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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1353b4,#1353b4>역임 지위 | <colbgcolor=#fff,#1f2023> 영국 국왕 · 영연방 왕국 국왕( 인도 제국 황제 · 캐나다 국왕 · 호주 국왕 · 뉴질랜드 국왕) · 영국 왕실 수장 · 요크 공작 | |
생애 | 생애 | ||
재위 시기 | 조지 6세 시대 ( 제2차 세계 대전) | ||
가족 관계 | 아버지 조지 5세 · 어머니 테크의 메리 · 배우자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 형 에드워드 8세 · 동생 프린세스 로열 메리, 글로스터 공작 헨리 왕자, 켄트 공작 조지 왕자, 영국의 존 왕자 · 장녀 엘리자베스 2세 · 차녀 마거릿 공주 | ||
기타 | God Save the King · 윈저 왕조 · 대영제국 · 킹스 스피치 · 킹스 스피치(연극) · 세 황제의 해 · 더 크라운 ( 조지 6세(더 크라운)) · 말더듬 · 라이오넬 로그 · 킹 조지 6세 & 퀸 엘리자베스 스테이크스 |
1. 개요
"
국민 여러분. 진정하시고 평상시처럼 하던 일을 하십시오."
영어권에서 자주 사용되는 밈. 원본은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영국 본토 항공전으로 인해 연이어 독일군의 폭격을 당하던 영국 왕실 측에서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프로파간다 문구.
이 문구가 프로파간다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사회지도층들이 침착하고 원래 있던 자리에서 자기 할 일을 했기 때문이다. 국왕인 조지 6세 내외는 정부 일각에서 같은 영연방 왕국인 캐나다[1]로 도피하라는 권고를 했음에도 버킹엄 궁전 앞마당에 폭탄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버킹엄 궁에 머무르며 정사를 보고, 런던 각지의 공습 피해지역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며 국민들을 격려했다.[2]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비는 버킹엄 궁전에 폭탄이 떨어진 이후 "이제야 런던의 이스트엔드 지구[3]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 기쁘다."라는 명언까지 남겼다. 이와 더불어 전쟁 중에는 왕실도 얄짤없이 배급제에 포함되어 왕실 전체가 검소한 생활[4]을 유지했으며, 아돌프 히틀러는 엘리자베스 왕비를 유럽에서 위험한 여자라고 폄훼했다. 또한 왕위 계승자이자 장녀인 엘리자베스 왕녀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운전병에 들어가서 직접 물자 지원도 하고 차 수리도 하는 등 모범을 보여주었다.즉 포스터 맨 위 튜더 왕관이 괜히 그려진 것이 아님을 본인들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윈스턴 처칠 총리도 "만약 내가 죽는다면 독일군은 내 시체를 집무실의 의자에서 끌어내려야 할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며 계속 런던 집무실에 머물렀다. 때로는 지하벙커에 머무르기도 했지만 정부 건물 바로 지하에 있었으므로 조금만 큰 폭탄이 떨어졌어도 박살났을 것이다. 당시 다우닝 가 10번지와 가까운 곳에 지하실을 파고 거기서 내각을 주재했었고, 윈스턴 처칠은 버킹엄 궁전으로 자주 가서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왕비를 만났다보니 적으로부터 노출될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런던 공습 초기에는 공장 및 노동자 거주지역에 집중된 폭격 때문에 일부 노동 계급들이 피해의식을 가지기도 했으며, 군중이 상류층을 위한 호텔에서 운영하는 피난소를 "우리도 들여보내 달라" 라고 습격한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호텔 지배인이 직접 호텔을 습격한 시위대들에게 차를 나눠주고 앞서 언급한 대로 왕궁도 폭격의 피해를 받았으나 국왕 내외는 런던에 남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의 분노도 점차 누그러들었고, 본 항목의 메시지 대로 진정하고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게 되었다.
즉, 정부 혹은 한 집단을 주도하는 계층이 위기상황에서 국민들 혹은 집단 전체에게 본 항목과 같이 "국민 여러분. 진정하시고 평상시처럼 하던 일을 하십시오." 라는 메시지[5]를 보내려면 그들 스스로 본보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윈스턴 처칠 총리는 영국 본토가 침략당하는 위기상황에서도 절대로 외국으로 도망가지 않았고 전시내각을 꾸린 뒤 런던 집무실과 지하벙커에 남아 공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당당하게 이 슬로건을 주장할 수 있었다. 지도자가 외국으로 도망간 뒤 앞장서서 부화뇌동하는 태도로 " 국민 여러분. 진정하시고 평상시처럼 하던 일을 하십시오" 라고 주장했다면 국민의 절대다수를 고기방패로 써버리겠다는 것과 같은 기만적인 메시지로밖에 안 보였을 것이다.[6]
1939년에 만든 포스터지만 특유의 간결한 디자인이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해당 문구는 ‘Your Courage, Your Cheerfulness, Your Resolution; Will Bring Us Victory’과 ‘Freedom is in Peril; Defend it with all Your Might’에 이은 3부작이었으나 정작 2차 대전 중에는 포스터 찍은 종이도 재활용을 해야 할 정도로 물자난이 심해서 공개할 기회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0년도에 영국 노섬벌랜드의 고서점 바터북스에서 포스터가 재발견 되어 빛을 보게 되었다.[7][8] # #
매우 간단한 타이포그래피인지라 쉽게 패러디가 가능해서 영어권에서는 많은 패러디가 양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Keep calm and 이후에 나오는 문장을 원하는대로 바꾸며, 왕관 로고를 이후의 문구에 맞춰 적절하게 바꾸는게 포인트. 광고에서도 Keep A and ~라는 형식으로 패러디한 형태가 많이 사용된다.
미드 플래시에서 작중 등장인물인 시스코 라몬 시즌 1 7화에서 이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온다.
역 노블레스 오블리주 상황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일어나는 일이고, Keep calm and carry on 문구 역시 비틀어 해석하면 "니네 국민들은 노예일 뿐이니, 우리 정부가 뭘 하든 신경쓰지 말고 해야할 일이나 계속 하라" 혹은 "상황이 얼마나 시궁창이건 개선을 바라지 말고 열심히 일이나 하라" 라는 뜻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주로 권위주의적인 정부, 1984스러운 상황을 풍자하는 의미로도 많이 쓰인다. 또한 영국 역시 양극화가 심해지고 간간히 터지는 왕실의 사건 사고, 심각한 청소년 강력범죄, 챠브족 문제가 대두되는 등 사회 문제도 많아 자조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가 있다.
삼성 라이온즈 라커룸에도 걸려있다.
2. 예시
이 항목을 보고있는 당신도 여기서 간단하게 직접 만들수 있다. #정해진 로고가 아닌 커스텀으로 하고 싶다면 이 사이트를 추천한다. #
최대한 간결할수록 평이 좋다.
진정하고 말살하라 말살하라 말살하라
국민 여러분 진정하고 생업에 종사하십시오.[10][11]
진정하고 업그레이드를 받으세요
진정하고 알롱지!
진정하고 제로니모!
진정하고 뛰어요 똑똑한 양반
진정하고 IRA에 참여하시오
진정하고 병신에게 먹이 금지.
진정하고 내 금속 엉덩이나 깨물어!
진정하고 Easy Peasy Lemon Squeezy![12]
진정하고 하이드라 만세!
진정하고 죽을 준비 하세요.
진정하고 나무위키를 편집하세요.
로즈리가 도용했다고 카더라
하늘보리 아이스 스파클링에도 패러디인지 KEEP CALM & STAY COOL이라 적혀 있다.
진정하고 배트맨을 불러요.
영화 맨 오브 스틸에서 이스터에그로 등장한다. #
진정하고 차를 마시세요
역시 영국이라면 빠질수 없는 것이 홍차.
진정하고 수확하자
오버워치 인게임에서 얻을수 있는 리퍼의 스프레이로 등장한다.
진정하고 살아가세요, 계속 살아 가세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진정하라 동무가 돌아왔다
실제 칼라시니코프 USA의 Saiga-12의 민수용 COMRAD의 홍보 사진이다.
진정하고 하나 챙겨라
원문 마지막에 e 하나만 덧붙인 것이다(...) 소녀전선의 숙소 아이템인 포스터의 일종.
다른 버전
홍콩에서는 KEEP CALM AND CARRIE OFF라는 시위 구호가 있다.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다시 출혈을 할 수가 있어요.
3. 같이보기
-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가만히 있으라: 본 항목과 정반대의 맥락인 사례들이다. 이 쪽은 수도가 폭격당하는 초유의 상황에서 국민들이 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진정시키고 영국의 항전의지와 전쟁 수행 역량을 보전하려는 의도였으며 이를 왕실과 내각 모두 런던을 지키며 실천에 앞장선 사례인데, 저 두 경우는 모두 책임자가 자기들만 위험을 회피하면서 죄없는 국민들과 승객들을 저버린 사례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모두 여기 있습니다: 이 쪽은 본 항목과 착 들어맞는 사례. 수도 키이우에 세계 2위 군사대국이 발사한 미사일들이 쏟아지고 적군 공수부대가 수도 이곳 저곳은 물론 대통령실 코 앞까지 들쑤시며 우방국 지도자들까지 수도를 버리고 도망칠 것을 권유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국가의 책임자들이 모두 모여 오밤중에 수도의 길거리에서 스마트폰 전면 카메라로 간단하게 촬영해 페이스북에 업로드한 이 30초 분량의 동영상은 전쟁의 판도를 뒤집는 데 매우 큰 지분을 차지했다.
[1]
조지 6세는
캐나다 국왕이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직무를 수행해도 해외 피난이 아니다. 당연히
호주에서는
호주 국왕,
뉴질랜드에서는
뉴질랜드 국왕으로의 업무를 수행한다.
[2]
당시 영국 정부는
국왕은 제외하더라도
왕대비,
왕비,
엘리자베스 공주,
마거릿 공주만은 캐나다로 피난시키려고 했으나
왕비가 거부하면서 무산시켰다.
[3]
각종 공장이 몰려있는 지역이라 폭격의 최우선 타겟이었고 그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밀집해서 살았던 곳이므로 피해가 큰 곳이었다. 지금은
런던 시티 공항,
카나리 워프로 재개발 되었다.
젠트리피케이션도 이 때 나온 개념이다.
[4]
당시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엘리너 루스벨트의 증언에 따르면 버킹엄 궁전 역시 수도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다고 한다.
[5]
킹스 스피치에 나오듯이
조지 6세가
라이오넬 로그의 도움을 받아 연설할 때 Keep Calm and Carry on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6]
단
빌헬미나
네덜란드 국왕 일가는
캐나다로 피난갔으나 이 때는
나치 독일에
네덜란드가 점령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간 거며 캐나다에서도
국왕 일가가 사비를 터어 연합국을 지원했다. 이는
일본에
점령되고
정부를 구성한
임정 소속
의원, 관료, 법관,
한국광복군 소속
군인과 유사하다.
[7]
이는
플랫
디자인(
미니멀리즘 지향적인 디자인)으로도 보이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플랫 디자인의 전신인 국제 타이포그래피컬 스타일(또는
스위스 스타일 디자인으로도 알려져있다)로, 21세기 현 디자인 트렌드와 같이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디자인으로 제작되어 보기 좋은 것이 그 이유다.
[8]
플랫디자인의 심플하고, 묘사를 과감히 생략한 스타일과 정 반대로서는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이라는 실사지향적 디자인 스타일이 있다.
[9]
사실 타디스 상단의 'POLICE PUBLIC CALL BOX'사인에 사용된 폰트는 Gill Sans폰트나 KEEP CALM과 유사한 폰트를 사용한다. 타디스의 원본인 경찰공중전화상자도 영국의 공공기물이었기때문에 유사한 폰트를 사용한것으로 보인다.
[10]
런승만 패러디 짤방의
윈스턴 처칠 버전이다. 그러나 실제 윈스턴 처칠 수상은
영국 본토 항공전 시절, 런던의 지하 방공호에다 전시 내각을 꾸리면서 계속 런던에 머무르고 공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런승만 드립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참고로 이 방공호는 여전히 남아 있는데, 이것이 바로 헬싱에서도 짤막하게 언급되는 캐비넷 워룸이다. 현재까지도
다우닝 가 10번지 인근에 보존 및 개방되어 있어 관람할 수 있으나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하여 휴관중인 상태.
[11]
그리고 애초에 해당 사진은 유럽에서의 전쟁은 완전히 끝난 뒤인,
1945년 영국 총선 이틀 전인 7월 3일, 처칠이 선거 유세를 하면서 찍힌 사진이다. 즉 해당 밈과는 애초에 별 상관이 없는 사진이다.
당시 찍힌 다른 구도의 사진사실 원조인 런승만 짤도 실제로는
평양 수복 직후 찍힌 사진이긴 하다 그래도 처칠은 결국 전쟁 이겼다는 차이는 있다
[12]
언뜻 신조어나 명대사 류의 표현 같지만, 그 기원이 무려
194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관용적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