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선 후기의 수학자. 1684~1727 (향년 43세). 방정식과 마방진 등을 연구했다. 그가 쓴 책인 구일집에는 파스칼의 삼각형, 복잡한 이항계수의 정리, 고차 방정식의 풀이 등이 쓰여있다.2. 업적
당시 중국에서는 사라진 방정식 표현법인 천원술을 발전시키고 조립제법 비슷한 알고리즘을 사용한 증승개방법(增乘開方法)을 통해 방정식의 풀이법을 연구해 저서인 <구일집>에 10차 방정식의 풀이까지 담아 조선만의 방정식 이론을 발전시켰다. 물론 당연히 찾지도 못하는 참값을 찾은 건 아니고 산가지를 이용해 수치해석학적 풀이를 찾은 것.중국에서는 이 당시 산가지를 버리고 주판에 몰입했는데, 주판이 산가지에 비해 연산력이 월등하기도 했지만 당시 산가지의 이론들이 원나라의 연구대상이라서 반대로 명나라 들어서 기피대상이 된 게 컸다. 그러다가 동시에 주판으로 다루기 곤란한 방정식론이나 유한급수론이 모조리 기억에서 사라진 것. 그러나 조선에서는 일본과 중국에서 버린 산가지를 계속 메인으로 사용했기에 방정식론이 발전할 수 있었다. #
중국의 양휘가 만든 백자도에는 가로와 세로의 합이 505로 같은 마방진이 있었는데, 척 보고는 대각선의 합이 505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첫째 줄과 두번째 줄, 마지막 줄과 마지막에서 두번째의 줄이 바뀐 것을 알아냈다.
두 수의 최소공배수와 최대공약수의 수학적 구조를 조선 최초로 얻어냈다.
3. 이야기
1713년[1] 청나라에서 온 사신인 산학자 하국주와 조선에서 온 홍정하, 유수석이 만나 서로 수학문제를 냈다. 하국주는 360명이 한사람마다 은 18전을 내면 그 합계는 얼마나 되는지 문제를 냈다. 그러자 홍정하가 648냥[2]이라고 했다.이후 회심의 일격으로 낸 문제가 "두 정사각형의 넓이의 합은 468평방자이고, 큰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는 작은 것의 변의 길이보다 6자 더 길때, 두 정사각형의 각 변의 길이는?" 인데, 방정식론의 대가였던 홍정하는 이것 역시 쉽게 풀었다.
- [ 해답 보기 ]
- 작은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math(x)]라고 두면, 큰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는 [math(x+6)]이다.
[math(x^2 + (x+6)^2 = 468)]이고, 전개하면 [math(x^2+6x-216 = 0)]이며, 조건을 만족하는 양의 x, 즉 작은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는 12자이고, 큰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는 18자이다.
홍정하가 하국주에게 한 문제를 냈다. "공 모양의 옥에 내접한 정육면체 모양의 옥을 빼놓았는데, 그 껍질의 무게는 265근[3]이고 가장 두꺼운 껍질의 두께는 4.5치(4치 5푼)이었는데 그렇다면 이 옥의 지름과 내접하는 정육면체 한 변의 길이는 얼마인가"라는 문제를 냈다. 그러자 하국주는 구의 부피를 구하는 방법을 몰라서 "내일 반드시 풀어오겠다"고 했지만, 결국 풀어내지 못한다.
- [ 해답 보기 ]
- 길이를 구하는 문제이므로 껍질의 무게는 제시되지 않아도 무방하다.
정육면체의 높이를 [math(x)]라고 두면,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의해 정육면체 밑면의 대각선 길이는 [math(\sqrt{x^2+x^2} = \sqrt{2}x)]이다.
정육면체의 대각선 길이는, 높이와 밑면의 대각선 길이로 삼각형을 만들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적용하면 [math(\sqrt{x^2 + (\sqrt{2}x)^2} = \sqrt{3}x)]인데, 구에 내접하는 조건이 있으므로 이는 구의 지름과 같다.
껍질의 가장 두꺼운 부분의 길이는 구의 지름에서 높이를 뺀 값을 둘로 나누면 되며, 그 값은 [math(\dfrac {\sqrt{3}x-x}2 = \dfrac {(\sqrt{3}-1)x}{2})]인데, 이 값이 [math(4.5)]이므로 [math(\dfrac {(\sqrt{3}-1)x}{2} = 4.5)], 즉 [math(x = \dfrac {9}{\sqrt{3}-1})]이며, 계산하면 약 [math(12.29)]치가 된다.
다음 날에 하국주는 '반지름이 10치 원에 내접한 정오각형의 넓이를 구하시오.'라는 문제를 냈다. 홍정하는 조선에 없던 삼각함수를 이용한 문제를 듣고는 어떻게 푼거냐고 물어보게 된다.
아무튼 이 일로 홍정하와 하국주는 좋은 인연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때마침 하국주는 방정식 이론을 몰랐고 홍정하는 삼각함수 이론을 몰랐기 때문에 서로 학문적으로 주고받은 게 많았기도 하다.
4. 여담
ebs역사채널e에서도 나왔다. 여기서 볼 수 있다.냉대받던 학문이라 보기도 뭐한 게, 지천 최명길의 손자인 최석정 또한 영의정을 역임했던 정치가이면서 마방진을 연구했던 수학자였다.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ebs 역사채널 장면으로 위의 청나라 사신과 문제를 주고받을 때 청나라는 곱셈문제만 냈고 홍정하가 위의 공 모양의 옥 문제를 내자 사신이 쩔쩔매는 장면만 알려졌는데, 이를 두고 상대는 예의상 단순 곱셈 문제 내줬는데 지는 엄청 어려운 문제 낸 매너 없는 놈 이미지가 생겨버렸다.