 1 No. 199 7,200m
Mk.III No. 1 No. 208 7,500m
Mk.III No. 2 No. 208 7,700m
Mk.III No. 11 No. 208 9,800m
Mk.VI No. 11 No. 208 14,000m

Mk.III이 구식 신관과 구식 신관설정장치를 사용하면 포탄의 최대고달고도가 7,200m 수준으로 낮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포구 각도가 +70도일때 643.7km/h로 비행하는 적 항공기와 20초간 교전 가능한 고도를 포탄의 최대고달고도로 잡은 영국의 기준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경우보다 약간 깎여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포탄 중량이 당대의 동급 수준의 타국 대공포보다 무거운 13kg 수준이므로 같은 수준의 장약을 사용하면 포탄의 최대고달고도가 낮아지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나치 독일의 8,8cm FlaK과 소련의 52-K는 포탄 중량이 9.2kg이고 이탈리아 왕국의 Cannone da 90/53은 10.3kg의 포탄 중량을 가졌으며 미국의 90mm 대공포도 10.56kg의 포탄 중량을 가지므로 QF 3.7인치 대공포가 가장 무거운 포탄을 쏘는 것이 맞다.

8. 실전과 말로

전간기 말기에 영국이 긴급개발한 관계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이 주로 사용하였다.

나치 독일 프랑스 침공에서 노획품으로 소량이지만 정확한 수량을 확인할 수 없는 수량의 QF 3.7인치 대공포를 입수하고 94mm Flak Vickers M.39(e)이라는 명칭을 붙여서 사용했고 일본 제국 남방작전에서 싱가포르 전투등을 통해 영국군에게서 해당 대공포를 노획한 후 제1육군기술연구소 (第一陸軍技術研究所)에서 조사를 한 후 1942년 12월에 운용 메뉴얼을 만든 후에 압수 3.7인치 고사포 (押収三・七吋高射砲)라는 명칭으로 운용했다. 이들 추축국들은 해당 대공포를 노획품만으로 유지했으며 탄약과 소모품도 노획품에서 충당했다.

1944년 11월 1일에 벌어진 인파추에이트 작전 (Operation Infatuate)에서 안트베르펜 항구의 안전한 항로 확보를 위해 발헤렌(Walcheren) 섬에 상륙하는 작전에서 나치 독일군의 콘크리트 포대에 해안포겸 대공포로 설치된 노획된 QF 3.7인치 대공포 4문이 영국군과 캐나다군의 상륙정을 격침시키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영국의 식민지와 영연방에 분배된 QF 3.7인치 대공포는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사용하는 등 추가적인 실전을 겪었으며 이스라엘이 영국으로부터 제2차 중동전쟁 직전인 1955년에 해당 대공포를 구입하여 배치했고 이스라엘 공군 소속의 P-51 머스탱을 오인사격해서 격추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다가 제3차 중동전쟁 직전인 1967년에 보포스 40mm 포를 도입하면서 퇴역시켰다.

각국에서 퇴역한 후에는 기념조형물의 형태로 부대 정문에 전시되거나 박물관에 전시된다.

9. 미디어

9.1. 게임

9.1.1. 워 썬더

QF 3.7 램 대공전차, 토그 II* A39 토터스의 주포로 등장한다. 둘다 화력은 무거운 중대공포이자 독일의 아하트 아하트 급의 무거운 화포를 주포로 탑재한 구축전차답게 뛰어나지만, 전자는 M4A5 램 순항전차의 차체에다 무거운 중대공포를 얹어 개조한 대공차량이니 기동성과 방어력이 빈약하다. 후자도 미국의 통곡처럼 전선돌파용 중전차답게 느리지만, 방어력은 뛰어나다.

9.1.2. Men of War 시리즈

영연방 진영의 포병 스페셜 유닛으로 등장한다. 성능은 그야말로 실고증 그대로 대영제국판 아하트아하트. 독일의 88mm Flak 41보다 절륜한 대영제국의 똥파워를 자랑하며 독일 저티어 전차 유닛인 2호, 3호나 4호는 말할 것도 없이 무지막지한 화력으로 통째로 폭파시키고 날려버리며 고철더미로 만들고, 차체와 포탑을 한 방에 분리하여 불타는 관짝으로 만들어버린다. 실제 포 고증대로 판터나 티거, 티거 2나 엘레판트조차 정면에서 종이장 찢듯이 중장갑을 가볍게 뚫어 유폭시키고 격파시키거나 기동 불능으로 만들어 한 줌의 고철더미로 폐차시키는 무시무시한 홍차맛의 죽창이자 충공깽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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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팔군이 2024년 기준으로도 45문을 운용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