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하계 세계대학경기대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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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373a3c>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1959 토리노 |
1961 소피아 |
1963 포트알레그레 |
1965 부다페스트 |
1967 도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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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373a3c>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
1970 토리노 |
1973 모스크바 |
1975 로마 |
1977 소피아 |
1979 멕시코시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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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373a3c> 11회 | 12회 | 13회 | 14회 | 15회 | |
1981 부쿠레슈티 |
1983 에드먼튼 |
1985 고베 |
1987 자그레브 |
1989 뒤스부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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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373a3c> 16회 | 17회 | 18회 | 19회 | 20회 | |
1991 셰필드 |
1993 버팔로 |
1995 후쿠오카 |
1997 시칠리아 |
1999 팔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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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373a3c> 21회 | 22회 | 23회 | 24회 | 25회 | |
2001 베이징 |
2003 대구 |
2005 이즈미르 |
2007 방콕 |
2009 베오그라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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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373a3c> 26회 | 27회 | 28회 | 29회 | 30회 | |
2011 선전 |
2013 카잔 |
2015 광주 |
2017 타이베이 |
2019 나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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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373a3c> 31회 | 32회 | 33회 | 34회 | 35회 | |
2021 청두 |
2025 라인-루르 |
2027 충청 |
2029 노스캐롤라이나 |
미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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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하계 유니버시아드 XXII Summer Universia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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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기간 | 2003년 8월 21일 ~ 8월 31일 |
개최 국가/도시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
유치 확정일 | 2000년 7월 14일 |
참가국 | 174개국 |
경기 종목 | 13종목 |
개회 선언자 |
노무현 대한민국 대통령 |
주경기장 | 대구월드컵경기장 |
마스코트 |
드리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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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3년, 1997 무주·전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개최 이후 6년 만에 대한민국 대구광역시에서 개최된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개회 연설은 노무현 대통령이 하였다. 174개국 4,179명의 선수가 참가한 대회.한국에서 개최된 두 번째 유니버시아드이며, 하계 대회로만 보면 첫 번째다.
주제가는 보아가 부른 ' 함께 내일로'였다.
2. 종목 및 경기장
- 육상 : 대구월드컵경기장(現 대구스타디움)
- 축구 : 대구시민운동장 주경기장(現 DGB대구은행파크)[1], 수성구민운동장, 강변축구장, 구미시민운동장, 김천종합운동장
- 농구 : 대구시민체육관(現 대구복합스포츠타운 시민체육관), 정화여자고등학교 체육관, 영남고등학교 체육관, 서라벌대학교 원석체육관(現 서라벌대학교 원석스포츠센터), 박정희체육관, 안동체육관
- 배구 : 대구체육관(現 대구실내체육관), 영남이공대학교 체육관 (現 영남이공대학교 천마체육관), 대구일중학교 체육관, 대구가톨릭대학교 체육관(효성캠퍼스), 경일대학교 체육관, 영천체육관(現 영천시민운동장 영천체육관)
- 펜싱 : 대구전시컨벤션센터(現 EXCO)
- 기계체조 : 계명대학교 체육관
- 리듬체조 : 경주실내체육관[2]
- 수영/다이빙 : 두류수영장[D]
- 수구 : 대구체육고등학교 수영장
- 테니스 : 유니버시아드 테니스장(舊 두류축구장)[D]
- 태권도 : 경북고등학교 체육관
- 유도 : 계명문화대학교 수련관
- 양궁 : 예천진호국제양궁장
3. 역대 조직위원장
조직위원장은 대구시장이 도맡아 했다.4. 이모저모
- 종합 1위는 중국, 종합 2위는 러시아, 종합 3위가 개최국 대한민국, 종합 4위는 우크라이나이었다.
-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 이어 북한이 보이콧을 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참가하였다.
- 대회 6개월 전 대구 지하철 참사가 터지자 대구시와 지역사회에선 개최에 지장이 생길까 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 주 경기장은 대구스타디움을 사용하였다.
- 선수촌은 북구 동변동에 지었으며 대회가 종료된 후 분양되었다.[5]
- 대회의 슬로건은 Dream for Unity, 그것을 향한 5가지 목표는 Dream, Advance, Equalize, Green, Unite인데 이 알파벳의 앞글자는 다들 아시다시피...
- 8월 24일, 대구 엑스코에서 북한 기자들 앞에서 탈북자 지원 단체들이‘김정일 타도하여 북한주민 구출하자’, ‘김정일이 죽어야 북한동포가 산다’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외치며 김정일 비난 집회를 가졌는데, 이를 본 북한 기자들이 흥분해서 돌격하는 바람에 난투극으로 이어져 쌍방에서 모두 부상자가 나왔다. 응원단 사건이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건의 심각성은 이쪽이 더 심했으며, 북측은 남한의 사죄와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대회 불참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대구 U대회 북한 기자단과 보수단체 격렬한 몸싸움, 북한 선수단 보수단체 반북회견 관련 경기불참 고려 시사(이상 MBC), 보수단체-북측 보도진 충돌(이상 KBS)
- 대회 7일째인 8월 28일, 북한 응원단과 선수단 파견을 기념해 경기장 인근에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로 손잡고 있는 사진이 담긴 현수막을 걸어 두었는데 이게 그만 비가 내려 젖어버리고 말았다. 마침 응원을 마치고 숙소로 가던 북한 응원단이 비에 젖은 김정일 사진을 보고 장군님의 신성한 사진이 비에 젖는 걸 볼 수 없다며 버스를 세워 내린 뒤 긴급히 현수막을 철거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네이버 뉴스 기사(SBS 8 뉴스) MBC 뉴스데스크 KBS 뉴스 9 여러모로 안좋은 의미로 컬처쇼크를 주었는데 대다수 남한 사람들은 소름끼친다는 반응을 보였다.
- 북한 출신 주성하 기자의 후일담에 따르면, 이후 이런 행동에 대해서 북한 측 관계자가 사석에서 "애들이 뭘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 해명하였다고 한다. 초상화에 대한 이런 과잉 충성에 대해서는 김정일이 오히려 충성심을 빙자하는 행위로 보고 처벌한 적이 이미 있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 동영상을 참고. 사실 독재국가에서 과잉충성으로 일을 그르치는 일은 흔한 일이니 이상할 것까지야 없다.
-
당시 개막식과 폐막식의
매스게임을 다수 편성 하였는데, 부채춤등의 공연은 계명대학교 여학생들이, 거대한 기를 들고
전력 질주뛰어다니는 극한의 매스게임은 포항의 해병대 1사단 장병들이, 해병대와는 다른 작품인데 역시 거대한 기를 들고뭐하는지거리야!전력 질주를 하는 작품과(...) 디지털 북을 들고 달리는(...) 2개의 공연은세상에인근의 201명의 특공여단 장병들이 담당하였다. - 폐막식의 공연은 상기 매스게임에 참여한 인원들과 가수 보아가 함께 공연하였다.
5. 관련 문서
[1]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축구 경기 일부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2]
경주시민운동장 옆
[D]
두류공원 내 소재
[D]
[5]
이에 맞추어 동변초등학교와 동변중학교가 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